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다반사2014.08.18 18:33

『출판저널』8월호에 실린 글을 다시 게재합니다.  

 부... 부끄러워요 ///

 

 

- 편집자 JE -

 

 

『사람의 산, 우리 산의 인문학』 편집자 출간기

 

 

 

 

 

 

“우리에게 산은 무엇인가.”

원고는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산은 그저 산일 뿐이지 우리에게 산이 무어냐니. 한 번도 생각해본 일이 없는 물음이었다. 우리가 익숙하다고 생각하는 산. ‘어디에나 있는 산’이라는 고정관념이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지를 묻는 근원적인 질문이었다. 한국인에게 산이 무엇이냐를 묻는 이 한 문장만으로도 이 원고의 가치와 특별함이 잘 드러난다.

한길사가 이 원고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8년이었다. 애초에는 저자의 논문과 그간의 성과를 모아 집대성하는 학술적 성격의 책으로 낼 계획이었다. 그러나 산에 대한 등산 안내서는 많았지만 산을 인문학적으로 바라보고 집대성한 성과가 없다는 것을 시장조사를 하면서 확인했다. 책의 가치와 성과를 확신하고 좀더 대중적으로 다가가는 책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경남 진주에 살고 계시는 저자 최원석 선생과 이메일을 통해 수도 없이 소통하면서, 원고 보완과 개작을 여러 차례 거쳤다. 사진 위에 일러스트를 입히고, 지도를 새로 그리고, 고지도 위에 위치를 표시하는 작업은 번거롭고 시간이 많이 들었다. 워낙 귀하고 중요한 자료가 많아서, 가능하면 덜지 않고 그대로 싣자고 욕심을 부리다보니, 참고자료․용어사전 등의 부록이 방대해졌다. 640쪽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임에도 지면의 한계로 좋은 자료사진을 많이 덜어낸 것이 아쉽다. 분량도 분량이지만, 그림, 사진, 일러스트, 도표, 지도 등 편집의 요소가 워낙 다양해 까다로운 책이었다.

회사 내에서도 이 책의 출간을 바라고 응원해주는 분이 많았다. 많은 분들이 기다려주시니 부담감도 있었지만 아이템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힘을 내었다. 시간을 오래 들이다보니 책이 빨리 나오지 않아 마음고생을 많이 했지만, 편집자로서도 공부가 된 좋은 기회였다.

 

 

이 책이 아직 지희선배 담당이던 어느 겨울날

한길사를 방문해주신 최원석 선생님. 모두의 미소가 푸근하지요?

 

 

책을 편집한 기간이 길어서, 그사이에 여러 지방에 갈 일이 있었다. 그런데 편집해갈수록 점점 산을 보는 눈이 바뀌고 있음을 느꼈다. 이 책이 주는 가장 확실한 효능(!)이랄까.

산의 모양을 오행으로 나누어 그 성질을 ‘금목수화토’로 나눈다는 부분을 읽고서, 전에는 무심코 보아 넘겼던 산줄기의 모양을 얼치기로나마 가늠하게 되었다. 고을마다 그 고을을 지켜주는 진산을 배정하고 산의 자리에 따라 동헌과 객사 그리고 마을 중요 시설들의 입지를 정했음을 읽고는 객사 건물뿐만 아니라 그 건물이 산과 어떻게 조화되어 앉았는지를 유심히 보려고 애썼다. 산을 용의 줄기로 이해하고 산의 생김새를 살피는 ‘용론’(龍論)을 읽고 나서는 산의 꿈틀거림, 산등성이와 계곡의 오르내림을 살피게 되었다.

산의 기운이 허한 부분에 인공으로 돌탑이나 나무, 석물 등을 심어 지세를 보완하고 주민의 심리를 보살피는 조산(造山)의 존재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해남 미황사 가는 길에 교통표지판에서 조산리라는 지명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조산이 있는지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차창 밖 들판에서 조산을 찾아내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기껏해야 단풍 든 것이나 보고 높이에만 감탄하던 내가 어렴풋이나마 산을 인문학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책이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고 흔히들 말하지만 쉬운 일은 아닌 듯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산을 보면 문득 내가 달라져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원고의 첫 독자인 편집자가 체험했기에 효능(!)은 100퍼센트 보장한다. 많은 분이 직접 체험해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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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한길다반사2014.08.11 20:48

한길사, 인왕산에 오르다.




한국의 등산 인구가 1,500만 명이라 합니다.

국토의 70%가 산이니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지리적 특성 탓에 우리나라 사람은 모두 산과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시선을 두는 곳도, 발걸음을 향하는 곳도 모두 산이죠.

자연스레 산과의 관계에서 어떤 심성이 생겼을 겁니다. 그것도 반만년의 역사 내내 말이죠.

바로 이 ‘그토록 오래 주고받은 관계의 문화사’를 풀어낸 책이 지난 7월 나왔습니다.

『사람의 산 우리 산의 인문학』이란 제목에서부터 사람과 산의 관계가 도드라져 나옵니다.



『사람의 산 우리 산의 인문학』 출간되자마자 2쇄를 찍었을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이 책의 저자 최원석 선생님은 지난 10여 년간 전국의 산을 직접 다니시며 많은 자료를 모으셨다고 합니다.

선생님의 내공이 집대성된 만큼 책에는 사시사철 다양한 산의 모습, 평소 보기 어려웠던 고지도 등이 실하게 담겨있습니다.

그것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산에 와 있는 듯, 산과 ‘관계’하고 있는 듯 여겨지죠.

괜히 그 관계가 떠올라 산에 가고 싶어진달까요?



가자 인왕산으로!


네, 그래서 갔습니다.

최원석 선생님을 모시고, 40여 분의 독자를 모시고 산으로 갔습니다.

지난 주말 사직공원에 모여 인왕산을 오른 것이지요.

예상보다 많이 와주신 덕에 현장에서 준비한 김밥과 생수가 모두 동나버렸습니다.

산에서 듣는 산의 인문학이란 무엇일지 기대하셨던 분들이 정말 많으셨던 것이겠죠.



산행의 시작은 웃음으로! 저자 최원석 선생님의 함박웃음으로 시작된 산행.



오전 10시, 최원석 선생님과 한길사 김언호 사장님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산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모두 산의 유전자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얼굴도 비슷한 것이 적어도 산과 관계함에서는 모두 형제자매라고 하셨죠.

우리가 ‘유산’(遊山) 하며 즐겁게 노닐 수 있는 이유입니다.



자박자박. 흙 밟는 소리가 좋다. 가벼운 마음으로 오르기 시작한 인왕산.



인왕산은 많은 사람이 찾아서인지 그만큼 등산로도 잘 닦여 있었습니다.

남녀노소 모두가 큰 어려움 없이 재잘거려가며 오를 수 있었죠.

그렇게 처음 만나는 분들과 말도 섞고 경치도 즐기며 ‘사람의 산’을 올랐습니다.

날씨도 하늘이 도와 등산하기에는 최고였고, 저 멀리 강남까지 한눈에 굽어보며, 틈틈이 최원석 선생님의 인문학 강연을 듣자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죠.

산에서 듣는 산의 인문학은 최고의 경험이었습니다.



서울의 동서남북이 모두 한눈에! 산에서 듣는 산의 인문학!



인왕산에서 느끼는 호랑이기운!


그렇게 유산하며 도착한 첫 번째 전망대에서 선생님의 강연이 이어졌습니다.

선생님은 인왕산의 유래에 관해 들려주셨는데요, 재미있는 사실은 인왕산의 ‘인왕’이 불교에서 유래되었다는 겁니다.

인왕을 한자로 풀어보면 ‘仁王’이 되는데 이게 바로 불교의 수호신 ‘仁王’이라는 것이죠.

즉 수도인 한양을 지키는 산이라는 겁니다.

이러한 의미는 인왕산에만 한정된 것은 아닙니다.

사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각 고을의 가장 큰 산을 ‘진산’(鎭山)이라 하여 그곳을 보호하는 산으로 모시고 매년 제사를 올렸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서울의 진산은 삼각산(현재 북한산)이겠죠.

이때 북한산을 중심으로 총 여덟 개의 산이 안과 밖으로 서울을 둘러싸며 보호하고 있는데요, 그중 인왕산은 서향에 위치한 안쪽 산입니다.

조선 시대에 호랑이가 많이 나와 지금까지 호랑이를 상징으로 하고 있죠.

호랑이처럼 용맹하게 서울을 지키는 산이 바로 인왕산인 것입니다.



인왕산의 금빛 호랑이! 이놈이 청와대와 경복궁만 지킬까? 수도 서울 모든 민(民) 역시 인왕산 호랑이가 보우하길. (출처: 다음 티스토리 구름에 달가듯이 가는 나그네)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호랑이 기운을 재충전했습니다.

탁 트인 서울의 모습도 기운을 솟아나게 했죠.

점점 더 인왕산의 푸르름 속으로 들어가며 뭐랄까, 인문학적 설명 때문인지 막연히 큰 산으로만 보았던 인왕산이 약간은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잠시 뒤 맞닥뜨린 ‘서울산성’에서 다시 한 번 휴식을 취했습니다.

최원석 선생님께서 이번에는 우리나라의 산과 우리나라 사람의 관계에 관해 설명해주셨습니다.

우리나라는 산을 대할 때 사람 대하듯 하죠. 하나의 인격으로 대한다는 것이고 그만큼 친밀하다는 것입니다. 삼신할매산처럼 말이죠.

반면 가까운 일본만 가도 산을 외경스럽게 여깁니다. 두려운 존재죠. 그들에게 산은 사람 모양의 신으로 그려질 순 있어도 절대 사람처럼 다가갈 순 없습니다.

서양으로 가보면 또 다른 것이 아예 해발 600m 이상만 Mountain으로 취급받죠.

그리고 그들은 Mountain을 정복해 버려요. 결국 600m는 정복 기준이랄까요?

반면 우리나라는 딱히 기준이 없습니다. 그냥 산이라 불리면 산인 것입니다. 뒷동산도, 백두산도 모두 똑같은 산이죠. 그래서 우리나라엔 산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산이 친구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어느새 정상에 올라


친구. 참 좋은 말입니다.

그렇게 친구의 등을 계속 타고 올라 어느새 정상에 올랐습니다.

산 정상에서 느끼는 상쾌함은 무엇과도 비교불가죠.

동서남북 모든 방향에서 굽이치는 산과 그 틈 사이로 꽉 들어찬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파랑을 보고 있자니 감탄이 절로 나오더군요.

바로 이것이 ‘사람의 산’이고 ‘우리 산의 인문학’이며 ‘그토록 오래 주고받은 관계의 문화사’ 아닐까 하면서 말입니다.



정상에서의 마지막 강의. 한길사 김언호 사장님과 주고받는 대화.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선생님의 강의가 이어졌습니다.

마지막 주제는 통일 한국의 수도였습니다.

통일 한국의 수도. 거창하지만 꼭 생각해야 할 것이죠.

선생님과 사장님은 통일 한국의 수도로 파주 일대를 꼽으셨습니다.

많은 잠재력을 품은 땅이지만 분단으로 인해 자신의 기운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상태라고 설명하셨습니다.

특히 사장님께서는 미래의 대한민국을 위해 남쪽으로 파고들어 가기보단 북쪽으로 올라가야 함을 강조하셨는데요, 세계를 호령하기 위해선 수도를 정할 때도 진취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죠. 많은 분이 공감해 주셨습니다.



여행의 마지막은 역시 단체사진! 얼굴을 찾아보세요~



친구 같은 산에서 시작해 미래 한국의 수도를 논하며 마무리된 인왕산 유산!

내려오는 발걸음에서 느낀 왠지 모를 아쉬움은 친구와 헤어지는 아쉬움이었을까요?

다시 사직공원에 모여 서로 인사를 주고받으며 헤어지며 한국의 100대 명산을 다 같이 유산하자던 독자들의 요청이 귓가를 맴돕니다.


그래서! 또! 준비했습니다.

10월 4일 파주 심학산 유산!

유산 후 최원석 선생님의 강연이 책방한길에서 펼쳐집니다.

이번에도 많이 참석하셔서 좋은 관계 만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기대하는 마음으로 다시 만나요!



by 편집자 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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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한길다반사2014.05.28 17:18

[한길사가 만난 사람]

우리 시대의 ‘자유인’ 김민웅 교수

 

5월 27일(바로 어제!) 옥수동의 한 카페에서 김민웅 선생님을 만나 뵙고 왔습니다. 한길사의 편집자 安과 映이 파주출판도시에서 서울 한남동까지 먼 길을 발품 팔았는데요. 선생님의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명석한 이야기에 빠져들어 시간 가는 줄 몰랐답니다. 저희가 함께 나눈 흥미진진한 이야기, 독자분들과도 당연히 나누어야지요!

 

 

 

한길사(이하 한): 김민웅 선생님, 안녕하세요. ‘차이니즈나이트’에서 뵙고 2주 만에 다시 뵙네요. 올 여름 출간을 목표로 『인문정신을 읽다』『그들은 무엇을 생각했을까』(가제) 등 ‘김민웅의 인문정신’ 3부작을 준비하고 계시지요. 새 책에 실리는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해주세요. 이 책을 구상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요?


김민웅 선생님(이하 김): 책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우리의 정치사회적 현실에 대해 본질적으로 생각을 해보자는 것입니다.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어떤 분야든 한때 잠깐 화제가 됐다가 잊히는 것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망각의 정치’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이 문제를 극복하지 않으면, 즉 우리 사회가 논의는 해놓고 버리는 것이 되풀이되면 시간 낭비입니다. 이런 점을 다듬어서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보자는 노력입니다. 시론은 그때는 절박한데, 지나면 날아가버리는 것처럼 느껴져요.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문제들을 관통하는 본질이 있습니다.

 

둘째, 이런 문제는 우리만 겪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있었지요. 그것과 대화를 해보자는 것입니다. 정밀하게 새로운 생각, 새로운 철학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우리나라 인문학적 사유의 체계를 잡아보자는 것입니다. 그동안 인문학이 대학에서는 자본에 압도되어 배제되었지요. 인문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쏟아지긴 했지만, 인문학이 우리 사회현실과 정면으로 부딪히면서 답을 구하는 사회적 능력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인문정신을 사회적 능력으로 전환시키는 방법은 없을까요?



한: 지난 달 세월호 참사가 온 국민을 큰 슬픔에 빠트렸고, 또 여러 관련 정황들이 분노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은 어떤 심정이신가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더 뚜렷해진 생각이나 바뀐 생각이 있나요?

 

 

 

김: 가장 중요한 것은 그걸 통해서 우리 사회가 ‘내 목숨이 남한테 달려 있구나’를 깊이 생각해주길 바란다는 점입니다. 거꾸로 나도 누군가의 목숨을 움켜쥐고 있는 것이지요. 모두 함께 잘해야 서로가 서로를 살릴 수 있다는 그런 마음의 힘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는 희생되는 비극이 재생산될 것입니다. 나는 누구에게 남인 것처럼 남에게도 나는 남이지요. 하지만 모두 엮여져 있습니다. 고통에 대한 공감이 필요합니다. 함께 마음을 합쳐 생명의 정치, 교육, 문화를 이뤄내야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명·협동·연대의 가치가  쉽게 용인되거나 길러지지 못합니다. 그런 잃어버린 가치를 복원하려면 혁명적인 노력이 필요하겠지요.

 

더더욱 세월호 참사는 사건 자체의 참혹성이 컸고, 이번 사건은 SNS의 발달이라는 인식 방법의 변화로 집단적으로 겪은 동시적 경험이었지요. 세월호 참사로 인해 생겨난 사회적 요구가 있고, 이런 요구에 대답해야만 미래가 열립니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불러일으키는 계기였지요. 자본주의의 문제를 얘기하게 됐고, 시장의 탐욕, 언론지형, 교육 모든 분야에 대해 문제가 제기됐습니다. 그리고 바꿔나간 그 사회적 틀 속에서 다시 권력을 세워야 하는 점이 있지요. 이 모든 문제를 얘기해야 합니다. 그 이론적 배경을 살펴야 합니다.



한: 최근에 서울대, 중앙대, 카톨릭대, 전북대, 그리고 선생님께서 강의를 맡고 계신 성공회대도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이어졌습니다. 대학교수의 시국선언은 현재 상황에서 어떤 의미가 있나요?

더불어 선생님께서 강조하시는 ‘인문정신’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고, 『자유인의 풍경』 서문에 적으신 선생님의 표현을 빌려 인문학이 ‘일상적인 삶과 생생히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 지식사회가 이 사건 앞에서 권력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를 낸 것이지요. 우리 사회가 어디있는지에 대한 좌표 정리, 붙잡아야 될 미래 가치는 무엇인가에 대해 명확하게 발언한 것입니다. ‘그 정도 갖고 되느냐’라는 질문도 있을 수 있지만 이것이 시작입니다.

 

또 교육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란 점이 중요합니다. 그간 한국사회에서 교육의 가치는 생존 수단의 획득 또는 출세를 위한 디딤돌이었는데, 교육은 사실 인간다운 삶, 더불어 사는 삶을 얘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얘기는 사실 오래되었지만, 변치 않는 미래적 가치이기도 합니다.

 

전문지식도 필요하지만 야비한 검사, 비인간적 의사, 탐욕적인 판사는 필요 없습니다. 흉기입니다. 전문적 능력보다, 그 사람의 마음의 방향이 중요합니다. 윤리의식이 기초이지요. 그것을 사회에서 실현하기 위한 직업을 선택해야 하는 겁니다. 그게 맞는 순서입니다. 정의를 위해서 판사가 되고, 사람을 구하고 싶어서 의사가 되어야 하는 겁니다. 교육의 가치가 뒤바뀌어 있던 것입니다.

 

박근혜 정권에 대한 신랄한 비판은 있는데, 이 권력을 용인하는 사회도 엄청난 책임이 있습니다. 그 힘이 더 커지면 그런 정권은 존립 근거를 찾지 못할 것입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알아볼 수 있는 안목과 그것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그래서 책 읽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좋은 책을 읽고, 나누고, 그런 사회적 독서가 확장되는 사회가 되어야지요. 그래야 사회가 바뀝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한: 요즘 인문학 열풍이라고 할 정도로, ‘인문학’을 제목으로 단 책이 쏟아져나오고 곳곳에서 강의도 많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인문정신이 사회에 뿌리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 인문학이 요즘 사회적 관심을 받고 있고 대중적으로도 주목받고 있지요. 인문학적 노력이 기울어졌고, 이는 긍정적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하지만 두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우선, 인문학은 자기성찰적 주체를 만드는 일인데, 요즘은 위로만 받고 마는 형태의 객체가 되어버렸습니다. 한편, 인문학을 심화시켜서 밀고 나가려는 사람은 또 너무 어렵게 만들어서 대중이 접근하기 힘든 지점으로 가버립니다.

 

인문학을 공부해야만 사회에서 발언할 수 있다는 식의 분위기가 형성되면 곤란합니다. 어떤 문제든 아주 쉬워 보인다 하더라도 쉬운 질문이 어렵습니다. ‘뭐가 들려요’라든지 ‘어디에 있어요’라든지. 일상 속에서 정말 깊이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생기면 무엇도 가볍게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깊이 들을 줄 알고, 마음에 들어가는 힘이 생기고, 본질을 바라보게 하고, 하나 안에 들어 있는 깊이를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게 인문학의 핵을 움켜쥐는 일입니다. 사회 속에는 여러 가지 그물망, 얽힘이 있지요. 그 얽힘이 나를 해방시키는지, 얽매는지, 만약 괴롭힌다면 이를 소멸시키기 위해 뭐가 필요한지를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 사이의 그물망은 사회로 확장되지요. 고통의 연대가 확장되면 팔레스타인 문제도 우리 문제가 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그 정도야 못 되지만, 지구촌적 연대까지 가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인류적 차원의 사유를 갖게 돼야 비로소 ‘성숙’해짐을 알게 될 것입니다.

 

‘축의 시대’라고 하지요. 예수와 소크라테스, 자라투스트라 등의 인물들이 모두 그 시대 사람들입니다. 그 당시 사회는 종족주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인간 전체, 인류의 문제를 제기했던 것입니다. 엄청난 일이었지요.



한: 선생님께서는 글도 쓰시지만, 지난 ‘차이니즈나이트’ 행사에서 실력을 발휘하신 것처럼 뛰어난 사회자이시도 합니다. 말하는 일, 글 쓰는 일, 그리고 강의하는 일. 또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시는 일. 선생님께는 각각의 활동이 어떤 매력이 있나요?


김: 가장 중요한 것은 일상이 행복하고, 즐거운 삶이 되길 바란다는 점입니다. 정치적인 얘기를 해도 문화적 언어로 번역이 되고, 문화를 얘기해도 정치적 의미를 생각하고. 이런 전방위적 교류가 중요합니다. 사회의 여러 결들에 대해 함께 생각하는 자리를 만드는 것은 언제나 좋습니다. ‘문화 얘기인가?’ 하고 보면 경제 얘기이고, ‘음악 얘기인가?’ 하고 보면 또 연극 얘기이기도 하고. 이런 것들이 좋습니다.


한: 오늘의 우리 사회가 읽었으면 하는 책이 있다면 세 권만 추천 부탁드립니다. 물론, 선생님 책도 읽어보겠습니다^^!

(속닥속닥-김민웅 선생님의 저서로는 『창세기 이야기』(2010) 『자유인의 풍경』(2007) 등이 있답니다.)


김: 첫 번째는 『돈 키호테』입니다. 그는 바람이 불어도 바람을 맞으면서 달려간 사람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구하려 세상의 조롱을 받아도 아랑곳하지 않은 놀라운 사람입니다. 사랑이 많고, 깊고, 지식이 무엇을 위해서 쓰여야 하는지 아는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멋있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는 『자본론』입니다. 물론 읽기 쉽지는 않지요. 하지만 현재 최대의 화두가 자본과 인간의 문제이지요. 『자본론』에는 그 문제를 풀기 위해 고뇌했던 한 시대의 육성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책을 통해서 우리 사회의 모순을 생각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마지막은 『성서』입니다. 종교 여부를 떠나서, 『성서』에는 한 역사가 엄청난 고통에 시달릴 때 그것을 뚫어내는 육성이 담겨 있습니다. 『성서』는 한 개인이 집필한 것이 아니지요. 집단 지성의 산물입니다. 한 예로 「창세기」를 서양 철학사에서 빼놓고 얘기할 수 없습니다.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책들이 필요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가 『성서』를 어떻게 읽어나가느냐에 따라 정신적 역량은 크게 점프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이 천재가 많은 이유에요. 깊이 읽고, 깊이 사유하기 때문입니다. 레비나스 같은 사람은 ‘타자의 얼굴’로 우리나라엔 많이 알려져 있는데, 본령은 성서해석학입니다. 깊이 읽는 것이지요. 그런 면모는 잘 소개되어 있지 않습니다. 즉 『성서』를 깊이 읽는 것은 ‘성찰의 훈련’을 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한: 선생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우리 사회의 인문정신을 고양하는 뛰어난 활약 기대할게요. 한길사도 더욱 열심히 뛰겠습니다!

 

 

 


 

아, 하루가 지났건만 선생님의 매력이 얼마나 큰지, 아직도 선생님의 음성과 표정이 아른아른 합니다. 올 여름 출간 예정인 선생님의 새 책,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리게 될 것 같습니다. 기쁨인지, 고통인지...^^;


- 편집자 映




김민웅

김민웅은 1956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1961년 고국으로 돌아왔다. 20여 년 동안 미국에서 목회자, 언론인, 국제문제 전문가로 활동했으며, 미국의 대외정책과 한미 간 미래지향적 관계에 대해 연구했다. 2004년 귀국해 EBS 국제시사방송을 진행했고, 현재 성공회대학에서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역사적 변화과정을 분석하는 ’세계체제론’을 가르치고 있으며,「프레시안」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자유인의 풍경』『창세기 이야기』『밀실의 제국』『보이지 않는 식민지』『사랑이여 바람을 가르고』『패권시대의 논리』『콜럼버스의 달걀에 대한 문명사적 반론』『물 위에 던진 떡』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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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한길다반사2014.05.19 18:15

[강의 소식] 신정근 선생님의 EBS 인문학 특강

'논어, 인간의 길을 찾다' 제1강

 

편집자 JE가 무척 좋아하는 책,

『논어-세상을 바꾸는 것은 사랑이다』의 저자 신정근 선생님께서

'EBS 인문학특강'에서  "논어, 인간의 길을 찾다" 라는 주제로 총 7회 강연을 하십니다.

오늘저녁 12시 30분, 그 첫 강의가 시작됩니다.

 

오늘의 주제는 "學, 우리는 왜 배워야 하는가?" 입니다.

 

기존의 인문학 특강과 달리, 시청각 자료를 많이 사용해서 다정하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시는 것이 신정근 선생님의 장점이시지요.

오늘의 강의도 정말 기대가 되네요!

신정근 선생님의 EBS 인문학 특강! "논어, 인간의 길을 찾다"

한길사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

 

 

 

 

서점에서도 인문고전 깊이읽기 『논어-세상을 바꾸는 것은 사랑이다』를 찾아주세요~

예쁜 파랑 스티커가 붙어 있어, 금방 찾으실 수 있어요~

 

 

 

 

 

<강의 내용>

 

 /우리는 왜 배워야 하는가?

而時習之, 不亦說乎? 

 

『논어』가 배울 학() 자로 시작할 정도로 배움을 강조하는 맥락을 살펴보고, 공자가 배움을 자기 극복의 길로 여겼듯이, 왜 지금 나는 배워야 하는가,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를 생각해 본다.

 

  

 

 

1. <논어>는 무엇으로 시작되는가?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학이>

      공 선생님이 이야기했다.

      배우고 때에 맞춰 몸에 익히면 기쁘지 않겠는가? 친구가 먼 곳에서 나를 찾아준다면 즐겁지 않겠는가 

       주위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내지 않는다면 자율적 인간답지 않겠는가?” 

 

  

2. 현실을 극복하는 방법은?

 

    十室之邑, 必有忠信如丘者焉, 不如丘之好學也 <공야장>

    열 가구만이 사는 작은 마을이라도 반드시 나만큼 충실하고 믿음성이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나만큼 학문을 사랑하는 이는 없을 텐데.“

 

 

3. 배움은 왜 중요한가?

 

 

好仁不好學, 其蔽也愚, 好知不好學, 其蔽也蕩, 好信不好學, 其蔽也賊, 好直不好學, 其蔽也絞, 好勇不好學, 其蔽也亂, 好剛不好學, 其蔽也狂.“. <양화>)

첫째로 걸핏하면 사랑(화합, 평화)을 앞세우면서 배우려고(반성하지) 하지 않으면, 이때의 단점은 어리석은 짓을 하는 것(맹목성)이다. 둘째로 지혜를 앞세우면서 배우려고 하지 않으면, 이때의 단점은 제멋대로 구는 것이다. 셋째로 믿음을 앞세우면서 배우려고 하지 않으면, 이때의 단점은 상대를 다그치는 것이다. 넷째로 올곧음을 앞세우면서 배우려고 하지 않으면, 이때의 단점은 쌀쌀맞게 되는 것이다. 다섯째로 용감무쌍을 내세우면서 배우려고 하지 않으면, 이때의 단점은 혼란을 부추기는 것이다. 여섯째로 굳건함을 앞세우면서 배우려고 하지 않으면, 이때의 단점은 통제 불능이 되는 것이다.”

 

 

4. 배우면 행복할까?

 

    子在齊聞韶, 三月不知肉味, : "不圖爲樂之至於斯也.“ <술이>

    공 선생님이 제나라에 머무를 때 순임금의 소 음악을 보고 들을 기회가 있었다.

     선생님이 얼마나 열중했는지세 달 동안(꽤 오랫동안) 고기 맛을 몰랐다.  

     그러고는 문득 한마디 했. “음악을 감상하다가 이렇게 될 줄은 전혀 몰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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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 / 한길아트2013.08.16 14:18


파노프스키의 논문 10편으로 알아보는

'예술작품 속 형식에 어떤 의미가 숨겨져 있나?'



EBS <다큐 프라임>에서 예전에 흥미로운 다큐멘터리가 방영됐었습니다. 제목은 '동과 서'. 동서양의 사고방식 차이를 다룬 것으로 우리 일상 속의 행동 하나 하나를 사례로 들어 동양인과 서양인의 차이점을 설명했습니다. 전혀 의식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큰 차이점이 있다니 싶어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특히 기억에 남았던 것은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었습니다. 


동양에서는 그림 구도를 넓게 잡아 화가가 마치 하늘에서 보는 것 같은 그림을 그리는 반면, 서양에서는 화가가 장면을 바로 앞에서 보고 있는 것 같은 그림을 그린다고 합니다. 이는 대상 중심으로 생각하는 동양과 관찰자 중심으로 생각하는 서양의 차이점 때문입니다. 우리가 간과했던 예술작품에 숨겨져 있는 이런 형식적인 부분의 의미를 찾아보는 것은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또 다른 포인트가 아닐까 합니다. 이런 지적 유희를 돕기 위해 20세기를 대표하는 미술사학자 에르빈 파노프스키의 『시각예술의 의미』(한길사│2013)를 소개합니다. 



『20세기 중국미술사』(한길사2013) 726p,『명화로 읽는 성서』(한길아트2000) 78p




주 논문과 본론을 포함해 이 책에 실린 총 10편의 논문 중에는 개론적인 미술이론의 성격을 띄는 것도 있고 아주 특정한 관심영역을 다룬 것도 있습니다. 각 논문에 얹힌 시간의 역사 또한 고대에서 중세와 르네상스를 거쳐 1950년대 미국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물론  각 논문이 발표된 시기 또한 다릅니다. 다시 말해 각 논문은 작성 시점의 시대 상황, 파노프스키가 행한 미술사 연구의 이론적인 궤적과 문맥에 따라 읽는 것이 좋습니다.






논문들 사이에서 미술사적인 중요성의 경중을 가린다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모든 글에는 20세기 최고의 미술사학자로 불리는 파노프스키의 미술과 미술사에 대한 인본주의적 관점이 진중하게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파노프스키가 인간 세계의 구조를 밝히는 데 도입한 의미와 구조의 방법은 더욱 그 연구의 이론적 의의와 가치를 발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대표적인 논문

「도상학과 도상해석학」(1955)

이 논문은 파노프스키의 ‘방법’에 대한 가장 광범위한 문제제기를 일으킨 글입니다다.  ‘르네상스 미술에 관한 서문’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글에서 파노프스키의 ‘방법’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에 맞게 구상된 것입니다. 즉 ‘인간’에 대한 인본주의적 관점과, 그러한 인간 개념이 생산한 미술에 기반을 둡니다. 따라서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이 미술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규범적인 중심성에 의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양식사의 반영인 인체비례론사」(1921)

파노프스키가 객관적 비례와 기술적 비례를 구별하면서 인간 측정의 이론을 추구하는 데에는 비례의 문제가 시각의 변화와 연관된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자리합니다. 우리 몸의 움직임은 움직이는 부분과 다른 부분에 영향을 끼칩니다. 그런데 이집트인들은 이를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예술 의욕은 변화 가능한 것이 아닌 지속적인 것을 향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집트 미술에서 조각상은 인간 존재의 기능이 아닌 형식을 재생산했습니다. 그리고 미술가는 그러한 형식을 재구성할 수 있게 측정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예술 의욕은 객관적 비례를 자유롭게 변화하게 하고, 미술가와 감상자의 시각에 조각상이 더욱 조화롭게 재생산되도록 해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집트 미술과 달리 그리스 미술에 이르러서는 기술적 비례와 객관적 비례의 상응이 이루어지지 않게 된 것입니다.


「조르조 바사리의 『리브로』 첫 페이지」(1930)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입장에서 판단한 고딕 양식 연구’란 부제가 붙은 이 논문은  파노프스키가 미술사학이라는 학제와 르네상스 미술 용어들 사이의 결정적인 관계성을 세운 글로서 의의가 큽니다.「바사리」 텍스트는 상대적으로 파노프스키 초기의 연구물 가운데 하나로, 자신의 미술사학의 미래 발전을 위한 명제적 방향을 함의합니다. 즉 파노프스키의 미술사학은 방법과 규준에 대한 질문에 힘 있게 답하기 위해 재현의 차원과 심미적 차원에서의 해결을 지향했습니다. 두 가지 모두 스스로의 대상들을 위한 자기 명증을 상상합니다. 이는 해석을 위한 유효함 또는 해석에 대한 요구라는 제1의 문제를 숨깁니다. 그렇게 파노프스키는 우리에게 ‘의미’의 역사 전체에 어떻게 하나의 대상이 삽입되는지, 의미의 역사를 어떻게 하나의 대상을 통해 바라보아야 하는지 말해줍니다.



에르빈 파노프스키(1892~1968)는 독일 하노버에서 태어나 뮌헨 대학 ·베를린 대학 ·프라이부르크 대학 등에서 미술사를 배운 20세기 최고의 미술사학자입니다. 처음에는 양식(樣式) 연구에서 출발하였으나, 후에는 도상학에 대하여 도상해석학을 제창하고 그 방법론을 확립하였으며, 고대에서 근세에 걸치는 다양한 저작과 논문을 남긴 20세기 최고의 미술사학자입니다. 그림을 보고 느끼는대로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 파노프스키의 뛰어난 논문을 모아놓은 『시각예술의 의미』를 읽고 가끔은 그림을 '알고' 감상하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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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다반사2013.06.17 11:28


인문학 콘서트

인천이 낳은 거목, 죽산 조봉암의 계속되는 꿈



버스에서 버스로 갈아탄 짧은 여행 끝에 인천에 도착했습니다. 서울에서 가까워 친숙하지만 자주 발 디뎌본 적은 없는 묘한 도시 인천에서 누구를 만나기로 했거든요. 주인공은 한길사의 <조봉암평전-잃어버린 진보의 꿈>(이원규, 2013)의 저자 이원규 선생님!  '대한민국 헌법 사상 첫 사법살인의 희생자'였던 죽산 조봉암의 삶을 치밀하게 재구성한 <조봉암평전>에 관한 인문학 콘서트 때문에 만나뵙게 된 것인데요. 독립운동가이자 진보적 정치가였던 조봉암은 인천에서 태어나 인천을 활동 기반으로 삼았습니다. 인천에서 열린 인문학 콘서트에서 죽산 조봉암의 삶과 사상을 주제로 한다는 건 그래서 더 뜻깊었답니다. 그럼 인문학 콘서트 현장에 살짝 들러보실까요?







이원규 선생님과 함께하는 밥이 되고 꿈이 되는 인문학 콘서트 


인천에서 열린 '밥이 되고 꿈이 되는 2013 인천 인문학 콘서트'에서 지난 13일 이원규 선생님의 강의가 있었습니다. '밥이 되고 꿈이 되는 2013 인천 인문학 콘서트'는 인문학 강의로 내면을 채우자는 모토로 한 달에 한번 진행되는 강의로 이 날은 세번째 시간이었습니다. 인천이 낳은 시대의 풍운아 죽산 조봉암 선생의 삶을 살펴보고 생전에 그가 이루고자 했던 뜻을 인천에서 어떻게 이어나갈 것인가를 고민해보기 위한 강의였습니다.  



*죽산 조봉암(1899년 9월 25~1959년 7월 31일)

강화 출신의 독립운동가, 통일운동가, 정치가로 호는 죽산(竹山). 사회주의사상에 입각한 독립운동을 하였다. 1948년 헌법기초위원장으로 대한민국 건국에 참여했다. 사회민주주의 노선을 지닌 진보당을 창당한 후 정당활동을 하다 1958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대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됐으나 2011년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복권되었다. 





10쪽이 넘는 참고자료 목록과 방대한 인터뷰 기록


이원규 선생님의 <조봉암평전>은 단순 자료 수집과 집필에만 5년이 넘게 걸린 집념의 결정체입니다. 6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은 죽산 조봉암의 활동지였던 모스크바와 상하이, 일본, 인천 등을 직접 답사해 사실에 입각해 재미있게 전달하고자 했던 선생님의 의도가 그대로 녹아있습니다. 






앞서 설명했듯이 이원규 선생님의 이 날 강의는 조봉암 선생의 삶을 살펴보는 것이었는데요. 인천에서 태어나 모스크바로 건너가 어떻게 공산주의자가 됐는지, 모스크바에서 상하이를 넘나드는 독립운동 활동, 해방 후 공산주의와 결별한 뒤 진보적인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그의 일생을 찬찬히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범상치 않았던(?) 여성 편력과 대한민국 첫 사법살인의 희생자가 된 일련의 이야기들은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같이 흥미진진했습니다. 






특히 주변인들이 전하는 조봉암 선생의 평범한 한 인간으로서의 에피소드들은 이원규 선생님이 직접 조봉암 선생의 첫째딸 조호정 여사 등 지인들을 찾아 인터뷰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생생했습니다. 수년 동안 씨름했던 조봉암 선생 이야기가 이제는 지겨울만도 하건만 이원규 선생님은 강의 도중 살짝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평화와 정의의 씨를 세상에 뿌리고 정작 본인은 스러져버린 조봉암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에요. 조봉암 선생에 대한 애정이 절절히 드러나시더라고요!





죽산 조봉암, 재조명 움직임


조선공산당을 창당하며 항일 독립운동을 하고 훗날 대통령선거까지 출마했던 거물 정치인 조봉암 선생. 1958년 간첩혐의를 받고 처형돼 2011년 대법원 무죄 판결을 받기 전 50여년 간 그는 우리나라 역사에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인천에서 태어나 인천을 중심으로 활동한 그의 생애를 인천에서 되짚어 보는 것은 큰 의미를 가지지 않나 싶습니다. 이번 강의를 기획한 (사)인천사람과문화 이상훈 사무국장은 "지금 진행하는 행사들이 '인천에 대해 많이 알자'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번 강의를 계기로 조봉암 선생이 사람들에게 좀 더 알려져 그 분의 생각이 다음 세대들에게도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어요. 



▲(사)인천사람과문화 이상훈 사무국장(아래)




이 날 강의를 들은 몇몇 사람들에게서 벌써 바람직한 소감이 나왔는데요. 인천독립영화협회를 준비 중인 장재구 씨는 "오늘 강의 내용을 기록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참석했는데 강의를 들어보니 그를 영화, 방송 등에서 좀 더 많이 기록해야  할 필요성을 크게 느꼈다."며 "추상적으로 알고 있던 조봉암 선생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겠다"고 생각하셨다네요. 또 인천지역 청년 활동가인 임한나 씨도 "지금도 서울의 변두리라는 이미지가 굉장히 강한 인천을 당시에 거점으로 삼아 수 많은 활동을 했다는 것이 인상적이다."며 "지금 하고 있는 지역 활동도 인천을 거점으로 사회에 이바지 하는 씨앗으로 더 활성화 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합니다. 



▲인천독립영화협회를 준비 중인 장재구 씨(위)와 인천지역 청년 활동가인 임한나 씨(아래)




인천은 동상 건립과 심포지엄 개최, 생가터 발굴 사업 등 조봉암 선생을 재조명하기 위한 작업을 추진 중이라고 해요. 이원규 선생님의 <조봉암평전> 출간과 함께 본격 추진되는 이런 조봉암 선생의 재조명 움직임에 뭔가 운명이 느껴지네요! 이 날 강의를 계기로 조봉암 선생과 그의 사상이 더 많이 알려지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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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 / 한길아트2012.10.17 09:44


수다쟁이 한의사의 시나브로 책읽기


나는 말이 많은 한의사다. 환자를 보면 자꾸 말이 하고 싶어진다. 환자의 증상보다 사는 이야기로 진료시간을 보낸다. 환자들이 이런 나를 보면서 의아해한다. 외로운 직업이라 그렇다. 의사도 마찬가지겠지만 병원에 있으면 아픈 환자만 본다. 하루 종일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 외로움을 많이 느낀다. 외로움을 줄이는 방법으로 나는 책을 택했다. 책 속에서 인생도 배우고 때로는 이 문장은 어떤 환자에게 이야기해주어야지 메모도 한다.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다. 


자유로로 출퇴근을 하다보면 반드시 파주출판단지를 거쳐야 한의원에 도착한다. 출판단지 행사 ‘북소리’와 ‘어린이날 책 잔치’ 광고를 보며 출퇴근하기를 1년. 여기서 한의원을 열게 된 것이 날더러 책을 좀더 읽으라는 누군가의 채찍질 같았다. 


독서모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처음 시나브로book 독서모임의 목적은 인문고전 읽기였다. 인문학열풍에 따라 회원들의 동의 아래 동양고전 첫 책으로『논어』를 택했다. 그중에서 『논어』를 접해본 사람은 나뿐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모여 『논어』 문장을 해석하고 한 문장씩 암기해서 발표하기도 하고 각자의 생각을 말하는 시간을 가졌다. 직업이 다른 사람들(농부, 장애인시설 원장님, 보험 설계사, 호프집 사장님, 리더십 강사)로 독서모임이 구성되니 같은 글을 읽어도 느끼는 바가 다르고 관심분야도 달라 책보다 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모임이 자리 잡히고 나니 읽은 책에 대해 강의하는 것을 듣고 싶었다. 그래서 회원들과 ‘북소리’ 행사에 참여해보기로 했다. 올해가 2회째니 작년 광고를 보고도 놓쳐버린 것은 한 번이다. 행사 참가를 위해 일정표를 보던 중 ‘지식난장’ 코너에서 ‘아홉 개의 키워드로 만나는 『논어』’ 가 눈에 들어왔다. 회원들이 『논어』를 계속 공부하며 외워왔기 때문에 흥미를 보였다. 강의를 신청하고 그날을 기다렸다.





인생이 담겨 있는 『논어』


나의 한문공부 시작은 『소학』이었다. 다음에는 『대학』 『대학혹문』을 이어 『논어』를 보게 되었다. 『논어』를 보기 전까지는 한자를 찾고 한학자 스승님의 한문해석을 듣는 공부였다. 때로는 암기를 해서 스승님 앞에서 암송을 해야 했다. 『논어』를 보기 시작하면서 그 안에 사람 사는 모습이 담겨 있어 좋았다. 한문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배운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공자님의 고향 곡부(曲阜)를 방문하고 노벽(魯壁)과 행단(杏亶)을 눈으로 직접 보고 나니 『논어』는 나에게 삶의 교과서가 되어 있었다.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이라는 말이 있다. 배우고 나서 그것에 대해 사색을 하지 않으면 없어진다는 이야기다. 스승님은 “학벌이 좋아도 생각하는 마음이 없어 똑똑한 사람들이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시면서 그런 사람이 안 되도록 사색을 많이 하라고 하셨다. 지금도 마음 깊이 새겨진 말이다. 여러 『논어』 해석본 책을 보면서 ‘작가들마다 같은 문장을 두고도 여러 생각을 하는구나. 나에게는 이런 의미인데’, 하며 해석본과 원문 사이를 헤매고 다녔다. 그런 나에게 한학자 스승님은 따끔히 말씀하셨다. 


“원문을 소리내어 읽으면서(口到), 눈으로는 정밀하게 보며(目到), 마음으로는 정밀하게 해석하기(心到)를 반복하는 삼도(三到)의 독서를 하면 해석을 다시 해야 할 필요가 없다.”


이 말을 들은 후로는 원문 암기에 시간을 투자했고 좀더 나은 해석본을 찾아 서점을 헤매는 일은 없었다. 



공자의 옛 집에서 ‘벽중서(壁中書)’를 발견한 기념으로 세운 중국 곡부의 노벽에 다녀왔었다.



해석본에 대한 오해를 풀다


한길사에서 ‘인문고전 깊이읽기’를 시리즈를 만들었다. 그중 『논어』 책을 담당하신 신정근 교수님이 강연을 한다고 해서 참석했다.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이라는 책을 제목이 끌려 슬쩍 본 적이 있었다. 그분이었다. 교수님의 『논어』를 바라보는 관점이 궁금했다. 키워드로 정리를 하셨다는 이야기에 내가 생각나는 단어는 ‘恕’ ‘學’ 정도였다. 


강의 내용은 키워드를 설명하시고 그 키워드가 들어간 『논어』 원문을 해석해주셨다. 내가 생각했던 두 단어가 아홉 개의 키워드 안에 있었다. 해석은 의역으로 현대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상세히 해주셨다. 그러나 나는 그 상세함으로 인해 원문이 내가 알고 있던 원문이 아닌 것 같아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강의가 끝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신정근 교수님이 주신 자료를 보며 한학자 스승님께 전화를 걸었다. 


- 선생님, 일반인들을 위해 ‘인문고전 깊이읽기’를 테마로 『논어』 책이 나왔어요. 그 책을 보며 선생님께 혼이 났던 기억이 나서 전화드립니다.

- 전공자가 아니면 원문으로 안 읽어도 되지. 현대 사회에 맞게 누군가 잘 해석을 했다면 그것도 훌륭한 일이고 읽는 사람 입장에서도 난해한 한문을 꼭 보지 않아도 좋지 않겠니? 

- 저한테 하신 말씀이랑 다르잖아요!!

- 사람의 상황에 따라 다른 거다. 해석본을 훌륭히 잘 소화하고 관심이 있어 원문까지 보면 더욱더 좋은 거지. 일반 독자가 『논어』를 보려고 시작한다는 것이 대단한 일 아니니. 그런 이에게 원문으로만 봐야 한다고 고집하는 건 옳지 않다. 너처럼 한문책을 봐야만 하는 사람하고는 다르지.


선생님과의 통화로 해석본 책에 대한 나의 오해를 풀었다. 『논어』에 “무의 무필 무고 무아”(毋意 毋必 毋固 毋我)라는 말이 있다. 반드시 이것은 이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고집쟁이를 이르는 말이다. 내가 그 속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원문을 봐야만 한다는 나의 고집도 같이 풀어지길…….


신정근 교수님께 미안한 마음이 들어 책을 읽기로 했다. 초판인쇄일이 9월 20일이다. 강의가 22일이었다. 정말 인쇄기계의 따뜻함이 아직 남아 있는 책이다.



 



책을 읽고


한때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만큼 우리사회가 정의롭지 못해 정의를 원하는 사람이 많아 잘 팔렸다는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다. 『논어』에도 ‘의’(義)라는 글자가 많이 나온다.『논어』의 ‘의’(義)와 사회정의를 연결할 생각을 나는 못 했다. 그런데 신정근 교수님은 이 책을 통해 ‘의’(義)라는 키워드를 뽑아내어 지금의 사회에서 적용될 수 있게 해석을 하셨다. 


(이 책, 123쪽) “지도자는 이익의 분배자이지 경쟁자가 아니다.” 

(126쪽) “왕과 공직자는 백성의 생산을 권장하지만 그들과 경쟁해서는 안 되고 특권을 누리지만 사치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130쪽) “사회정의가 죽었는데도 혼자 물 만난 고기처럼 영화로움 삶을 사는 것도 문제다. 지식인의 사회참여도 출세가 아니라 도의(정의)가 기준인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인문고전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그것을 통해 현시대를 살아가는 해법을 찾기 위해서다. 아주 쉽게 아홉 개의 테마로 그것을 도와주셨다. 책을 읽고 나니 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오해란 인식하고 있는 만큼의 진실이며 부분적 진실은 폭넓은 이해를 방해한다.” 어느 작가의 글에서 본 문장이다. 출판단지 넓은 공간만큼, 그 위를 덮고 있는 청명한 하늘의 크기만큼 모든 이와 모든 책, 모든 진리에 넓게 이해하는 내가 되기를 바란다. 


가을마다 북소리가 열리면 내 마음속에도 BOOK을 향한 소리가 울릴 것이다.




권해진(래소한의원 원장)







이 글은 작성자의 허락 하에 게재되었음을 밝힙니다. 좋은 글을 작성해주신 권해진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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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공지사항2012.08.2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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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공지사항2012.05.14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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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2명/ 마침 <1984>를 읽는 중인데 이번 강연 꼭 참석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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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0-1234-5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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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한길그레이트북스2011.12.22 11:10




르네 지라르의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은 오늘날 우리의 욕망 체계를 소설 주인공의 욕망 체계에서 발견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특성을 제시한 탁월한 작품이다. 

지라르의 관심은 소설 속의 인물들이 어떻게 욕망하는가 하는 인간 욕망의 구조를 밝혀내는 데에서 출발한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부터 스탕달의 『적과 흑』,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영원한 남편」을 비롯한 여러 소설들에서 그는 이 소설 속의 인물들이 대상을 직접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중개자의 암시를 통해서 욕망한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우리는 어떤 대상을 자발적으로 욕망한다고 믿고 있지만, 그것은 ‘낭만적 거짓’에 불과하다. 사실은 우리가 욕망의 주체와 대상 그리고 중개자를 세 꼭지점으로 하는 삼각형의 욕망구조에 편입되어 있으며, 이것이 소설의 주인공들을 통해 드러나는 ‘소설적 진실’이다. 중개자는 『돈키호테』의 경우처럼 전설적인 가공의 인물이어서 주인공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을 수도 있고, 『적과 흑』 또는 「영원한 남편」의 경우처럼 자기와 처지가 비슷한 아주 가까운 사이일 수도 있다. 

지라르에 따르면 삼각형의 욕망이란 거의 우리 모두가 앓고 있는 형이상학적 질환에 속한다. 이 병이 무서운 이유는 암처럼 자각증세가 없기 때문이다. 정확한 진단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형이상학적 질환에서 치유될 수 있는 희망은 없어 보인다. 지라르가 낭만적 거짓을 폭로하고 삼각형의 욕망이라는 소설적 진실을 드러내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낭만적 비평은 언제나 본질적인 것을 거부한다

소설의 결말은 모두가 전향이다. 이것은 아무도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갈 수 있을까? 이러한 전향들이 모두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결말들은 애초부터 기본적인 두 범주로 구분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사람들과 합류하는 주인공을 보여주는 결말과, 고독을 쟁취하는 ‘군집성’ 주인공을 보여주는 결말이라는 두 범주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들은 첫번째 범주에 속하고, 스탕달의 소설들은 두번째 범주에 속한다. 라스콜리니코프는 고독을 거부하고 타인들을 포용하는 반면, 쥘리앵 소렐은 타인들을 거부하고 고독을 선택한다.

이 대립은 극복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만일 전향이 우리가 찾아낸 의미를 지닌다면, 또한 그것이 삼각형의 욕망에 종지부를 찍는다면, 그 결과는 절대고독이라는 용어로도 또 세계로의 회귀라는 용어로도 표현될 수 없다. 형이상학적 욕망은 타인과의 어떤 관계 그리고 자신과의 어떤 관계를 맺게 만든다. 진정한 전향은 타인과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새로운 관계를 발생시킨다. 고독과 군집성, 참여와 비참여 사이의 기계적인 대립을 제시하는 것은 낭만적 사고이다. 

스탕달과 도스토예프스키의 결말을 좀더 자세히 관찰하면 언제나 진정한 전향의 두 가지 양상이 나타나지만, 그 두 가지가 똑같이 전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스탕달은 주관적인 면을 더 강조하는 반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상호주관적인 면을 더 강조한다. 소홀히 다루어진 면도 전혀 사라진 것이 아니다. 쥘리앵은 고독을 획득하지만 고립을 이겨낸다. 그가 레날 부인과 누렸던 행복은 타인들과 맺은 관계에서 일어난 근본적인 변화의 훌륭한 표현이다. 재판이 시작될 무렵 주인공이 사람들에게 둘러싸였을 때, 그는 자기가 타인들에 대한 예전의 증오심을 더 이상 느끼지 않음을 깨닫고 놀란다. 그는 타인들이 과연 자기가 생각했던 것처럼 나쁜 사람들일까 의아해한다. 더 이상 그들을 매혹하거나 지배할 욕망이 사라진 쥘리앵은 더 이상 그들을 증오하지도 않는다.

반대로 라스콜리니코프는 결말에서 고립을 이겨내지만 그도 역시 고독을 쟁취한다. 그는 복음서를 읽게 되고, 오래 전부터 맛보지 못하던 평화를 느낀다. 고독과 인간교류는 상호관련해서만 존재한다. 그 둘을 분리하면 낭만적 추상화에 빠질 위험이 있다.

소설의 결말들간의 차이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 대립보다는 강조의 이동이 더 중요하다. 형이상학적 질환이 치유되는 다양한 양상들간에 부재하는 균형은 소설가가 자신의 낭만주의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는 도식들에 사로잡혀서 도식들이 정당화의 구실을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결말에 사회참상 묘사주의가 전혀 없지는 않다. 스탕달의 결말에서는 들레클뤼즈 살롱에서 기세가 등등하던 부르주아 낭만주의의 몇 가지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차이점들을 강조하면 소설 결말들의 통일성을 놓쳐버리기 쉽다. 다름아닌 바로 그것이 비평가들이 바라는 것인데, 통일성이란 그들의 언어로 진부함이며 진부함은 최악의 저주인 까닭이다. 만약 비평가들이 이 결말을 완전히 거부하지 않을 경우, 그들은 이 결말이 독창적임을, 즉 소설의 다른 결말들과 모순된다는 사실을 입증하려 애쓴다. 그들은 언제나 소설가를 자신들의 낭만적 기원으로 환원시킨다. 그들은 작품에 봉사한다고 믿는다. 교양 있는 대중의 취향인 낭만적 취향의 수준에서 본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작품에 봉사하고 있다. 좀더 파고들어가본다면 그들은 작품에 해를 끼치고 있다. 그들이 작품 내부의 소설적 진실과 모순되는 것을 칭찬하기 때문이다.

낭만적 비평은 언제나 본질적인 것을 거부한다. 즉 형이상학적 욕망을 초월하여 죽음 너머로 빛을 내뿜는 소설의 진실로 향해 가기를 거부한다. 주인공은 진실에 도달하면서 죽는다. 그리고 자신을 창조한 작가에게 자신의 선견지명을 유산으로 남긴다. 소설의 주인공이라는 칭호는 비극적인 결말에서 형이상학적 욕망을 이겨내고, 그리하여 소설을 쓸 수 있게 된 인물에게 부여되어야 한다. 주인공과 그의 창조자는 소설이 진행되는 동안 내내 분리되어 있다가 결말에서 서로 합쳐진다. 죽어가면서 주인공은 잃어버린 자신의 삶을 돌이켜본다. 그는 그 삶을 시련과 병마와 추방이 클레브 부인에게 지니게 해준, 그리하여 이 여류소설가3)의 관점과 동일해진 ‘더욱 폭넓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러한 ‘더욱 폭넓고 객관적인 시선’은 마르셀 프루스트가 『되찾은 시간』에서 말하고 있는 ‘망원경’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스탕달의 주인공이 감옥 안에서 도달하는 탁월한 태도와도 다르지 않다. 멀어짐과 상승의 모든 이미지들은 더욱 초연해진 새로운 견해, 즉 창조자 자신의 견해를 표명한다.


「카라마조프가 가의 형제들」 러시아 현대화가가 그린 그림으로 대심문관 장면이다.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제12장 「결말」



삼각형의 욕망으로 투영되는 현대인의 욕망

이 책에서 맨 먼저 분석의 대상이 되는 것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이다. 그가 이 소설의 분석에서 얻어낸 결론은 『돈키호테』의 주인공들의 욕망은 간접화한 욕망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 개인이 무엇을 욕망한다는 것은 그 개인이 지금의 자기 자신으로 만족하지 못해 자기 자신을 초월하고자 하는 것인데, 이때 초월은 자기가 욕망하게 되는 대상을 소유함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것을 도표로 그려보면 개인에 해당하는 주체가 밑에 있고 대상이 그 수직선상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관계를 『돈키호테』에서 살펴보면 주인공 돈키호테는 이상적인 방랑의 기사가 되고자 한다. 여기에서 돈키호테는 주체가 되고 이상적인 방랑의 기사는 대상이 된다. 그러나 돈키호테는 그 이상적인 방랑의 기사가 되기 위하여 아마디스라는 전설의 기사를 모방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돈키호테는 직접 이상적인 기사도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아마디스를 모방함으로써 거기에 도달하고자 한다.

따라서 이상적인 기사도에 도달하고자 하는 돈키호테의 욕망은 아마디스라는 중개자에 의해 간접화되고 있으며, 주체와 대상 사이에는 간접화 현상이 일어난다. 즉 주체의 욕망이 수직적으로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비스듬히 상승하여 중개자를 거쳐 대상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욕망의 간접화 현상은 기독교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구조이다. 어느 기독교인이 진정한 기독교인이 되어 구원받기를 원한다면 그는 곧 예수라는 중개자를 모방하면 된다. 이때 기독교인과 예수와 진정한 기독교인은 삼각형의 세 꼭지점을 형성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욕망하는 주체와 욕망의 대상과 그 욕망의 중개자가 삼각형의 구조를 갖게 되고, 이처럼 간접화한 욕망을 ‘삼각형의 욕망’이라고 부른다.

지라르는 현대인의 욕망은 이처럼 삼각형의 구조로 되어 있다고 보면서 소설의 주인공이 지니고 있는 욕망의 왜곡되고 비진정한 속성을 분석하고 있다. 이로써 시장경제체제 사회 속에서 개인은 그 욕망마저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중개자에 의해 암시된 욕망을 소유하게 되었음을 제시한 셈이 되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주인공의 욕망의 구조와 주인공을 태어나게 한 사회의 경제구조 사이에 구조적인 동질성을 발견하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지라르는 따라서 돈키호테의 욕망이 돈키호테 내면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 아마디스라는 중개자에 의해 암시됨으로써 생긴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한 점에서 종래의 돈키호테를 이상주의자로, 산초 판사를 현실주의자로 규정한 것은 부분적으로는 진실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진실이 아니다. 예전에는 산초 판사의 욕망(작은 섬 하나를 소유하는 것, 딸에게 공작부인의 칭호를 갖게 하는 것)이 실현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그를 현실주의자로 보았다. 그러나 지라르는 산초 판사의 바로 그 두 가지 욕망이 그의 내부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욕망이 아니라 그의 주인인 돈키호테에게서 암시받은 욕망이라고 지적한다. 그것은 돈키호테가 산초 판사의 욕망의 중개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지라르는 이처럼 하나의 작품이 여러 개의 삼각형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가 분석하고 있는 스탕달의 『적과 흑』,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도 주인공들의 욕망이 여러 개의 삼각형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지라르는 모든 삼각형의 욕망이 동일한 관계에 의해 형성된 것이 아니라 좀더 복합적인 관계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는 점에 주목함으로써, 자신의 이론을 더욱 복합적이고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 그에 따르면 삼각형의 구조에서 주체와 중개자 사이의 거리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분석에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것은 그 둘 사이의 거리이다.

다시 말하면 『돈키호테』에서 주체 돈키호테와 중개자 아마디스는 동일한 세계에 있지 않다. 즉 아마디스는 전설적인 가공의 인물이어서 돈키호테와 만날 수 없는 인물이다. 이때 주체와 중개자의 거리는 극복될 수 없을 만큼 떨어져 있다. 그런 관점에서 주체로서의 산초 판사와 중개자로서의 돈키호테 사이의 거리는 함께 다니고 있기 때문에 동일한 공간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때의 거리를 물리적인 거리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돈키호테는 주인이고 산초 판사는 시종이기 때문에, 둘이 함께 다닌다고 해서 그 둘 사이의 거리가 극복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산초 판사는 단 한 번도 자신이 돈키호테라는 주인의 자리를 꿈꾸어본 적이 없고 주인과 경쟁해보고자 한 적이 없다. 그것은 두 인물이 동일한 공간에 살고 있으면서도 엄연하게 구분되는 정신적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반면에 스탕달의 『적과 흑』에서 마틸드가 쥘리앵을 소유하고자 하는 것은 그의 경쟁자인 페르바크 원수부인과의 경쟁관계에서 비롯되고 있다. 이처럼 주체인 마틸드와 중개자인 페르바크 원수부인이 동일한 공간 안에서 대상인 쥘리앵을 욕망하는 데 서로 경쟁관계에 있다는 것은 욕망의 간접화가 훨씬 더 비극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르네 지라르는 전자를 외적 간접화라 하고 후자를 내적 간접화라고 하며 전자의 범주에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을 분류하고 후자의 범주에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분류한다. 그는 현대인의 욕망이 주체와 중개자의 거리가 가까워짐으로써 주체와 대상을 구분할 수 없게 된 점에서 훨씬 더 비극적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김치수
이화여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문학평론가이자 사회인류학자인 르네 지라르는 1923년 남프랑스 아비뇽에서 태어나 1947년 파리 고문서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인디애나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디애나 대학 프랑스어 강사를 시작으로 듀크 대학, 존스 홉킨스 대학, 뉴욕 주립대학, 스탠퍼드 대학 등에서 정교수·석좌교수 등을 지내며 프랑스의 역사·문화·문학·사상에 관한 강의를 하였다. 1961년에는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비평언어와 인문학’에 관한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하였는데, 여기에는 바르트·데리다·골드만·이폴리트·라캉·풀레·토도로프·베르낭 등 많은 학자들이 참가했다.

지라르의 관심은 소설 속의 인물들이 어떻게 욕망하는가 하는 인간 욕망의 구조를 밝혀내는 데에서 출발한다. 그것이 그의 첫 저서인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1961)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이다. 

인간의 욕망과 구조를 밝혀내려는 작업의 결실인 『폭력과 성스러움』(1972)은 1973년 프랑스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그밖에도 그는 『지하실의 비평』(1976), 『세상이 만들어질 때부터 숨겨져온 것』(1978, 공저), 『이중규제』(1978), 『희생양』(1982), 『옛 사람들이 걸어간 사악한 길』(1985), 『나는 번개처럼 빠르게 떨어지는 사탄을 보았노라』(1999) 등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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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공지사항2011.09.09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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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한길다반사2011.06.15 18:29


지난 금요일(10) 오후 네 시, 서울대학교 대림국제관 인문학연구원에서 ‘문명텍스트’ ‘문명공동연구’ 1차분 출간을 기념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서울대 HK문명연구사업단은 2007년 11월부터 ‘문명’이라는 큰 화두를 가지고 대규모 연구를 진행해왔습니다. 여러 시기 다양한 인류 문명을 보여주는 고전 텍스트를 선정해 번역ㆍ주해하는 일이 한 축이고, 이러한 다양한 인류 문명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그룹별로 진행한 학제간 공동연구가 다른 한 축입니다. 

‘문명텍스트’ 총서가 현재를 떠받치고 있는 누적된 과거를 새롭게 해석하려는 씨줄 놓기라면, ‘문명공동연구’ 총서는 인간과 세계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려는 날줄 얽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삼 년여에 걸친 이 연구의 첫 번째 결실로 ‘문명텍스트’ 7권과 (『맹자사설』『인류의 교육을 위한 새로운 역사철학』『가게로 일기』『자유의 법 강령』『내훈』『장가르』『페미니즘과 지리학』) ‘문명공동연구’ 2권(『문명 안으로』『문명 밖으로』) 총 아홉 권의 책이 한길사에서 출간되었습니다.


 

HK문명연구사업단장 송용준 선생님. 대림국제관 5층에 자리 잡은 인문학연구원에서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HK문명연구사업단 선생님들과 출간을 축하해주기 위해 참석한 여러 선생님들로 자리가 가득 찬 가운데, 사업단장 송용준 선생님의 인사말로 기념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연구단이 출범한 뒤 삼년 반 동안 매주 금요일에 열린 콜로키움이 벌써 백 회에 가까워졌다고 합니다. 지속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생산해낸 문명총서가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 널리 읽히기를 바라는 축하의 말씀이었습니다.

이어서 인문대학장 변창구 선생님과 한국연구재단 인문학단장인 권호종 선생님의 인사말이 계속되었습니다. 한길사 김언호 사장님은 한길사 창립 35년을 맞아 의미 있는 출판이며, 이 책들이 많은 독자들에게 널리 읽힐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하셨습니다. 인문학연구원 부원장 이남인 선생님께서 총서에 대한 자세한 소개와 향후 출판 계획을 설명하셨고, 1차분을 집필하신 선생님들이 직접 책을 소개하는 자리가 이어졌습니다.


 

‘장가르’를 번역하신 유원수 선생님. 장가르는 칼미크-오이라드 민중의 삶의 모습과 꿈이 담겨 있는 영웅서사시입니다.


그중 ‘게세르’ ‘몽골비사’와 더불어 몽골 3대 문학으로 꼽히는 영웅서사시 ‘장가르’ 번역을 시작하신 유원수 선생님께서는 “게세르, 몽골비사 번역을 마친 후 너무 힘들어서 장가르는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몽골 사람들이 소식을 듣고 저를 찾아와서 꼭 장가르를 번역해달라고 부탁하는 겁니다.”라고 번역을 시작하게 된 이유를 밝히셨습니다. 이처럼 ‘문명텍스트’ 총서는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양의 고전은 물론이고 몽골, 아랍, 아프리카 등 때로는 주목받지 못했던 세계 여러 문명권의 고전을 우리말로 번역하고 주해하고 있습니다. 이는 문명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야를 넓히고 문명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줄 것입니다. 


 

선생님들의 큰 호응을 이끌어냈던 이주은 명창.
케이크 컷팅으로 기념식은 끝이 났지만 뒤풀이 바비큐 파티는 밤이 깊도록 이어졌다는 후문입니다.



축하공연으로 이주은 명창의 ‘사철가’와 ‘사랑가’ 한 대목이 잔치의 흥을 돋우었고, 케이크를 함께 자르면서 오늘의 자리를 축하했습니다. 한 공간에서 동고동락하는 인문학연구원 선생님들은 공식 기념회가 끝난 뒤 떡과 술을 정성스레 차려놓고 무탈과 번영을 기원하는 고사를 지냈습니다. 총서의 출판을 맡은 한길사 역시 같은 마음입니다. 제문을 사르고 절을 올리는 선생님들을 바라보면서 HK문명연구사업단의 연구가 날로 번창하기를 기원했습니다.


편집부 김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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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한길사 / 한길아트2011.02.09 10:58


『인권의 발견』편집자의 한마디


 직접 편집한 세 번째 책 『인권의 발견』이 설 연휴 직전(1월 31일)에 출간되었습니다. 귀성길, 귀경길로 북새통인 와중에 너무 ‘조용히’ 서점에 놓이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출간 직후 로쟈 선생님의 블로그 포스팅을 보고 반가웠습니다. “연휴 기간엔 배송이 안 되기 때문에 장바구니에 책을 담는다는 게 큰 의미가 없지만, 그래도 새로 나온 신간 몇 권은 챙겨놓는다”라고 이 책의 출간에 대해 짧은 글을 남기셨더군요. 명성 그대로 신간을 탐색하는 부지런함도 서평의 고수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출간된 지 얼마 안 됐는데도 누군가 눈여겨보는 독자가 있다고 생각하니 책을 만든 편집자로서 뿌듯하고 감사한 일입니다.

 편집하면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짧게 발췌해 이 책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대항해시대 아메리카에 건너가 제국주의적 만행을 일삼다가 원주민들에게도 인권이 있음을 발견하고 주교가 된 ‘라스카사스’라는 스페인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이 인물을 설명하는 데 책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는데, 그 이유는 라스카사스의 개심이 평범한 한 인간이 보편적 진리를 발견하고 도덕적으로 진보해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1492년 아메리카에 상륙한 콜럼버스. 콜럼버스는 방대한 분량의 항해 기록을 남겼는데,
라스카사스가 정리한 필사본만이 현재 유일하게 전해진다.


 

 그러면 BLC(라스카사스)가 아메리카에 도착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우선 그는 원주민에 대한 몇몇 보고서가 잘못되었음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러한 발견은 자신에게 일어날 더 큰 변화에 비하면 별것 아니었다. 즉, BLC는 아메리카 원주민과 함께한 체험으로부터 보고서의 진실성 여부를 생각할 새로운 방법을 발견한다. 스페인에 있을 때는 원주민을 미개한 괴물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게 하는 그 보고서가 진실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메리카에 도착한 그는 자신의 고정관념이 틀렸음을 알게 되었다. 우상을 숭배하는 식인종이라고 믿었던 원주민들은 평화로운 마을 안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그 마을에서는 자녀를 돌볼 부모의 책임, 남편과 아내의 서로에 대한 책임, 그리고 마을 사람 서로에 대한 책임이 동의에 기초한 관습 안에 명시되어 있었다. 우상숭배와 식인풍습은 자신들의 신에게 바칠 제물에 대한 고도의 전례적인 종교 의식으로 판명되었다. 이로 인해 그는 원주민에 관한 보고서에 대해 전적으로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된다.

 그 결과 BLC는 단순히 원주민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알 뿐만 아니라, 그 정보를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하게 된다. BLC 스스로 원주민과 동일시하기 시작한다. 그는 원주민을 개인적으로 알게 되고, 그들과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그들처럼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상상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이것을 ‘감정이입적 이해’의 발전이라고 지칭한다. 이것이 순수한 지적 변화가 아님을 강조하고 싶다.


 
라스카사스의 개심은 인류의 위대한 도덕적 진보도 결국 ‘감정이입적 이해’ 즉 다른 이의 고통을 느끼는 데서 비롯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다시 말해  ‘도덕적 감수성’ ‘인간성’ 그리고 ‘타인에 대한 사랑’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이것이 치밀한 논증과 사유실험 끝에 저자 윌리엄 J. 탤벗이 내린 결론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책은 ‘보편적 인권’의 철학적 기반을 다지려는 시도입니다. 즉 기본적으로 철학이고, 섬세한 논증을 바탕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읽기에 만만치는 않습니다. 하지만 일단 맑은 정신으로 집중해서 읽어나가면, 풍부한 역사적 사례와 명쾌한 비유를 곁들인 감각적이고 유연한 탤벗의 논의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인권을 발견하기 위한 인류의 긴 고투의 역사가 조감도처럼 눈앞에 펼쳐지는데, ‘민주주의’의 바로미터로서 우리 사회 인권의 현주소도 가늠할 수 있을 것입니다.




- 편집부 김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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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한길사 / 한길아트2010.07.13 09:36


2007년 7월, 『프로이트』 집필 의뢰를 받음.
2008년 2월, 초고 작성 완료.
2009년 12월, 기획의도를 재점검하고 난 후, 재집필을 시작함.
2010년 2월, 원고 재집필을 마침.
2010년 3월, 사진, 부록 등 세부적으로 원고에 살이 붙여지며 수정 작업이 이어짐. 
2010년 7월 5일, 『프로이트』출간.


그동안 한길사에 3번 다녀왔고 여러 번 탈고 과정을 거쳤다. 처음에는 시리즈 '나는 읽는다'로 나올 예정이었으나, 한길사 내부의 결정으로 시리즈명이 '인문고전 깊이읽기'로 바뀌었다. 3년 동안 이 책을 내놓기 위해 많은 일들이 있었기에 그간 내가 집필하며 느꼈던 것들을 독자에게 공개하고 싶어 이 글을 쓴다.

처음 한길사를 찾은 건 올해 1월 12일, 아마도 올 겨울 중 가장 추운 날이었다. 합정역에서 출판단지행 버스를 기다리다 너무 추워서 구두를 닦으러 조그마한 구두방에 들어가기까지 한 날이었다. 평택에서 3시간 정도 걸려 도착했다. 내가 도착하자 인문팀 모든 직원이 다 나와서 인사를 했다. 조용히 다들 자기가 맡은 일을 하다 뛰어나오는 모습이 참 예쁘게 보였다. 그렇게 손 녹여가며 찾아간 한길사에서 한참 갑론을박 작업 이야기를 나눈 후 돌아갈 때, 모두 문 앞까지 나와서 인사를 했다. 첫 방문인 나에겐 그런 대접이 좀 부담스러워 어색해지기까지 하는 상황이었다. 그 후로 두 번을 더 갔는데, 그때도 그랬다.


한길사에서 이전 원고와 교정 후 원고를 마련해놓고 나를 맞이하는 경우, 나는 한편의 '보고서'를 받는 느낌이었다. 편집자가 고친 부분과 수정한 이유, 저자가 더 고민해야 하는 부분, 의문사항 등이 가득 정리되어 있었다. 매번 내가 고민해야할 숙제가 기다리고 있었고, 이는 편집자 한 명의 의견이 아니라 인문팀 전체의 의견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렇게 내 원고는 편집자들에게 공유되어 편집부 내에서 회의를 먼저 거쳐 문제점들이 밝혀지고 나면 나와 직접 만나거나 이메일 또는 전화 등으로 내게 의견이 전달된다. 나에게는 집필 과정보다, 편집 후 이루어지는 의논 과정이 더 재미있었다. 왜일까?


그동안 출판사 몇 군데와 작업을 했다. 출판사 쪽에서는 붉은 펜으로 수정 작업을 한다. 빨간색으로 채색된 원고에는 편집자가 가지고 있는 글에 대한 태도와 저자의 생각에 대한 평가와 고민 등이 묻어난다. 한길사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지만, 한길사에게는 좀 다른 점이 있었다. 큰 출판사인데도 불구하고 한길사 인문팀은 나에게 ‘저자에 대한 예의’가 무엇인지 느끼게 했다. 이런 예절은 ‘책으로 세계를 짓는다!’라는 한길사의 모토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출간일정에 맞추기 위해, 우편이 도착하기까지 걸리는 이틀의 시간을 줄이고자 어떤 날은 담당 편집자가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갈아타며 나에게 오고, 나 또한 승용차를 몰고 어느 지점까지 간 후 지하철로 갈아타서, 내가 있던 곳과 출판사의 중간지점에서 편집자에게 교정지를 건네받고 수정 부분을 이야기했던 적도 있다.

책으로 세상과 만나는 이는 저자이지만, 그 사이에서 중개역할을 하며 세계를 책으로 짓기를 꿈꾸는 출판사의 존재가 반가웠고 참 감사했다. 책에 대한 애정이 있다고 해서, 이런 열정이 나오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는 필시 인간에 대한 예의에서 비롯되는 열정이다. 『프로이트』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빛을 보게 되었다. 집중해서 장시간 일할 건강상태가 되지 못한 상황이었지만, 편집자의 섬세한 작업을 통해 힘을 얻어 맡겨진 일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책을 만들면서 겪은 일을 이 글에 다 담을 수 없지만, 책을 만드는 이가 ‘사람’임을 나는 독자에게 말해주고 싶다. 깎고 다듬고 혼을 불어넣어 친근한 책을 만드는 이는 저자와 편집자다. 『맹자』 『프로이트』 『부르크하르트』 『마오쩌둥』은 대중이 위인들의 귀한 고전을 깊이 읽게 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이를 내놓기 위해 저자와 편집자도 몇 번이고 원고를 깊이 읽어야 했고 오랫동안 그 과정을 거치며 나온 귀한 결실이 ‘인문고전 깊이읽기'다.

이번에 『프로이트』와 함께 나온 '인문고전 깊이읽기'의 다른 책들을 꼼꼼히 읽고 싶다. 앞으로 발굴될 세기의 인물들도 기대가 된다. 2차분, 3차분, 4차분으로 이어질 ‘인문고전 깊이읽기’의 출간 계획을 보면,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열정과 노력이 모일지를 상상하게 된다. 나는 한길사의 저자이자 독자로서, 계속 이러한 작업을 하고 있는 한길사에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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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한길사 / 한길아트2010.02.16 10:12




『성경』은 희망과 구원의 역사를 기록한 놀라운 책이다. 그 중에서도 첫 번째 책인 「창세기」는 인간의 창조와 그 시작의 의미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또한 아브라함-이삭-야곱-요셉으로 이어지는 믿음의 조상들에 대한 감동의 드라마가 우리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점에서 종교의 유무를 떠나 꼭 읽어 보아야 할 고전이다.

방송인이자 언론인이며, 대학에서 세계체제론과 기독교 윤리를 가르치는 김민웅 교수가 희망의 메세지를 가득 담아 『창세기 이야기』(전3권)를 펴낸다. 알고 보면 그는 미국에서 20여 년간 목회를 했고, 최근 기독교방송 '성서학당'에 출연하여 많은 사람들을 새로운 성서 읽기로 안내했다. 이 책은 이런 그의 오랜 경험을 오롯이 담아 낸 것이다.

그에게 『창세기 이야기』출간의 의미를 물었다.



● 성서의 많은 책 가운데 특별히 「창세기」에 주목한 까닭은?

 

「창세기」는 무엇보다도 '생명에 대한 시원적(始原的)풍경'을 가장 풍부하게 담고 있다. 그런 까닭에 이 책 읽기를 통해 생명이 도처에서 위협받고 있는 시대에, 생명을 살려 내는 힘의 근원을 일깨우고자 했다. 「창세기」는 또한 문학, 철학, 예술 전반에 걸쳐 깊은 영감을 불어넣으며 인류사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이에 대한 본격적인 성찰과 논의가 부족한 편이다. 「창세기」깊이 읽기를 통해 우리의 인생을 바로 세우고, 사회에 희망을 더하며, 더 나은 미래의 대안을 창조해 나갈 수 있었으면 한다.

 

 

● 일반인들도 성서를 읽을 수 있나?

 

성서를 특정 종교의 경전으로만 대하지 않았으면 한다. 성서에는 사랑과 배신, 전쟁과 평화,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 절망과 희망, 성공과 몰락 등 인간이 겪게 되는 삶의 온갖 모습이 담겨 있다. 죽음의 끝, 절망의 밑바닥, 벼랑 끝에 몰려 본 사람들이 도달한 영적 각성의 지점이 어디에 있는가를 아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알고 싶은 바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성서는 끊임없이 되돌이켜 읽게 되는 인류의 고전이다.

 

 

● 성서를 읽을 때 주의해야 할 점은?

 

신화적 드라마가 아닌가 하는 선입관을 가지고 읽거나 교리에만 얽매인 채 질문하지 않는 읽기는 바람직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성서에 기록 된 이야기의 의미를 편견 없이 늘 새롭게 묻고 깨우치는 것이다. 성서를 쓰고 읽은 사람들은 오늘날 우리와는 여러 가지 면에서 거리가 있다. 따러서 성서 기록의 표현상 특징을 잘 이해하고 그 맥락을 파악하면, 이 책을 기록하고 정독했던 사람들의 현실과 마음에 깊이 스며들 수 있다.

 

 

●「창세기」에서 가장 감격적인 대목은?

 

감격이라는 말이 참 좋다. 실로 창세기 첫 구절부터 그렇다. 하나님은 빛을 창조하시는 재료로 태초의 그 거대한 어둠과 혼돈, 허무를 들어 쓰셨다. 내 인생이 아무리 어둡고 혼란스러우며 허무하게 느껴질지라도 그런 내 인생이 빛과 생명으로 다시 창조될 수 있다면 그 이상 감격스러울데가 있겠는가? 「창세기」는 종교적 교리를 설명하려 들거나, 도덕적 원칙에 대한 설교, 인간의 죄를 꾸짖는데 목적이 있지 않다. 인간이 얼마나 약점이 많고 흔들리기 쉬운 존재인가? 그런 인간을 힘 있게 살리는 것은 생명력이 충만한 감격이다.

 

 

●「창세기」를 보면 행복의 근원이 가정에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데?

 

가정은 원초적 공동체로서 한 인간의 성장사에 근본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창세기」는 그 가정의 울타리 밖으로 내던져졌을 때 인간이 어떻게 성장해 나갈 수 있는가를 줄기차게 묻는다. 모든 것이 태생적 권리처럼 주어지는 가정과 달리, 격토를 벌이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어떻게 우리의 선함과 의로움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지를 성찰케한다. 그래서 가정만이 아니라 이 사회 전체가 행복의 현장이 되게 하려는 것이 「창세기」의 목적이다.

 

 

● 실업자 400만 시대, 팍팍한 현실 「창세기」가 희망을 줄 수 있다면?

 

하루의 완성을 「창세기」는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니"가 아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라고 말하고 있다. 즉 어둠이 지나고 빛이 오면 그때 하루의 의미가 완결된다는 것이다. 시련이 곧 새로운 미래를 위한 훈련장이다. 어떤 곤궁한 처지에 있더라도 자기를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이 마련해 주시는 새로운 때와 무대를 기대한다면 절망은 없을 것이다. 이삭은 자기가 애써 판 우물을 수없이 빼앗겼지만 우물을 다시 파려는 의지는 결코 빼앗기지 않았다. 결국 그는 모든 고난을 이겨 냈다.

 

창세기 이야기(전3권)

김민웅 지음|한길사(3월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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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