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다반사2015.05.21 14:45

[작가 김수경이 노무현을 그리다-세 번째]

세간의 진실, 한 인간의 진실




추억. souvenir. 추억이란 아래서(sous) 오는(venir) 것이다. 일부러 의식적으로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늘 흐르는 것…


『내 친구 노무현』의 작가 김수경에게 노무현은 일부러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늘 흐르는 어떤 알 수 없는 것일 게다.


5월 23일. 한 해 안에 끼인 삼백여의 날, 그 여러 날 중에 박힌 아픈 한 날, 심하게 부조리한 날. 생과 사 사이의 협곡을 건넌 이는 고독하나 초연한 꽃이다.


나는 한 생애의 결말을 해석하고 발화하기에는 너무나 어리고, 어리석어, 그저 그 경계 암벽 바위에 홀로 서 있었던 한 존재의 절대적 외로움과 비밀을 눈을 질끈 감고 그려본다. 두렵다. 산다는 것이. 절정으로 산다는 것이. 온몸으로 낙담한다는 것이. 앞에 미래라고 놓인 것이 공허라면, 그 공허 속에 떨어진다는 것이 한 나약한 인간으로서, 얼마나 처절하게 두려운 육체적 경험인가 하고.


기억이 난다. 작년 가을 어느 날, 퇴근 무렵이었던가? 저녁 6시 좀 못 미쳐. 『내 친구 노무현』의 첫 장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원고가 들어오던 때, 그런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김수경 선생님은 작은 포인트의 촘촘한 행간을 좋아한다고 하였다. 그래야 글이 잘 써진다고 하였다. A4를 가득 채운 그 어둔 장막 속 별 같은 비밀. 심장이 조금 짓눌려 왔다. 기억하기 고통스러운 바로 그날 안으로 곧장 진입해 들어간 작가의 본능적인 결단과 용기에 잠시 아찔했던 탓이다.


  진실과 사실 사이에서

  상상과 실재 사이에서

  노출과 은폐 사이에서

  작가 김수경이 소설적 진실로 써내려간

  마이 라이프 트릴로지.





그 두 번째 『이것은 소설이다』 원고가 많이 진척되어가고 있다. 1권 작업 때도 집필 독려를 위해 2주가 멀다 하고 사장님과 함께 선생님 댁에 갔었다. 글쓰기는 고독과 고통의 산물이지만, 선생님은 여느 전업 작가들이 보이는 예민함과 신경질 따위를 부리지 않는다. 글쓰기에 신비한 낭만 따위를 부여하지 않는다. 빨리 쓰면서도, 몰입하면서도, 호흡하고 쉬어갈 줄 안다. 환담할 줄 안다. 나는 김수경 선생님이 이따금 지어 보이는 파란 사과 같은 미소를 좋아한다. 애플.


노무현 대통령 서거 6주기가 다가오면서 우리는 짐짓 심각해지고, 우리 작업은 더욱 속도를 내야 할 필요를 느낀다. 현실정치에서는 늘 사건들이 유비적으로 터진다. 1권 『내 친구 노무현』에서 암묵적으로 환기되었던 인물들이 현실정치에서 다시 주요하게 활약한다. 유비적 테마들이 다시 논점이 된다. 정치, 돈. 우정 혹은 적. 역사는 지나 흘러간 줄 알았던 것들의 되풀이, 아니 회귀라 했던가. 순환일지 모른다. 악순환. 선순환 아닌.


노무현에 대해 말하면, “노빠” 혹은 “친노”라는 프레임으로 갇혀버리는 것이 싫다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김수경 선생님은 이날도 말했다. “그저 한 개인에 대해 추억하고 말할 수는 없을까?” “노무현이 그저 한 고유명사, 아니 어떤 추상성도 띠지 않은 구체적 실존 명사일 수는 없을까? 내게는 그런 존재인데…” 하고 우리에게 되묻기도 했다. “노무현이 무조건 옳다고 하지는 않는 한 개인의 기억인데, 그리고 그 기억 속에 한 집단의 기억이 있는 거고”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내 친구 노무현』을 내고 나서 주변에서 매우 다양한 독후감을 들었다고도 했다. 노무현의 지지자들은 “너무 뜨뜻미지근하지 않나?” “그다지 강렬하지 않다”고 했단다. 또 그다지 노무현에 대해 열렬하지 않은 자들은 혹은 싫어하는 자들은 “노무현이 그렇게 감성적인 인간이었어?”라고 했단다. 그러면 “왜 나는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노무현을 그리지 못했을까?” 하고 자문하기도 했다고 했다. “내가 그만큼 강렬한 ‘포트레이트’를 만들지 못했나 보지… 사람들이 내 책이 어렵대…”


『이것은 소설이다』는 언론들이 작성한 수많은 기사들과 온갖 기록 문서들, 해괴한 담론들 등 소위 수많은 ‘팩트’들을 ‘게시’하고 ‘계시’하는 프로젝트다. 이런 팩트들이 현실사회에서 ‘사실’이라고 주장되어왔다. 그러나 그 ‘사실’이, 세간의 진실이 진짜 진실일까? 한 인간의 진실일까? 매우 가파른 내용이 될 것이다. 이 두 상호관계를 철저히 파고드는 힘든 작업이 될 것이다.





“1권이 퍼스널한 기억이라면, 2권은 대통령이 된 노무현의 이야기이므로 퍼스널한 기억이 아니야.” 작가 김수경은 1권에서 “미미한 우정의 광채만 남기고” 대통령이 된 친구 노무현과 이별했다. 이것이 1권의 마지막 장이었다. 이제 2권이 시작되려 한다. 그 첫 문장은 무엇일까?


선생님은 “소위 ‘팩트’들과 나 사이에 일정한 거리가 있고, 그래서 그 팩트들 사이의 연결고리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 연결고리가 작가의 센텐스(sentence)가 될 것이다. 센텐스란 단순히 단어들의 결합인 문장이 아니다. 말 속의 심지다. 아픈 자극이다. 통렬함이다. 인간 본성의 밑바닥까지 들여다보는 주시와 통찰의 언어, 심중의 비밀.


승냥이 언론들이 쏟아낸 수많은 언어들, 그 허위의 더미들을 있는 날것 그대로 환한 빛 아래 눈부시게 ‘게시’하면서, 한 먹이를 서서히 포위해가는 기이한 “사냥감 몰이” 시스템을 암유적으로 ‘계시’해야 할 것이다. 환생경제 따위의 연극 대사를 통해 한 인간을 조롱하고 모욕한 날것의 핏빛 붉은 혀의 언어들을 그대로 선보여야 할 것이다. 불편함, 혐오, 환멸, 울컥 치솟는 분노, 고통 따위를 매우 잘 조절하면서 인간 집단의 혹은 한 사회의 가면을 벗겨내야 할 것이다. 신랄하고, 때로는 폭력적이다 못해 치졸하여 원초적인 날 언어들이 작은 종이를 가득 채우면서도 그러나 이름 모를 하얀 새벽빛이 그 가운데서 솟아 올라와야 할 것이다. 작은 피아노 음악이 그 날것 언어 더미들 사이, 사이에서 들릴까? 우아한 모데라토 칸타빌레로? 뒤라스처럼? 아니, 즐기듯 관능적인 한 여자 현자(賢者)처럼?


“저는 음악과 같이 사는 사람이에요.

저는 전화기로나 컴퓨터로나

언제나 음악과 함께 있는 사람이에요.

물론 글 쓸 때도.”


피로 얼룩진 정치적 관계, 서로의 이익을 탐하는 무대를 보여주기 위해 한 여인이 어둠 속에서 LP판을 찾는다. 뜨거운 차를 따른다. 톤을 맞추자. 조율하자. 팩트와 픽션의 변증이자 역전을 이루어줄 그 톤을. 음계를.


『이것은 소설이다』의 주어는 “그녀 김수경”이 아니라 “나”라고 한다. 3인칭이 아니라 1인칭이라고 한다. Moi(나)만은 아닌 Le Moi(The 나)...







-류재화(한길사 기획위원 |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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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