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다반사2014.10.16 16:40

착각과 실수가 준 선물

- '인간을 위한 건축, 삶을 위한 건축' 강연 후기


  지난 토요일, 10월 11일 오후 2시, 『루이스 멈퍼드 건축비평선』을 번역하신 서정일 선생님의 강연 '인간을 위한 건축, 삶을 위한 건축'이 성황리에 끝났습니다. 요즘 한길사의 다른 강의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참석해주신 분들의 진지한 태도와 배움에 대한 열의가 인상 깊었습니다. 이런 독자분들이 있기에 저희가 오늘도 책을 만듭니다^^

  아래는 '착각'과 '실수'로 인해 예기치 않게(?) 그날 강연에 참석해주신 김모세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강연 후기입니다. 저희 혼자 보기 아까워 공유합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착각과 실수가 준 선물


  살다보면 착각과 오해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있다. 보통의 경우 불쾌한 기억으로 남지만 어떤 경우에는 흐뭇한 미소로 끝나기도 한다.


  파주 북소리 폐막 하루를 남긴 10월 11일 출판단지로 향했다. 한길사에서 열리는 문광훈 교수님의 ‘발터 벤야민의 문제의식’ 강연을 듣기 위해서였다. 토요일 나만을 위한 온전한 두 시간을 얻기 위하여 아내와 아들과 벌인 지난한 정치행위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책방한길 앞에서 두 사람과 헤어진 후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한 번 북소리 안내서를 펼쳤다. 10월 11일 14시. 맞다.


  북적대는 사람들 속에서 강연장이 어딘가 두리번거리다 관계자 분이 행사 안내문을 부착하는 모습을 찾았다. ‘아! 저분에게 물어보면 되겠구나.’ 몇 걸음 옮기자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다. ‘인간을 위한 건축, 삶을 위한 건축 오늘 오후 2시’.


  ‘뭐지? 뭘까?’ 다시 한 번 안내책자를 펼쳤다. 물론 방금 전 읽은 그대로였다.


  “저기요……. 오늘 문광훈 선생님 발터 벤야민 강연 아닌가요?”

  “아닌데요. 오늘은 서정일 교수님의 건축 강연인데요.”

  “네? 여기 책자에는 벤야민 강연이라고 쓰여 있는데요.”

  “잠시만요……. 어머! 죄송해요. 저희가 최종 수정본을 넘겼는데 인쇄가 잘못됐네요.”

  “…….”


  지금쯤 저 멀리 인파속 어딘가에 있을 아내와 아들에게 전화를 해야 하나? 아니다. 어떻게 쟁취한 두 시간인데. 이럴 수는 없다. 그런데 하필이면 건축이 뭐야! 건축이! 음악이나 미술도 아니고! 차라리 무용이면!


  이런저런 궁시렁 속에서 발걸음은 결국 지하계단을 내려와 강연장으로 향했다. 책방과 분리되지 않은 강연장은 시끄러웠다. 딱딱한 의자도 불편했다. 자료집의 작은 활자는 짜증났다. 그러나 어쩌랴. 달리 갈 곳도 없고 선택지도 없는 것을.



'건축 강연' 특집으로 평소와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찍어본 강연 사진. 책방한길의 실내구조가 궁금하시면, 오셔서 확인해보세요^^!



  두 시간이 흘렀다. 박수와 함께 강의가 끝났다. 주변은 여전히 어수선했고 의자의 물리적 성질은 변하지 않았다. 자료집 글씨는 당연히 그대로였다. 움직인 것은 나였다. 강의를 듣고 메모하고 질문하고 책을 샀다. 물론 다메섹에서 눈이 먼 사도 바울처럼 건축에 빠진 것도 아니다. 선생님 말씀으로 구름 위를 걸으며 강연장을 나서지도 않았다.


  그저 처음으로 건축에 대한 책을 읽었다. ‘도시란 인간이 만든 제도들이 유형화되고 결합되는 공간’이란 메모 한 줄을 기억한다. 작년에 구입하고 잊고 있었던 루이스 멈퍼드의 『기술과 문명』을 책장에서 다시 꺼냈다. 이 정도면 족하지 않을까?



강연하시는 서정일 선생님의 모습. PPT를 얼마나 꼼꼼하고 세심하게 준비해오셨는지!



  강연을 기획하여 강사를 섭외하고 진행하는 일이 직업이다 보니 한 달이면 열 몇 번의 강의를 듣는다. 순수한 수강생이 아닌 관찰자로, 판관(?)으로 앉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수와 착오라는 우연으로 아무런 사전 정보와 준비 없이 의자에 앉았다. 목적이나 욕심 없이 듣고 배운다는 것의 즐거움이 다시 찾아왔다. 강사 서정일 선생님께서 서명과 함께 써주셨다. ‘감사의 인사와 함께 드립니다.’ 이 말을 서정일 선생님과 준비해주신 한길사 선생님들에게 돌려드린다.


  일상에 돌아왔다. 오늘도 몇몇 선생님께 강연요청 메일을 보내고 강좌를 수강하시는 분들에게 자료를 전달했다. 내일이면 오랫동안 준비했던 강좌가 시작된다. 오시는 분들 중 몇 분이라도 토요일 오후 한길사 책방에서 느꼈던 그 기분을 드릴 수 있을까?


2014년 10월

대전시민아카데미

김모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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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한길그레이트북스2011.12.22 11:10




르네 지라르의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은 오늘날 우리의 욕망 체계를 소설 주인공의 욕망 체계에서 발견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특성을 제시한 탁월한 작품이다. 

지라르의 관심은 소설 속의 인물들이 어떻게 욕망하는가 하는 인간 욕망의 구조를 밝혀내는 데에서 출발한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부터 스탕달의 『적과 흑』,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영원한 남편」을 비롯한 여러 소설들에서 그는 이 소설 속의 인물들이 대상을 직접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중개자의 암시를 통해서 욕망한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우리는 어떤 대상을 자발적으로 욕망한다고 믿고 있지만, 그것은 ‘낭만적 거짓’에 불과하다. 사실은 우리가 욕망의 주체와 대상 그리고 중개자를 세 꼭지점으로 하는 삼각형의 욕망구조에 편입되어 있으며, 이것이 소설의 주인공들을 통해 드러나는 ‘소설적 진실’이다. 중개자는 『돈키호테』의 경우처럼 전설적인 가공의 인물이어서 주인공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을 수도 있고, 『적과 흑』 또는 「영원한 남편」의 경우처럼 자기와 처지가 비슷한 아주 가까운 사이일 수도 있다. 

지라르에 따르면 삼각형의 욕망이란 거의 우리 모두가 앓고 있는 형이상학적 질환에 속한다. 이 병이 무서운 이유는 암처럼 자각증세가 없기 때문이다. 정확한 진단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형이상학적 질환에서 치유될 수 있는 희망은 없어 보인다. 지라르가 낭만적 거짓을 폭로하고 삼각형의 욕망이라는 소설적 진실을 드러내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낭만적 비평은 언제나 본질적인 것을 거부한다

소설의 결말은 모두가 전향이다. 이것은 아무도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갈 수 있을까? 이러한 전향들이 모두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결말들은 애초부터 기본적인 두 범주로 구분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사람들과 합류하는 주인공을 보여주는 결말과, 고독을 쟁취하는 ‘군집성’ 주인공을 보여주는 결말이라는 두 범주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들은 첫번째 범주에 속하고, 스탕달의 소설들은 두번째 범주에 속한다. 라스콜리니코프는 고독을 거부하고 타인들을 포용하는 반면, 쥘리앵 소렐은 타인들을 거부하고 고독을 선택한다.

이 대립은 극복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만일 전향이 우리가 찾아낸 의미를 지닌다면, 또한 그것이 삼각형의 욕망에 종지부를 찍는다면, 그 결과는 절대고독이라는 용어로도 또 세계로의 회귀라는 용어로도 표현될 수 없다. 형이상학적 욕망은 타인과의 어떤 관계 그리고 자신과의 어떤 관계를 맺게 만든다. 진정한 전향은 타인과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새로운 관계를 발생시킨다. 고독과 군집성, 참여와 비참여 사이의 기계적인 대립을 제시하는 것은 낭만적 사고이다. 

스탕달과 도스토예프스키의 결말을 좀더 자세히 관찰하면 언제나 진정한 전향의 두 가지 양상이 나타나지만, 그 두 가지가 똑같이 전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스탕달은 주관적인 면을 더 강조하는 반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상호주관적인 면을 더 강조한다. 소홀히 다루어진 면도 전혀 사라진 것이 아니다. 쥘리앵은 고독을 획득하지만 고립을 이겨낸다. 그가 레날 부인과 누렸던 행복은 타인들과 맺은 관계에서 일어난 근본적인 변화의 훌륭한 표현이다. 재판이 시작될 무렵 주인공이 사람들에게 둘러싸였을 때, 그는 자기가 타인들에 대한 예전의 증오심을 더 이상 느끼지 않음을 깨닫고 놀란다. 그는 타인들이 과연 자기가 생각했던 것처럼 나쁜 사람들일까 의아해한다. 더 이상 그들을 매혹하거나 지배할 욕망이 사라진 쥘리앵은 더 이상 그들을 증오하지도 않는다.

반대로 라스콜리니코프는 결말에서 고립을 이겨내지만 그도 역시 고독을 쟁취한다. 그는 복음서를 읽게 되고, 오래 전부터 맛보지 못하던 평화를 느낀다. 고독과 인간교류는 상호관련해서만 존재한다. 그 둘을 분리하면 낭만적 추상화에 빠질 위험이 있다.

소설의 결말들간의 차이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 대립보다는 강조의 이동이 더 중요하다. 형이상학적 질환이 치유되는 다양한 양상들간에 부재하는 균형은 소설가가 자신의 낭만주의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는 도식들에 사로잡혀서 도식들이 정당화의 구실을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결말에 사회참상 묘사주의가 전혀 없지는 않다. 스탕달의 결말에서는 들레클뤼즈 살롱에서 기세가 등등하던 부르주아 낭만주의의 몇 가지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차이점들을 강조하면 소설 결말들의 통일성을 놓쳐버리기 쉽다. 다름아닌 바로 그것이 비평가들이 바라는 것인데, 통일성이란 그들의 언어로 진부함이며 진부함은 최악의 저주인 까닭이다. 만약 비평가들이 이 결말을 완전히 거부하지 않을 경우, 그들은 이 결말이 독창적임을, 즉 소설의 다른 결말들과 모순된다는 사실을 입증하려 애쓴다. 그들은 언제나 소설가를 자신들의 낭만적 기원으로 환원시킨다. 그들은 작품에 봉사한다고 믿는다. 교양 있는 대중의 취향인 낭만적 취향의 수준에서 본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작품에 봉사하고 있다. 좀더 파고들어가본다면 그들은 작품에 해를 끼치고 있다. 그들이 작품 내부의 소설적 진실과 모순되는 것을 칭찬하기 때문이다.

낭만적 비평은 언제나 본질적인 것을 거부한다. 즉 형이상학적 욕망을 초월하여 죽음 너머로 빛을 내뿜는 소설의 진실로 향해 가기를 거부한다. 주인공은 진실에 도달하면서 죽는다. 그리고 자신을 창조한 작가에게 자신의 선견지명을 유산으로 남긴다. 소설의 주인공이라는 칭호는 비극적인 결말에서 형이상학적 욕망을 이겨내고, 그리하여 소설을 쓸 수 있게 된 인물에게 부여되어야 한다. 주인공과 그의 창조자는 소설이 진행되는 동안 내내 분리되어 있다가 결말에서 서로 합쳐진다. 죽어가면서 주인공은 잃어버린 자신의 삶을 돌이켜본다. 그는 그 삶을 시련과 병마와 추방이 클레브 부인에게 지니게 해준, 그리하여 이 여류소설가3)의 관점과 동일해진 ‘더욱 폭넓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러한 ‘더욱 폭넓고 객관적인 시선’은 마르셀 프루스트가 『되찾은 시간』에서 말하고 있는 ‘망원경’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스탕달의 주인공이 감옥 안에서 도달하는 탁월한 태도와도 다르지 않다. 멀어짐과 상승의 모든 이미지들은 더욱 초연해진 새로운 견해, 즉 창조자 자신의 견해를 표명한다.


「카라마조프가 가의 형제들」 러시아 현대화가가 그린 그림으로 대심문관 장면이다.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제12장 「결말」



삼각형의 욕망으로 투영되는 현대인의 욕망

이 책에서 맨 먼저 분석의 대상이 되는 것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이다. 그가 이 소설의 분석에서 얻어낸 결론은 『돈키호테』의 주인공들의 욕망은 간접화한 욕망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 개인이 무엇을 욕망한다는 것은 그 개인이 지금의 자기 자신으로 만족하지 못해 자기 자신을 초월하고자 하는 것인데, 이때 초월은 자기가 욕망하게 되는 대상을 소유함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것을 도표로 그려보면 개인에 해당하는 주체가 밑에 있고 대상이 그 수직선상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관계를 『돈키호테』에서 살펴보면 주인공 돈키호테는 이상적인 방랑의 기사가 되고자 한다. 여기에서 돈키호테는 주체가 되고 이상적인 방랑의 기사는 대상이 된다. 그러나 돈키호테는 그 이상적인 방랑의 기사가 되기 위하여 아마디스라는 전설의 기사를 모방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돈키호테는 직접 이상적인 기사도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아마디스를 모방함으로써 거기에 도달하고자 한다.

따라서 이상적인 기사도에 도달하고자 하는 돈키호테의 욕망은 아마디스라는 중개자에 의해 간접화되고 있으며, 주체와 대상 사이에는 간접화 현상이 일어난다. 즉 주체의 욕망이 수직적으로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비스듬히 상승하여 중개자를 거쳐 대상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욕망의 간접화 현상은 기독교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구조이다. 어느 기독교인이 진정한 기독교인이 되어 구원받기를 원한다면 그는 곧 예수라는 중개자를 모방하면 된다. 이때 기독교인과 예수와 진정한 기독교인은 삼각형의 세 꼭지점을 형성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욕망하는 주체와 욕망의 대상과 그 욕망의 중개자가 삼각형의 구조를 갖게 되고, 이처럼 간접화한 욕망을 ‘삼각형의 욕망’이라고 부른다.

지라르는 현대인의 욕망은 이처럼 삼각형의 구조로 되어 있다고 보면서 소설의 주인공이 지니고 있는 욕망의 왜곡되고 비진정한 속성을 분석하고 있다. 이로써 시장경제체제 사회 속에서 개인은 그 욕망마저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중개자에 의해 암시된 욕망을 소유하게 되었음을 제시한 셈이 되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주인공의 욕망의 구조와 주인공을 태어나게 한 사회의 경제구조 사이에 구조적인 동질성을 발견하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지라르는 따라서 돈키호테의 욕망이 돈키호테 내면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 아마디스라는 중개자에 의해 암시됨으로써 생긴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한 점에서 종래의 돈키호테를 이상주의자로, 산초 판사를 현실주의자로 규정한 것은 부분적으로는 진실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진실이 아니다. 예전에는 산초 판사의 욕망(작은 섬 하나를 소유하는 것, 딸에게 공작부인의 칭호를 갖게 하는 것)이 실현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그를 현실주의자로 보았다. 그러나 지라르는 산초 판사의 바로 그 두 가지 욕망이 그의 내부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욕망이 아니라 그의 주인인 돈키호테에게서 암시받은 욕망이라고 지적한다. 그것은 돈키호테가 산초 판사의 욕망의 중개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지라르는 이처럼 하나의 작품이 여러 개의 삼각형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가 분석하고 있는 스탕달의 『적과 흑』,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도 주인공들의 욕망이 여러 개의 삼각형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지라르는 모든 삼각형의 욕망이 동일한 관계에 의해 형성된 것이 아니라 좀더 복합적인 관계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는 점에 주목함으로써, 자신의 이론을 더욱 복합적이고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 그에 따르면 삼각형의 구조에서 주체와 중개자 사이의 거리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분석에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것은 그 둘 사이의 거리이다.

다시 말하면 『돈키호테』에서 주체 돈키호테와 중개자 아마디스는 동일한 세계에 있지 않다. 즉 아마디스는 전설적인 가공의 인물이어서 돈키호테와 만날 수 없는 인물이다. 이때 주체와 중개자의 거리는 극복될 수 없을 만큼 떨어져 있다. 그런 관점에서 주체로서의 산초 판사와 중개자로서의 돈키호테 사이의 거리는 함께 다니고 있기 때문에 동일한 공간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때의 거리를 물리적인 거리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돈키호테는 주인이고 산초 판사는 시종이기 때문에, 둘이 함께 다닌다고 해서 그 둘 사이의 거리가 극복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산초 판사는 단 한 번도 자신이 돈키호테라는 주인의 자리를 꿈꾸어본 적이 없고 주인과 경쟁해보고자 한 적이 없다. 그것은 두 인물이 동일한 공간에 살고 있으면서도 엄연하게 구분되는 정신적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반면에 스탕달의 『적과 흑』에서 마틸드가 쥘리앵을 소유하고자 하는 것은 그의 경쟁자인 페르바크 원수부인과의 경쟁관계에서 비롯되고 있다. 이처럼 주체인 마틸드와 중개자인 페르바크 원수부인이 동일한 공간 안에서 대상인 쥘리앵을 욕망하는 데 서로 경쟁관계에 있다는 것은 욕망의 간접화가 훨씬 더 비극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르네 지라르는 전자를 외적 간접화라 하고 후자를 내적 간접화라고 하며 전자의 범주에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을 분류하고 후자의 범주에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분류한다. 그는 현대인의 욕망이 주체와 중개자의 거리가 가까워짐으로써 주체와 대상을 구분할 수 없게 된 점에서 훨씬 더 비극적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김치수
이화여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문학평론가이자 사회인류학자인 르네 지라르는 1923년 남프랑스 아비뇽에서 태어나 1947년 파리 고문서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인디애나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디애나 대학 프랑스어 강사를 시작으로 듀크 대학, 존스 홉킨스 대학, 뉴욕 주립대학, 스탠퍼드 대학 등에서 정교수·석좌교수 등을 지내며 프랑스의 역사·문화·문학·사상에 관한 강의를 하였다. 1961년에는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비평언어와 인문학’에 관한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하였는데, 여기에는 바르트·데리다·골드만·이폴리트·라캉·풀레·토도로프·베르낭 등 많은 학자들이 참가했다.

지라르의 관심은 소설 속의 인물들이 어떻게 욕망하는가 하는 인간 욕망의 구조를 밝혀내는 데에서 출발한다. 그것이 그의 첫 저서인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1961)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이다. 

인간의 욕망과 구조를 밝혀내려는 작업의 결실인 『폭력과 성스러움』(1972)은 1973년 프랑스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그밖에도 그는 『지하실의 비평』(1976), 『세상이 만들어질 때부터 숨겨져온 것』(1978, 공저), 『이중규제』(1978), 『희생양』(1982), 『옛 사람들이 걸어간 사악한 길』(1985), 『나는 번개처럼 빠르게 떨어지는 사탄을 보았노라』(1999) 등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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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한길사 / 한길아트2011.12.14 11:18

파주 헤이리 ‘서예삼협 파주대전’ 전시글이 동아일보에 실렸습니다. 그 내용을 블로그에 소개합니다. 이 기사는 원저자의 허락하에 기재됨을 밝힙니다.



 

서예삼협 파주대전(왼쪽), 정도준 씨는 문자를 해체하면서도 문자의 조형성을 회화적으로 표현한 작품을 통해 한국의 서예를 서구에 알리는 데 앞장서 왔다.(오른쪽 위), 진지한 실험과 다채로운 조형어법으로 우리 서예의 지평을 확장시킨 박원규 씨는 벽면을 가득 채운 대작을 선보였다.(오른쪽 가운데), 전통을 충실히 지키면서도 새로운 세계를 구축한 이돈흥 씨는 힘찬 획으로 산 이미지를 그려냈다.(오른쪽 아래)





















눈이 행복한 전시다. 현대 서예의 고수들이 붓으로 일합을 겨루는 ‘서예삼협 파주대전(書藝三俠 坡州大戰)’에 대한 얘기다. 경기 파주시 탄현면 예술마을 헤이리의 갤러리 한길, 북하우스 아트스페이스를 통째로 사용한 대규모 기획전으로, 전통과 이를 현대적으로 변용한 실험이 맞춤하게 균형을 이루며 보는 이를 빠져들게 한다.

참여 작가는 전통을 충실히 지키며 자기 세계를 구축한 학정 이돈흥(64), 이미지와 글이 공존하는 과감한 작업으로 서예의 영토를 확장한 하석 박원규(64), 전통과 현대적 재해석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소헌 정도준 씨(63). 이들은 평화롭지만 치열한 내공 대결을 펼쳐 풍성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한길사가 창사 35주년 기념으로 마련한 이 전시는 정통 필법과 이를 응용한 작품에 두루 능한 작가들을 통해 서예의 미학과 가치를 새롭게 일깨운다. 김언호 대표는 “서예가 사람들과 동떨어진 섬처럼 존재하는 현실이 안타까워 다리를 놓고자 마련한 전시”라고 소개했다. 전시 중 특강이 열리고, 한정판 도록도 발간된다. 내년 2월 29일까지. 031-955-2041 


3인 3색의 축제

단순한 획으로 무등산을 생생히 되살려내고(학정), 문자를 해체하면서도 그 본질은 지켜 우리 서예의 미학을 회화적으로 재해석하며(소헌), 벽을 가득 채운 서체의 웅장한 향연과 추상적 이미지가 시선을 압도한다(하석). 정통 서예부터 시각적 이미지가 도드라진 작품까지 어울린 전시는 흰 화선지를 벗어나 빨강, 노랑 종이를 쓰고, 일반 액자 대신 발광다이오드 패널을 활용하는 등 서예와 현대미술의 만남을 고민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세 작가의 길은 각기 달랐다. 학정의 스승은 광주에서 활동한 성곡 안규동. 하석은 강암 송성용의 문하에서 서예를 배웠고, 소헌은 일중 김충현을 사사했다. 학정은 우직하게 작품 활동을 하며 후학을 양성해 서예의 저변을 넓혀 왔다. 원교 이광사와 추사 김정희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학정체’를 일궈낸 그의 작품에선 “쓰면 느는데 어떻게 안 쓰겠는가”라고 말하는 뚝심과 끈기가 그대로 묻어난다.

영상세대의 눈을 사로잡을 만큼 자유분방하고 활달한 조형어법을 선보인 하석은 문자학 소양과 필법 이론에 해박한, 학구적인 서예가다. 1979년 동아미술제 대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그는 “이미 시도한 형식을 답습하지 않는다”는 정신 아래 모색과 도전을 거듭해 왔다. 그림문자가 만들어진 원시로 회귀한 듯, 문자와 이미지를 낙서처럼 쓱쓱 그린 듯한 작업에선 ‘팽팽하게 당긴 활처럼 극적 긴장과 내적 활력’이 충만하다. 소헌의 경우 내용과 조형, 언어와 이미지에 동등한 무게를 두고, 가장 정통적이면서도 가장 현대적인 서예의 미학을 구사한다. 지난 10년간 구미에서 잇단 초대전을 열면서 한국 서예를 해외에 알리는 데 가장 앞장선 서예가다. 전시에선 문자들이 수직과 수평, 원과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등 새로운 시도와 서예의 격조가 조화를 이루며 눈길을 붙잡는다. 


기운생동의 세계

서예를 고리타분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이 전시는 영상 시대의 중심에서 ‘붓글씨’의 존재 이유와 생존방식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 문화의 뿌리이자 한자 문화권의 정수가 서예에 있다고 침묵으로 웅변하기 때문이다.

한자를 읽을 줄 모른다고 주눅들 필요는 없다. 한글이든 한문이든 글자를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우선인데다 글씨의 시원으로 돌아가 그림문자처럼 재해석한 작업도 많다. 이돈흥 씨는 “내용과 상관없이 먼저 그 안에서 뿜어 나오는 기운생동의 감정을 느껴보라”고 권한다. 분석과 해독이 아닌, 만남과 느낌을 중시하는 현대미술의 감상법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작가 이름을 보지 않고 전시장을 한 바퀴 돌아보고 세 작가의 개성을 나름대로 익힌 뒤 다시 한 번 작품을 감상하면 더욱 흥미롭다. 전시장 곳곳에서 한 해를 마감하기 딱 좋은 글귀를 만나는 것도 덤이다. ‘성공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고 행복은 얻은 것에 만족하는 것이다.’ ‘가는 데까지 가거라. 가다가 막히면 앉아서 쉬거라. 쉬다 보면 새로운 길이 보이리.’


작성자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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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공지사항2011.12.07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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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 / 한길아트2011.11.30 13:05

캄보디아에 지뢰 제거, 미얀마 195개 마을에 샘물 건설, 북한에 20만 개 생리대를 만들 천과 5,000명이 입을 스판 벨벳 발송, 캄보디아ㆍ스리랑카에 5,000켤레 운동화 후원, 히말라야에 초중고등학교 설립, 국내에 대안학교인 헌산중학교, 탈북청소년을 위한 한겨레중고등학교 설립 등……. 50여 년 동안 세계 55개국에 나눔과 봉사를 실천한 박청수 교무는 ‘한국의 마더 테레사’라 불린다. 그가 세계 곳곳에 보낸 갖가지 구호물자는 컨테이너 30대 분량에 이른다. 그에게 나눔에 대한 생각과 철학을 물었다. “모든 일이 어머니로 인해 예정된 길이었다. 나의 종교적 삶을 열어준 이는 바로 어머니였다.” 『어머니가 가르쳐준 길』 출간에 맞춰 11월 28일 프레스센터 19층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책으로 남기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어머니는 항시 “너른 세상에 나아가 많은 사람을 위해 일해라” 하셨습니다. 그 말씀 따라 원불교 교무가 되어 세계 53개국을 방문하고 55개국을 도왔습니다. 이 모두 어머니가 저를 이끌어준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어머니 뜻을 배반하지 않고 칠십 평생 일했더니 많은 결실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일제시대에 태어난 어머니는 27세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되어 두 딸을 키우셨습니다. 무학에 남들이 배워서 잘사는 걸 본 적도 없는데 우리가 큰뜻을 펼치게 하기 위해 교육을 시키셨지요. 늘 “그까짓 시집 가서 뭐할 것이냐. 기왕이면 큰 곳에서 큰 살림을 해라. 나는 외손주 등에 업고 싶지 않다. 사위 절 받고 싶지도 않다” 하셨습니다. 저는 전북 남원 수지면 홈실마을이라는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전주여고를 거쳐 박사학위까지 받았는데 모두 어머니가 교육을 뒷바라지해주신 덕분입니다. 3년 전 91세에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잘 키워주셔서 너무도 감사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어 책으로 남기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끝도 없는 기도와 정성이 저를 만들었기에, 어머니에게 영광을 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교무님이 생각하시는 ‘효’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젊은 날 자식을 위해 희생한 부모가 홀로 자식을 기다리는 마음을 알아주는 게 자식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시간과 돈을 들일 이유는 없습니다. 잠깐만 찾아 뵙고, 목소리를 들려주고, 얼굴을 보여드리면 됩니다. 부모는 항상 자식이 그립고, 자식을 보고 싶어하기 때문에 그 마음을 채워드려야만 비로소 행복해하실 것입니다.


봉사와 나눔을 실천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보면 마치 내가 지금 당한 일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대로, 도움의 손길을 절실하다고 느껴지는 곳이라면 달려가는 것이 제가 사는 방식이 되어버렸습니다. 세상을 사는 동안 의미 있다고 여겨지는 일들, 그것을 하면 유익하리라고 믿어지는 일들을 제 일감이라 생각하고 챙기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세월이 흐르면서 작았던 것이 점점 커지고, 숨은 것은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이야기해보자면, 캄보디아에서는 한 달에 300명씩 팔다리가 잘린다고 합니다. 캄보디아 사람들보다 많은 수의 지뢰가 그 땅에 묻혀 있다는 말을 듣고, 한 개의 지뢰라도 제거하겠다는 마음으로 국교도 단절된 그 나라를 돕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정성을 모아 성금을 전달했고 나중에는 캄보디아 바탐방에 무료 구제병원을 세웠습니다. 지금은 한 달 1,500명의 환자가 그곳에서 의료혜택을 입고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 시작한 작은 일, 그것이 모여 현재까지 13만 명 환자를 도운 큰일이 되었습니다.


 

“내가 선택한 불특정 다수의 그들이 없었다면 제 인생의 의미는 반으로 줄었을 것입니다.” 


봉사는 남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성취감과 만족, 행복과 충만감을 느끼기 위해 그들을 돕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를 두고 남을 위해 좋은 일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속으로, 내가 ‘남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남’들이 내 삶을 가꾸는 텃밭이 되어주고 때로는 넓은 농경지도 되어서 삶의 의미를 충족시켜주고 성취감과 보람을 안겨주는 고마운 인연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그들, 내가 선택한 불특정 다수의 그들이 없었다면 제 인생의 의미는 반으로 줄어들었을 것입니다.
 

교무님에게는 종교의 경계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천주교 시설 성 라자로 마을 나환자들을 31년간 도왔습니다. 아무리 일이 바빠도 성 라자로 마을 공동 생일날인 2월 9일에는 꼭 국내에 있었습니다. 나환자들을 돕기 위해 15년간 직접 엿을 팔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진심을 다하다보니 나환자 식구들로부터 “밥을 한 끼 굶고 그 대가로 박 교무님을 볼 수 있다면 나는 차라리 한 끼 밥을 굶고 만나고 싶은 심정이오”라는 고마운 고백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또 법정 스님이 회주로 계시던 맑고 향기롭게, 기독교의 대한성공회와도 협력했습니다. 타종교라고 배척했다면 만날 수 없었을 고마운 인연들입니다. 이는 세상의 모든 종교가 한 이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 실천이었습니다.



정리-편집부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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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벨기에 남쪽 인구 12만의 작은 도시 마스트리히트를 찾아갔습니다. 셀레시즈 도미니크 서점을 구경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영국의 일간 신문 『가디언』은 셀레시즈 도미니크 서점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으로 선정한 바 있습니다. ‘천상의 서점’이라고 했습니다. 서점은 1294년에 세워진 도미니크 성당의 내부를 개축하여 만든 것입니다. 과연 지상에 존재하는 천상의 서점입니다. 

저는 이 서점 이야기를 여러 해 전부터 들었습니다. 셀레시즈 도미니크 방문은 이번 유럽 여행의 가장 신나는 일정이었습니다. 세계의 서점들을 나름대로 찾아다닙니다만, 셀레시즈 도미니크 서점의 경이로운 풍경에 압도당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건물이라고 합니다. 좀 구석진 곳에 위치하고 있지만, 위치를 묻는 저에게 한 가게 주인은 즐거운 표정으로 가는 길을 설명해주었습니다. 아름다운 서점 셀레시즈 도미니크는 마스트리히트 시민들의 가슴엔 문화적 긍지로 자리를 잡고 있는 듯 했습니다. 마스트리히트를 찾는 관광객들이 둘러보는 코스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셀레시즈 도미니크 모습.


책방 변신에 관광객들 줄이어

유럽의 성당이란 참으로 유럽인들의 미의식을 집성시키는 공간입니다. 바닥 면적이 300평이 안되는 도미니크 성당도 안에 들어서면 역시 감동적인 공간의 위용을 보여줍니다. 천정 높이가 20미터는 됩니다. 천정에는 벽화가 있습니다. 돌기둥들이 장엄합니다.

지난 2006년 네덜란드 서점 체인 셀레시즈가 이 성당을 서점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철제로 내부를 3층으로 개축했습니다. 벽은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 원형을 그대로 보존한다는 것이 사용조건입니다.

서가에 꽃혀 있는 책들, 쏟아져 들어오는 자연광, 스테인드 글라스의 빛깔이 책방 내부를 더욱 환상적으로 만듭니다. 지난 200여년 동안 교회가 아닌 다른 용도로 사용되다가 책방으로 변신하면서 마스트리히트의 명소가 되었습니다. 저자와 독자의 대화, 전시회, 강연회, 음악회 등이 열려 오래된 성당 도미니크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공간에서 문화예술공간이 되면서 더 많은 시민들이 찾고 있습니다. 셀레시즈 도미니크 서점은 이제 책을 사랑하는 세계인들이 방문하고 싶어하는 명서점이 되었습니다.

유럽에는 성당이 참 많습니다. 유럽의 역사와 문명의 이데아는 기독교가 토대를 이룹니다. 유럽의 모든 도시 한가운데는 하늘을 찌르는 성당이 근엄하게 서 있습니다. 그러나 휘황찬란하게 아름다운 교회의 장식과 치장에 비해, 예배를 보는 신자들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아름답고도 성스러운 유물이 된 듯도 합니다.


독서로 가능한 세계 탐구 아름다워

셀레시즈 도미니크 서점은 현대 서구사회의 종교현상을 보여줍니다. 기독교 문명권의 변화를 보여주는 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종교적 공간이 책의 공간, 대화와 문화예술의 공간으로 전화되는 풍경에 저는 주목하고 싶습니다. 책의 정신과 책의 사상의 위대한 가능성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책방으로부터 생성되는 자유정신과 독서로 가능한 새로운 세계에의 탐구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1970년와 1980년대에 우리는 민주화운동을 치열하게 진전시켰습니다. 강압적인 권력의 통제시대에 우리는 책을 읽고 토론했습니다. 그 시대를 생각하면서 저는 이미 작고한 연세대 김찬국 교수를 늘 떠올립니다. 해직시절에 임시로 목회를 하기도 한 선생은 책을 가득 넣은 가방을 메고 다니면서 책 읽기를 권하곤 했습니다. 책 읽게 하는 것이 곧 복음을 전하는 일이라 했습니다. 한길사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책을 기획하면서 선생에게 집필을 부탁드리기도 했고, 선생의 단독저서 『인간을 찾아서』를 출간한 바 있습니다.

셀레시즈 도미니크 서점에서 저는 실천하는 신학자 김찬국 교수를 다시 떠올렸습니다. 책 읽는다는 것은 새로운 정신과 사상을 탐험하는 일입니다. 진리와 진실을 탐구하는 삶의 여정입니다. 책의 정신과 사상을 탐구하고 탐험하는 사람들이 찾는 책방이란 참으로 의미심장한 공간입니다. 언젠가 다시 셀레시즈 도미니크 서점을 가고 싶습니다.



김 언 호 도서출판 한길사 대표· 파주북소리 조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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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다반사2011.11.02 11:32

제가 간직하고 있는 ‘두고두고 읽는 책’ 목록 중에는 ‘연애소설’들이 있습니다. 보통은 연애소설을 한 번 읽고 말 텐데, 저는 그것들을 읽을수록 잊고 있던 작은 깨달음을 얻곤 하기에 버리지 못합니다. 깨달음은 보통 ‘그래, 내가 그때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류의 ‘지난 연애에 대한 반성’이 대부분입니다. 깨달음은, 헤어진 기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깊게 와닿습니다.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는 관계라는 자명한 사실 앞에서 연희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만약 그때 누군가 연희에게 한 가지 소원을 물었다면 서슴없이 대답했을 것이다. 생의 가장 마지막 순간을 그와 함께 보내고 싶다는 것. 자신도 세중도 저마다의 삶을 다 살고 나서, 이번 생에 부과된 사회적 의무나 가정적 책임, 주어진 과업을 각자 완수한 다음, 한 일 년쯤 여분의 삶이 허용된다면 생의 가장 마지막 네 계절쯤을 그와 함께 보내고 싶다는 것. 

김형경, 『성에』


『성에』는 읽을수록 주인공의 심정에 공감이 가는 책입니다. 처음에는 연희도, 세중도, 그리고 그들의 탐닉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후에, 개인적으로 원치 않는 헤어짐을 겪고 난 다음에, 그제야 연희의 마음에 공감하게 되었지요. 내가 가진 것을 다 버리고서라도 소유하고 싶은 욕망. 소유욕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앨리스는 감정을 말로 옮길 힘이 없었다. 아무 말 안 해도, 그 남자가 바라보면서 "그래요, 알아요"라고 속삭여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알랭 드 보통, 『우리는 사랑일까』 

『우리는 사랑일까』는 연애를 할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자주 들여다보게 되는 소설입니다. ‘앨리스’라는 캐릭터에 대한 매력 때문이지요. ‘어쩜 이렇게 여자 마음을 잘 알까’ 보통의 관찰력에 감탄하며 읽던 책입니다. 이 책을 읽은 여자는 대부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앨리스는 바로 나잖아!” 겉으로는 강한 척하지만 속은 물렁한 앨리스. 남자에게 이해 못할 취급을 당해도 ‘그는 원래 좋은 사람인데 오늘 내가 신경을 거슬리게 해서 그런 걸 거야’라고 생각하는 ‘착한여자 콤플렉스’에 빠진 엘리스는 내 안에도 있습니다.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아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 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문태준, 「가재미」

소설은 아니지만,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읽을 때마다 떠나간 이들이 생각나 눈시울을 붉히게 되는 시가 있습니다. 처음 「가재미」를 읽을 때는 시의 화자가 병든 연인을 떠나보내는 모습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친척 어른(고모였던 것 같습니다)께서 병원에 누워 계시는 모습을 보고 지은 시라고 하지요. ^^; 떠나보내는 이의 안타까움과 떠나는 이의 슬픔이 잘 묻어나 있는 것 같습니다. 「가재미」는 가수 이은미 씨가 우울증으로 자살충동을 느끼고 있을 때, 위로를 받은 시였다고 합니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연애는 어렵고, 또 이별은 그보다 몇 배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럴 때마다 연애소설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책으로 위로받은 적이 있는 분들은 이해하실 거예요. 내게 위로를 주었던 책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는 것은, 그 시절 나를 다시 만나 화해하는 기분이라는 것을요. 한번쯤 사랑에 아파본 경험이 있는 사람과 이 글들을 함께 읽고 싶습니다.
 

편집부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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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그레이트북스2011.10.27 10:33




영국의 유명한 역사학자 홉스봄은 1789년부터 1848년 사이의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이라는 ‘이중혁명’을 전체사의 관점에서 서술한다. 영국에서는 이 두 혁명이 약 100년이라는 시차를 두고 자생적으로 일어나 근대시민사회를 수립하였다. 그러나 영국 이외의 유럽 대륙의 여러 나라에서는 프랑스 대혁명을 기폭제로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이 동시에 폭발하여 진행되었고, 그 충격은 유럽 봉건사회의 구체제를 근본적으로 붕괴시키고 급격하게 근대시민사회를 수립하게 된 계기를 마련했다.

어떤 측면에서 볼 때 이중혁명에 대한 홉스봄의 강조는, 19세기 이후의 모든 역사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궁극적인 승리가 불가피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 자체가 역사의 법칙이라는 형태로 서술될 수 있다는 근대화론의 주장과도 상통한다.

홉스봄은 이중혁명의 전개과정을 프랑스 대혁명, 산업혁명, 전쟁, 민족주의, 노동빈민, 종교·예술·과학의 변화, 1848년의 혁명 등을 분석해서 체계화한다. 서양 근대사 중에서도 이 시기가 가장 극적이고 혁명적인 시기인데, 저자는 이 어려운 주제를 알기 쉽게 풀이하면서도 깊이 있는 학술적인 안목으로 정리함으로써 역사를 대중화한다.

인류문명사의 커다란 전환점이었던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을 다루는 저자의 시각은 정치사·사건사 중심의 구태의연한 서술체계에서 벗어나 민중의 생활상까지도 생생하게 드러내, 역사란 단지 제도사나 경제사만이 아니라 인간이 엮어내는 감동의 드라마라는 것을 실감시켜준다. 홉스봄은 바로 이러한 점이 역사의 진정한 면모임을 그의 독특한 역사관으로 보여주고 있다.


 

산업혁명의 결과가 낳은 암흑시대의 자화상

우리는 1789년의 세계를 살펴보는 일부터 시작했었다. 그로부터 약 50년 뒤의 세계 상태, 즉 그때까지 기록된 역사 가운데 가장 혁명적인 반세기가 막을 내리는 시점에서의 세계 상태를 훑어보는 것으로 이 책의 결론을 삼고자 한다.

그것은 최상급의 시대였다. 이 계산과 산정의 시대가 세계에 관한 기존에 알고 있는 모든 국면을 기록하려던 수많은 새로운 통계들에 비추어볼 때, 이 시대의 계량될 수 있는 양이란 양은 거의 모두가 종전의 어느 때보다도 더 많았다(또는 더 적었다)는 결론을 내려도 아무런 잘못이 없을 것이다.

지도상에 표시되어 있고 서로 교류하는, 알려진 세계의 면적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확대되었으며 교통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빨라졌다. 세계의 인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많아졌고, 어떤 경우에는 모두의 예상 또는 종전의 가능성 이상으로 증대했다. 거대한 도시의 수는 전에 없이 급속하게 증가했다. 공업 생산은 천문학적인 숫자에 달했다. 예를 들어 1840년에는 약 6억 파운드의 석탄이 지구 내부에서 채굴되었다. 국제무역에 관한 수치는 이보다 한술 더 뜨는 엄청난 것이었다. 즉 1780년 이래 네 배로 증가하여 약 8억 파운드 스털링(sterling)에 달했으며, 보다 불건전하고 불안정한 통화단위로는 이보다도 훨씬 더 증가했던 것이다.

과학은 일찍이 이토록 득의양양했던 적이 없었으며, 지식이 이처럼 널리 보급된 적도 없었다. 4000종 이상의 신문이 전 세계 시민들에게 지식을 보급했으며, 영국과 독일 및 미국에서만도 해마다 출판된 서적의 종류가 다섯 자리 숫자에 이르렀다. 발명에 대한 인간의 능력은 해마다 더욱 아찔할 만큼 높은 정상을 정복해가고 있었다. 아르강 등(1782~84)---그것은 기름등과 양초 이래 최초의 큰 진보였다---은 흔히 가스 공장으로 일컬어진 거대한 제조장에서 생산되어 끝없이 이어진 지하 파이프로 보내져 공장과 그리고 얼마 후 유럽의 여러 도시를 조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자마자 벌써 그것은 이미 혁명적인 인공조명이라고 할 수 없게 되었다. 런던은 1807년부터, 더블린은 1818년부터, 파리는 1819년부터, 멀리 떨어진 시드니도 1841년부터 그것으로 불을 밝혔던 것이다. 또 전기 아크 등도 이미 알려져 있었다. 런던의 휘트스턴 교수는 이미 영국과 프랑스를 해저 전신으로 연결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연합왕국에서 철도 이용객의 수는 이미 연간 4800만 명에 이르고 있었고(1845), 대영제국에서는 3000마일---1850년까지는 6000마일 이상---의 철도 선로를, 그리고 미국에서는 9000마일의 선로를 따라 남녀들이 돌아다닐 수 있었다. 정기 기선은 이미 유럽과 인도를 연결시키고 있었다.

이와 같은 승리에는 물론 어두운 면이 따랐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통계표로 쉽사리 요약되어 나타날 수는 없었다. 산업혁명은 인류가 살아온 세계 중에서도 가장 추악한 세계를 낳았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오늘날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 당시의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것을 양적으로 표현할 줄 알았겠는가. 맨체스터의 음산하고 악취가 진동하며 연무(煙霧) 가득한 거리는 이미 그러한 사실을 증언해주고 있었다. 달리 표현하면 산업혁명은 전례 없이 많은 남녀를 토지로부터 몰아내고 대를 물려 누려온 확실성을 박탈함으로써 아마도 가장 불행한 세계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1840년대 진보의 투사들을 그들의 자신감과 그들의 결의를 보아 용서할 수 있다. “인류를 보다 행복하고 현명하며 향상시키기 위하여 상업이 자유로이 전진할 수 있게 하고, 그럼으로써 문명과 평화를 아울러 이끌어가겠다”는 그들의 자신감과 결의 말이다. 위에 인용한 장밋빛 희망에 찬 구절은 파머스턴 경이 가장 암담했던 1842년에 한 말이지만, 그는 이 말끝에 “각하, 이것은 신의 섭리입니다”라고 꼬리를 달았던 것이다.

가장 충격적이라 할 그러한 종류의 빈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빈곤은 더욱더 증대하고 또한 그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산업과 과학의 승리를 가늠한 그 전(全)시대적 기준에서 볼 때, 이성적인 관찰자 중 가장 비관적인 자라 해도 물질적인 면의 빈곤이 과거 어느 시대보다 더 심해졌다거나, 당시의 비공업국들과 비교해서 더 심했다고 주장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주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노동빈민의 물질적 번영이라지만 그것은 흔히 과거의 암흑시대보다 나아진 바가 없으며, 때로는 현존하는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그 시대의 것보다도 나빴다고 말한다면 이 말은 더할 나위 없이 통렬한 비난이라 할 수 있다.

새로운 것과 낡은 것의 대조. 런던 역 사무소(1814) 바깥에 보이는
브링턴 역마차와 같은 우편마차는 도로건설자들이 건설한 자갈길 위를 달리게 되었다.



『혁명의 시대』 제2부 제16장 「결론: 1848년을 향하여」

 


이중혁명의 근대사회에 미친 세계사적 결과

역사학자로서 홉스봄이 관심을 갖고 다루는 주제는 그야말로 광범위하다. 그는 농민사나 노동계급사와 같은 계급형성과 관련된 주제들로부터 시작하여, 자본주의 발전과 관련된 경제사 분야에서도 활발한 연구를 하고 있으며, 심지어 문화비평가로서 재즈에 대한 분석서를 낸 적도 있었다. 이처럼 광범위한 그의 관심사 가운데서도, 『혁명의 시대 1789~1848』은 자본주의의 발전, 그것도 ‘장기(長期) 19세기’라 불리는 시기의 첫번째 국면에서 나타난 세계 자본주의의 발전을 다루고 있다.

홉스봄은 이 책이 집필되기 훨씬 이전인 1950년대에 이미 「17세기 위기론」이라는 선구적인 연구를 제출하여 많은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은 바 있으며, 이어서 『산업과 제국』에서는 영국 자본주의의 발전을 세계사적인 맥락에서 검토하였다. 「17세기 위기론」에서 그는, 유럽은 17세기에 전반적 위기를 경험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이미 이 시기에 자본주의 체제로의 전환점이 사회경제적으로 준비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산업과 제국』에서 그는 자본주의의 세계성에 주목하면서, 영국의 발전이 제국주의의 출현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즉 “자본주의는 이미 상당히 자본주의화되어 있는 경제에서만 발달할 수 있다”고 지적하는 동시에 다른 나라와 비교되는 영국의 급속한 발전은 세계시장의 존재 때문이었다고 함으로써, 그는 자본주의 발전에서 해외식민지의 중요성을 제기하였던 것이다. 17세기부터 시작된 영국의 자본주의적 사회경제로의 변화와 세계시장의 존재야말로 영국이 다른 나라들보다 일찌감치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이었다는 그의 지적은 『혁명의 시대』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그는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는 자본주의의 발전과정 가운데 그것이 압도적으로 승리하게 된 시기를 ‘장기 19세기’로 규정한 다음, 다시 그것을 세 단계(즉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로 구분한다. 『혁명의 시대』에서는 그 가운데서도 산업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승리하면서 등장하기 시작한 1789년부터 1848년까지의 첫번째 시기를 다루고 있다.

홉스봄은 이 책에서 첫째, 산업자본주의의 승리는 어떻게 가능했으며 둘째, 그 결과 세계는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추적하고 있다. 앞에서 지적했지만, 그는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에 이르는 이 시기는 자본주의가 시작된 시기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승리한 시기로 보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17세기의 일반적 위기론에서 밝힌 것처럼, 18세기 유럽은 이미 자본주의적 요소가 내재하고 있었으며, 바로 그러한 사실이 자본주의가 다른 지역이 아니라 어째서 유럽 영국에서 특히 압도적으로 승리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해준다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장기 19세기의 첫번째 국면에서 설명되어야 할 것은 자본주의의 존재나 시작 여부가 아니라, 왜 이 시기에 와서 비로소 자본주의의 승리가 가능하게 되었는지였다.

홉스봄에 따르면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바로 이중혁명이었다. 이중혁명이란 영국의 산업혁명과 프랑스 대혁명을 지칭하는데, 영국의 산업혁명이 자본주의 경제를 낳았다면 프랑스 대혁명은 자본주의 정치를 낳았다. 두 혁명의 경과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홉스봄은 두 혁명이 서로 별개의 혁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의 정치경제를 규정하는 통합적인 혁명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두 혁명은 각각 영국과 프랑스에서 나타났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정치경제의 전형이라는 측면에서 세계사적이고 보편적인 혁명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홉스봄의 이러한 논지는 보편주의적, 혹은 목적론적 역사 해석이 되기에는 너무도 많은 유보 조항을 허용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영국은 프랑스와 같은 정치혁명을 경험하지 못했으며, 프랑스는 정치혁명에도 불구하고 산업자본주의가 그에 걸맞게 발전하지 못했다. 또한 프로이센은 정치혁명이 부재한 가운데 절대주의하에서 산업혁명을 달성한 바 있다. 이러한 형태의 여러 변종들은 홉스봄이 제시한 근대 자본주의 사회를 규정하는 이중혁명의 이론적 중요성을 상당 부분 침식하고 있다.

물론 홉스봄은 이와 같은 역사적 현실을 다룸에 있어 보다 유연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즉 이중혁명은 혁명의 유무와 상관없이 자본주의 사회들이라면 경향적으로 경험해야만 될 사회적 변화의 기본 모델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에서 홉스봄이 강조한 이중혁명의 중요성은 하나의 경향성 정도로 자리잡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오히려 홉스봄이 강조하고자 했던 것은 모든 세계가 이중혁명을 겪어야만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중혁명이 미친 세계사적 결과였다. 그에 따르면 근대 세계는 이중혁명으로 인해 비로소 공업 일반이 아닌 자본주의적 공업의 승리가, 자유와 평등 일반이 아닌 부르주아적 자유와 평등의 승리가, 근대 경제들 일반이 아닌 자본주의의 중심부의 승리가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자본주의의 발전에 대한 이와 같은 홉스봄의 설명은 경직된 역사적 필연성에 입각하여 자본주의의 발전을 설명하기보다는, 해당 사회가 역사적으로 발전시켜온 역사적 구체성에 입각하여 그것을 설명함으로써, 한편으로는 마르크스의 논지를 충실하게 따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보다 역사적인 구체성을 획득하게 되었다.

홉스봄이 「17세기 위기론」과 『혁명의 시대』에서 다루고 있는 자본주의의 발전 문제는 마르크스가 단편적으로 제시한 자본주의로의 이행에 관한 문제의 연장선상에 있다. 마르크스는 이 문제를 자본론의 ‘소위 본원적 축적’에 관한 장에서 간략하게 검토한 적은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다루지는 않았다. 대략 16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는 매우 광범위한 시간대에 걸쳐 있는 이 시기는 이론적으로나 역사학적으로 공백 상태에 놓여 있었다. 때문에 이에 관련된 문제들은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커다란 논란을 야기시킨 바 있다.



 

김동택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전임연구교수·정치학



 

에릭 홉스봄(Eric John Ernst Hobsbawm, 1917~2012)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오스트리아계 어머니와 유대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런던의 성 메리르본 고전문법학교에 다녔고 케임브리지의 킹스칼리지에 들어가 역사학을 전공했다. 

1947년 런던 대학 버크벡 칼리지의 사학과 강사로 부임했다가 1959년 전임, 1970년에는 경제사 및 사회사 정교수를 지냈으며 1982년 은퇴했다. 또한 1949년부터 1955년까지 케임브리지 킹스칼리지의 특별연구원으로 재직한 바 있으며, 1984년부터는 영국아카데미 및 미국아카데미 특별회원, 뉴욕신사회연구원 교수, 버크벡 칼리지 명예교수로 왕성하게 연구활동을 하였다.

홉스봄은 20세기 최고의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로 손꼽혔다. 특히 ‘아래로부터 위로의 역사’적 시각에서 전체사로서의 역사구도를 일관되게 견지하여 박식한 역사가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역사 3부작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는 그의 대표작으로서 프랑스 대혁명과 산업혁명으로 인류사회가 어떻게 변화·발전해왔고, 근대세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방대한 자료를 통해 완전히 새롭게 해석해내고 있다. 

1948년에 첫 저서 『노동의 전환점』(Labour? Turning Point, 1880~1900)을 출간했으며, 1950년에는 「페이비언주의와 페이비언들, 1884~1914」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밖에도 『노동하는 인간』(Labouring Men), 『산업과 제국』(Industry and Empire), 『원초적 반란자들』(Primitive Rebels), 『의적의 사회사』(The Bandits), 『극단의 시대』(The Age of Extremes, 1914~91) 등이 있으며, 1997년에 그의 역사관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역사론』(On History)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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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에드워드 기번은 카피톨리누스 언덕에 앉아 오렌지빛 석양이 비추는 폐허를 내려다보며 그 유명한 『로마제국쇠망사』를 써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시오노 나나미도 아마 팔라티노 언덕에서 로마 시가지를 굽어보며 명상에 잠겼으리라. 그리고 나 역시 그들과 같은 로마의 꿈을 꾼다. 4C의 고구려 소녀가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 찬란한 포룸 로마눔에 입성하는 상상도 하고, 언젠가 이탈리아라는 머나먼 이국 땅에 도착하여 독일의 문호 괴테마냥 로마에 도취되는 꿈도 꾼다.

비단 로마를 꿈꾸는 사람의 꿈은 이뿐만이 아니리라. 투명에 가까운 지중해를 가로지르며 로마의 외항인 오스티아로 향하는 수십 척의 갤리선, 파르티아와 이집트에서 들여온 진귀한 세공품들, 온갖 민족이 융합되는 세계적인 메트로폴리스 로마. 모든 현대인은 그 평화로웠던 팍스로마나를 추억한다. 현대의 법은 로마법의 변주이며, 미국의 국회의사당은 판테온의 모방이지 않은가? 또한 로마라는 채석장은 셰익스피어에서부터 최근 인기리에 상영된 미국 드라마 「스파르타쿠스」까지 풍부한 문화의 석재를 제공한다.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의 환상적인 나일강 관람과 폼페이우스 극장에서 친히 리라를 켜며 노래를 했다는 폭군 네로의 일화는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그 어느 시기보다 이상에 가까웠던 팍스로마나에 대한 향수, 그리고 천년에 걸친 시간이 빚어낸 다양한 인간 군상의 흥미로운 일화 때문에 우리는 로마를 사랑하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로마가 꾸준히 현대인들의 영감을 자극하는 건, 로마의 역사 자체가 인간의 드라마와 닮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로마는 늪지로 된 언덕에 건국되었으며, 바다와 인접해 있지 않은 불리한 지리적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에트루리아나 켈트족과 같은 강한 주변 세력이 혼재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로마가 역사의 승리자가 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로마는 예상을 뒤엎었다. 그리고 황금 시대를 열었다. 그 영광은 무려 천년이라는 기간 동안 지속되지만, 그 어떤 것도 영원히 지속될 순 없다는 걸 보여주려는 듯이 결국 찬란하게 멸망한다. 이러한 굴곡은 감동과 반전, 그리고 결말이라는 측면에 인간의 삶과 닮아 있다. 나는 로마의 역사란 단순히 지나간 과거의 기록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로마의 역사적 흐름은 굴곡진 우리의 인생과 같다. 그러기에 우리는 로마의 역사를 읽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팍스로마나와 같은 위대한 어떤 것을 위해 로마를 배울 필요가 있다.


 

“로마의 역사적 흐름은 굴곡진 우리의 인생과 같다. 그러기에 우리는 로마의 역사를 읽어야 하는 것이다.
팍스로마나와 같은 위대한 어떤 것을 위해 로마를 배울 필요가 있다.”



『로마인 이야기』 15권을 찬찬히 읽으면서 나는 그 ‘어떤 것’ 때문에 로마인들이 위대한 시기를 열 수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시오노 나나미 역시 그 문제에 대해 언급한다. “로마인은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족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보다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는 지중해를 자신들의 내해(內海)로 만들었다. 그 이유는 『로마인 이야기』 15권을 관통하며 계속 등장하는 ‘개방성과 관용정신’에 있다. 이 두 단어는 『로마인 이야기』를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나 역시 이 이상으로 로마인의 민족성을 대표할 수 있는 단어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어찌 보면 당연한 미덕이고 전혀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이지만, 나는 늑대의 자손이 건국했다는 그 고대의 제국이 현대보다 개방성의 측면에서 더 진보했음에 깜짝 놀랐다.

개방성은 지구촌이니, 코즈모폴리턴이니 하는 범세계적인 요즘 추세에 강조되는 미덕이다. 하지만 여전히 세계 도처에는 타민족과 타문화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존재한다. 여기서는 나 자신조차도 자유롭지 않다. 내가 다니는 대학 캠퍼스에는 아프리카나 중동에서 온 여러 학우가 있는데, 피부색이나 복장에서 ‘다름’이 확연히 느껴지는 그들에게 다가가기가 여간 쉽지 않다. 반면 일본이나 유럽에서 온 학우들에겐 친해지고 싶고, 그들의 문화를 더 알고 싶다고 생각한다. 책으로 문화엔 우열이 없음을 수없이 배웠지만, 나 역시 현실에선 뿌리 깊은 문화상대주의의 시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문화상대주의란 자신보다 저열하고 보잘것없다고 생각되는 문화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거라고 생각한다. 관심이 없다는 것은 그것의 소멸과 파멸도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다. 패자가 된 로마는 어땠을까? 그들은 승자로서 우월감에 도취되어 타민족의 문화를 말살하지는 않았을까? 그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탈리아 반도 위에 자리 잡은 갈리아인은 라틴족인 로마인과 그 기원 자체가 다르며 문화적으로도 확연히 다른 양상을 띤다. 게르만족이나 브리타니아족 역시 신체적 측면에서 한눈에 로마인과 구분이 되며, 다소 비문명적인 양상을 띤다. 어디 그뿐인가. 지중해 저편에는 커피빛 피부색을 지닌 누미비아인과 이집트인이 있으며, 동방세계의 파르티아인 역시 다르기로는 말할 것도 없다. 로마는 이런 다양한 이민족을 억압하거나 말살하지 않았다. 그들의 종교를 인정해주었고 때론 자치를 인정해주기도 했다. 로마인들은 다양한 구성분자로 이루어진 지중해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 하나의 통일된 문화와 종교만을 강요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던 것이다.

심지어 속주민들에게 기존의 기득권인 ‘시민권’을 부여했다는 것은 놀라운 진보라고 생각한다. 로마의 현제로 추앙되는 트라야누스ㆍ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속주 출신이었다. 일제식민지 치하의 조선인이 일본 총리가 된 것과 비슷하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지는 몰라도 어쨌든 본질적 측면에서 로마인들은 진보적이고 개방적이었다. 그들에게 본국과 속주의 관계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착취와 억압,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아니었다. 그저 지역의 특수성에 따라 나뉜 행정구역에 불과했다. 에드워드 기번은 말한다. “고대인들이 애국심이라고 명명한 공적 미덕은 자신이 속한 자유 정부의 유지와 번영이 자신의 이해가 달려 있는 문제라고 느끼는 데서 시작한다”라고. 시민권의 획득으로 로마의 변방에서 지중해 세계의 중심으로 부상하게 된 순간, 속주민들은 로마와 자신의 운명을 같이하게 된다. 유명한 예를 들자면, 율리우스 키빌루스가 갈리아 제국을 건설하고자 했을 때 갈리아는 로마의 속주로 남기를 원했다. 타민족을 수용하고 그들의 권리를 인정해줌으로써, 그들 자신이 ‘핍박받는 속주’가 아닌 로마와 한 배를 탄 ‘제국의 중심’이라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장점만 있을 수는 없다. 로마는 팽창주의의 측면에서 근대 제국주의의 모태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군사력을 앞세운 폭력적 확장이라는 점에서 비판받을 만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로마의 제국주의와 근대의 제국주의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한다. 근대의 제국주의는 식민지의 고유 문화를 인정하거나 소규모의 자치라도 허용하는 일은 없었다. 무엇보다 식민지란 착취의 대상이었다. 고대 로마에도 전리품의 약탈은 있었지만 매년 속주에 공납을 요구하는 일은 없었다. 속주란 로마세계에 편입된 일원으로써 협력하고 보호해야 할 하나의 행정 구역이었던 것이다. 물론 누가 누구를 보호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한 민족이 결정해야 할 사안이며, 군사적으로 우위에 있는 집단이 결정해서는 안 되는 것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근대 제국주의와 로마의 제국주의를 공통된 지점에 두고 바라볼 수는 없는 일이다. 공존이 제거된 근대의 제국들은 단지 로마의 독수리 문양만을 본 따 깃발에 달았을 뿐이다. 팍스저먼도, 팍스브리튼도 실현되지 않았다는 게 그 결정적 증거가 되지 않을까?

이처럼 고대 로마인의 개방성과 관용정신을 계승하지 못한 우리는 아직도 수많은 혼란을 빚고 있다. 전쟁과 테러, 종교와 인종 간의 갈등은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이다. 특히 종교적인 부분에서 우리는 고대인들의 의식을 한참 따라가지 못한다. 고대 로마는 다신교 사회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통합한 모든 이민족 신을 자신의 신으로 받아들였으며, 어느 특정 신만을 위한 신전이 아닌, 만신을 위한 판테온을 지었다. 종교적 화합이 정치적 안정을 위해 중요한 이유는 종교가 절대적인 신념체제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힘의 논리로 어떤 지역을 평정했다고 한들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그들의 가치체계까지 정복할 수는 없다. 그것을 억지로 바꾸려 든다면 반감만 일어날 뿐이다. 특히 다양한 민족들이 포진한 지중해 세계에서는 그 정도가 더 심했을 것이다. 로마인들은 수많은 이민족과 싸웠지만, 그들의 수많은 사상과는 싸우지 않았다. 인간은 이질적 종교에 전쟁으로 인한 종속보다 더 급격히 저항하는 존재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유사점을 찾아내 받아들였고 인정했다. 반면 오늘날 우리는 타인의 종교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고 자신의 종교를 강요한다. 포교와 선교 역시 가치관의 강요라는 하나의 폭력적 행위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부분에서 인류가 반드시 진보하는 것만은 아님을 깊이 통감한다. 인류는 언제쯤 다시 일신교의 논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박애며 자비며 仁이며 결국 그 내면에 흐르는 줄기는 ‘사랑’이라는 거대하고도 일관된 흐름일 텐데.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며 느낀 또 하나는, 그들의 근면하고 성실한 농부적 기질이 한국인과 닮았다는 것이다. 묵묵히 땅을 일구고, 노력한 이상의 것을 기대하지 않는 근면함. 흙냄새 묻은 손으로 차근차근 빚어내는 정신. 누군가는 로마의 수도와 가도를 보며 실용성만이 강조된 완벽한 상상력의 결여라 폄하하지만 나는 오히려 담백하고 멋 부리지 않는 소박한 아름다움이 감동적이었다. 그들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한 영민한 현실주의자들이었다. 파라오의 황금 데스마스크가 아닌, 찌푸리고 주름진 모습 그대로를 본뜬 로마인의 데스마스크는 검버섯마저 그대로 표현하는 조선의 초상화와 참 닮아 있었다. 있는 그대로, 지금 이 땅에 나는 것들을 사랑하는 로마는 농부의 땀이 베인 우리의 과거와도 일치점이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더더욱 로마를 읽어야 하는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인종이 같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시대가 있다는 사실을 쓰고 싶었다.” 장엄한 세월에 묻혔을 법한 로마인들이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화두를 던질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팍스로마나. 전쟁이 없는 평화. 강도와 해적은 자취를 감추고 제국 전역에서 경제가 눈부시게 성장하는 전례 없는 황금 시대. 모든 인종이 아우러지는 세계 국가. 2,000년이 지난 후에도 그들의 업적이 회자되는 이유는 이루지 못한 이상에 그 어느 시기보다 근접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언제나 ‘나음’을 위해 도전하는 인류에게 로마는 수없이 되새김질해야 할 숙제일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모든 인종이 같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시대가 있다는 사실을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기원전 로마의 집정관 아이밀리아누스는 카르타고가 함락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이런 말을 뱉었다고 한다. “언젠가 트로이도, 프리아모스 왕과 그를 따르는 모든 전사들과 함께 멸망하리라.” 그는 어떤 국가와 문명도 영속적으로 존재할 수 없기에, 로마도 언젠가 오늘의 카르타고처럼 멸망하리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로마라는 드라마를 읽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언젠가 그 끝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살아가야 하는 삶의 아이러니, 언젠가 우리들의 유산이 을씨년스런 과거가 되리라는 걸 알면서도 웃어야 하는 오늘. 인간이 지니고 있는 본질적인 아픔을 동병상련하는 로마의 역사는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우리의 과거는 퇴색하나 소멸하진 않는다. 왜냐하면 위대했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폐허가 된 포룸 로마눔을 보기 위해 오늘도 로마로 향한다. 그리고 때론 빛바랜 프레스코화가 원본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문득 깨닫는다.


작성자 최은지



이 글은 로마인 이야기 901쇄 돌파기념 독후감 대회 대상 수상작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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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공지사항2011.09.29 16:22


한길사가 주최하는 『로마인 이야기』에 대한 독후감 공모는 우리 사회에서 하나의 거대한 문명사와 그 체계가 갖는 의미를 짚어보는 중요한 작업이다. 그간 여러 차례 독후감 행사를 해오면서 『로마인 이야기』가 우리 사회에 어떻게 투영되어왔고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문명의 미래에 어떤 발상과 관점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새로운 개념들이 제시되기도 했다. 이번 독후감 행사 역시 그런 점에서 문명의 역사와 대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사회는 물론이고 오늘날 지구촌이 고민하고 풀어가야 할 숙제와 관련한 성찰이 압축적으로 정리되었다는 점에서 반갑고 주목되는 일이었다. 가작 10명 입선 10명 1차 심사를 거쳐 결선에 올라온 글 가운데 대상 1명, 최우수상 1명, 우수상 2명이 당선되었다.

1. 대상
   최은지, 「로마, 당신의 드라마」

최은지는 로마의 역사를 타자화시키지 않고 우리 자신의 이야기, 우리 역사의 한 틀로 읽어나가는 관점을 제시한다. 이는 로마 역사가 서구의 역사에서 원줄기처럼 작동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이, 인류 역사의 한 몸이라는 관점에서 인간의 드라마, 우리의 드라마라는 점을 주시한 것이라 하겠다. 오늘날 세계적 맥락이 보다 밀접해져가는 현실에서 이러한 관점이 주는 시사점은 적지 않을 것이다. 문체도 유려하고 『로마인 이야기』 전반에 걸친 이해와 특히 『로마인 이야기』에서 언제나 논의되는 개방성을 비롯한 여러 특징을 잘 요약하고 자신의 성찰을 문학적 글쓰기의 힘으로 담아냈다는 점이 높게 평가되었다.

2. 최우수상
    김상훈,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을 통해 바라본 양극화 문제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구조 변화의 필요성」

김상훈은 로마의 역사에서 국가와 경제의 주도권이 소수에게 집중되려는 시기, 그것을 온몸으로 저항하고 혁명적 개혁에 나섰던 그라쿠스 형제에 대해 주목하고 이를 오늘의 현실과 관련시켜 잘 정리해놓았다.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은 로마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들의 개혁은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 어쩌면 반복적으로 제기되었던 주제이기는 하나 여전히 그 비중을 관과할 수 없으며,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날카롭게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최우수 평점을 받게 되었다.

3. 우수상
   정지혜, 「로마는 하루아침에 멸망하지 않았다」
   최문석, 「인간을 이해했던 소통의 드라마」

정지혜는 “로마는 하루아침에 건설되지 않았다”라는 상식을 뒤집어 그 멸망의 과정에 대한 진지한 접근으로 심사자들의 주목을 끌었다. 그에 더해 로마사를 읽는 여러 주요한 관점과 자신의 생각을 놓고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글의 정밀도를 높여주었다. 로마의 역사를 읽는 방식에 이러한 지적 성취를 결합시키려고 노력한 점은 매우 돋보였다.

최문석은 『로마인 이야기』를 인간의 소통이라는 관점으로 다가섬으로써 상당히 독창적인 발상을 했다. 소통의 문제는 오늘날 어디서나 요구되는 과제이면서 이것이 하나의 국가체계, 문명의 시스템 속에서는 어떻게 해결되어야 할 것인가도 중요한데 이 문제와 로마의 역사를 관련시켰다는 점은 지속적인 주제로 다루어질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외에도 올라온 좋은 글들을 시상 대상에서 누락시키는 것은 심사자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번에 당선되지 못한 글들도 당선작 못지않게 소중한 작품이었다는 점을 여기서 강조하는 바이다. 좀더 연마하면 다음 기회에도 얼마든지 시상의 기쁨이 주어질 것이라고 여긴다.

『로마인 이야기』 독후감을 통해 우리는, 우리 사회가 앞으로 고민하고 인류가 또한 함께 진보시켜나가야 할 과제를 보게 된다. 그러한 점에서 로마는 인류 문명의 거대한 저수지이자 발원지이면서 여전히 살아 있는 오늘의 역사라는 점을 새삼 절감하게 되는 바이다.

시상자 모두에게 축하인사를 전하며, 이런 계기를 통해 인류 역사와 문명의 족적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보다 깊어지고 활력 있는 소통과 논의가 보다 풍부해지기를 기대해본다.

ㆍ심사위원:
김석희(번역가), 김민웅(성공회대 교수), 박인규(프레시안 대표)

ㆍ수상자(가나다 순)
    대상(1명): 최은지
    최우수상(1명): 김상훈
    우수상(2명): 정지혜 최문석
    가작(10명): 김남혁 김영준 김정규 박종우 서화자 이창준 장인수 정순영 최영수 표광민
    입선(10명): 구명재 김봉환 김종완 김현순 배병욱 오현주 유상근 유일한 임승택 황인석

ㆍ시상식
    일시: 2011년 10월 3일(월) 오후 3시
    장소: 한길사 사옥 1층 책방한길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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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한길그레이트북스2011.09.29 13:38



인류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모스가 이룩한 공헌은 ‘사실들을 사회적 단위들의 총체적인 관계 속에 놓고 이해한 것’이다. 이로부터 그는 ‘총체적인 사회적 사실’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는데, 이 개념은 추상적이며 개별적인 것으로 여겨졌던 제도·법률·의례·결혼·신화 등이 전체 사회체계를 형성한다고 볼 수 있는 이론적인 근거가 되었다.

이 개념이 적용된 것이 그의 대표적 저술인 『증여론』이다. 이는 선물 교환에 관한 가장 체계적인 비교 연구서이며, 교환의 유형과 사회적 구조 사이의 관계를 최초로 정립한 연구서이다.


원시적인 교환형태인 아메리카의 포틀래치와 멜라네시아의 쿨라, 뉴질랜드의 하우 등에 대한 민족지적 분석을 통해, 그는 증여(선물)가 사회생활의 중요한 기초라고 말한다. 선물은 물건뿐 아니라 사람의 순환에도 관계하고, 주고 받고 되돌려주어야 할 의무는 호혜성의 원리를 통해 사회를 유지시킨다. 또한 그것은 사회와 그 구성원 사이에 형성되는 감정적인 교류를 반영하기도 한다.

주기와 받기 그리고 답례로 이루어진 선물의 삼각구조는 총체적인 사회적 사실이 되어 생활의 모든 부분에 관여하며 사회구조를 작동시킨다. 고대사회의 교환과 선물의 본질에 관한 모스의 이론은 레비-스트로스와 부르디외, 푸코에게까지 그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현대사회의 여러 현상에도 이러한 증여의 원칙이 적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증여의 주제, 즉 증여 속에 들어 있는 자유와 의무, 후한 인심 그리고 주는 것이 이롭다고 하는 주제가 마치 오랫동안 잊어버린 주요동기의 부활처럼 우리 사회에서 다시 나타나고 있다. 

 

현대사회에도 남아 있는 '증여'의 의미

우리의 도덕과 생활 자체의 상당한 부분은 언제나 의무와 자발성이 혼합된 증여의 분위기 속에 머물러 있다. 모든 것이 아직도 구입과 판매라는 점으로만 분류되지 않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시장가치(市場價値, valeur v럑ale)밖에 없는 물건들이 많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들은 아직도 시장가치 외에 감정가치(valeur de sentiment)를 가지고 있다. 우리의 도덕은 단지 상업적인 것만이 아니다 .우리 중에는 아직도 과거의 풍습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과 계급이 있으며, 또한 우리는 거의 모두가 적어도 1년 중의 어느 시기 또는 어느 경우에는 그 풍습을 따른다.

선물을 받고 답례하지 않으면 그 받은 사람의 인격이나 지위는 좀더 열등한 상태로 떨어지며, 답례할 생각 없이 받았을 때에는 특히 그러하다. 에머슨(Emerson, 1803~82. 미국의 사상가)의 주의깊은 논문 「증여와 선물에 관하여」(On Gifts and Presents)를 상기해 보아도, 우리는 게르만적인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자선은 그것을 받는 사람에게는 더욱 마음의 상처를 입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도덕적인 노력은 부유한 ‘보시가’(布施家, aum셬ier)의 무의식적이며 모욕적인 후원을 없애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예의’와 마찬가지로, 초대에도 답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오래된 전통적인 기반의 흔적, 즉 옛날의 귀족적인 포틀래치의 흔적을 직접 볼 수 있으며, 또한 인간활동의 근본적인 동기들, 즉 동성(同性)의 개인간 경쟁, 남자들의 ‘타고난 지배욕’---이것들은 한편으로는 사회적인 바탕을 갖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동물적·심리적인 바탕을 갖고 있는 것 같다---이 드러나는 것도 볼 수 있다.

사회생활이라는 특수한 생활에서는 우리 사이에서 아직도 일컬어지고 있는 바와 같이 우리는 ‘빚이 남아 있는 상태로’ 있을 수 없다. 받은 것보다 더 많이 답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접’은 언제나 돈이 더 많이 들고 큰 것이다. 따라서 나의 어린 시절, 로렌(Lorraine) 지방의 농촌 가족은 평소에는 매우 검소한 생활을 했지만, 수호성인 축제일, 결혼식, 성찬식이나 장례식 때에는 손님들을 위해 돈을 마구 쓰곤 하였다. 이러한 때에는 ‘대(大)귀족’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국민의 일부는 언제나 이처럼 행동하고 있으며, 또한 손님, 축제, ‘연말연시의 선물’에는 아낌없이 돈을 쓰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초대는 제공되지 않으면 안 되며 또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관습은 현대의 자유주의 사회에서도 여전히 존속하고 있다. 지금부터 50년 전만 하더라도, 또는 더욱 최근까지만 해도 독일과 프랑스의 몇몇 지방에서는 마을사람 모두가 결혼식 축하연에 참가하였다. 만약 어떤 사람이 빠지면, 그것은 나쁜 징조, 질투와 ‘저주’의 조짐 또는 표시였다. 프랑스의 많은 지역에서는 아직도 모든 사람이 의식에 참가한다. 프로방스(Provence) 지방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사람들은 각자 달걀과 그밖의 상징적인 선물을 가져다 준다.

팔린 물건이라도 그것은 여전히 영혼을 갖고 있으며, 그 예전의 소유주는 그것을 지켜보고 또한 물건 자체도 그 예전의 소유주를 따라다닌다. 보주 산맥(Vosges)의 한 계곡에 있는 코르니몽(Cornimont)에서는 얼마 전만 해도 다음과 같은 관습이 행해졌으며, 몇몇 가정에서는 아직도 존속하고 있는 듯하다. 즉 새로 산 가축들이 자신들의 옛 주인을 잊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축사 문 위에 댄 가로대에 십자가를 만들었고, 산 사람은 그 판 사람의 고삐를 갖고 있었으며, 또한 그 가축들에게는 손으로 소금을 뿌렸다. 라옹 오 부아(Raon-aux-Boix)에서는 버터 바른 빵을 쇠갈고리 주위에서 세 번 돌린 다음 오른손으로 가축에게 주었다. 물론 이것은 축사가 가옥의 일부분을 이루고 있고 또 큰 가축이 가족의 일부분이 되고 있는 경우뿐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그밖의 많은 관습은 팔린 물건을 판 사람과 떼어놓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팔린 물건은 두들기거나, 또는 팔린 양(羊)은 채찍으로 쳐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법의 일부, 즉 산업법과 상법은 오늘날 이러한 도덕과 상충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민중과 생산자의 경제적인 편견은 그들이 생산한 물건을 지켜보려는 강한 의지와 이익을 분배받지 못한 채 자신들의 노동이 전매(轉買)된다는 첨예한 감정에서 유래한다.


오늘날에는 옛 원칙들이 우리 법전의 엄격함·추상성·비정(非情)함에 반발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준비중인 우리의 법 일부와 가장 최근의 몇몇 관습은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



『증여론』 제4장 「결론」

 

'선물주기'와 '답례'로 풀어낸 인간사회의 실체

받거나 교환된 선물이 사람에게 의무를 지운다는 것은 받은 물건이 생명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물건 자체가 영(靈, hau)을 갖고 있고 또 영의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에게 어떤 물건을 주는 것은 자신의 일부를 주는 것이 된다. 이러한 관념체계에서 분명한 것은 다른 사람에게 돌려주어야 할 것이 있을 때에는 실제로 그의 본성 및 실체의 일부인 것을 돌려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에게서 무엇인가를 받는다는 것은 그의 정신적인 본질, 즉 영혼의 일부를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모스가 말하고자 했던 바는, 인간은 자신이 비록 물건을 소유하고 있기는 하더라도 그것의 완전한 지배자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인간은 사물이 가진 영혼의 지배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여기에서 사물을 넓은 의미로 자연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면, 모스는 ‘증여’의 분석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영원한 대화 그리고 조화를 말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물건을 혼자 간직하고만 있는 것은 위험하여 때로는 죽음을 초래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은 위법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의미로나 육체적·정신적인 의미에서 볼 때, 그 사람한테서 나온 영적 실체, 음식물, 동산이나 부동산 같은 재산, 여자 또는 자손, 의식 또는 성찬식 등은 생명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을 받는 사람에게 주술적·종교적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이다. 즉 팔린 물건이라도 그것은 여전히 영혼을 갖고 있으며, 그 예전의 소유주는 그것을 지켜보고 또한 물건 자체도 그 예전의 소유주를 따라다닌다. 프랑스의 어느 마을에서는 새로 산 가축들이 자신들의 옛 주인을 찾아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축사 문 뒤에 십자가를 걸거나, 판 사람의 고삐를 산 사람이 가지거나, 가축에게 소금을 뿌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한 팔린 물건을 판 사람과 떼어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팔린 물건을 두들기거나 팔린 양을 채찍으로 치는 예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주어야 할 의무와 함께 또 중요한 것이 받아야 할 의무이다. 받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초대하거나 주는 것을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쟁을 선언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후하게 주고받는 목적은 무엇보다도 도덕적인 것이며, 그 교환 대상은 문제의 두 사람 사이에 우호적인 감정을 생기게 하는 것이다. 만일 그 거래가 이러한 효과를 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것이다.

선물교환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물질적·정신적 생활이 멜라네시아와 폴리네시아에서는 비타산적이며 동시에 의무적인 형태로 기능하고 있다. 게다가 이 의무는 신화적·상상적 또는 상징적·집단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러한 의무의 수행은 기본적으로 ‘명예’를 지키기 위함이다. 즉 명예 관념은 주술 관념과 마찬가지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원시적인 부족들에게서조차도 명예문제는 우리 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민감하며, 그것은 선물뿐만 아니라 급부, 음식물의 제공, 의례 등에서 충족된다.

모스는 현대사회의 여러 현상에도 이러한 증여의 원칙이 적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원고, 발명품 또는 예술 창작품의 판매라는 행위를 넘어서 의장권·저작권·특허권이 인정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실제로 사회는 이 인류의 은인인 저술가나 발명가의 상속인들에게 권리 소유자가 만든 물건들에 대한 일정한 권리보다 더 많은 것을 인정하는 데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다.

모스는 이것을 프랑스의 사회보장제도에도 적용시켜서 일종의 ‘집단 도덕’으로 간주한다. 즉 국가와 그 하위집단들이 보호하고자 하는 것은 개인이며, 사회는 그 사회세포를 다시 찾고자 하는 것이다. 사회는 개인이 갖고 있는 권리의식과, 그밖의 더욱 순수한 감정이 혼합되어 있는 묘한 정신상태 속에서 개인을 찾아 보살피는 것이다. 증여의 주제, 즉 증여 속에 들어 있는 자유와 의무, 후한 인심 그리고 주는 것이 이롭다고 하는 주제가 마치 오랫동안 잊어버린 주요동기의 부활처럼 우리 사회에서 다시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서 모스는 ‘고귀한 지출’(depense noble)로 돌아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앵글로색슨 제국과 그밖의 많은 현대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부자들은 자발적으로 또 의무적으로도 자신들을 자기 동포들의 이른바 회계원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행해지면 우리는 변함없는 법의 기초, 도덕적인 사회생활의 원리자체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 보는 것이다. 시민이 너무 선량하고 개인적이기를 바라서도 안 되며, 또 너무 비정하고 현실주의적이기를 바라서도 안 된다. 시민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사회현실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의식을 가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이익과 유용성의 추구라는 측면에서 살펴볼 때, 소규모 원시사회인들의 소비는 현대의 우리 정신 속에서 일어나는 것과 똑같이 작용하지는 않는다. 트로브리안드 제도 사람들이나 아메리카 인디언, 안다만 섬 사람들도 이익을 추구하지만 그것은 상인·은행가·자본가의 냉정한 동기와는 동일하지 않다. 즉 그 방식이 다른 것이다. 그들은 지출하기 위해서, 의무를 부가하기 위해서, 충복을 얻기 위해서 소비한다. 받은 것 이상으로 갚지만 그것은 처음의 증여자나 교환자를 압도하기 위해서이다. 단지 ‘지연된 소비’로 인해 그가 입은 손실을 보충해주기 위해서만은 아닌 것이다.

모스는 증여와 교환 그리고 호혜성의 설명을 통해서 한편으로는 인간의 기본적인 사회관계의 한 측면을 밝히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 서양인들, 아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속에 지배적인 논리로 작용하고 있는 경제논리, 즉 이윤의 추구, 효용의 극대화, 경쟁, 이기주의를 지적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당연한 사회 논리로 치부하고 있지만, 그가 분명히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서양 사회가 인간을 경제동물로 만든 것은 아주 최근에 일어난 일이며, 인간이 계산기라는 복잡한 기계가 된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인간은 오랫동안 매우 다른 존재였기 때문이다.


                                                                                                                              류정아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 ‧ 문화인류학

 

마르셀 모스(Marcel Mauss)는 프랑스 로렌 지방 에피날의 정통 유대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저명한 사회학자 에밀 뒤르켕의 조카인 그는 어릴 때부터 뒤르켕의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1887년 모스는 뒤르켕이 교육학과 사회학을 가르치고 있던 보르도 대학에 입학해, 아믈랭과 에스피나스의 가르침을 받으며 철학을 공부했다.

1893년 철학으로 학위를 받은 그는 파리 대학의 고등연구원에서 종교사를 공부했고, 나중에 이곳에서 원시종교학을 가르쳤다. 1925년 모스가 파리 대학에 설립한 민족학연구소는 후대의 프랑스 인류학자들을 교육하는 장이 되었다. 또한 그는 학문적인 업적 외에 드레퓌스 사건 당시 법정투쟁을 돕고 사회당과 교류하는 등 정치적인 활동도 매우 활발히 펼쳤다. 1904년에는 사회당 기관지인 『위마니테』의 창간에 참여하였고, 『민중』지에 정치상황에 관한 논설들을 기고하기도 했다.

모스는 하나의 사실을 그것이 속해 있는 사회적 단위의 총체적인 관계 속에 놓고 이해하고자 하며 그의 대표적인 저술인 『증여론』에서 ‘총체적인 사회적 사실’(fait social total)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초기 논문으로는 「희생제의 본질과 기능에 관한 시론」이 있으며, 주술·자아개념·장례식 같은 주제에 관해서도 많은 글을 썼는데, 1904~38년에 발표한 글들을 모은 『사회학과 인류학』(1950)이 그의 사후에 출간되었다.

레비-스트로스는 모스가 ‘민족지적 사유의 역사상 처음으로 경험적 관찰을 뛰어넘어 심층적 실체에 도달하려고 노력했으며, 처음으로 사회적인 것이 일화, 호기심, 교훈적 설명이나 학문적 비교를 위한 자료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체계가 되었다’고 높이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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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한길다반사2011.09.21 17:51


올해 제게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가족이 생긴 거지요. 새 식구의 이름은 웅이. 웅이는 길고양이 출신으로 트럭 사이에 목이 끼어 밤새 낑낑대다 발견되었습니다. 구조되었을 당시 얼굴이 하얗게 변해 있었고, 턱밑 피지선이 막혀 턱이 부어올라 있었습니다. 지금은 한약을 먹고 침을 맞아 다 나았습니다. 하지만 왼쪽 두 번째 손톱이 숨겨지지 않고, 오른쪽 귀 뒷부분에 털이 나지 않습니다. 또 어디서 다쳤던 건지 아니면 잘린 건지 꼬리도 다른 고양이보다 짧고 구불구불 휘어져 있습니다. 병원에 물어보니 사고 때 다쳤던 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웅이는 운이 좋은 편입니다. 고된 길거리 생활이었지만 보호소를 거치지 않고 금세 가족을 찾았으니까요. 길고양이의 삶은 험난합니다. 집고양이 평균 수명이 15년인데 비해 길고양이의 수명이 평균 3년인 걸 보아도 그들의 삶이 어떠한지 짐작이 갑니다. 추위와 굶주림, 그리고 고양이에 대한 편견 때문이겠지요. 추위와 굶주림은 모든 길동물들에게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고양이에 대한 편견은 그들의 삶을 더욱 팍팍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훔친 적이 없는데 ‘도둑’이라는 말을 듣고, 목숨이 9개라든지, 사람 말을 다 알아듣는 요물이라든지, 쓰레기를 헤집어놓는 거리의 무법자라든지, 갖은 말을 다 듣습니다. 이처럼 고양이에 대한 나쁜 인식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고양이처럼 호불호가 분명하게 갈리는 동물도 흔치 않을 것 같습니다.


 

고된 길거리 생활이었지만 지금 웅이는 행복합니다.



고양이를 싫어한 건 아니지만, 길고양이 삶에 관심도 없다가 어느 날 새끼고양이를 거느린 어미 고양이와 마주친 이후 고양이에 운명처럼 이끌리게 된 사람이 있습니다.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의 저자 이용한은 운명 같던 그날부터 이사하기 전까지 약 2년 동안 ‘캣맘’(길고양이들의 먹이를 챙겨주는 이들을 뜻하는 단어)이 되어 동네 길고양이의 사진을 찍으러 다니게 됩니다. 그들의 비루한 삶에 동정하고, 그들을 향한 편견에 함께 마음고생하지요. 고양이 밥을 챙겨주는 그에게 “당신 변태야?”라고 외치는 아저씨부터 “고양이는 무조건 죽여야 해. 쓰레기를 헤집어놓잖아”라고 말하는 옆집 할아버지까지, 그를 향한 주위의 시선은 곱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는 묵묵히, 고양이처럼 느린 걸음으로, 길고양이에 대한 편견에 저항합니다.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리며 길고양이의 삶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시작한 것입니다.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고양이를 좋아해줘!”라고 강요할 수 없듯이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행동도 인정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봅니다. 고양이는 마음이 여린 동물입니다. 마음을 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겁이 많아 열 사람이 잘해줘도 한 명만 나쁜 마음을 먹고 해코지한다면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한번 마음을 열면 자신이 아끼는 먹이마저도 기꺼이 내놓을 줄 아는 기특한 녀석입니다. 저자 이용한 씨도 길고양이에게 선물로 쥐를 받았다고 하지요 ^^;;

그는 길에 고양이가 없어져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고양이가 있던 자리에 우리가 마을을 짓고 사는 것인데 왜 그들을 몰아내야 하냐고, 그들의 존재를 인정해주고, 그들과 공존할 순 없는 것이냐고. '길고양이에게 해코지하는 마음이 생명경시 풍조임을 자각하고, 그들의 삶을 인정해주는 날은 언제쯤 올까' 깊이깊이 생각해보았습니다.


편집부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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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공지사항2011.09.09 15:08

 

파주북소리 행사기간 동안 한길사에서 인문학 강연 및 전시를 개최합니다.
유익하고 다양한 행사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강연회에 참석하신 분께 한길사 책을 선물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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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한나아렌트/2명/010-1234-5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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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공지사항2011.09.09 15:07

 

행사1. <상상력 키우기> - 물이 퐁퐁 솟아나는 물나무를 심기

『꿈을 심는 아이』로 물이 퐁퐁 솟아나는 ‘물나무’를 그려 무한한 상상력을 보여 준 오치근 선생님이 어린이 여러분을 신기한 상상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장소: 한길사 책방한길
일시: 1회_10월 1일(토) 오후 1~2시 30분
        2회_10월 2일(일) 오후 1~2시 30분
행사참여대상: 초등학생 어린이
모집인원: 각 15명
신청방법: 비밀댓글로 신청해주세요. 참여 희망 일자/참여인원/연락처를 꼭 남겨주세요.
              예) 저희 아이들이 너무 좋아할 것 같아요. 1일/2명/010-1234-5678


행사 2. <미술 체험> ‘빨강 끈’과 함께 하는 인형 만들기

『빨강 끈』에서 손수 제작한 독특한 느낌의 인형들과 소품, 세트로 따뜻하고 정감 있는 이야기를 담아 낸 신애희 선생님과 함께 인형도 만들어 보고, ‘빨강 끈’으로 오브제 미술을 체험해 볼 수 있습니다.

장소: 한길사 책방한길
일시: 1회_10월 8일(토) 오후 12시~1시 30분
        2회_10월 9일(일) 오후 12시~1시 30분
행사참여 대상: 초등학생 어린이
모집인원: 각 15명
신청방법: 비밀댓글로 신청해주세요. 참여 희망 일자/참여인원/연락처를 꼭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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