한길그레이트북스2014.09.24 09:56

한길인문고전아카데미

아서 단토 깊이 읽기 -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을 탐색하다

『일상적인 것의 변용』

 

 

한가로운 토요일 오전의 미술관을 좋아하시나요

 

아무 말 없이 벽에 걸려 있는 그림을 보며 말로 된 위로보다 위안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대리석 조각상을 마주하는 게 체온보다 더 따뜻할 때도 있고요. 보고 싶은 전시회가 생기면 별 준비 없이 가보는 편이지만, 현대미술일 경우에는 망설여집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모든 경우에 들어맞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현대미술 전시에 관해서만큼은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가을에 다시 시작된 한길인문고전아카데미 ‘아서 단토 깊이 읽기’는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찾게 된 미학의 역사를 공부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강의를 맡은 김혜련 선생님은 아서 단토의 『일상적인 것의 변용』을 번역하셨는데요, 예술철학뿐만 아니라 인식론, 역사철학, 행위이론, 심리철학에 걸친 단토의 철학을 세 가지 질문을 통해 풀어냈습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할 수 있는가

 

언어의 의미가 지시대상이나 항구적인 본질에 기초한다는 생각을 의심하는 비트겐슈타인의 반(反)본질주의적 혁명은 예술철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렇다면 낱말의 의미는 어떻게 결정될까요.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언어의 의미는 생활세계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용법을 따릅니다. 우리가 표준어라고 부르는 것도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데, 이는 한 사회의 중심축을 이루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하고 이해하는 방식에 따라 낱말의 의미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술’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그것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분석을 경청하기보다 실생활에서 사람들이 ‘예술’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상황에서 이 말을 사용하는지 관찰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예술사와 미학의 역사에서 예술의 본질로 제시되었던 것들은 각각 해당 문화권에서 사람들이 예술에서 중요한 것으로 이해하고 ‘본질’의 지위를 부여했던 것입니다. 예술이란 내면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입장은, 낭만주의 시대에 천재 예술가들이 제2의 창조자로서 자신들의 미적 이념(aesthetic idea)이나 내적 비전(inner vision)을 예술형식으로 체현했던 것이고, 감상자들의 작품의 완성도와 미적 가치를 숭앙하며 예술의 본질을 표현성에 있는 것으로 수용했던 관행입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미니멀리즘 예술은 감정의 표현을 목표로 하지 않고 단지 예술매체의 물질성 자체를 보여줍니다. 미니멀리스트 미술이나 음악, 무용 같은 예술은 내면에 대한 관심과는 거리가 멀고 오직 눈이나 귀로 접근할 수 있는 매체의 물질적 면모를 흥미로운 것으로 다룹니다. 예술은 의미 있는 형식이라는 논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형식을 확정 지을 수 없는 퍼포먼스나 일회성 해프닝, 또는 형식을 갖고 있기는 해도 형식이 중요시되지 않는 다다이즘이나 초현실주의 예술에는 형식주의 정의를 적용할 수 없습니다.

 

 

 

들라쿠르아, 「민중을 이끈 자유의 여신」

 

 

 

루이스 부르조아, 「감사와 은총」(오른쪽) 「본성탐구」(왼쪽)

 

 

 

 

 

 

 

 

 

 

 

 

 

 

 

 

예술의 본질에 대한 설명으로 제시되었던 것들이 이처럼 예술의 하부집합들의 미적 가치와 유의미성을 지시할 뿐이라면, ‘예술’이라는 명사는 과연 정당하게 사용될 수 있는 것일까요. 우리가 작품에 붙이는 ‘예술’이라는 낱말이 사실은 명목적인 명찰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떤 근거로 어떤 것을 예술이라 부르는 것일까요. 어떤 것은 예술이지만 어떤 것은 예술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에 대해 단토는 전통적 의미의 예술의 본질을 거부하면서 특이한 종류의 본질을 밝히고 있습니다.

 

『일상적인 것의 변용』 제1장에서 단토는 사고실험의 한 형태로서 가상의 전시회를 엽니다. 이 전시회에는 단토의 예술개념과 예술철학의 성격을 결정짓는 붉은 사각형들이 등장합니다. 이 붉은 사각형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다른 점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차이점이라고는 오직 작품을 만든 제작자와 제목이 서로 다르다는 것뿐이죠. 이 붉은 사각형들에는 각각 「키르케고르의 기분」,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민족」, 「니르바나」, 「붉은 사각형」, 「무게」라는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이 전시회에서 예술가는 의도는, 첫 번째 어떤 물리적 대상에게 예술의 지위를 부여하려는 것과 연관됩니다. 이런 종류의 의도는 단순한 지각적 식별능력에 의해 파악되지 않죠. 붉은 사각형들이 겉보기에는 차이점이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두 번째, 예술작품의 구체적인 지각적 면모에 의미론적 기능을 부여하는 일을 합니다. 예를 들어 「키르케고르의 기분」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사각형의 붉은색은 불안과 연관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색으로서 붉은색 자체가 불안을 나타내지는 않는데, 「키르케고의 기분」의 붉은색이 불안감을 표상할 수 있는 것은 그 작품을 만든 화가가 그 사각형의 붉은색으로 하여금 키르케고르의 심리적 상태를 지칭하도록 의미론적 기능을 부여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예술가의 의도는 작품 제작 당시에 예술가가 속해 있는 예술계에서 수용되는 예술개념과 예술이론, 규약 등에 의해 제한됩니다.

 

단토가 제시하려는 예술작품의 존재론은 바로 예술가가 작품에 대해 갖는 ‘의미론적 기능의 부여 가능성’을 축으로 합니다. 즉 작품의 개체화는 작품의 물리적 상대역(physical counterpart)의 단순한 동일성에 의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가 작품에 부여하는 예술이론적 차원의 지향성(intentionality)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지요. 원칙적으로 예술가는 작품에 어떤 의미론적 기능이든지 부여할 수 있겠지만, 그 가능성은 그가 속한 예술계 내에서 취할 수 있는 이론들의 범위에 의해 제한됩니다.

 

 

그렇다면 예술작품의 의미는 예술가에 의해 결정될까요

 

 

브뤼헐,「이카로스의 추락」

 

 

 

이 그림을 보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시나요. 그림의 제목은 「이카로스의 추락」입니다. 오른쪽 하단에 그려진 바다에 빠진 다리는 그림 전체에서 시각적으로 그리 큰 비중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목을 알게 되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이 그림을 이카로스가 공중에서 추락해 물에 빠진 신화를 암시하는 것으로 동일시하는 것은 특정한 서사적 틀에 의한 지각 과정의 결과입니다. 이러한 해석 가능성의 단서는 일차적으로 그림의 제목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제목은 해석을 위한 지침이며, 그 작품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 그 주제가 무엇인지에 관한 이론을 제시합니다. 단토가 제안하는 ‘예술적 동일시’(artistic identification)는 단순한 지각 양태가 아니라 문제의 대상에 예술계라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동일성을 부여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존재론적 변용(transfiguration)을 동반하는 변용적 동일시입니다. 관람자의 예술적 동일시를 통해 대상은 단순한 실재적 사물의 영역에서 의미의 영역, 이 경우에는 예술계의 영역으로 이동하는 것이죠. 따라서 작품에 제목을 붙이는 것은 단순한 명명이 아니며, 변용의 절차로서 해석은 선택된 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동일성을 대상에게 부여한다는 점에서 세례와 비슷합니다.

 

마르셀 뒤샹의 작품 「샘」의 소변기는 해석에 의해 예술적으로 동일시되기 전에는 단순한 실재적 사물입니다. 그러나 예술가와 해석자가 접근할 수 있고 이용할 수 있는 예술이론을 통해 단순한 실재적 사물에는 적용되지 않는 변용적 동일시를 수행하고, 그 결과 새로운 종류의 개체로 태어난 것이죠. 따라서 해석은 예술사에 관한 지식, 예술이론에 관한 지식, 나아가 근본적으로 예술개념 자체에 관한 지식을 통해 한 대상을 예술로 동일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단순한 실재적 사물로서 소변기의 동일성과 예술로서 소변기의 동일성의 차이가 지각적으로는 식별 불가능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럼 언제 한 사물에 대한 해석은 예술적 해석이 되는 것일까요

 

예술의 은유적 구조는 존재론적으로는 변용을 통해, 의미론적으로는 수사법과 표현 양식을 통해 구축됩니다. 예술이 지각적으로 음미되고 그 의미가 해석될 수 있는 것은 예술가의 의식을 매체를 통해 체현하고 관람자와의 소통 가능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죠. 감상자들은 수사법과 표현양식을 탐지해낼 수 있는 일종의 독해능력을 습득함으로써 예술작품의 은유적 의미를 해독할 수 있습니다. 작품을 순수한 눈으로 탐색하는 것은 작품의 표현적 속성, 즉 은유적 의미를 놓치는 것입니다. 반면에 작품을 마음의 눈으로 탐색하는 것은 작품의 의미를 매체의 결에서 분리시키고 추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탐색은 어느 것도 예술작품을 온전하게 다루지 못합니다. 감상자의 과제는 의미론적 규약에 따라 작품의 의미를 해독할 뿐만 아니라, 작품에서 수행된 수사법과 표현양식을 구별해냄으로써 매체의 결을 음미하는 것입니다.

 

단토는 제거될 수 없는 예술가의 개성이 작품의 매체적 특질을 통해 나타나는 것을 스타일이라고 말합니다. 스타일은 곧 사람이다는 말도 있죠. 예술을 아는 것과 사람을 아는 일이 참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길인문고전아카데미 다음 강의는 ‘레비-스트로스 깊이 읽기’입니다. 문명과 야만의 경계 그 너머를 얘기하는 시간이 될 텐데요, 이번 주 목요일 마포도서관에서 뵙겠습니다.

                                                                                               

-편집부

*보다 자세한 수업내용은 강의안을 참고하세요.

아서단토 깊이읽기_김혜련 선생님.hwp

 

 


일상적인 것의 변용

저자
아서 단토 지음
출판사
한길사 | 2008-05-1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일상적인 것의 변용』은 “무엇이 어떤 것을 예술로 만드는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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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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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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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