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사 / 한길아트2014.08.22 10:46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들과 어떻게 만날 것인가

 

 

편집자 映은 올해 내 출간을 목표로 '김민웅의 인문정신'을 요즘 열심히 작업 중이랍니다! 김민웅 선생님의 글을 혼자 보기만 아까워, 살짝 이곳에 공유합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 사회가 보다 정의로운 '정치의 정신구조'를 갖추어 '어두운 시대를 이기는 정치'를 실현해나갈 수 있을까요? 뉴스만 보면, 아니 보지 않고 있어도 마음이 막막한 요즘, 함께 고민하면 그 정신적인 무게라도 조금 덜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덧. 아직 김민웅 선생님도 원고를 계속 보완하시고 있고 편집도 아직 진행 중이라, 나중에 실제로 책에 실리는 글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어두운 시대를 이기는 정치

 

한나 아렌트는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Men in Dark Times)에서 ‘암담한 시대’란 “공적 영역의 소멸과 함께 사람들이 사적인 삶에만 관심을 갖게 될 때” 온다면서, 이런 상황에서는 “공적 문제를 논할 수 있는 정치가 사라진다”고 갈파한다. 더군다나 이런 시기에 권력은 “진실을 하찮은 문제처럼 만들어 버리고”, 사람들은 자기 문제 외에는 관심을 갖지 않게 된다면서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정말 중요한 문제에 대한 판단력이 마비되고 그 결과는 비극이 된다고 경고한다. 진실은 자꾸 하찮은 것처럼 밀려나고, 본질과는 관련이 없는 일들이 언론과 방송, 권력의 담론에서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뭔가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공적 영역에서 해결할 수 있는 정치가 제대로 가동하고, 그 과정에서 치열한 투쟁도 벌어져 대치와 갈등을 거치면서 어떤 해결점에 도달할 때 인간의 삶은 진보한다. 아렌트는 핍박받는 이들에게 공적 목소리가 박탈되는 상황은 정치의 붕괴이며, 이로써 이들은 그 사회에서 내부적 이민자처럼 취급받고 주변부적 존재가 되고 만다고 말한다. 이중적 고난을 겪는 것이다. 2014년 세월호 유가족들은 공적 정치의 붕괴로 말미암아 바로 이러한 처지에 놓였다. 그런 까닭에 이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로 말하고 행동하고 정치의 주체로 참여하기를 요구했던 것이다. 정치의 붕괴가 저지되지 못하면 그 여파는 세월호 유가족만이 아니라, 이들보다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은 이들에게도 필연적으로 확산된다. 세월호 사건의 강도를 가진 문제를 안고 있는 이들의 현실도 제대로 정치화되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들의 형편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세월호 참사 이후 진행된 '가만히 있으라' 시위. © 2014 프레시안(최형락)

 

 

정치가 정당의 정치인에게만 독점되고 보통의 시민에게는 정치적 발언권과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막히면, 결국 공적 영역은 집권세력에게 장악되어 정치는 소멸되고 만다. 이를 막아낼 수 있는 길은 권력의 봉쇄전략에 맞서 시민의 공적 영역을 확장하는 치열한 투쟁이 있을 때 비로소 열리기 시작한다. 정당은 이러한 투쟁력의 정치적 본부이다. 그런 생각과 의지가 없는 반대정당(opposition party)은 자신이 의식하건 말건 기존질서의 하부구조로 기능할 뿐이다.

 

 

마루야마 마사오가 근대적 자각을 하긴 했으나 제국주의의 역사에 대한 낮은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하고 나선 나카노 도시오(中野敏男)는 『오쓰카 히사오와 마루야마 마사오』에서, 타자에 대한 책임 있는 반응을 하는 문제에 대한 발언은 우리의 현실에서도 경청할 가치가 매우 높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고통 받고 있는 타자의 출현이 우리 자신의 자아를 혼란에 빠뜨리고, 자아가 위기를 겪을 때 비로소 중요한 정치사회적 변화가 가능해진다고 말한다. 그는 특히 일본군에게 끌려간 위안부 할머니들의 등장과 관련해서 “타자의 시선 앞에서 생기는 주체의 분열이 응답에 대한 절실한 희망을 낳아 타자에 응답하면서, 주체 안에서 생기는 분열과 항쟁은 한 개인을 벗어나 정치화되어 책임을 지는 사회적인 것이 될 것이다”라고 한다. 이는 레비나스의 ‘타자의 얼굴에 대한 윤리’와 유사한데,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대체 어떤 책임과 역할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통한다.

이때 ‘주체의 분열’이란 자기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자신, 그리고 자신의 공동체에 대해 의문을 품고 전혀 다른 각도로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해야 타자에게 폐쇄적이거나 적대적이었든지, 아니면 무반응이었던 자신을 깨뜨리고 고통을 겪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나갈 수 있다. 이것은 그 자신의 정체성을 세우는 작업에도 혁명적인 의의를 갖게 한다.

 

 

정치는 바로 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들과 어떻게 만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 문제를 배제한 정치는 정치가 아니라, 권력게임에 불과하다. 자기들만의 리그인 것이다. 우리 사회가 정치에 대해 분노하고 있는 대상은 바로 이 권력게임이지, 고통을 겪는 이들과 연대하면서 이들의 문제를 어떻게든 풀려고 하는 정치는 아니다. 바로 이러한 정치가 없어서 화를 내고 있고 절망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의 정신구조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무지한 스승』에서 “교육이란 지식전달을 넘어서 정신구조를 형성하는 작업”이라는 말을 한 바 있다. 교육만이 아니라 정치 또한 그렇다. 잘못된 정치는 그 사회의 정신구조를 왜곡하고 퇴행시킨다. 무자각 상태로 이끌어 결국 비극을 반복하도록 만든다. 정치는 그래서 그 정신구조가 매우 중요하다. 정신적 퇴폐 상태에 있는 정치는 재앙이다. 한국정치는 이러한 정신적 퇴폐 상태에 빠져 있다. 집권세력은 권력을 사유화하고 있고, 야당은 국민적 고통을 자신의 정치적 육체와 영혼에 온전히 빨아들여 투쟁하는 능력을 갖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를 빼놓고 대부분의 정치적 관심은 기득권 유지에 있다.

 

 

말씀하시는 김민웅 선생님의 모습. 저작권은 한길사에, 초상권은 김민웅 선생님께 있습니다^^

 

 

국민의 생명 위에 있는 그 어떤 정치도, 어떤 권력도 이 세상에는 없다. 그런 권력이 있다면 당연히 그것은 투쟁의 대상 외에 다름이 아니다. 그래야 진정한 정치가 복원된다. 이는 기존 정치인들과 정당의 면모가 완전히 바뀌는 용광로와 같은 과정을 거쳐야 함을 말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현실 앞에서 좌절하지 않고, 용기와 의지를 내고 진전하려는 이들의 마음이 모이면 그것이 새로운 정치의 중심이 된다. 새로운 역사는 언제나 새로운 의식과 의지의 산물이었다.

 

전략과 정책의 문제 이전에, 가장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과 함께 하려는 정치에서 새것이 태어난다. 그런 정치에서 민생이 희망을 품게 되며, 민주주의도 발전하고 역사도 앞으로 나아간다. 방법 이전에 진심과 진실이다. 이것 없이 세우는 집은 모래 위의 가건물일 뿐이다. 이 마음을 기르고 일깨우는 일은 교육과 정치가 결합하는 길에서 찾을 수 있다. 교육혁명과 정치혁명은 한 몸이다. 어떤 시대도 이러한 결합 과정에서 혁명을 탄생시켰다. 여기서 교육은 단지 초등학교에서 대학에 이르는 제도교육만이 아니다. 시민사회 전체의 변화를 가져올 평생학습의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시민교육까지를 포함한다. 이를 통해 전개되는 사상과 철학, 가치논쟁과 사회의식의 성숙 과정은 정치의 정신구조와 그 작동 과정을 다르게 만들 수 있다.

 

근본적이며 긴 시간이 요구되는 작업이라고 해서 엄두가 나지 않거나 당장의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여길 수 있다. 바로 그런 생각이 우리의 정치를 타락시켜 온 것이다.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고 정의로운 사회를 이루어나가는 원대한 목표를 언제나 뜨겁게 가슴에 품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해나가는 지속적인 노력이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바꾼다. 더 나은 미래를 포기하지 않으려거든 교육은 정치를 근본적 질문으로 삼고, 정치는 교육이 기른 비판의 철학적 공세를 감수해야 한다. 그 치열한 대치와 비판, 그리고 토론의 과정이 우리의 공동체를 보다 의롭고 뜻있게 만든다.

 

민주국가와 공화정의 정치는 이런 방향을 향한 투지와 열정에서 힘차게 자란다. 이것을 함께 만들어가는 작업과 과정, 그 자체가 이미 우리가 바라는 국가의 뿌리와 줄기가 된다. 이로써 이루어지는 정치는 인간의 일상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매 순간의 호흡이 된다. 인간이 인간답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자유와 권리는 언제나 정치적인 주제다. 인문정신과 정치는 결국 한 몸인 것이다.

 

2014년 8월

김민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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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한길다반사2014.05.28 17:18

[한길사가 만난 사람]

우리 시대의 ‘자유인’ 김민웅 교수

 

5월 27일(바로 어제!) 옥수동의 한 카페에서 김민웅 선생님을 만나 뵙고 왔습니다. 한길사의 편집자 安과 映이 파주출판도시에서 서울 한남동까지 먼 길을 발품 팔았는데요. 선생님의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명석한 이야기에 빠져들어 시간 가는 줄 몰랐답니다. 저희가 함께 나눈 흥미진진한 이야기, 독자분들과도 당연히 나누어야지요!

 

 

 

한길사(이하 한): 김민웅 선생님, 안녕하세요. ‘차이니즈나이트’에서 뵙고 2주 만에 다시 뵙네요. 올 여름 출간을 목표로 『인문정신을 읽다』『그들은 무엇을 생각했을까』(가제) 등 ‘김민웅의 인문정신’ 3부작을 준비하고 계시지요. 새 책에 실리는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해주세요. 이 책을 구상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요?


김민웅 선생님(이하 김): 책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우리의 정치사회적 현실에 대해 본질적으로 생각을 해보자는 것입니다.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어떤 분야든 한때 잠깐 화제가 됐다가 잊히는 것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망각의 정치’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이 문제를 극복하지 않으면, 즉 우리 사회가 논의는 해놓고 버리는 것이 되풀이되면 시간 낭비입니다. 이런 점을 다듬어서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보자는 노력입니다. 시론은 그때는 절박한데, 지나면 날아가버리는 것처럼 느껴져요.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문제들을 관통하는 본질이 있습니다.

 

둘째, 이런 문제는 우리만 겪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있었지요. 그것과 대화를 해보자는 것입니다. 정밀하게 새로운 생각, 새로운 철학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우리나라 인문학적 사유의 체계를 잡아보자는 것입니다. 그동안 인문학이 대학에서는 자본에 압도되어 배제되었지요. 인문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쏟아지긴 했지만, 인문학이 우리 사회현실과 정면으로 부딪히면서 답을 구하는 사회적 능력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인문정신을 사회적 능력으로 전환시키는 방법은 없을까요?



한: 지난 달 세월호 참사가 온 국민을 큰 슬픔에 빠트렸고, 또 여러 관련 정황들이 분노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은 어떤 심정이신가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더 뚜렷해진 생각이나 바뀐 생각이 있나요?

 

 

 

김: 가장 중요한 것은 그걸 통해서 우리 사회가 ‘내 목숨이 남한테 달려 있구나’를 깊이 생각해주길 바란다는 점입니다. 거꾸로 나도 누군가의 목숨을 움켜쥐고 있는 것이지요. 모두 함께 잘해야 서로가 서로를 살릴 수 있다는 그런 마음의 힘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는 희생되는 비극이 재생산될 것입니다. 나는 누구에게 남인 것처럼 남에게도 나는 남이지요. 하지만 모두 엮여져 있습니다. 고통에 대한 공감이 필요합니다. 함께 마음을 합쳐 생명의 정치, 교육, 문화를 이뤄내야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명·협동·연대의 가치가  쉽게 용인되거나 길러지지 못합니다. 그런 잃어버린 가치를 복원하려면 혁명적인 노력이 필요하겠지요.

 

더더욱 세월호 참사는 사건 자체의 참혹성이 컸고, 이번 사건은 SNS의 발달이라는 인식 방법의 변화로 집단적으로 겪은 동시적 경험이었지요. 세월호 참사로 인해 생겨난 사회적 요구가 있고, 이런 요구에 대답해야만 미래가 열립니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불러일으키는 계기였지요. 자본주의의 문제를 얘기하게 됐고, 시장의 탐욕, 언론지형, 교육 모든 분야에 대해 문제가 제기됐습니다. 그리고 바꿔나간 그 사회적 틀 속에서 다시 권력을 세워야 하는 점이 있지요. 이 모든 문제를 얘기해야 합니다. 그 이론적 배경을 살펴야 합니다.



한: 최근에 서울대, 중앙대, 카톨릭대, 전북대, 그리고 선생님께서 강의를 맡고 계신 성공회대도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이어졌습니다. 대학교수의 시국선언은 현재 상황에서 어떤 의미가 있나요?

더불어 선생님께서 강조하시는 ‘인문정신’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고, 『자유인의 풍경』 서문에 적으신 선생님의 표현을 빌려 인문학이 ‘일상적인 삶과 생생히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 지식사회가 이 사건 앞에서 권력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를 낸 것이지요. 우리 사회가 어디있는지에 대한 좌표 정리, 붙잡아야 될 미래 가치는 무엇인가에 대해 명확하게 발언한 것입니다. ‘그 정도 갖고 되느냐’라는 질문도 있을 수 있지만 이것이 시작입니다.

 

또 교육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란 점이 중요합니다. 그간 한국사회에서 교육의 가치는 생존 수단의 획득 또는 출세를 위한 디딤돌이었는데, 교육은 사실 인간다운 삶, 더불어 사는 삶을 얘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얘기는 사실 오래되었지만, 변치 않는 미래적 가치이기도 합니다.

 

전문지식도 필요하지만 야비한 검사, 비인간적 의사, 탐욕적인 판사는 필요 없습니다. 흉기입니다. 전문적 능력보다, 그 사람의 마음의 방향이 중요합니다. 윤리의식이 기초이지요. 그것을 사회에서 실현하기 위한 직업을 선택해야 하는 겁니다. 그게 맞는 순서입니다. 정의를 위해서 판사가 되고, 사람을 구하고 싶어서 의사가 되어야 하는 겁니다. 교육의 가치가 뒤바뀌어 있던 것입니다.

 

박근혜 정권에 대한 신랄한 비판은 있는데, 이 권력을 용인하는 사회도 엄청난 책임이 있습니다. 그 힘이 더 커지면 그런 정권은 존립 근거를 찾지 못할 것입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알아볼 수 있는 안목과 그것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그래서 책 읽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좋은 책을 읽고, 나누고, 그런 사회적 독서가 확장되는 사회가 되어야지요. 그래야 사회가 바뀝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한: 요즘 인문학 열풍이라고 할 정도로, ‘인문학’을 제목으로 단 책이 쏟아져나오고 곳곳에서 강의도 많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인문정신이 사회에 뿌리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 인문학이 요즘 사회적 관심을 받고 있고 대중적으로도 주목받고 있지요. 인문학적 노력이 기울어졌고, 이는 긍정적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하지만 두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우선, 인문학은 자기성찰적 주체를 만드는 일인데, 요즘은 위로만 받고 마는 형태의 객체가 되어버렸습니다. 한편, 인문학을 심화시켜서 밀고 나가려는 사람은 또 너무 어렵게 만들어서 대중이 접근하기 힘든 지점으로 가버립니다.

 

인문학을 공부해야만 사회에서 발언할 수 있다는 식의 분위기가 형성되면 곤란합니다. 어떤 문제든 아주 쉬워 보인다 하더라도 쉬운 질문이 어렵습니다. ‘뭐가 들려요’라든지 ‘어디에 있어요’라든지. 일상 속에서 정말 깊이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생기면 무엇도 가볍게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깊이 들을 줄 알고, 마음에 들어가는 힘이 생기고, 본질을 바라보게 하고, 하나 안에 들어 있는 깊이를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게 인문학의 핵을 움켜쥐는 일입니다. 사회 속에는 여러 가지 그물망, 얽힘이 있지요. 그 얽힘이 나를 해방시키는지, 얽매는지, 만약 괴롭힌다면 이를 소멸시키기 위해 뭐가 필요한지를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 사이의 그물망은 사회로 확장되지요. 고통의 연대가 확장되면 팔레스타인 문제도 우리 문제가 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그 정도야 못 되지만, 지구촌적 연대까지 가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인류적 차원의 사유를 갖게 돼야 비로소 ‘성숙’해짐을 알게 될 것입니다.

 

‘축의 시대’라고 하지요. 예수와 소크라테스, 자라투스트라 등의 인물들이 모두 그 시대 사람들입니다. 그 당시 사회는 종족주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인간 전체, 인류의 문제를 제기했던 것입니다. 엄청난 일이었지요.



한: 선생님께서는 글도 쓰시지만, 지난 ‘차이니즈나이트’ 행사에서 실력을 발휘하신 것처럼 뛰어난 사회자이시도 합니다. 말하는 일, 글 쓰는 일, 그리고 강의하는 일. 또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시는 일. 선생님께는 각각의 활동이 어떤 매력이 있나요?


김: 가장 중요한 것은 일상이 행복하고, 즐거운 삶이 되길 바란다는 점입니다. 정치적인 얘기를 해도 문화적 언어로 번역이 되고, 문화를 얘기해도 정치적 의미를 생각하고. 이런 전방위적 교류가 중요합니다. 사회의 여러 결들에 대해 함께 생각하는 자리를 만드는 것은 언제나 좋습니다. ‘문화 얘기인가?’ 하고 보면 경제 얘기이고, ‘음악 얘기인가?’ 하고 보면 또 연극 얘기이기도 하고. 이런 것들이 좋습니다.


한: 오늘의 우리 사회가 읽었으면 하는 책이 있다면 세 권만 추천 부탁드립니다. 물론, 선생님 책도 읽어보겠습니다^^!

(속닥속닥-김민웅 선생님의 저서로는 『창세기 이야기』(2010) 『자유인의 풍경』(2007) 등이 있답니다.)


김: 첫 번째는 『돈 키호테』입니다. 그는 바람이 불어도 바람을 맞으면서 달려간 사람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구하려 세상의 조롱을 받아도 아랑곳하지 않은 놀라운 사람입니다. 사랑이 많고, 깊고, 지식이 무엇을 위해서 쓰여야 하는지 아는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멋있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는 『자본론』입니다. 물론 읽기 쉽지는 않지요. 하지만 현재 최대의 화두가 자본과 인간의 문제이지요. 『자본론』에는 그 문제를 풀기 위해 고뇌했던 한 시대의 육성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책을 통해서 우리 사회의 모순을 생각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마지막은 『성서』입니다. 종교 여부를 떠나서, 『성서』에는 한 역사가 엄청난 고통에 시달릴 때 그것을 뚫어내는 육성이 담겨 있습니다. 『성서』는 한 개인이 집필한 것이 아니지요. 집단 지성의 산물입니다. 한 예로 「창세기」를 서양 철학사에서 빼놓고 얘기할 수 없습니다.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책들이 필요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가 『성서』를 어떻게 읽어나가느냐에 따라 정신적 역량은 크게 점프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이 천재가 많은 이유에요. 깊이 읽고, 깊이 사유하기 때문입니다. 레비나스 같은 사람은 ‘타자의 얼굴’로 우리나라엔 많이 알려져 있는데, 본령은 성서해석학입니다. 깊이 읽는 것이지요. 그런 면모는 잘 소개되어 있지 않습니다. 즉 『성서』를 깊이 읽는 것은 ‘성찰의 훈련’을 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한: 선생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우리 사회의 인문정신을 고양하는 뛰어난 활약 기대할게요. 한길사도 더욱 열심히 뛰겠습니다!

 

 

 


 

아, 하루가 지났건만 선생님의 매력이 얼마나 큰지, 아직도 선생님의 음성과 표정이 아른아른 합니다. 올 여름 출간 예정인 선생님의 새 책,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리게 될 것 같습니다. 기쁨인지, 고통인지...^^;


- 편집자 映




김민웅

김민웅은 1956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1961년 고국으로 돌아왔다. 20여 년 동안 미국에서 목회자, 언론인, 국제문제 전문가로 활동했으며, 미국의 대외정책과 한미 간 미래지향적 관계에 대해 연구했다. 2004년 귀국해 EBS 국제시사방송을 진행했고, 현재 성공회대학에서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역사적 변화과정을 분석하는 ’세계체제론’을 가르치고 있으며,「프레시안」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자유인의 풍경』『창세기 이야기』『밀실의 제국』『보이지 않는 식민지』『사랑이여 바람을 가르고』『패권시대의 논리』『콜럼버스의 달걀에 대한 문명사적 반론』『물 위에 던진 떡』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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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김민웅 교수가 말하는 출판인 김언호

그리고 그의 책, <한 권의 책을 위하여>



- 무슨 책을 내는가?

"내가 간절히 읽고 싶은 책들이다."


출판 시장에서 잘 팔리는 책이 아니라, 그가 읽고 싶은 책이 출판의 기준이다. 그래야 제대로 된 책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그"는 누구인가? 이 시대가 갈망하는 인문 정신을 제1의 원칙으로 삼는다는 출판 장인 김언호다. 그와의 인연도 이제 20년을 넘어 30년의 시간을 향해가고 있는데 막상 그의 책 <한 권의 책을 위하여>(김언호 지음, 2012, 한길사)를 읽고는 내가 미처 몰랐던 그와 대면하면서 새삼 많이 놀라고 있다. 한 사회가 철학이 있는 출판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영예롭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 <한 권의 책을 위하여>




"책을 만드는 일은 참으로 경이로운 학교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 권의 책이야말로 탁월한 미학이라는 확신도 갖게 됩니다. 한 권의 책은 하나의 박물관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 권의 책은 인문학이고 예술학입니다."


월리엄 모리스의 인문주의와 미학적 열정에 매혹된 김언호는 "아름다운 책 한권"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책은 그저 책이 아니라 그 책의 외모와 내면에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정신의 뜨거움과 정밀한 손길이 존재해야 한다는 신념이다. 고품격의 정신은 미학의 정수로 표현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책의 가치에 대한 그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철학이 있는 출판 그리고 시대정신


1997년, 출판 일기라고 할 수 있는 <책의 탄생> 그리고 한국의 지성사를 보여주는 <책의 공화국>(2009년)에 이어 나온 <한 권의 책을 위하여>는 무엇보다도 그의 출판에 대한 자세와 정신을 또렷하게 보여주는 글이다. 19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국가 권력의 폭력과 지식인들에 대한 탄압을 겪은 그는 시대정신과 책의 관계를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줄여서 "해전사"로 불렸던 <해방 전후사의 인식>(한길사 펴냄)이 당대의 독서 열풍을 일으킨 힘에 대해 그는 이렇게 증언한다.


"해전사를 그렇게까지 열독하게 된 것은 그 책과 함께 살아가는 독자들이 그런 책을 이미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 두 독자의 요구가 아니라 한 시대의 집단적 요구였습니다. 책과 독자들이 공유하는 시대정신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체험은 그에게 저자, 독자 그리고 편집자의 관계를 구축해나가는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이게 한다. 그와 같은 작업을 위해 그는 무엇보다도 출판인들이 서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 강조한다. 그것은 "변방주의의 정신"이다.


"저는 변방주의를 생각합니다. 변방의 정신과 사상을 말하고 싶습니다. 출판인이라면 물질과 권력의 중심이 아니라 그 변방에서, 아웃사이더로서, 사회와 국가와 민족 공동체와 세계의 살림살이와 사상과 이론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자세를 견지함으로써 창조적인 지성과 논리적인 이성을 창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변방주의의 미덕


이런 생각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의 출판은 주류의 힘을 과시하는 시장주의에 물들지 않는다. 사상과 철학, 인문과 사회과학의 최고 저작들을 출간하는 '한길 그레이트북스'와 같은 엄청난 기획이 120권에 달하고 있는 것은 그가 출판을 대하는 진지성의 결과다. 인류의 위대한 문화유산이라는 점에서만이 아니라 그런 기획을 통해 우리 사회의 지식 구도를 보다 깊이 있게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상찬(賞讚)의 가치를 갖는다.






뿐만 아니라 그의 독서 공동체의 지평은 "동아시아 독서 대학"이라는 구상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것은 동아시아 자신에 의한 동아시아의 재발견이라는 차원을 넘어서서 동아시아적 문제의식을 공유함으로써 새로운 역사적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작업의 의미를 갖는다. "책으로 서로의 경계를 허물고", 함께 만들어가는 동아시아의 미래를 꿈꾸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김언호가 헤이리 예술 마을에 대한 비전을 펼쳐 보일 때나, 파주 출판 도시의 미래를 기획해나갈 때나 우리는 "책을 중심에 놓고" 세상을 변모시키려는 한 출판인의 웅대한 의지를 느끼게 된다. 그래서 그의 발걸음은 언제나 세계 도처의 아름답고 유서 깊은 책방들과 도서관을 향해 있으며, "보다 진지한 출판을 위한 고민"을 토로한다.





진지한 책들을 위해


일본의 이와나미쇼텐 전 사장 고(故) 야스에 료스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두 사람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점차 상업성이 강한 대중적 출판에 보다 깊이 있는 책들이 밀려나는 세태에 탄식하고 돌파구를 찾고자 한다. 야스에는 이렇게 말한다.


"일본 출판은 지금 큰 난관에 봉착하고 있습니다. 대중적인 출판이 홍수를 이루고, 그것에 정통적이고 고급한 출판이 밀리고 있습니다. 결국 한 나라의 출판 문화는 도서관 문화라고 할 수 있는데, 역시 질적으로 향상된 출반을 안정되게 유지, 향상 시키는 길은 도서관이 많이 생겨서 좋은 양서를 구입해주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이어 그는 도서관이 대출률 높은 서적만 구비하는 것이 도서관의 올바른 역할이 아니라고 못박고, 뉴욕에서의 경험을 털어놓는다.


"소수의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책들도 대단히 중요하니까요. 몇 년 전에 뉴욕의 한 도서관에 갔었습니다. 부관장의 안내를 받았는데, 일본 서적들도 많이 구입되어 진열되어 있었는데 부관장에게 제가 물었지요, 이런 책까지 사두십니까? 그랬더니 그 부관장이 웃으면서 하시는 말씀이, 도서관의 제일 큰 즐거움은 3년에 한 번 정도 대출되는 책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김언호의 출판 철학도 이런 견해와 일치한다.


"대중적인 출판이란 시장 기능에 의해 자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지만, 이제 한 명의 독자를 위해서라도 그 어떤 책은 출간될 수 있어야 한다. 한 명의 탁월한 독자가 때로는 한 국가, 한 사회를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문명 시대, 지식 정보 시대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좋은 도서관. 좋은 출판


다소 길지만 그 다음의 생각도 인용하고 싶다.


"한 국가, 사회가 누리는 출판문화의 수준이란 한 권의 책을 살인적인 부수로 발행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책 저런 책들이 다양하게 출판되는 발행 종수로 말할 수 있다. 한 권의 책을 수십만 권씩 찍어 돈을 벌지 않고 수십 종 수백 종의 책을 기획 출판해 돈을 버는 행위를 나는 진정한 출판이라고 말하고 싶다.






제대로 된 규모와 장서를 갖춘 도서관들이 사회, 문화 인프라로 존재하고 인용된다면, 출판인들이 눈이 충혈이 되도록 장사되는 책을 쫓아다니지 않고 깊이 생각하여 이런저런 종류의 책들을 진지하게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전문 사서들이 사명감을 갖고 운영하는 공공 도서관 없이 출판다운 출판은 어불성설이다. 공공 도서관이란 형식과 사치가 아니라 우리 국가 사회를 대내외적으로 제대로 살아가게 하는 기본 전제다."




시대를 기획하다


이 책은 그래서 한길사라는 어느 특정 출판사의 기록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지나온 현대 지성사의 고투와 희망이 거쳐 온 길에 대한 증언이며, 앞으로 가야할 길에 대한 공론의 출발점이다. 이는 거대 마케팅이나 브랜드로 좌우되는 출판이 아니라, 책 하나 하나의 내면에 담긴 진실성과 시대적 가치를 주목하는 독서 공동체 만들기이며, 우리 사회의 생각과 판단을 풍부하고 심오하게 길러가는 정신적 인프라의 구축에 대한 비전 제시다.


그래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출판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자신의 지식과 성찰의 토대를 기획하고 연출하는 가장 위대한 시대정신의 능력이라고. 그렇게 해서 태어나는 한 권의 책은 그야말로 한 시대를 난데없이 가격하면서 새로운 역사를 움트게 할 수 있다고.


"이 한 권의 책을 말한다"고 할 수 있는 책을 가진 사회는 행복할 것이다. 그 책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가슴이 뛰고, 우리의 지성이 격동하며 우리의 시야가 확 트이는 그런 감격을 맛보고 싶다.


시장이 만들어주는 베스트셀러 목록이 아니라, 우리가 간절히 읽고 싶은 책 한 권의 탄생을 꿈꾸며.

 



글 / 김민웅 성공회대학교 교수

 

*이 글은 프레시안에 실린 김민웅의 '리브로스 비바'-김언호의 <한 권의 책을 위하여>를 재구성 했습니다.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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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2012.10.11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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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명 신청합니다. 출판산업에 관심이 많은 학생입니다.


참석하신 분들께는 고급 양장노트를 드립니다.

독자여러분의 많은 참여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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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2012.08.2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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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ㅇㅇ 010-00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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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하신 분들께는 행사 전에 연락드리겠습니다. 정성껏 마련한 행사에 많은 관심과 참석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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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 / 한길아트2012.08.16 10:10


격정적인 미라보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전, 루이 16세는 재정 궁핍으로 왕정 파산 상태가 경고되자 오랫동안 열지 않았던 삼부회의 소집에 나선다.


이 시기, 오노레 미라보는 단연 정세를 끌고 가는 괴물에 가까운 주역이었다. 귀족 출신인 그가 평민 자격의 의원 후보로 나서서 선출되었을 때 삼부회의의 미래는 파란이 예상되지 않을 수 없었다. 미라보의 격정적 연설과 정치력은 귀족, 성직자 그리고 제3신분으로 불린 부르주아 또는 평민들 사이의 계급적 긴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내다보였기 때문이었다. 루이 16세도 물론 안심하고 있을 처지는 아니었다.


이러한 미라보를 유심히 주목하면서 정치를 배워나간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훗날 프랑스 혁명의 반동을 자초한 로베스피에르였다. 젊고, 뛰어난 학식과 능력을 가진 그는 조만간 프랑스 혁명의 스타가 될 과정을 밟고 있었고, 혁명 정신에 충실한 정치는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로베스피에르는 미라보가 역설했던 왕정의 개혁보다는 단호한 결별이 답이라는 생각을 속으로 굳혀가고 있었다. 그 결별이 어떤 희생을 치르게 되건 말이다. 프랑스 혁명의 유혈사를 써내려간 길로틴은 그의 마음에 이미 세워져 있었던 셈이다.



루이 16세, 로베스피에르 그리고 제3신분


프랑스 혁명 전야, 지식인을 비롯한 대중의 인기를 모은 루소의 사회 계약론과 평등 사상은 왕과 귀족, 성직자들이 지배하는 기존 질서에 일정한 균열을 내고 있었다. 파리 민중들도 자신들의 빈곤과 억압된 처지를 분노하고 있었다. 구체제인 '앙시앙 레짐(ancien regime)'은 가쁘게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루이 16세는 베르사유 궁전에서 자신의 금고가 비어가는 것에만 신경을 썼고, 숲에서 사냥하는 일에 몰두했다. 재무장관 자크 네케르는 귀족과 성직자에게도 재정 부담을 맡도록 해야 하는 어려운 정치적 과제를 안게 되고, 이를 위해서 제3신분의 협력을 얻는 줄타기를 시작한다.


프랑스는 1776년 미국 독립 전쟁의 막대한 지원을 계기로 국가 재정이 고갈되었고, 국제적으로는 영국과의 불화로 인해 운신의 폭이 좁았다. 루이 16세는 절대 왕조 체제를 이룬 루이 14세와는 달리, 자기를 괴롭히는 자들이 없으면 그저 좋은 성품의 군주로 인생을 끝냈을 별반 야망이 없는 왕이었다.


그러나 성서와 토지를 기반으로 프랑스 사회를 지배하는 성직자 계급과 귀족들 그리고 신흥 부르주아 계급과 정치적 합의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가난한 왕"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에 새로운 정치적 구도를 만들어가고자 한다. 봉건 체제에 기초를 둔 절대 왕정 체제의 개혁을 시도하려 한 것이다.


삼부회의는 그러한 구상의 소산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 삼부회의가 지금까지 정치적 발언권이 별반 없었던 제3신분에게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할 기회를 주었고, 성직자, 귀족들은 이 때문에 자신들의 기득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점으로 인해 반격의 음모를 꾸미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바야흐로 프랑스 정치는 파란만장의 드라마로 진입하게 되었다. 절대 왕정이 자신을 구하기 위해 벌였던 일이 그 자신을 무덤에 파묻는 역설적 현실로 귀결되어 갔던 것이다. "혁명의 판도라 상자"는 그렇게 열렸다.



역사 소설, 정치 소설


사토 겐이치의 <소설 프랑스 혁명>(김석희 옮김, 한길사 펴냄)은 이러한 역사를 소설적 상상력과 역사적 사실을 서로 결합시켜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미라보, 로베스피에르 그리고 혁명군을 장악하고 있던 라파예트, 네케르 등의 인물들을 프랑스 혁명의 무대 위에 올려놓고 그 역사를 어렵지 않게 이해하도록 한다.


삼부회의가 소집되었을 때 각 계급의 정치적 영향력을 정리해낼 투표의 방식까지 정밀하게 소개한 그의 소설은 역사의 정치 소설화라는 측면에서도 매우 흥미롭다. 애초에 재정 위기 타파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던 삼부회의였기에 돈만 빼면 되었지 제3신분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원하지 않았던 지배 계급의 배신이 시작되면서 루이 16세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가졌던 파리 민중들은 서서히 들고 일어난다.


바스티유 감옥이 깨져나가는 것은 감옥에 갇힌 죄수들을 석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곳에 주둔하고 있던 군대의 무기를 탈취해 시민군 무장을 하기 위함이었다. 사토는 그런 장면도 생생하게 그려내면서 역사가 어떤 정밀한 계획이나 시나리오가 아니라, 순간의 우연과 판단의 차이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막대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솜씨는 무엇보다도 방대한 프랑스 혁명사에 대한 섭렵과, 그의 문학적 재능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인, 또는 아시아인이 유럽의 역사를 문학화하는 작업에 도전한다는 열정과 의지가 작동했다고 여겨진다.



일본인이 쓰는 유럽 혁명사 소설이란?


국내 출간 기념 대담의 자리에서 그는, 프랑스 혁명이 2단 로켓처럼 제1국면과 제2국면이라는 상이한 과정을 거쳤다면서 결국 현실에서 실패한 혁명이 되어버린 이 역사를 오늘에 반추하면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지 자신도 계속 탐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제1국면은 삼부회의로 인한 절대 왕정 체제의 타협 국면, 제2국면은 그 타협이 더는 변화하는 현실을 해결하지 못하면서 새로운 폭발력을 가진 쪽으로 질주한 상황을 말한다. 사토는 이런 프랑스 혁명사의 전개 과정에 대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사실 우리로서도 궁금했던 것이, 메이지 유신과 관련된 역사와 소설이 지배하는 일본 사회에서 유럽 혁명사를 가지고 소설을 쓴다는 일이 우선 가당키나 한가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작업에 시동을 건 사토의 모습은 문학이 이런 차원에서 "다른 형태의 세계어"가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즉, 유럽의 역사도 인류의 역사 속에서 공유되는 순간, 그 역사를 바라보고 생각하는 자의 언어, 역사, 세계, 자산이 된다는 뜻이다.



<소설 프랑스 혁명>의 작가 사토 겐이치. ⓒ프레시안(최형락)



전체 12권으로 구상하는 사토의 작품은 이제 국내 번역본으로 4권까지 나왔다. 원래 권투를 했다는 특이한 경력을 가진 작가라 그런지 소설 전개가 흡인력 있고 속도가 빠른 까닭도 다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소설의 전반부는 프랑스 혁명을 주도해 나간 주요 인물들이 그려져 있는데, 이와 함께 우리는 베르사유와 파리의 대립, 보통의 인민들, 특히 여성들의 역할이 조명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것은 프랑스 혁명의 정작의 주인공들이 누구인지 밝혀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사실, 삼부회의에서 귀족과 성직자 계급의 결탁으로 제3신분의 정치적 위상이 흔들리는 위기에서 이들을 구한 것은 인민들의 봉기였다.


앞으로 계속 나올 후속편을 봐야 판단할 수 있겠지만, 혁명 초기 부르주아의 이해와 인민들의 이해가 점차 충돌해나갈 때 어떤 방식의 드라마 전개와 서술이 있게 될 것인지 주목된다. 부르주아의 정치적 이해관계는 보통의 인민들이 줄기차게 요구한 경제적 요구와 언젠가는 모순의 상태에 돌입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프랑스 혁명의 역사는 이후 1848년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 전반에 걸친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대치 전선이 펼쳐지는 뿌리가 된다.


사토의 <소설 프랑스 혁명>은 프랑스 혁명사의 세계적 권위인 조르주 르페브르의 <프랑스 혁명사 연구>나, 아나키스트인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의 <프랑스 대혁명사>가 번역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에게 친절한 안내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의 작품이 역사적 사실에 명확히 근거를 두고 전개되고 있다는 것은 르페브르의 책을 읽어보면 확인된다.


르페브르는 유럽 전체의 역사와 프랑스 혁명의 관련을 설명하면서도, 프랑스 혁명의 내적 전개 과정을 세밀하게 분석한다. 크로포트킨의 경우에는, 부르주아의 정치적 이해와 프롤레타리아 또는 인민의 경제적 목표가 서로 상치하면서 프랑스 혁명이 어떤 진화 과정을 거치게 되는지를 일깨워주고 있다.


오늘날 진보의 가치와 실천의 문제가 일상의 수준에서 정리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프랑스 혁명에 대해 읽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게 될까?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1848년의 프랑스 혁명이 1968년 유럽의 신좌파 혁명으로 그 역사적 평가를 완료했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결국 자유주의 부르주아 체제가 더는 미래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상황은 프랑스 혁명 이후 세계적 부르주와 체제의 균열이다. 바로 그런 상황에서, 혁명에 헌신하고, 혁명을 배반하고 혁명을 망각해 버린 그 우여곡절의 과정에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어떤 것일까? 역사는 도대체 어떤 과정과 단계를 거치면서 진화하게 되는 것일까?


<소설 프랑스 혁명>은 그런 와중에 '인간'을 놓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도록 해준다. 결국, 역사는 인간이 만들어 가는 것이므로.



"아시아의 시대를 대비하려면 유럽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지난 7월 9일 경기도 파주 헤이리에 위치한 북 카페 '포레스타'에서 김민웅 성공회대학교 교수가 <소설 프랑스 혁명>의 작가 사토 겐이치를 만났다. '프레시안 books'는 두 사람이 나눈 대화의 주요 내용을 싣는다. 한 시간에 걸쳐 진행된 이날 대담의 통역은 일본 문학 번역가 김난주 씨가 맡았다.



ⓒ프레시안(최형락)



김민웅 프랑스 혁명은 근대화 과정의 매우 중요한 시발점이지만, 한국에선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연구가 이뤄지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사토 겐이치 씨의 <소설 프랑스 혁명>이 가지는 의미는 큽니다. 이 장대한 <소설 프랑스 혁명>의 작가 사토 씨가 이번에 한국 독자와의 만남을 위해 방문하셨는데,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사토 겐이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프랑스 혁명사를 소설로 쓰고 있습니다. 아시아인이 유럽 혁명에 대해 쓴다면 프랑스 혁명에 대해 써야만 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김민웅 일본 사람이 일본이 아닌 지역의 역사에 대해 쓰는 경우가 많습니까? 한국 같은 경우는 주로 한국 역사에 대해 저술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사토 겐이치 일본에서도 유럽 역사를 소설화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김민웅 그렇다면 <소설 프랑스 혁명>을 쓰기까지 많은 용기와 노력이 필요했을 텐데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습니까?


사토 겐이치 일본에서도 유럽 역사를 다룬 소설이 없었던 건 아닌데, 지속적으로 계속 해나간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제가 중학생 시절까진 영화 하면 유럽 영화나 미국 영화가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소설에서는 유럽이나 미국을 다루면 별 반응이 없던 게 이상했습니다. 그게 프랑스 혁명을 소설로 쓴 한 이유입니다. 두 번째 이유로는 저희 세대에 이르러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를 둘러싼 환경이 많이 달라진 걸 꼽을 수 있겠습니다.


김민웅 아시아 사람으로서 유럽 역사를 쓰는 것도 흥미롭지만, 왜 하필 프랑스 혁명이었을까요. 프랑스 혁명은 공화정을 탄생시켰는데, 사실 일본은 영국처럼 입헌 군주제에 가까운 천황제를 유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차이가 궁금합니다.


사토 겐이치 어려운 질문입니다. (웃음) 프랑스뿐 아니라 그 옆 나라인 영국이나 독일에 대해서도 같이 알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에도 천황제가 남아있기 때문에, 영국의 비슷한 입헌 군주제에는 큰 흥미가 가질 않았습니다. 영국에 대해 써야 할 의미를 별로 찾지 못했어요.


김민웅 프랑스 혁명을 소설로 쓰기 위해서 어떤 작업이 필요했나요?


사토 겐이치 일단 자료가 될 책을 모았습니다. 주인공과 대략적인 줄거리를 정한 상태에서 취재차 프랑스에 다녀왔고요. 지금도 계속 <소설 프랑스 혁명>을 연재 형식으로 쓰고 있습니다. 아시아 사람들은 유럽을 공부할 때, 유럽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 남자는 핸섬하고 프랑스 여자는 미인이라 생각하죠. 돈도 훨씬 많은 것 같고요. (웃음)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프랑스 혁명이 일어날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요. 프랑스든 미국에든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살고 있다는 사고가 기본적으로 있지 않으면, 소설을 쓸 수 없습니다. 그런 사고가 불가능하다면, 몸으로 쓴 소설이 아니라 머리에서 꾸며낸 소설밖에 태어날 수 없겠지요.


김민웅 사실 이 소설의 장르는 팩트와 픽션이 결합된 '팩션'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팩션을 구성해나갈 때 사토 씨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무엇이었을까요.


사토 겐이치 역사 소설을 쓸 때 물론 팩트는 중요하지만, 팩트 안에 혹은 팩트 이면에 있는 것, 다시 말하자면 진실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것을 역사 속에서 끄집어내려면 논픽션보다는 픽션이 좀더 쉬운 선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김민웅 일본에는 메이지유신이라는 정치적 사건이 있지요. 지금까지 메이지유신을 둘러싸고 굉장히 많은 소설과 드라마가 나왔습니다. 일본 작가에게 메이지유신이 국민적 상식이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 사토 씨께서는 메이지유신의 관점으로 프랑스 혁명을 바라보진 않았을까 궁금합니다.


사토 겐이치 네, 그렇죠. 메이지유신은 프랑스 혁명과 상통하는 면이 많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선 혁명까진 이르지 못했죠. 개혁이 왕정으로 가느냐, 공화정으로 가느냐에서 많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김민웅 프랑스 혁명을 이해하려면 베르사유와 파리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베르사유는 왕정 체제, 앙시앙 레짐의 근거지였고 파리는 민중 혁명의 중심지였죠. 나라의 중심이 베르사유에서 파리로 옮겨간 것이 프랑스 혁명의 매우 중요한 발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때 프랑스는 미국 독립 혁명을 돕다가 재정이 파탄에 이르렀고, 루이 16세는 재정 악화를 메우기 위해 세금을 또다시 부가해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프랑스의 재무장관이었던 자크 네케르라는 인물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지죠.


사토 겐이치 루이 16세는 안주하는 왕이 아니라 여러 가지를 개혁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왕이었습니다. 나쁜 사람은 아니었죠. (웃음) 그러나 개혁을 하고 싶어도 그런 정책을 맡길 사람이 없었습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어중간한 개혁가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한편, 네케르는 스위스의 은행가였는데, 수완가이고 비즈니스맨이었습니다. 루이 16세가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발탁했던 사람입니다.


김민웅 소설 속에서 루이 16세는 재미있는 특징을 가진 왕으로 묘사됩니다. 사실 베르사유 궁전은 그의 할아버지였던 루이 14세의 지휘 아래 지어졌는데요. 하지만 루이 16세는 할아버지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루이 16세의 스타일이 어떤지 잠깐 들려주시지요. 그걸 이해해야 네케르와의 관계도 더 잘 이해가 갈 것 같습니다.


사토 겐이치 루이 16세는 기본적으로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웃음) 성실했고요. 루이 14세는 돈을 엄청나게 썼고 애인을 엄청 많이 만들었고 자식들도 많이 보았죠. 베르사유 궁전에서도 사치스런 낭비를 계속했기 때문에 결국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봉착했습니다. 아들이었던 루이 15세는 아버지의 그런 면을 무척 싫어했다고 하고요.


루이 16세 역시 할아버지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마음을 이어받았습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우유부단했고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그게 그의 비극이었고, 혁명의 열기는 걷잡을 수 없게 됐죠.


김민웅 네케르가 삼부회를 소집할 때, 회의를 구성하는 귀족과 성직자와 평민 간의 세력 다툼이 심각한 문제가 되지요. 이때 미라보의 역할이 부각됩니다. 사토 씨께선 특히 미라보의 역할을 부각시키셨는데, 미라보의 어떤 점이 그렇게 매력적이었을까요?


사토 겐이치 루이 16세는 왕으로서 성실함을 갖췄고, 네케르에게는 비즈니스맨으로서의 수완이 있었죠. 대신 뛰어난 정치가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미라보가 등장해 정치력을 발휘하게 된 것입니다.


김민웅 미라보의 정치력을 좀 더 설명해 주신다면….


사토 겐이치 미라보는 젊은 시절부터 방탕했습니다. 아버지조차 그를 두고 내 자식이 아니라고 했을 정도죠. (웃음) 감옥살이를 했고, 한때는 유부녀와 염문을 일으키는 바람에 그 남편의 총에 맞을 뻔하기도 했습니다. 상당히 파렴치한 인생을 보낸 사람이었습니다. 프랑스 귀족의 부끄러움이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혁명이 벌어지니까 미라보의 풍부한 인생 경험이 사람들을 움직이는 힘이 되었습니다. 그가 아니면 초기 프랑스 혁명이 이뤄지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미라보 자신은 귀족이었지만, 혁명의 힘을 귀족에게 의존하지 않고 평민에게서 찾음으로써 혁명을 진행시켰습니다.


김민웅 <소설 프랑스 혁명> 4권까지에서 가장 중요한 주인공은 미라보이지요. 그 외에 로베스피에르와 라파예트가 등장하면서 프랑스 역사가 바뀌게 됩니다. 특히 귀족 출신 라파예트는 미라보와 미묘한 경쟁 관계를 형성합니다. 그는 미국 독립 혁명과 프랑스 독립 혁명에서 각각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특별한 인물이죠.


사토 겐이치 라파예트는 조지 워싱턴의 친구였고 미국 독립 전쟁에 참전한 사람입니다. 신대륙인 미국의 장점, 즉 훌륭한 퍼포먼스를 겸비하였기 때문에 프랑스 혁명을 리드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권 선언 역시 라파예트가 제안한 것이었죠.



ⓒ프레시안(최형락)



김민웅 이제 로베스피에르가 등장할 차례입니다. 처음엔 미라보와 함께 혁명을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정치적 입장이 달라지지요.


사토 겐이치 로베스피에르는 성실한 노력가이자 세상을 좋게 만들어나가려는 이상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4권에서 그려지다시피, 혁명 초기 단계에는 아무런 힘이 없었습니다. 세상의 부정에 대해 분노하고 있었지만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하고 해결해야 하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고요. 그런 상태의 로베스피에르가 노련한 정치가인 미라보에게서 정치력을 배워가는 과정을 4권에 담았습니다.


김민웅 1789년에서 1791년까지가 프랑스 혁명의 1단계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이때는 입헌 군주제를 유지하는 쪽으로 혁명이 진행되었죠. 이 부분에서 미라보와 로베스피에르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미라보에게는 개혁 정치와 더불어 왕정을 유지하는 게 프랑스를 안전하게 유지하는 길이었고, 로베스피에르는 끝까지 밀어붙이고 싶어 했죠.


사토 겐이치 미라보는 루이 16세를 이용하여 효과적인 정치 개혁을 꾀했지만, 루이 16세보다도 먼저 죽는 바람에 꿈을 이루질 못했습니다.


김민웅 왕이 어느 쪽에 서느냐에 따라 혁명의 진로가 달라지는 시기였지요. 미라보는 루이 16세를 이용하며 삼부회에서 평민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도록 하길 원했습니다. 하지만 로베스피에르는 루이 16세를 믿지 못했어요. 중간 중간 루이 16세가 음모를 꾸미거나 귀족과 손을 잡으려는 시도를 들켰거든요. 그래서 로베스피에르는 왕과 귀족에 대한 불신이 쌓여갔고, 결국 반혁명 세력을 철저히 차단하려는 단호한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조금 다른 얘기로 넘어가자면, 프랑스 혁명에서 여성들의 역할도 아주 흥미로워요.


사토 겐이치 앙시앙 레짐은 여성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로 대표된 궁정의 모습을 보세요. 지금으로 말하자면 쇼핑 중독의 시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웃음) 그런 의미에선 여성들이 딱히 손해 보는 입장은 아니었지만, 사실상 그녀들의 행복은 '주어진' 행복이었습니다. 요컨대 마리 앙투아네트는 루이 16세가 남편이기 때문에 그 정도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입장에 그쳤다는 거죠.


1789년 10월 파리의 평민 여성들이 베르사유 궁전까지 행진합니다. 빵을 달라고 외치면서, 왕과 직접 얘기하겠다고 주장하죠. 그러면서 대체 왜 왕이 베르사유에 있는가, 국민들의 고생을 알아야 한다면서 파리로 데리고 옵니다.


김민웅 여성들이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와 귀족들을 데리고 파리로 돌아오는 광경을 보면, 루이 16세는 사실상 여성들의 인질입니다. (웃음)


사토 겐이치 여성들이 부르길, 왕을 왕이라 하지 않고 빵가게 주인이라고 부릅니다. (웃음) 자기들의 식량 문제를 해결할 사람이라는 거지요.


김민웅 마지막으로 한국 독자들이 <소설 프랑스 혁명>을 어떻게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나요?


사토 겐이치 우선 소설로서, 얘기로서 즐길 수 있길 바랍니다. 두 번째로는 지금 자기가 놓여 있는 국제 관계와 사회 환경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아시아인으로서 유럽의 역사를 다루는 소설을 쓰고 있는데, 저는 앞으로 아시아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시아의 시대를 만들어가기 위해 유럽의 역사를 디딤돌로 삼고 싶습니다. 저의 그런 소망에 한국인 독자들도 참여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리=김용언 기자)



이 글은 프레시안에 실린 <김민웅의 '리브로스 비바'> 기사 내용을 허락 하에 게재한 것임을 밝힙니다.

기사 원문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20803163016&section=05



『소설 프랑스혁명』 사토 겐이치 지음│김석희 옮김


제1권 혁명의 영웅

제2권 바스티유 함락

제3권 성자들의 전쟁

제4권 길 잃은 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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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공지사항2011.09.29 16:22


한길사가 주최하는 『로마인 이야기』에 대한 독후감 공모는 우리 사회에서 하나의 거대한 문명사와 그 체계가 갖는 의미를 짚어보는 중요한 작업이다. 그간 여러 차례 독후감 행사를 해오면서 『로마인 이야기』가 우리 사회에 어떻게 투영되어왔고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문명의 미래에 어떤 발상과 관점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새로운 개념들이 제시되기도 했다. 이번 독후감 행사 역시 그런 점에서 문명의 역사와 대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사회는 물론이고 오늘날 지구촌이 고민하고 풀어가야 할 숙제와 관련한 성찰이 압축적으로 정리되었다는 점에서 반갑고 주목되는 일이었다. 가작 10명 입선 10명 1차 심사를 거쳐 결선에 올라온 글 가운데 대상 1명, 최우수상 1명, 우수상 2명이 당선되었다.

1. 대상
   최은지, 「로마, 당신의 드라마」

최은지는 로마의 역사를 타자화시키지 않고 우리 자신의 이야기, 우리 역사의 한 틀로 읽어나가는 관점을 제시한다. 이는 로마 역사가 서구의 역사에서 원줄기처럼 작동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이, 인류 역사의 한 몸이라는 관점에서 인간의 드라마, 우리의 드라마라는 점을 주시한 것이라 하겠다. 오늘날 세계적 맥락이 보다 밀접해져가는 현실에서 이러한 관점이 주는 시사점은 적지 않을 것이다. 문체도 유려하고 『로마인 이야기』 전반에 걸친 이해와 특히 『로마인 이야기』에서 언제나 논의되는 개방성을 비롯한 여러 특징을 잘 요약하고 자신의 성찰을 문학적 글쓰기의 힘으로 담아냈다는 점이 높게 평가되었다.

2. 최우수상
    김상훈,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을 통해 바라본 양극화 문제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구조 변화의 필요성」

김상훈은 로마의 역사에서 국가와 경제의 주도권이 소수에게 집중되려는 시기, 그것을 온몸으로 저항하고 혁명적 개혁에 나섰던 그라쿠스 형제에 대해 주목하고 이를 오늘의 현실과 관련시켜 잘 정리해놓았다.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은 로마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들의 개혁은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 어쩌면 반복적으로 제기되었던 주제이기는 하나 여전히 그 비중을 관과할 수 없으며,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날카롭게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최우수 평점을 받게 되었다.

3. 우수상
   정지혜, 「로마는 하루아침에 멸망하지 않았다」
   최문석, 「인간을 이해했던 소통의 드라마」

정지혜는 “로마는 하루아침에 건설되지 않았다”라는 상식을 뒤집어 그 멸망의 과정에 대한 진지한 접근으로 심사자들의 주목을 끌었다. 그에 더해 로마사를 읽는 여러 주요한 관점과 자신의 생각을 놓고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글의 정밀도를 높여주었다. 로마의 역사를 읽는 방식에 이러한 지적 성취를 결합시키려고 노력한 점은 매우 돋보였다.

최문석은 『로마인 이야기』를 인간의 소통이라는 관점으로 다가섬으로써 상당히 독창적인 발상을 했다. 소통의 문제는 오늘날 어디서나 요구되는 과제이면서 이것이 하나의 국가체계, 문명의 시스템 속에서는 어떻게 해결되어야 할 것인가도 중요한데 이 문제와 로마의 역사를 관련시켰다는 점은 지속적인 주제로 다루어질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외에도 올라온 좋은 글들을 시상 대상에서 누락시키는 것은 심사자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번에 당선되지 못한 글들도 당선작 못지않게 소중한 작품이었다는 점을 여기서 강조하는 바이다. 좀더 연마하면 다음 기회에도 얼마든지 시상의 기쁨이 주어질 것이라고 여긴다.

『로마인 이야기』 독후감을 통해 우리는, 우리 사회가 앞으로 고민하고 인류가 또한 함께 진보시켜나가야 할 과제를 보게 된다. 그러한 점에서 로마는 인류 문명의 거대한 저수지이자 발원지이면서 여전히 살아 있는 오늘의 역사라는 점을 새삼 절감하게 되는 바이다.

시상자 모두에게 축하인사를 전하며, 이런 계기를 통해 인류 역사와 문명의 족적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보다 깊어지고 활력 있는 소통과 논의가 보다 풍부해지기를 기대해본다.

ㆍ심사위원:
김석희(번역가), 김민웅(성공회대 교수), 박인규(프레시안 대표)

ㆍ수상자(가나다 순)
    대상(1명): 최은지
    최우수상(1명): 김상훈
    우수상(2명): 정지혜 최문석
    가작(10명): 김남혁 김영준 김정규 박종우 서화자 이창준 장인수 정순영 최영수 표광민
    입선(10명): 구명재 김봉환 김종완 김현순 배병욱 오현주 유상근 유일한 임승택 황인석

ㆍ시상식
    일시: 2011년 10월 3일(월) 오후 3시
    장소: 한길사 사옥 1층 책방한길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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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공지사항2011.09.09 15:08

 

파주북소리 행사기간 동안 한길사에서 인문학 강연 및 전시를 개최합니다.
유익하고 다양한 행사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강연회에 참석하신 분께 한길사 책을 선물로 드립니다.

비밀댓글로 신청해주세요. 참여 희망 행사명/참여인원/연락처를 꼭 남겨주세요.
예) 한나아렌트/2명/010-1234-5678


 

 



▶오시는길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문발리 520-11 (주)도서출판 한길사   Tel 031-955-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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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공지사항2011.07.22 10:16


 


17년 스테디셀러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전15권, 901쇄 돌파!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는 한국에 번역 소개되어 우리 독서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대표적인 책입니다. 일본에서는 1992년 제1권이 나오고, 매년 한 권씩 집필하겠다는 작가의 다짐에 따라 2006년 마지막 제15권이 출간되었습니다. 한 권씩 출간될 때마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며, 2007년 2월 제15권(『로마 세계의 종언』) 출간으로 완간되었습니다.
2011년 7월 현재, ‘로마인 이야기’는 발행 901쇄를 넘어섰습니다. 전15권임을 감안하면 평균 60쇄인 셈이고, 가장 많이 나간 제1권의 경우는 95쇄를 찍었습니다. 전체 발행 부수는 대략 330만 부에 이릅니다. 15년 넘게, 그야말로 강산이 한번 변하고도 반쯤 더 변하는 세월 동안 ‘로마인 이야기’는 여전히 스테디셀러로서의 자리를 굳건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는 영웅주의, 제국주의, 반기독교 정서 등 이 책에 쏟아진 비판에도 불구하고 천년 제국을 경영한 로마의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적 요소가 그만큼 많았기 때문입니다. 지도자와 리더십, 위기관리와 조직운용, 시스템과 인프라, 관용성과 개방성, 노블레스 오블리주 등 많은 메시지를 우리 사회에 던졌습니다.

창립 35주년을 맞은 (주)도서출판 한길사는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과 함께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발행 901쇄 돌파를 기념해 다음과 같이 독후감 대회를 개최합니다.

 

 



 한길사 & 프레시안 공동주최 독후감 대회

▣ 응모 요령

1. 기간: 2011년 9월 19일(월)까지(마감일 도착분)

2. 대상: 제한 없음

3. 방법:『로마인 이야기』(전15권)를 읽고 200자 원고지 25매 안팎의 독후감 제출
(책과의 인연, 책을 읽고 느낀 순수한 감상을 기본으로 하되,
정확한 내용 파악, 역사에 대한 종합적 이해, 그리고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한
비판적 관점의 독서를 균형감 있게 지향해주십시오.)

4. 보낼 곳: 413-756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문발리 520-11 한길사 편집부
E-mail: romain@hangilsa.co.kr

5. 발표: 2011년 9월 30일(금)
한길사 홈페이지 www.hangilsa.co.kr, 프레시안 홈페이지 www.pressian.com

6. 시상식: 2011년 10월 첫째주, 한길사 사옥(자세한 일시는 추후 공지)

7 시상 내역
― 대상(1명): 로마 왕복항공권 2장(대한항공)
― 최우수상(1명): 한길그레이트북스 100권
― 우수상(2명): 아이패드(16G WiFi, 제세공과금 본인 부담)
― 가작(10명):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문명총서(9권)
― 입선(10명): 한길사 도서 10만원 상품권
※ 로마 왕복항공권은 지정된 여행사를 통해 연내 원하는 때에 사용할 수 있으며,
한길사 도서는 독자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8. 심사위원
김석희(번역가), 김민웅(성공회대 교수), 박인규(프레시안 대표)

9. 기타
― 응모된 원고는 반환하지 않으며, 홍보와 광고 등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 이름, 주소, 전화번호 등을 꼭 적어주십시오.
― 자세한 사항은 한길사 홈페이지를 참조해주세요.
― 문의: 한길사 편집부 담당자 임소정(031-955-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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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한길다반사2011.03.30 10:05


이 치열한 경쟁사회에서는 해야 할 일도, 공부해야 할 것도 너무 많다. 매일 신문과 뉴스를 통해 세상 돌아가는 일을 알아야 하고, 각종 자기개발서와 경제경영서로 최신 데이터를 습득해야 한다. 또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외국어 한두 개쯤은 섭렵해야 하며, 20대에 꼭 해야 하는 00 가지 등 ‘꼭’이라는 부사가 들어가는 수많은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그뿐인가. 앞만 보고 달려가다 보면 받을 수밖에 없는 많은 내적 상처들은, “난 괜찮아”라는 말로 아무렇지 않은 척, 상처받지 않은 척 넘어가야 한다. 그래야 ‘차가운 도시의 여자’ ‘쿨한 여자’라는 칭찬을 받을 수 있다. 그렇게 나는 달려왔고, 하나도 아프지 않다고 자기 최면을 걸어왔다.


 

수많은 상황들이 우리에게 쿨해지라 명령한다.


하지만 뒤돌아 혼자 있을 때면 속으로 울었다. 남들이 무심코 던진 말에 상처받아 픽픽 쓰러지기 일쑤였고, 때로는 부질없는 복수심에 내가 받은 상처를 타인에게 고스란히 돌려주기도 했다. 언제나, 모든 면에서 완벽을 추구했지만 지금은 ‘난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만 깨달았을 뿐이다. 세상에는 나보다 멋지고 잘난 사람이 너무 많았다. 이런 사실 앞에서는 늘 아무렇지 않은 척 웃어 보였고 상처받지 않은 척 연기했지만 속은 곪을 대로 곪아 있었던 것 같다. ‘완벽하고 쿨한 나’라는 이상과 ‘그냥 나’라는 현실의 간극은 아무리 메우려 해도 메워지지 않았고, 그 사이에서 길을 잃은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헤매곤 했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릴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내가 왜 쿨해져야 하는 거지?’

이상하다. 분명 내 몸은 36.5℃이고, 내 피는 이토록 뜨거운데 나는 왜 차가워야 하는 걸까? 상처받으면 나 상처받았다고, 아프면 나 아프다고 솔직하고 당당하게 말할 수는 없는 걸까? 모두와 경쟁하는 사회가 아니라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우고 보듬어주며 함께 성장하는 관계를 이야기할 순 없는 걸까? ‘사회’라는 집단은 인간이 혼자서 살 수 없기에 만들었다고 중학교 사회시간에 배우지 않았나?

 

훌륭한 배우는 자신이 맡은 배역에만 집중할 뿐이다. 페르소나라는 가면을 쓰고 연기했던 고대 로마 시절의 배우들은 현대 배우들보다 더 수월하게 연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슬픔에 빠져 있지만, 웃고 있는 가면을 쓰고 우스꽝스러운 연기를 하고 있는 배우를. 순간적으로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우리도 그 배우와 마찬가지 아닐까? 언제쯤이면 우리는 페르소나를 벗고 자신의 맨얼굴을 보여줄 수 있을까?

「페르소나와 맨얼굴」 중에서


이런 고민에 머리가 아파질 때쯤 『철학이 필요한 시간』을 만났다. 이 책은 이야기한다. 나가르주나, 소크라테스, 이지, 마르크스, 들뢰즈 등등 세계 철학자들의 인문정신은 하나였다고. 우리에게 불편한 목소리를 견디어내는 힘을 주기 위해서, 아픔 앞에 당당해지라고 격려하기 위해서 철학은 태어났다고.

다양한 철학자들은 각기 자신만의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응원한다. ‘타인에 대한 배려(공자)’ ‘자유인의 당당한 삶(임제)’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감수성(정호)’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에피쿠로스)’ ‘약자를 위한 철학(베유)’ 등, 일상에서 흔히 부딪치는 수많은 고민을 함께 생각해보자 말을 건넨다. 그들의 철학이 마음에 더욱 와닿았던 이유는 그들이 ‘경쟁하라, 강해져라, 당당해져라, 똑똑해져라’ 하는 식으로 자신의 주장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너무 슬퍼하지 마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비록 지금은 아프지만 아픈 만큼 너는 단단해질 것이다’ 하고 이야기하는 격려였기 때문이다. 이 책은 나에게 솔직해지라고 말한다. “솔직함과 정직함은 인문정신의 핵심”이라고 응원한다. “자신의 소시민적 나약함에 정직하게 직면할 때 우리를 치장하던 가면을 벗어던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나는 아프지 않다’라는 ‘자기 최면’이 아니라 아파도 당당하게 상처를 마주할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이다. 그것이 정말 나를 사랑하고 좀더 귀하게 여기는 방법이다. 이 자리에서 밝힌다. 난 더 이상 ‘쿨한 여자’ ‘차가운 도시의 여자’가 되려 노력하지 않겠다고. 나의 상처를 보듬고, 나아가 다른 사람의 상처를 위로하는 ‘핫한 여자’ ‘뜨거운 도시의 여자’가 될 것이라고.

라캉은 말했다. “나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한다.” 누구나 자신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나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생각하는 모습과 실제 살아가는 모습은 일치하지 않는다. 전자가 페르소나라면 후자는 맨얼굴이라 할 수 있다. 페르소나를 찢어버리고 맨얼굴이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그럴 때 삶을 연기가 아니라 삶으로서 살아낼 수 있다. 인문학이 페르소나를 벗고 맨얼굴로 자신과 세계에 직면할 힘을 주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잊지 말도록 하자. 정직한 인문정신이 건네는 불편한 목소리를 견디어낼수록, 우리는 자신의 삶에 더 직면할 수 있고, 나아가 소망스러운 삶에 대한 꿈도 키울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프롤로그」 중에서




편집부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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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한길다반사2010.05.12 17:57


어제저녁 청어람 아카데미에서 김민웅 교수님의 두 번째 창세기 강의가 있었습니다. 이번 강연회에도 많은 분들이 늦은 밤까지 함께 해주셨습니다. 꽃분홍색 셔츠를 입고 오신 교수님은 봄밤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끌어 주셨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독자 korealeader님께서 정말 감사하게도 직접 쓰신 후기를 보내주셨습니다.
따끈따끈한 김민웅 교수님의 창세기 강연회 후기 함께 볼까요?




 

 


“ ‘쥐를 잡자.’ 이 말은 60년대 위생을 강조할 때 쓰던 대표적인 구호였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다른 해석이 시도되고 있죠. 여러분들이 아는 정치적인 언어로요.(좌중 웃음) 이유는 시대적 환경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오늘 강의의 첫 번째 키포인트인 ‘성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맥락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는 말을 전하면서 김민웅 교수가 제시했던 예이다. 『성서』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 이야기」는 신자도 이해하기 쉽지 않은 추상적이고 어려운 내용이다. 나는 기독교 신자도 아니고, 책의 내용조차 잘 모르지만 김민웅 교수의 명성을 익히 들었던 터라 기쁜 마음으로 강연에 참석했다. ‘과연 그가 어떻게 창세기 이야기를 우리에게 재해석해줄까’ 하는 호기심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강연을 『창세기 이야기』와는 관련이 없을 것 같은(내가 생각할 때는 그랬다! 허나 모두 책 이야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영화 이야기(「하녀」「태양을 향해서」「러브 스토리」 등)와 자신의 삶 이야기를 통해 풀어나갔다. 그중에 인상 깊었던 내용은 ‘다윗의 별’에 관한 이야기였다. ‘다윗의 별’은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하지만 나치가 유대인에게 그 별을 가슴에 달게 했을 때, 다윗의 별의 의미는 절망으로 바뀌었다. 같은 단어라도 그 단어를 접하는 사람이 사는 환경과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이었다.


성서에 “믿음은 들음에 난다”라는 말이 있는데, 예수가 이 복음을 전한 까닭은 단순히 성서를 많이 들으라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고 한다. 당시 강대국에게 핍박받던 히브리 민족은 성서를 직접 해독할 능력과 여건이 없었다. 그래서 예수는 이 말을 통해 그 당시 지도층, 이른바 글 깨나 읽는다는 사람들의 허위를 폭로하고 아울러 약한 계층에게 희망을 준 것이었다. 즉 성서는 식자층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공유하기 위해 탄생했다는 말을 들려주었다.



이렇듯 상황을 강조한 김민웅 교수의 풀이는 우리가 모르는 성서 이면의 사실을 알게 해줬다. 어쩌면 우리는 보이는 것만 보고, 편견에 사로잡혀 진실을 보지 못한다고 했다. 그 단적인 예가 ‘솔로몬의 지혜’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흔히 어머니에게 아들을 찾아준 솔로몬 왕의 지혜에 대한 내용으로 기억하고 있다. 허나 김민웅 교수는 이는 ‘누가 진짜 어머니인지’가 아닌, ‘누가 이 아이를 가장 잘 키울 수 있는지’를 재판한 것이라는 말이었다. 즉 ‘솔로몬의 지혜’는 아들에게 어머니를 찾아준 이야기였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다음 강연회 참석해서 듣기를 바라며 약간만 설명했다.) 그밖에도 ‘디나와 하갈의 이야기’도 들려줬다. 김민웅 교수는 하갈의 스토리를 전하면서 고난과 절망의 땅이 어떻게 희망의 땅으로 변하는지 설명했다. 나는 그 속에서 우리 현실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찾을 수 있었다.



마지막에 나는 그에게 질문 하나를 던졌다.


“어떻게 하면 다른 시각으로 학문을 접근할 수 있습니까?”


이내 대답이 돌아왔고, 나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어떤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에 귀를 기울입니다. 누가 침묵하고 있나, 누가 몰래 눈물 흘리나를 살펴보는 것이죠. 소리가 없다고 울지 않는 건 아닙니다. 보이는 것만 보는 고정관념은 폭력이 되기 쉽습니다.”




 

 

김민웅 교수의 열띤 강의 모습. 그는 강의 할 때도, 설교 중에도 양복을 입지 않는다고 한다.






내가 관점의 차원에서 접근했던 문제를 그는 마음의 눈을 통해 접근했던 것이다.



“자그마한 키에 어느 시골구석 영감님처럼 털털하게 생기신 분이 어찌 그리 속사포처럼 다채로운 지식을 일거에 쏟아내는지 그 달변에 모두 기가 질릴 지경이었다.”



『자유인의 풍경』이란 책에서 양주동 박사를 가리켜 김민웅 교수가 한 말이다. 나는 이 말을 다시 그에게 돌려주고 싶다. 알차고 풍성한 강연을 듣게 되어 정말 좋았다. 경기도 광주에서 명동까지 강연을 듣기 위해 오는데 들인 시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앞으로도 종종 이분의 강연을 듣고 싶다. 좋은 강연이 많이 열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강연회가 끝나고 교수님, 한길사 직원들과 한 컷!








 

 -작성자 korealeader

                                                      

 

 

korealeader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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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한길다반사2010.04.02 10:28




조금 풀린 날씨 덕분에 그래도 조금씩 봄이 오고 있다는 생각을 한 화요일 저녁, 김민웅 선생님의 강의가 홍대 상상마당 4층에서 열렸습니다. 얼마 전『창세기 이야기』(전3권) 출간을 기념해 한길사가 마련한 강의였죠. 개인적으로는 입사 후 처음으로 갖는 외부행사라 설레는 마음으로 행사안내 포스터도 붙이고 내부 정리도 하며 독자 여러분을 기다렸어요.
한쪽 어깨에 기타를 메고 등장하신 김민웅 선생님을 뵈니 과연 어떤 강의를 들을 수 있을지 기대감이 한층 높아지더라고요.





They say it grows on the bank of the river of suffering Shine on me again,
and Weave, weave, weave me the sunshine out of the falling rain

사랑의 나무는 고난의 언덕에서 자란다고 하지요.
아, 내게 떨어지는 빗방울로 빛나는 햇살을 짜주지 않겠어요?

피터 폴 앤 메리, 「Weave me the sunshine」



「Amaging Grace」를 잠깐 연주하신 것으로 시작된 감미로운 노래와 기타반주는 「개똥벌레」, 「Weave me the sunshine」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노래들과 창세기 강의가 무슨 연관이 있는 걸까요?
거칠게 얘기하면 우리는 개똥벌레처럼 외롭고 힘없는 존재지만 「Weave me the sunshine」 가사처럼 떨어지는 빗방울로 빛나는 햇살을 짤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게 선생님이 이 노래를 선곡하신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창세기를 읽음으로써 바로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는 통찰력과 내공을 기를 수 있죠.






흔히 신약성서와 구분하기 위해 구약성서라 부르지만 원래 이름은 성서인 이 책은 한 사람의 작가가 쓴 책이 아닙니다.
여러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이야기를 또 수많은 사람들이 기록하고 덧붙이고 해 지금의 성서가 완성된 것이라고 해요. 선생님께서는 성서의 주인공들이 모두 핍박받고 절망에 빠진 비주류였다는 점을 강조하셨습니다.
이스라엘에서 노예로 끌려온 히브리 사람들이 마주한 것은 바빌론의 엄청나게 발달한 문명이었죠. 거대한 건물들, 좋은 옷을 입은 사람들,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발전한 도시, 문명의 중심 바빌론이었지만 그들은 그곳에서 노예에 불과했습니다.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힘든 그런 상황 속에서 그들은 영혼 없는 문명을 부러워하기보다 가치 ․ 생명 ․ 사랑의 힘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서가 어느 고전 못지않게 인문학적인 의미가 있는 책인 이유입니다. 가치의 의미를 깨닫는 사람들이 등장한다는 점이요. 글쎄요, 너무 순진한 소리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은데요. 문명이 발전하면 할수록, 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우리는 행복해질까요? 과연 얼마만큼 발전해야 우리는 만족하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비록 바빌론의 발달된 문명을 갖지 못했지만, 그래서 노예의 신분으로 그들에게 핍박받고 있지만, 자신들은 하나님의 형상 품격을 닮은 소중한 생명이며 귀한 존재라 생각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가치를 깨달은 것이죠. 나는 소중한 사람이니 지금은 이렇게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꼭 밝은 미래를 맞이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었답니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자신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사람인지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남과 비교하며 자신을 비하하기도 하고, 마음대로 잘되지 않는 세상사에 지칠 때도 많죠.

"창세기에서 말하는 창조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어둠, 혼란, 공허함 속에서 빛이 나오는 것이죠.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것입니다. 저녁이 없으면 아침을 맞을 수가 없어요. 우리 인생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벼랑 끝까지 내쳐졌을 때, 절망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힘들 때, 자포자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가치를 다시 깨닫고 삶을 성찰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고 나면 누구든지 인생의 절정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 그때가 스무살일 수도 있고 어떤 이는 일흔살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 모두 이런 기회를 맞이할 자격이 있는 소중한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선생님께서 인생이란, 아직도의 문턱을 넘어 드디어로 가는 길이라고 하셨는데, 정말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희망을 얘기하는 건 참 쉽지만, 정말로 희망을 갖는 일은 무척 어려운 세상입니다. 앞으로 주야장천 아직도의 문턱에서만 허덕이다 내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닌지, 과연 드디어의 감격을 맛볼 수 있을지 걱정되고 두려워질 때, 창세기 이야기에 귀 기울여봐야겠습니다. 드디어까지는 아니더라도, 결국이란 말로 마무리 짓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 편집부 김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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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 / 한길아트2010.02.16 10:12




『성경』은 희망과 구원의 역사를 기록한 놀라운 책이다. 그 중에서도 첫 번째 책인 「창세기」는 인간의 창조와 그 시작의 의미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또한 아브라함-이삭-야곱-요셉으로 이어지는 믿음의 조상들에 대한 감동의 드라마가 우리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점에서 종교의 유무를 떠나 꼭 읽어 보아야 할 고전이다.

방송인이자 언론인이며, 대학에서 세계체제론과 기독교 윤리를 가르치는 김민웅 교수가 희망의 메세지를 가득 담아 『창세기 이야기』(전3권)를 펴낸다. 알고 보면 그는 미국에서 20여 년간 목회를 했고, 최근 기독교방송 '성서학당'에 출연하여 많은 사람들을 새로운 성서 읽기로 안내했다. 이 책은 이런 그의 오랜 경험을 오롯이 담아 낸 것이다.

그에게 『창세기 이야기』출간의 의미를 물었다.



● 성서의 많은 책 가운데 특별히 「창세기」에 주목한 까닭은?

 

「창세기」는 무엇보다도 '생명에 대한 시원적(始原的)풍경'을 가장 풍부하게 담고 있다. 그런 까닭에 이 책 읽기를 통해 생명이 도처에서 위협받고 있는 시대에, 생명을 살려 내는 힘의 근원을 일깨우고자 했다. 「창세기」는 또한 문학, 철학, 예술 전반에 걸쳐 깊은 영감을 불어넣으며 인류사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이에 대한 본격적인 성찰과 논의가 부족한 편이다. 「창세기」깊이 읽기를 통해 우리의 인생을 바로 세우고, 사회에 희망을 더하며, 더 나은 미래의 대안을 창조해 나갈 수 있었으면 한다.

 

 

● 일반인들도 성서를 읽을 수 있나?

 

성서를 특정 종교의 경전으로만 대하지 않았으면 한다. 성서에는 사랑과 배신, 전쟁과 평화,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 절망과 희망, 성공과 몰락 등 인간이 겪게 되는 삶의 온갖 모습이 담겨 있다. 죽음의 끝, 절망의 밑바닥, 벼랑 끝에 몰려 본 사람들이 도달한 영적 각성의 지점이 어디에 있는가를 아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알고 싶은 바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성서는 끊임없이 되돌이켜 읽게 되는 인류의 고전이다.

 

 

● 성서를 읽을 때 주의해야 할 점은?

 

신화적 드라마가 아닌가 하는 선입관을 가지고 읽거나 교리에만 얽매인 채 질문하지 않는 읽기는 바람직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성서에 기록 된 이야기의 의미를 편견 없이 늘 새롭게 묻고 깨우치는 것이다. 성서를 쓰고 읽은 사람들은 오늘날 우리와는 여러 가지 면에서 거리가 있다. 따러서 성서 기록의 표현상 특징을 잘 이해하고 그 맥락을 파악하면, 이 책을 기록하고 정독했던 사람들의 현실과 마음에 깊이 스며들 수 있다.

 

 

●「창세기」에서 가장 감격적인 대목은?

 

감격이라는 말이 참 좋다. 실로 창세기 첫 구절부터 그렇다. 하나님은 빛을 창조하시는 재료로 태초의 그 거대한 어둠과 혼돈, 허무를 들어 쓰셨다. 내 인생이 아무리 어둡고 혼란스러우며 허무하게 느껴질지라도 그런 내 인생이 빛과 생명으로 다시 창조될 수 있다면 그 이상 감격스러울데가 있겠는가? 「창세기」는 종교적 교리를 설명하려 들거나, 도덕적 원칙에 대한 설교, 인간의 죄를 꾸짖는데 목적이 있지 않다. 인간이 얼마나 약점이 많고 흔들리기 쉬운 존재인가? 그런 인간을 힘 있게 살리는 것은 생명력이 충만한 감격이다.

 

 

●「창세기」를 보면 행복의 근원이 가정에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데?

 

가정은 원초적 공동체로서 한 인간의 성장사에 근본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창세기」는 그 가정의 울타리 밖으로 내던져졌을 때 인간이 어떻게 성장해 나갈 수 있는가를 줄기차게 묻는다. 모든 것이 태생적 권리처럼 주어지는 가정과 달리, 격토를 벌이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어떻게 우리의 선함과 의로움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지를 성찰케한다. 그래서 가정만이 아니라 이 사회 전체가 행복의 현장이 되게 하려는 것이 「창세기」의 목적이다.

 

 

● 실업자 400만 시대, 팍팍한 현실 「창세기」가 희망을 줄 수 있다면?

 

하루의 완성을 「창세기」는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니"가 아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라고 말하고 있다. 즉 어둠이 지나고 빛이 오면 그때 하루의 의미가 완결된다는 것이다. 시련이 곧 새로운 미래를 위한 훈련장이다. 어떤 곤궁한 처지에 있더라도 자기를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이 마련해 주시는 새로운 때와 무대를 기대한다면 절망은 없을 것이다. 이삭은 자기가 애써 판 우물을 수없이 빼앗겼지만 우물을 다시 파려는 의지는 결코 빼앗기지 않았다. 결국 그는 모든 고난을 이겨 냈다.

 

창세기 이야기(전3권)

김민웅 지음|한길사(3월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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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다반사2009.12.28 11:20


지난 12월 19일 토요일, 헤이리 북하우스에서 한길사 33주년 송년모임이 열렸습니다.

영하의 강추위가 일주일째 계속되고 있었지만,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한길사의 주요 저자들을 비롯해
문화예술 관계자들 150여 분이 참석해주셨습니다. 행사는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의 사회로, 저자 덕담과 인사, 낭독회, 국악공연, 소연(小宴) 등의 순서에 맞춰 2시간여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김민웅 교수는 출판을, 외로운 산사를 지키고 서 있는 천년 세월의 은행나무에 비유하며, 한길사가 걸어온 인문출판의 길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출판이 없다면, 아무리 훌륭한 생각과 경륜을 담은 책이라도 탄생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출판의 노역(勞役)은 문명의 산고를 마다하지 않는 이들의 끊임없는 헌신이다. 한길사는 어느새 서른세 해를 넘기면서 그런 나무를 기르는 영혼의 사제이자, 문명의 건축자로 지지지 않는 열정을 뿜어내고 있는 우리의 소중한 자랑이 되었다.”

뒤이어 최영준 고려대 명예교수는 “사람은 자기의 숨은 재능을 발견해주고 밖으로 이끌어주는 이를 은인이라고 한다면, 한길사는 분명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고 축하의 말을 해주었다.
선생은 1980년대 한길역사기행에 남한강 수로 답사와 강화도 간척지 답사 인솔자로 처음 참가한 이후, 『국토와 민족생활사』 『한국의 짚가리』 등 일련의 저작들을 펴내기까지 한길사와의 오랜 인연을 돌아보면서, “본래 어눌하고 글재주도 없는 자신을 독려하며 책을 쓰도록 용기를 북돋워준 것은 다름 아닌 한길사였고, 지금도 그 관계는 계속되고 있다”고 회고했습니다.

사실 선생과는 ‘개화기 경상남도 촌락 연구’라든가 ‘실크로드 연구’, 그리고 지난 20년 동안 강원도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기록했던 일기를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담론과 성찰』 1호에 「홍천강변에서의 20년」이라는 한 편의 글을 통해 선생은 지리학자로서 농사를 지으며 우리 농촌과 자연에 대해 느끼고 깨달은 이야기를 참으로 감동적으로 들려주었습니다. 이제 그 20년 동안의 농사일기가 독자들에게 오롯이 공개되어, 소로의 『월든』 못지않은 책으로 태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함석헌 선생님의 글 두 편을 낭독하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한길사는 올해 『함석헌저작집』 전30권을 출간하고, 함석헌기념사업회와 교보문고와 손잡고 10회에 걸쳐 선생님의 대표적인 글들을 가려 뽑아 독자들과 함께 읽어보는 낭독회를 열었는데, 그때의 뜨거운 감동을 송년모임에서 다시 공유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앵콜 낭독’이 되는 셈인데, 조각가 최만린 선생이 「모산야우」(毛山夜雨)를, 방속작가 이인경 씨가 「나의 어머니」를 낭독해주셨습니다.


「모산야우」를 낭독하는 조각가 최만린 선생

「모산야우」는 밤비 소리를 듣는 마음으로 정치를 하고 인생을 산다면 이렇게 거칠고 사납고 매정한 사회가 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곤고한 자에게 “마음의 동무가 되어주십시오” 하는 함 선생님의 당부와 씨알을 생각하는 마음이 잘 드러난 글입니다. 「나의 어머니」는 헌신과 자애로움으로 길러주셨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며, 이 시대의 아들딸, 곧 민중들에게 선생님 역시 그렇게 살고자 했던 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내 생각은 말고 어서 갈 길 가거라” 하는 ‘영원한 슬픔의 형상’인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함 선생님의 글은 다시 들어도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때로는 노래요 웅변이며, 시요 논설인 글에서 역사와 시대, 사회와 이웃,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삶을 깊이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어 김언호 한길사 사장님은 참석해주신 많은 내빈들께 인사 말씀을 올렸습니다. 험난한 출판 여정을 오늘에까지 이어올 수 있도록 해준 시대와 독자, 그리고 많은 저자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시대의 현인(지성)들과 함께 열심히 공부하는 자세로 책을 만들었던 일은 한 출판인에게는 그야말로 ‘신명나는 축제’였다고 회고했습니다. 또한, 사람의 나이로 따지면 더 원숙하고 활발한 활동을 펼칠 서른세 돌을 맞은 만큼 내년에는 더욱 분발하는 출판사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사장님은 올 상반기에 『책의 공화국에서』라는 저서를 통해 책 만들기의 열정과 신념을 유감없이 들려준 바 있었습니다.

한편 책의 내용적 가치뿐만 아니라 외면적 미학성에도 관심을 가져온 만큼 송년모임에 맞춰 ‘책, 오래된 빛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사진전을 함께 열었습니다. 노랗게 색이 바랜 책장, 아름다운 훈민정음 언해본의 활자, 가죽장정이 멋스러운 고서들, 붉은색 검열도장이 찍힌 원고뭉치, 활판인쇄 시대의 지형 등 다양한 책의 아름다움을 사진에 담아냈습니다.


사진전  ‘책, 오래된 빛을 찾아서’ 전시작품 일부


마지막 순서인 판소리 축하공연에서는 시종 진지하게 진행된 모임에 한바탕 웃음꽃을 피우게 했습니다. 대사습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전주의 소리꾼 김연 명창과 서예가로 유명한 하석 박원규 선생이 고수로 호흡을 맞춰 홍보가, 심청가 등의 주요 대목을 들려주었습니다. 하석 선생은 40대 젊은 날 전주에서 서예를 배우는 한편, 따로 국악원을 다니고 사사를 해서 배운 숨은 북 솜씨를 마음껏 보여주었습니다. 북채를 놓은 지 10년도 넘었다지만, 힘 있는 추임새와 북소리는 김연 명창의 목청을 더욱 신명나게 돋우었습니다. 김 명창은 소리도 소리였지만 좌중을 휘어잡는 활달한 재담이 근엄한 선생님들을 한순간에 무너뜨렸습니다. “얼씨구, 좋다, 잘한다” 추임새도 유도하고, 판소리에 담긴 우리 조상들의 해학과 풍자정신도 가르쳐주는 등 객석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습니다.

김연 명창의 판소리 공연 (오른쪽 : 서예가 하석 박원규 선생)


김 명창은 자기 것밖에 모르고 경쟁 위주로만 치닫는 오늘날의 사회풍조가 안타까워, 어디 공연을 가더라도 꼭 하는 얘기가 있다고 했습니다. “추임새 나는 세상을 만들자!” 소리꾼이 잘 놀 수 있도록 추임새를 넣어주는 고수처럼, 우리 사회는 남이 잘 되도록 응원해주고 칭찬해주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심청가 중 ‘심봉사 눈뜨는 대목’은 광명천지를 꿈꾼 가난하고 어리석은 민초들의 염원을 담은 노래라며, 책을 쓰고 책을 펴내는 일은 바로 우리 사회를 더욱 밝히는 일이라는 점에서 중요하고, 서른세 돌을 맞은 한길사의 출판 정신과 노고를 높이 치하한다고 말했습니다.




* 다음은 이날 행사에서 발표한 김민웅 선생의 축사 전문입니다. 

 

문명의 숲길, 한길사의 인문정신,

나는 한길사의 책만들기 33년을 말하고 싶다


ㆍ김민웅(성공회대 교수)


 

천 년 세월의 은행나무 한 그루


속세의 온갖 눈물과 아픔을 씻어내리고 들어서는 일주문을 지나 소나무들이 춤을 추듯 사방에서 나타나는 산길을 오르면, 저편에 문득 사찰 하나 가람의 선을 소박하게 드러내고 그 곁에는 우람한 은행나무 한 그루가 거리낌 없이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고 있다. 그 나이가 무려 천 년이 넘는다고 하니, 그간에 지켜보았던 세월이 무척 깊을 것이다.

오래된 고목이지만 기이하게도 늙어 시들지 않았고, 속이 말라 허무해진 껍데기만 지닌 채 간신히 버티고 서 있는 것도 아니었다. 원시의 생명력을 그대로 간직하고 바람과 햇살과 별들이 스쳐 지나게 한다. 침묵하고 있어도 이미 말하고 있고, 아무 소리도 듣고 있지 않은 것 같지만 숱한 이들의 하소연에 귀 기울이고 있다. 누가 부르는 슬픈 곡조인가 싶게 은은히 들리는 스님의 『금강경』 읽는 소리가 어우러지면, 천 년의 고독이 이내 실타래를 풀며 그간에 켜켜이 쌓아두었던 이야기를 들려줄 듯싶다.


어쩌면 위대한 책은 이 외로운 산사의 은행나무를 닮은 것이 아닌가 한다. 유행과 대세를 허둥거리며 뒤쫓지 않고, 모두가 떠난 뒤 홀로 남겨져도 쓸쓸해하지 않는다. 세월에 마모되지 않고 풍파에 휩쓸리지 않는다. 아니, 고목이 되어갈수록 도리어 빛난다. 위엄과 품격이 그렇게 태어나 우리 앞에 우뚝 서 있다. 날로 하늘을 향해 더욱 높이 치솟고, 땅속에 더욱 깊이 박혀간다. 뿌리는 뻗을수록 굵어지고 몸은 휘어 굽지 않는다.



문명의 사제 한길사


이런나무를 제대로 알아보고 심고 기르며, 무성한 숲이 되게 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영혼의 터를 가꾸는 참된 사제다. 돈을 받고야 비로소 움직이고, 얄팍한 이해타산을 앞세우는 삯꾼이 아닌 것이다. 출판은 다름 아닌 이 영혼의 힘을 기르는 문명의 사원을 지켜내고 산 아래서부터 그리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길라잡이다. 출판이 없다면, 아무리 훌륭한 생각과 경륜을 담은 책이라도 탄생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출판의 노역(勞役)은 문명의 산고를 마다하지 않는 이들의 끊임없는 헌신이다.


한길사는 어느새 서른세 해를 넘기면서 그런 나무를 기르는 영혼의 사제이자, 문명의 건축자로 지치지 않는 열정을 뿜어내고 있는 우리의 소중한 자랑이 되었다. 한길사를 빼놓고 이 나라 독서문화를 이야기할 수 없고, 지식의 최전선을 향한 모험을 거론할 수 없다. 한길사는 돈을 벌기 위해 책을 찍어내는 문화사업자가 아니라 출판이 지적 충격을 동반하는 하나의 사건이 되게 하여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산맥을 일으켜세울 줄 알았고, 그곳에서 발원하는 무수한 지류의 출발이 되었다.


그런 충격의 지적 파장을 가져온 책의 제목을 하나하나 거론하기에도 벅찰 정도다. 1977년부터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필두로 한 ‘오늘의 사상신서’를 통해 리영희, 송건호, 박현채, 김정한, 강만길, 이오덕, 안병무, 고은, 서남동, 이효재, 박순경, 차기벽 등 당대의 대표적 지성들을 역사의 무대에 세워 혹독한 겨울의 추위를 이겨내게 한 공은 고스란히 한길사로 돌아가야 한다. 한길사의 책들이 출간될 때마다 한국사회는 소용돌이치듯 흥분했고, 미래를 가로막고 있는 장애를 힘차게 돌파하는 기쁨을 누렸다. 그 대가로 한길사가 치러야 했던 희생도 세월이 지나고 보니 이젠 역사의 훈장으로 돌아왔다. 검열과 판금 자국이 뚜렷한 원고와 책들이 한길사의 영광으로 살아남았으며, 시간이 흘러 상처가 아물면서 그것이 힘이 되었다.


돌아보면 한길사가 창립된 1976년 12월이 어떤 시기였는가. 국가의 폭력이 정치라는 이름으로 군림했고 민주주의는 질식 상태에 놓여 있었다. 생각의 지평은 중세적 암흑에 갇혀 있었으며, 시대는 지적 목마름으로 방황하고 지식인들은 침묵을 강요당했다. 한길사의 기획은 그런 시대에 대한 암중모색 정도가 아니라, 위험을 각오한 도전이었고 역사의 지침을 분명하게 인식한 결단이었다. 힘겹게 지내야 했던 70년대로부터 80년대, 90년대로 이어지는 역사의 길목에서 함석헌도 그렇게 목소리를 냈고, 조정래의 『태백산맥』과 최명희의 『혼불』도 그렇게 등장했다. 이우성, 이광주, 김우창, 김윤식, 최일남, 김진균, 이만열, 최장집, 임철규, 임형택, 송재소, 임헌영, 최영준, 박태순, 이부영, 이삼성, 김상봉, 이정우, 김석희, 한정숙 등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연구자·지성인들이 저자로 참여해 찬란한 지적 연찬을 펼쳤다. 이들 저자·필자들과 함께하는 한길역사강좌와 한길역사기행, 한길사회과학강좌와 각종 토론회 기획들은 가히 선진적이었다.



한길사의 기획 정신, 출판인 김언호


그런 현실에서 시대의 화두를 단도직입적으로 던질 저자가 발굴되고, 그 저자가 집필하기까지 한길사는 단순한 원고청탁과 편집의 작업에 만족하는 출판사가 아니었다. 한길사는 자신을 앞세우지 않으면서도 저자와 정신적 공동저술의 고된 작업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책의 탄생’이 ‘책의 공화국’으로 이어지는 길을 뚫어냈다. ‘공화국’이 전근대와의 투쟁으로 이뤄낸 소산이었다면, ‘책의 공화국’은 앞선 시대정신의 보루였고, 전투가 필요할때면 서슴없이 나설 지성과 이성의 전사들이었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한길사 대표 김언호라는 걸출한 출판인이 있는 것이다.

그는 저 야만적이고 궁핍한 시절, 갓 서른을 넘긴 때에 한길사를 창립한 이래, 지금도 여전히 청년의 기운을 잃지 않는 출판 장인이다. 김언호의 한길사 출판은 시대를 정밀하게 독파하고 그 기운을 남보다 먼저 선명하게 포착하는 문화조직처였다.


그는 하나의 기획을 끝냈다 해서 그 자리에 머물지 않았고, 그다음 주제를 잡기 위해 훌훌 자리를 털고 일어날 줄 아는 출판 지식인이다. 시간이 지나면 본래의 정열을 상실하고 쇠퇴해버리고야 마는 혁명의 비극을 이겨내는 지혜를 배운 이의 선택이다. 그와 함께 일하는 이들은 그로부터 책의 정신을 온몸으로 익힌다.

그 렇기 때문에 김언호와 출판사 한길사는 당대의 현실과 마주하는 일에만 몰두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세계로 향했고, 대형시리즈 ‘오늘의 사상신서’뿐만 아니라 대형의 ‘민찬’ 『한국사』와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한길세계문학’을 비롯해서 월간 『사회와 사상』과 ‘한길신인문총서’, 『로마인 이야기』와 ‘한길그레이트북스’, ‘한국학술진흥재단 서양고전번역총서’ 등의 출간으로 잇달았다.


그중에서도 한길그레이트북스 기획은 세계 문명의 지적·사상적 성과를 한국사회에 구현한다는 지성사 차원에서도 중대한 사건이었다. 저자와 저서의 이름은 알려졌지만 읽을 기회가 없었던 인류의 고전 저작을 번역하고 해설해서 계속 내놓는 한길사의 작업은 우리 사회의 지적 저력을 높이는 데 크나큰 기여를 하고 있다. 레비-스트로스, 에릭 홉스봄, 한나 아렌트, 헤겔, 루소, 후설, 엘리아스, 화이트헤드, 마르크 블로크, 들뢰즈, 벤야민, 아도르노, 하이데거, 엘리아데, 토크빌, 조식, 일연, 이익, 순자, 한비자, 이지, 리쩌허우, 라다크리슈난, 마루야마 마사오 등이 이렇게 해서 한국 독자들과 만났다. 인문정신과 인문학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이지만, 출판을 돈과 동일시하는 풍토에서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출간된 지 오래되어 찾기 힘든 책들, 또는 하나로 묶어 그 자체로서 시대의 주제가 될 수 있도록 하는 복간과 재출간 작업도 의미 깊게 진행되었다. 함석헌, 송건호, 리영희, 이병주 등이 그렇게 새로운 시대의 옷을 입고 새로운 세대에게 다가설 수 있었다. 역사는 그런 식으로 한길사의 출판을 통해 생환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새로운 꿈, 새로운 실험


출판인 김언호의 기획과 생각은 또한 이에 그치지 않고, 뜻있는 일련의 출판인들과 더불어 동아시아 출판의 세계와 만나 우리의 지적 중심을 새롭게 세워나가는 일을 모색하고 있다. 문화로 세계와 어깨를 겨루면서 도약해야 하는 책임을 지고 나가려 하는 것이다. 이 역시 오늘의 시대에 요구되는 사건이다.

여기에 더해, 한길사는 별도로 ‘한길아트’를 설립해 미술출판을 해내면서 미술 전시 등을 기획하고 있다. 책과 예술의 결합을 위한 시도다. 책이 미술의 소재가 되고 미술이 다시 책이 되는 우리 일상의 풍경이란 그 자체로 미학적 감동이다.


책은 책의 내용만이 아니라, 그 책의 존재, 표지, 지질, 글자, 그림은 또 하나의 독립된 문화사이자 하나의 문명세계다. 책과 사람이 만나는 첫 번째 감동은 이렇게 해서 이루어진다. 그것을 담아내는 시도와 현장은 그래서 아름답다. 아름다움은 인간 영혼의 근본적인 갈망이다. 출판인 김언호와 한길사는 지금 이 아름다움을 향한 장인의 작업을 해내고 있다. 거친 시대와 격투를 해오면서도 끝내 놓지 않은 이 소망으로 해서 한길사의 책과 꿈은 아름답고 21세기적이다.


서재에 책이 그득한 풍경은 이미 경이로운 문명이다. 그건 문명의 숲에 난 산책로이기도 하다. 한길사는 그 숲길이다. 그런 한길사가 고맙다. 자본의 위력 앞에서 천박해지고 있는 정신과 현실 앞에서 인간의 영혼을 품격 있게 지켜내는 출판사와 출판인이 있다는 건, 우리 시대의 축복이다. 한길사는 서른세 해의 시련과 영광을 뒤로 하고 다시 앞으로 꾸준히 전진해나갈 것이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꺾이지 않는 꽃이 되고, 사막에 내던져져도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 물고기가 되기를 기원하면서, 이제 장년의 시절을 맞이하는 한길사의 내일에 백 년의 꿈을 꾸는 경륜이 넘치기를 빈다. 천 년 고찰(古刹)의 세월에 비기면, 백 년 정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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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한길다반사2009.10.14 14:02

하루가 다르게 쌀쌀해지는 날씨 때문에 으슬으슬 추운 몸을 두꺼운 옷으로 감싸고, 따뜻한 차 한 잔을 본능적으로 찾게 되는 가을입니다. 지난 2월부터 쉼 없이 달려온 ‘낭독의 밤’도 어느 덧 아홉 번째 행사를 치르게 되었네요. 정말이지 시간의 흐름은 빛의 속도보다 더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지난 9회 낭독의 밤에서는 ‘문명과 자연’을 주제로 쓴 함석헌 선생님의 글을 낭독했습니다.
좀더 편리한 생활을 추구하는 인간의 이기심에 따른 무절제한 개발, 자연 상태로 두지 않고 무엇이든 인간 본위로 발달되는 문명에 대한 경고, 이에 따른 자연 재해와 환경오염 등 먼 미래에 닥칠 위기의 순간을 상상하니 조금은 두려운 마음이 들었던 시간이었어요.

함 선생님 특유의 우리를 꾸짖는(?) 글도 이번 회에선 한층 부드럽게 들렸는데요, 유난히 아리따운 여성 낭독자들의 참여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장주희 아나운서는 또렷한 목소리로, 배우 장윤실 님은 생생한 목소리로 함 선생님의 육성을 색다르게 들을 수 있는 경험을 독자에게 전달해주었어요 :) 

 

광진구도서관친구들 대표 여희숙 님(왼쪽), CBS 아나운서 장주희 님(가운데), 연극배우 장윤실 님(오른쪽)



풋풋한 웃음이 매력적이었던 대금주자 신명욱 님의 축하 공연도 빼놓을 수 없는 이번 낭독회의 하이라이트입니다.
한국인의 정서인 한(恨)이 가득 담긴 대금 소리에 잠시 마음을 빼앗겨, 뉴스만 봐도 답답하고 머리가 아픈 한국 현실의 고단함도 잊을 수 있었습니다.

 

대금주자 신명욱 님 축하공연 모습



제10회 낭독의 밤은 다가오는 11월 4일(수) 같은 장소, 같은 시각에 열립니다.

마지막 행사인 만큼 뭔가 특별한 시간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_^

다음 낭독회에도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편집부 신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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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