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다반사2014.10.16 17:51

소년한길과 함께하는 ‘파주북소리 2014’ 풍경 ①

독자와 저자가 함께한 행복한 열흘

 

 

 

지난 3일에 시작된 ‘파주북소리 2014’가 12일을 끝으로 성황리에 막을 내렸습니다.

올해로 4회째인 ‘파주북소리’에는 50만 명이 참석해 책의 문화와 지식의 즐거움을 나누었습니다.

소년한길은 파주북소리를 맞아 오치근 선생님, 박은미 선생님을 비롯해

소년한길의 저자 네 분을 초청했습니다. 올해에는 특별한 손님이 파주를 찾아주셨지요.

이 자리를 빌려 독자와 저자가 함께한 지난 열흘간의 흥겨웠던 축제 풍경을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축제 하루 전인 2일에는 프랑스에서 손님이 오셨습니다.

 지난봄 소년한길에서 다섯 권을 동시 출간한 「우당탕탕! 꼬꼬닭 대소동」시리즈의 작가,

크리스티앙 졸리부아크리스티앙 아인리슈 선생님입니다.

 

 

ⓒ Tierry Mercier

 

 

프랑스에서 오신 두 작가분은 북소리축제 국제 프로그램에 참석하기 위해

2일부터 12일까지 파주 지지향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르셨습니다.

한국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마중 나간 번역가 류재화 선생님과

소년한길 H대리님께 “바다는 어느 쪽이죠?”라는 질문부터 던지셨다지요.

과연 ‘바다를 보러 간 카르멜라’의 두 아빠답습니다.

 

 

 

두 작가분들은 10월 3일 책방한길에서 처음으로 한국 독자들과 만났습니다.

그림작가 아인리슈는 독자들을 위해 미리 준비해 온 한국어 인사를 선보였습니다.

‘우리 귀요미 꼬꼬닭들을 많이 사랑해 주세요’라는 귀여운 인사에

어린이들 모두 웃음을 터뜨리며 첫 만남의 긴장을 풀었습니다.

 

 

 

소년한길의 김서영 이사님께서 작가 선생님들을 소개해주신 후,

연극배우 출신 글작가 졸리부아 선생님의 『바다를 보러 간 카르멜라』 동화 구연을 듣고

그림작가 아인리슈 선생님과 함께 꼬꼬닭 캐릭터들을 그려보았지요.

어린이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는 프랑스어 구연이었지만

실감 나는 표정과 능청스러운 목소리 덕분에 언어의 장벽을 느낄 틈이 없었고,

신촌 초등학교 민지원 어린이가 한국어로 읽어주어 이해를 돕기도 했습니다.

 

 

 

 

뒤이어 그림작가 아인리슈 선생님은 수학 공식처럼

간단한 도형과 기호를 사용해 쉽게 꼬꼬닭을 그리는 비법을 전수했습니다.

과연 어떤 방법인지 살짝 공개합니다. 여러분도 함께 그려 보세요.

 

 

 

아인리슈 선생님의 비법 덕에 어려움 없이 자신만의 꼬꼬닭을 완성한 어린이들은

두 작가와 함께 기념 촬영으로 마무리하며 이날의 특별한 만남을 추억으로 남겼습니다.

 

 

구호는 “하나 둘 셋, 꼬꼬닭!”입니다.

 

 

 

 

10월 4일은 박은미 선생님, 오치근 선생님과 만나는 날이었습니다.

 

 

박은미 선생님께서는 지난 9월 신간 『마녀 루의 불면증 연구소』를 펴내셨는데요.

이날 선생님 모습이 풍성한 곱슬머리가 돋보이는 누군가와 유난히 닮으셨더라고요.

 

 

 

이른 아침부터 멀리 양평에서 파주까지 찾아주신 선생님의 양손에는

어린이들을 위해 마법 정원에서 가져오신 신기한 재료들이 가득했습니다.

 

 

 

 

박은미 선생님과는 이 재료들로 아주 특별한 식탁을 차려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린이들은 저마다 마녀와 마법사가 되어 각자 접시 위에

갖가지 꽃과 씨앗, 마른풀, 젤리, 초콜릿, 재미난 모양의 비스킷 등으로

마녀 만찬에 차려 놓을 예쁘고 푸짐한 요리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어린이들이 만들고 있는 요리들은 보름달 뜨는 밤 특별한 의식을 위한 요리입니다.

잠을 잘 수 없는 동물들을 위해 마법을 걸어 두었지요.

멋지게 식탁을 차린 뒤에는 자기가 만든 메뉴에 딱 맞는 이름을 붙이고

내가 만든 요리를 그려 보고 어떤 마법이 깃들어 있는지 글로 써보았습니다.

보기만 해도 마법이 느껴지지 않으세요?

 

 

 

 

그림을 완성한 친구들은 저마다 스스로 고안한 요리를 들고 솜씨를 뽐냈습니다.

 

 

자연물의 색과 모양을 조화시키는 어린이들의 솜씨에

선생님께서도 무척이나 감탄하셨답니다.

 

 

 

 

 

오후에는 멀리 하동에서 와주신 오치근 선생님과의 만남이 이어졌습니다.

오치근 선생님께서는 아름다운 우리 차 문화를 알리기 위한 그림여행 책,

『녹색 비 내리는 여행』의 발간을 준비 중이시랍니다.

이번 여행에는 은별이와 둘째 은솔이, 사모님이신 박나리 선생님까지

온 가족이 함께하셔서 저마다의 개성을 뽐낼 예정이랍니다.

 

 

 

차의 고장에 살고 계신 선생님께서는 어린이 친구들을 위해 다양한 차 도구들과

우리 전통 차, 쉽게 만날 수 없는 차 묘목과 차 꽃까지 준비해 오셨답니다.

 

 

어린이들은 선생님께 우리나라의 차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직접 내려 주신 발효차와 녹차를 마셔 보았습니다. 찻잔에는 예쁜 차 꽃도 띄웠지요.

 

 

 

향기롭고 은은한 차 맛에 반한 어린이 친구들은 금세 잔을 비우고 한 잔 더 청하기 바빴답니다.

향긋한 차를 음미하면서 선생님과 어린이 친구들은

차나무와 차 씨, 차 꽃을 관찰해 그림으로 표현해 보았습니다.

 

 

차나무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처음에는 조금 막막해 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오치근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귀여운 차나무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색칠까지 예쁘게 마친 친구들은 그림 한 쪽에

두 가지 차를 마셔 본 느낌과 선생님과 만난 소감,

처음 차 묘목을 보고 떠올린 생각, 그날의 기분도 적었지요.

 

 

 

그림과 차, 담소가 어우러진 즐거운 수업이 지나고 아쉽게도 헤어질 시간입니다.

 

 

 

 

기념 촬영 후, 오치근 선생님께서는 차나무 화분을 함께한 어린이들에게 선물하셨습니다.

어린이들은 깜짝 선물과 오늘의 색다른 추억을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렇게 북소리 축제 첫 주가 쏜살같이 흘러갔습니다.

다음 편에는 크리스티앙 졸리부아, 크리스티앙 아인리슈와 함께한 시간들이 이어집니다.

유쾌한 꼬꼬닭 아빠들 특집, 기대해 주세요.

 

 

 

 

 

 

 

 

 

                                                                                                                               ⓒ 소년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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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 추천 도서!

손 씻기 귀찮아요!』노랑발 쇠백로 가족



영유아·어린이 우수도서 선정 기관인 <고래가 숨 쉬는 도서관>에서 2013년 여름방학 추천도서(▶바로가기)를 발표했습니다. 소년한길의 『노랑발 쇠백로 가족』(황헌만 글·사진 | 2012)과 토마토하우스의 『손 씻기 귀찮아요!』 (완야 올텐 글·마누엘라 올텐 그림·조국현 옮김 | 2012)가 초등 1, 2학년 추천도서에 이름을 올렸네요. 짝짝짝.^^ 


그럼 여름방학 추천도서에 선정된『노랑발 쇠백로 가족』과 『손 씻기 귀찮아요!』를 살펴보러 함께 가실까요?

 

 


 

 

 

 

 


 

엄마는 왜 자꾸 손을 씻으라고 하는 거죠? 『손 씻기 귀찮아요!』

 

우리 엄마는 매일매일 손을 씻으라고 잔소리해요.

물놀이를 한 다음이나 

토끼를 만지고 나서도 손을 씻어야 해요.

밥 먹기 전에도 꼬박꼬박 손을 씻어야 하고요.

왜 손을 씻어야 하는 거죠?

내 손은 깨끗한데 말이에요!

 



 

손 씻기가 너무너무 귀찮은 아이들의 속마음! 『손 씻기 귀찮아요!』는 어린이들의 이러한 심리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린아이의 시각에서 풀어가는 이야기는 아이들이 품는 불만과 두려움을 생생하게 드러내 공감과 재미를 전합니다. 

 

 

*완야 올텐 & 마누엘라 올텐

  

글쓴이 완야 올텐은디자이너이자 음악가, 작곡가로 어린이들을 위한 수많은 음악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그린이 마누엘라 올텐은『진짜 사나이』로 올덴부르크청소년도서상을 수상했고, 독일청소년문학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지은 책으로『진짜 사나이』『우리는 친구』 등이 있고,『99센티미터 한스』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자라면서 많은 것을 익히고 배워 나갑니다. 밥 먹을 때, 그리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왜 손을 씻어야 하는 걸까? 그냥 손이 더러워졌을 때 씻으면 되지 않을까? 사실 놀이터에서 흙장난으로 손이 더러워져도 치마에 쓱쓱 닦으면 다시 깨끗해지고 겉보기에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특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물놀이 후에도 손을 씻으라는 엄마의 잔소리입니다. 엄마는 손을 잘 씻지 않으면 병에 걸려 아프고 병원에 가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누워 있느니 지금 씻는 편이 나을까?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손 씻기 싫어하는 마음을 실감나게 담아낸 그림책입니다. 


 



 

어린이들이 상상할 법한 세균의 모습을 재치 있으면서 생동감 넘치게 그려냄으로써 친근하게 접근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어린이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의 존재를 보다 직접적으로 느끼고, 손 씻는 습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손 씻기 귀찮아 하던 우리 어린이들~ 이제 손은 깨끗이 씻겠죠? ^^




 

사진으로 만든 동화 『노랑발 쇠백로 가족』


생생한 사진과 따뜻한 이야기로 우리 생태의 참모습을 알려온 황헌만 작가의 「어린이를 위한 사진 동화 시리즈」 10번째 이야기, 『노랑발 쇠백로 가족』. 사진 동화 시리즈는 일상 속에서 자연을 접하기 어려운 요즘 어린이들에게 자연의 소중함과 아름다움,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작은 생명들의 속삭임을 들려주기 위해서 기획되었습니다. 


야생 동식물들의 이야기를 사진으로 포착하기 위해서 황헌만 작가는 사계절 내내 카메라를 어깨에 짊어지고 전국 방방곡곡을 다녔습니다. 그리고 사진들이 담고 있는 내용을 동화 형식으로 풀어내 아이들이 보다 자연스럽게 동식물들의 생태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림이 하던 역할을 사진이 대신하기에 이야기가 더욱 사실적이고 역동적으로 다가오겠죠?  


 

 

 

*쇠백로

황새목 왜가릿과에 속하는 동물이에요. 다른 백로에 비해 몸집이 비교적 작은 편이지요. 흰 몸에 부리와 다리는 검은색인데, 발가락이 노랗고 뒷머리에 두 가닥의 길고 흰 장식깃이 자라는 것이 특징이에요. 논이나 못, 강 하구에서 무리 생활을 하며 물고기, 개구리, 뱀, 새우, 가재 등을 잡아먹어요. 주로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에 산답니다.

 


 『노랑발 쇠백로 가족』에서는 쇠백로들이 가정을 꾸리고, 새끼를 낳고, 봄, 여름, 가을 세 철을 나며 성장해 가는 모습이 생생한 사진과 따뜻한 이야기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오손도손 사랑을 키워 나가던 쇠백로 두 마리가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는 장면, 갓 태어난 쇠백로 새끼들의 모습, 이들에게 홀로서기를 가르치는 쇠백로 부부의 모습까지, 참으로 희귀한 장면들을 담아낸 특별한 사진들이 유독 돋보입니다.


 




모내기를 하는 농부 아저씨 옆에서 노랑발 쇠백로 두 마리가 태연하게 고기를 잡으며 즐겁게 노닙니다. 짝짓기를 할 때가 되자 둘은 숲 속에 둥지를 짓습니다. 사랑에 빠진 노랑발 쇠백로의 얼굴과 발이 신기하게도 진한 분홍빛으로 바뀝니다. 부부가 된 노랑발 쇠백로 사이에서 새끼가 태어나고 엄마 아빠가 잡아오는 먹이를 먹으며 쑥쑥 자라납니다. 


어느덧 성장한 새끼 쇠백로들이 둥지를 떠나 각자의 길을 갑니다. 막내 쇠백로는 처음엔 방황하지만 스스로 고기 잡는 법과 남을 배려하고 어울려 사는 법을 익히며 홀로서기를 시작합니다. 언젠간 막내 쇠백로도 자기만의 가족이 생기겠지요?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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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다반사2012.10.23 19:15

 

 

 

매년 가을이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도서전이 열립니다.

올해로 64회를 맞은 2012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10월 10일부터 14일까지 5일간, 110여 개국 30여 만 명이 찾았다고 합니다.

30여 만 명 중 2인, 한길사에서는 소년한길 김서영 실장과 디자이너 강홍주 과장(접니다요^^)이 참관했습니다.

옷깃 사이로 들어오는 뾰족한 바람, 묵직한 가방, 7시간의 시차로 비록 어깨는 움츠러들고 몸은 힘들지만,

세계인의 책축제에 동참한다는 생각에 발걸음은 새봄 맞은 고양이마냥 가볍습니다.

 

 

 


 

사진으로 보는 2012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메쎄 정문 이미지로 시작합니다 :-)

 

 

올해의 주빈국은 뉴질랜드. 슬로건은 ‘당신이 잠든 사이에(while you were sleeping)’ 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메쎄 입구 앞마당에는 벼룩시장이 한창입니다. 헌책을 비롯해 오래된 레이저디스크도 보이네요. 

 

 

 

 

광장을 에워싸고 있는 홀들을 이동하며 관람하는데, 그 규모가 서울 코엑스의 10배쯤입니다. 

1, 2홀은 외부와 연결되는 통로라고 볼 수 있어요. 전시는 3~8홀에서 이뤄지는데, 

디렉션이 잘 되어있어서 찾아 다니기 어렵지는 않습니다.

이틀 째 오후가 되니 다리가 후들후들, 세계 최대 규모의 박람회장임을 실감했습니다.

 1   2  각 홀을 연결하는 무빙워크와 셔틀버스는 고마운 존재.

 

 

 

 

 

 

 

도서전에서 가장 분주한 곳. 펭귄, 랜덤하우스, 하퍼콜린스, 맥밀란 등 대형출판그룹이 이곳 8홀에 있습니다.

여기서 제일 눈에 띄는 책이 현재 가장 핫(hot)한 책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촬영 장비를 든 무리가 분주히 이동 중.

  8홀은 천장의 긴 창문으로 자연채광이 들어오기때문에, 전체 조명 없이 각 부스마다 포인트 조명만 사용한다. 

 

 

 

 

 

전자책 관련 대형 업체도 이 곳 8홀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전자책 플랫폼을 운영하는 구글과 리더스허브, 러닝허브 등으로 전자책의 유통, 교육 등에 주력하는 삼성전자,

킨들(Kindle)에 이어 많이들 사용하는 코보터치(kobo touch)로 유명한 코보그룹도 보이네요.

 

 

 

 

 

5, 6홀에 설치된 국제관의 부스 디자인은 각 나라의 문화, 예술적 특징이 잘 녹아납니다.

노르웨이, 아부다비, 폴란드, 포르투갈, 그리스, 타이완, 이란 관의 모습(왼쪽 위부터).

 

 

 

 

 

각 홀에서는 '내일의 독자는 콘텐츠와 어떻게 상호 작용할 것인가', '새로운 기술은 상상력을 제한할 것인가, 그 반대일까?'

등의 다양한 주제로 세미나와 포럼이 진행되기도 합니다.

‘스토리드라이브’라는 코너에서는 영화, 음악, 소셜미디어, 게임 등 다양한 컨텐츠의 종사자가 만나 교류하기도 했는데요,

프랑크푸르트도서전이 책을 중심으로 문화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비즈니스 장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요?

 1  새로운 미디어 세대인 아동 및 청소년의 독서 방향에 대한 세미나가 진행 중이다.

 2  6홀에 위치한 한국관에서 만난 소년한길의 얼굴들. 개구리네 한솥밥, 공룡 패션쇼, 오징어와 검복, 빨강 끈(왼쪽부터)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는 유럽의 고서적도 만날 수 있습니다. 제작 년도와 내용이 간략히 체크되어 있어요.

역사적 배경과 지식 없이 책의 진가를 알기는 어렵겠지만, 장정과 디자인의 정교함에는 모두가 감탄하리라 생각됩니다.

 1  손톱보다 작은 엔티크북이 앙증맞다.

 

 

 

 

 

재생종이로 만든 유니크한 책꽂이와 의자, 재활용 박스.

책이미지가 프린트 된 의자(가운데)는 시내 서점의 디자인문구 코너에서 19유로에 판매되고 있더군요.

 

 

 

 

 

참신하고 기발한 아이디어의 월(wall)디자인이 이목을 끕니다. 

시트지에 그래픽이미지를 출력해 가벽 전면를 싸는 방식으로 연출했더라구요.

한길사에서 운영중인 파주 헤이리의 한길북뮤지움(북하우스 뒤편) 3층에 이와 같은 방식으로 연출한 벽면이 있습니다.

19세기 미술공예운동을 이끈 윌리엄모리스(William Morris)의 책 판면을 이용해 훌륭한 포토존을 만들어 놓았답니다 :-) 

이번 주말 헤이리로 문화 나들이 어떠세요? 

 1  가공된 흑백의 서재이미지와 실재하는 빨간 쇼파가 조화로운 아이슬란드 부스. 

 2  빨강과 회색의 타이포그라피가 깔끔하고 멋스럽다.

 3  사람들이 벽면 너머를 궁금한 듯 들여다보고 있는 아이디어의 유쾌함 덕분에 발길은 자연스럽게 부스 안으로.

 3  캐릭터의 표정이 재밌어서 사자를 도발하는 듯한 컨셉으로 사진을 찍어보았다.

 

 

 

 

 

임팩트있는 디스플레이.

 1  책과 사과는 모두 일용할 양식.

 2  울스타인의 부엉이 로고 한가득 책이 꽂혀있다.

 

 

 

 

 

 1   2  러시아관에서 만난 가히 예술이라 불리울만한 아름다운 책.

 3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일의 레클람(Reclams) 문고본.

 4  독일 출판사 벨츠(BELTZ)의 신간 Superwurm의 일러스트레이터가 사인회를 열었다.

 

 

 

 

 

 1  광장 한켠에서는 펠트, 나무, 금속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진 공예품 판매도 이뤄지고 있다.

 2  광장의 곳곳에 스낵바가 있어 지친 관람객에게 황금같은 휴식을 안겨준다. 

 3   쿠텐베르크박물관에서 나와 금속활자를 소개하고 각종 체험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출판 경향을 탐색하고 동향을 파악하려는 수십 만 출판 관계자들의 분주한 움직임, 

활발히 이뤄지는 저작권 미팅, 시류에 맞는 주제로 행해지는 각종 교육 프로그램,

와인과 먹거리가 함께 해 축제와도 같았던 몇 몇 부스의 활기찬 모습.

처음 접한 2012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힘있고 역동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해 도서전을 참관한 김서영 실장은 저작권 거래가 줄어든 것은 물론 열기 또한 식어가는 듯하다고 하는데요,

오늘 날 책 시장의 현장인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 빛바래고 있다면 진정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출판계가 어제 같지 않다는 푸념 혹은 걱정만은 아닙니다.

로버트브라우닝은 '책은 남달리 키가 큰 사람이요, 다음 세대가 들을 수 있도록 소리 높여 외치는 유일한 사람이다'고 했습니다.

오늘의 책이 내일의 나를 만들고, 사회를 세우고, 역사가 된다는 사실을 곱씹어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도서전은 마치 어릴적 엄마 손을 잡고 다닌 재래시장과 같았습니다.

만사 제쳐 놓고 따라 나섰던 시장은 재밌는 것으로 가득했고, 

잔돈을 넘겨받거나 봉지라도 쥐어들면 마치 어른들 세계에서 한 몫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죠.

그리고 집에 와서는 으레히 기진맥진.

프랑크푸르트를 신나게 활보한 지 일주일이 지난 지금, 저는 감기몸살을 호되게 앓고 있습니다 ^^;

디자인은 공부할수록 배울 것으로 넘치는 것 같습니다. 이번 도서전은 저에게 시각적으로 좋은 놀이터였고,

참신한 아이디어와 독창적인 콘셉트에서 신선한 에너지를 느꼈습니다.

이 에너지가 체화되어 언젠가 스믈스믈 혹은 툭 툭 그 빛을 발하겠죠?

기분좋은 상상으로 이번 2012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참관 포스팅을 마칠까 합니다.

                

CHANGPO design group 강홍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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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한길사 / 한길아트2012.08.16 10:10


격정적인 미라보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전, 루이 16세는 재정 궁핍으로 왕정 파산 상태가 경고되자 오랫동안 열지 않았던 삼부회의 소집에 나선다.


이 시기, 오노레 미라보는 단연 정세를 끌고 가는 괴물에 가까운 주역이었다. 귀족 출신인 그가 평민 자격의 의원 후보로 나서서 선출되었을 때 삼부회의의 미래는 파란이 예상되지 않을 수 없었다. 미라보의 격정적 연설과 정치력은 귀족, 성직자 그리고 제3신분으로 불린 부르주아 또는 평민들 사이의 계급적 긴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내다보였기 때문이었다. 루이 16세도 물론 안심하고 있을 처지는 아니었다.


이러한 미라보를 유심히 주목하면서 정치를 배워나간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훗날 프랑스 혁명의 반동을 자초한 로베스피에르였다. 젊고, 뛰어난 학식과 능력을 가진 그는 조만간 프랑스 혁명의 스타가 될 과정을 밟고 있었고, 혁명 정신에 충실한 정치는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로베스피에르는 미라보가 역설했던 왕정의 개혁보다는 단호한 결별이 답이라는 생각을 속으로 굳혀가고 있었다. 그 결별이 어떤 희생을 치르게 되건 말이다. 프랑스 혁명의 유혈사를 써내려간 길로틴은 그의 마음에 이미 세워져 있었던 셈이다.



루이 16세, 로베스피에르 그리고 제3신분


프랑스 혁명 전야, 지식인을 비롯한 대중의 인기를 모은 루소의 사회 계약론과 평등 사상은 왕과 귀족, 성직자들이 지배하는 기존 질서에 일정한 균열을 내고 있었다. 파리 민중들도 자신들의 빈곤과 억압된 처지를 분노하고 있었다. 구체제인 '앙시앙 레짐(ancien regime)'은 가쁘게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루이 16세는 베르사유 궁전에서 자신의 금고가 비어가는 것에만 신경을 썼고, 숲에서 사냥하는 일에 몰두했다. 재무장관 자크 네케르는 귀족과 성직자에게도 재정 부담을 맡도록 해야 하는 어려운 정치적 과제를 안게 되고, 이를 위해서 제3신분의 협력을 얻는 줄타기를 시작한다.


프랑스는 1776년 미국 독립 전쟁의 막대한 지원을 계기로 국가 재정이 고갈되었고, 국제적으로는 영국과의 불화로 인해 운신의 폭이 좁았다. 루이 16세는 절대 왕조 체제를 이룬 루이 14세와는 달리, 자기를 괴롭히는 자들이 없으면 그저 좋은 성품의 군주로 인생을 끝냈을 별반 야망이 없는 왕이었다.


그러나 성서와 토지를 기반으로 프랑스 사회를 지배하는 성직자 계급과 귀족들 그리고 신흥 부르주아 계급과 정치적 합의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가난한 왕"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에 새로운 정치적 구도를 만들어가고자 한다. 봉건 체제에 기초를 둔 절대 왕정 체제의 개혁을 시도하려 한 것이다.


삼부회의는 그러한 구상의 소산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 삼부회의가 지금까지 정치적 발언권이 별반 없었던 제3신분에게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할 기회를 주었고, 성직자, 귀족들은 이 때문에 자신들의 기득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점으로 인해 반격의 음모를 꾸미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바야흐로 프랑스 정치는 파란만장의 드라마로 진입하게 되었다. 절대 왕정이 자신을 구하기 위해 벌였던 일이 그 자신을 무덤에 파묻는 역설적 현실로 귀결되어 갔던 것이다. "혁명의 판도라 상자"는 그렇게 열렸다.



역사 소설, 정치 소설


사토 겐이치의 <소설 프랑스 혁명>(김석희 옮김, 한길사 펴냄)은 이러한 역사를 소설적 상상력과 역사적 사실을 서로 결합시켜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미라보, 로베스피에르 그리고 혁명군을 장악하고 있던 라파예트, 네케르 등의 인물들을 프랑스 혁명의 무대 위에 올려놓고 그 역사를 어렵지 않게 이해하도록 한다.


삼부회의가 소집되었을 때 각 계급의 정치적 영향력을 정리해낼 투표의 방식까지 정밀하게 소개한 그의 소설은 역사의 정치 소설화라는 측면에서도 매우 흥미롭다. 애초에 재정 위기 타파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던 삼부회의였기에 돈만 빼면 되었지 제3신분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원하지 않았던 지배 계급의 배신이 시작되면서 루이 16세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가졌던 파리 민중들은 서서히 들고 일어난다.


바스티유 감옥이 깨져나가는 것은 감옥에 갇힌 죄수들을 석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곳에 주둔하고 있던 군대의 무기를 탈취해 시민군 무장을 하기 위함이었다. 사토는 그런 장면도 생생하게 그려내면서 역사가 어떤 정밀한 계획이나 시나리오가 아니라, 순간의 우연과 판단의 차이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막대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솜씨는 무엇보다도 방대한 프랑스 혁명사에 대한 섭렵과, 그의 문학적 재능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인, 또는 아시아인이 유럽의 역사를 문학화하는 작업에 도전한다는 열정과 의지가 작동했다고 여겨진다.



일본인이 쓰는 유럽 혁명사 소설이란?


국내 출간 기념 대담의 자리에서 그는, 프랑스 혁명이 2단 로켓처럼 제1국면과 제2국면이라는 상이한 과정을 거쳤다면서 결국 현실에서 실패한 혁명이 되어버린 이 역사를 오늘에 반추하면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지 자신도 계속 탐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제1국면은 삼부회의로 인한 절대 왕정 체제의 타협 국면, 제2국면은 그 타협이 더는 변화하는 현실을 해결하지 못하면서 새로운 폭발력을 가진 쪽으로 질주한 상황을 말한다. 사토는 이런 프랑스 혁명사의 전개 과정에 대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사실 우리로서도 궁금했던 것이, 메이지 유신과 관련된 역사와 소설이 지배하는 일본 사회에서 유럽 혁명사를 가지고 소설을 쓴다는 일이 우선 가당키나 한가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작업에 시동을 건 사토의 모습은 문학이 이런 차원에서 "다른 형태의 세계어"가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즉, 유럽의 역사도 인류의 역사 속에서 공유되는 순간, 그 역사를 바라보고 생각하는 자의 언어, 역사, 세계, 자산이 된다는 뜻이다.



<소설 프랑스 혁명>의 작가 사토 겐이치. ⓒ프레시안(최형락)



전체 12권으로 구상하는 사토의 작품은 이제 국내 번역본으로 4권까지 나왔다. 원래 권투를 했다는 특이한 경력을 가진 작가라 그런지 소설 전개가 흡인력 있고 속도가 빠른 까닭도 다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소설의 전반부는 프랑스 혁명을 주도해 나간 주요 인물들이 그려져 있는데, 이와 함께 우리는 베르사유와 파리의 대립, 보통의 인민들, 특히 여성들의 역할이 조명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것은 프랑스 혁명의 정작의 주인공들이 누구인지 밝혀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사실, 삼부회의에서 귀족과 성직자 계급의 결탁으로 제3신분의 정치적 위상이 흔들리는 위기에서 이들을 구한 것은 인민들의 봉기였다.


앞으로 계속 나올 후속편을 봐야 판단할 수 있겠지만, 혁명 초기 부르주아의 이해와 인민들의 이해가 점차 충돌해나갈 때 어떤 방식의 드라마 전개와 서술이 있게 될 것인지 주목된다. 부르주아의 정치적 이해관계는 보통의 인민들이 줄기차게 요구한 경제적 요구와 언젠가는 모순의 상태에 돌입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프랑스 혁명의 역사는 이후 1848년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 전반에 걸친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대치 전선이 펼쳐지는 뿌리가 된다.


사토의 <소설 프랑스 혁명>은 프랑스 혁명사의 세계적 권위인 조르주 르페브르의 <프랑스 혁명사 연구>나, 아나키스트인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의 <프랑스 대혁명사>가 번역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에게 친절한 안내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의 작품이 역사적 사실에 명확히 근거를 두고 전개되고 있다는 것은 르페브르의 책을 읽어보면 확인된다.


르페브르는 유럽 전체의 역사와 프랑스 혁명의 관련을 설명하면서도, 프랑스 혁명의 내적 전개 과정을 세밀하게 분석한다. 크로포트킨의 경우에는, 부르주아의 정치적 이해와 프롤레타리아 또는 인민의 경제적 목표가 서로 상치하면서 프랑스 혁명이 어떤 진화 과정을 거치게 되는지를 일깨워주고 있다.


오늘날 진보의 가치와 실천의 문제가 일상의 수준에서 정리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프랑스 혁명에 대해 읽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게 될까?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1848년의 프랑스 혁명이 1968년 유럽의 신좌파 혁명으로 그 역사적 평가를 완료했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결국 자유주의 부르주아 체제가 더는 미래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상황은 프랑스 혁명 이후 세계적 부르주와 체제의 균열이다. 바로 그런 상황에서, 혁명에 헌신하고, 혁명을 배반하고 혁명을 망각해 버린 그 우여곡절의 과정에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어떤 것일까? 역사는 도대체 어떤 과정과 단계를 거치면서 진화하게 되는 것일까?


<소설 프랑스 혁명>은 그런 와중에 '인간'을 놓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도록 해준다. 결국, 역사는 인간이 만들어 가는 것이므로.



"아시아의 시대를 대비하려면 유럽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지난 7월 9일 경기도 파주 헤이리에 위치한 북 카페 '포레스타'에서 김민웅 성공회대학교 교수가 <소설 프랑스 혁명>의 작가 사토 겐이치를 만났다. '프레시안 books'는 두 사람이 나눈 대화의 주요 내용을 싣는다. 한 시간에 걸쳐 진행된 이날 대담의 통역은 일본 문학 번역가 김난주 씨가 맡았다.



ⓒ프레시안(최형락)



김민웅 프랑스 혁명은 근대화 과정의 매우 중요한 시발점이지만, 한국에선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연구가 이뤄지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사토 겐이치 씨의 <소설 프랑스 혁명>이 가지는 의미는 큽니다. 이 장대한 <소설 프랑스 혁명>의 작가 사토 씨가 이번에 한국 독자와의 만남을 위해 방문하셨는데,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사토 겐이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프랑스 혁명사를 소설로 쓰고 있습니다. 아시아인이 유럽 혁명에 대해 쓴다면 프랑스 혁명에 대해 써야만 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김민웅 일본 사람이 일본이 아닌 지역의 역사에 대해 쓰는 경우가 많습니까? 한국 같은 경우는 주로 한국 역사에 대해 저술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사토 겐이치 일본에서도 유럽 역사를 소설화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김민웅 그렇다면 <소설 프랑스 혁명>을 쓰기까지 많은 용기와 노력이 필요했을 텐데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습니까?


사토 겐이치 일본에서도 유럽 역사를 다룬 소설이 없었던 건 아닌데, 지속적으로 계속 해나간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제가 중학생 시절까진 영화 하면 유럽 영화나 미국 영화가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소설에서는 유럽이나 미국을 다루면 별 반응이 없던 게 이상했습니다. 그게 프랑스 혁명을 소설로 쓴 한 이유입니다. 두 번째 이유로는 저희 세대에 이르러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를 둘러싼 환경이 많이 달라진 걸 꼽을 수 있겠습니다.


김민웅 아시아 사람으로서 유럽 역사를 쓰는 것도 흥미롭지만, 왜 하필 프랑스 혁명이었을까요. 프랑스 혁명은 공화정을 탄생시켰는데, 사실 일본은 영국처럼 입헌 군주제에 가까운 천황제를 유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차이가 궁금합니다.


사토 겐이치 어려운 질문입니다. (웃음) 프랑스뿐 아니라 그 옆 나라인 영국이나 독일에 대해서도 같이 알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에도 천황제가 남아있기 때문에, 영국의 비슷한 입헌 군주제에는 큰 흥미가 가질 않았습니다. 영국에 대해 써야 할 의미를 별로 찾지 못했어요.


김민웅 프랑스 혁명을 소설로 쓰기 위해서 어떤 작업이 필요했나요?


사토 겐이치 일단 자료가 될 책을 모았습니다. 주인공과 대략적인 줄거리를 정한 상태에서 취재차 프랑스에 다녀왔고요. 지금도 계속 <소설 프랑스 혁명>을 연재 형식으로 쓰고 있습니다. 아시아 사람들은 유럽을 공부할 때, 유럽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 남자는 핸섬하고 프랑스 여자는 미인이라 생각하죠. 돈도 훨씬 많은 것 같고요. (웃음)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프랑스 혁명이 일어날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요. 프랑스든 미국에든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살고 있다는 사고가 기본적으로 있지 않으면, 소설을 쓸 수 없습니다. 그런 사고가 불가능하다면, 몸으로 쓴 소설이 아니라 머리에서 꾸며낸 소설밖에 태어날 수 없겠지요.


김민웅 사실 이 소설의 장르는 팩트와 픽션이 결합된 '팩션'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팩션을 구성해나갈 때 사토 씨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무엇이었을까요.


사토 겐이치 역사 소설을 쓸 때 물론 팩트는 중요하지만, 팩트 안에 혹은 팩트 이면에 있는 것, 다시 말하자면 진실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것을 역사 속에서 끄집어내려면 논픽션보다는 픽션이 좀더 쉬운 선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김민웅 일본에는 메이지유신이라는 정치적 사건이 있지요. 지금까지 메이지유신을 둘러싸고 굉장히 많은 소설과 드라마가 나왔습니다. 일본 작가에게 메이지유신이 국민적 상식이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 사토 씨께서는 메이지유신의 관점으로 프랑스 혁명을 바라보진 않았을까 궁금합니다.


사토 겐이치 네, 그렇죠. 메이지유신은 프랑스 혁명과 상통하는 면이 많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선 혁명까진 이르지 못했죠. 개혁이 왕정으로 가느냐, 공화정으로 가느냐에서 많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김민웅 프랑스 혁명을 이해하려면 베르사유와 파리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베르사유는 왕정 체제, 앙시앙 레짐의 근거지였고 파리는 민중 혁명의 중심지였죠. 나라의 중심이 베르사유에서 파리로 옮겨간 것이 프랑스 혁명의 매우 중요한 발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때 프랑스는 미국 독립 혁명을 돕다가 재정이 파탄에 이르렀고, 루이 16세는 재정 악화를 메우기 위해 세금을 또다시 부가해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프랑스의 재무장관이었던 자크 네케르라는 인물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지죠.


사토 겐이치 루이 16세는 안주하는 왕이 아니라 여러 가지를 개혁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왕이었습니다. 나쁜 사람은 아니었죠. (웃음) 그러나 개혁을 하고 싶어도 그런 정책을 맡길 사람이 없었습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어중간한 개혁가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한편, 네케르는 스위스의 은행가였는데, 수완가이고 비즈니스맨이었습니다. 루이 16세가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발탁했던 사람입니다.


김민웅 소설 속에서 루이 16세는 재미있는 특징을 가진 왕으로 묘사됩니다. 사실 베르사유 궁전은 그의 할아버지였던 루이 14세의 지휘 아래 지어졌는데요. 하지만 루이 16세는 할아버지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루이 16세의 스타일이 어떤지 잠깐 들려주시지요. 그걸 이해해야 네케르와의 관계도 더 잘 이해가 갈 것 같습니다.


사토 겐이치 루이 16세는 기본적으로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웃음) 성실했고요. 루이 14세는 돈을 엄청나게 썼고 애인을 엄청 많이 만들었고 자식들도 많이 보았죠. 베르사유 궁전에서도 사치스런 낭비를 계속했기 때문에 결국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봉착했습니다. 아들이었던 루이 15세는 아버지의 그런 면을 무척 싫어했다고 하고요.


루이 16세 역시 할아버지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마음을 이어받았습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우유부단했고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그게 그의 비극이었고, 혁명의 열기는 걷잡을 수 없게 됐죠.


김민웅 네케르가 삼부회를 소집할 때, 회의를 구성하는 귀족과 성직자와 평민 간의 세력 다툼이 심각한 문제가 되지요. 이때 미라보의 역할이 부각됩니다. 사토 씨께선 특히 미라보의 역할을 부각시키셨는데, 미라보의 어떤 점이 그렇게 매력적이었을까요?


사토 겐이치 루이 16세는 왕으로서 성실함을 갖췄고, 네케르에게는 비즈니스맨으로서의 수완이 있었죠. 대신 뛰어난 정치가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미라보가 등장해 정치력을 발휘하게 된 것입니다.


김민웅 미라보의 정치력을 좀 더 설명해 주신다면….


사토 겐이치 미라보는 젊은 시절부터 방탕했습니다. 아버지조차 그를 두고 내 자식이 아니라고 했을 정도죠. (웃음) 감옥살이를 했고, 한때는 유부녀와 염문을 일으키는 바람에 그 남편의 총에 맞을 뻔하기도 했습니다. 상당히 파렴치한 인생을 보낸 사람이었습니다. 프랑스 귀족의 부끄러움이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혁명이 벌어지니까 미라보의 풍부한 인생 경험이 사람들을 움직이는 힘이 되었습니다. 그가 아니면 초기 프랑스 혁명이 이뤄지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미라보 자신은 귀족이었지만, 혁명의 힘을 귀족에게 의존하지 않고 평민에게서 찾음으로써 혁명을 진행시켰습니다.


김민웅 <소설 프랑스 혁명> 4권까지에서 가장 중요한 주인공은 미라보이지요. 그 외에 로베스피에르와 라파예트가 등장하면서 프랑스 역사가 바뀌게 됩니다. 특히 귀족 출신 라파예트는 미라보와 미묘한 경쟁 관계를 형성합니다. 그는 미국 독립 혁명과 프랑스 독립 혁명에서 각각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특별한 인물이죠.


사토 겐이치 라파예트는 조지 워싱턴의 친구였고 미국 독립 전쟁에 참전한 사람입니다. 신대륙인 미국의 장점, 즉 훌륭한 퍼포먼스를 겸비하였기 때문에 프랑스 혁명을 리드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권 선언 역시 라파예트가 제안한 것이었죠.



ⓒ프레시안(최형락)



김민웅 이제 로베스피에르가 등장할 차례입니다. 처음엔 미라보와 함께 혁명을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정치적 입장이 달라지지요.


사토 겐이치 로베스피에르는 성실한 노력가이자 세상을 좋게 만들어나가려는 이상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4권에서 그려지다시피, 혁명 초기 단계에는 아무런 힘이 없었습니다. 세상의 부정에 대해 분노하고 있었지만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하고 해결해야 하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고요. 그런 상태의 로베스피에르가 노련한 정치가인 미라보에게서 정치력을 배워가는 과정을 4권에 담았습니다.


김민웅 1789년에서 1791년까지가 프랑스 혁명의 1단계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이때는 입헌 군주제를 유지하는 쪽으로 혁명이 진행되었죠. 이 부분에서 미라보와 로베스피에르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미라보에게는 개혁 정치와 더불어 왕정을 유지하는 게 프랑스를 안전하게 유지하는 길이었고, 로베스피에르는 끝까지 밀어붙이고 싶어 했죠.


사토 겐이치 미라보는 루이 16세를 이용하여 효과적인 정치 개혁을 꾀했지만, 루이 16세보다도 먼저 죽는 바람에 꿈을 이루질 못했습니다.


김민웅 왕이 어느 쪽에 서느냐에 따라 혁명의 진로가 달라지는 시기였지요. 미라보는 루이 16세를 이용하며 삼부회에서 평민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도록 하길 원했습니다. 하지만 로베스피에르는 루이 16세를 믿지 못했어요. 중간 중간 루이 16세가 음모를 꾸미거나 귀족과 손을 잡으려는 시도를 들켰거든요. 그래서 로베스피에르는 왕과 귀족에 대한 불신이 쌓여갔고, 결국 반혁명 세력을 철저히 차단하려는 단호한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조금 다른 얘기로 넘어가자면, 프랑스 혁명에서 여성들의 역할도 아주 흥미로워요.


사토 겐이치 앙시앙 레짐은 여성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로 대표된 궁정의 모습을 보세요. 지금으로 말하자면 쇼핑 중독의 시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웃음) 그런 의미에선 여성들이 딱히 손해 보는 입장은 아니었지만, 사실상 그녀들의 행복은 '주어진' 행복이었습니다. 요컨대 마리 앙투아네트는 루이 16세가 남편이기 때문에 그 정도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입장에 그쳤다는 거죠.


1789년 10월 파리의 평민 여성들이 베르사유 궁전까지 행진합니다. 빵을 달라고 외치면서, 왕과 직접 얘기하겠다고 주장하죠. 그러면서 대체 왜 왕이 베르사유에 있는가, 국민들의 고생을 알아야 한다면서 파리로 데리고 옵니다.


김민웅 여성들이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와 귀족들을 데리고 파리로 돌아오는 광경을 보면, 루이 16세는 사실상 여성들의 인질입니다. (웃음)


사토 겐이치 여성들이 부르길, 왕을 왕이라 하지 않고 빵가게 주인이라고 부릅니다. (웃음) 자기들의 식량 문제를 해결할 사람이라는 거지요.


김민웅 마지막으로 한국 독자들이 <소설 프랑스 혁명>을 어떻게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나요?


사토 겐이치 우선 소설로서, 얘기로서 즐길 수 있길 바랍니다. 두 번째로는 지금 자기가 놓여 있는 국제 관계와 사회 환경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아시아인으로서 유럽의 역사를 다루는 소설을 쓰고 있는데, 저는 앞으로 아시아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시아의 시대를 만들어가기 위해 유럽의 역사를 디딤돌로 삼고 싶습니다. 저의 그런 소망에 한국인 독자들도 참여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리=김용언 기자)



이 글은 프레시안에 실린 <김민웅의 '리브로스 비바'> 기사 내용을 허락 하에 게재한 것임을 밝힙니다.

기사 원문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20803163016&section=05



『소설 프랑스혁명』 사토 겐이치 지음│김석희 옮김


제1권 혁명의 영웅

제2권 바스티유 함락

제3권 성자들의 전쟁

제4권 길 잃은 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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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한길사 / 한길아트2012.05.29 11:26


스웨덴의 칼 구스타프 16세 국왕님께 드리는 편지


안녕하세요, 국왕님.


저는 이번에 국왕님께서 29일부터 머물게 되실 대한민국에서 책을 만들고 있는 편집자예요. 정말 반갑습니다. 저는 지난 달『스웨덴의 쿵스레덴을 걷다- ‘왕의 길’에서 띄우는 대자연의 메시지』라는 책을 담당했습니다. 아마 국왕님께서도 쿵스레덴을 걸어보셨을 테지요? 유럽에서는 대자연의 경이로운 풍광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트레일 코스로 에스파냐 산티아고 길만큼 이름난 곳이라고 하더라고요. 이 책은 도보여행가로 활발하게 활동해온 김효선 선생님이 지난해 여름 쿵스레덴을 걸으며 느꼈던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인생 제3막을 맞이해 이제야 자신이 주인공이 인생을 꾸려나가고자 하는 중년 여성이 대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길을 걸으며 온전한 자신과 마주한 보석 같은 시간을 기록한 24박 25일의 야생일기지요.

 

 

 

 

 

 

제가 듣기로 쿵스레덴은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스웨덴관광협회 총재 로우이스 아멘으로부터 시작됐다고 하던데, 맞나요?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사이에 놓인 기차 철로를 보고 영감을 얻은 로우이스 아멘으로 인해 스웨덴관광협회가 스웨덴 북부 아비스코에서 크비크요크 사이의 가장 아름다운 지역에 철도노선처럼 트레일 코스를 만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지나는 길의

습지나 덤불숲과 돌길 위에는 두꺼운 자작나무 널빤지를 철길처럼 깔아놓고 중간중간 오두막을 지어 여행자를 위한 숙소도 마련하고요. 트레일 코스 사이사이에 있는 수많은 호수를 건널 수 있는 선착장과 배도 빠뜨리면 안 되겠네요. 이 길이 점점 확장돼 남쪽의 헤마반까지 이어지는 430km에 이르는 오늘날의 쿵스레덴이 된 것이겠죠.

 

아, 그런데 혹시 왜 이 길의 이름이 쿵스(Kungs) 레덴(leden), ‘왕의 길’인지 아시나요? 김효선 선생님께서도 이 이름이 붙은 배경에 대해서는 잘 모르시더라고요. 다만 왕의 기분으로 길을 걸으라는 뜻이 아닐지 추측하셨어요.

 

 

 

 


 

국왕님도 쿵스레덴의 자작나무 널빤지 길을 좋아하시나요? 저자인 김효선 선생님은 20kg 배낭을 메고 하루 평균 7~8시간씩 쿵스레덴을 걸으셨대요. 자작나무 널빤지 길과 쿵스레덴 코스를 알려주는 빨간 X표의 이정표가 어울려 철길 같은 분위기를 낸다며 특히 좋아하시더라고요. 또 새들의 낙원인 코토쇼카 산 아래 호수와 알리스 계곡과 알리스 강이 굽굽이 흐르다 내려와 앉아 쉬었다 가는 삼각주가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곳에 위치한 알레스야우레 오두막, 쿵스레덴의 최고의 뷰 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셰크티야 계곡은 하루 종일 풍경만 바라보고 있어도 좋을 만큼 멋진 곳이었어요. 국왕님도 사우나를 즐기시나요? 김효선 선생님은 테르나셰스투간 오두막에서 사우나를 즐기고 난생 처음 발가벗고 호수에서 수영을 하셨대요. 스톡홀름에서 우연히 만난 스웨덴 친구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스웨덴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러운 경험이라고 했다는데, 정말 부럽네요.


 

 

 

한국사회에서 최근 복지사회가 뜨거운 정치적 쟁점이라는 얘기를 국왕님도 이미 들어서 알고 계시다는 인터뷰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스웨덴 복지모델이 가능한 것은 48%에 달하는 고세율에 대한 국민적 합의 때문이라면서요? 제 주위에도 사회적 안전망이 확충되고 돈벌이가 어려운 노년에 경제적으로 혜택을 받을 수만 있다면 고세율에 찬성한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이번 국왕님의 방한을 계기로 복지뿐 아니라 양성평등이나 교육,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발전적인 논의가 많아졌으면 좋겠네요. 개인적으로는 국왕님과 실비아 왕비님의 방한을 기념해 열리는 스웨덴 영화제 Swedish Film Festival (2012.5.30~6.5)가 무척 기대돼요. 「렛미인」의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을 좋아하는데, 이번 영화제를 통해 로맨스부터 코미디까지 다양한 장르의 스웨덴 영화를 그것도 공짜로 볼 수 있어 즐거워요. 영화를 통해 만나게 될 스웨덴의 감성이 무척 궁금하네요. 


지금까지 제가 편집한 책이 많지는 않지만, 책 한 권 한 권을 편집할 때마다 그 책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연결고리가 생기는 일이 신기하고 재밌어요. 아마도『스웨덴의 쿵스레덴을 걷다』라는 책을 만나지 못했다면, 제가 이렇게 국왕님께 편지 쓸 일도 없었겠지요. 앞으로도 국왕님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무척 반가울 것 같아요. 국왕님, 늘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2012년 5월 하순

(주)도서출판 한길사 편집부 김지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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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한길그레이트북스2011.12.22 11:10




르네 지라르의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은 오늘날 우리의 욕망 체계를 소설 주인공의 욕망 체계에서 발견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특성을 제시한 탁월한 작품이다. 

지라르의 관심은 소설 속의 인물들이 어떻게 욕망하는가 하는 인간 욕망의 구조를 밝혀내는 데에서 출발한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부터 스탕달의 『적과 흑』,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영원한 남편」을 비롯한 여러 소설들에서 그는 이 소설 속의 인물들이 대상을 직접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중개자의 암시를 통해서 욕망한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우리는 어떤 대상을 자발적으로 욕망한다고 믿고 있지만, 그것은 ‘낭만적 거짓’에 불과하다. 사실은 우리가 욕망의 주체와 대상 그리고 중개자를 세 꼭지점으로 하는 삼각형의 욕망구조에 편입되어 있으며, 이것이 소설의 주인공들을 통해 드러나는 ‘소설적 진실’이다. 중개자는 『돈키호테』의 경우처럼 전설적인 가공의 인물이어서 주인공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을 수도 있고, 『적과 흑』 또는 「영원한 남편」의 경우처럼 자기와 처지가 비슷한 아주 가까운 사이일 수도 있다. 

지라르에 따르면 삼각형의 욕망이란 거의 우리 모두가 앓고 있는 형이상학적 질환에 속한다. 이 병이 무서운 이유는 암처럼 자각증세가 없기 때문이다. 정확한 진단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형이상학적 질환에서 치유될 수 있는 희망은 없어 보인다. 지라르가 낭만적 거짓을 폭로하고 삼각형의 욕망이라는 소설적 진실을 드러내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낭만적 비평은 언제나 본질적인 것을 거부한다

소설의 결말은 모두가 전향이다. 이것은 아무도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갈 수 있을까? 이러한 전향들이 모두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결말들은 애초부터 기본적인 두 범주로 구분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사람들과 합류하는 주인공을 보여주는 결말과, 고독을 쟁취하는 ‘군집성’ 주인공을 보여주는 결말이라는 두 범주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들은 첫번째 범주에 속하고, 스탕달의 소설들은 두번째 범주에 속한다. 라스콜리니코프는 고독을 거부하고 타인들을 포용하는 반면, 쥘리앵 소렐은 타인들을 거부하고 고독을 선택한다.

이 대립은 극복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만일 전향이 우리가 찾아낸 의미를 지닌다면, 또한 그것이 삼각형의 욕망에 종지부를 찍는다면, 그 결과는 절대고독이라는 용어로도 또 세계로의 회귀라는 용어로도 표현될 수 없다. 형이상학적 욕망은 타인과의 어떤 관계 그리고 자신과의 어떤 관계를 맺게 만든다. 진정한 전향은 타인과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새로운 관계를 발생시킨다. 고독과 군집성, 참여와 비참여 사이의 기계적인 대립을 제시하는 것은 낭만적 사고이다. 

스탕달과 도스토예프스키의 결말을 좀더 자세히 관찰하면 언제나 진정한 전향의 두 가지 양상이 나타나지만, 그 두 가지가 똑같이 전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스탕달은 주관적인 면을 더 강조하는 반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상호주관적인 면을 더 강조한다. 소홀히 다루어진 면도 전혀 사라진 것이 아니다. 쥘리앵은 고독을 획득하지만 고립을 이겨낸다. 그가 레날 부인과 누렸던 행복은 타인들과 맺은 관계에서 일어난 근본적인 변화의 훌륭한 표현이다. 재판이 시작될 무렵 주인공이 사람들에게 둘러싸였을 때, 그는 자기가 타인들에 대한 예전의 증오심을 더 이상 느끼지 않음을 깨닫고 놀란다. 그는 타인들이 과연 자기가 생각했던 것처럼 나쁜 사람들일까 의아해한다. 더 이상 그들을 매혹하거나 지배할 욕망이 사라진 쥘리앵은 더 이상 그들을 증오하지도 않는다.

반대로 라스콜리니코프는 결말에서 고립을 이겨내지만 그도 역시 고독을 쟁취한다. 그는 복음서를 읽게 되고, 오래 전부터 맛보지 못하던 평화를 느낀다. 고독과 인간교류는 상호관련해서만 존재한다. 그 둘을 분리하면 낭만적 추상화에 빠질 위험이 있다.

소설의 결말들간의 차이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 대립보다는 강조의 이동이 더 중요하다. 형이상학적 질환이 치유되는 다양한 양상들간에 부재하는 균형은 소설가가 자신의 낭만주의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는 도식들에 사로잡혀서 도식들이 정당화의 구실을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결말에 사회참상 묘사주의가 전혀 없지는 않다. 스탕달의 결말에서는 들레클뤼즈 살롱에서 기세가 등등하던 부르주아 낭만주의의 몇 가지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차이점들을 강조하면 소설 결말들의 통일성을 놓쳐버리기 쉽다. 다름아닌 바로 그것이 비평가들이 바라는 것인데, 통일성이란 그들의 언어로 진부함이며 진부함은 최악의 저주인 까닭이다. 만약 비평가들이 이 결말을 완전히 거부하지 않을 경우, 그들은 이 결말이 독창적임을, 즉 소설의 다른 결말들과 모순된다는 사실을 입증하려 애쓴다. 그들은 언제나 소설가를 자신들의 낭만적 기원으로 환원시킨다. 그들은 작품에 봉사한다고 믿는다. 교양 있는 대중의 취향인 낭만적 취향의 수준에서 본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작품에 봉사하고 있다. 좀더 파고들어가본다면 그들은 작품에 해를 끼치고 있다. 그들이 작품 내부의 소설적 진실과 모순되는 것을 칭찬하기 때문이다.

낭만적 비평은 언제나 본질적인 것을 거부한다. 즉 형이상학적 욕망을 초월하여 죽음 너머로 빛을 내뿜는 소설의 진실로 향해 가기를 거부한다. 주인공은 진실에 도달하면서 죽는다. 그리고 자신을 창조한 작가에게 자신의 선견지명을 유산으로 남긴다. 소설의 주인공이라는 칭호는 비극적인 결말에서 형이상학적 욕망을 이겨내고, 그리하여 소설을 쓸 수 있게 된 인물에게 부여되어야 한다. 주인공과 그의 창조자는 소설이 진행되는 동안 내내 분리되어 있다가 결말에서 서로 합쳐진다. 죽어가면서 주인공은 잃어버린 자신의 삶을 돌이켜본다. 그는 그 삶을 시련과 병마와 추방이 클레브 부인에게 지니게 해준, 그리하여 이 여류소설가3)의 관점과 동일해진 ‘더욱 폭넓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러한 ‘더욱 폭넓고 객관적인 시선’은 마르셀 프루스트가 『되찾은 시간』에서 말하고 있는 ‘망원경’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스탕달의 주인공이 감옥 안에서 도달하는 탁월한 태도와도 다르지 않다. 멀어짐과 상승의 모든 이미지들은 더욱 초연해진 새로운 견해, 즉 창조자 자신의 견해를 표명한다.


「카라마조프가 가의 형제들」 러시아 현대화가가 그린 그림으로 대심문관 장면이다.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제12장 「결말」



삼각형의 욕망으로 투영되는 현대인의 욕망

이 책에서 맨 먼저 분석의 대상이 되는 것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이다. 그가 이 소설의 분석에서 얻어낸 결론은 『돈키호테』의 주인공들의 욕망은 간접화한 욕망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 개인이 무엇을 욕망한다는 것은 그 개인이 지금의 자기 자신으로 만족하지 못해 자기 자신을 초월하고자 하는 것인데, 이때 초월은 자기가 욕망하게 되는 대상을 소유함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것을 도표로 그려보면 개인에 해당하는 주체가 밑에 있고 대상이 그 수직선상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관계를 『돈키호테』에서 살펴보면 주인공 돈키호테는 이상적인 방랑의 기사가 되고자 한다. 여기에서 돈키호테는 주체가 되고 이상적인 방랑의 기사는 대상이 된다. 그러나 돈키호테는 그 이상적인 방랑의 기사가 되기 위하여 아마디스라는 전설의 기사를 모방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돈키호테는 직접 이상적인 기사도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아마디스를 모방함으로써 거기에 도달하고자 한다.

따라서 이상적인 기사도에 도달하고자 하는 돈키호테의 욕망은 아마디스라는 중개자에 의해 간접화되고 있으며, 주체와 대상 사이에는 간접화 현상이 일어난다. 즉 주체의 욕망이 수직적으로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비스듬히 상승하여 중개자를 거쳐 대상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욕망의 간접화 현상은 기독교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구조이다. 어느 기독교인이 진정한 기독교인이 되어 구원받기를 원한다면 그는 곧 예수라는 중개자를 모방하면 된다. 이때 기독교인과 예수와 진정한 기독교인은 삼각형의 세 꼭지점을 형성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욕망하는 주체와 욕망의 대상과 그 욕망의 중개자가 삼각형의 구조를 갖게 되고, 이처럼 간접화한 욕망을 ‘삼각형의 욕망’이라고 부른다.

지라르는 현대인의 욕망은 이처럼 삼각형의 구조로 되어 있다고 보면서 소설의 주인공이 지니고 있는 욕망의 왜곡되고 비진정한 속성을 분석하고 있다. 이로써 시장경제체제 사회 속에서 개인은 그 욕망마저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중개자에 의해 암시된 욕망을 소유하게 되었음을 제시한 셈이 되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주인공의 욕망의 구조와 주인공을 태어나게 한 사회의 경제구조 사이에 구조적인 동질성을 발견하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지라르는 따라서 돈키호테의 욕망이 돈키호테 내면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 아마디스라는 중개자에 의해 암시됨으로써 생긴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한 점에서 종래의 돈키호테를 이상주의자로, 산초 판사를 현실주의자로 규정한 것은 부분적으로는 진실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진실이 아니다. 예전에는 산초 판사의 욕망(작은 섬 하나를 소유하는 것, 딸에게 공작부인의 칭호를 갖게 하는 것)이 실현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그를 현실주의자로 보았다. 그러나 지라르는 산초 판사의 바로 그 두 가지 욕망이 그의 내부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욕망이 아니라 그의 주인인 돈키호테에게서 암시받은 욕망이라고 지적한다. 그것은 돈키호테가 산초 판사의 욕망의 중개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지라르는 이처럼 하나의 작품이 여러 개의 삼각형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가 분석하고 있는 스탕달의 『적과 흑』,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도 주인공들의 욕망이 여러 개의 삼각형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지라르는 모든 삼각형의 욕망이 동일한 관계에 의해 형성된 것이 아니라 좀더 복합적인 관계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는 점에 주목함으로써, 자신의 이론을 더욱 복합적이고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 그에 따르면 삼각형의 구조에서 주체와 중개자 사이의 거리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분석에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것은 그 둘 사이의 거리이다.

다시 말하면 『돈키호테』에서 주체 돈키호테와 중개자 아마디스는 동일한 세계에 있지 않다. 즉 아마디스는 전설적인 가공의 인물이어서 돈키호테와 만날 수 없는 인물이다. 이때 주체와 중개자의 거리는 극복될 수 없을 만큼 떨어져 있다. 그런 관점에서 주체로서의 산초 판사와 중개자로서의 돈키호테 사이의 거리는 함께 다니고 있기 때문에 동일한 공간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때의 거리를 물리적인 거리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돈키호테는 주인이고 산초 판사는 시종이기 때문에, 둘이 함께 다닌다고 해서 그 둘 사이의 거리가 극복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산초 판사는 단 한 번도 자신이 돈키호테라는 주인의 자리를 꿈꾸어본 적이 없고 주인과 경쟁해보고자 한 적이 없다. 그것은 두 인물이 동일한 공간에 살고 있으면서도 엄연하게 구분되는 정신적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반면에 스탕달의 『적과 흑』에서 마틸드가 쥘리앵을 소유하고자 하는 것은 그의 경쟁자인 페르바크 원수부인과의 경쟁관계에서 비롯되고 있다. 이처럼 주체인 마틸드와 중개자인 페르바크 원수부인이 동일한 공간 안에서 대상인 쥘리앵을 욕망하는 데 서로 경쟁관계에 있다는 것은 욕망의 간접화가 훨씬 더 비극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르네 지라르는 전자를 외적 간접화라 하고 후자를 내적 간접화라고 하며 전자의 범주에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을 분류하고 후자의 범주에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분류한다. 그는 현대인의 욕망이 주체와 중개자의 거리가 가까워짐으로써 주체와 대상을 구분할 수 없게 된 점에서 훨씬 더 비극적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김치수
이화여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문학평론가이자 사회인류학자인 르네 지라르는 1923년 남프랑스 아비뇽에서 태어나 1947년 파리 고문서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인디애나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디애나 대학 프랑스어 강사를 시작으로 듀크 대학, 존스 홉킨스 대학, 뉴욕 주립대학, 스탠퍼드 대학 등에서 정교수·석좌교수 등을 지내며 프랑스의 역사·문화·문학·사상에 관한 강의를 하였다. 1961년에는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비평언어와 인문학’에 관한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하였는데, 여기에는 바르트·데리다·골드만·이폴리트·라캉·풀레·토도로프·베르낭 등 많은 학자들이 참가했다.

지라르의 관심은 소설 속의 인물들이 어떻게 욕망하는가 하는 인간 욕망의 구조를 밝혀내는 데에서 출발한다. 그것이 그의 첫 저서인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1961)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이다. 

인간의 욕망과 구조를 밝혀내려는 작업의 결실인 『폭력과 성스러움』(1972)은 1973년 프랑스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그밖에도 그는 『지하실의 비평』(1976), 『세상이 만들어질 때부터 숨겨져온 것』(1978, 공저), 『이중규제』(1978), 『희생양』(1982), 『옛 사람들이 걸어간 사악한 길』(1985), 『나는 번개처럼 빠르게 떨어지는 사탄을 보았노라』(1999) 등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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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한길사 / 한길아트2011.12.14 11:18

파주 헤이리 ‘서예삼협 파주대전’ 전시글이 동아일보에 실렸습니다. 그 내용을 블로그에 소개합니다. 이 기사는 원저자의 허락하에 기재됨을 밝힙니다.



 

서예삼협 파주대전(왼쪽), 정도준 씨는 문자를 해체하면서도 문자의 조형성을 회화적으로 표현한 작품을 통해 한국의 서예를 서구에 알리는 데 앞장서 왔다.(오른쪽 위), 진지한 실험과 다채로운 조형어법으로 우리 서예의 지평을 확장시킨 박원규 씨는 벽면을 가득 채운 대작을 선보였다.(오른쪽 가운데), 전통을 충실히 지키면서도 새로운 세계를 구축한 이돈흥 씨는 힘찬 획으로 산 이미지를 그려냈다.(오른쪽 아래)





















눈이 행복한 전시다. 현대 서예의 고수들이 붓으로 일합을 겨루는 ‘서예삼협 파주대전(書藝三俠 坡州大戰)’에 대한 얘기다. 경기 파주시 탄현면 예술마을 헤이리의 갤러리 한길, 북하우스 아트스페이스를 통째로 사용한 대규모 기획전으로, 전통과 이를 현대적으로 변용한 실험이 맞춤하게 균형을 이루며 보는 이를 빠져들게 한다.

참여 작가는 전통을 충실히 지키며 자기 세계를 구축한 학정 이돈흥(64), 이미지와 글이 공존하는 과감한 작업으로 서예의 영토를 확장한 하석 박원규(64), 전통과 현대적 재해석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소헌 정도준 씨(63). 이들은 평화롭지만 치열한 내공 대결을 펼쳐 풍성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한길사가 창사 35주년 기념으로 마련한 이 전시는 정통 필법과 이를 응용한 작품에 두루 능한 작가들을 통해 서예의 미학과 가치를 새롭게 일깨운다. 김언호 대표는 “서예가 사람들과 동떨어진 섬처럼 존재하는 현실이 안타까워 다리를 놓고자 마련한 전시”라고 소개했다. 전시 중 특강이 열리고, 한정판 도록도 발간된다. 내년 2월 29일까지. 031-955-2041 


3인 3색의 축제

단순한 획으로 무등산을 생생히 되살려내고(학정), 문자를 해체하면서도 그 본질은 지켜 우리 서예의 미학을 회화적으로 재해석하며(소헌), 벽을 가득 채운 서체의 웅장한 향연과 추상적 이미지가 시선을 압도한다(하석). 정통 서예부터 시각적 이미지가 도드라진 작품까지 어울린 전시는 흰 화선지를 벗어나 빨강, 노랑 종이를 쓰고, 일반 액자 대신 발광다이오드 패널을 활용하는 등 서예와 현대미술의 만남을 고민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세 작가의 길은 각기 달랐다. 학정의 스승은 광주에서 활동한 성곡 안규동. 하석은 강암 송성용의 문하에서 서예를 배웠고, 소헌은 일중 김충현을 사사했다. 학정은 우직하게 작품 활동을 하며 후학을 양성해 서예의 저변을 넓혀 왔다. 원교 이광사와 추사 김정희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학정체’를 일궈낸 그의 작품에선 “쓰면 느는데 어떻게 안 쓰겠는가”라고 말하는 뚝심과 끈기가 그대로 묻어난다.

영상세대의 눈을 사로잡을 만큼 자유분방하고 활달한 조형어법을 선보인 하석은 문자학 소양과 필법 이론에 해박한, 학구적인 서예가다. 1979년 동아미술제 대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그는 “이미 시도한 형식을 답습하지 않는다”는 정신 아래 모색과 도전을 거듭해 왔다. 그림문자가 만들어진 원시로 회귀한 듯, 문자와 이미지를 낙서처럼 쓱쓱 그린 듯한 작업에선 ‘팽팽하게 당긴 활처럼 극적 긴장과 내적 활력’이 충만하다. 소헌의 경우 내용과 조형, 언어와 이미지에 동등한 무게를 두고, 가장 정통적이면서도 가장 현대적인 서예의 미학을 구사한다. 지난 10년간 구미에서 잇단 초대전을 열면서 한국 서예를 해외에 알리는 데 가장 앞장선 서예가다. 전시에선 문자들이 수직과 수평, 원과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등 새로운 시도와 서예의 격조가 조화를 이루며 눈길을 붙잡는다. 


기운생동의 세계

서예를 고리타분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이 전시는 영상 시대의 중심에서 ‘붓글씨’의 존재 이유와 생존방식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 문화의 뿌리이자 한자 문화권의 정수가 서예에 있다고 침묵으로 웅변하기 때문이다.

한자를 읽을 줄 모른다고 주눅들 필요는 없다. 한글이든 한문이든 글자를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우선인데다 글씨의 시원으로 돌아가 그림문자처럼 재해석한 작업도 많다. 이돈흥 씨는 “내용과 상관없이 먼저 그 안에서 뿜어 나오는 기운생동의 감정을 느껴보라”고 권한다. 분석과 해독이 아닌, 만남과 느낌을 중시하는 현대미술의 감상법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작가 이름을 보지 않고 전시장을 한 바퀴 돌아보고 세 작가의 개성을 나름대로 익힌 뒤 다시 한 번 작품을 감상하면 더욱 흥미롭다. 전시장 곳곳에서 한 해를 마감하기 딱 좋은 글귀를 만나는 것도 덤이다. ‘성공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고 행복은 얻은 것에 만족하는 것이다.’ ‘가는 데까지 가거라. 가다가 막히면 앉아서 쉬거라. 쉬다 보면 새로운 길이 보이리.’


작성자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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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공지사항2011.12.07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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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한길사 / 한길아트2011.11.30 13:05

캄보디아에 지뢰 제거, 미얀마 195개 마을에 샘물 건설, 북한에 20만 개 생리대를 만들 천과 5,000명이 입을 스판 벨벳 발송, 캄보디아ㆍ스리랑카에 5,000켤레 운동화 후원, 히말라야에 초중고등학교 설립, 국내에 대안학교인 헌산중학교, 탈북청소년을 위한 한겨레중고등학교 설립 등……. 50여 년 동안 세계 55개국에 나눔과 봉사를 실천한 박청수 교무는 ‘한국의 마더 테레사’라 불린다. 그가 세계 곳곳에 보낸 갖가지 구호물자는 컨테이너 30대 분량에 이른다. 그에게 나눔에 대한 생각과 철학을 물었다. “모든 일이 어머니로 인해 예정된 길이었다. 나의 종교적 삶을 열어준 이는 바로 어머니였다.” 『어머니가 가르쳐준 길』 출간에 맞춰 11월 28일 프레스센터 19층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책으로 남기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어머니는 항시 “너른 세상에 나아가 많은 사람을 위해 일해라” 하셨습니다. 그 말씀 따라 원불교 교무가 되어 세계 53개국을 방문하고 55개국을 도왔습니다. 이 모두 어머니가 저를 이끌어준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어머니 뜻을 배반하지 않고 칠십 평생 일했더니 많은 결실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일제시대에 태어난 어머니는 27세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되어 두 딸을 키우셨습니다. 무학에 남들이 배워서 잘사는 걸 본 적도 없는데 우리가 큰뜻을 펼치게 하기 위해 교육을 시키셨지요. 늘 “그까짓 시집 가서 뭐할 것이냐. 기왕이면 큰 곳에서 큰 살림을 해라. 나는 외손주 등에 업고 싶지 않다. 사위 절 받고 싶지도 않다” 하셨습니다. 저는 전북 남원 수지면 홈실마을이라는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전주여고를 거쳐 박사학위까지 받았는데 모두 어머니가 교육을 뒷바라지해주신 덕분입니다. 3년 전 91세에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잘 키워주셔서 너무도 감사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어 책으로 남기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끝도 없는 기도와 정성이 저를 만들었기에, 어머니에게 영광을 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교무님이 생각하시는 ‘효’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젊은 날 자식을 위해 희생한 부모가 홀로 자식을 기다리는 마음을 알아주는 게 자식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시간과 돈을 들일 이유는 없습니다. 잠깐만 찾아 뵙고, 목소리를 들려주고, 얼굴을 보여드리면 됩니다. 부모는 항상 자식이 그립고, 자식을 보고 싶어하기 때문에 그 마음을 채워드려야만 비로소 행복해하실 것입니다.


봉사와 나눔을 실천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보면 마치 내가 지금 당한 일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대로, 도움의 손길을 절실하다고 느껴지는 곳이라면 달려가는 것이 제가 사는 방식이 되어버렸습니다. 세상을 사는 동안 의미 있다고 여겨지는 일들, 그것을 하면 유익하리라고 믿어지는 일들을 제 일감이라 생각하고 챙기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세월이 흐르면서 작았던 것이 점점 커지고, 숨은 것은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이야기해보자면, 캄보디아에서는 한 달에 300명씩 팔다리가 잘린다고 합니다. 캄보디아 사람들보다 많은 수의 지뢰가 그 땅에 묻혀 있다는 말을 듣고, 한 개의 지뢰라도 제거하겠다는 마음으로 국교도 단절된 그 나라를 돕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정성을 모아 성금을 전달했고 나중에는 캄보디아 바탐방에 무료 구제병원을 세웠습니다. 지금은 한 달 1,500명의 환자가 그곳에서 의료혜택을 입고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 시작한 작은 일, 그것이 모여 현재까지 13만 명 환자를 도운 큰일이 되었습니다.


 

“내가 선택한 불특정 다수의 그들이 없었다면 제 인생의 의미는 반으로 줄었을 것입니다.” 


봉사는 남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성취감과 만족, 행복과 충만감을 느끼기 위해 그들을 돕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를 두고 남을 위해 좋은 일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속으로, 내가 ‘남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남’들이 내 삶을 가꾸는 텃밭이 되어주고 때로는 넓은 농경지도 되어서 삶의 의미를 충족시켜주고 성취감과 보람을 안겨주는 고마운 인연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그들, 내가 선택한 불특정 다수의 그들이 없었다면 제 인생의 의미는 반으로 줄어들었을 것입니다.
 

교무님에게는 종교의 경계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천주교 시설 성 라자로 마을 나환자들을 31년간 도왔습니다. 아무리 일이 바빠도 성 라자로 마을 공동 생일날인 2월 9일에는 꼭 국내에 있었습니다. 나환자들을 돕기 위해 15년간 직접 엿을 팔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진심을 다하다보니 나환자 식구들로부터 “밥을 한 끼 굶고 그 대가로 박 교무님을 볼 수 있다면 나는 차라리 한 끼 밥을 굶고 만나고 싶은 심정이오”라는 고마운 고백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또 법정 스님이 회주로 계시던 맑고 향기롭게, 기독교의 대한성공회와도 협력했습니다. 타종교라고 배척했다면 만날 수 없었을 고마운 인연들입니다. 이는 세상의 모든 종교가 한 이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 실천이었습니다.



정리-편집부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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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다반사2011.11.02 11:32

제가 간직하고 있는 ‘두고두고 읽는 책’ 목록 중에는 ‘연애소설’들이 있습니다. 보통은 연애소설을 한 번 읽고 말 텐데, 저는 그것들을 읽을수록 잊고 있던 작은 깨달음을 얻곤 하기에 버리지 못합니다. 깨달음은 보통 ‘그래, 내가 그때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류의 ‘지난 연애에 대한 반성’이 대부분입니다. 깨달음은, 헤어진 기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깊게 와닿습니다.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는 관계라는 자명한 사실 앞에서 연희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만약 그때 누군가 연희에게 한 가지 소원을 물었다면 서슴없이 대답했을 것이다. 생의 가장 마지막 순간을 그와 함께 보내고 싶다는 것. 자신도 세중도 저마다의 삶을 다 살고 나서, 이번 생에 부과된 사회적 의무나 가정적 책임, 주어진 과업을 각자 완수한 다음, 한 일 년쯤 여분의 삶이 허용된다면 생의 가장 마지막 네 계절쯤을 그와 함께 보내고 싶다는 것. 

김형경, 『성에』


『성에』는 읽을수록 주인공의 심정에 공감이 가는 책입니다. 처음에는 연희도, 세중도, 그리고 그들의 탐닉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후에, 개인적으로 원치 않는 헤어짐을 겪고 난 다음에, 그제야 연희의 마음에 공감하게 되었지요. 내가 가진 것을 다 버리고서라도 소유하고 싶은 욕망. 소유욕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앨리스는 감정을 말로 옮길 힘이 없었다. 아무 말 안 해도, 그 남자가 바라보면서 "그래요, 알아요"라고 속삭여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알랭 드 보통, 『우리는 사랑일까』 

『우리는 사랑일까』는 연애를 할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자주 들여다보게 되는 소설입니다. ‘앨리스’라는 캐릭터에 대한 매력 때문이지요. ‘어쩜 이렇게 여자 마음을 잘 알까’ 보통의 관찰력에 감탄하며 읽던 책입니다. 이 책을 읽은 여자는 대부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앨리스는 바로 나잖아!” 겉으로는 강한 척하지만 속은 물렁한 앨리스. 남자에게 이해 못할 취급을 당해도 ‘그는 원래 좋은 사람인데 오늘 내가 신경을 거슬리게 해서 그런 걸 거야’라고 생각하는 ‘착한여자 콤플렉스’에 빠진 엘리스는 내 안에도 있습니다.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아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 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문태준, 「가재미」

소설은 아니지만,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읽을 때마다 떠나간 이들이 생각나 눈시울을 붉히게 되는 시가 있습니다. 처음 「가재미」를 읽을 때는 시의 화자가 병든 연인을 떠나보내는 모습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친척 어른(고모였던 것 같습니다)께서 병원에 누워 계시는 모습을 보고 지은 시라고 하지요. ^^; 떠나보내는 이의 안타까움과 떠나는 이의 슬픔이 잘 묻어나 있는 것 같습니다. 「가재미」는 가수 이은미 씨가 우울증으로 자살충동을 느끼고 있을 때, 위로를 받은 시였다고 합니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연애는 어렵고, 또 이별은 그보다 몇 배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럴 때마다 연애소설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책으로 위로받은 적이 있는 분들은 이해하실 거예요. 내게 위로를 주었던 책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는 것은, 그 시절 나를 다시 만나 화해하는 기분이라는 것을요. 한번쯤 사랑에 아파본 경험이 있는 사람과 이 글들을 함께 읽고 싶습니다.
 

편집부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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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그레이트북스2011.10.27 10:33




영국의 유명한 역사학자 홉스봄은 1789년부터 1848년 사이의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이라는 ‘이중혁명’을 전체사의 관점에서 서술한다. 영국에서는 이 두 혁명이 약 100년이라는 시차를 두고 자생적으로 일어나 근대시민사회를 수립하였다. 그러나 영국 이외의 유럽 대륙의 여러 나라에서는 프랑스 대혁명을 기폭제로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이 동시에 폭발하여 진행되었고, 그 충격은 유럽 봉건사회의 구체제를 근본적으로 붕괴시키고 급격하게 근대시민사회를 수립하게 된 계기를 마련했다.

어떤 측면에서 볼 때 이중혁명에 대한 홉스봄의 강조는, 19세기 이후의 모든 역사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궁극적인 승리가 불가피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 자체가 역사의 법칙이라는 형태로 서술될 수 있다는 근대화론의 주장과도 상통한다.

홉스봄은 이중혁명의 전개과정을 프랑스 대혁명, 산업혁명, 전쟁, 민족주의, 노동빈민, 종교·예술·과학의 변화, 1848년의 혁명 등을 분석해서 체계화한다. 서양 근대사 중에서도 이 시기가 가장 극적이고 혁명적인 시기인데, 저자는 이 어려운 주제를 알기 쉽게 풀이하면서도 깊이 있는 학술적인 안목으로 정리함으로써 역사를 대중화한다.

인류문명사의 커다란 전환점이었던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을 다루는 저자의 시각은 정치사·사건사 중심의 구태의연한 서술체계에서 벗어나 민중의 생활상까지도 생생하게 드러내, 역사란 단지 제도사나 경제사만이 아니라 인간이 엮어내는 감동의 드라마라는 것을 실감시켜준다. 홉스봄은 바로 이러한 점이 역사의 진정한 면모임을 그의 독특한 역사관으로 보여주고 있다.


 

산업혁명의 결과가 낳은 암흑시대의 자화상

우리는 1789년의 세계를 살펴보는 일부터 시작했었다. 그로부터 약 50년 뒤의 세계 상태, 즉 그때까지 기록된 역사 가운데 가장 혁명적인 반세기가 막을 내리는 시점에서의 세계 상태를 훑어보는 것으로 이 책의 결론을 삼고자 한다.

그것은 최상급의 시대였다. 이 계산과 산정의 시대가 세계에 관한 기존에 알고 있는 모든 국면을 기록하려던 수많은 새로운 통계들에 비추어볼 때, 이 시대의 계량될 수 있는 양이란 양은 거의 모두가 종전의 어느 때보다도 더 많았다(또는 더 적었다)는 결론을 내려도 아무런 잘못이 없을 것이다.

지도상에 표시되어 있고 서로 교류하는, 알려진 세계의 면적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확대되었으며 교통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빨라졌다. 세계의 인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많아졌고, 어떤 경우에는 모두의 예상 또는 종전의 가능성 이상으로 증대했다. 거대한 도시의 수는 전에 없이 급속하게 증가했다. 공업 생산은 천문학적인 숫자에 달했다. 예를 들어 1840년에는 약 6억 파운드의 석탄이 지구 내부에서 채굴되었다. 국제무역에 관한 수치는 이보다 한술 더 뜨는 엄청난 것이었다. 즉 1780년 이래 네 배로 증가하여 약 8억 파운드 스털링(sterling)에 달했으며, 보다 불건전하고 불안정한 통화단위로는 이보다도 훨씬 더 증가했던 것이다.

과학은 일찍이 이토록 득의양양했던 적이 없었으며, 지식이 이처럼 널리 보급된 적도 없었다. 4000종 이상의 신문이 전 세계 시민들에게 지식을 보급했으며, 영국과 독일 및 미국에서만도 해마다 출판된 서적의 종류가 다섯 자리 숫자에 이르렀다. 발명에 대한 인간의 능력은 해마다 더욱 아찔할 만큼 높은 정상을 정복해가고 있었다. 아르강 등(1782~84)---그것은 기름등과 양초 이래 최초의 큰 진보였다---은 흔히 가스 공장으로 일컬어진 거대한 제조장에서 생산되어 끝없이 이어진 지하 파이프로 보내져 공장과 그리고 얼마 후 유럽의 여러 도시를 조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자마자 벌써 그것은 이미 혁명적인 인공조명이라고 할 수 없게 되었다. 런던은 1807년부터, 더블린은 1818년부터, 파리는 1819년부터, 멀리 떨어진 시드니도 1841년부터 그것으로 불을 밝혔던 것이다. 또 전기 아크 등도 이미 알려져 있었다. 런던의 휘트스턴 교수는 이미 영국과 프랑스를 해저 전신으로 연결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연합왕국에서 철도 이용객의 수는 이미 연간 4800만 명에 이르고 있었고(1845), 대영제국에서는 3000마일---1850년까지는 6000마일 이상---의 철도 선로를, 그리고 미국에서는 9000마일의 선로를 따라 남녀들이 돌아다닐 수 있었다. 정기 기선은 이미 유럽과 인도를 연결시키고 있었다.

이와 같은 승리에는 물론 어두운 면이 따랐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통계표로 쉽사리 요약되어 나타날 수는 없었다. 산업혁명은 인류가 살아온 세계 중에서도 가장 추악한 세계를 낳았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오늘날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 당시의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것을 양적으로 표현할 줄 알았겠는가. 맨체스터의 음산하고 악취가 진동하며 연무(煙霧) 가득한 거리는 이미 그러한 사실을 증언해주고 있었다. 달리 표현하면 산업혁명은 전례 없이 많은 남녀를 토지로부터 몰아내고 대를 물려 누려온 확실성을 박탈함으로써 아마도 가장 불행한 세계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1840년대 진보의 투사들을 그들의 자신감과 그들의 결의를 보아 용서할 수 있다. “인류를 보다 행복하고 현명하며 향상시키기 위하여 상업이 자유로이 전진할 수 있게 하고, 그럼으로써 문명과 평화를 아울러 이끌어가겠다”는 그들의 자신감과 결의 말이다. 위에 인용한 장밋빛 희망에 찬 구절은 파머스턴 경이 가장 암담했던 1842년에 한 말이지만, 그는 이 말끝에 “각하, 이것은 신의 섭리입니다”라고 꼬리를 달았던 것이다.

가장 충격적이라 할 그러한 종류의 빈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빈곤은 더욱더 증대하고 또한 그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산업과 과학의 승리를 가늠한 그 전(全)시대적 기준에서 볼 때, 이성적인 관찰자 중 가장 비관적인 자라 해도 물질적인 면의 빈곤이 과거 어느 시대보다 더 심해졌다거나, 당시의 비공업국들과 비교해서 더 심했다고 주장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주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노동빈민의 물질적 번영이라지만 그것은 흔히 과거의 암흑시대보다 나아진 바가 없으며, 때로는 현존하는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그 시대의 것보다도 나빴다고 말한다면 이 말은 더할 나위 없이 통렬한 비난이라 할 수 있다.

새로운 것과 낡은 것의 대조. 런던 역 사무소(1814) 바깥에 보이는
브링턴 역마차와 같은 우편마차는 도로건설자들이 건설한 자갈길 위를 달리게 되었다.



『혁명의 시대』 제2부 제16장 「결론: 1848년을 향하여」

 


이중혁명의 근대사회에 미친 세계사적 결과

역사학자로서 홉스봄이 관심을 갖고 다루는 주제는 그야말로 광범위하다. 그는 농민사나 노동계급사와 같은 계급형성과 관련된 주제들로부터 시작하여, 자본주의 발전과 관련된 경제사 분야에서도 활발한 연구를 하고 있으며, 심지어 문화비평가로서 재즈에 대한 분석서를 낸 적도 있었다. 이처럼 광범위한 그의 관심사 가운데서도, 『혁명의 시대 1789~1848』은 자본주의의 발전, 그것도 ‘장기(長期) 19세기’라 불리는 시기의 첫번째 국면에서 나타난 세계 자본주의의 발전을 다루고 있다.

홉스봄은 이 책이 집필되기 훨씬 이전인 1950년대에 이미 「17세기 위기론」이라는 선구적인 연구를 제출하여 많은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은 바 있으며, 이어서 『산업과 제국』에서는 영국 자본주의의 발전을 세계사적인 맥락에서 검토하였다. 「17세기 위기론」에서 그는, 유럽은 17세기에 전반적 위기를 경험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이미 이 시기에 자본주의 체제로의 전환점이 사회경제적으로 준비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산업과 제국』에서 그는 자본주의의 세계성에 주목하면서, 영국의 발전이 제국주의의 출현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즉 “자본주의는 이미 상당히 자본주의화되어 있는 경제에서만 발달할 수 있다”고 지적하는 동시에 다른 나라와 비교되는 영국의 급속한 발전은 세계시장의 존재 때문이었다고 함으로써, 그는 자본주의 발전에서 해외식민지의 중요성을 제기하였던 것이다. 17세기부터 시작된 영국의 자본주의적 사회경제로의 변화와 세계시장의 존재야말로 영국이 다른 나라들보다 일찌감치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이었다는 그의 지적은 『혁명의 시대』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그는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는 자본주의의 발전과정 가운데 그것이 압도적으로 승리하게 된 시기를 ‘장기 19세기’로 규정한 다음, 다시 그것을 세 단계(즉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로 구분한다. 『혁명의 시대』에서는 그 가운데서도 산업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승리하면서 등장하기 시작한 1789년부터 1848년까지의 첫번째 시기를 다루고 있다.

홉스봄은 이 책에서 첫째, 산업자본주의의 승리는 어떻게 가능했으며 둘째, 그 결과 세계는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추적하고 있다. 앞에서 지적했지만, 그는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에 이르는 이 시기는 자본주의가 시작된 시기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승리한 시기로 보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17세기의 일반적 위기론에서 밝힌 것처럼, 18세기 유럽은 이미 자본주의적 요소가 내재하고 있었으며, 바로 그러한 사실이 자본주의가 다른 지역이 아니라 어째서 유럽 영국에서 특히 압도적으로 승리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해준다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장기 19세기의 첫번째 국면에서 설명되어야 할 것은 자본주의의 존재나 시작 여부가 아니라, 왜 이 시기에 와서 비로소 자본주의의 승리가 가능하게 되었는지였다.

홉스봄에 따르면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바로 이중혁명이었다. 이중혁명이란 영국의 산업혁명과 프랑스 대혁명을 지칭하는데, 영국의 산업혁명이 자본주의 경제를 낳았다면 프랑스 대혁명은 자본주의 정치를 낳았다. 두 혁명의 경과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홉스봄은 두 혁명이 서로 별개의 혁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의 정치경제를 규정하는 통합적인 혁명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두 혁명은 각각 영국과 프랑스에서 나타났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정치경제의 전형이라는 측면에서 세계사적이고 보편적인 혁명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홉스봄의 이러한 논지는 보편주의적, 혹은 목적론적 역사 해석이 되기에는 너무도 많은 유보 조항을 허용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영국은 프랑스와 같은 정치혁명을 경험하지 못했으며, 프랑스는 정치혁명에도 불구하고 산업자본주의가 그에 걸맞게 발전하지 못했다. 또한 프로이센은 정치혁명이 부재한 가운데 절대주의하에서 산업혁명을 달성한 바 있다. 이러한 형태의 여러 변종들은 홉스봄이 제시한 근대 자본주의 사회를 규정하는 이중혁명의 이론적 중요성을 상당 부분 침식하고 있다.

물론 홉스봄은 이와 같은 역사적 현실을 다룸에 있어 보다 유연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즉 이중혁명은 혁명의 유무와 상관없이 자본주의 사회들이라면 경향적으로 경험해야만 될 사회적 변화의 기본 모델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에서 홉스봄이 강조한 이중혁명의 중요성은 하나의 경향성 정도로 자리잡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오히려 홉스봄이 강조하고자 했던 것은 모든 세계가 이중혁명을 겪어야만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중혁명이 미친 세계사적 결과였다. 그에 따르면 근대 세계는 이중혁명으로 인해 비로소 공업 일반이 아닌 자본주의적 공업의 승리가, 자유와 평등 일반이 아닌 부르주아적 자유와 평등의 승리가, 근대 경제들 일반이 아닌 자본주의의 중심부의 승리가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자본주의의 발전에 대한 이와 같은 홉스봄의 설명은 경직된 역사적 필연성에 입각하여 자본주의의 발전을 설명하기보다는, 해당 사회가 역사적으로 발전시켜온 역사적 구체성에 입각하여 그것을 설명함으로써, 한편으로는 마르크스의 논지를 충실하게 따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보다 역사적인 구체성을 획득하게 되었다.

홉스봄이 「17세기 위기론」과 『혁명의 시대』에서 다루고 있는 자본주의의 발전 문제는 마르크스가 단편적으로 제시한 자본주의로의 이행에 관한 문제의 연장선상에 있다. 마르크스는 이 문제를 자본론의 ‘소위 본원적 축적’에 관한 장에서 간략하게 검토한 적은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다루지는 않았다. 대략 16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는 매우 광범위한 시간대에 걸쳐 있는 이 시기는 이론적으로나 역사학적으로 공백 상태에 놓여 있었다. 때문에 이에 관련된 문제들은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커다란 논란을 야기시킨 바 있다.



 

김동택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전임연구교수·정치학



 

에릭 홉스봄(Eric John Ernst Hobsbawm, 1917~2012)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오스트리아계 어머니와 유대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런던의 성 메리르본 고전문법학교에 다녔고 케임브리지의 킹스칼리지에 들어가 역사학을 전공했다. 

1947년 런던 대학 버크벡 칼리지의 사학과 강사로 부임했다가 1959년 전임, 1970년에는 경제사 및 사회사 정교수를 지냈으며 1982년 은퇴했다. 또한 1949년부터 1955년까지 케임브리지 킹스칼리지의 특별연구원으로 재직한 바 있으며, 1984년부터는 영국아카데미 및 미국아카데미 특별회원, 뉴욕신사회연구원 교수, 버크벡 칼리지 명예교수로 왕성하게 연구활동을 하였다.

홉스봄은 20세기 최고의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로 손꼽혔다. 특히 ‘아래로부터 위로의 역사’적 시각에서 전체사로서의 역사구도를 일관되게 견지하여 박식한 역사가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역사 3부작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는 그의 대표작으로서 프랑스 대혁명과 산업혁명으로 인류사회가 어떻게 변화·발전해왔고, 근대세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방대한 자료를 통해 완전히 새롭게 해석해내고 있다. 

1948년에 첫 저서 『노동의 전환점』(Labour? Turning Point, 1880~1900)을 출간했으며, 1950년에는 「페이비언주의와 페이비언들, 1884~1914」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밖에도 『노동하는 인간』(Labouring Men), 『산업과 제국』(Industry and Empire), 『원초적 반란자들』(Primitive Rebels), 『의적의 사회사』(The Bandits), 『극단의 시대』(The Age of Extremes, 1914~91) 등이 있으며, 1997년에 그의 역사관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역사론』(On History)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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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기번은 카피톨리누스 언덕에 앉아 오렌지빛 석양이 비추는 폐허를 내려다보며 그 유명한 『로마제국쇠망사』를 써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시오노 나나미도 아마 팔라티노 언덕에서 로마 시가지를 굽어보며 명상에 잠겼으리라. 그리고 나 역시 그들과 같은 로마의 꿈을 꾼다. 4C의 고구려 소녀가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 찬란한 포룸 로마눔에 입성하는 상상도 하고, 언젠가 이탈리아라는 머나먼 이국 땅에 도착하여 독일의 문호 괴테마냥 로마에 도취되는 꿈도 꾼다.

비단 로마를 꿈꾸는 사람의 꿈은 이뿐만이 아니리라. 투명에 가까운 지중해를 가로지르며 로마의 외항인 오스티아로 향하는 수십 척의 갤리선, 파르티아와 이집트에서 들여온 진귀한 세공품들, 온갖 민족이 융합되는 세계적인 메트로폴리스 로마. 모든 현대인은 그 평화로웠던 팍스로마나를 추억한다. 현대의 법은 로마법의 변주이며, 미국의 국회의사당은 판테온의 모방이지 않은가? 또한 로마라는 채석장은 셰익스피어에서부터 최근 인기리에 상영된 미국 드라마 「스파르타쿠스」까지 풍부한 문화의 석재를 제공한다.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의 환상적인 나일강 관람과 폼페이우스 극장에서 친히 리라를 켜며 노래를 했다는 폭군 네로의 일화는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그 어느 시기보다 이상에 가까웠던 팍스로마나에 대한 향수, 그리고 천년에 걸친 시간이 빚어낸 다양한 인간 군상의 흥미로운 일화 때문에 우리는 로마를 사랑하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로마가 꾸준히 현대인들의 영감을 자극하는 건, 로마의 역사 자체가 인간의 드라마와 닮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로마는 늪지로 된 언덕에 건국되었으며, 바다와 인접해 있지 않은 불리한 지리적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에트루리아나 켈트족과 같은 강한 주변 세력이 혼재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로마가 역사의 승리자가 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로마는 예상을 뒤엎었다. 그리고 황금 시대를 열었다. 그 영광은 무려 천년이라는 기간 동안 지속되지만, 그 어떤 것도 영원히 지속될 순 없다는 걸 보여주려는 듯이 결국 찬란하게 멸망한다. 이러한 굴곡은 감동과 반전, 그리고 결말이라는 측면에 인간의 삶과 닮아 있다. 나는 로마의 역사란 단순히 지나간 과거의 기록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로마의 역사적 흐름은 굴곡진 우리의 인생과 같다. 그러기에 우리는 로마의 역사를 읽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팍스로마나와 같은 위대한 어떤 것을 위해 로마를 배울 필요가 있다.


 

“로마의 역사적 흐름은 굴곡진 우리의 인생과 같다. 그러기에 우리는 로마의 역사를 읽어야 하는 것이다.
팍스로마나와 같은 위대한 어떤 것을 위해 로마를 배울 필요가 있다.”



『로마인 이야기』 15권을 찬찬히 읽으면서 나는 그 ‘어떤 것’ 때문에 로마인들이 위대한 시기를 열 수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시오노 나나미 역시 그 문제에 대해 언급한다. “로마인은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족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보다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는 지중해를 자신들의 내해(內海)로 만들었다. 그 이유는 『로마인 이야기』 15권을 관통하며 계속 등장하는 ‘개방성과 관용정신’에 있다. 이 두 단어는 『로마인 이야기』를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나 역시 이 이상으로 로마인의 민족성을 대표할 수 있는 단어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어찌 보면 당연한 미덕이고 전혀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이지만, 나는 늑대의 자손이 건국했다는 그 고대의 제국이 현대보다 개방성의 측면에서 더 진보했음에 깜짝 놀랐다.

개방성은 지구촌이니, 코즈모폴리턴이니 하는 범세계적인 요즘 추세에 강조되는 미덕이다. 하지만 여전히 세계 도처에는 타민족과 타문화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존재한다. 여기서는 나 자신조차도 자유롭지 않다. 내가 다니는 대학 캠퍼스에는 아프리카나 중동에서 온 여러 학우가 있는데, 피부색이나 복장에서 ‘다름’이 확연히 느껴지는 그들에게 다가가기가 여간 쉽지 않다. 반면 일본이나 유럽에서 온 학우들에겐 친해지고 싶고, 그들의 문화를 더 알고 싶다고 생각한다. 책으로 문화엔 우열이 없음을 수없이 배웠지만, 나 역시 현실에선 뿌리 깊은 문화상대주의의 시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문화상대주의란 자신보다 저열하고 보잘것없다고 생각되는 문화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거라고 생각한다. 관심이 없다는 것은 그것의 소멸과 파멸도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다. 패자가 된 로마는 어땠을까? 그들은 승자로서 우월감에 도취되어 타민족의 문화를 말살하지는 않았을까? 그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탈리아 반도 위에 자리 잡은 갈리아인은 라틴족인 로마인과 그 기원 자체가 다르며 문화적으로도 확연히 다른 양상을 띤다. 게르만족이나 브리타니아족 역시 신체적 측면에서 한눈에 로마인과 구분이 되며, 다소 비문명적인 양상을 띤다. 어디 그뿐인가. 지중해 저편에는 커피빛 피부색을 지닌 누미비아인과 이집트인이 있으며, 동방세계의 파르티아인 역시 다르기로는 말할 것도 없다. 로마는 이런 다양한 이민족을 억압하거나 말살하지 않았다. 그들의 종교를 인정해주었고 때론 자치를 인정해주기도 했다. 로마인들은 다양한 구성분자로 이루어진 지중해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 하나의 통일된 문화와 종교만을 강요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던 것이다.

심지어 속주민들에게 기존의 기득권인 ‘시민권’을 부여했다는 것은 놀라운 진보라고 생각한다. 로마의 현제로 추앙되는 트라야누스ㆍ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속주 출신이었다. 일제식민지 치하의 조선인이 일본 총리가 된 것과 비슷하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지는 몰라도 어쨌든 본질적 측면에서 로마인들은 진보적이고 개방적이었다. 그들에게 본국과 속주의 관계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착취와 억압,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아니었다. 그저 지역의 특수성에 따라 나뉜 행정구역에 불과했다. 에드워드 기번은 말한다. “고대인들이 애국심이라고 명명한 공적 미덕은 자신이 속한 자유 정부의 유지와 번영이 자신의 이해가 달려 있는 문제라고 느끼는 데서 시작한다”라고. 시민권의 획득으로 로마의 변방에서 지중해 세계의 중심으로 부상하게 된 순간, 속주민들은 로마와 자신의 운명을 같이하게 된다. 유명한 예를 들자면, 율리우스 키빌루스가 갈리아 제국을 건설하고자 했을 때 갈리아는 로마의 속주로 남기를 원했다. 타민족을 수용하고 그들의 권리를 인정해줌으로써, 그들 자신이 ‘핍박받는 속주’가 아닌 로마와 한 배를 탄 ‘제국의 중심’이라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장점만 있을 수는 없다. 로마는 팽창주의의 측면에서 근대 제국주의의 모태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군사력을 앞세운 폭력적 확장이라는 점에서 비판받을 만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로마의 제국주의와 근대의 제국주의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한다. 근대의 제국주의는 식민지의 고유 문화를 인정하거나 소규모의 자치라도 허용하는 일은 없었다. 무엇보다 식민지란 착취의 대상이었다. 고대 로마에도 전리품의 약탈은 있었지만 매년 속주에 공납을 요구하는 일은 없었다. 속주란 로마세계에 편입된 일원으로써 협력하고 보호해야 할 하나의 행정 구역이었던 것이다. 물론 누가 누구를 보호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한 민족이 결정해야 할 사안이며, 군사적으로 우위에 있는 집단이 결정해서는 안 되는 것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근대 제국주의와 로마의 제국주의를 공통된 지점에 두고 바라볼 수는 없는 일이다. 공존이 제거된 근대의 제국들은 단지 로마의 독수리 문양만을 본 따 깃발에 달았을 뿐이다. 팍스저먼도, 팍스브리튼도 실현되지 않았다는 게 그 결정적 증거가 되지 않을까?

이처럼 고대 로마인의 개방성과 관용정신을 계승하지 못한 우리는 아직도 수많은 혼란을 빚고 있다. 전쟁과 테러, 종교와 인종 간의 갈등은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이다. 특히 종교적인 부분에서 우리는 고대인들의 의식을 한참 따라가지 못한다. 고대 로마는 다신교 사회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통합한 모든 이민족 신을 자신의 신으로 받아들였으며, 어느 특정 신만을 위한 신전이 아닌, 만신을 위한 판테온을 지었다. 종교적 화합이 정치적 안정을 위해 중요한 이유는 종교가 절대적인 신념체제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힘의 논리로 어떤 지역을 평정했다고 한들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그들의 가치체계까지 정복할 수는 없다. 그것을 억지로 바꾸려 든다면 반감만 일어날 뿐이다. 특히 다양한 민족들이 포진한 지중해 세계에서는 그 정도가 더 심했을 것이다. 로마인들은 수많은 이민족과 싸웠지만, 그들의 수많은 사상과는 싸우지 않았다. 인간은 이질적 종교에 전쟁으로 인한 종속보다 더 급격히 저항하는 존재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유사점을 찾아내 받아들였고 인정했다. 반면 오늘날 우리는 타인의 종교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고 자신의 종교를 강요한다. 포교와 선교 역시 가치관의 강요라는 하나의 폭력적 행위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부분에서 인류가 반드시 진보하는 것만은 아님을 깊이 통감한다. 인류는 언제쯤 다시 일신교의 논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박애며 자비며 仁이며 결국 그 내면에 흐르는 줄기는 ‘사랑’이라는 거대하고도 일관된 흐름일 텐데.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며 느낀 또 하나는, 그들의 근면하고 성실한 농부적 기질이 한국인과 닮았다는 것이다. 묵묵히 땅을 일구고, 노력한 이상의 것을 기대하지 않는 근면함. 흙냄새 묻은 손으로 차근차근 빚어내는 정신. 누군가는 로마의 수도와 가도를 보며 실용성만이 강조된 완벽한 상상력의 결여라 폄하하지만 나는 오히려 담백하고 멋 부리지 않는 소박한 아름다움이 감동적이었다. 그들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한 영민한 현실주의자들이었다. 파라오의 황금 데스마스크가 아닌, 찌푸리고 주름진 모습 그대로를 본뜬 로마인의 데스마스크는 검버섯마저 그대로 표현하는 조선의 초상화와 참 닮아 있었다. 있는 그대로, 지금 이 땅에 나는 것들을 사랑하는 로마는 농부의 땀이 베인 우리의 과거와도 일치점이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더더욱 로마를 읽어야 하는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인종이 같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시대가 있다는 사실을 쓰고 싶었다.” 장엄한 세월에 묻혔을 법한 로마인들이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화두를 던질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팍스로마나. 전쟁이 없는 평화. 강도와 해적은 자취를 감추고 제국 전역에서 경제가 눈부시게 성장하는 전례 없는 황금 시대. 모든 인종이 아우러지는 세계 국가. 2,000년이 지난 후에도 그들의 업적이 회자되는 이유는 이루지 못한 이상에 그 어느 시기보다 근접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언제나 ‘나음’을 위해 도전하는 인류에게 로마는 수없이 되새김질해야 할 숙제일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모든 인종이 같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시대가 있다는 사실을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기원전 로마의 집정관 아이밀리아누스는 카르타고가 함락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이런 말을 뱉었다고 한다. “언젠가 트로이도, 프리아모스 왕과 그를 따르는 모든 전사들과 함께 멸망하리라.” 그는 어떤 국가와 문명도 영속적으로 존재할 수 없기에, 로마도 언젠가 오늘의 카르타고처럼 멸망하리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로마라는 드라마를 읽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언젠가 그 끝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살아가야 하는 삶의 아이러니, 언젠가 우리들의 유산이 을씨년스런 과거가 되리라는 걸 알면서도 웃어야 하는 오늘. 인간이 지니고 있는 본질적인 아픔을 동병상련하는 로마의 역사는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우리의 과거는 퇴색하나 소멸하진 않는다. 왜냐하면 위대했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폐허가 된 포룸 로마눔을 보기 위해 오늘도 로마로 향한다. 그리고 때론 빛바랜 프레스코화가 원본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문득 깨닫는다.


작성자 최은지



이 글은 로마인 이야기 901쇄 돌파기념 독후감 대회 대상 수상작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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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