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다반사'에 해당되는 글 139건

  1. 2015.10.14 2015 파주북소리 소년한길 풍경
  2. 2015.06.24 [인문학스터디] 역사학의 거장들 역사를 말하다 제3강_역사학의 거장들과 나누는 역사의 대화 (2)
  3. 2015.06.12 [인문학스터디] 역사학의 거장들 역사를 말하다 제2강_개인적 보호와 복종의 관계
  4. 2015.06.04 [인문학스터디] 역사학의 거장들 역사를 말하다_제1강 역사학과 인류학의 만남 (2)
  5. 2015.05.22 "그가 간 지 6년이나 흘렀다. 그를 쓰면서 비로소 그를 잊을 수 있었다" -작가 김수경, 6주기에 즈음하여 노무현을 그리며
  6. 2015.05.21 [작가 김수경이 노무현을 그리다-세 번째]세간의 진실, 한 인간의 진실
  7. 2015.05.20 [작가 김수경이 노무현을 그리다-두 번째]당대성과 진실성 사이에서 균형 잡기
  8. 2015.05.19 [작가 김수경이 노무현을 그리다-첫 번째]"그를 처음으로 잊을 수 있었습니다"
  9. 2015.05.12 파주출판도시 어린이책잔치 2015 소년한길 풍경
  10. 2015.04.27 [한길사가 만난 사람] 로마 역사에 정통한 바흐 마니아 -'한니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최정동 기자 (4)
  11. 2015.04.20 [한길사가 만난 사람] 어릴 적에 만난 유럽을 평생 흠모하다- 역사학자 이광주
  12. 2015.02.09 『인생을 묻는다』저자 김성우와 함께 "깊은 밤, 책과 인생을 말하다."
  13. 2015.01.29 [편집자의 저자 선생님 댁 방문기]경기도 남양주-이삼성 선생님 편 (1)
  14. 2014.12.04 작가 김수경+기자 주진우,『내 친구 노무현』을 말하다
  15. 2014.11.06 작가 김수경의 친구들과 독자들이 함께한 <내 친구 노무현> 시독회
한길다반사2015.10.14 15:54

2015 파주북소리 소년한길 풍경

 

 

지난 10월 5일부터 11일까지 파주출판도시에서 파주북소리 2015가 열렸습니다.

급작스럽게 추워진 데다 비까지 내렸지만 많은 분들께서 찾아주셨습니다.

소년한길은 오치근 선생님, 박은미 선생님과 함께

10월 9일과 10일 이틀 동안 어린이 독자들을 만났습니다.

 

 

10월 9일에는 멀리 하동에서 오치근 선생님께서 파주를 찾아주셨습니다.

지난 5월에는 우리나라의 차 문화 유적과 전통을 알리는 『초록비 내리는 여행』을 펴내시면서

어린이들에게 다양한 차의 맛과 떡차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셨지요.

 

 

 

이번에도 어린이 독자들을 위해 양손 가득 선물을 들고 오셨습니다.

멀리 하동 악양의 지리산 자락 선생님 댁에서부터 가져오신 갖가지 자연물이었습니다.

어른 주먹보다도 큰 대봉감과 보랏빛 열매가 예쁜 구슬처럼 알알이 맺힌 자리공,

그리고 하동 특산물 녹차까지 가을의 정취를 한껏 품고 있었지요.

특히 함초롬한 흰 꽃과 동글동글 열매가 어우러진 녹차 가지가

싱그러운 하동의 가을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박관순 부사장님께서도 노박 덩굴, 찔레 열매, 독활, 상수리 열매, 대추 등

우리 주변 곳곳에 숨어 있는 나무 열매들을 한아름 선물해 주셨답니다.

 

 

 

어린이 친구들은 다양한 자연물들을 자세히 관찰하고 직접 손으로 만져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 뒤 선생님과 함께 자연물을 그리고 이름을 지어주거나 자신의 감상을 덧붙여 보았습니다.

어떤 친구는 대추를 직접 맛본 뒤 신기해하며 ‘대추는 사과 맛이 난다’는 감상을 쓰기도 했지요.

자리공 열매를 으깨 고운 자줏빛을 내기도 하고 찔레 열매로 예쁜 감을 주홍빛으로 물들이는 등

선생님께서 자리공 열매를 가지고 조그마한 힌트를 주시자 어린이들은 열매와 꽃, 이파리들을 관찰하며

곧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색을 자유로이 활용하는 법을 스스로 깨우치기도 했습니다.

 

 

 

커다란 도화지 두 장을 빼곡히 채우자 어느새 아쉬운 작별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어린이들은 작품을 소중히 안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10월 10일은 박은미 선생님과 함께한 시간이었습니다.

아침부터 비가 흩뿌려서 걱정했는데 많은 어린이들이 선생님을 뵙기 위해 찾아주었답니다.

선생님께서는 얼마 전 정원요정 히스와 친구들의 모험을 그린

신작 『정원요정 히스와 시계탑 속의 딜』을 출간하셨습니다.

 

 

 

 

박은미 선생님과 함께한 시간에는 책에도 중요하게 등장하는 시계탑을 만들었습니다.

선생님의 책 속에서 고양이 딜이 폭풍우에 휩쓸려 날아가 갇혔던 시계탑이지요.

 

모두들 상상력을 발휘해 멋진 시계탑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색종이를 접어 입체 지붕을 만든 시계탑, 안쪽으로 계단이 연결된 시계탑,

리본과 하트로 장식된 앙증맞은 탑 등 어린이들의 솜씨가 정말 대단했지요.

조금 어린 친구들은 선생님과 부모님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모든 친구들이 자신만의 시계탑을 멋지게 완성했습니다.

 

 

 

 

 

 

 

매해 북소리 축제 때마다 많은 사람들께서 찾아주시지만

항상 더 많은 분들과 함께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깁니다.

어린이들은 평소 좋아하던 그림책 작가 선생님을 직접 만나

저마다의 상상력과 재능을 마음껏 뽐낼 수 있었습니다.

소년한길과 오치근 선생님, 박은미 선생님은 독자들과 시간을 보내며

어린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많은 것을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또다시 어린이들과 함께 책 속에 푹 빠져들 날을 손꼽아 기다려 봅니다.

 

 

 

 

 

                                                                                                                                                        ⓒ소년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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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다반사2015.06.24 11:11

역사학의 거장들 역사를 말하다

제3강 역사학의 거장들과 나누는 역사의 대화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 6월 17일

 

 

이번 강의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시작해 『역사학의 거장들 역사를 말하다』에서 끝났는데요, 

역사를 공부하는 방법에 대한 수업이기도 했습니다.

역사를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고민이신가요. 그럼 이병철 선생님의 강의가 도움이 되실 거예요.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고,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E.H. 카가 『역사란 무엇인가』에 내린 역사의 정의입니다. 우리에게는 그동안 반쪽짜리 문장으로

많이 알려졌는데요,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History is a continuous process of interaction between the historian and his facts,

an unending dialogue between the present and the past.”

 

국내에 번역 출간된 여러 종의 『역사란 무엇인가』에서는 1장 제목을 ‘역사가와 사실’이라고 표기하고 있지만, 정확한 제목은 ‘역사가와 그의 사실’이라고 합니다. 역사가가 사실이라고 보았던 것이 역사학의 대상이 되기에 역사란 역사가와 그가 선택한 사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인 것이지요.

 

 

근대 역사학의 창시자 랑케 사회적 사실을 역사로 본 E.H. 카

 

 

랑케  VS  E.H. 카

19세기 역사학을 대표하는 랑케는 역사의 기록인 문서를 숭배했습니다. 콜링우드는 역사는 해석이라고 보았죠. E.H. 카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역사란 잠정적 선택에 의한 끊임없는 대화라고 주장했습니다. 여기서 잠정적 선택이란 역사가가 선택한 사실을 이르는 말입니다.

또 랑케는 개인과 사회를 분리하고 위대한 개인이 역사를 이끈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그에게 역사연구는 개인(위인)을 연구하는 것이었습니다. 반면에 카는 역사 안에 개인이 위치하기 때문에 개인과 사회는 분리할 수 없고 역사가 역시 사회적 산물임을 강조했습니다.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억압과 불만 자체가 아니라 다수의 억압과 불만이며, 개인의 사실이 아니라 사회적 사실일 때 역사적 사실이 되는 것이라고 말이죠. 더불어 카는 역사에서 ‘미래’가 갖는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역사란 과거의 사건과 서서히 등장하고 있는 미래의 목적 사이의 대화이기도 하니까요.

 

“첫 번째 강연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은 역사를 연구하기에 앞서 역사가를 연구하라.

이제 나는 이렇게 덧붙이려고 한다.

여러분은 역사가를 연구하기에 앞서 그의 역사적, 사회적 환경을 연구하라.

역사는 개인이면서 또한 역사와 사회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은 바로 이 두 가지의 관점에서

역사가를 바라보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 E.H. 카

 

『역사학의 거장들 역사를 말하다』는 이러한 카의 지침을 잘 따른 책입니다. 27명 역사학 거장들의 생애와 저서, 학문적 영향이 개인적, 사회적 배경과 함께 정리되어 있으니까요. 이 책을 기획한 루츠 라파엘은 크게 네 가지 기준으로 동료 학자들과 함께 27명의 거장들을 선정했습니다.

 

1. 역사학 분야에서 학문적 탁월성을 인정받는 저자

2. 당시의 역사학과 그 이후 세대 역사가에게 중요한 자극을 준 학자

3. 전문적 문장 서술력, 사료의 처리와 배치, 사실에 충실한 논증의 엄정성을 갖춘 저서

4. 동시대인과 함께 특별한 경험과 미래상을 공유하고 고안했는지 여부

 

 

들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 개념사가 코젤렉이 1750년에서 1850년까지의 시기에 붙인 신조어 안착기는 근세에서 근대로 들어서는 과도기요 문턱의 시기이며 혁명의 시기였다.

 

 

크게 네 가지 시기로 거장들의 시대를 구분할 수 있는데요, 먼저 혁명의 시기(1750~1850년)에 근대 역사학이 출발했습니다. 동시에 역사서술의 근본적이고 새로운 고안이 실제로 시작된 시기이기도 합니다. 기번, 랑케, 미슐레, 몸젠, 부르크하르트, 마르크스가 이 시기에 태어났죠.

다음으로는 고도의 산업화와 제국주의, 제1차 세계대전의 국면입니다. 이 기간은 근대 직업역사가의 첫 세대가 체험한 시기로서 역사에 대한 많은 질문이 역동적으로 제기되었습니다. 베버, 로스톱체프, 하위징아, 비어드, 로빈슨이 그러한 학자들이죠.

 

 

1945년 5월 8일 독일이 항복한 뒤 7월 12일 영국과 소련군의 두 원수 몽고메리(앞줄 왼쪽 셋째)와 주코프(앞줄 왼쪽 둘째)가 베를린의 부란덴부르크 문을 나서고 있다. 1870년에서 1905년 사이에 태어나 정치적, 군사적으로 고조되는 긴장에 휘말렸던 역사가들에 의해 유럽중심주의적인 연구모델의 확실성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세 번째는 1875~1905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이 정치적, 군사적으로 고조된 긴장 속에 특별하게 휘말렸던 양차 세계대전의 시기입니다. 이때 이전의 유럽중심주의적 연구모델의 확실성이 흔들렸는데요, 블로크, 칸토로비츠, 니덤, 브로델이 활약한 때입니다.

마지막으로 제2차 세계대전과 전후시대를 겪으며 양 진영의 대립과 냉전이 특징적으로 부각된 기간을 구분할 수 있는데요, 1905년과 1930년 사이에 태어난 핀리, 벤투리, 홉스봄, 스톤, 뒤비, 커틴, 코젤렉, 톰프슨, 푸코, 데이비스, 포콕, 스키너가 이 시기에 인상적인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병철 선생님은 27명의 역사학 거장들로 각자 근대 역사학의 지도를 그려보라고 제안했습니다.

학자가 겪은 시대와 그 시대의 고민에서 시작해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그가 주목한 시대로 이어지는 역사학의 지도, 완성된다면 굉장히 멋진 작업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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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다반사2015.06.12 10:29

역사학의 거장들 역사를 말하다

제2강 개인적 보호와 복종의 관계   봉건사회Ⅰ,Ⅱ』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 6월 10일

 

 

프랑스 역사학자들은 개념에 대한 설명보다는 이야기체로 책 쓰는 것을 선호한다고 합니다.

특히『봉건사회』는 마르크 블로크 특유의 문학적 서술방식을 굳이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마치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쓰인 한 편의 대하소설과도 같은 느낌을 주는 역사서인데요,

미드 『왕좌의 게임』을 재밌게 보고 계신 분들께 꼭 추천하고 싶습니다.

그럼 블로크는 봉건제도를 어떻게 해석했는지 박용진 선생님의 강의를 들어볼까요.

 

 

 

주종제도와 장원제도를 중심으로 한 봉건제도에 관한 다양한 해석

 

 

봉건사회의 구조

 

 

봉건제도에 대한 해석에는 몇 가지 관점이 있는데요, 크게 주종제도를 중심으로 한 법률적 해석과 정치적 해석, 장원제도를 중심으로 한 경제적 해석과 마르크스주의적 해석이 있습니다. 법률적 해석은 17세기에 주를 이뤘는데, 봉건제도를 봉토를 매개로 한 군사적 봉사로 보았고, 유럽 중심적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정치적 해석은 봉건제도를 고도의 통치방식 몰락 이후 중앙권력 부재로 나타난 분권적 통치방식으로 봅니다.

이 안에서도 몽테스키외는 봉건제도를 서유럽의 유일한 사건이며 지방분권적 통치방식으로 본 반면 볼테르는 북반구 대부분에서 나타나는 보편적 통치방식으로 보았습니다. 법률적 해석보다는 장원제도를 중심으로 본 경제적 해석이 우리에게 더 익숙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마르크스주의적 해석은 봉건제도에서 생산양식(농노제)과 교환경제를 발견하고 이를 착취를 기반으로 한 인류발전의 한 단계로 봅니다. 그렇다면 블로크의 입장은 무엇일까요.

 

 

 

“봉건제도란 사회의 한 유형이다.

이것의 핵심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복종과 보호의 유대관계이다.”

 

 

 

가신이 영주에게 두 손을 모아 쥐고 신종선서를 바치고 있다. 이는 한 인간이 다른 존재에게 바칠 수 있는 최고의 헌신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봉건사회』는 블로크의 전체사를 접할 수 있는 저서입니다. 그는 주종제도와 장원제도를 통하여 봉건제도를 고찰합니다. 이는 얼핏 보면 기존의 교과서적인 논의를 두루뭉술하게 종합해놓은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블로크가 제시하는 봉건사회의 여러 특징이 나열된 순서와 그것을 부연 설명하고 있는 방식을 보면 곧 그와 같은 표피적 관찰이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블로크는 법제사가들처럼 영주, 가신 간의 주종관계인 가신제를 그 자체로서 특수하게 봉건제의 본질을 구성하는 관계로 파악하지 않습니다. 그는 지배, 피지배 계급을 막론하고 봉건사회의 구성원 전체가 사다리를 타고 이어지면서 형성된 인간관계의 원리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복종과 보호의 유대관계라고 파악하고, 가신제란 이 원리의 지배계급적 표현에 불과한 것이라 보았습니다. 따라서 가신제의 물적 매개체였던 봉토 또한 봉건제의 일부이며, 그것도 부차적일 따름이라는 것이죠.

 

 

 

 

스칸디나비아인들은 9세기에 들어 인구가 크게 늘어나자 해외로 몰려나가 서유럽의 여러 지역을 공격하고 약탈하였다.11세기에 그려진 이 그림은 프랑스 한 도시의 주민들이 스칸디나비아인들의 공격으로 완전히 포위된 모습이다.

 

 

 

 

이 같은 봉건사회의 성립에 대한 블로크의 견해는 기존의 것에 비해 무척 특이합니다. 그는 봉건제에 선행하는 양대 사회, 곧 로마적 사회조직과 게르만적 사회구조가 모두 급격하게 붕괴되는 와중에 발전단계가 상이한 이 두 사회형태가 폭력에 의해 강제적으로 결합된 결과로 봉건제가 발생했다고 파악하는 점에서는 정치적 해석이나 마르크스주적 해석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때의 폭력적 상황을 블로크는 게르만족의 민족이동에 따른 것이라기보다 이슬람 교도, 스칸디나비아인 및 헝가리인의 침입의 산물로 보았죠. 따라서 블로크의 봉건사회 서술은 로마 제국의 붕괴나 메로빙거 왕조하의 여러 제도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8,9세기에 연이어 이민족의 침입을 받고 불안에 떠는 유럽 사회의 정경에서 비롯됩니다.

 

 

 

“역사는 본질적으로 움직여 나아감을 특징으로 하는 학문이다.

이러한 학문에다 부동의 탈을 덧씌우는 것은 학문을 권태롭게 만드는 일이다.”

 

블로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환경 전체가 어떻게 작용하여 어떠한 인간관계의 전체적인 망(網)이 형성되고 또 변화하는가’라는 문제였습니다. 블로크에게 유럽 봉건사회는 내적 발전과정의 필연성에 따르는 역사적 단계로서 출현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당시의 특수한 상황의 복합적 작용에 의한 산물이었습니다.

 

 

다음 주 수요일(17일)에는 역사학의 거장들 역사를 말하다

마지막 강의, ‘역사학의 거장들과 나누는 역사의 대화’가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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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다반사2015.06.04 14:25

역사학의 거장들 역사를 말하다

제1강 역사학과 인류학의 만남 『기적을 행하는 왕』

6월 3일 정동프란치스코회관

 

 

마르크 블로크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왜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 걸 쉽게 믿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전쟁 통에 얼마나 많은 소문과 추측이 난무했을까요. 이러한 의문을 가지고 본인의 관심사인 유럽 중세시대를 다룬 첫 번째 저서가 바로 『기적을 행하는 왕』입니다.

1000여 년 전 프랑스와 영국에서 일어난 ‘기적의 역사’와 ‘기적을 믿는 역사’.

한길그레이트북스 134권『기적을 행하는 왕』을 번역한 박용진 선생님이 전하는

‘역사학과 인류학의 만남’을 소개합니다.

 

 

 

 

 

마르크 블로크는 뤼시앵 페브르와 함께 프랑스 아날학파 1세대 학자로 알려져 있는데요, 아날학파는 문헌연구나 역사적 사건 자체에 집중한 기존 역사연구와 달리, 역사에 대한 구조적 파악을 위해 새로운 연구방법을 도입하며 20세기 역사학의 전면에 등장했습니다. 특히 2세대인 페르낭 브로델에 와서 그 영향력이 커졌는데요, 브로델은 “모든 인간과학은 사회의 전체성에 이르는 하나의 문이다”라며 전체사를 강조했습니다. 또, 역사학과 사회과학(지리학)의 결합, ‘시간지속’ 개념으로 역사연구의 새 장을 연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마르크 블로크 뤼시앵 페브르

 

 

 

 

인류학적 역사학의 첫걸음

 

"그리스도가 과연 십자가에서 처형당하고

다시 부활했는가를 아는 것은 오늘날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의 문제는 왜 수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의 처형과 부활을 믿는가 하는 점이다."

• 마르크 블로크, 『역사를 위한 변명』

 

 

집단 심성을 주제로 삼아 문헌(회계장부, 의학서적)과 비문헌(이미지, 표상)을 사료로 다룬 블로크의 역사방법론은 그 당시 역사연구에서는 새롭고 낯선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생각, 행동양식, 관습을 다루는 인류학적 역사학은 1980년이 되어서야 일반적인 흐름이 되었는데, 『기적을 행하는 왕』은 50여 년을 앞선 선구적인 저서였고, 그래서인지 출간되었을 때 주목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기적의 역사와 기적을 믿는 역사

 

“왕이 너를 만지고, 신이 너를 치료하노라.”

 

블로크는 어떻게 손대기 치료가 행해지며, 이 능력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또 이러한 능력과 행위가 정치적 권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먼저 살핍니다. 이 과정에서 기적을 행하는 왕에 영향을 준 게르만적 요소(왕의 초자연적 능력), 기독교적 요소(도유식), 로마적 요소(대관식)에 주목합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사람들이 기적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어떻게 해서 기적을 믿게 되었는지, 또 어떻게 해서 믿지 않게 되었는지를 추적합니다. 당시 왕이 치료한다고 알려진 연주창은 결핵의 일종으로 건강이 회복되면 자연적으로 치료되기도 하는 병이었다고 합니다. 연주창을 앓고 있는 수백, 수천의 사람들이 왕 앞에 나아가 손대기 치료를 받습니다. 치료가 끝나면 은화와 앞으로 지켜야 할 생활수칙이 적힌 처방전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사람들 중 몇몇은 건강이 회복돼 연주창이 자연적으로 나았을 수 있습니다. 소문은 금방 퍼졌을 것이고, 사람들은 더 강하게 왕의 치료 능력을 믿게 되었겠지요. 치료되지 않은 경우는 환자의 잘못이라 여겼다고 합니다. 믿음이 부족하거나, 처방전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이죠. 결국 “기적에 대한 믿음을 만들어낸 것은 기적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인 것입니다.

 

 

 

 

프랑스 앙리 2세(1547~50) 영국 메리 여왕(16세기)

 

 

 

 

유럽사를 관통하는 성(聖) VS 속(俗)

 

그러나 이러한 믿음도 이성의 세기 앞에서 점점 힘을 잃고 사라집니다. 공식적으로는 19세기 초에 마지막 치료가 있었는데, 민간에서는 20세기 초까지 믿음이 지속되었다고 합니다. 블로크는 왕권의 초자연적 성격이 점차 쇠퇴하는 과정에서 근대의 이성이 승리하는 역사를 발견했습니다. 이는 유럽사를 관통해온 성(聖)과 속(俗)의 대립입니다. 20세기에 들어설 때까지 프랑스에서 교권과 속권의 관계설정이 첨예한 문제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블로크에게 성과 속의 관계는 지나가버린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살아 있는 인간의 현실적인 문제였을 것입니다.

 

 

 

 

다음 강의에서는 마르크 블로크의 주저 『봉건사회』를 다룹니다.

제도가 아닌 인간의 관계에 주목한 역사학이란 무엇일까요.

6월 10일 수요일,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7시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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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한길다반사2015.05.22 15:21






"그가 간 지 6년이나 흘렀다.

 그를 쓰면서 비로소

 그를 잊을 수 있었다."

 -작가 김수경, 6주기에 즈음하여 노무현을 그리며




약간씩 가팔라지는 언덕길을 조그만 봇짐 하나 지고 

계속 걸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노무현이 죽고 난 다음부터 줄곧 그랬다.

안타까움, 어떤 미안함, 아쉬움 같은 것들이 서로 섞여 묘한 느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지난해 말 소설 『내 친구 노무현』을 탈고하고 난 이후에는

그 느리고 먼 길의 어느 도중에 잠시 짐을 내려놓고 앉아 쉬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를 쓰면서 그를 잊어버렸던 거다.

지워갔던 거다.

휴식하자던 것이 자꾸 길어졌다.

이 가벼움,

이 편안함에 좀더 눌러 있어야지.

그리고 나는 이제 비로소

그를 내 문학 속의 한 인물로

연민도 사랑도 없는 차가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화가 지웅이 내 책을 읽으면서 계속 무언가 모를 미안함에 사로잡혔다고 그랬지.

'나의 봇짐이 네 어깨 위로 옮겨 갔나 봐'라고

나는 중얼거렸다.


『이것은 소설이다』에서는 좀더 비정해져야지.

그는 나의 사적인 친구도 대통령도 아니고 내 소설이라는 세계 속에 살고 있는 인물이다.

하나의 캐릭터다.

과연 내가 이 작업을 잘 마칠 수 있을까.


그가 간 지 벌써 6년이나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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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한길다반사2015.05.21 14:45

[작가 김수경이 노무현을 그리다-세 번째]

세간의 진실, 한 인간의 진실




추억. souvenir. 추억이란 아래서(sous) 오는(venir) 것이다. 일부러 의식적으로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늘 흐르는 것…


『내 친구 노무현』의 작가 김수경에게 노무현은 일부러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늘 흐르는 어떤 알 수 없는 것일 게다.


5월 23일. 한 해 안에 끼인 삼백여의 날, 그 여러 날 중에 박힌 아픈 한 날, 심하게 부조리한 날. 생과 사 사이의 협곡을 건넌 이는 고독하나 초연한 꽃이다.


나는 한 생애의 결말을 해석하고 발화하기에는 너무나 어리고, 어리석어, 그저 그 경계 암벽 바위에 홀로 서 있었던 한 존재의 절대적 외로움과 비밀을 눈을 질끈 감고 그려본다. 두렵다. 산다는 것이. 절정으로 산다는 것이. 온몸으로 낙담한다는 것이. 앞에 미래라고 놓인 것이 공허라면, 그 공허 속에 떨어진다는 것이 한 나약한 인간으로서, 얼마나 처절하게 두려운 육체적 경험인가 하고.


기억이 난다. 작년 가을 어느 날, 퇴근 무렵이었던가? 저녁 6시 좀 못 미쳐. 『내 친구 노무현』의 첫 장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원고가 들어오던 때, 그런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김수경 선생님은 작은 포인트의 촘촘한 행간을 좋아한다고 하였다. 그래야 글이 잘 써진다고 하였다. A4를 가득 채운 그 어둔 장막 속 별 같은 비밀. 심장이 조금 짓눌려 왔다. 기억하기 고통스러운 바로 그날 안으로 곧장 진입해 들어간 작가의 본능적인 결단과 용기에 잠시 아찔했던 탓이다.


  진실과 사실 사이에서

  상상과 실재 사이에서

  노출과 은폐 사이에서

  작가 김수경이 소설적 진실로 써내려간

  마이 라이프 트릴로지.





그 두 번째 『이것은 소설이다』 원고가 많이 진척되어가고 있다. 1권 작업 때도 집필 독려를 위해 2주가 멀다 하고 사장님과 함께 선생님 댁에 갔었다. 글쓰기는 고독과 고통의 산물이지만, 선생님은 여느 전업 작가들이 보이는 예민함과 신경질 따위를 부리지 않는다. 글쓰기에 신비한 낭만 따위를 부여하지 않는다. 빨리 쓰면서도, 몰입하면서도, 호흡하고 쉬어갈 줄 안다. 환담할 줄 안다. 나는 김수경 선생님이 이따금 지어 보이는 파란 사과 같은 미소를 좋아한다. 애플.


노무현 대통령 서거 6주기가 다가오면서 우리는 짐짓 심각해지고, 우리 작업은 더욱 속도를 내야 할 필요를 느낀다. 현실정치에서는 늘 사건들이 유비적으로 터진다. 1권 『내 친구 노무현』에서 암묵적으로 환기되었던 인물들이 현실정치에서 다시 주요하게 활약한다. 유비적 테마들이 다시 논점이 된다. 정치, 돈. 우정 혹은 적. 역사는 지나 흘러간 줄 알았던 것들의 되풀이, 아니 회귀라 했던가. 순환일지 모른다. 악순환. 선순환 아닌.


노무현에 대해 말하면, “노빠” 혹은 “친노”라는 프레임으로 갇혀버리는 것이 싫다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김수경 선생님은 이날도 말했다. “그저 한 개인에 대해 추억하고 말할 수는 없을까?” “노무현이 그저 한 고유명사, 아니 어떤 추상성도 띠지 않은 구체적 실존 명사일 수는 없을까? 내게는 그런 존재인데…” 하고 우리에게 되묻기도 했다. “노무현이 무조건 옳다고 하지는 않는 한 개인의 기억인데, 그리고 그 기억 속에 한 집단의 기억이 있는 거고”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내 친구 노무현』을 내고 나서 주변에서 매우 다양한 독후감을 들었다고도 했다. 노무현의 지지자들은 “너무 뜨뜻미지근하지 않나?” “그다지 강렬하지 않다”고 했단다. 또 그다지 노무현에 대해 열렬하지 않은 자들은 혹은 싫어하는 자들은 “노무현이 그렇게 감성적인 인간이었어?”라고 했단다. 그러면 “왜 나는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노무현을 그리지 못했을까?” 하고 자문하기도 했다고 했다. “내가 그만큼 강렬한 ‘포트레이트’를 만들지 못했나 보지… 사람들이 내 책이 어렵대…”


『이것은 소설이다』는 언론들이 작성한 수많은 기사들과 온갖 기록 문서들, 해괴한 담론들 등 소위 수많은 ‘팩트’들을 ‘게시’하고 ‘계시’하는 프로젝트다. 이런 팩트들이 현실사회에서 ‘사실’이라고 주장되어왔다. 그러나 그 ‘사실’이, 세간의 진실이 진짜 진실일까? 한 인간의 진실일까? 매우 가파른 내용이 될 것이다. 이 두 상호관계를 철저히 파고드는 힘든 작업이 될 것이다.





“1권이 퍼스널한 기억이라면, 2권은 대통령이 된 노무현의 이야기이므로 퍼스널한 기억이 아니야.” 작가 김수경은 1권에서 “미미한 우정의 광채만 남기고” 대통령이 된 친구 노무현과 이별했다. 이것이 1권의 마지막 장이었다. 이제 2권이 시작되려 한다. 그 첫 문장은 무엇일까?


선생님은 “소위 ‘팩트’들과 나 사이에 일정한 거리가 있고, 그래서 그 팩트들 사이의 연결고리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 연결고리가 작가의 센텐스(sentence)가 될 것이다. 센텐스란 단순히 단어들의 결합인 문장이 아니다. 말 속의 심지다. 아픈 자극이다. 통렬함이다. 인간 본성의 밑바닥까지 들여다보는 주시와 통찰의 언어, 심중의 비밀.


승냥이 언론들이 쏟아낸 수많은 언어들, 그 허위의 더미들을 있는 날것 그대로 환한 빛 아래 눈부시게 ‘게시’하면서, 한 먹이를 서서히 포위해가는 기이한 “사냥감 몰이” 시스템을 암유적으로 ‘계시’해야 할 것이다. 환생경제 따위의 연극 대사를 통해 한 인간을 조롱하고 모욕한 날것의 핏빛 붉은 혀의 언어들을 그대로 선보여야 할 것이다. 불편함, 혐오, 환멸, 울컥 치솟는 분노, 고통 따위를 매우 잘 조절하면서 인간 집단의 혹은 한 사회의 가면을 벗겨내야 할 것이다. 신랄하고, 때로는 폭력적이다 못해 치졸하여 원초적인 날 언어들이 작은 종이를 가득 채우면서도 그러나 이름 모를 하얀 새벽빛이 그 가운데서 솟아 올라와야 할 것이다. 작은 피아노 음악이 그 날것 언어 더미들 사이, 사이에서 들릴까? 우아한 모데라토 칸타빌레로? 뒤라스처럼? 아니, 즐기듯 관능적인 한 여자 현자(賢者)처럼?


“저는 음악과 같이 사는 사람이에요.

저는 전화기로나 컴퓨터로나

언제나 음악과 함께 있는 사람이에요.

물론 글 쓸 때도.”


피로 얼룩진 정치적 관계, 서로의 이익을 탐하는 무대를 보여주기 위해 한 여인이 어둠 속에서 LP판을 찾는다. 뜨거운 차를 따른다. 톤을 맞추자. 조율하자. 팩트와 픽션의 변증이자 역전을 이루어줄 그 톤을. 음계를.


『이것은 소설이다』의 주어는 “그녀 김수경”이 아니라 “나”라고 한다. 3인칭이 아니라 1인칭이라고 한다. Moi(나)만은 아닌 Le Moi(The 나)...







-류재화(한길사 기획위원 |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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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한길다반사2015.05.20 14:54

[작가 김수경이 노무현을 그리다-두 번째]

당대성과 진실성 사이에서 균형 잡기




『내 친구 노무현』의 작가 김수경의 두 번째 작품 『이것은 소설이다』가 곧 출간될 예정이다. 두 번째 작품을 상재함으로써 총 3부작으로 구성된 그녀의 문학적 여정이 7부 능선을 넘었다. 『이것은 소설이다』의 시간적 배경은 참여정부 5년의 기간과 겹친다. 그러나 『내 친구 노무현』에서 충분히 확인되었듯 근래 김수경의 글쓰기의 핵심은 정치실록이나 정치비사 따위에 있지 않다.


김수경은 말한다.


“『내 친구 노무현』을 펴내고 나서 노무현을 많이 잊었어요. 좀 자유로워졌어요.”


이 말을 김수경이 노무현과 결별했다거나 망각했다는 뜻으로 읽었다면, 그것은 심각한 난독증이다. 위 고백 속에는 ‘노무현이란 텍스트’의 강력한 자장 속에서 파란의 한 시절을 보냈던 작가의 자기 관조와 자기 해방의 페이소스가 들어 있다. 문학은 때론 해원(解怨) 의식과 씻김굿을 위한 아주 효율적인 수단이다. 그것은 오직 문학적 글쓰기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것은 소설이다』 또한 『내 친구 노무현』과 같은 글쓰기 방식의 연장선상에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수경은 문학을 지난날의 정치·사회적 사건을 공론화하거나 재소환하는 수단으로 삼지 않는다. 그녀는 오히려 자신이 놓였던 정치·사회적 파장 안에서 탈주하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낸다. ‘횡령’ ‘배임’ ‘탈세’ 따위의 지리멸렬하고 세속적인 정치적 외연을 걷어내고, 선정적 저널리즘이 덧씌워놓은 그물을 찢고 솟아오르고자 한다. 김수경은 그 무엇도 아닌 온전한 작가로서의 자리로 귀환하고자 한다.


귀환의 필요조건은 말할 것도 없이 사건의 미적 재구성이다. 소설을 쓰기 위해 김수경이 확보하고 있는 수많은 자료들은 작가로서의 안목과 품격에 의해 새롭게 배열되고, 통제되고, 해석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김수경의 고민이 있을 것이다.





사실 노무현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여럿일 것이다. 그러나 알고 있는 노무현에 대해 글로(특히 문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김수경은 작가로서의 위치, 정치화된 사건에 연루된 당사자로서의 위치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이 이중적 자리는 김수경에겐 커다란 문학적 자산인 동시에 딜레마다. 당대의 사건 관련 인물들이 아직 살아 있는 상태에서 어디까지 발설하고 은폐할 것인지, 작가가 구사할 고도의 문학적 장치나 전략과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김수경은 ‘실천가’나 ‘운동가’도 아니고, 협소한 진영논리에 갇힌 ‘주의자’도 아니다. 그녀가 이러한 딜레마를 돌파하는 방법은 오직 작가, 소설가로서의 자기 동일성을 굳건히 확인하는 일일 것이다. 거짓과 허위, 왜곡에 맞서 진실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문학만 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 문학의 위의(威儀)란 다른 데 있지 않을 것이다.


노무현은 아직 텅 빈 기표다. 작금의 정치상황이 지속되는 한, 노무현에 대한 평가는(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요원하기만 하다. 오백여 년 전 이순신이 당대의 작가 김훈에 의해 ‘문학적으로’ 호출되었듯, 아마도 먼 훗날 이 땅의 작가들이 노무현을 같은 방식으로 호명하는 날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지금, 여기’에서 수행되는 작가 김수경의 글쓰기는 훗날의 노무현 평가를 위해 당대에 이룩한 초석이 될 가능성이 높다.


김수경의 글쓰기는 지난날의 자아와 대면하는 문학적 고백이라는 점에서 일단 탈정치적이다. 그러나 작가와 노무현의 관계를 염두에 둘 때, 어떤 형식으로든 노무현의 그림자가 음화처럼 드리워질 것이라는 점에서 은밀히 스며든 정치성과 정치적 독법은 불가피해 보인다.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문학이 정치를 사유하는 건, 오래된 관행이자 미덕이다.


『이것은 소설이다』는 제목이 암시하듯이 작가 김수경의 고투하는 자아와 실존의 문학적 투영인 동시에 은밀한 정치성의 향연일 수 있겠다. 너무도 탈정치적이어서 어쩌면 너무도 정치적인 소설. 당대성과 진실성 사이에서 균형 잡기.


김수경은 원고 집필 시간에는 늘 음악과 함께한다고 한다. 몰입, 리듬, 영감, 환상과 함께 문학이 태어나는 시간이다. 며칠 전 작가의 자택을 잠시 방문했을 때 정갈하게 내놓은 수제 햄버거처럼 한 층 한 층 소설의 성채를 건축 중이던 작가 김수경. 햄버거 안의 고기와 야채 맛이 제각각이듯 문학과 정치, 문학과 권력 등 상호 이질적인 성분들에 대한 독자의 사유를 유발하는 그녀의 문장들은 작가 김수경의 소설이 제공하는 또 다른 맛일 것이다. 이것이 독자를 매혹한다.






-독자 김경엽(백석문화대학교 중국어학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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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한길다반사2015.05.19 15:38

[작가 김수경이 노무현을 그리다-첫 번째]

"그를 처음으로 잊을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시간 속을 걸어간다는 것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몸짓으로

역사 속에 흔적을 남기는 것.

-폴 발레리

 


작가 김수경이 '친구 노무현'과 함께 걸었던 시간을 되짚으며 힘들게 써낸 글은, 한 권의 보랏빛 책으로 묶여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 뒤 벌써 여섯 달이 흘렀습니다.

지난 수요일 저녁, 오랜만에 김수경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내 친구 노무현』에 담은 그 기억들을 함께 돌아보고, 뒤이을 『이것은 소설이다』 집필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얘기를 주고받았습니다.

그날의 만남 스케치, 『내 친구 노무현』과 다가올 『이것은 소설이다』 리뷰, 마지막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를 맞아 김수경 선생님께서 직접 들려주시는 담담한 술회까지. 이 모든 것을 총 4회에 걸쳐 바로 이곳, 한길사 블로그에 게재합니다.

다시 돌아온 봄날은 여전히 화창하네요. 먼저 떠난 고인이 그립습니다.

 



 

한길사(이하 '한'): 다음 주면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입니다, 선생님.

 

김수경 선생님(이하 '김')사실 요즘 그를 잊고 있었습니다. 『내 친구 노무현』을 쓰고 나서 노무현을 비로소 잊어버릴 수 있었어요. 노무현이 죽은 뒤 (그를 이렇게 잊어버릴 수 있었던 것은) 처음이에요. 언어의 홍수에 실려 떠내려간 것 같기도 하고. 드디어 노무현을 졸업하는 걸까요. 치유가 되어가나 봐요.

올해는 이렇게 그냥 지나가버리네요. 1주기 땐 봉하에 갔었고… 예전에는 신해철이 콘서트 하자탁현민이 추모 행사 하자 연락이 왔었는데 이번엔 별다른 얘기가 없습니다이렇게 날 찾아온 한길사 빼고는.

 

: 『내 친구 노무현』 출간 이후 기억에 남는 독자 소감이 있나요?

 

: 알고 지내는 한 화가가 그러더군요. 책을 읽다 보니 "(노무현은 죽었는데) 내가 살고 있는 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요. 정말 고마운 소감이었습니다.

 

: 『내 친구 노무현』의 뒤를 잇는 『이것은 소설이다』를 조금 미리 독자분들께 소개해주세요.

 

: 『내 친구 노무현』은 제가 제 삶에서 만난 강렬한 인간, 노무현에 대한 이야기였지요. 1987년 부산 거리에서 그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그가 대통령이 된 2002년까지. 『이것은 소설이다』는 『내 친구 노무현』이 끝나는 지점, 즉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는 날 시작해서 저에 대해 세무조사가 진행되는 데까지를 그립니다. 그 시대를, 그 기간의 제 삶을 노무현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해석해보려는 것입니다.





김: 노무현이 대통령이 된 뒤 그의 임기 동안에는 그와 두세 번밖에 연락을 안 했습니다. 언론을 통해서만 커뮤니케이션이 있었던 셈입니다. 얼마나 그 속에 '날조'가 많던지요! 내가 아는 그 사람과 사회적으로 프레임 씌워진 노무현 사이에는 참 간극이 컸습니다. 사회적 프레임으로 보는 노무현보다는 제 소설이 훨씬 진실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진심이 가득 담기기도 했고요. '팩트'(fact), '진실'을 표방하며 쓰여진 것들이 실제로는 얼마나 '소설'인지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가파른 내용의 책이지요. 검사실을 드나들며 세무조사 받을 때 이야기니까. 그런 와중에도 '그 속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게 할 수 있을까'가 제 고민입니다. 쓰는 게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기사 인용이 많아 딱딱한데, 그 내용들을 부드럽게 이을 연결고리를 찾고 톤을 맞추기가 힘듭니다. 잡지 기사를 문학 텍스트로 승격시키는 것도 어렵고요. 어떨 때는 세 시간 내리 앉아 있어도 한 문장밖에 쓰지 못합니다.

 

: 새로울 것도 없습니다만 최근 정치가 참 시끄럽습니다. 선생님께선 '정치' 문제로 삶에 큰 고통도 겪으셨지요. 『이것은 소설이다』가 바로 그 이야기고요. 요즘의 정치를 보면 어떤 단상이 드세요?

 

: 제가 변했다는 것을 느껴요. 예전엔 분노도 크고 그랬는데 이젠 많이 없어졌어요. 다 지나가버린다는 것을 알고, 그러니 용서 못할 것도 없고... 이젠 그냥 다 제각각인 인간유형으로 느껴집니다.

 

: 노무현은 선생님께서 살면서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진실했던 사람으로 손꼽힌다고 하셨지요.

 

: 노무현은 변호인인데도 사기를 많이 당했더라고요. (역설적으로) 그래서 믿음이 갔어요. 제가 들은 노무현의 말에는 한마디도 거짓이 없었다고 생각해요. 정말 담백하고 솔직한 사람이었어요. 인생에 그런 사람을 열 명도 보지 못했습니다.







-편집부 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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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한길다반사2015.05.12 21:42

파주출판도시 어린이책잔치 2015 소년한길 풍경

 

 

지난 5월 1일부터 5일까지 파주출판도시에서 어린이책잔치가 열렸습니다.

많은 어린이들이 파주출판도시를 찾아 소중한 추억을 만들었지요.

소년한길에서는 어린이들이 책, 그리고 자연과 함께

뛰어놀 수 있는 독특한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준비했습니다.

날씨만큼이나 화창했던 어린이책잔치 풍경을 전해 드립니다.

 

 

5월 2일에는 멀리 하동에 살고 계신 오치근 선생님과 가족분들께서

어린이들을 만나기 위해 파주를 찾아주셨습니다.

오치근 선생님과 사모님이신 박나리 선생님, 세 딸 은별이, 은솔이, 은반이

이렇게 다섯 식구는 우리나라의 차 문화를 알리기 위해 두 해에 걸쳐

우리나라 곳곳에 남아 있는 차 문화 유적을 발품을 팔아 찾아다니며 소개하셨지요.

여행길에서 쓰고 그린 기록들을 모아 며칠 전 『초록비 내리는 여행』(소년한길, 2015)을 펴내셨습니다.

 

 

 

이번 어린이책잔치에서도 많은 어린이들이 차에 대해 보다 많은 것을 알게 되고

차를 편하게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시다가 아주 특별한 수업을 준비하셨지요.

어린이들은 먼저 선생님께서 직접 우린 발효차와 녹차 두 가지 차를 한 번씩 맛보았습니다.

 

 

처음 마셔보는 차 맛에 대해 서로의 감상을 나누는 시간,

한 어린이는 “차 맛이 예쁘다”고 표현해 선생님과 다른 친구들을 놀라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런 다음 우리나라 차 중 둥근 덩이로 만들어 발효시키는 떡차를 직접 빚어보았습니다.

선생님 가족분들이 직접 따서 찧어 오신 찻잎 반죽을 전통 문양이 새겨진 틀에

꽉꽉 채우고 눌러 빼내자, 멋진 떡차가 완성되었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선생님께서 가져오신 차나무 묘목을 자세히 관찰하며

차나무와 찻잔을 그리고, 그날 마셔본 차의 감상을 적어 보면서 관찰력과 창의력을 뽐냈지요.

 

 

그림에 푹 빠져 있다 보니 아쉽게도 금세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기념 촬영 후 어린이들 모두 차나무 화분을 하나씩 선물 받았습니다.

 

 

 

물 주는 법 등 차나무를 기를 때 알아야 할 점들에 대해서도 꼼꼼히 챙겨 주셨지요.

어린이들과 선생님은 다시 만나는 날까지 차나무들을 멋지게 키우기로 약속했답니다.

 

 

5월 3일에는 한길책박물관의 특별 프로그램 ‘찾아가는 박물관’의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책을 만들었을까?>가 진행되었습니다.

 

 

유럽 중세 시대와 19세기 고서들을 20,000여 점 이상 소장하고 있는 한길책박물관에서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책과 관련된 독특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번 어린이책잔치를 맞아 특별히 파주출판단지를 찾아온 것이지요.

중세 시대 필경사와 채식사가 되어 채색 필사본을 만들어 보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고대 수메르 사람들이 만들었던 진흙판 책부터 오늘날 우리들이 보는 종이책까지

책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고, 옛날 사람들이 책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도 알아보았습니다.

그런 뒤 필경사가 되어 또박또박 예쁜 글씨로 필사를 하고,

테두리와 머리 글자를 꾸미고 글에 어울리는 삽화를 그려 넣는 채식사가 되었습니다.

직접 손으로 책을 만들어 보며 책의 가치를 깨닫고 완성의 기쁨도 누릴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5월 5일에는 숲 안내자이기도 하신 한길사의 박관순 부사장님께서 진행하시는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자연 놀이 <와일드 시티 북>’이 진행되었습니다.

부사장님께서는 도시에 살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주변에서 자연을 만날 수 있는 방법과 함께

자연을 활용해 할 수 있는 재미있는 놀이들을 알려주셨습니다.

더욱 다양한 활동들은 『와일드 시티 북』『와일드 웨더 북』『스틱 북』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먼저 주변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곤충과 꽃을 살펴본 뒤, 밖으로 나가

숲 대문도 열고, 생태 그물망도 만들어 보며 신 나는 놀이를 즐겼습니다.

 

 

처음에는 낯설어하던 친구들도 선생님을 따라 발을 구르고 뜀박질을 하며

어느새 다른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렸습니다.

 

한참 뛰어 몸이 어느 정도 풀리자 이번에는 나란히 줄맞춰 근처 자연으로 나갔습니다.

루페로 꽃의 암술과 수술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개미나 무당벌레 알도 관찰했습니다.

숲 속 곳곳에 숨겨진 멋진 보물들도 모았지요.

 

 

보물들을 가지고 책방한길로 돌아온 뒤에는

평범하게만 보이는 나뭇가지를 나만의 마법의 지팡이로 변신시켰습니다.

각자 발견한 보물들과 마스킹테이프만을 활용해 뚝딱 솜씨를 발휘했는데요.

하나같이 아이디어가 톡톡 튀는 멋진 작품들이었습니다.

 

 

매 해 더욱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찾아오는 어린이책잔치지만

항상 더 많은 독자분들과 함께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깁니다.

어린이들은 평소 좋아하던 그림책의 저자 선생님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책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또 늘 주위에 있었지만 평소 경험하기 쉽지 않았던 자연을 온 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소년한길도, 오치근 선생님도 이번 어린이책잔치에서 책에는 미처 다 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풀어 놓고, 독자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또다시 어린이들과 함께 책 속으로 풍덩 빠져들 날을 손꼽아 기다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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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한길다반사2015.04.27 14:25

[한길사가 만난 사람] 로마 역사에 정통한 바흐 마니아

-'한니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최정동 기자




맥주 한잔 앞에 두고 실컷 놀다 왔습니다. 『로마제국을 가다 1, 2』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 독일 튀링겐 옛 마을로 떠나는 바흐 순례』를 쓰신 최정동 선생님과 함께한 자리였습니다. 얼마 전에는 '한니발 여행'을 다녀오셨지요. 『로마제국을 가다』 때 가보지 못한 이탈리아 본토를 비로소 밟고 오신 셈입니다. 1권은 독일, 프랑스, 영국, 에스파냐, 포르투갈, 그리스 등지를 여행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2권은 레바논, 시리아, 요르단, 리비아, 몰타, 튀니지, 이집트 즉 로마제국의 세력이 뻗쳤던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을 돌아보고 와서 쓰셨지요. 2권 출간 후 7년 만에 『로마제국을 가다 3』이 탄생할지, 아니면 새로운 『한니발』이 탄생할지 아직은 누구도 모릅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벌써 책이 출간된 느낌이었다면, 너무 앞서간 감상일까요? ^^

로마 역사에 정통한 바흐 마니아! 어떤 분인지 궁금하시지요? 어제 들은 화제가 얼마나 풍부하고 흥미로운지, 저희끼리만 듣기엔 아까운 마음에 선생님 말씀을 몇 자 옮겨 적습니다.

 

 

맥줏집에서 만난 최정동 선생님. 맥주 한잔을 앞에 두고 듣는 이야기^^ 애석하게도 이번엔 옆모습만 보여드립니다.


 

"하드리아누스 빌라(별장)가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다. 인공연못 주위를 인간 조각상들이 둘러싸고 있는데, 대리석이 아니었다. 그 시대에 이미 시멘트로 만들었다. 작가 유르스나르가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을 쓸 때 가장 자주 방문한 곳이 두 군데 있는데, 하나가 바로 하드리아누스 빌라이고, 다른 하나는 아테네 제우스 신전 앞에 있는 커피숍이었다.

'한니발 여행'에 하드리아누스 이야기는 왜 꺼내는가. 하드리아누스는 한니발보다 300년쯤 후, 로마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황제다. 로마제국을 무너뜨리고자 했던 한니발의 뜻과는 정반대로 역사가 흘러간 거다."

 

"많이 다니기는 했지만 그래도 못 가봐서 아쉬운 로마제국의 영토가 남아 있다. 터키와 동유럽, 특히 부다페스트나 빈 같은 도나우 강변의 도시들이다. 하지만 로마제국 후기에 타락했던 황제들은 자기 이름을 서명조차 할 줄 몰랐다. 글을 모른 것이다. 그래서 그나마 터키를 가지 못한 것은 아쉬운 마음이 덜하다."



그 후 지은이 최정동은 정말 나일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마음만 있으면 어떻게든 한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하고 싶은 일을 해내려는 마음이 있으면 체력은 크게 문제되지 않는 것 같다. 마음만 있으면 어떻게든 한다. 2009년에 『로마제국을 가다 2』를 출간하면서 다음 저술로 '바흐' '한니발'을 구상했다. '바흐'는 이미 완결했고, '한니발'도 여행을 다녀왔으니 75퍼센트는 한 셈이다."

 

"모두에게 꼭 한번 가보라고 권할 만한 것, '나일 크루즈'. 1981년에 종로 피카디리 극장에서 신년특선으로 상영한 「나일 살인 사건」을 보았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그 영화를 보면서 꼭 나일 강에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로마제국을 가다 2』에서 그 꿈을 이루었다. 이집트 유적의 규모나 화려함은 그리스∙로마와 비교가 안 되더라. 그리스와 로마는 이집트 문명의 손자∙증손자뻘이라고 느꼈다. 예수님이 이집트에 갔을 때, 피라미드는 이미 3,000년 된 유물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은 무엇일까? 바흐 마니아인 최정동은 급기야 '바흐 순례'에 나섰고, 책도 펴냈다.



"클래식은 서른 살 이후 듣기 시작했다. 중간에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접하고선 완전히 '로마'에 빠져 10년을 지냈다. 그동안 음악도 안 들었다. 로마 관련 참고도서를 100권 이상 봤다. 그 후에 다시 음악을 듣고 있다주말엔 음악을 하루에 열 시간씩 듣기도 한다. 그럴 때면 가족이 날 미친 사람처럼 보기도 한다."

 

"음악을 좋아하는 다른 친구들에게 '음악을 왜 좋아하냐'고 간혹 묻는다. 이렇게 묻는 것은 내가 같은 질문을 자문하기 때문이다. 내 답은 '나의 심정을 다스려주고 나를 변화시키기 때문'인 것 같다. 심지어 공자도 인격을 완성하는 것으로 '음악'을 들었다. (子曰(자왈) 興於詩(흥어시)하며 立於禮(입어례)하며 成於樂(성어악)이니.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시로써 일으키고, 예에서 서며, 악에서 완성한다." -「태백」 제8, 『논어』) 부활절 아침에 바흐 칸타타를 들으면 감흥이 있지 않겠나, 그러면 조금씩이라도 사람이 변화하지 않겠나. 단순히 감각적으로 음향만을 즐기는 건 아닌 듯하다."




파주 심학산과 출판단지를 배경으로 늠름하게 서 있는『로마제국을 가다』 제1권과 2권. 그 옆에 나란히 오게 될 다음 책은 어떤 모습일까요?



가능하면 이번 여름부터 『한니발』 저술에 돌입할 생각이라고 하셨습니다. 홀로 그 넓은 로마제국의 옛 영토를 모두 밟고서, 글과 사진으로써 우리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최정동 선생님. 그의 멋스러운 다음 여행기를 기대해봅니다.




-편집부 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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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한길다반사2015.04.20 12:01

[한길사가 만난 사람]

어릴 적에 만난 유럽을 평생 흠모하다-역사학자 이광주

 

 

 

편집부 최연소자 편집자 은 한길사의 저자 중 최고령이신 이광주 선생님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이광주 선생님의 신간 두 권을 동시에 출간했지요. 바로 담론의 탄생나의 유럽 나의 편력입니다(제가 요즘 블로그에 뜸했던 것도 그간 이 두 책을 출간하는 데 온 신경을 곤두세웠기 때문입니다! ^^;).

지난 수요일, 서울 시내에서 선생님을 만나 선생님의 삶과 독서 편력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선생님만의 시선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깊은 얘기를 듣고 왔습니다. 선생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마치 우리나라의 20세기가 한 개인의 삶으로 응축되어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 이야기, 함께 들어보실래요?

 

 

 

한길사(이하 ''): 선생님! 책 출간 이후에 처음 뵙습니다. 최근에 일본으로 여행 다녀오셨지요? 어떠셨어요?

 

이광주 선생님(이하 ''): 이번에 다녀온 건 '도자기 여행'이었어. 임진왜란 때 일본이 우리나라에서 도공들을 수백 명 잡아갔는데, 이들이 일본의 도자기를 굉장히 발전시켰어. 그중 '이삼평'이라는 도공이 있었는데 그 14대 후손을 만나고 왔지.

 

 

 

 

: , 굉장하네요. 저희도 선생님과 '도자기 여행' 떠나고 싶습니다. (: 한번 같이 가지!)

선생님, 평소에는 어떻게 지내시나요? 글은 보통 언제 쓰세요?

 

: 내가 간혹 책을 내니까 사람들이 착각하는데, 나는 하루에 두세 시간만 책상 앞에 앉아 있어. 그러고는 대개 소설을 읽지. 특히 연애소설. 요즘엔 스탕달을 읽고 있어. 우리 소설도 읽지. 공지영이라든지... 얼마 전에는 서점에서 난중일기』를 샀어. 한국의 선비문화나 한국미술 관련된 책도 계속 찾아서 보지.

요즘 원로들을 보면, 불의한 사회현상을 보면 맞서기도 하고, 사회 봉사도 하지. 그래야 하기도 하고. 그런데 나는 한가로이 담론의 탄생 나의 유럽 나의 편력 동과 서의 차 이야기 교양의 탄생 같은 글을 쓰고 있는 것인가. 우리 사회는 카페와 살롱이라는 주제가 유럽 문화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몰라. 심지어 서양사 전공자들도! 살롱은 사람들이 귀부인이나 쫓아다니고 연애놀음이나 하던 곳이 아니야. 살롱∙카페 문화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를 모르는 거지. 그건 바로 오늘날 우리 문제로서의 '담론문화'라고.

 

18세기 프랑스 제1급 지식인과 교양인의 구심점이었던 조프랭 부인의 살롱.

 

 

이: 17세기 유럽 살롱에서 귀족이 일반 시민과 만나 계몽주의에 눈떴어. 시민들은 귀족에게서 반듯한 몸가짐과 우아한 말씨를 배웠지. 살롱에서는 귀부인의 존재가 참으로 중요했지. 아무튼 살롱에 드나들던 귀족들이 나중에 프랑스혁명을 이끄는 사람들이 되었어. 그리고 살롱 문화는 18세기 카페로 이어졌지. 그때부터 '담론문화'가 대중 일반에게까지도 퍼진 거야.

 

: 유럽은 언제부터 이리 흠모하시게 되었나요? 선생님의 어렸을 적 모습은 어땠나요?

 

: 좋아하는 일이 아니면 도통 관심이 없었어. 국민학교 6학년 때부터였을 거야. 어느 날 아버지에게 물었지. "유럽 가서 살려면 어떡해야 하나요."

그때가 일제강점기였는데, 우리 집에서는 국제 화보라는 일본 잡지도 보고 서너 가지 신문을 구독해 보았어. 당시에 형편이 나은 집이었지. 잡지에서 최승희가 파리에서 찍은 화보도 보고, 베네치아 곤돌라도 보고, 유럽 도시 광장에 늘어서 있는 옛 건물도 보고. 그렇게 유럽을 만나 제일 먼저 동경하게 되었지. 한강보다도 파리 센 강을 먼저 흠모하게 된 거야.

유년 시절에 눈떴어. 일상보다 더 고귀한 것, 아름다운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 내가 교수를 했으니까 사람들은 내가 줄곧 공부를 잘했을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한 반 60명 중에 1~8등을 뜻하는 '우등'은 국민학교를 통틀어 딱 한 차례 했어. 다만, 내가 단연 우수한 과목이 있었지. 서양사와 한문 말이야. 물리나 수학은 젬병이었어. 하위징아 자서전에 보면 '한쪽 머리는 꽉 차 있는데, 다른 한쪽 머리는 비었다'는 말이 나와. 나도 그런 거지.

 

: 선생님, 담론의 탄생은 아버지께 바치는 헌사로 시작하지요. 선생님께서 출간하신 책에 헌사를 쓰신 것은 처음이지요?

 

: 그렇지. 우리 아버지는 성공한 사업가이셨어. 해방 직후 서울로 오기 전, 우리 집은 원래 함흥이었어. 함흥에는 큰 서점이 세 군데 있었어. 아직도 두 군데는 이름이 생각나네. '양서각' 그리고 '사카이마치쇼텐'. '사카이마치쇼텐'은 일본 책을 파는 곳이었지. 아버지는 내가 언제든 원하는 책을 가져갈 수 있도록 그 서점들에 이야기를 해놓았지.

아버지가 어렸을 때 우리 집은 동네에서 '진사댁'으로 불렸다고 해. 학교에서 무슨 파업 주모자로 몰려 퇴학당한 후 북경으로 공부하러 떠나셨어. 할머니께선 아들을 찾으러 홀로 그 먼 길을 걸어 북경까지 가시기도 하셨대.

몇 대조 할아버지인지 모르겠으나, 한 분께서는 주색에 빠져 유부녀도 만나는 것으로 소문이 파다하셨대. 어릴 땐 그 사실이 참 부끄럽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진정 여성을 사랑하고 공경한 로맨티스트가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도 들어.

 

: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새삼 헌사가 감동적으로 다가옵니다.

 

 

 

 

: 지금 들려주는 건 오래전 이야기야. 내가 70살이었을 때쯤이지. 그때 내가 책을 쓴다고 하니까 누군가 그러더라고. "대체 70 넘은 사람에게 책 써달라 하는 것이 있느냐"고 말이야.

 

: 아이코, 그곳이 바로 한길사네요^^; 선생님만이 들려주실 수 있는 이야기를, 지금도 성실하게 쓰고 엮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희는 좋은 책을 내고, 독자분들도 향기로운 책을 만납니다.

 

 

 

이광주 선생님께선 참 겸손하고, 무엇보다 성실하신 분입니다. 새 책을 내고 숨돌리실 틈도 없이, 선생님께선 또 다음 책을 준비 중이십니다. 2016년 출간 예정인 독일문화사론』은 선생님께서 평생 탐독, 연구해오신 독일 문화에 대한 앎을 집대성하는 책이 될 것입니다. 함께 담론의 탄생』과 나의 유럽 나의 편력』을 읽으면서 우리 나름으로 유럽을 흠모하고 우리만의 담론문화를 만들어나가고 있으면, 독일문화사론』이 또 성큼, 출간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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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한길다반사2015.02.09 17:27

『인생을 묻는다』저자 김성우와 함께

"깊은 밤, 책과 인생을 말하다."

 

 

 

 

•『동아일보』1985년 10월 18일

 

  여러분은 1980년대 중반, 세계문학 작품을 소개하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MBC 세계 문학 기행」이라는 프로그램을 기억하시나요? 요즘은 해외여행 가기도 쉬워지고 문학이나 여행을 테마로 세계 각지를 돌아보는 TV프로그램이 많아서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이지만 당시에는 그야말로 ‘신세계’였을 것 같습니다.

 

  입춘이 막 지난 겨울 밤, 구기동의 한 민속 음식점에서 명랑 에디터 프시케가 유재화 기획위원님과『인생을 묻는다』의 저자 김성우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마침 선생님께서『세계의 음악 기행』이라는 책을 들고 나오셔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선생님의 옛날 작품 활동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젊은 시절 『한국일보』기자로 생활하시며 세계 각지를 돌아보셨다고 합니다. 그때의 경험을 몇 권의 책으로 남기셨습니다. 파리특파원 시절 사르트르, 레비-스트로스, 롤랑 바르트, 르네 샤르, 외젠 이오네스코 등 당시 프랑스를 대표하는 세계적 지성들을 인터뷰한『파리 지성 기행』을 비롯하여 『세계의 문학 기행』『세계의 음악 기행』이 있으며 러시아 문학 산책인 『백화나무 숲으로』등이 있습니다. 이런 대작가들은 지금은 모두 고인이 되셨기에 한국인 기자로서 이분들을 직접 만나고 나눈 대화록은 그 자체로 가치가 높다고 하겠습니다. 모두 직접 답사를 가서 사진을 찍고 자료를 조사하고 쓴 작품들이라고 합니다. 「MBC 세계 문학 기행」은 선생님의 책『세계의 문학 기행』을 모티프로 한 프로그램으로 선생님께서 고문을 맡으셨다고 합니다. 정말 신기하지요? 저는 너무 어렸을 때라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날 자리에 함께 하신 유재화 기획위원님은 그 프로그램의 열혈 애청자였다며 문학 소녀 시절로 돌아간 듯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셨습니다.

 

  김성우 선생님은 한길사에서 두 권의 책을 내셨습니다. 2012년 출간된 『명문장의 조건』은 ‘글쓰기’를 주제로 위대한 사상가ㆍ문학가ㆍ예술가들의 명언을 이용해 문장론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망라한 것입니다.

 

 

 

 

                                 46판 | 양장 | 288쪽, 368쪽 | 17,000 원

 

 

이번에는 ‘인생’에 대해 묻습니다. 『인생을 묻는다』(2015)

 

곧을 것인가, 굽힐 것인가 / 복수할 것인가, 용서할 것인가 /

결혼은 해야 하는 것인가 / 깨끗하면 외로운가 / 누가 친구인가 /

사람은 무엇으로 행복해지는가 / 인생은 살 만한 것인가..........

 

이 책의 차례는 인생을 살다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당면하게 될 서른 가지 문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사람의 일생은 인생의 수업시간이다. 사람은 인생을 사는 법을 배우기 위해 일생을 살아간다. 모든 인간은 인생의 초보자요, 그리고 영원한 초보자다. 인생을 미리 배워 나오는 사람 없고 다 배워 돌아가는 사람 없다.”

-독자들에게

 

 

『명문장의 조건』과『인생을 묻는다』에는 약 500여 개의 명언이 담겨 있습니다. 편집하는 내내 ‘이걸 어떻게 다 모으셨을까’ 궁금했었는데요, 평소에 선생님께 궁금했던 몇 가지를 질문 드렸습니다.

 

명랑: “모든 명언의 출처를 일일이 밝혀주셨는데요, 책이 어려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의 장점이라고 생각해서 편집할 때

    각주로 넣었습니다. 굉장히 치밀한 작업이셨을 텐데요, 평소에 메모를 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책을 위해 따로 모으신

    건가요?

 

선생님: 책을 읽은 후 꼭 독서카드를 쓰고 있어. 기자 생활을 할 때부터 기사나 논설 등 각종 글을 써왔고 그때마다 도움을 

           받았지. 지금까지 써둔 독서카드를 모으면 몇 만 장은 될거야.

 

 

 

명랑: 두 책에 사용된 명언을 모으는 데에는 얼마나 걸리셨나요?

 

선생님: 평생이 걸렸지.

 

명랑: 「종장_나의 짧은 생각들」도 재미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살아오신 순간순간의 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는데요,

          이것도 평소에 메모를 하신 거지요?

 

선생님: 당연히. 그건 내가 경험을 통해 느낀 것들이고, 한 줄이 내 1년 삶의 결과인 셈이야.

 

명랑: 선생님, 저는 새댁이라 그런지 칼릴 지브란의 명언이 가장 기억에 남았습니다.

 

       “함께 사는 두 사람 사이에 공간을 두십시오.

        함께 서 있되 너무 바짝 다가서지는 마십시오.”

      

        특별히 좋아하는 사상가가 있으신가요?

 

선생님: 니체와 라 로슈푸코를 좋아해.

 

명랑: 사랑에 관한 명언 중에 선생님의 마음을 훔친 명언도 있나요?

 

선생님:  “한 번도 사랑해보지 않은 여자는 있지만 한 번만 사랑해본 여자는 없다.”_라 로슈푸코

 

명랑: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요? 누텔라 초코잼 광고에 그런 말이 있어요.

       “누텔라 잼을 한 번도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다.”

 

선생님: 오호, 그런 말이 있군. 그게 바로 잠언의 묘미야. 특별한 경우를 일반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 말이야.

 

명랑: 평소 독서를 많이 하실 것 같은데, 주로 어떤 책을 읽으시는지요? 독서에 대해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말씀은?

 

선생님: 주로 문사철(文史哲)과 고전을 읽는 편이야. 고전은 검증된 것이기 때문에 고전을 읽는 것은 시간을 아끼고

           버는 일이지. 아직 평가가 안 된 책을 내가 평가하느라 그 책을 들여다볼 시간이 없어. 이미 평가된 책을 읽기에도

           내 시간은 부족하니까. 신간 홍보에 잘 속지 않고 시간을 두고 지켜보는 편이야. 책을 잘 골라 읽어야 해.

           고전은 웬만하면 실패하지 않지.

 

명랑: 『인생을 묻는다』를 선택하는 독자들은 인생에 고민이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요?

          그런 독자들에게 어른으로서 해주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선생님: 인생에 정답은 없어. 착하게 산다고 반드시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고, 굽혀가며 산다고 나쁜 것도 아니야.

           하지만 너무 힘들어하지 마. 지금 각자가 고민하는 것들은 이미 옛 성인들도 했던 고민들이니까.

           말해질 것들은 이미 다 말해졌어. 정답은 없어도 현답은 있어. 이 책 안에 다 담았어.

           책을 읽으면 고민에 더 깊이 빠질 수도 있을 거야. 그 고민의 과정을 통해 각자의 정답을 찾았으면 해.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러나 이에 대한 해답은 없다.” _톨스토이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기 전까지,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과 고민을 하며 살아갑니다. 한 고비 넘기면 또 한 고비 다가오고, 살면서 부딪치는 문제들도 끝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캐묻지 않는 인생은 살 가치가 없다.” _플라톤

 

그래서 우리는 인생을 묻고 또 묻는가 봅니다.

 

“꿀벌은 여기저기의 꽃에서 당분을 빨아들여 그것으로 꿀을 만든다.

그 꿀은 꽃의 것이 아니라 꿀벌의 것이다.” _몽테뉴

 

우리는 ‘꿀벌’이고 ‘당분’은 고전이며 ‘꿀’은 나의 인생철학일 것입니다.

오늘도 꿀벌의 비행(飛行)은 끝이 없겠지요?

 

“결승점 너머까지 경주로가 있는 듯이 경주를 질주해야 하고,

죽고 난 뒤에도 인생이 있는 듯이 인생을 살아야 한다.” _김성우

 

-by 명랑 에디터 프시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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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한길다반사2015.01.29 16:00

[편집자의 저자 선생님 댁 방문기]

경기도 남양주-이삼성 선생님 편

 

 

 

지난주 흐리고 추웠던 목요일. 편집부의 편집자 映은 한길사의 김언호 대표님, 류재화 기획위원님과 함께 멀리 남양주까지 길을 떠났습니다.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1, 2』 『세계와 미국』 『20세기의 문명과 야만』 등을 집필한 그 성실하고 치열한 학자! 이삼성 선생님을 만나 뵙기 위해서입니다^^ 이삼성 선생님과 여러 차례 통화도 하고 이메일도 주고받았지만, 정작 얼굴을 뵙는 건 담당 편집자인 저도 처음이라 설레는 마음을 어쩔 수 없었습니다.

 

편집부가 이삼성 선생님 얼굴을 뵙기 힘든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선생님 댁이 말 그대로 ‘산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넉넉하면서도 고즈넉한 운치에 첫눈에 반했습니다. 집이 주인을 닮은 것 같기도 했습니다. 아! 생각해보니 선생님께서 직접 지으신 집이니 나무 기둥, 벽과 지붕 모두에 선생님 손길이 닿아 있어 집과 사람이 서로 닮을 수밖에 없겠군요^^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선생님 댁의 모습. 하늘과 나뭇가지와 눈과 집이 이루는 풍경이 마법 같습니다...

 

김언호 대표님과 이삼성 선생님께서 갑자기 장작을 패고 계십니다! 으랏차!

 

밖은 온통 눈으로 덮여 새하얀데, 집 안은 난로의 열기로 후끈후끈했습니다. 물론 선생님과 나눈 즐거운 대화의 열기도 만만치 않게 달아올랐지만요. 저 사진 속 난로가 어찌나 뜨거운 기운을 내뿜는지, 고구마를 구워먹는 것은 물론 난로 위에 프라이팬을 놓고 돼지고기도 구웠지요! (시간은 좀 오래 걸렸답니다^^;) 북엇국도 따뜻하게 끓여먹고요. (‘북엇국’, 맞는 표기입니다~) 음식들이 무척 맛있어서, 저로선 정말 이례적으로 밥을 두 공기나 먹고선 다음 날 점심까지 배불러서 절절맸고요.

 

 

활활 타는 난롯불.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시나요?

 

난로 위에서 돼지고기 굽기. 고기가 빨리 구워지지 않아도 유쾌한 기분에 절로 미소가^^

 

선생님 댁에는 음식 못지않게 책도 참 많았습니다. 집필실이자, 연구실이자, 거주하시는 댁인 셈입니다. ‘외교’ ‘정치’ ‘역사’ 분야의 온갖 연구서와 학술서가 책장을 사방으로 가득 채우고 있어 이곳에 사는 사람은 누구든 ‘학자’가 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이삼성 선생님께서 집필하신 저서들... 어마어마합니다.

 

선생님께선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제3권을 집필하시는 중입니다.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는 한길사의 수많은 주옥같은 책 중에서도 편집자 映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텍스트입니다. 개인적으로 학부 시절 사회과학을 전공해서 이삼성 선생님의 집필 활동에 부여하는 의미가 더 클 수도 있고요. 하지만 굳이 우리나라 국제관계학 학계의 성과 운운하지 않더라도, (두께에 너무 놀라지 마시고^^;) 막상 책을 펼쳐 읽어보면 이렇게 쉬우면서도 알찬 글이 또 없습니다. 방대한 동아시아 역사를 정리해낸 체계도 체계이지만, 군데군데 선생님의 독서, 영화 감상 편력이 엿보이는 부분도 책의 묘미입니다. 예를 들어 중국의 역사를 설명할 때 영화의 시나리오를 소개하시기도 합니다.

 

영화 「영웅」은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말기가 시대 배경이다. 조나라의 무인 형가가 당시 가장 강력했던 진나라의 시황제를 암살하려다 실패한 사건이 모티브이다. (…) 「영웅」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형가는 진시황을 능히 암살할 수 있는 순간까지 갔으나, 전국시대를 끝내는 천하통일의 대업을 막지 않기 위해 스스로 암살을 포기한다. (제1권, 제1장 동아시아 질서의 기원, 39쪽)

 

그러면서 이런 지적도 하시지요.

 

한국에서 끊임없이 생산되는 역사대하 드라마들은 전통시대 동아시아에서 한반도의 국가들이 상대해야 했던 북방민족들에 대한 대체로 획일적인 이미지와 선입견을 재생산해왔다. 짐승들의 가죽으로 직접 지어 만든 듯 보이는 의상을 걸친 거친 외모는 그들 내면의 정신세계까지도 거친 야만의 세계일 것이라는 인상을 효과적으로 각인시켜준다. (…) 위의 몇 가지 소묘들은 우리가 획일적인 선입견의 틀에서 벗어나 그 시대 북방민족들과 한반도 국가 사이의 전쟁과 평화의 문제를 바라볼 것을 권유한다. (제1권, 제5장 고려시대 아시아 대륙과 한반도, 327쪽)

 

 

서재를 배경으로, 이삼성 선생님의 모습.

 

제1권은 전통시대 2천 년 간의 역사를, 제2권은 19세기를 다룹니다. 이제 우리의 바로 지난 세기, 20세기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만이 남아 있는 셈이지요. 하지만 우리가 바로 지나온 과거 그리고 이 순간 겪고 있는 현재를 다루는 만큼, 서술하기에 더 어려운 점이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짐작해봅니다. 다가오는 2016년(2015년이 성큼 왔던 만큼 2016년도 눈 깜빡할 사이에 다가오겠지요?) 드디어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제3권이 출간될 예정입니다. 많이 기대해주세요!

 

 

 

- 편집부 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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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한길다반사2014.12.04 11:18

작가 김수경+기자 주진우,『내 친구 노무현』을 말하다

 

 

2014년 11월 26일. 홍대 가톨릭청년회관 니콜라오홀.

 

작가 김수경,

기자 주진우,

사진작가 김중만,

충남지사 안희정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가,

새로 나온 책

『내 친구 노무현』이 궁금한

독자 200여 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주진우: 김수경 선생님을 소개하겠다. 부산에서 태어났고 영문학을 공부했다. 미당 서정주에게 추천받아 시인이 되었다. 도서출판 열음사 대표로 있었다. 시와 드라마·영화·무용 대본을 많이 쓰셨다. 김민기의 학전소극장을 만들어주신 분이기도 하다.

『내 친구 노무현』 왜 쓰셨나.

김수경: 내 이름 앞에 붙는 '노무현의 정치적 후원자'라는 딱지를 늘 떼고 싶었다. 처음부터 그런 생각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는데, 출간 후에 사람들에게 질문을 받으면서 생각해보니 그런 이유가 컸던 것 같다. 요즘 신문을 보면 '후원자'라는 말이 거의 다 사라지고, '노무현의 친구'라고 하더라.

 

  

 

주진우: 두 분은 어떻게 친해지셨나.

김중만: 1990년대 초에 15만 부가 팔린 『자유종』이라는 소설이 있었다. 마약쟁이들이 등장하고 마약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작가가 누구길래 이렇게 생생하게 마약 이야기를 쓰나 싶었다. 그러던 중 화가 김점선의 소개로 김수경 작가를 만났고, 이름이 낯익어서 혹시 『자유종』을 쓰신 그분이냐고 물으니 맞았다. 이후 셋이 친하게 지냈다.

 

내가 살면서 구축해온 나만의 철학이 있다. 이 자리에서 꼭 한번 얘기해드리고 싶다. 첫째, 정치는 사람의 몸과 몸을 연결하는 다리다. 둘째, 경제는 사람의 몸과 마음을 연결하는 것이다. 사람이 만든 상품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면 된다. 그게 경제의 전부다. 셋째, 문화는 사람의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다리다. 넷째, 예술은 사람의 영혼과 영혼을 이어주는 다리다. 여기에 문화와 예술의 차이가 있다. 마지막으로 도전, 꿈은 사람의 미래를 이어주는 다리다.

 

 

 

 

 

안희정: 『내 친구 노무현』을 비행기 안에서 다 읽었다. 군데군데 내 이름이 나오니까 정말 잘 읽히더라. 여러분도 책을 읽는데 여러분의 이름이 나온다고 생각해보시라! 마치 팥빵에 든 팥을 씹는 기분이었다. 『내 친구 노무현』을 읽고 바로 핸드폰에 메모해놓은 것이 있다.

 

  첫 번째. "노무현과 나는 어떤 관계일까. 후원자이기보다는 친구이고 애인이어야 한다. 그래야 나의 이 모든 고통이 설명 가능한 것이 된다." 김수경 선생의 그 독백은 정말로 가슴저리게 한다.

  두 번째. 박제된 역사로, 빛 바랜 정치적 화석이 되기 전에 인간 노무현을 문학이라고 하는 특별한 보존장치로 다시 한 번 기록하고 싶은 김수경. 정치와 가치로 표본실에 박제되기 전에 인간 그 자체로 삶 그 자체로 그를 다시 한 번 기록하고 싶어하는 그녀의 모든 노력이 나의 독서를 통해서 내게 전달되었다.

  세 번째. 나는 그녀를 '산타 할머니'라고 불렀었다. 그녀를 나의 친구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나이 차이도 있고, 대장의 친구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는 언제나 건널 수 없는 강 앞에서 멈춰서곤 했다. 그녀는 언제나 그녀가 돌아갈 강남의 요새와 문학이라는 전쟁터의 죽음조차 관조할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할 사람이기 때문에 그랬다. 그녀는 종종 말하곤 했지. 어릴 적 자기의 인생은 사랑과 문학이었다고. 같이 싸우다 죽자고 요구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존재가 바로 그녀였다. 우리는 관중석에 앉아 응원하는 그녀에게 승자로서 아니면 패자의 주검으로서만 겨우 연민과 사랑의 키스를 청할 존재일 뿐 친구가 된다는 건 애초에 난 기대하지 못했었지.

  노무현의 친구, 김수경. 김수경이라는 사람, 한 여성의 삶을 읽었다.

 

 

 

 

 

주진우: 한 독자분께서 『내 친구 노무현』 리뷰를 적어 보내주셨다. 앞으로 모셔서 함께 들어보자.

김경엽:

  노무현은 몰락한 것이 아니라 몰락을 선택했다. 몰락은 패배이지만, 몰락의 선택은 패배가 아니다. 그는 지면서 이겼다. 본래 문학은 '파국'이란 효모에서 발효한다. 한 문학비평가의 말을 빌리자면 "문학은 몰락 이후의 첫 번째 표정이다." 세계에 맞서 기꺼이 몰락하기를 선택하는 인물 없이는 '소설적인 것'이 발생할 수 없다. 김수경의 소설이 의미를 갖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김수경은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모든 진실한 것들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밟고서만 온다"라고 말한다. 이런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김수경과 그의 친구 노무현은 긴 몰락을 시간을 함께 견뎌나갔다. 그 시간은 거대 정치와 역사, 공적 담론이 누락했던 사소하고 하찮은 것들, 부스러기들을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수습하는 인고의 시간이었다.

  『내 친구 노무현』은 그 인고의 시간에 대한 문학적 기록이다. 그리고 김수경은 노무현을 애도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애도했다. 진정한 애도는 진정한 치유의 시작일 것이다. 『내 친구 노무현』은 그녀의 친구 노무현에게 헌정하는 최고의 애도사다.

 

 

 

주진우: 『내 친구 노무현』에 뒤이어 나올 책이 두 권 더 있다. 『이것은 소설이다』 『62세의 이혼』이 그것이다. 어떤 책들인가.

김수경: 『내 친구 노무현』은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기 전에 그를 사적으로 알았던 시간에 대한 기억을 몽타주로 쓴 것이다. 『이것은 소설이다』는 노무현을 전혀 만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그가 내 인생에 참 많은 영향을 미쳤던 시절에 대해 썼다. 책은 검사와의 대화로 시작한다. 인터넷을 뒤지며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정보를 재가공하고 인용한 것을 보고 썼다. 마지막은 『62세의 이혼』이다. 시간적으로 볼 때 『내 친구 노무현』이 1990년대 이야기라면 『이것은 소설이다』은 2003년부터 시작되고, 62세의 이혼』은 이혼이라는 사건이 시작된 2009년부터 현재에 이르는 시간이다. 처음부터 계획한 것은 아니었지만, 인생이 지나갔던 시간을 다시 훑어보게 되었다.

원래 나는 감성적이고 굉장히 터프한 문장을 좋아하는데, 『내 친구 노무현』에서는 가능한 한 절제했다. 노무현이라는 원자료의 역사적·정치적 표상이 너무 크기 때문에, 정말 많이 절제하면서 그를 아름답게 문학 속에 남겨두려 했다. 아름다운 남자로.

주진우: 충분히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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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한길다반사2014.11.06 17:31

작가 김수경의 친구들과 독자들이 함께한

<<내 친구 노무현>> 시독회

-2014년 11월 4일 <<내 친구 노무현>>이 세상 밖에 나오다!

 

 

 

비밀리에, 조심스레 준비해온 <<내 친구 노무현>>이 11월 4일(그저께!) 드디어 세상 밖에 나왔습니다. 갓 입고된 <<내 친구 노무현>>을 만나 첫인사를 나누기 위해 어제 저녁 7시 반, 상수동 이리카페에 작가 김수경 선생님과 선생님의 친구들, 한길사와 인연이 깊은 몇몇 작가, 독자가 모였지요. 함께 책을 낭독하고, 노래를 듣고, 이야기를 나누는 따뜻한 시간이 펼쳐졌답니다. 함께해서 즐거웠던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조금은 비통했던 그 현장으로 지금 바로 초대합니다.




내게 대통령이라는 말은 정치적이라기보다는 문학적 알레고리였다.

그의 존재 자체가 내겐 경이였다. 그는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꿀 수 없었던 꿈을 꾸게 만들었다.

마음 한구석에 처박아놓았던 열정에 불을 지필 수 있게 했다.

효용의 가치뿐인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닌

어쩌면 무용한 자들의 현현한 아름다움을 전해주고 세상을 떠났다.

이 세상에 태어나 그토록 거짓 없는 영혼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은 나의 행운이었다.

그의 친구였던 것을 행복하게 생각한다.

나는 마음으로 그 우정에 응답했고

도리를 다하려 했다.

그 또한 그랬다는 것이 고맙다.








고즈넉한 카페 안에 작가 김수경의 친구들, 한길사의 저자들과 독자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하나하나 낭독이 진행될 때마다 모두 한 마음으로 귀를 기울이고, 더러는 낭독문을 골똘히 들여다보기도 했지요. 어떤 분은 시독회가 진행된 두 시간 여에 걸쳐 <내 친구 노무현>을 아예 독파하셨다고도 합니다. 이렇게 많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한데 모이기도 쉽지 않은데 더구나 다들 어찌나 집중하시는지... 다 함께 다른 세계에 들어와 있는 듯했습니다.





 

사회는 오늘도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님께서 맡아주셨습니다. 저음의 중후한 목소리, 순발력, 작가 선생님과 초대손님, 독자의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선생님만의 편안한 분위기. 그 누가 따라올까요? 작가 김수경의 친구들과 함께하는 낭독, 이제 시작합니다.






독서운동가 여희숙 선생님께서 첫 번째 낭독을 시작하셨지요. '그녀 김수경'이 세무조사를 받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걸려온 노무현의 전화. 그가 말했습니다.


"그간의 사정을 전해들었습니다. 나 때문에 고생 많습니다."

"아니요."

사실은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나 너무 힘들고 어떻게 운명이 결정날지 두려워요."

하지만 차마 말할 수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수천 가지를 원망하고 싶었지만 모든 것을 목구멍 너머로 삼켰다.

침묵의 끝자락에서 노무현이 말했다.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뒤이은 낭독은 배우 김상중 선생님께서 이어가셨습니다. 요즘 TV드라마 '나쁜 녀석들'에서 믿음 가는 배우임을 어김없이 입증하셨지요^^ 김상중의 중후한 목소리는 김수경이 노무현을 처음 만난 1987년 6월의 부산을 생생하게 재현했습니다. 작가 김수경의 필체는 우리가 조금은 잊고 지낸 지난날 '혁명'의 모습을 강렬하게 그려내지요.


친절한 미소. 찰나지만 완벽한 공유.

사람들끼리 그렇게 미소지으며 눈을 찡긋거리며 지나가면서 서로 익살스럽게 묻는 것 같았지.

"우리 혁명 중!"

그녀는 자신이 실제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아마 다시는 그런 유형의 인간을 만나지 못하겠지?

그럴 거야.

이런 말을 할 때는 언제나 강한 상실감과 그리움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감정이 동반되어오는 거야.


김수경 선생님께서 그리워하시는 노무현 변호사의 그 모습-다시는 만나지 못할 '그런 유형의 인간'-이 궁금하시다면, <<내 친구 노무현>> Metaphysical Requiems를 펼쳐보세요~


'초혼'을 읊으신 것은 이철범 서울대 화학과 교수(2006년에 '젊은 과학자상'을 받으셨지요^^)의 몫이었습니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그래. 맞아.

노무현은 스스로 산산이 부서지려 했던 거야.

허공 중에 흩어져버리려고 했던 거야.

그녀는 노무현의 심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고통이 전해져왔다.






작가 김수경의 선생님의 '절친' 더글러스 씨가 그다음 순서로 나섰습니다. 출간을 축하하며 노래를 한 곡 선사하셨지요. 그런데 미국 출신의 그에게서 흘러나온 노래는... '그리운 금강산'이었습니다.


누구의 주제련가 맑고 고운 산
그리운 만이천봉 말은 없어도
이제야 자유만민 옷깃 여미며
그 이름 다시 부를 우리 금강산

수수만년 아름다운 산 못 가본지 몇 해
오늘에야 찾을 날 왔다 금강산은 부른다


아직도 감동에 몸이 저릿저릿합니다.

'시독회', 책을 읽는 자리지만 이날 음악도 여러 곡 함께 즐겼지요(친구들이 모인 자리에 음악이 빠질 순 없겠죠). 그중에서도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이 함께 부른 이 노래. 노무현 대통령이 노래방에서 언제나 불렀다는 '작은 연인들'이었습니다. 사회자 김민웅 선생님께서 기타 반주와 함께 조용히 부르기 시작하시는데... 몇 초나 지났을까. 안개가 퍼져나가듯 어느새 수십 명의 목소리가 어우러져 공간을 울리고 있었습니다. 너무 감동해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었지요.


언제 우리가 만났던가 언제 우리가 헤어졌던가
만남도 헤어짐도 아픔이었지 가던 길 돌아서면
들리는 듯 들리는 듯 너의 목소리 말없이 돌아보면
방울방울 눈물이 흐르는 너와 나는 작은 연인들


김수경 선생님의 친구분들이 어째나 다채로우신지! 박노해 시인과 무용가 홍신자 선생님의 배우자, 베르너 사세 선생님도 시를 들려주셨습니다. 특히 박노해 시인은 오늘을 위해 특별히 새로 지은 시를 읊으셨지요. "사랑은 남아". 무엇이 지나가도 사랑은 남는 걸까요?


 



다시 낭독 순서가 찾아왔습니다. 배우 송옥숙 선생님께서 노무현이 김수경에게 들려주었던 자신의 사랑, 열등감에 관한 이야기를 읊조리셨지요. 김수경 선생님은 <<내 친구 노무현>>에서 '노무현과 친구로 지냈던, 그것도 수없이 사적인 만남을 가졌던 90년대 중반'을 떠올리며 이렇게 그를 회상합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이상하게 누군가에게서 사랑받는다는 확신이 생겨. 그래서 시간이 흐르면 마음속에서 알 수 없는 자신감, 따뜻함 이런 게 치밀어 올라오는 것을 느끼게 돼. 타인에게 존경받는다는 느낌으로 충만하게 되는 거지.

여자가 남자하고 사랑에 빠질 때 느끼게 되는 그런 것하고는 사뭇 달라. 처음에는 너무나 소소해서 잘 알아채지 못하는데 시간이 흘러가면서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이렇게 따뜻하고도 진실할 수 있구나라는 그런 경험을 하게 되는 거지.

이런 것을 사랑이라고 말한다면 사랑에 대해서 애인에 대해서 새로운 정의를 만들어내야 해. 물론 우정도 일종의 사랑이니까. 그가 죽었을 때 많은 국민들이 그를 사랑한다고 거리낌 없이 말했잖아.


...고 노무현 대통령을 살아생전 알고 지내지 못한 게 참 아쉽지요. 작가 김수경과는 달리 저희는 대부분 그런 기회를 갖지 못했으니까요.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이렇게 따뜻하고도 진실할 수 있구나라는 그런 경험".


마지막으로 박재동 화백이 김수경과 노무현이 작별하는 장면을 들려주었습니다. 작별...


사람이 꼭 죽음으로써만 작별하는 것은 아니다.

잔인했던 봄날 봉하의 마을회관에서 노무현의 산산이 부서진 시신이 담겨 있던 관 앞에서 했던 말없는 인사가 그와의 작별이었는지, 아미가 호텔 중식당에서 함께했던 점심식사가 노무현과의 마지막 작별이었는지, 아니면 이 소설의 첫 장에 썼던 마지막 전화 통화가 작별이었던 건지 언제나 헷갈렸다. 그러고 보니 살아오면서 수많은 작별을 했다. 하루하루의 숙제를 마치듯이.


그를 혹은 그녀를 아무리 사랑하고 존경하고 좋아한다고 할지라도 누군가의 인생과 실제로 교차한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서로의 존재의 광채를 멀리서 바라보면서 시간 속을 함께 걸어갈 수 있을 뿐이다.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몸짓으로 그가 역사 속에 남긴 흔적을 경이로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을 뿐이다.

노무현은 잊히지 않았다.

노무현은 아직 죽지 않았다.






<<내 친구 노무현>> 시독회는 이렇게 끝을 맺었습니다. 친구들도 다음을 기억하며 다시 각자의 길로 돌아갔지요.

따뜻하고, 사려 깊고, 유쾌했던,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을 회상하며 그리운 마음에 비애는 감출 수 없었던,

그래도 친구들이 함께 모여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마음을 한데 모았던 시간.




누군가와 함께

시간 속을 걸어간다는 것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몸짓으로

역사 속에 흔적을 남기는 것.

-폴 발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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