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다반사2015.06.04 14:25

역사학의 거장들 역사를 말하다

제1강 역사학과 인류학의 만남 『기적을 행하는 왕』

6월 3일 정동프란치스코회관

 

 

마르크 블로크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왜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 걸 쉽게 믿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전쟁 통에 얼마나 많은 소문과 추측이 난무했을까요. 이러한 의문을 가지고 본인의 관심사인 유럽 중세시대를 다룬 첫 번째 저서가 바로 『기적을 행하는 왕』입니다.

1000여 년 전 프랑스와 영국에서 일어난 ‘기적의 역사’와 ‘기적을 믿는 역사’.

한길그레이트북스 134권『기적을 행하는 왕』을 번역한 박용진 선생님이 전하는

‘역사학과 인류학의 만남’을 소개합니다.

 

 

 

 

 

마르크 블로크는 뤼시앵 페브르와 함께 프랑스 아날학파 1세대 학자로 알려져 있는데요, 아날학파는 문헌연구나 역사적 사건 자체에 집중한 기존 역사연구와 달리, 역사에 대한 구조적 파악을 위해 새로운 연구방법을 도입하며 20세기 역사학의 전면에 등장했습니다. 특히 2세대인 페르낭 브로델에 와서 그 영향력이 커졌는데요, 브로델은 “모든 인간과학은 사회의 전체성에 이르는 하나의 문이다”라며 전체사를 강조했습니다. 또, 역사학과 사회과학(지리학)의 결합, ‘시간지속’ 개념으로 역사연구의 새 장을 연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마르크 블로크 뤼시앵 페브르

 

 

 

 

인류학적 역사학의 첫걸음

 

"그리스도가 과연 십자가에서 처형당하고

다시 부활했는가를 아는 것은 오늘날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의 문제는 왜 수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의 처형과 부활을 믿는가 하는 점이다."

• 마르크 블로크, 『역사를 위한 변명』

 

 

집단 심성을 주제로 삼아 문헌(회계장부, 의학서적)과 비문헌(이미지, 표상)을 사료로 다룬 블로크의 역사방법론은 그 당시 역사연구에서는 새롭고 낯선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생각, 행동양식, 관습을 다루는 인류학적 역사학은 1980년이 되어서야 일반적인 흐름이 되었는데, 『기적을 행하는 왕』은 50여 년을 앞선 선구적인 저서였고, 그래서인지 출간되었을 때 주목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기적의 역사와 기적을 믿는 역사

 

“왕이 너를 만지고, 신이 너를 치료하노라.”

 

블로크는 어떻게 손대기 치료가 행해지며, 이 능력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또 이러한 능력과 행위가 정치적 권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먼저 살핍니다. 이 과정에서 기적을 행하는 왕에 영향을 준 게르만적 요소(왕의 초자연적 능력), 기독교적 요소(도유식), 로마적 요소(대관식)에 주목합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사람들이 기적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어떻게 해서 기적을 믿게 되었는지, 또 어떻게 해서 믿지 않게 되었는지를 추적합니다. 당시 왕이 치료한다고 알려진 연주창은 결핵의 일종으로 건강이 회복되면 자연적으로 치료되기도 하는 병이었다고 합니다. 연주창을 앓고 있는 수백, 수천의 사람들이 왕 앞에 나아가 손대기 치료를 받습니다. 치료가 끝나면 은화와 앞으로 지켜야 할 생활수칙이 적힌 처방전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사람들 중 몇몇은 건강이 회복돼 연주창이 자연적으로 나았을 수 있습니다. 소문은 금방 퍼졌을 것이고, 사람들은 더 강하게 왕의 치료 능력을 믿게 되었겠지요. 치료되지 않은 경우는 환자의 잘못이라 여겼다고 합니다. 믿음이 부족하거나, 처방전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이죠. 결국 “기적에 대한 믿음을 만들어낸 것은 기적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인 것입니다.

 

 

 

 

프랑스 앙리 2세(1547~50) 영국 메리 여왕(16세기)

 

 

 

 

유럽사를 관통하는 성(聖) VS 속(俗)

 

그러나 이러한 믿음도 이성의 세기 앞에서 점점 힘을 잃고 사라집니다. 공식적으로는 19세기 초에 마지막 치료가 있었는데, 민간에서는 20세기 초까지 믿음이 지속되었다고 합니다. 블로크는 왕권의 초자연적 성격이 점차 쇠퇴하는 과정에서 근대의 이성이 승리하는 역사를 발견했습니다. 이는 유럽사를 관통해온 성(聖)과 속(俗)의 대립입니다. 20세기에 들어설 때까지 프랑스에서 교권과 속권의 관계설정이 첨예한 문제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블로크에게 성과 속의 관계는 지나가버린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살아 있는 인간의 현실적인 문제였을 것입니다.

 

 

 

 

다음 강의에서는 마르크 블로크의 주저 『봉건사회』를 다룹니다.

제도가 아닌 인간의 관계에 주목한 역사학이란 무엇일까요.

6월 10일 수요일,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7시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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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