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사 / 한길아트2013.06.26 11:50


대학생 방학 알차게 보내는

인문학 책 추천 BEST 4



여름방학입니다. 기말 고사를 끝내고 이미 여름방학에 돌입한 사람도, 곧 다가올 방학을 생각하며 남은 기말 고사를 버티고 있는 사람도 있겠죠?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로 최근 대학생들의 방학은 예전과 판이하다고는 하지만 빡빡한 강의에, 과제에, 시험에 치였던 학기 때를 생각해보면 방학은 확실히 좀 마음이 여유롭죠? 혹시 스펙 쌓기+놀기로 여름 방학을 보내실 생각이라면 노노노~ 인문학 책 추천해드릴테니 마음을 살 찌우세요! 가끔 카페에 한 두권씩 인문학 책 추천 받을걸 들고 가서 읽다보면 스펙이다 취업이다 지친 머리 속이 차분히 정리될 거예요. 인문학 책 추천을 아무거나 할 수 없겠죠?  고르고 고른 인문학 책 추천 4권 소개합니다~







인문학 책 추천 하나! <슬픈 열대>


인문학 책 추천 첫번째! 읽지는 않으셔도 책 제목은 정말 많이 들어보셨을텐데요. 바로 레비 스트로스의 <슬픈 열대>(한길사, 1998)! <슬픈 열대>는 한길그레이트북스의 31번째 시리즈입니다. 저자 C. 레비 스트로스가 브라질 내륙지방의 원주민 사회 조사단의 일원으로 참가했을 때 조사한 내용이 <슬픈 열대>의 주요 내용을 이루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저명한 인류학자이며 사상가인 레비 스트로스는 <슬픈 열대>를 여행 산문집의 형식을 빌려 써내려갔습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슬픈 열대>에서 카두베오족, 보로로족, 남비콰라족, 투피 카와이브족의 문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얼굴에 기하학적인 그림을 그려넣는 카두베오족이나 코걸이장식과 빳빳한 섬유로 입술장식을 하는 남비콰라족은 '문명인'의 눈으로 보기엔 그저 '미개'하고 '야만적'으로 보일지 모릅니다. 


책 제목 <슬픈 열대>의 '슬픈'은 그래서 나온게 아닐까요. 서로 다른 것을 틀리다고 해버리는 당시 서구문명에 대한 거대한 분노와 비통함이 책 제목에 드러난 것일테니까요. 여행 책이 한동안 크게 유행했죠. 게다가 지금은 외국 여행을 많이 떠나는 대학생들의 여름 방학입니다. 세계 여행을 책으로 대신 해도, 실제로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지만 레비 스트로스의 진국 여행기 <슬픈 열대> 보면서 다르다는 것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한길그레이트북스

한길그레이트북스는 동서고금의 고전 저술들을 원전에서 번역한 시리즈이다. 한길그레이트북스에는 우리 시대의 정신과 사상을 일으켜세우는 인프라의 일환으로 우리의 출판철학 또는 출판관을 반영하는 기획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 시대를 뛰어넘어 감동을 주고 영향을 미치는 고전적 저작 또는 당대의 명저를 집대성한다는 의미에서 지성인들의 허기를 채워줄 수 있다.







인문학 책 추천 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두번째로 소개할 인문학 책은 한길그레이트북스 81번째 시리즈~ <예루살렘의 아이히만>(한길사, 2006). '악의 평범성'으로 유명한 한나 아렌트의 책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꼽히죠. 1942년 1월에 있었던 유대한 대량학살의 집행자였던 아이히만. 그가 독일 패망 후 중동을 전전하다 이스라엘 비밀경찰에게 체포돼 특별재판을 받게 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모든 일정을 뒤로하고 뉴요커 특파원의 자격으로 예루살렘에 가서 아이히만의 특별재판을 참관합니다. 그렇게 참관기를 뉴요커에 연재한 것이 이 책의 바탕입니다. 






유대인 학살을 나치가 제도적으로 체계화시킨 '최종 해결책'(the final solution)을 열정적으로 실행에 옮긴 아이히만은 '양심에 가책은 없었는가?'란 질문에 '명령 받은 일을 하지 않았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이라고 대답하죠. 여기서 명령 받은 일은 '수백만 명의 남여와 아이들을 상당한 열정과 가장 세삼한 주의를 기울여 죽음으로 보내는 일'(78~79쪽)입니다. 수십년이 지난 일을 글로 읽는 것만으로도 충격적인데 당시 재판을 참관하던 한나 아렌트는 어땠을까요? 악마같은 사람이었다면 차라리 이해했을 발언이지만 아이히만은 평범한 인간이었습니다. 심지어 따뜻한 남편이자 자상한 아버지였죠. 어느 평범한 사람의 악(惡). 깊이있는 철학적, 정치사상적 내용을 담고 있지만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어렵지 않게 읽힙니다. '악의 평범성'에 대해 여전히 유효한 한나 아렌트의 메시지 이번 방학에 오롯이 감상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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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책 추천 셋! <로마인 이야기>


'문화일보 선정-한국의 지성이 30명이 권하는 교양필독서', '동아일보 기획-책 읽는 대한민국 : 열아홉 살의 필독서 50권', '2005. 6~2006. 5-서울대 도서관 대출순위 1위', '국내 CEO 100인이 사회 초년생에게 권하는 10권의 책' 등 타이틀이 너무 많아 소개하는 것도 일인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한길사, 1995)입니다. 인문학 책 추천에 빠지지 않는 스테디셀러죠. 






<로마인 이야기>는 저자 시오노 나나미가 15년에 걸쳐 집필한 대작으로 로마 제국의 1천년 역사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습니다. <일리아드>를 읽고 이탈리아에 심취, 이탈리아에서 30년이 넘게 독학으로 로마사를 연구한 시오노 나나미만의 시각이 듬뿍 들어가 있습니다.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던 로마 제국의 역사를 흥미진진하면서 제대로 알 수 있는 기회, 올 여름 방학은 <로마인 이야기>와 풍성하게 보내세요. 한 권, 두 권 읽다보면 <로마인 이야기>에 푹 빠져서 15권은 후딱 읽으실 수 있을거예요~





인문학 책 추천 넷!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마지막 인문학 책 추천! <로마인 이야기>에 이어 시오노 나나미의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입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 사랑은 유명하죠.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도 그녀의 로마 역사 사랑이 듬뿍 느껴지는 책입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도시국가 일개 서기관에 불과했지만 지금까지 회자되는 역사적 인물은 마키아벨리를 옆에 있는 친구 소개하듯이 편하고 재미있게 이야기 하고 있죠. 


이탈리아 반도를 넘보는 프랑스, 에스파냐 등 외부 세력과의 힘겨루기와 이탈리아 도시국가들간의 갈등 등 당시 이탈리아는 혼란과 역동의 시기였습니다. 이런 역사적 상황에서 르네상스의 중심 피렌체에서 평생을 살고 많은 업무가 집중된 서기관으로 일한 마키아벨리가 정치사상가로 지금까지 이름이 알려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마키아벨리를 보는 것이 곧 르네상스를 보는 것이라고 했던 시오노 나나미,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읽고 르네상스 시대도 보고 마키아벨리라는 대단한 친구도 사귀어보세요~





*시오노 나나미 특별전

15년에 걸쳐 완성한 역사 대작 <로마인 이야기>를 비롯해 강소국 베네치아의 흥망사를 다룬 <바다의 도시 이야기> 등 시오노 나나미의 스테디셀러를 구매하신 분 중 추첨을 통해 한샘 5단 책장(1명), 한길사 5만원 도서구입권(4명)을 드려요~ 행사도서 구매시 사용가능한 금액별 쿠폰 증정도 하니 이번 기회에 인문학 도서를 읽는 즐거움, 배우는 기쁨을 동시에 느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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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의 인문학 책 추천 어떠셨어요? <슬픈 열대>부터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까지 인문학 책 4권을 추천해드렸는데요. '인문학 책'이라고 하면 '어렵다'란 생각이 먼저 드시죠?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요. 일단 올 여름 방학에 짬을 내 인문학 책 읽기에 도전해 보세요~ 오늘 추천해드린 책 4권부터 시작하시면 재미와 배움도 동시에 충족시키실 수 있을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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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다반사2010.04.02 10:38



"첨벙첨벙, 쓱쓱."

보통 야근하는 시간대의 편집부 사무실은 타자 치는 소리가 미안할 정도로 조용한데, 어제는 수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신모 선배 책상에서 들리는 의심스러운 소리들. 그녀의 뒤에 조용히 다가가 무엇을 하는지 훔쳐보았습니다.



  

제가 다가가는 것도 모르고 무언가를 열심히 그리고, 칠하는 신모 선배.



무엇을 그리는 걸까요? 궁금증이 많은 저는 바로 취조(?)에 들어갔습니다.

"선배! 뭐하세요?"
"헉, 깜짝이야."

심하게 놀라는 모습조차 의심스럽습니다. 더 자세한 탐문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무엇을 그리는 건지 선배 책상에 널린 그림 하나하나를 조사하기로 했습니다.


  
보는 순간 교토를 사랑하게 될 앙증맞은 그림들.



대체 뭔지 감이 잡히질 않네요. 신모 선배님가 손수 붓을 들고 이 그림에 색을 입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저로서는 도통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계속 꼬치꼬치 캐묻는 게 귀찮았는지, 그제서야 무슨 지도 한 장을 건네시더군요.



교토 지도 위에 하나하나 앉혀지는 그림들.



"이 지도에 들어갈 작은 그림을 그리는 거예요."
 
부끄러운 듯 조심스레 설명하는 선배님. 그녀는 출간 예정인 『교토, 이런 곳 와 보셨나요?』의 부록인 지도 그림을 그리는 중이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벌써 몇몇 그림은 앉혀진 상태였습니다. 

그녀를 보니,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려면 편집자의 손길이 3,000번 닿아야 한다는 어느 편집자 선배의 한마디가 생각납니다. 그래서 모든 편집자들이 한결같이 "책 하나하나가 다 내 자식인데"라는 말을 달고 살고, 마감이 끝난 후 한 권의 완성된 책이 손에 쥐어지고 나면 그렇게 뿌듯하고, 자신이 편집한 책을 다른 사람이 읽고 있는 모습만 봐도 그 사람이 예뻐보이나 봅니다. 


취조(?) 끝나고 사진 한 장. 아직 남자친구 없으니 관심 있으시면 댓글 부탁해요^^*
 


그러고 보니 책은 이런 작은 부속 하나하나까지 편집자의 손길이 안 닿는 곳이 없다는 것도 모르고 그림놀이(?) 중이라 생각해서 괜히 한 선배를 의심했네요. ^^;; 이런 그녀의 노력이 있으니 이 책은 분명 사랑받겠죠?


- 편집부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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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다반사2010.04.02 10:28




조금 풀린 날씨 덕분에 그래도 조금씩 봄이 오고 있다는 생각을 한 화요일 저녁, 김민웅 선생님의 강의가 홍대 상상마당 4층에서 열렸습니다. 얼마 전『창세기 이야기』(전3권) 출간을 기념해 한길사가 마련한 강의였죠. 개인적으로는 입사 후 처음으로 갖는 외부행사라 설레는 마음으로 행사안내 포스터도 붙이고 내부 정리도 하며 독자 여러분을 기다렸어요.
한쪽 어깨에 기타를 메고 등장하신 김민웅 선생님을 뵈니 과연 어떤 강의를 들을 수 있을지 기대감이 한층 높아지더라고요.





They say it grows on the bank of the river of suffering Shine on me again,
and Weave, weave, weave me the sunshine out of the falling rain

사랑의 나무는 고난의 언덕에서 자란다고 하지요.
아, 내게 떨어지는 빗방울로 빛나는 햇살을 짜주지 않겠어요?

피터 폴 앤 메리, 「Weave me the sunshine」



「Amaging Grace」를 잠깐 연주하신 것으로 시작된 감미로운 노래와 기타반주는 「개똥벌레」, 「Weave me the sunshine」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노래들과 창세기 강의가 무슨 연관이 있는 걸까요?
거칠게 얘기하면 우리는 개똥벌레처럼 외롭고 힘없는 존재지만 「Weave me the sunshine」 가사처럼 떨어지는 빗방울로 빛나는 햇살을 짤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게 선생님이 이 노래를 선곡하신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창세기를 읽음으로써 바로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는 통찰력과 내공을 기를 수 있죠.






흔히 신약성서와 구분하기 위해 구약성서라 부르지만 원래 이름은 성서인 이 책은 한 사람의 작가가 쓴 책이 아닙니다.
여러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이야기를 또 수많은 사람들이 기록하고 덧붙이고 해 지금의 성서가 완성된 것이라고 해요. 선생님께서는 성서의 주인공들이 모두 핍박받고 절망에 빠진 비주류였다는 점을 강조하셨습니다.
이스라엘에서 노예로 끌려온 히브리 사람들이 마주한 것은 바빌론의 엄청나게 발달한 문명이었죠. 거대한 건물들, 좋은 옷을 입은 사람들,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발전한 도시, 문명의 중심 바빌론이었지만 그들은 그곳에서 노예에 불과했습니다.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힘든 그런 상황 속에서 그들은 영혼 없는 문명을 부러워하기보다 가치 ․ 생명 ․ 사랑의 힘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서가 어느 고전 못지않게 인문학적인 의미가 있는 책인 이유입니다. 가치의 의미를 깨닫는 사람들이 등장한다는 점이요. 글쎄요, 너무 순진한 소리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은데요. 문명이 발전하면 할수록, 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우리는 행복해질까요? 과연 얼마만큼 발전해야 우리는 만족하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비록 바빌론의 발달된 문명을 갖지 못했지만, 그래서 노예의 신분으로 그들에게 핍박받고 있지만, 자신들은 하나님의 형상 품격을 닮은 소중한 생명이며 귀한 존재라 생각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가치를 깨달은 것이죠. 나는 소중한 사람이니 지금은 이렇게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꼭 밝은 미래를 맞이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었답니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자신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사람인지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남과 비교하며 자신을 비하하기도 하고, 마음대로 잘되지 않는 세상사에 지칠 때도 많죠.

"창세기에서 말하는 창조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어둠, 혼란, 공허함 속에서 빛이 나오는 것이죠.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것입니다. 저녁이 없으면 아침을 맞을 수가 없어요. 우리 인생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벼랑 끝까지 내쳐졌을 때, 절망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힘들 때, 자포자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가치를 다시 깨닫고 삶을 성찰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고 나면 누구든지 인생의 절정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 그때가 스무살일 수도 있고 어떤 이는 일흔살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 모두 이런 기회를 맞이할 자격이 있는 소중한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선생님께서 인생이란, 아직도의 문턱을 넘어 드디어로 가는 길이라고 하셨는데, 정말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희망을 얘기하는 건 참 쉽지만, 정말로 희망을 갖는 일은 무척 어려운 세상입니다. 앞으로 주야장천 아직도의 문턱에서만 허덕이다 내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닌지, 과연 드디어의 감격을 맛볼 수 있을지 걱정되고 두려워질 때, 창세기 이야기에 귀 기울여봐야겠습니다. 드디어까지는 아니더라도, 결국이란 말로 마무리 짓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 편집부 김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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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몇 년 전 비가 부스스 내리던 날, 종로 스폰지하우스에서 영화를 봤습니다.
제목은 '카모메 식당', 핀란드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일본 여성과 무슨 이유에서인지 홀로 그 먼 북유럽 땅으로 여행을 온 일본 여성들의 소소한 에피소드를 그린 영화입니다.
스토리와 배우들의 연기에 즐거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지만 제게 있어 이 영화는 그 포인트가 다소 달랐어요.


코피루왁, 이딸라와 아라비아 핀란드의 테이블 웨어, 갓 구워 나온 시나몬 롤, 독수리 오형제 주제가, 그리고 미도리가 읽고 있던 책 '무민'까지, 자잘한 조각들이 모여 큼지막한 행복을 만들어 내더군요. 비슷한 연배의 지인들은 영화에 등장한 무민을 이미 초등학교 때 동화책으로 읽었다고 하던데, 전 이 하마같이 생긴 동물의 존재를 여기서 처음 알게 되었어요. 핀란드의 특산물은 자일리톨과 사우나만 알고 있던 제가 뭔가 대단한 걸(?) 발견한 순간입니다.


 

영화 <카모메 식당>의 장면, 미도리가 보고있는 책은『무민 계곡의 여름 축제』(왼쪽)
한길사에서 출간된 같은 책『무민 골짜기의 여름』(오른쪽)


무민은 핀란드 작가 토베 얀손의 작품으로 아스트랄 센스가 가득한 판타지입니다.
등장인물을 살펴보자면 모험을 좋아하는 주인공 무민트롤과 그의 단짝 스니프, 시니컬한 꼬마 미, 가장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떠돌이 스너프킨, 무민 골짜기의 모든 트러블을 특유의 따뜻함으로 품어버리는 엄마 무민 등이 있습니다.


무민 가족을 중심으로 골짜기 주민들이 벌이는 소동과 모험은 대단하지도 거창하지도 않은 것이지만 그들이 문제를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다 보면 마음이 포근해져버리고 말아요.
복작거리며 사는 것은 우리와 마찬가지지만 서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골짜기의 주민들은 누구 하나 소외되는 일 없이 행복할 것만 같습니다.


 

무민 골짜기의 겨울 풍경 : 원래 겨울잠을 자야 할 무민 가족이 이러고 놀고 있다!

(안쪽으로) 썰매를 타는 엄마 무민과 썰매를 밀어주는 아빠무민
(중앙 뒤) 썰매를 타고 언덕을 튀어 오르는 꼬마 미
(중앙 앞) 다정하게 스키를 즐기는 무민트롤과 그의 여자친구 스노크 아가씨
(앞쪽 오른쪽) 휴식을 취하는 스니프 (왼쪽) 말을 끌고 골짜기를 떠나는 스너프킨의 모자

 

인터넷을 잠시 검색하면 무민과 관련한 캐릭터 상품과 테마파크 등을 보실 수 있어요.

괜히 검색했다 싶었던 일본 도쿄돔의 무민 레스토랑은 혼자 식사 온 손님의 맞은편에 대형 무민트롤 인형을 앉혀준다고 합니다! 무민과 식사라니!! 이들의 마케팅에 두 손을 듭니다.

이것이 '내년 휴가는 무조건 일본이다..!'라고 마음먹은 가장 큰 이유라면 놀림당할까요?;;


소년한길에서 출간된 즐거운 무민 가족 시리즈는 총 8권입니다.

순서대로 읽어도 좋고 손에 잡히는 대로 읽어도 좋아요.

어린 시절, 이 책을 읽었다면 좀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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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다반사2010.03.03 11:05



민족마다 특유의 정서가 있다. 우리 민족의 정서는 흔히 ‘한’(恨)으로 나타난다. 음악에서 ‘한’의 선율은 비애감과 애절함이 감돈다. 그러면서도 감미롭다. 중앙아시아 음악이 그렇고, 어딘가 모르게 북구와 러시아 음악이 그렇다. 유대인의 음악이 또한 그렇다. 이것은 그들의 민족 정서가 우리와 비슷해서일 것이다. 유대계 독일 작곡가 막스 브루흐의 절실한 비애가 감도는 음악을 그래서 우리가 더욱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브루흐는 음악교육을 어머니로부터 배웠다. 어머니는 라인 음악제에 독창자로 출연할 만큼 우수한 소프라노였으며, 아들의 음악재능을 일찍부터 개발해 열한 살 때인 1849년 첫 교향곡을 쓰게 했다. 1852년에 브루흐는 모차르트 장학금을 획득하여 힐러와 라이네케에게 본격적으로 작곡공부를 시작했으며, 1868년에 라인 음악제에서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이 요아힘에 의해 연주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브루흐는 바이올린 협주곡을 세 곡 남겼는데, 이 제1번은 멘델스존 이후 가장 많이 연주되고 있는 걸작이다. 선율은 비애감이 넘치나 비르투오소가 좋아하는 자유로운 형식과 활달한 기교가 돋보이는 감미로운 곡이다.

 

그는 독일 태생이지만 평소 영국 문학과 풍물에 흥미를 가졌고, 1879년에는 리버풀 교향악단의 지휘자로도 활동했다. 이 무렵에 그는 또 하나의 걸작, 바이올린과 하프와 관현악을 위한 「스코틀랜드 환상곡」을 베를린에서 작곡했다. 이 작품의 직접적인 동기는 영국 소설가 월터 스콧의 작품을 읽고 감명을 받아서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1881년 마흔셋의 나이에 베를린에 사는 소프라노 투체크와 늦은 결혼을 해 행복감에 젖는다.


백순실「브루흐의 '콜 니드라이'를 들으며」2004, 석판화(ed.50), 25×35cm

브루흐의 작풍은 양식 면에서 멘델스존의 영향이 짙게 배어 있다. 그는 긴장된 리듬과 라인 기질이라 할 만한 감각적인 기쁨을 나타내고 풍부하게 흐르는 선율로서 격정적인 낭만정신을 담았다. 결혼할 무렵 그는 그의 최고 걸작이라 할 첼로와 관현악을 위한 「콜 니드라이」(Kol Nidrei)를 작곡한다. 이 곡은 옛 헤브라이의 「콜 니드레」 선율을 변주곡 형식으로 꾸민 환상곡이다. 본래의 선율은 지혜를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유대교에서 속죄의 날 저녁 교회마다 부르는 특별한 성가였다. 「콜 니드레」는 ‘신의 날’을 의미하며 극히 신성한 노래로 여겨지고 있다. 

 

이 곡은 브루흐가 투체크와 결혼하기 전년도쯤에 작곡되었으니 그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에 태어났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곡은 경건한 종교적인 내용을 다루면서도 낭만의 정서가 짙게 흐른다. 종교적인 정열이 넘치고, 유대의 민족적인 슬픈 선율이 매우 강렬한 인상을 준다.
「콜 니드라이」는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첫째 부분은 4분의 4박자의 느린 라단조의 종교적인 정열이 배인 조용하고도 비통한 선율로 시작되다가 유창하고도 장엄한 선율로 전개되어 첼로다운 울림을 준다. 둘째 부분은 라장조로 바뀌어 다소 격렬해지면서 하프가 읊조리는 그윽한 아르페지오를 배경으로 첼로는 밝으면서도 강한 선율을 노래한다. 이것이 독주 첼로로 넘겨지면서 변주형식으로 전개된 뒤에 전곡이 쓸쓸히 끝난다.

 

브루흐가 감동적인 종교음악 「콜 니드라이」를 작곡하게 된 것은 그의 심연을 흐르는 유대  민족의식이 작용한 이유도 있겠지만 스스로가 인간정신 가운데 참회와 속죄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종교적인 「콜 니드라이」는 세속적인 인간생활에까지 정서적 행복감을 안겨준다. 이 곡은 그만큼 종교적인 정열이 충만하고, ‘한’의 울음 같은 비애의 가락이 매우 절실하다. 

추천 음반


브루흐 「콜 니드라이」, 1880년 무렵
Max Bruch(1838~1920), ‘Kol Nidrei’, op.47

- 제임스 레바인(지휘)/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매트 하이모비츠(첼로)/DG
- 랜돈 로날드(지휘)/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파블로 카잘스(첼로)/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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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수백 년 전 비발디의 소원을 이뤄주다


책의 제목이 확정되고 그것을 최종 교정지에 옮겨 쓰는데, 마치 내가 수백 년 전 비발디의 소원을 이뤄주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왜냐고요? 비발디는 태어나자마자 장차 성직자가 되어야만 하는 운명에 사로잡히게 되거든요. 음악가 비발디를 친숙하게 알아온 우리로서는 웬 성직자? 생뚱맞게 여길 수 있지만, 당시에 상황은 정말 그랬습니다. 비발디는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헐떡였습니다. 그래서 애가 탄 비발디의 어머니는 아이를 살려만 주신다면 반드시 성직자로 키우겠다고 맹세해버립니다. 신기하게도 그 기도가 끝나고 아기는 숨을 쉬었고요.이때 이뤄진 어머니의 맹세 때문에 비발디는 자기 의지와는 털끝만큼도 상관없이, 오로지 어머니의 맹세를 지키기 위해 신부님이 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사람들은 붉은빛 머리카락을 지닌 비발디를 가리켜 ‘빨강머리 신부님’이라고 부릅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연주하는 감미로운 바이올린 소리에 잠을 깨고, 네 살 무렵부터는 직접 바이올린을 배우며, 오로지 음악에 인생을 바치겠노라고 결심한 비발디로서는 당연히 탐탁지 않은 별명이었지요. 그래서 내심 사람들이 ‘빨강머리 신부님’이 아닌 ‘빨강머리 바이올린 연주자’ 혹은 ‘빨강머리 음악가’라고 불러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비발디의 소원이 그의 살아생전에 이뤄졌을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나중에는 음악에 전념할 수 있었으니, 누군가 그를 가리켜 ‘빨강머리 음악가’라고 불렀을 수도 있겠지요.

 

그랬든 안 그랬든, 비발디가 세상을 떠난 지 수백 년이 흐른 지금 우리가 그를 ‘빨강머리 음악가 비발디’라고 부르는 것은 뜻 깊은 일입니다. 그 모든 어려움을 겪어내고 자기 인생을 헌신해 오늘날까지도 사랑받는 명곡들을 만들어낸 그에게 존경과 사랑을 가득 담은 꽃다발을 안겨주는 것 같다고나 할까요? 오랜 시간 번역과 편집, 인쇄, 제본, 코팅의 과정을 거쳐 내 손에 들어온 책의 표지를 바라보며 속삭여봅니다. “빨강머리 음악가 비발디 씨!”

 


꿈은 꾸는 것이 아니라 이루어내는 것이다      

 

잠시 생각해봅니다. 만약 비발디가 그저 빨강머리 신부님에 머물러 자기 꿈을 포기했더라면, 음악에 인생을 바치겠다는 자신의 뜨거운 결단을 모른 척 내버려뒀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의 비발디도, 사계절을 선율 속에 담아낸 클래식 명곡 「사계」도, 음악가 비발디의 삶을 다룬 이 그림책도 없었겠지요.


 

이 책은 무엇보다도, 꿈을 이루는 과정의 험난함을 보여줍니다. 비발디는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을 때부터 음악을 꿈꾸었습니다. 바이올린 연주자였던 아버지에게서 처음 바이올린을 배웠던 날엔 연주가 마치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는 것처럼 쉬웠다’고 표현하지요. 생전처음 오케스트라와 함께 바이올린을 연주했을 때는 ‘음악 외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고 하고요. 또 신부님이 되어서 시간에 쫓겨 집으로 가는 곤돌라에서 작곡을 해야만 했을 때에는 ‘온종일 곡만 쓸 수 있다면 좋을 텐데’하고 아쉬워합니다.


이토록 음악에 대한 열망이 컸는데도 비발디가 그 열망을 현실로 만들기까지는 참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의 반대, 천성에 맞지 않는 성직자 생활, 자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 비발디는 스스로의 재능을 믿고 꿈을 이루겠다는 마음 하나로 이 모든 장애물을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세계적인 음악가 비발디가 되었고요.


이 책을 만들기 전에는 ‘비발디’하면 「사계」를 떠올렸을 뿐, 그의 숨은 삶이 어떠했는지는 전혀 몰랐습니다.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같은 음악가들에 비해 비발디의 생애가 덜 알려진 것도 사실이고요. 그래서 작업하는 내내 비발디라는 이 ‘꿈에 미친 사나이’가 신기했고 존경스러웠어요. 가족과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꿈을 가진 아이들, 장차 예술가를 꿈꾸는 아이들이 읽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꿈은 꾸고 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이루어내야 하는 것이라는 걸 아이들과 여전히 꿈을 이루지 못한 어른들이 이 책을 통해 깨달았으면 합니다.

 

      안토니오 비발디 (1678-1741)

 


꿈에 미친 또 다른 사람들, 시펠먼 부부

 

이 책의 글을 쓴 재니스 시펠먼과 그림을 그린 톰 시펠먼은 부부입니다. 시펠먼 부부는 오래전부터 함께 책을 만들어왔습니다. 부부가 일을 같이 하거나 여행을 가면 사이가 안 좋아진다는데 이 부부는 그렇지 않은가 봐요. 반드시 상대방하고만 작업을 했을 뿐 아니라, 여행도 함께 자주 다녔다고 하니까요. 어린 시절부터 책을 좋아하던 소년 소녀가 만나 부부가 되었고, 그 뒤로 아내는 글을 쓰고 남편은 그림을 그려서 함께 아름다운 그림책을 만들어낸다니 참 보기 좋지요?


시펠먼 부부 - 베네치아에서


시펠먼 부부가 비발디의 삶을 다룬 이 그림책을 만들게 된 계기는 간단합니다. 비발디의 음악과 비발디가 살던 베네치아를 좋아해서이지요. 얼마나 좋아했던지 베네치아에 아예 잠시 살았을 정도랍니다. 그곳에 머물면서 재니스 시펠먼은 비발디의 생애를 조사하고, 톰 시펠먼은 구석구석 돌아다니면서 비발디가 살았던 당시 베네치아의 모습을 종이 위에 재현해냈습니다. 시펠먼 부부의 홈페이지인 www.shefelmanbooks.com에 들어가면 베네치아에 머물던 시절의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부가 지금까지 만든 책, 자신들의 작업에 대한 생각도 엿볼 수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글도 글이지만, 공간감 넘치는 그림이 매우 좋았습니다. 톰 시펠먼은 건축가이기도 한데요. 그래서인지 화려하고 웅장한 산 마르코 대성당, 성당 안의 구조물과 장식들, 찬란한 대저택 등을 아주 섬세하게 표현해냈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곳에 가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여서, 이처럼 꼼꼼하게 그림을 그린 톰 시펠먼의 열정이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시펠먼 부부와 비발디는 삶을 살아가는 자세에서 닮은 구석이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이렇게 훌륭한 책이 탄생할 수 있었나 봅니다.


- 편집부 김연희


재니스 시펠먼 글・톰 시펠먼 그림・이혜선 옮김|양장|32쪽|값 10,000원|2010년 1월 2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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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한길사 / 한길아트2010.02.16 10:12




『성경』은 희망과 구원의 역사를 기록한 놀라운 책이다. 그 중에서도 첫 번째 책인 「창세기」는 인간의 창조와 그 시작의 의미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또한 아브라함-이삭-야곱-요셉으로 이어지는 믿음의 조상들에 대한 감동의 드라마가 우리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점에서 종교의 유무를 떠나 꼭 읽어 보아야 할 고전이다.

방송인이자 언론인이며, 대학에서 세계체제론과 기독교 윤리를 가르치는 김민웅 교수가 희망의 메세지를 가득 담아 『창세기 이야기』(전3권)를 펴낸다. 알고 보면 그는 미국에서 20여 년간 목회를 했고, 최근 기독교방송 '성서학당'에 출연하여 많은 사람들을 새로운 성서 읽기로 안내했다. 이 책은 이런 그의 오랜 경험을 오롯이 담아 낸 것이다.

그에게 『창세기 이야기』출간의 의미를 물었다.



● 성서의 많은 책 가운데 특별히 「창세기」에 주목한 까닭은?

 

「창세기」는 무엇보다도 '생명에 대한 시원적(始原的)풍경'을 가장 풍부하게 담고 있다. 그런 까닭에 이 책 읽기를 통해 생명이 도처에서 위협받고 있는 시대에, 생명을 살려 내는 힘의 근원을 일깨우고자 했다. 「창세기」는 또한 문학, 철학, 예술 전반에 걸쳐 깊은 영감을 불어넣으며 인류사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이에 대한 본격적인 성찰과 논의가 부족한 편이다. 「창세기」깊이 읽기를 통해 우리의 인생을 바로 세우고, 사회에 희망을 더하며, 더 나은 미래의 대안을 창조해 나갈 수 있었으면 한다.

 

 

● 일반인들도 성서를 읽을 수 있나?

 

성서를 특정 종교의 경전으로만 대하지 않았으면 한다. 성서에는 사랑과 배신, 전쟁과 평화,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 절망과 희망, 성공과 몰락 등 인간이 겪게 되는 삶의 온갖 모습이 담겨 있다. 죽음의 끝, 절망의 밑바닥, 벼랑 끝에 몰려 본 사람들이 도달한 영적 각성의 지점이 어디에 있는가를 아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알고 싶은 바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성서는 끊임없이 되돌이켜 읽게 되는 인류의 고전이다.

 

 

● 성서를 읽을 때 주의해야 할 점은?

 

신화적 드라마가 아닌가 하는 선입관을 가지고 읽거나 교리에만 얽매인 채 질문하지 않는 읽기는 바람직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성서에 기록 된 이야기의 의미를 편견 없이 늘 새롭게 묻고 깨우치는 것이다. 성서를 쓰고 읽은 사람들은 오늘날 우리와는 여러 가지 면에서 거리가 있다. 따러서 성서 기록의 표현상 특징을 잘 이해하고 그 맥락을 파악하면, 이 책을 기록하고 정독했던 사람들의 현실과 마음에 깊이 스며들 수 있다.

 

 

●「창세기」에서 가장 감격적인 대목은?

 

감격이라는 말이 참 좋다. 실로 창세기 첫 구절부터 그렇다. 하나님은 빛을 창조하시는 재료로 태초의 그 거대한 어둠과 혼돈, 허무를 들어 쓰셨다. 내 인생이 아무리 어둡고 혼란스러우며 허무하게 느껴질지라도 그런 내 인생이 빛과 생명으로 다시 창조될 수 있다면 그 이상 감격스러울데가 있겠는가? 「창세기」는 종교적 교리를 설명하려 들거나, 도덕적 원칙에 대한 설교, 인간의 죄를 꾸짖는데 목적이 있지 않다. 인간이 얼마나 약점이 많고 흔들리기 쉬운 존재인가? 그런 인간을 힘 있게 살리는 것은 생명력이 충만한 감격이다.

 

 

●「창세기」를 보면 행복의 근원이 가정에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데?

 

가정은 원초적 공동체로서 한 인간의 성장사에 근본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창세기」는 그 가정의 울타리 밖으로 내던져졌을 때 인간이 어떻게 성장해 나갈 수 있는가를 줄기차게 묻는다. 모든 것이 태생적 권리처럼 주어지는 가정과 달리, 격토를 벌이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어떻게 우리의 선함과 의로움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지를 성찰케한다. 그래서 가정만이 아니라 이 사회 전체가 행복의 현장이 되게 하려는 것이 「창세기」의 목적이다.

 

 

● 실업자 400만 시대, 팍팍한 현실 「창세기」가 희망을 줄 수 있다면?

 

하루의 완성을 「창세기」는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니"가 아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라고 말하고 있다. 즉 어둠이 지나고 빛이 오면 그때 하루의 의미가 완결된다는 것이다. 시련이 곧 새로운 미래를 위한 훈련장이다. 어떤 곤궁한 처지에 있더라도 자기를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이 마련해 주시는 새로운 때와 무대를 기대한다면 절망은 없을 것이다. 이삭은 자기가 애써 판 우물을 수없이 빼앗겼지만 우물을 다시 파려는 의지는 결코 빼앗기지 않았다. 결국 그는 모든 고난을 이겨 냈다.

 

창세기 이야기(전3권)

김민웅 지음|한길사(3월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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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한길다반사2009.12.28 11:20


지난 12월 19일 토요일, 헤이리 북하우스에서 한길사 33주년 송년모임이 열렸습니다.

영하의 강추위가 일주일째 계속되고 있었지만,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한길사의 주요 저자들을 비롯해
문화예술 관계자들 150여 분이 참석해주셨습니다. 행사는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의 사회로, 저자 덕담과 인사, 낭독회, 국악공연, 소연(小宴) 등의 순서에 맞춰 2시간여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김민웅 교수는 출판을, 외로운 산사를 지키고 서 있는 천년 세월의 은행나무에 비유하며, 한길사가 걸어온 인문출판의 길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출판이 없다면, 아무리 훌륭한 생각과 경륜을 담은 책이라도 탄생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출판의 노역(勞役)은 문명의 산고를 마다하지 않는 이들의 끊임없는 헌신이다. 한길사는 어느새 서른세 해를 넘기면서 그런 나무를 기르는 영혼의 사제이자, 문명의 건축자로 지지지 않는 열정을 뿜어내고 있는 우리의 소중한 자랑이 되었다.”

뒤이어 최영준 고려대 명예교수는 “사람은 자기의 숨은 재능을 발견해주고 밖으로 이끌어주는 이를 은인이라고 한다면, 한길사는 분명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고 축하의 말을 해주었다.
선생은 1980년대 한길역사기행에 남한강 수로 답사와 강화도 간척지 답사 인솔자로 처음 참가한 이후, 『국토와 민족생활사』 『한국의 짚가리』 등 일련의 저작들을 펴내기까지 한길사와의 오랜 인연을 돌아보면서, “본래 어눌하고 글재주도 없는 자신을 독려하며 책을 쓰도록 용기를 북돋워준 것은 다름 아닌 한길사였고, 지금도 그 관계는 계속되고 있다”고 회고했습니다.

사실 선생과는 ‘개화기 경상남도 촌락 연구’라든가 ‘실크로드 연구’, 그리고 지난 20년 동안 강원도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기록했던 일기를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담론과 성찰』 1호에 「홍천강변에서의 20년」이라는 한 편의 글을 통해 선생은 지리학자로서 농사를 지으며 우리 농촌과 자연에 대해 느끼고 깨달은 이야기를 참으로 감동적으로 들려주었습니다. 이제 그 20년 동안의 농사일기가 독자들에게 오롯이 공개되어, 소로의 『월든』 못지않은 책으로 태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함석헌 선생님의 글 두 편을 낭독하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한길사는 올해 『함석헌저작집』 전30권을 출간하고, 함석헌기념사업회와 교보문고와 손잡고 10회에 걸쳐 선생님의 대표적인 글들을 가려 뽑아 독자들과 함께 읽어보는 낭독회를 열었는데, 그때의 뜨거운 감동을 송년모임에서 다시 공유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앵콜 낭독’이 되는 셈인데, 조각가 최만린 선생이 「모산야우」(毛山夜雨)를, 방속작가 이인경 씨가 「나의 어머니」를 낭독해주셨습니다.


「모산야우」를 낭독하는 조각가 최만린 선생

「모산야우」는 밤비 소리를 듣는 마음으로 정치를 하고 인생을 산다면 이렇게 거칠고 사납고 매정한 사회가 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곤고한 자에게 “마음의 동무가 되어주십시오” 하는 함 선생님의 당부와 씨알을 생각하는 마음이 잘 드러난 글입니다. 「나의 어머니」는 헌신과 자애로움으로 길러주셨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며, 이 시대의 아들딸, 곧 민중들에게 선생님 역시 그렇게 살고자 했던 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내 생각은 말고 어서 갈 길 가거라” 하는 ‘영원한 슬픔의 형상’인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함 선생님의 글은 다시 들어도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때로는 노래요 웅변이며, 시요 논설인 글에서 역사와 시대, 사회와 이웃,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삶을 깊이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어 김언호 한길사 사장님은 참석해주신 많은 내빈들께 인사 말씀을 올렸습니다. 험난한 출판 여정을 오늘에까지 이어올 수 있도록 해준 시대와 독자, 그리고 많은 저자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시대의 현인(지성)들과 함께 열심히 공부하는 자세로 책을 만들었던 일은 한 출판인에게는 그야말로 ‘신명나는 축제’였다고 회고했습니다. 또한, 사람의 나이로 따지면 더 원숙하고 활발한 활동을 펼칠 서른세 돌을 맞은 만큼 내년에는 더욱 분발하는 출판사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사장님은 올 상반기에 『책의 공화국에서』라는 저서를 통해 책 만들기의 열정과 신념을 유감없이 들려준 바 있었습니다.

한편 책의 내용적 가치뿐만 아니라 외면적 미학성에도 관심을 가져온 만큼 송년모임에 맞춰 ‘책, 오래된 빛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사진전을 함께 열었습니다. 노랗게 색이 바랜 책장, 아름다운 훈민정음 언해본의 활자, 가죽장정이 멋스러운 고서들, 붉은색 검열도장이 찍힌 원고뭉치, 활판인쇄 시대의 지형 등 다양한 책의 아름다움을 사진에 담아냈습니다.


사진전  ‘책, 오래된 빛을 찾아서’ 전시작품 일부


마지막 순서인 판소리 축하공연에서는 시종 진지하게 진행된 모임에 한바탕 웃음꽃을 피우게 했습니다. 대사습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전주의 소리꾼 김연 명창과 서예가로 유명한 하석 박원규 선생이 고수로 호흡을 맞춰 홍보가, 심청가 등의 주요 대목을 들려주었습니다. 하석 선생은 40대 젊은 날 전주에서 서예를 배우는 한편, 따로 국악원을 다니고 사사를 해서 배운 숨은 북 솜씨를 마음껏 보여주었습니다. 북채를 놓은 지 10년도 넘었다지만, 힘 있는 추임새와 북소리는 김연 명창의 목청을 더욱 신명나게 돋우었습니다. 김 명창은 소리도 소리였지만 좌중을 휘어잡는 활달한 재담이 근엄한 선생님들을 한순간에 무너뜨렸습니다. “얼씨구, 좋다, 잘한다” 추임새도 유도하고, 판소리에 담긴 우리 조상들의 해학과 풍자정신도 가르쳐주는 등 객석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습니다.

김연 명창의 판소리 공연 (오른쪽 : 서예가 하석 박원규 선생)


김 명창은 자기 것밖에 모르고 경쟁 위주로만 치닫는 오늘날의 사회풍조가 안타까워, 어디 공연을 가더라도 꼭 하는 얘기가 있다고 했습니다. “추임새 나는 세상을 만들자!” 소리꾼이 잘 놀 수 있도록 추임새를 넣어주는 고수처럼, 우리 사회는 남이 잘 되도록 응원해주고 칭찬해주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심청가 중 ‘심봉사 눈뜨는 대목’은 광명천지를 꿈꾼 가난하고 어리석은 민초들의 염원을 담은 노래라며, 책을 쓰고 책을 펴내는 일은 바로 우리 사회를 더욱 밝히는 일이라는 점에서 중요하고, 서른세 돌을 맞은 한길사의 출판 정신과 노고를 높이 치하한다고 말했습니다.




* 다음은 이날 행사에서 발표한 김민웅 선생의 축사 전문입니다. 

 

문명의 숲길, 한길사의 인문정신,

나는 한길사의 책만들기 33년을 말하고 싶다


ㆍ김민웅(성공회대 교수)


 

천 년 세월의 은행나무 한 그루


속세의 온갖 눈물과 아픔을 씻어내리고 들어서는 일주문을 지나 소나무들이 춤을 추듯 사방에서 나타나는 산길을 오르면, 저편에 문득 사찰 하나 가람의 선을 소박하게 드러내고 그 곁에는 우람한 은행나무 한 그루가 거리낌 없이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고 있다. 그 나이가 무려 천 년이 넘는다고 하니, 그간에 지켜보았던 세월이 무척 깊을 것이다.

오래된 고목이지만 기이하게도 늙어 시들지 않았고, 속이 말라 허무해진 껍데기만 지닌 채 간신히 버티고 서 있는 것도 아니었다. 원시의 생명력을 그대로 간직하고 바람과 햇살과 별들이 스쳐 지나게 한다. 침묵하고 있어도 이미 말하고 있고, 아무 소리도 듣고 있지 않은 것 같지만 숱한 이들의 하소연에 귀 기울이고 있다. 누가 부르는 슬픈 곡조인가 싶게 은은히 들리는 스님의 『금강경』 읽는 소리가 어우러지면, 천 년의 고독이 이내 실타래를 풀며 그간에 켜켜이 쌓아두었던 이야기를 들려줄 듯싶다.


어쩌면 위대한 책은 이 외로운 산사의 은행나무를 닮은 것이 아닌가 한다. 유행과 대세를 허둥거리며 뒤쫓지 않고, 모두가 떠난 뒤 홀로 남겨져도 쓸쓸해하지 않는다. 세월에 마모되지 않고 풍파에 휩쓸리지 않는다. 아니, 고목이 되어갈수록 도리어 빛난다. 위엄과 품격이 그렇게 태어나 우리 앞에 우뚝 서 있다. 날로 하늘을 향해 더욱 높이 치솟고, 땅속에 더욱 깊이 박혀간다. 뿌리는 뻗을수록 굵어지고 몸은 휘어 굽지 않는다.



문명의 사제 한길사


이런나무를 제대로 알아보고 심고 기르며, 무성한 숲이 되게 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영혼의 터를 가꾸는 참된 사제다. 돈을 받고야 비로소 움직이고, 얄팍한 이해타산을 앞세우는 삯꾼이 아닌 것이다. 출판은 다름 아닌 이 영혼의 힘을 기르는 문명의 사원을 지켜내고 산 아래서부터 그리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길라잡이다. 출판이 없다면, 아무리 훌륭한 생각과 경륜을 담은 책이라도 탄생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출판의 노역(勞役)은 문명의 산고를 마다하지 않는 이들의 끊임없는 헌신이다.


한길사는 어느새 서른세 해를 넘기면서 그런 나무를 기르는 영혼의 사제이자, 문명의 건축자로 지치지 않는 열정을 뿜어내고 있는 우리의 소중한 자랑이 되었다. 한길사를 빼놓고 이 나라 독서문화를 이야기할 수 없고, 지식의 최전선을 향한 모험을 거론할 수 없다. 한길사는 돈을 벌기 위해 책을 찍어내는 문화사업자가 아니라 출판이 지적 충격을 동반하는 하나의 사건이 되게 하여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산맥을 일으켜세울 줄 알았고, 그곳에서 발원하는 무수한 지류의 출발이 되었다.


그런 충격의 지적 파장을 가져온 책의 제목을 하나하나 거론하기에도 벅찰 정도다. 1977년부터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필두로 한 ‘오늘의 사상신서’를 통해 리영희, 송건호, 박현채, 김정한, 강만길, 이오덕, 안병무, 고은, 서남동, 이효재, 박순경, 차기벽 등 당대의 대표적 지성들을 역사의 무대에 세워 혹독한 겨울의 추위를 이겨내게 한 공은 고스란히 한길사로 돌아가야 한다. 한길사의 책들이 출간될 때마다 한국사회는 소용돌이치듯 흥분했고, 미래를 가로막고 있는 장애를 힘차게 돌파하는 기쁨을 누렸다. 그 대가로 한길사가 치러야 했던 희생도 세월이 지나고 보니 이젠 역사의 훈장으로 돌아왔다. 검열과 판금 자국이 뚜렷한 원고와 책들이 한길사의 영광으로 살아남았으며, 시간이 흘러 상처가 아물면서 그것이 힘이 되었다.


돌아보면 한길사가 창립된 1976년 12월이 어떤 시기였는가. 국가의 폭력이 정치라는 이름으로 군림했고 민주주의는 질식 상태에 놓여 있었다. 생각의 지평은 중세적 암흑에 갇혀 있었으며, 시대는 지적 목마름으로 방황하고 지식인들은 침묵을 강요당했다. 한길사의 기획은 그런 시대에 대한 암중모색 정도가 아니라, 위험을 각오한 도전이었고 역사의 지침을 분명하게 인식한 결단이었다. 힘겹게 지내야 했던 70년대로부터 80년대, 90년대로 이어지는 역사의 길목에서 함석헌도 그렇게 목소리를 냈고, 조정래의 『태백산맥』과 최명희의 『혼불』도 그렇게 등장했다. 이우성, 이광주, 김우창, 김윤식, 최일남, 김진균, 이만열, 최장집, 임철규, 임형택, 송재소, 임헌영, 최영준, 박태순, 이부영, 이삼성, 김상봉, 이정우, 김석희, 한정숙 등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연구자·지성인들이 저자로 참여해 찬란한 지적 연찬을 펼쳤다. 이들 저자·필자들과 함께하는 한길역사강좌와 한길역사기행, 한길사회과학강좌와 각종 토론회 기획들은 가히 선진적이었다.



한길사의 기획 정신, 출판인 김언호


그런 현실에서 시대의 화두를 단도직입적으로 던질 저자가 발굴되고, 그 저자가 집필하기까지 한길사는 단순한 원고청탁과 편집의 작업에 만족하는 출판사가 아니었다. 한길사는 자신을 앞세우지 않으면서도 저자와 정신적 공동저술의 고된 작업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책의 탄생’이 ‘책의 공화국’으로 이어지는 길을 뚫어냈다. ‘공화국’이 전근대와의 투쟁으로 이뤄낸 소산이었다면, ‘책의 공화국’은 앞선 시대정신의 보루였고, 전투가 필요할때면 서슴없이 나설 지성과 이성의 전사들이었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한길사 대표 김언호라는 걸출한 출판인이 있는 것이다.

그는 저 야만적이고 궁핍한 시절, 갓 서른을 넘긴 때에 한길사를 창립한 이래, 지금도 여전히 청년의 기운을 잃지 않는 출판 장인이다. 김언호의 한길사 출판은 시대를 정밀하게 독파하고 그 기운을 남보다 먼저 선명하게 포착하는 문화조직처였다.


그는 하나의 기획을 끝냈다 해서 그 자리에 머물지 않았고, 그다음 주제를 잡기 위해 훌훌 자리를 털고 일어날 줄 아는 출판 지식인이다. 시간이 지나면 본래의 정열을 상실하고 쇠퇴해버리고야 마는 혁명의 비극을 이겨내는 지혜를 배운 이의 선택이다. 그와 함께 일하는 이들은 그로부터 책의 정신을 온몸으로 익힌다.

그 렇기 때문에 김언호와 출판사 한길사는 당대의 현실과 마주하는 일에만 몰두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세계로 향했고, 대형시리즈 ‘오늘의 사상신서’뿐만 아니라 대형의 ‘민찬’ 『한국사』와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한길세계문학’을 비롯해서 월간 『사회와 사상』과 ‘한길신인문총서’, 『로마인 이야기』와 ‘한길그레이트북스’, ‘한국학술진흥재단 서양고전번역총서’ 등의 출간으로 잇달았다.


그중에서도 한길그레이트북스 기획은 세계 문명의 지적·사상적 성과를 한국사회에 구현한다는 지성사 차원에서도 중대한 사건이었다. 저자와 저서의 이름은 알려졌지만 읽을 기회가 없었던 인류의 고전 저작을 번역하고 해설해서 계속 내놓는 한길사의 작업은 우리 사회의 지적 저력을 높이는 데 크나큰 기여를 하고 있다. 레비-스트로스, 에릭 홉스봄, 한나 아렌트, 헤겔, 루소, 후설, 엘리아스, 화이트헤드, 마르크 블로크, 들뢰즈, 벤야민, 아도르노, 하이데거, 엘리아데, 토크빌, 조식, 일연, 이익, 순자, 한비자, 이지, 리쩌허우, 라다크리슈난, 마루야마 마사오 등이 이렇게 해서 한국 독자들과 만났다. 인문정신과 인문학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이지만, 출판을 돈과 동일시하는 풍토에서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출간된 지 오래되어 찾기 힘든 책들, 또는 하나로 묶어 그 자체로서 시대의 주제가 될 수 있도록 하는 복간과 재출간 작업도 의미 깊게 진행되었다. 함석헌, 송건호, 리영희, 이병주 등이 그렇게 새로운 시대의 옷을 입고 새로운 세대에게 다가설 수 있었다. 역사는 그런 식으로 한길사의 출판을 통해 생환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새로운 꿈, 새로운 실험


출판인 김언호의 기획과 생각은 또한 이에 그치지 않고, 뜻있는 일련의 출판인들과 더불어 동아시아 출판의 세계와 만나 우리의 지적 중심을 새롭게 세워나가는 일을 모색하고 있다. 문화로 세계와 어깨를 겨루면서 도약해야 하는 책임을 지고 나가려 하는 것이다. 이 역시 오늘의 시대에 요구되는 사건이다.

여기에 더해, 한길사는 별도로 ‘한길아트’를 설립해 미술출판을 해내면서 미술 전시 등을 기획하고 있다. 책과 예술의 결합을 위한 시도다. 책이 미술의 소재가 되고 미술이 다시 책이 되는 우리 일상의 풍경이란 그 자체로 미학적 감동이다.


책은 책의 내용만이 아니라, 그 책의 존재, 표지, 지질, 글자, 그림은 또 하나의 독립된 문화사이자 하나의 문명세계다. 책과 사람이 만나는 첫 번째 감동은 이렇게 해서 이루어진다. 그것을 담아내는 시도와 현장은 그래서 아름답다. 아름다움은 인간 영혼의 근본적인 갈망이다. 출판인 김언호와 한길사는 지금 이 아름다움을 향한 장인의 작업을 해내고 있다. 거친 시대와 격투를 해오면서도 끝내 놓지 않은 이 소망으로 해서 한길사의 책과 꿈은 아름답고 21세기적이다.


서재에 책이 그득한 풍경은 이미 경이로운 문명이다. 그건 문명의 숲에 난 산책로이기도 하다. 한길사는 그 숲길이다. 그런 한길사가 고맙다. 자본의 위력 앞에서 천박해지고 있는 정신과 현실 앞에서 인간의 영혼을 품격 있게 지켜내는 출판사와 출판인이 있다는 건, 우리 시대의 축복이다. 한길사는 서른세 해의 시련과 영광을 뒤로 하고 다시 앞으로 꾸준히 전진해나갈 것이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꺾이지 않는 꽃이 되고, 사막에 내던져져도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 물고기가 되기를 기원하면서, 이제 장년의 시절을 맞이하는 한길사의 내일에 백 년의 꿈을 꾸는 경륜이 넘치기를 빈다. 천 년 고찰(古刹)의 세월에 비기면, 백 년 정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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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 / 한길아트2009.12.26 18:51

미학을 공부했던 친구에게, 한국에도 미학이 있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어떤 특별한 의도를 가진 질문은 아니었다. 다만 정말 궁금해서였다.

 

친구는 미학이란 옛날부터 지금까지 인간이 무엇을 아름다움으로 느끼고 받아 들여왔는가에 대해 공부하는 학문이라고 했다. 영화나 연극 미학처럼 분야별로 구분을 짓기도 하지만 크게는 서양 미학과 동양 미학으로 나뉜다고 했는데, 그 가운데 동양 미학은 주로 한자를 익히고 중국의 미학에 대한 것이라 했다. 나는 그 점이 신기했다. 


 

한국의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이 책, 『고미술의 유혹』은 한국 미학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책은 아니다.

저자는 경제학을 공부했고, 한국의 고미술품을 수집을 취미로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들을 곁에 둔 지가 벌써 20년. 그는 미술이나 고고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적이 없음에도 긴 시간에 걸쳐 스스로 깨닫게 된 한국적인 아름다움에 쓰고 있다.
 


 

왼쪽: 홍 모시 조각보(보나장신구박물관 소장) 오른쪽: 피에트 몬드리안의 추상화



위의 두 가지 그림을 한번, 비교해 보자. 왼쪽은 조선시대 여인이 만든 조각보이고 오른쪽은 서양의 추상화가였던 칸딘스키의 그림이다. 대중에게 이름난 것을 따지자면 칸딘스키의 그림을 더 높이 치겠지만 아름다움을 그렇게 단순히 비교할 수 있을까? 물론 한국미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하는 저자는, 무명의 조선 여인이 무심無心으로 이룬 기하학적 구성이 단연코 더 뛰어나다고 말한다. 현대 회화의 인위적이고 계획적인 구성이 결코 우리의 그것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나는 저자의 이런 의견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는다. 진정한 아름다움 속에는 동양이나 서양의 구분을 뛰어넘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이해한다. 한국의 수많은 예술 작품은 실제로 우리가 이름을 알지 못하는 예술가의 손에서 탄생한 경우가 많다. 조선 시대 여인들에게서 나왔던 조각보뿐만 아니다. 아래의 민화도 그 예가 되겠다. 어쩌면 한국적 아름다움이란 실제로 이름 없고 가난한 예술가들이 이룬 긴 시간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민화(개인소장), 주로 병풍 형태로 꾸며져 안방이나 사랑방에 비치되었던 민화에는 화조, 십장생, 모란 등 다양한 소재가 등장한다. 소재가 그렇듯 민화에는 부귀영화와 장수를 염원하였던 우리 조상들의 솔직한 감정이 오롯이 담겨 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창작 그 자체도 대단하지만, 숨어있는 것들을 발견해낼 줄 아는 심미안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한 것이라고. 그래서, 어떤 프로듀서들은 세상의 숨어있는 노래들을 채보하는 것만으로도 앨범을 이루기도 하고 어떤 가수들은 흘러 다니는 코드를 묶어 자기 식으로 해석한 노래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궁극적으로는 화가도, 시인도, 세상의 모든 장면들을 질료로 엮어 자신의 작품을 만든다는 점에서는 모두가 수집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미술 수집가들은 다른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들을 모아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
그런데 궁극적으로 이런 수집에는 사실,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저 좋아서 시작한 것일 뿐.

 

20년도 더 된 80년대 말의 일이다. 서울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C시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자투리 시간에 별 생각 없이 근처 한 고미술품 가게에 들렀다. 그 가게 벽면에 걸려 있던 매화 그림이 그냥 마음에 들어 그때 돈 10만 원을 주고 산 것이 '고미술'이라는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로 가는 긴 여정의 첫 걸음이었다. _P. 10


 

글쓴이에게 정확히 매화 그림의 의미가 무엇이었느냐고 묻는다면, 그는 정확히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당시 단조로운 직장 생활에서 변화를 필요로 하고 있었고 그 그림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반대로 그림이 그를 알아봤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점점 고미술품을 모으는 흥미를 갖게 되면서 이런 저런 인연을 맺게 된다. 고미술품 가게를 운영하는 상인을 만나거나 도굴꾼을 만나기도 하고, 좋은 고미술품을 알려주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지만, 그에게 가짜 그림을 속여서 판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그러나 20년 전 그때, 우연히 그에게 시간이 나지 않았다면, 우연히 거기 매화 그림이 걸려 있지 않았더라면, 그 매화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지금 그는 그 사람들을 만났을 리 없다. 그는 그렇게 조금은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며, 이 책 역시 여기에 없었을 것이다.

 

- 편집부 장혜령

김치호 지음|양장|358쪽|값 22,000원|2009년 11월 3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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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다반사2009.11.24 18:27

쇤베르크의 현악 6중주곡 「정화된 밤」을 듣고 있으면 루오의 「월광」이라는 그림이 떠오른다.
어둡고 싸늘한 숲 속, 원무곡을 추는 듯한 보름달이 떠 있고, 숲 속 샛길에 어른거리는 두 남녀의 모습이 숲의 끝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 이 그림이 아니더라도 루오는 달빛이 비치는 밤 풍경을 상당히 많이 그렸다. 검은색의 굵은 선 터치로 강렬한 인상을 주는 그들 그림에는 으레 달무리 진 보름달이 떠 있다. 그래서 그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면 사방이 점점 밝아지는 듯한 종교적인 경건함이나, 고통 속에서 용서하는 그리스도의 정신세계를 경험하는 듯하다.


쇤베르크는 「정화된 밤」을 리하르트 데멜의 동명의 장시에 근거해서 작곡했다.
대략적인 시의 내용은 두 남녀가 달빛이 비치는 숲길을 걸으면서 남의 아기를 밴 사실을 조심스럽게 고백하는 여자를 남자가 용서하고 사랑을 나누는 것으로, 음악도 시의 내용에 맞춰 진행된다.


곡의 개시부는 두 남녀의 걸음걸이를 표현하듯 조용하게 시작되며 이윽고 리듬이 빨라지면서 새로운 모티브가 전개되며 약음기를 붙인 첼로의 선율이 이어진다. 두 남녀의 걸음걸이, 말소리와 숲의 술렁거림이 첼로와 바이올린으로 전개되다가 끝부분에 오면 선율이 다시 높아졌다가 숲의 술렁거림 같은 아르페지오 속에 조용히 끝난다.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를 각각 두 대씩 사용한 이 작품은 실내악이라기보다는 관현악 양식을 도입했다. 각 파트의 선율적 비중을 동등하게 부여하고, 그 역동적 대위법 속에서 반음계적 화성과 끊임없는 전조, 선율의 부침이 끝없이 이어지도록 처리했다. 그래서 이 작품을 바그너의 반음계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연결선상에 있는 후기 낭만의 최고의 작품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백순실「쇈베르크의 현악 6중주곡 '정화된 밤'을 들으며」2003, 석판화(ed.50), 25×35cm


이렇게 보면 이 작품은 루오 그림의 인상과 데멜의 시와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적 화음과 오묘하게 잘 맞아떨어진다. 그렇지만 쇤베르크는 루오와 동시대를 살았어도 서로 교류했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다만 곤궁했던 한때 그가 그림으로 생활을 꾸려갈 정도의 프로급 화가로서 프란츠 마르크· 에밀 놀데· 바실리 칸딘스키 등 표현주의 화가 그룹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수백 점의 유화와 수채화를 남기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 음악에서 루오의 그림을 떠올리는 것은, 검고 굵은 선의 종교화와 죽음으로써 사랑을 이루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음빛깔, 그리고 데멜의 시 내용이 같은 이미지 선상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밖에도 이 작품은 쇤베르크에게 여러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Op,4인 이 작품에서 쇤베르크는 작곡가로서의 출발점을 그었으며, 후기 낭만의 그 풍부한 음악성으로 훗날 그가 조성을 벗어나 무조와 12음렬음악을 작곡할 때 ‘서정적인 능력이 부족하여 12음기법을 고안하게 되었다’는 반대자들의 비난을 일축할 수 있었다. 이 음악에서 보듯 쇤베르크는 베토벤의 후기 현악 4중주곡이나 볼프의 서정적인 작품, 부르크너와 말러의 음향으로부터 작곡을 시작했으며, 그 배후에는 당시 음악계의 선풍을 몰고 온 바그너류의 낭만주의가 숨겨져 있다. 이 시기 낭만주의에 경도되었던 그는 “과거의 낭만주의는 죽었으나 새로운 낭만주의는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1874년 빈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난 쇤베르크는 8세부터 바이올린을 배웠으나 독학으로 작곡을 시작했다. 16세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학교를 그만두고 은행에 취직했으며, 은행을 퇴직한 뒤에는 지휘와 편곡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이 무렵 그는 두 살 위인 체믈린스키를 만나 몇 달 동안 대위법 레슨을 받았는데, 이것이 그에게 유일한 음악교육인 셈이었다. 그 후 그는 작곡과 개인레슨을 했는데, 이때 베베른과 베르크가 그에게 개인레슨을 받으면서 스승과 제자가 긴밀한 관계로 묶여 무조음악파인 ‘신빈악파’를 형성했다. 그는 1933년 나치의 박해를 피해 파리를 거쳐 미국으로 이주, 캘리포니아 대학 교수로 정년까지 지내다가 1951년 심장병으로 사망한다.

오늘날 무조음악과 12음기법의 창시자로서 현대음악 진로에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한 작곡가로 칭송받고 있지만 그도 한때 작품 연주가 거부되는 등 반대파들의 심한 반발을 샀다. 그때 그는 “12음기법은 당신들을 위해 고안한 것이 아니다. ······천재에게 나타난 자연의 법칙은 미래를 위한 법칙일 뿐이다”라며 대응했는데, 이 말은 오늘날에도 유효한 진리이다.



추천 음반

쇤베르크, 현악6중주 「정화된 밤」, 1899
Arnold Schoenberg(1874~1951), ‘Verklarte Nacht’, op.4
- 마우리치오 폴리니(피아노)/DG
- 아르투르 루빈스타인(피아노)/BMG
- 마르타 아르헤리치(피아노)/D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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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 / 한길아트2009.11.24 13:40




2. 권력과 폭력: 삶과 죽음의 문제③

 
민주화의 여정: 권력과 폭력의 상호 작용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우리는 시민 권력과 지배 권력 사이의 미묘한 긴장과 갈등을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갈등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갖는 복원력은 1980년대 권력과 폭력의 적나라한 갈등과 대립 속에서 값지게 획득한 민주화에서 비롯될 것이다.
지금까지 정상적인 상황에서 권력과 폭력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고찰했다. 민주화 과정과 혁명 과정은 현재의 상황과는 다르다. 아렌트는 20세기를 폭력의 세기로 규정함으로써 진보의 역설을 주장했다. 한국의 경우 한국전쟁 3년을 제외한다면 한국의 1980년대는 외형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폭력이 존재했던 시대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의 과정을 중단시키는 것은 폭력이 아니라 권력의 창출로 이어지는 행위이었다.

아렌트에 따르면, 권력은 정당하고 폭력은 정당화될 수 있지만, 권력과 폭력은 동시에 나타나며 상호 연계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전자의 명제는 권력과 폭력이 대립적인 현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어서 두 번째 주장과 상충된다. 후자의 명제는 정상적인 상황이 아닌 위기의 상황에서 나타난다. 이러한 명제는 1980년대 민주화 운동에서 나타난 양상을 잘 설명하고 있다. 필자는 이를 권력과 폭력의 ‘어색한 공존’으로 표현하고 싶다.

1980년 짧았던 ‘서울의 봄’은 정치적 비극의 전조였다. 민주화운동이 전개된 광주는 짧은 시간 동안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 공간이었다. 학생들이 시위를 주도하면서 신군부에 저항을 행위로 표출하던 초기에, 광주는 시민 권력의 공간이었다. “광주에서 1980년 5월 14일, 15일, 16일에 걸친 학생시위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명쾌한 언어를 일련의 시국선언문에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5월 17일 비상계엄 확대 이후 5월 18일부터 10일간 광주는 권력과 폭력이 적나라하게 충돌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헝가리 혁명에 대한 아렌트의 압축적인 묘사를 차용하여 표현하자면, 광주항쟁의 10일은 5・16쿠데타로 들어선 군부통치 18년의 역사보다도 더 많은 역사를 포함하고 있다. 즉, 광주민주화운동은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귀중한 정신을 남겼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적나라한 폭력의 위세 앞에 무기력, 나아가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때 폭력은 철저하게 권력을 파괴했다. 폭력적 도구 앞에서 생존을 전적으로 위협받는 상황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하나는 폭력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이고, 다른 하나는 저항이다. 인간의 존엄성마저 위협받는 상황에서 저항 능력의 상실은 ‘살아 있는 죽음’과 같은 상태다.

 
죽음에 직면한 광주시민들은 권력을 확보하기 위해 폭력에 호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폭력은 시작이었다”는 역사적 사례에서도 나타나듯이, 인간다운 삶을 확보하려는 가장 고귀한 행위는 폭력을 수반하게 된다. 조직화되지 않은 시민 권력은 조직화된 물리적 강제력에 좌절되었지만, 실패한 저항행위는 민주적 권력의 창출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었다.

총과 탱크로 무장한 진압군은 시민군을 진압함으로써 신군부의 의도를 관철시켰지만, 진압된 시민군은 극한적 대립을 포기함으로써 민주화 정신을 유지하고자 했다. 견고한 총과 탱크로 창출한 지배 권력은 자발적으로 연대한 민주화세력의 부드러운 힘에 밀려 정치영역에서 밀려났기 때문이다.
이 과정이 성공하기까지는 7년의 세월이 경과되었다. 시민군에 참여해 맨손으로 투쟁했거나 정의를 복원시키고자 총을 들었던 시민군은 희생을 치렀다. 그에 대한 보상은 명예회복이다. 이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폭력 사용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광주항쟁 이후 1980년대는 여전히 암울한 시대였다. 정당성을 결여한 군부는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제도적 권력, 특히 폭력을 시민들에게 행사했다. 정치적 안정과 사회정의를 실현한다는 명분으로 운영된 ‘삼청교육대’는 인간을 폭력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공간이었으며, ‘사회정화위원회’는 신군부를 비판하는 시민의 권력을 통제하는 억압기로서 기능을 했다.
로베스피에르의 공안위원회, 나치 체제와 스탈린 체제의 비밀경찰은 시민 전체를 감시함으로써 최소한의 저항마저도 차단함으로써 절대적 지배를 유지하는 폭력의 도구다. 이러한 도구가 완전히 기능을 발휘할 때, 폭력은 테러로 바뀐다. 사회정화위원회는 시민에 대해 폭력을 은밀하게 행사하는 기능을 담당했다. 


신군부의 폭력은 민주화의 열망을 일시적으로 중단시켰으며 반민주적 정치질서를 유지했다. 그러나 반민주적 질서의 중단은 폭력이나 관행적 행태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권력의 창출과 연관되는 행위를 통해서 가능하다. 그러므로 민주화 과정에서 폭력의 사용은 수단일 뿐이다. 억압체제에서 저항행위 없는 폭력의 사용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80년대는 학생들의 저항행위와 정부의 강압적인 탄압으로 점철된 시대이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분출되는 민주화에 대한 열정! 대학은 진정한 권력을 창출하는 공공영역이었다. 유연한 권력은 견고한 지배 권력에 대항하면서 차츰 그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으며, 전두환 정권의 학원자율화 조치를 유도했고, 결국 6・29선언을 가능케 했다.

 

1980년대 학생운동은 광주학살 책임자 처벌, 반미투쟁, 체제 부정 다양한 쟁점과 투쟁 양식으로 지배 권력과의 지속적이고 치열한 투쟁을 전개했다. 지배 권력의 폭압적 통제로 민주화에 대한 기대는 좌절되었고, 신군부의 반인륜적 행위에 대한 분노는 폭력의 정당화와 체제에 대한 거부를 야기했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에서 폭력은 지속적으로 정의를 회복하는 수단이 되었다. 1982년 문부식과 김은숙의 미문화원 방화사건은 광주학살에 대한 미국의 방조 또는 묵인에 대한 저항행위였다. 아렌트의 입장에서 보면, 이 사건은 종종 혁명 전통을 망각하고 독재정권을 지지하는 외교정책 때문에 미국이 치러야 한 대가일 것이다. 1985년 5개 대학 73명의 학생은 미문화원을 점거하고 광주학살의 진상규명과 미국의 사과를 요구하는 농성을 벌였다. 반미운동에 참여한 학생들의 폭력은 미국의 입장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었다.

 

지배 권력에 의한 물리적 폭력은 지배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이 되었다. 1981년 서울대생 김태훈은 ‘전두환 물러가라’라는 구호와 함께 도서관 옥상에서 투신자살을 함으로써 위축된 민주화세력의 투쟁력을 높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학생운동권이 NL(민족해방민중민주중의)와 PD(민중민주주의)로 분열된 이후인 1986년에도, 서울대생 이재호와 김세진은 분신을 통해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격렬하게 표출했다. 이렇듯 지배 권력의 탄압 속에서 비극은 지속되었다. 지배 권력과의 치열한 대립 과정에서 발생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민주화의 격류를 거스를 수 없는 계기가 되었다. 1987년 1월 14일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서울대생 박종철이 수사를 받다가 물고문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전두환 대통령의 4・13 호헌조치로 반정부 투쟁을 전개하던 민주화 세력은 5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고문치사사건 은폐조작을 폭로함으로써 결집하게 되었다. 지배 권력에 의한 한 개인의 사망은 개인적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시민적 저항의 계기가 되었다.

역설적이게도 폭력은 한편 군부정권을 탄생케 했지만, 다른 한편 자신의 지배 권력을 중단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폭력만이 인간사 영역에서 나타나는 자동화 과정을 중단시킬 수 있었다면, 학생운동의 끊임없는 저항을 잠재울 수 있었을 것이다. 신군부는 민주화 운동을 중단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에서 정권의 자동화 과정을 유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폭력에 의한 지배의 종식은 바로 민주화세력의 행위, 그리고 이를 통해서 형성된 유연하면서도 강한 권력에 의해서 가능했다.

 


소통의 정치와 새로운 시작


절차적 민주주의의 원칙에 따르면, 권력은 인민에 있지만 위임된 권력으로 이해되기 때문에, 권력은 단순히 특정 집단에 속하는 것으로만 이해되기 쉽다. 그러나 공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하려는 모임에 참여할 때, 즉 권력은 공공영역의 참여자들 사이에서 발현된다. 이렇듯 권력은 소통과정에서 형성되고, 결과적으로 정책결정 과정에 투영된다.
폭력은 그 대립물인 권력으로부터 도출되지는 않지만, 정의를 복구시키려는 의도에 기반을 두고 있을 경우에만 정당화될 뿐이다. 혁명과 민주화 운동에서 발생하는 폭력은 ‘정당하지’ 않지만 새로운 질서의 창출을 촉진할 수 있다.

따라서 아렌트는 권력과 폭력의 근본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양자가 역사 속에서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러한 정치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폭력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 주의를 필요로 하는 것은 폭력 자체가 비극을 잉태한다는 점이다.
아렌트의 경우, 권력은 폭력과 대립되는 한계적인 정치현상으로서 공동으로 활동하는 능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렌트의 권력 개념은 언어행위, 대화・논쟁・표현・소통과 연관될 뿐만 아니라 정치행위와 연계된다. 권력은 민주적 삶을 가능케 하는 다원성 및 자유와 대립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지배로서 권력이 아닌 진정한 권력이 시민의 정치적 삶과 연계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는 정치적 갈등들 가운데 하나는 권력과 폭력 개념의 차이, 그리고 이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해의 차이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따라서 민주정치는 과거의 관행을 단순히 재현하는 게 아니라 시대의 요구와 변화에 항상 새롭게 대응할 때 비로소 그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 

정치영역은 기본적으로 새로운 시작이 자유롭게 보장되는 공간이다. 따라서 변화의 수단을 갖지 못한 국가는 유지되기 어렵다는 버크의 주장에서도 나타나듯이, 권력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정치의 내용과 방향을 정립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예외적인 상황에서 폭력이 권력의 확장에 기여하지만, 이는 많은 희생과 비극을 야기한다. 따라서 폭력수단이 아닌 언어행위를 통해 권력을 창출하는 정치에 대한 열망은 어느 때보다도 크다.

 

-끝 (다음 주제는 '건국ㆍ산업화ㆍ민주화: 세 계기의 연관성 문제'입니다)


홍원표(洪元杓)는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고전적 합리주의의 현대적 해석: 스트라우스 · 보에글린 · 아렌트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한국외대 자유전공학부 학과장으로 있으면서 아렌트 정치철학 연구와 번역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는 『현대 정치철학의 지형: 언저리에서의 사유』 『정치의 대전환』(공저)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한길사에서 펴낸 한나 아렌트의 『혁명론』, 그밖에 『정신의 삶 1』 『자연권과 역사』 『데리다와 푸코: 동일성의 차이』 등이 있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75)는 독일 하노버에서 출생하여 유년시절을 대부분 쾨니히스베르크에서 보냈다. 철학과 신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마부르크 대학으로 가 불트만과 하이데거에게 배운다. 거기서 하이데거와 사랑에 빠졌던 그녀는 곧 그를 떠나 하이델베르크의 야스퍼스를 찾아 그의 지도로 「아우구스티누스의 사랑 개념」이란 주제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는다. 
이후 아렌트는 정치 억압과 유대인 박해가 첨차 심해지던 독일에서 시온주의자들을 위해 활동하다 체포되어 심문을 받은 뒤,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어머니와 함께 1933년에 프랑스로 망명하고 또 거기서 수용소에 갇혔다가 결국 탈출하여 1941년에 미국으로 망명한다. 
첫 번째 주저인 『전체주의의 기원』(1951)의 발간과 더불어 그녀는 본격적인 정치사상가의 길을 걷는다. 이후 『라헬 파른하겐』(1957) 『인간의 조건』(1958) 『과거와 미래 사이』(1961)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 『혁명론』(1963) 『공화국의 위기』(1972) 등의 주요 저작을 연이어 출간했다. 
특히 유대인 학살의 핵심 책임자 아이히만이 아르헨티나에서 이스라엘 비밀경찰에 의해 체포되고 예루살렘으로 압송되어 거기서 재판을 받자 아렌트는 모든 일을 중단하고 예루살렘에 머물면서 그 재판에 대한 보고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쓰게 된다. 이 책을 통해 설명한 악의 평범성 개념은 수많은 논쟁을 낳았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아렌트는 정치적 악을 유발하는 정신의 문제에 집중해 『정신의 삶』(1978)을 남긴다. 미완으로 남은 아렌트의 판단이론의 강의내용을 담은 『칸트 정치철학강의』(1982)가 아렌트가 죽은 뒤에 출간되고, 또 유고들을 정리한 『이해에 대한 에세이』(1994) 『정치의 약속』(2005) 『판단과 책임』(2005) 등이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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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 / 한길아트2009.11.06 16:23



오래전에 본 흑백영화 중에 「여수」라는 연애 멜로물이 있다. 로마발 파리행 여객기. 미국인 엔지니어 데이비드(조지프 코튼)과 여류 피아니스트 마리나(조안 폰테인)는 옆에 나란히 앉은 인연으로 가까워진다. 중도 기착지인 나폴리에서 두 사람은 거리 관광에 나섰다가 그만 비행기를 놓치고 마는데, 공교롭게도 그 비행기가 이륙 직후 추락하고 두 사람은 사망한 것으로 발표된다. 

이때부터 과거와 단절하고 둘만의 달콤한 생활이 시작되는데, 마리나의 피아노 선생이 이 사실을 알고 “훔친 행복은 오래 지킬 수 없는 법”이라며 일상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한다. 데이비드와 마리나도 이것을 깨닫고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한 채 헤어지기로 한다. 데이비드를 떠나 순회연주 길에 오르기 전 고별 콘서트를 갖는 마리나. 이때 레퍼토리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이었다. 만원의 콘서트 홀. 데이비드가 멀리서 바라보는 가운데 마리나의 흰 손이 건반 위를 달리면서 사랑의 아듀를 고한다. 테크닉의 극치, 현란한 종결, 극적 클라이맥스에서 영화는 끝나고, 귓가를 맴도는 라흐마니노프…….

모차르트 작품 못지않게 영화의 테마음악으로 많이 쓰인 작품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이다. 우울한 가운데 그지없이 달콤한 낭만성, 가득 넘치는 시적 정서, 웅장한 오케스트라 속을 화려하게 흐르는 피아노 소리는 멜로물의 스토리와 너무나 잘 어울린다.     

라흐마니노프는 이 곡을 우울증에 빠졌다가 회복되었을 때 작곡했다. 1897년 스물네 살의 그는 교향곡 제1번을 작곡하여 연주회를 갖는다. 그런데 난데없는 반대파의 혹평에 시달리다가 그는 결국 심한 노이로제에 걸려 병상에 눕게 된다.
“나는 갑작스런 발작을 일으켜 졸도라도 한 느낌으로 멍한 나날을 흘려보냈다. 손이나 머리를 어떻게 써야 할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3년을 이러한 괴로움 속에서 보낸 어느 날, 그는 친구의 권유로 정신과 의사인 니콜라이 달을 만나게 된다. 달 박사는 최면술 심리요법을 써서 그의 노이로제를 고쳐나간다. 3개월을 계속하자 그렇게도 심했던 노이로제가 감쪽같이 나았다. 라흐마니노프는 노이로제를 고친 스물일곱 살 때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을 작곡하고, 병을 치료해준 달 박사에게 이 곡을 헌정했다.


 

백순실「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을 들으며」2003, 석판화(ed.50), 25×35cm



라흐마니노프는 이 협주곡에서 완벽한 구성과 그의 음악 생명이라 할 서정성과 낭만성, 그리고 피아니스틱한 효과를 오묘하게 결합하고 있다. 말하자면 논리와 감정을 적절히 결합시켜 센티멘털하면서도 센티멘털을 벗어나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그래서 이 곡은 로맨틱한 선율에 가사를 붙여 가곡으로도 불리고, 재즈로도 편곡되어 널리 연주되고 있다.  

이 곡의 제1악장은 첫 부분의 어둡고도 장중한 화음의 종소리와 같은 피아노 독주가 상당히 인상적이다. 이어지는 달콤하고 감상적인 피아노 선율도 그에 못지않다. 제2악장은 서정성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악장으로서 마치 꿈꾸듯 감미롭다. 제3악장은 피아노와 관현악의 아름다운 선율이 계속되다가 제1악장의 주제를 회상하듯 팀파니와 심벌즈가 나타나고 마지막에 뛰어다니는 듯한 피아노 강타로 힘차게 끝마친다.

이 작품은 차이코프스키 음악보다 더 애틋한 멜랑콜리를 맛보게 한다. 그러나 라흐마니노프의 멜랑콜리는 우울하기보다 감미롭다. 웅장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조화, 풍부한 음악의 름과 빛나는 멜로디. 이런 특성은 결국 그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으로 마지막 최고의 걸작인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의 탄생을 가져온다.  


 


추천 음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2번, 1901
Sergey Rachmaninov(1873~1943), Piano Concerto no.2 in C major, op.18 Dmitry
- 키릴 콘드라신(지휘)/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피아노)
- 프리츠 라이너(지휘)/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반 클라이번(피아노)/BMG
- 마리스 얀손스(지휘)/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미카일 루디(피아노)/EMI
- 스타니슬라 비슬로키(지휘)/바르샤바 국립 오케스트라/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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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 / 한길아트2009.10.28 17:43

대저 공자께서 학문의 세 가지 길을 일러주셨으니, 지(知), 호(好), 락(樂)이 그것이라.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천하의 어느 누구도 락(樂)을 타고나지 않은 이가 없고, 어떤 한옥(韓屋)도 락(樂)이 부여되지 않은 것이 없건만, 스스로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구나. 하지만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게 한 적도 일찍이 없었다. 다만 한옥의 창(窓)을 단순한 창으로만 아는 이들에게는 그 사실을 알려줄 수가 없으니, 그들에게는 풍경작용(風景作用)의 개념이 없어 말로 일러주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 경우를 제외하면 제아무리 소․말․당나귀․낙타 같이 어리석은 자라도 아파트(兒波吐)에 살면서 깊은 시름에 젖고 고통받고 있는 때라면, 한옥 창의 미학을 일깨워주거나 풍경놀이의 즐거움을 말해주기가 불가능한 노릇은 아니다.


풍경이 마치 무대 위에 올려진 것처럼 보이는 장경(場景)작용이 일어나고 있다.


경성(京城, 지금의 서울) 사람 임석재는 기축년(己丑年, 2009) 10월 간(間)에 『나는 한옥에서 풍경놀이를 즐긴다』라는 서책(書冊)을 한 권 묶어냈다. 그 사람의 견지에 의거하면, 한옥의 창은 일종의 ‘액자’(額子)이고 또 심지어 “마치 재미있는 장난감”(43쪽) 같다. 그는 20여 년 동안 전통건축 답사를 하며 천하를 유랑했다고 전하는데, 창을 조작하는 모양이 가히 신출귀몰하다고 할 만하다. 그 서책에는 차경․장경․자경․중첩․족자․거울작용․병풍작용․몽타주․콜라주․바로크 등 그야말로 변화무쌍한 풍경작용들이 용의 비늘처럼 가지런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그는 한옥을 풍경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비책을 한 시골마을의 신비한 노옹(老翁)에게서 전수받았다는데, 그 경위가 서(序) 말미에 기록되어 있다.





이것만 보더라도 임석재가 어찌 어진 사람이 아닐 것이랴! 임석재는 바탕이 아름다우며 속이 깊고도 지혜롭다. 그간 건축분야에서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를 넘나들며 폭넓은 연구를 해왔으며 가히 독보적인 저술 성과를 이뤄왔다. 단아하고 엄정하여 유생의 풍모까지 갖췄으니, 그가 집안의 대를 잇고 앞사람의 허물을 극복하고자 힘쓴다면 더더욱 가상하겠구나! 독자(讀者)들은 단순한 풍경작용에서 복합적인 풍경작용으로 차근차근 안내받을 것이다. 프로이트, 증자, 포스트모더니즘, 대승불교 등 다양한 사상적 배경이 한옥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알 수도 있을 것이다. 한옥 유구 39기를 망라한 사진 160점을 감상하며 가만히 고아(高雅)한 풍취에 젖어보는 것도 권면(勸勉)하고 싶다.

윤증고택 사랑채. 장경과 중첩, 콜라주와 바로크 등 풍경작용의 거의 모든 종류들이 망라되어 있다.

 



금년 가을에 나는 배를 타고 파주 습지를 순행하다가 아시아센터에 들러 한길사 편집부의 대구(大邱) 사람 안씨(安氏)를 만났다. 안씨는 평소부터 임석재의 가르침을 흠뻑 섭취하며 깊은 영향을 받았고, 선생의 책을 숙독한 지도 벌써 오랜 세월이었다. 그는 근래 간행된 임석재의 새로운 서책 『나는 한옥에서 풍경놀이를 즐긴다』를 파주와 임진강 유역의 수십 고을 인사들에게 베풀고 싶어 했다. 안씨는 나에게 서책 수십 권의 협조를 부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임석재 선생의 글 가운데 파주 지방에 위치한 한옥 유구를 먼저 부각시킴으로써 그 책을 읽도록 유도한 다음, 다시 전집을 찍어 천하와 후세에 전하려고 합니다. 소개되는 유구의 분량이 너무 방대한지라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 장차 공부하는 자들은 읽기도 전에 싫증부터 낼 것이고, 그러면 또 다락에 처넣고 읽지 않는 폐단을 면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에 나는 짐짓 놀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 안 선생, 근래 새롭게 조성된 파주 출판도시 근처에 어찌 유서 깊은 한옥이 있단 말이오? 또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임석재 선생께서 그 한옥을 서책에 수록했다면 어찌 내가 모를 리 있겠소?”


 

출판도시 편의점 사거리 근처에 있는 ‘김동수 작은댁 사랑채’의 전경(위),
사랑채 뒤뜰(아래) 담장 너머로 아시아센터가 보인다. 

 


“저 안씨는 어려서부터 학문을 즐겼고 나이 들어서도 게으르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미천해도 거두지 않은 사람이 없고, 황당한 말도 수용하지 않는 경우가 없었습니다. 귀공은 편의점 사거리 근처의 한옥 유구를 눈여겨 보시고서나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요. 그 가옥은 본래 전라도 정읍(井邑)에 있던 한옥의 사랑채를 2000년도 들어 옮긴 것으로, 김명관의 둘째아들 김상하(金相河, 1797~1814)가 착공한 것입니다. 귀공은 임석재 선생의 이번 서책에서 ‘김동수 고택’ 사진을 이미 십수 장 보셨겠지요? 출판도시에 있는 그 한옥이 바로 ‘김동수 고택’ 옆집이었던 ‘김동수 작은댁’의 사랑채라는 것은 알아차리지 못하셨습니까? 학문에 진실한 의지가 없으면 피상적이고 교만해져 결국 스스로만 망칠 뿐이니, 선생의 천 마디 만 마디 말씀이 또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이제 나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건대 총명함과 역량은 안씨에 훨씬 못 미치면서 공자님의 큰 사업을 입증하려는 마음만 간절하니, 그 얼마나 주제 모르는 얼간이일까? 아무리 이번에 임석재 선생의 서책을 담당했다고 하더라도 이런 내가 독자들에게 무슨 말을 일러줄 수 있겠는가? 다만 안씨에게 서책 수십 권을 협조해줄 수밖에… 정읍 지방에 전해져 내려오는 옛 노래 「정읍사」를 부르며 김동수 작은댁을 미처 몰라본 모자람을, 방종을, 그리고 게으름을 한(恨)하고자 한다. 





* 이 글은 <분서1>(한길사)을 부분적으로 패러디 하였습니다.

- 편집부 아레테

임석재 지음|반양장|352쪽|값 20,000원|2009년 10월 12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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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 / 한길아트2009.10.27 15:13




2. 권력과 폭력: 삶과 죽음의 문제①

 


“흐르는 부드러운 물은 시간이 지나면 힘 있는 돌을 이긴다.”

노자, 『도덕경』

 


민주주의의 미래를 생각하며

우리는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통해 정치적 자유를 확보했으며,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노력으로 자유를 제도화함으로써 절차적 민주주의의 확고한 기반을 마련했고, 참여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되었다. 정치적 자유는 투쟁의 산물이다. 민주화 과정에서 공동 활동 능력으로서 ‘시민 권력’과 물리적 강제력을 담지한 ‘지배 권력’ 사이의 긴장과 적나라한 대립이 있었다. 정치적 자유의 제도화는 시민적 자유의 확대를 가능케 했으며, 우리는 일상적 삶 속에서 민주적 가치를 향유하고 확대시킬 수 있게 되었다. 우리사회는 자유의 확장으로 인하여 한편 과거에 비해 훨씬 더 역동성을 지니고 있지만, 다원화의 증대로 갈등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기고 한다. 

이러한 갈등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유는 자유롭지 못하다”는 귀중한 교훈을 망각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에도 한국 사회는 이념적?계급적 갈등뿐만 아니라 집단 사이의 갈등 속에 놓여 있다. 이러한 갈등은 논쟁과 소통을 통해 해소되지 못하고 힘의 충돌로 이어지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소통의 부재이지만, 정치적인 것에 대한 이해의 근본적 차이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2008년 촛불시위 현장에서 나타난 ‘촛불 든 시민들’과 전경들의 대치선, 용산 철거민들과 전경들의 치열한 힘겨루기와 철거민의 죽음,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 빈소를 차단한 전경버스! 우리는 소통의 부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 장면들에서 공권력과 시민 권력 사이의 분리를 경험하고, 외형적으로 상충되는 두 힘이 긴장 또는 충돌하는 양상을 볼 수 있었다. 
많은 사람이 이해하고 있듯이, 민주주의에서 권력은 인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사건을 목격하는 시민들은 권력의 소재가 과연 자신들에게 있는가를 다시 한 번 의심할 것이다. 인정하든 하지 않든, 권력은 분명히 공적인 문제에 참여하는 시민에게 있다. 우리는 그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시민들의 행위 속에서 ‘권력’은 분명히 발현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왜 권력이 정부에만 있다고 이해하고 있을까? 정부에 있는 권력은 위임된 제도적 권력이며, 그 중심은 분명히 공동으로 활동하는 시민들에게 있다. 

우리는 한나 아렌트를 통해서 그 해답의 일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인 것에 대한 이해와 적용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 아렌트는 ‘정치적인 것’을 지배와 동일시하는 입장에서 벗어나 폭력의 사용과 전적으로 대립되는 우정(또는 유대)관계를 정치적인 것과 동일시하고 있다. 베버는 갈등을, 그리고 아렌트는 우정을 정치의 본질로 이해하고 있다. 아렌트는 막스 베버를 통해서 드러난 정치적 현실주의를 비판하고 권력과 폭력을 독특하게 정의하고 있다.

권력에 대한 이해의 차이와 마찬가지로, 필자는 우리 사회가 정치적인 것을 둘러싼 인식의 근본적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차이는 기본적으로 대화와 설득이 아니라 힘겨루기라는 수단을 통해서 우리 사회의 쟁점을 해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야기하고 있다. 
최근 다시 제기되는 시민 권력과 제도 권력 사이의 갈등은 한국 민주주의의 장래에 대한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제기되는 ‘민주주의의 후퇴’를 우려하면서 권력과 폭력 사이의 어색한 공존이 야기한 역사적 사건들을 아렌트를 통해 다시 반추해 볼 것이다. 

최근의 정치현상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권력과 폭력의 관계에 대한 아렌트의 독특한 해석을 적절하게 투사해줄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본다. 또 이와 연관된 맥락에서 1980년대 민주화 여정을 권력과 폭력, 삶과 죽음의 관점에서 조명하기로 한다.


 

권력과 폭력; 목적과 수단의 어색한 공존

한나 아렌트는 1960년대 말 서구의 정치적 소요, 즉 68혁명을 경험하면서 권력과 폭력 문제를 심층적으로 연구하여 이를 『폭력론』(On Violence)으로 출간되었다. 그녀는 이 책을 출간하기에 앞서『전체주의의 기원』과 『인간의 조건』, 그리고 『혁명론』을 통해서 권력, 폭력, 테러 등에 대한 자신의 독특한 입장을 제시했다. 

아렌트의 정치사상에서 권력과 폭력, 언어와 강제는 종종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 이러한 상호 연관성은 우리의 역사적 사건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가깝게는 노무현 전대통령 추모행사, 용산참사, 그리고 촛불시위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민주화 과정뿐만 아니라 4?19혁명, 건국과정에서도 나타났던 양상이다. 
이러한 상호 연관성은 특정한 사건에 대한 이해에서 종종 혼돈을 야기한다. 역사적 사건에서 드러난 폭력과 권력의 문제를 아렌트의 시선으로 고찰하기 위해서 권력과 폭력에 대한 아렌트의 독특한 입장을 몇 가지 소개한다.


첫째, 권력은 말을 수반하지만, 폭력은 무언의 상태에서 나타나는 정치현상이다. 양자는 별개의 현상이다. 권력의 궁극적 본성이 폭력이라는 밀스의 주장, 폭력 수단에 기초를 두고 있는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라는 베버의 주장, 그리고 권력을 일종의 완화된 폭력으로 규정한 당트레브(d'Entreves)의 주장도 아렌트의 권력 개념과 거리가 있다. 권력은 논쟁과 대화라는 언어행위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존재하지만, 폭력은 언어행위가 중단된 상황에서 나타나는 한계적인 현상이다. 

따라서 『인간의 조건』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권력은 말과 행위가 분리되지 않은 상황, 말이 공허하지 않고 행위가 잔인하지 않은 상황, 말의 의도를 은폐하는 게 아니라 실체를 드러내는 상황에서만 구체화된다.” 권력은 시민이 공동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대화를 진행시킬 때 존재하지만, 시민들이 흩어지면 잠재의 상태로 바뀐다. 
이는 마치 태양이 우리 눈앞에 있을 때 현상이 되지만 저녁이 되어 지구 저편으로 사라지면 가상의 상태로 존재하는 것과 같다. 권력은 개인이 소유하는 물건이 아니라 시민들이 공동으로 활동할 때 발현되는 가능태의 형태로 존재한다. 

반면, 폭력은 언어행위가 중단된 상황에서 나타난다. 정치가 기본적으로 언어를 매개로 하기 때문에, 폭력은 한계적인 정치현상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하듯이,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면서 말을 사용하는 동물이다. 말이 없는 정치행위는 상정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력은 인간의 삶에서 권력과 함께 어색하게 공존해왔다. 
일부 정치학자들은 베버의 전통을 수용하여 정치의 본질을 폭력으로 규정하고 있다. 폭력은 권력의 일부분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아렌트는 권력과 폭력을 대립적인 현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권력은 소통과정에서 형성되지만, 폭력은 대화와 설득이 중단된 상태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둘째, 권력은 정당하지만, 폭력은 정당화된다. 권력은 언제나 사람들이 모이고 제휴하여 행동할 때 나타나므로, 그 정당성은 최초의 모임에서 유래한다. 반면에 폭력은 미래의 의도된 목적과 연관되며, 사후적으로 정당화될 뿐이다. 따라서 권력은 정당성을 도전받을 경우 최초의 모임에 입각해 자신을 유지해야 하지만, 폭력은 그 목적이 미래 속에서 약화될 때 그 설득력을 상실한다. 

민주주의의 후퇴를 우려하는 상황에서 개최되었던 6?10 민주화운동 21주년 기념행사에 대한 정부의 민감한 반응은 권력의 정당성이 그 최초 행위에 있다는 것을 무시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었다. 
따라서 권력은 목적과 연관되지만, 폭력은 수단으로서 사용된다. 권력은 그 자체로 목적이며 목적-수단 범주에 따라 사유하고 행동하는 조건이다. “인민에 있는 권력”(potestas in populo)은 정치행위를 통해서 자신을 드러낸다. 조직화되고 제도화된 권력으로서 시민들의 공동 행위에서 발현되는 권력과 다르다. 도구적인 성격을 띤 폭력은 자신을 정당화시키는 목적을 달성할 때 합리적이다.
“폭력이 권력이라는 등식은 폭력 수단을 통한 인간에 대한 인간의 재배로서 이해되는 정부에 근거한다.” 4?19혁명 당시 비폭력적인 학생들의 저항과 경찰의 총구에서 나온 물리적 강제력 사이의 정면충돌은 순수한 상태의 폭력과 권력이 대결한 사례이다.


셋째, 폭력은 권력을 항상 파괴할 수 있지만, 역으로 권력은 폭력을 무력화할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은 권력과 폭력이 대립적 현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권력이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곳에서는, 폭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렌트는 “권력이 총구로부터 나온다”는 모택동의 주장과 반대로 권력이 결코 총구로부터 나올 수 없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권력이 상실된 곳에서 완전히 폭력만을 통한 지배가 작동할 수 있다. 폭력은 권력이 완전히 지배하는 곳에서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킨다. 폭력이 완전히 지배하는 곳, 온갖 종류의 조직적인 반대가 사라질 때, 테러는 비로소 활개를 친다. 
따라서 테러는 원자화된 사회에서 모든 사람이 경찰의 정보원으로 활동하는 경찰국가에서 존재할 수 있다. “어제의 사형집행인이 오늘의 희생양이 될 때, 테러는 절정에 도달한다. 따라서 테러에 기초한 전체주의적 지배와 폭력에 기초한 독재정치와 다른 점은 여기에 있다. 물론 우리사회에서 이러한 형태의 테러를 찾기란 어렵다.

넷째, 폭력이 권력과 대립적인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권력과 폭력은 밀접하게 연관된다. 이 명제는 앞의 주장과 모순되는 것 같다. 권력과 폭력은 함께 나타날 뿐만 아니라 공생 관계에 놓이게 된다. 이 경우 권력과 폭력은 대립되지 않고 상호적으로 강화된다. 이 경우, 폭력은 위기의 상황에서 제한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사용된다. 따라서 혁명 과정이나 민주화운동, 그리고 각종 저항행위에서 목격할 수 있는 폭력이란 정치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폭력의 본성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 

아렌트는 동물학자들의 공격본능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인간의 행위를 이해하는 데 반대할 뿐만 아니라 폭력행위를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이해하려는 사회과학자들의 입장에 반대해 폭력이 짐승 같지도 않고 비합리적이지도 않다는 것을 논증하고 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아렌트는 권력과 폭력은 자연 현상이 아니라 인간의 ‘시작 능력’(power to begin)에 의해서 보증되는 인간의 특성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는 이러한 입장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혁명 과정 또는 민주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명백한 정치현상으로서 폭력의 존재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특정한 환경에서의 폭력은 정의의 척도를 다시 올바르게 맞추는 유일한 방법이다.” 아렌트는 분노가 초래하는 폭력이 자연스러운 인간의 감정에 속한다고 주장하면서 인간에게서 이를 거세하는 것이 바로 인간성을 거세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폭력의 실천은 사람들을 하나의 전체로 결속시킨다.” 

전쟁터에서의 죽음은 바로 이에 해당된다. 죽음은 정치가 이루어지는 현상세계에서 벗어나는 반정치적 활동이지만 집단적 행동과 마주칠 경우 자신의 얼굴빛을 바꾼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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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한길다반사2009.10.15 18:42


마지막
연구주제 ‘귀환’ 끝낸 영문학자 임철규 연세대
명예교수


“향수란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공간적 의미가 아니라 잃어버린 고향에서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한다는 시간적 의미입니다. 그래서 귀환은 귀환으로 끝나지 않고 새로운 표류와 시련으로 이어지는 것이지요. 그러나 고향을 향한 그리움이 과거가 아닌 미래를 향해 역전될 때 새로운 이상향의 꿈이 생겨나고 이것이 역사의 추동력이 되는 겁니다.”


 

연세대 중앙도서관 5층의 귀중본 열람실 서고에 선 임철규 교수. 그는 자신이 평생 공부했던 책을 도서관에 기증했으며 필요한 신간이 있으면 후학들을 위해 도서관에 구입 신청을 한 뒤 이곳에 들러 복사해 간다. | 남호진기자



임철규 연세대 명예교수(70)가 최근 펴낸 저작집 <귀환>이 인문학계에서 조용한 주목을 받고 있다. 만년의 외국문학자가 한국 문학을 깊은 애정으로 읽어냈을 뿐 아니라 자신의 학문적 여정을 결산한 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학인(學人)의 길에 발을 들여놓으면서부터 차츰 마음속에 연구 주제로 담아놓았던 연구 분야 중 마지막 주제 ‘귀환’을 이 책을 통해 마무리함으로써 그 긴 여정을 끝내고 있다’고 그는 <귀환>의 머리말에서 고백한다.


영문학자, 비교문학자로서 임 교수는 다섯 권의 무게 있는 저작을 학계에 남겼다. <우리시대의 리얼리즘>(1983년)을 시작으로 <왜 유토피아인가>(1994년), <눈의 역사, 눈의 미학>(2002년), <그리스 비극, 애도의 노래>(2006년), 그리고 <귀환>(이상 한길사)이다. 초기작인 <우리 시대의 리얼리즘>과 <왜 유토피아인가>도 최근 재출간됐다.

<우리시대의 리얼리즘>은 현실의 모순을 직시하고 이를 극복하는 리얼리즘의 문학 정신을 모색했고 <왜 유토피아인가>는 소련과 동구권의 현실사회주의가 막 붕괴했을 당시 유토피아라는 시각에서 마르크시즘의 가치를 설파했다. 눈(시각중심주의)을 통해 서양역사와 문학에 나타난 사고의 한계를 지적한 <눈의 역사, 눈의 미학>이나 아이스킬로스·소포클레스·에우리피데스 등 3대 그리스 비극작가의 주요 작품에 대한 연구서인 <그리스 비극, 애도의 노래>는 문학연구를 세계사적 지평으로 넓혔다는 의미를 갖는다.


-<귀환>에서는 정지용의 ‘향수’, 김규동의 분단시, 박경리의 <토지> 등 20세기 한국 문학의 대표작을 연구하셨습니다.

“나로서도 외국 문학에서 한국 문학으로 귀환했다고나 할까요. 미국에서 학위를 마치고 돌아올 때 지도교수가 ‘모국에 돌아가면 자기나라 문학을 해야지’라고 말했는데 그 때는 잘 몰랐습니다. 내가 강단에 서기 시작한 1970년대 중반은 외국 문학을 하면 뭔가 자부심을 느끼는 그런 분위기도 있었고요. 그러나 내가 외국문학을 아무리 열심히 공부한다고 하더라도 더 좋은 조건에서 자기나라 문학을 연구하는 학자들과 비교해 얼마나 기여를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외국 문학과 이론을 공부하더라도 특정 작가가 아니라 주제 중심으로 접근해 우리 문학과 사회를 다루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지요.”


‘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나가고,/얼룩백이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정지용의 ‘향수’ 부분)

‘꿈에 네가 왔더라/스물세 살 때 훌쩍 떠난 네가/마흔일곱 살 나그네 되어/네가 왔더라/…/너는 울기만 하더라/내 무릎에 머리를 묻고/한 마디 말도 없이/어린애처럼 그저 울기만 하더라.’(김규동의 ‘북에서 온 어머님 편지’ 부분)


임 교수에 따르면 정지용의 ‘황금시대’는 인간과 자연과 동물이 공감하고 함께 어울리는, 블로흐의 용어를 빌리자면 ‘동일성의 고향’이다. 모던보이 정지용이 당대의 현실과는 별천지인 어린 시절의 고향을 이상화한 이 시는 횔덜린의 시 ‘귀향’, 하이데거와 아도르노의 현대성 비판과 맞닿아 있다. 그런가 하면 평생 북녘의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김규동 시인에 대한 공감으로부터 그의 남쪽에서의 삶을 ‘표류’로 정의하면서 ‘인간의 겪는 고통 가운데 떠돌아다니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오딧세우스의 말을 상기시킨다.

‘귀환’의 의미가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은 박경리의 <토지>이다. 25권짜리 이 소설은 일본 천황의 항복 선언을 들은 서희가 자신을 휘감은 쇠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막을 내리지만 독립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각각 민족주의와 공산주의 노선을 걸으며 갈등하던 수많은 등장인물의 삶은 결국 지리산의 비극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게 임 교수의 상상이다. 독립이라는 이상의 실현, 고향으로의 귀환은 이데올로기 대립이라는 새로운 비극을 배태한다.


“생명이나 한(恨) 같은 추상적 언어로는 박경리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품 속에서 ‘~하지 않았더라면’이란 말을 많이 쓰고 있듯이 작가는 과거가 현재를 지배하고 현재는 미래를 지배한다는 운명관을 갖고 있어요. 그러나 절망 속에서도 새로운 욕망을 품는 것을 삶의 축복으로 여깁니다.”


이 같은 생각은 임 교수가 평생 공부를 통해 품게 된 생각이기도 하다. 대학 시절부터 그리스비극에 심취했던 그는 비극적 세계관을 갖고 있다. 비극의 본질은 인간의 자유와 운명 사이의 대결이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살고자 하지만 운명이 그것을 끊임없이 비켜나도록 함으로써 삶은 언제나 비극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비극의 현실 앞에서 더 나은 세계를 꿈꾸는 유토피아의 정신이 정치적 무의식으로 발현되고 그것은 역사를 추동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어떻게 이런 비극적 인식을 갖게 됐습니까.

“이 땅의 분단의 역사, 수난의 역사, 억압의 역사를 나 역시 숙명적으로 껴안아야 했기에 나의 주제들이 무겁고 심각할 수밖에 없었는지 모릅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 지식인들은 서양 지식인들에 비해 비극을 연구하는 데 더 좋은 조건이라고 할 수도 있어요. 내가 학문적 경력을 시작할 때는 유신정권의 말기였고 또 다른 군부정권이 들어섰습니다. 근현대사의 비극이 끝나기도 전에 그런 일들이 겹쳤습니다.”

그는 1980년 8월15일 군부통치에 반대하는 지식인 134명의 선언에 서명하면서 진보적 학자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첫 책인 <우리 시대의 리얼리즘>은 문학이 현실의 모순을 대면하고 사회발전의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사명을 다할 수 있다는 루카치적 문학관의 발현이다. 이 책의 말미에 실린 조동일 교수와의 대담에서 그는 서구의 민족주의가 가졌던 폐쇄성을 경계하면서도 “정치적인 억압과 사상적인 전통의 단절을 경험한 우리에게 민족문학의 수립과 정립이 필요하다”고 발언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80년대 중후반 6년간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통을 겪으면서 그는 학자로서의 젊은 시절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 후 무력감을 떨쳐내고 11년 만에 펴낸 책이 <왜 유토피아인가>이다.


“당시 사회주의가 무너지면서 마르크스에 대해 장송곡을 보내는 게 일반화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세계 도처에 자본주의의 모순인 계급의 불평등과 소외가 만연하는데 마르크시즘에 종언을 고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보았습니다. 계급으로서의 노동자가 있는 한 그들의 자존을 지키기 위한 도덕적 싸움으로서의 마르크시즘은 여전히 요구되고 마르크스에게 장송곡을 보내는 사람은 ‘역사의 바보들’이라는 인식을 하면서 절망을 느꼈던 것 같아요.”



이 책에서 그는 플라톤, 토머스 모어, 캄파넬라, 라이프니츠 등 유토피아 사상가들을 찾아보면서 마르크시즘을 유토피아의 절정으로 바라본다. 과거의 천년왕국 신앙과 달리 근대의 유토피아 사상은 미래지향성과 평등주의라는 가치를 지니는데 그것이 바로 마르크스가 구현하고자 했던 사회이다. 그는 “현실비판으로서의 부정적 사고와 이상세계의 창조라는 긍정적 사고가 함께 하면서 유토피아를 향한 열망이 일깨워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평등한 푸른 대지’를 꿈꾸었던 박노해 시인의 옥중시, 민중의 나라라는 이상향을 제시한 황석영의 <장길산> 등 한국 문학 작품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유토피아를 향한 열망의 뿌리는 어디에서부터 비롯되는가. 그의 문학 연구의 출발점이 이곳이다. “나는 현재를 위해 과거를 망각하라는 니체와 마르크스의 입장에는 동조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역사가를 ‘죽은 자들을 식탁에 초대하는 사자(使者)’라고 부르는 벤야민이 더 호소력이 있다”고 말한다. ‘유토피아에 대한 꿈, 마르크스식으로 말하자면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의식은 미래의 후손을 억압에서 해방시킨다는 이상에 의해서가 아니라 억압 받고 착취당한 선조에 대한 기억에 의해 자라나는 것’(벤야민)이다. 따라서 그가 생각하는 좋은 문학이란 상처를 안고 죽어간 자들을 역사에서 불러내서 애도해주는 것, 상처를 어루만져서 아픔을 달래주는 행위이다. 그리스 비극의 주옥 같은 작품들이 이런 역할을 했으며 <장길산> <태백산맥> <토지>가 또한 그렇다고 본다.

그는 이처럼 신화·역사·철학·문학을 넘나드는 독서와 저술 작업을 함으로써 수많은 주석이 담긴 두툼한 연구서를 남기게 됐다. 이는 그의 사유가 특정 학문의 영역을 기능적으로 파고들기보다는 현실에 대한 고민과 천착으로부터 나왔다는 근거이기도 하다. 문학의 현실참여가 요구될 때 리얼리즘의 이론에 눈을 돌리고, 유토피아 논의를 통해 ‘목욕물을 버리려다가 목욕통 속의 아이까지 버리는 식’의 섣부른 마르크시즘 비판에 대해 경고했다. 그리고 세계사적 전환을 맞아 눈의 미학, 그리스 비극 같은 통시적 주제를 다루었다.


-‘눈의 역사’는 어떤 내용입니까.


“눈이 있는 한 인간세계는 파국을 면할 길이 없다, 종교 용어를 구사한다면 인간에게 구원은 없다는 게 내 주장입니다. 눈이라는 감각은 부분만을 파악하면서도 그것을 전체라고 규정하고 이런 모순이 사물에 대한 인식을 한정짓게 됩니다. 다른 감각을 억압하는 시각의 문화가 우세했던 서구의 역사는 많은 비극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나 나는 눈의 기능 가운데 보는 것보다 더욱 본질적으로 중요한 게 눈물을 흘리는 것이라고 본 겁니다. 타자의 고통에 대해 반응함으로써 우리는 공동체의 가능성, 구원의 가능성을 갖게 됩니다.”

문학자로서 임 교수 역시 작품과의 소통을 시도한다. “호메로스나 박경리와 같은 위대한 문학가들의 작품이 나를 통해 다시 태어난다. 나의 목소리가 그들의 목소리가 되고, 그들의 목소리가 나의 목소리가 되어 그들도 다시 태어나고 나도 다시 태어난다”는 게 그가 훌륭한 작품을 경험하고 난 뒤의 느낌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런 공감이 반드시 작가의 명망과 직결되는 건 아니다. 그는 <귀환>에서 제자였던 고 성원근 시인의 작품을 대가들의 작품과 똑같은 무게로 다룬다. 유신 말기에 대학시절을 보냈던 성 시인은 당대의 참여적 분위기에 짓눌려 기인으로 살게 되며 시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37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임 교수는 제자의 짧은 생과 못다 핀 꿈을 안타까워하면서 ‘아프면 아프다, 배고프면 배고프다, 보기 싫으면 보기 싫다’고 했던 절대순수의 성정에서 어린아이의 마음, 불성(佛性)을 보게 된다. 

60대 이후에 세 권의 저작집을 낸 그는 <그리스 비극, 애도의 노래>를 쓸 때부터 경기 안양의 집을 떠나 경남 김해의 한 도서관에서 주로 집필했다. 누이에게 식사를 의존하면서 아는 사람 한 명 없이 하루종일 책과 씨름하는 삶을 택한 그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저녁이면 연속극을 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요즘 들어 좋은 작품이 눈에 띄지 않는다. 작가들이 유토피아를 꿈꾸는 능력이 상실된 게 아닌가”하는 안타까움을 내비친다. 그래서 더 이상의 문학 연구보다는 젊을 때부터 틈틈이 써온 시를 좀더 본격적으로 써볼까 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그동안 쓴 책을 돌아볼 때 부족함이나 아쉬움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때 쟁쟁했던 학자들조차 조로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아직 30대, 40대, 50대 학자들만큼 열심히 책 읽고 글 쓰고 있으니 노인세대를 대표한다는 자부심을 가져봅니다.” 


 
임철규는 누구인가


1939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났다. 연세대 영문과를 거쳐 미 인디애나대에서 비교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30여년간 모교에서 가르쳤다. 노스럽 프라이의 <비평의 해부>로부터 영향을 받은 그는 신화, 역사, 철학을 오가는 방대한 문학 연구를 하면서 한국 사회의 현실과 동시대 문학가들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귀환>을 비롯한 다섯 권의 저작집 외에 편역서 <카프카와 마르크스주의자들>, 다수의 번역서가 있다.


<한윤정기자 yjhan@kyunghyang.com>
 

  *2009년 10월 14일자『경향신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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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