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다반사2015.10.14 15:54

2015 파주북소리 소년한길 풍경

 

 

지난 10월 5일부터 11일까지 파주출판도시에서 파주북소리 2015가 열렸습니다.

급작스럽게 추워진 데다 비까지 내렸지만 많은 분들께서 찾아주셨습니다.

소년한길은 오치근 선생님, 박은미 선생님과 함께

10월 9일과 10일 이틀 동안 어린이 독자들을 만났습니다.

 

 

10월 9일에는 멀리 하동에서 오치근 선생님께서 파주를 찾아주셨습니다.

지난 5월에는 우리나라의 차 문화 유적과 전통을 알리는 『초록비 내리는 여행』을 펴내시면서

어린이들에게 다양한 차의 맛과 떡차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셨지요.

 

 

 

이번에도 어린이 독자들을 위해 양손 가득 선물을 들고 오셨습니다.

멀리 하동 악양의 지리산 자락 선생님 댁에서부터 가져오신 갖가지 자연물이었습니다.

어른 주먹보다도 큰 대봉감과 보랏빛 열매가 예쁜 구슬처럼 알알이 맺힌 자리공,

그리고 하동 특산물 녹차까지 가을의 정취를 한껏 품고 있었지요.

특히 함초롬한 흰 꽃과 동글동글 열매가 어우러진 녹차 가지가

싱그러운 하동의 가을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박관순 부사장님께서도 노박 덩굴, 찔레 열매, 독활, 상수리 열매, 대추 등

우리 주변 곳곳에 숨어 있는 나무 열매들을 한아름 선물해 주셨답니다.

 

 

 

어린이 친구들은 다양한 자연물들을 자세히 관찰하고 직접 손으로 만져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 뒤 선생님과 함께 자연물을 그리고 이름을 지어주거나 자신의 감상을 덧붙여 보았습니다.

어떤 친구는 대추를 직접 맛본 뒤 신기해하며 ‘대추는 사과 맛이 난다’는 감상을 쓰기도 했지요.

자리공 열매를 으깨 고운 자줏빛을 내기도 하고 찔레 열매로 예쁜 감을 주홍빛으로 물들이는 등

선생님께서 자리공 열매를 가지고 조그마한 힌트를 주시자 어린이들은 열매와 꽃, 이파리들을 관찰하며

곧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색을 자유로이 활용하는 법을 스스로 깨우치기도 했습니다.

 

 

 

커다란 도화지 두 장을 빼곡히 채우자 어느새 아쉬운 작별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어린이들은 작품을 소중히 안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10월 10일은 박은미 선생님과 함께한 시간이었습니다.

아침부터 비가 흩뿌려서 걱정했는데 많은 어린이들이 선생님을 뵙기 위해 찾아주었답니다.

선생님께서는 얼마 전 정원요정 히스와 친구들의 모험을 그린

신작 『정원요정 히스와 시계탑 속의 딜』을 출간하셨습니다.

 

 

 

 

박은미 선생님과 함께한 시간에는 책에도 중요하게 등장하는 시계탑을 만들었습니다.

선생님의 책 속에서 고양이 딜이 폭풍우에 휩쓸려 날아가 갇혔던 시계탑이지요.

 

모두들 상상력을 발휘해 멋진 시계탑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색종이를 접어 입체 지붕을 만든 시계탑, 안쪽으로 계단이 연결된 시계탑,

리본과 하트로 장식된 앙증맞은 탑 등 어린이들의 솜씨가 정말 대단했지요.

조금 어린 친구들은 선생님과 부모님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모든 친구들이 자신만의 시계탑을 멋지게 완성했습니다.

 

 

 

 

 

 

 

매해 북소리 축제 때마다 많은 사람들께서 찾아주시지만

항상 더 많은 분들과 함께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깁니다.

어린이들은 평소 좋아하던 그림책 작가 선생님을 직접 만나

저마다의 상상력과 재능을 마음껏 뽐낼 수 있었습니다.

소년한길과 오치근 선생님, 박은미 선생님은 독자들과 시간을 보내며

어린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많은 것을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또다시 어린이들과 함께 책 속에 푹 빠져들 날을 손꼽아 기다려 봅니다.

 

 

 

 

 

                                                                                                                                                        ⓒ소년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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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다반사2015.05.12 21:42

파주출판도시 어린이책잔치 2015 소년한길 풍경

 

 

지난 5월 1일부터 5일까지 파주출판도시에서 어린이책잔치가 열렸습니다.

많은 어린이들이 파주출판도시를 찾아 소중한 추억을 만들었지요.

소년한길에서는 어린이들이 책, 그리고 자연과 함께

뛰어놀 수 있는 독특한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준비했습니다.

날씨만큼이나 화창했던 어린이책잔치 풍경을 전해 드립니다.

 

 

5월 2일에는 멀리 하동에 살고 계신 오치근 선생님과 가족분들께서

어린이들을 만나기 위해 파주를 찾아주셨습니다.

오치근 선생님과 사모님이신 박나리 선생님, 세 딸 은별이, 은솔이, 은반이

이렇게 다섯 식구는 우리나라의 차 문화를 알리기 위해 두 해에 걸쳐

우리나라 곳곳에 남아 있는 차 문화 유적을 발품을 팔아 찾아다니며 소개하셨지요.

여행길에서 쓰고 그린 기록들을 모아 며칠 전 『초록비 내리는 여행』(소년한길, 2015)을 펴내셨습니다.

 

 

 

이번 어린이책잔치에서도 많은 어린이들이 차에 대해 보다 많은 것을 알게 되고

차를 편하게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시다가 아주 특별한 수업을 준비하셨지요.

어린이들은 먼저 선생님께서 직접 우린 발효차와 녹차 두 가지 차를 한 번씩 맛보았습니다.

 

 

처음 마셔보는 차 맛에 대해 서로의 감상을 나누는 시간,

한 어린이는 “차 맛이 예쁘다”고 표현해 선생님과 다른 친구들을 놀라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런 다음 우리나라 차 중 둥근 덩이로 만들어 발효시키는 떡차를 직접 빚어보았습니다.

선생님 가족분들이 직접 따서 찧어 오신 찻잎 반죽을 전통 문양이 새겨진 틀에

꽉꽉 채우고 눌러 빼내자, 멋진 떡차가 완성되었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선생님께서 가져오신 차나무 묘목을 자세히 관찰하며

차나무와 찻잔을 그리고, 그날 마셔본 차의 감상을 적어 보면서 관찰력과 창의력을 뽐냈지요.

 

 

그림에 푹 빠져 있다 보니 아쉽게도 금세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기념 촬영 후 어린이들 모두 차나무 화분을 하나씩 선물 받았습니다.

 

 

 

물 주는 법 등 차나무를 기를 때 알아야 할 점들에 대해서도 꼼꼼히 챙겨 주셨지요.

어린이들과 선생님은 다시 만나는 날까지 차나무들을 멋지게 키우기로 약속했답니다.

 

 

5월 3일에는 한길책박물관의 특별 프로그램 ‘찾아가는 박물관’의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책을 만들었을까?>가 진행되었습니다.

 

 

유럽 중세 시대와 19세기 고서들을 20,000여 점 이상 소장하고 있는 한길책박물관에서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책과 관련된 독특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번 어린이책잔치를 맞아 특별히 파주출판단지를 찾아온 것이지요.

중세 시대 필경사와 채식사가 되어 채색 필사본을 만들어 보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고대 수메르 사람들이 만들었던 진흙판 책부터 오늘날 우리들이 보는 종이책까지

책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고, 옛날 사람들이 책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도 알아보았습니다.

그런 뒤 필경사가 되어 또박또박 예쁜 글씨로 필사를 하고,

테두리와 머리 글자를 꾸미고 글에 어울리는 삽화를 그려 넣는 채식사가 되었습니다.

직접 손으로 책을 만들어 보며 책의 가치를 깨닫고 완성의 기쁨도 누릴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5월 5일에는 숲 안내자이기도 하신 한길사의 박관순 부사장님께서 진행하시는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자연 놀이 <와일드 시티 북>’이 진행되었습니다.

부사장님께서는 도시에 살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주변에서 자연을 만날 수 있는 방법과 함께

자연을 활용해 할 수 있는 재미있는 놀이들을 알려주셨습니다.

더욱 다양한 활동들은 『와일드 시티 북』『와일드 웨더 북』『스틱 북』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먼저 주변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곤충과 꽃을 살펴본 뒤, 밖으로 나가

숲 대문도 열고, 생태 그물망도 만들어 보며 신 나는 놀이를 즐겼습니다.

 

 

처음에는 낯설어하던 친구들도 선생님을 따라 발을 구르고 뜀박질을 하며

어느새 다른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렸습니다.

 

한참 뛰어 몸이 어느 정도 풀리자 이번에는 나란히 줄맞춰 근처 자연으로 나갔습니다.

루페로 꽃의 암술과 수술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개미나 무당벌레 알도 관찰했습니다.

숲 속 곳곳에 숨겨진 멋진 보물들도 모았지요.

 

 

보물들을 가지고 책방한길로 돌아온 뒤에는

평범하게만 보이는 나뭇가지를 나만의 마법의 지팡이로 변신시켰습니다.

각자 발견한 보물들과 마스킹테이프만을 활용해 뚝딱 솜씨를 발휘했는데요.

하나같이 아이디어가 톡톡 튀는 멋진 작품들이었습니다.

 

 

매 해 더욱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찾아오는 어린이책잔치지만

항상 더 많은 독자분들과 함께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깁니다.

어린이들은 평소 좋아하던 그림책의 저자 선생님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책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또 늘 주위에 있었지만 평소 경험하기 쉽지 않았던 자연을 온 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소년한길도, 오치근 선생님도 이번 어린이책잔치에서 책에는 미처 다 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풀어 놓고, 독자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또다시 어린이들과 함께 책 속으로 풍덩 빠져들 날을 손꼽아 기다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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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숲이여 음향이여

―출판인 김언호의 파주일기

 

 

 

 

 

 

한 권의 책은 어떻게 기획되어 만들어지는가.

 

한 권의 책의 존재를 위해 오늘 이 땅의 출판인들은 무엇을 고뇌하는가.

 

미디어 환경의 문명적 전환기에 어떻게 대응하는가.

 

 

 

출판인 김언호의 일기, 우리 시대 책과 출판의 문화를 증언하다

 

올해로 39년째 치열하게 책 만들기를 계속하고 있는 출판인 김언호는 ‘치밀한 기록’으로 이를 증언하고 보고한다. 2013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그는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일기’라는 형식으로 그의 행로와 생각, 열정과 고뇌를 말하고 있다. 때로는 미시적으로, 때로는 거시적으로 우리 시대 책의 문화와 책 만드는 사람들의 현장을 상세하게 보고한다. 그가 만드는 책들, 그가 만나는 출판계 안팎의 사람들, 그가 구현하려는 일련의 프로그램들을 때로는 현미경으로 때로는 망원경으로 그려냄으로써 한국 출판, 그 오늘의 내면과 심층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출판인 김언호의 일기는 그의 개인사이기도 하지만 우리 시대가 함께 당면하는 문화적 삶의 한 풍경이다. 한 권의 책이란 한 시대 한 국가사회의 총체적 소산이기 때문이다.

 

 

출판인 김언호는 저 격동의 1985, 1986, 1987년의 일기를 책의 탄생Ⅰ·Ⅱ(1996)에 담아낸 바 있다. 1980년대의 출판사(史)이자 출판 정신사를 증언하는 기록이었다. 1980년대를 ‘책의 시대’로 인식한다면 책의 탄생Ⅰ·Ⅱ은 그 1980년대를 증언하는 한 출판인의 ‘육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그가 펴낸 책들의 숲이여 음향이여―출판인 김언호의 파주일기는 미디어 환경이 급격하게 전환되는 현 시기의 또 다른 육성이라고 할 것이다.

 

출판인 김언호는 일련의 출판인들과 파주출판도시를 만드는 일에 앞장섰다. 한길사와 그는 제일 먼저 2002년 12월에 파주출판도시에 입주했다. 허허벌판에 건설되는 변방의 출판도시로 옮겨가는 출판의 거대한 실험, 그 한가운데에 그는 섰던 것이다. 그는 이 파주출판도시에서의 실험과 열정과 고뇌를 ‘일기’라는 형식으로 말하고 있다.

 

‘출판인 김언호의 파주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지만 이 ‘파주일기’를 통해 그는 계속 한 권의 책의 철학과 정신을 말하고 있다. 한 국가사회를 일으켜 세우는 인문정신의 구체적 역량으로서 출판문화를 왜 끊임없이 문제 삼아야 되는가를, 때로는 낮은 목소리로, 때로는 열정적으로 외치고 있다고나 할까.

 

 

‘고주’(孤走), 외롭게 달리지만, ‘여럿이 함께’ 하는 출판을 외치다

 

출판인 김언호는 2013년 1년 동안 한 권의 책을 위해서 800명 이상의 사람들과 만난다. 온갖 분야의 다양한 인사들이다. 이 많은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고 책과 문화를 이야기한다. 시대정신을 토로한다. 악화되는 출판 환경을 고뇌한다. 한길사 대표로서, 파주북소리 조직위원장으로서,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으로서 그는 늘 출판 현장에 서 있다. 놀라운 열정이다. 때로는 냉정해진다. 사람들을 설득해내는 과정에서 그는 고단함과 고독감을 숨기지 못한다. 한 시대의 출판문화란 ‘여럿이 함께’ 창출해낸다는 것을 그는 「머리말」에서 계속 강조한다.

 

“책을 만들면 만들수록 한 권의 책이란 더불어 함께 사는 사람들의 공동작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책 쓰는 사람 책 만드는 사람 책 읽는 사람들이 더불어 함께 펼쳐내는, 정신과 사상과 이론의 축제라는 것을 나날이 체험합니다.”

 

 

김언호 대표의 작업실. 책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출판인들이 더불어 함께 건설하는 이 출판도시에서 저는 오늘도 한 권의 책과 씨름하고 있습니다. 한강 하류의 저 장엄한 노을을 바라보면서, 책 만들기가 결코 용이하지 않은 시대 상황에서 때로는 고독해지는 저의 심사를 추스릅니다.”

 

“2013년 365일을 기록한 이 출판 일기는 저의 기록이지만, 출판도시 사람들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책의 문화를 위해 일하는 동시대인들의 기록입니다. 이 고단한 출판상황에서, 이 고단한 출판상황을 극복해내기 위해 더불어 함께 나서는 출판인들의 집단일지입니다. 한 권의 책을 위해 손잡는 우리 모두의 의지이자 희망입니다.”

 

 

5월 3일 금요일

편집부와 점심했다.

출판편집자들은 기획자일 뿐 아니라 출판저널리스트가 되어야 한다!

자기가 만든 책으로 독자와 대화해야 한다.

스스로 만든 책을 가장 잘 이야기할 수 있다.

독자들에게 그 책의 가치와 정신을 알려야 한다!

자기를 걸고 해야 한다!

 

 

출판인 김언호는 1976년 한길사를 창립하고부터 39년째 1년 365일 ‘자기를 걸고’ 책을 만들고 있다. 또한 자신만의 열정으로 그치지 않고 동료 출판편집자들을 끊임없이 독려한다. 오늘도 변함없이 그는 말한다. 저자·출판인·독자 들의 연대를 통해 ‘위대한 책의 시대’를 함께 구현하자고.

 

 

김언호 대표가 직접 찍은 사진과 하석 박원규 선생의 서예작품(『책들의 숲이여 음향이여』에서)

 

 

장엄한 책의 전당 ‘지혜의 숲’을 만들다

 

출판인 김언호는 책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책들의 숲과 나무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숲이 만들어내는 음향을 그의 가슴에 늘 안고 있다. 책들의 숲이 뿜어내는 음향은 나무들과 숲이 뿜어내는 음향과 결코 다르지 않음을 그는 몸으로 인식하고 있다.

 

2011년부터 시작된 지식축제 파주북소리를 이끌고 있는 출판인 김언호는 2013년 중반부터 열린 도서관 ‘지혜의 숲’을 구상하고 그것의 구현을 위해 뛰었다. 각계의 인사들과 의논하고 그들을 설득했다. 그리고 1년 만인 2014년 6월 19일, 장엄한 책의 전당 지혜의 숲을 개관했다. 우리 사회가 일찍이 체험하지 못한 새로운 개념의 공간이다. 출판인 김언호의 기획과 문제적 열정이 묻어난다.

 

 

“왜 책을 읽는가. 사람답기 살기 위해 책을 읽는다.”

 

책들의 숲이여 음향이여는 출판인 김언호의 출판관이 곳곳에 출현한다. ‘출판운동가’로서 한 시대의 인문학 출판을 선도해온 출판장인의 의식을 읽게 한다.

 

“왜 책을 읽는가.

사람답게 살기 위해 책을 읽는다.

지식과 정보를 공급받을 뿐 아니라 정의로운 공동체,

도덕적인 국가사회를 구현하기 위해서 우리는 독서한다.

인간다운 삶에 독서는 옵션이 아니라

필요·충분조건이다.”

 

“우리 강산의 마을과 마을에서는 책 읽는 소리가 늘 울려 퍼졌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책을 존중했고 책 읽기를 즐겼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소리가 많지만 ‘책 읽는 소리’가 그 무엇보다 아름답다. ‘독서성’(讀書聲)이다.

아름다운 우리 국토와 강산에 다시 책 읽는 소리, 글 읽는 소리가 울려 퍼지게 해야 한다.”

 

“젊은이들의 책 읽는 소리가 우리의 희망이다.”

 

김언호 대표는 늘 책 만드는 현장, 그 일터에 있고 싶다고 말한다. 아름다운 국토와 산하에 골짜기마다 다시 책 읽는 소리가 울려 퍼질 그날까지 그의 열정은 계속될 것이다. 2014년 김언호의 파주일기는 또 무엇을 기록할 것인가. 그의 만년필은 지금도 일기장을 달린다.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구상하고, 무엇을 고민하며, 무엇에 좌절하고, 또 무엇을 돌파해나갈 것인가!

 

 

 

 

출판인 김언호金彦鎬

1968년부터 1975년까지 동아일보 기자로 일했으며, 1976년 한길사를 창립하여 지금까지 대표로 있다.

1980년대부터 출판인들과 함께 출판문화와 출판의 자유를 인식시키고 신장시키는 운동을 펼치는 한편,

1998년 한국출판인회의를 창설하고 제1·2대 회장을 맡았다.

2005년부터 한국·중국·일본·대만·홍콩 등지의 인문학 출판인들과 출판운동·독서운동에 나섰으며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제2기 회장을 맡았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파주출판도시 건설에 참여했고

1990년대 중반부터는 예술인마을 헤이리를 구상하고 건설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현재 책축제 파주북소리 조직위원장과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출판운동의 상황과 논리』(1987), 『책의 탄생Ⅰ·Ⅱ』(1997), 『헤이리, 꿈꾸는 풍경』(2008, 공저),

『책의 공화국에서』(2009), 『한권의 책을 위하여』(2012) 등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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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출판도시에서 ‘책’을 생각한 ③

- 일본도서 『한국의 지를 읽다』에 실린 한길사 김언호 대표의 글



 ‘파주북어워드’(Paju Book Award)와 ‘파주어린이출판상’(Paju Children Book Award)


  파주출판도시는 지난해 파주북소리의 일환으로 파주북어워드(Paju Book Award)를 시상했습니다. 아시아출판문화상입니다. 저술상・기획상・미술상・특별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동아시아와 아시아에서 창출되는 출판의 성과를 평가하는 국제출판상입니다. 아시아와 동아시아를 가로지르는 저술과 출판의 세계를 잘 살펴보고 평가해내자는 것입니다.


  파주북어워드는 동아시아의 출판인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한국・중국・대만・홍콩・일본의 인문학 출판인들과 출판전문가들이 추천위원・선정위원・대표위원을 맡아서, 아시아와 동아시아 전체 차원에서 그 출판문화의 세계를 인식하자는 것입니다. 파주북어워드는 이 같은 더불어 함께 운영하는 방식을 통해서 개별 국가사회가 아닌 아시아・동아시아 차원의 출판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파주출판도시는 다시 ‘아시아어린이출판상’(Paju Children Book Award)의 출범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볼로니아를 비롯해서 서양에서 시행되는 어린이출판상이 있지만, 아시아와 동아시아 권역의 어린이책과 그 그림 작가와 글 작가, 기획자에게 수여함으로써 아시아와 동아시아 어린이출판의 정체성을 탐구하고 성원하자는 것입니다.


  파주출판도시는 출판도시에서 기획되는 일련의 프로그램들이 아시아 여러 국가의 출판인들과 저술가들과 함께 전개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습니다. 책과 출판문화란 열려 있어야 할 터입니다. 닫힌 문제의식으로는 새로운 이론과 사상을 창출해낼 수 없다는 생각을 우리는 늘 하고 있습니다. 또한 생각과 이론이 다른 주체들이 함께 펼치는 문화운동・출판운동이라야 아름답고 건강하고 역동적일 것입니다. 아시아와 동아시아의 각 문화공동체는 다르면서 같은 세계의 이론과 심층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그 다른 문화를 만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낼 것입니다. 파주북어워드는 다름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창출해내자는 책의 그 고유한 기능을 도모하자는 아시아와 동아시아에 의한 아시아・동아시아의 책의 운동입니다.


  파주출판도시는 아시아출판포럼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와 동아시아의 출판인・편집자들이 모여 심화된 토론을 진행하고 이것을 토대로 아시아와 동아시아 차원의 출판문화를 실제적으로 도모하자는 것입니다. 아시아출판포럼이 파주출판도시에서 주로 진행되겠지만, 그 운영과 내용은 아시아・동아시아 차원에서 기획・운영될 것입니다.


  일본・중국・대만・홍콩・한국의 인문학 출판인들이 참여하고 있는 동아시아출판인회의를 여기 소개하고 싶습니다. 올해 9년째가 되는 동아시아출판인회의는 이 21세기에 동아시아의 출판공동체・독서공동체를 모색하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동아시아는 같은 책을 읽는 독서공동체의 전통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근・현대에 오면서 그 전통은 단절되다시피 했습니다. 동아시아출판인회의는 20세기에  진행된 동아시아인문도서 100권을 선정하고 그것들을 상호 번역출판하는 일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구체적인 출판을 통해 상호이해는 더 깊어지고 있습니다. 파주북어워드와 같은 기획들이 수준 높은 차원에서 진전될 수 있었던 것은 동아시아출판인회의와 같은 경험과 학습과 연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지知를 읽다』에는 일본의 명 출판사 ‘이와나미쇼텐’ 사장을 역임한 오쓰카 노부카즈의 글도 실려 있습니다. 한길사는 그의 책 『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를 2007년 펴냈지요.



100인 1,000강좌


  한 출판사란 하나의 대학이라는 생각을 우리는 하고 있습니다. 한 출판사에서 펴내는 다양한 책들의 세계는 곧 하나의 큰 세계를 의미합니다. 그 책들이 펼치는 이론과 사상, 정신과 문화는 바로 대학을 넘어서는 큰 세계입니다.


  파주출판도시는 200여 출판사가 운집해서 정신과 사상을 창출하는 책의 세계이자 다양한 이론과 인식들이 경연을 펼치는 열린 대학입니다. 파주출판도시가 펴내는 책의 문화는 그 어느 세계보다도 통합적인 대학입니다. 지금 출판도시가 갖고 있는 특징을 활용하는 기획을 진행중입니다.


  ‘100인 1,000강좌’가 그것입니다. 매년 100명의 연구자・학자・교수가 100분 강의를 열 번씩 진행하는 열린 시민대학입니다. 주제는 인문학・자연과학・예술학 등 현대인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지적 장르들입니다. 출판도시의 이런 공간 저런 공간에서 진행되는 이 강좌들은 녹화・녹음・편집되어 온라인・케이블로 전송됩니다. 온・오프라인 전송을 통해 지방에서나 해외에서 수강할 수 있게 하려 합니다. 100인 1,000강좌는 그 어느 대학도 실현하기 어려운 콘텐츠를 포괄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전국의 대학들과 각종 연구기관들의 연구자・학자・교수들과 연대함으로써 일반대학이 할 수 없는 새로운 개념의 열린 대학이 됩니다. 한 권의 책을 만들 듯이 출판도시는 모든 대학들을 종합하고 넘어서는 기획을 할 수 있습니다.


  파주출판도시의 100인 1,000강좌는 한국의 학자・연구자・교수뿐 아니라 향후에는 외국의 학자・연구자・교수들도 초빙해서 강의하는 구상도 하고 있습니다. 일국주의・개별문화권의 인문학이 아니라 일국과 개별문화권을 극복해내는 열린 학습을 통해 인류사회에 보다 통할적인 인식과 이론을 도모해내야 할 터입니다. 향후 출판도시의 100인 1,000강좌는 아시아와 동아시아의 100인 1,000강좌가 되도록 해보고 싶습니다.


  파주출판도시는 아시아와 동아시아가 창출해내는 책의 문화를 수집하고 전시하는 출판아카이브가 되는 또 하나의 구상도 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와 동아시아 책의 문화를 펼쳐보이는 아시아・동아시아 책의 유토피아의 구체적인 모습입니다. 한 권의 책이란 그 시대의 미학적 성과를 보여주는 구체적 표현일 것입니다. 아시아와 동아시아가 창출한 책들의 미학이란 당연히 경이롭고 아름다울 것입니다.



  북녘땅이 건너다보이는 예술마을 헤이리에서


  파주출판도시보다 10킬로미터 더 북으로 올라가면 예술마을 헤이리가 있습니다. 15만여 평에 350여 회원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문화・예술마을입니다. 아직도 그 건설이 진행되고 있는 헤이리는 파주출판도시와 연계하여 이야기되어야 합니다. 나는 출판도시를 ‘남자’라고 이야기하고 헤이리를 여자라고 말합니다. 출판도시가 문화・산업이라면 헤이리는 문화・예술입니다.


  나는 1994년 4월에 영국의 고서점 마을 헤이온와이를 방문했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헤이리를 구상하고 건설에 앞장섰습니다. 미술・음악・출판・영상・인문학을 하는 회원들이 만들고 있는 예술마을 헤이리는 현재까지 박물관・미술관・갤러리・스튜디오가 100개 이상 개설되었습니다. 다양한 전시회와 음악회들이 이곳저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헤이리는 파주출판도시와 함께, 한국의 건축 수준을 한 단계 이끌어올리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나는 책의 집 북하우스를 헤이리에 짓고 서점과 갤러리를 만들었습니다. 한길책박물관을 개관했습니다.


  나는 당초 직(職)・주(住)를 통합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헤이리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나는 10년 전에 이곳에 주택을 지어 입주해 살고 있습니다. 우리 집에서도 저 멀리 북녘땅을 관망할 수 있습니다.


  나는 아침저녁 북한땅을 건너다보면서 출판도시로 출퇴근하고 있습니다. 일상으로 북녘땅을 바라다본다는 것은 북한을 전쟁과 대결의 땅이 아니라 언젠가는 통일되어야 하는 국토의 일부, 민족공동체의 일부로 인식하게 하는 듯도 합니다.


  파주는 긴장의 땅, 경계의 땅입니다. 변방의 유역입니다. 이 긴장과 경계의 땅, 변방의 유역에서, 나는 나름대로 다른 문제의식을 가지게 됩니다. 고(故) 강원용 목사는 헤이리의 토목공사를 시작하던 날 방명록에 ‘신 실크로드의 출발지’라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헤이리와 출판도시가 자리잡고 있는 파주는 남과 북이 대치하는 땅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궁극으로 파주는 국토와 민족의 통일을 선도하는 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술마을 헤이리를 기획하고 건설하면서 나는 늘 강조해서 말했습니다. 언젠가 우리는 북한땅 개성에 점심먹으러 갈 수 있다고. 사실 그런 일도 있었습니다. 경기도지사 일행과 함께 오전에 개성으로 넘어가서, 고려조의 수도인 개성과 송악산 일대를 관광하고 점심먹었습니다. 그리고 헤이리로 돌아와서 저녁식사 같이 했습니다.


  나는 지금 이 변방의 땅, 경계의 유역에 살면서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변방의 땅, 긴장과 경계의 땅에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는 변방에 의미를 둡니다. 한 시대의 건강한 출판문화란 변방의 정신과 이론을 담아내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정신과 사상, 문화와 이론이란 기본적으로 권력과 재부의 중심이 아니라, 변방에서 창출될 것입니다. 


  북녘땅이 건너다보이는 경계의 땅 헤이리에서 살고 있음에 나는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변방의 땅 출판도시에서 책을 만드는 것에 나름대로 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이 출판도시에서 더불어 함께 일하는 것을 행복하게 생각합니다.




2013년 5월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한길사 대표


김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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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출판도시에서 ‘책’을 생각한다 

- 일본도서 『한국의 지를 읽다』에 실린 한길사 김언호 대표의 글





 출판독서운동 ‘파주북소리’, 아시아 책의 수도


  모든 조직과 집단은 스스로 진화합니다. 파주출판도시는 스스로의 자연적인 진화를 넘어 새로운 발전을 도모하는 의도적인 프로그램들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책을 기획・생산하는 공간을 넘어 출판문화를 완성시키고 확산시키는, 독자를 출판문화의 주체로 인식하는 독서운동의 새로운 차원을 구축하려는 것입니다.


  2011년부터 진행되고 있는 파주북소리(Paju Book Sori)는 출판도시의 여러 조건들을 활용하는 대규모의 책의 축제, 지식의 축제입니다. 출판과 책의 생산환경・유통환경이 급속하게 변전하고 있는 문명적 조건에서 출판과 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 새로운 미디어환경의 총체적 변전조건에 대응하는 통합적 인식과 대안적 실천이 요구됩니다.


  어린이의 책 읽는 소리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옛 현인들이 말했습니다. 파주북소리는 아이들의 책 읽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책 읽기, 책 읽는 소리가 향후 우리 출판문화의 희망이자 대안입니다.


  다시 종이책을 읽는 운동, 소리내어 영혼을 울리는 책읽기를 부활시켜야 합니다. 인류의 위대한 문명은 책읽기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파주북소리는 우리 모두의 젊은 영혼을 울리는 북소리(Drum)이자 책 읽는 소리(Reading & Healing)입니다.

  2011년 파주북소리의 개막을 시작하면서 파주출판도시는 ‘아시아 책의 수도’를 선언했습니다.



“파주출판도시는 아시아인들과 함께,

책 쓰고 책 만들고 책 읽는,

아시아의 위대한 책의 시대를 열고자 합니다.

우리는 아시아인들이 함께 창출해내는 책의 문화로

아시아의 가치와 아시아의 정체성을 구현하려 합니다.


파주출판도시가 펼치는 책과 지식의 축제 파주북소리는

아시아인들이 연대하는 출판운동·독서운동입니다.

아시아 책의 수도 선포는, 아시아의 새로운 시대를 맞아

아시아의 유구한 책의 전통과 유산을

이 21세기에 다시 일으켜 세우는,

아시아인에 의한 아시아인의 문예운동입니다.


책의 길은 평화의 길입니다.

책의 길은 생명의 길입니다.

책의 길은 희망의 길입니다.


아시아 책의 수도 운동은 책으로 아시아를 소통시켜,

더 창조적이고, 더 아름다운 아시아의 문화와 사상을

일으켜 세우는 운동입니다.


아시아 책의 수도 운동은

파주출판도시를 넘어서 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되어야 합니다.


아시아 책의 수도는 아시아인들이 함께 누리는 책의 광장입니다.

아시아 책의 수도는 아시아인들이 함께 걷는 책의 큰 길입니다.”



  책의 세계는 소통됨으로써 그 형식과 내용이 더 커지고 의미는 더 깊어집니다. 아시아는 책으로 하나됩니다. 아시아 책의 수도는 파주출판도시를 넘어 아시아와 세계의 여러 도시로 확산되어야 합니다.



일본 아사히 신문 국제부의 사쿠라이 이즈미 기자가 추천한 리영희의 『대화』(리영희・임헌영 지음, 한길사, 2005).



출판도시의 100책방 만들기운동


  파주출판도시는 지금 100책방 만들기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현재 50여 책방이 1층에 문을 열고 있습니다. 파주출판도시는 각 출판사의 1층을 책방으로 독자들에게 개방하려 합니다. 책과 연관되는 다양한 장르를 만나게 하는 공간을 열자는 것입니다. 문화・예술・과학・경제 등 모든 것과 연관되는 책의 세계, 책의 문화를 총체적으로 만나고 인식하고 체험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파주출판도시는 사람들이 걷고 싶은 거리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건축적 성과를 파주출판도시는 자랑합니다. 그러나 이 건축적 성과를 보다 인간적인 것으로 개선하려 합니다. 나무를 심어서 출판도시를 숲으로 조성하려 합니다. 인간들의 영혼이 쉴 수 있는 숲을 우리는 생각합니다. 나무 아래서, 숲 속에서, 책을 소리내어 읽고, 다양한 장르의 사람들이 모여 토론하는 인문학적 축제를 전개하는 운동입니다.


  책 읽는 운동, 책 만드는 운동과 연계되는 또 하나의 운동인 ‘만인의 숲’ 운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의 이름을 붙인 나무들을 심어서 하나의 숲이 되게 하고, 그 숲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생명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하자는 운동입니다.


  우리는 이 만인의 숲 운동을 ‘만 권의 책’ 운동과 병행하려 합니다. 100세 문명시대에 우리가 지금 살고 있습니다. 가정마다 만 권의 책을 비치하고 읽는 운동은 100세 문명시대를 대처해나가는 정신운동・생명운동입니다.


  해마다 봄에 펼치는 파주출판도시 어린이책축제는 올해 11회를 맞았는데, 이 어린이책축제를 가을에 진행되는 파주북소리만큼 확장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파주출판도시의 회원들은 어린이책축제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있습니다.


  파주출판도시의 출판인들은 종이책의 중요성과 그 가치를 한층 더 심각하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인류의 위대한 정신적 성과를 담아내고 있는 종이책의 가치가 디지털 문명의 발전으로 폄하되고 있는 현실을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파주출판도시는 종이책을 보호・보존하는 새로운 개념의 문화운동을 전개하려 합니다. 학자・연구자들이 생애를 통해 수집하여 읽은 종이책들을 한데 모아서, 젊은 독자들이 경계를 넘어 읽을 수 있는 ‘열린 도서관’을 출판도시의 중심공간인 아시아출판문화센터에 개설하려 합니다.


  대학도서관들까지 종이책을 푸대접하는 현상이 한국사회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우리는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아시아출판문화센터의 로비와 복도는 책의 유토피아가 될 것입니다. 이런 책의 유토피아가 젊은이들을 책의 세계로 이끌 것입니다.




③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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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출판도시에서 ‘책’을 생각한다 ①

- 일본도서 『한국의 지를 읽다』에 실린 한길사 김언호 대표의 글


『한국․조선의 지知를 읽다』(원제: 韓国․朝鮮の知を読む, 노마 히데키 엮음, CUON, 2014).


올 2월 일본의 쿠온(CUON) 출판사에서 펴낸 『한국의 지를 읽다』(노마 히데키 엮음, CUON, 2014)에 한길사 김언호 대표의 글이 실렸습니다. 『한국의 지를 읽다』는 『한글의 탄생』의 저자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일본의 언어학자 노마 히데키가 기획한 책입니다. 한국과 일본의 지식인 140명에게 한국의 ‘지’에 관한 책을 1~5권 추천받아, 그들이 직접 독자들에게 자신이 고른 책을 소개하는 글들을 모았습니다. 일본 독자들이 한국의 ‘지’와 접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책 안내서’(북가이드)입니다.


김언호 대표의 글은 엮은이 노마 히데키의 글과 함께 ‘지를 떠받치는 책, 출판, 문자를 둘러싸고’에 실려 있습니다. 그 내용을 총 3회 분량으로 한길사 블로그에 소개합니다.




파주출판도시에서 ‘책’을 생각한다



  ‘새로운 책’으로 각성하는 한국인


  1980년대의 한국사회와 한국인들은 열정의 시대를 살고 있었습니다. 1961년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군사정권이 1979년에 내부반란으로 무너졌지만 전두환 이 이끄는 군부가 다시 권력을 잡았습니다. 전두환군부세력은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을 탱크로 진압하면서 권력을 장악했지만, 1970년대부터 형성된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국민들의 열정을 좌절시키지는 못했습니다. 1980년대 중반부터 민주화운동은 한층 광범위하고도 열정적으로 진전되었고, 이 열정의 1980년대 한가운데에서 우리들의 책만들기・책읽기・책쓰기가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권력에 의해 언론현장으로부터 추방당한 해직언론인들을 비롯해서 대학캠퍼스로부터 제적당한 학생들이 책만들기에 가담했습니다. 해직당한 교수들이 글쓰기・책쓰기에 나섰습니다. 1980년대에 진행된 한국사회의 책만들기는 단연 새로운 지식운동의 풍경이었습니다. 해직언론인・해직교수・제적학생들이 연대하는 출판운동은 정신적・사상적으로 한국사회를 새롭게 일으켜 세우는 민주주의운동이고 문화운동이자 진보적인 이론운동이었습니다.


  1980년대의 한국인들은 새로운 출판운동으로 각성하는 시대를 살고 있었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은 시대상황을 담아내는 책들의 독서를 통해 정치현실・민족현실을 의식하게 됩니다. 왜 민주주의를 구현해야 하는가를 인식하게 됩니다. 나라와 민족이 왜 식민통치를 당해야 했는가를 학습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라와 민족이 왜 분단되는가를 성찰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권의 책을 통해 특히 젊은이들은 민주주의자가 되었고, 민족주의자가 되었습니다. 진보적인 이론을 열정적으로 가슴에 안게 되었습니다. 사람답게 사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실천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책과 독서를 통해,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고 답했습니다. 한국인들에게 1980년대는 열정적으로 책 만들고 책 읽는 시대였습니다.



  권력과 갈등하는 책과 출판인


  1980년대의 젊은 출판인들과 저자들과 독자들의 이 같은 지적・실천적인 삶의 지향과 방식은 권위주의 정치권력과 운명적으로 갈등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책을 썼다고 해서, 책을 만들었다고 해서, 책을 읽었다고 해서, 출판인들과 저자와 독자들은 구금되었습니다. 그 책들은 판매금지되었고 압수당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상황에서도 책 쓰고, 책 만들고, 책 읽는 행위는 지속되었습니다. 저자・출판인・독자들의 연대와 실천은 하나의 거대한 문화운동・지식운동 세력으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한국현대사에서 1980년대는 출판인・독자・저자가 수평적으로 연대하여 진행된 책의 시대, 출판의 시대, 독서의 시대였습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단의 출판인들은 ‘수요회’라는 비공식적인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험악한 권력의 시대에, 출판인들은 밥이라도 먹으면서 문제들을 이야기하자 했습니다. 수요일에 모이자 해서 수요회가 되었습니다. 자연스레 출판과 연관되는 일과 현상을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정부당국자들을 만나, 출판정책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기도 했습니다. 권위주의적 출판정책은 이제 개선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1985년 5월 17일 에 수요회 회원들이 주도하여 ‘출판인 17인선언’으로 알려지는 ‘출판문화의 발전을 위한 우리의 견해’를 발표했습니다. 나는 이 성명을 그날 새벽에 초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출판의 자유는 자유민주주의 정신에 의해서 확보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현행실정법에 의해서도 당연히 보장된다. 출판물에 대한 행정당국의 최근의 조처는 자연법 이념에서나 실정법 정신에 비추어 타당하다 할 수 없다. 우리의 헌법 제20조는 출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만약 출판의 자유를 그 어떠한 형식으로라도 규제한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체제와 이념을 부인하는 결과가 된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당연히 개방체제를 지향할 수밖에 없다면, 출판문화 역시 개방체제로의 자세를 가다듬어야 하며, 우리의 정치・사회・경제가 세계적 개방체제를 지향한다면 문화도 당연히 개방되어야 하고 또 개방될 수밖에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엄청난 물량이 드나드는 이 마당에 학문과 문화,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출판을 폐쇄적으로 통제할 수는 결코 없을 것이다.


  현대의 기술문명이 출판에 대한 금제(禁制)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복사기계의 보편화 등 테크노스트럭처(Technostructure)의 질적·양적 변화는 지식체계의 독점적·선별적 소유와 금기화(禁忌化)를 더 이상 가능하지 못하게 한다.

  저술작업과 출판작업은 저술인과 출판인의 양식에 바탕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저술인과 출판인 스스로의 가치판단에 의해 저술과 출판이 이루어져야 살아 있는 사회와 문화가 형성될 것이다. 저술과 출판의 결과는 사상의 공개시장 원리에 의해 평가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우리는 이 사회가 생산하는 모든 출판물을 사상의 공개시장에 내보내는 것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방안일 것이다.”



‘지知를 떠받치는 책, 출판, 문자를 둘러싸고’에 실린 두 번째 글, 김언호 대표의 ‘파주출판도시에서 책을 생각한다’.



  ‘수요회’ 회원들의 출판도시 구상


  한편 수요회는 좋은책선정운동을 시작합니다. 한국사회의 지식사회를 나름대로 대표하는 지식인・학자들과 함께 한 계절에 한 번씩 ‘오늘의 책’ 20, 30권을 선정하여 책을 펴낸 출판사와 그 저자에게 책을 상징하는 조각가의 작품을 증정하는 행사를 갖는 것이었습니다. 좋은 책을 평가하여 널리 알리는 독서운동・출판운동이었습니다.


  수요회 회원들이 주축이 된 10여 명의 출판인들은 또한 한 달에 한 번쯤 북한산을 등반했습니다. 산을 오르내리면서 당연히 출판인들은 오늘의 출판계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담론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의 파주출판도시는 바로 수요회 회원들과 단행본을 내는 출판인들의 북한산 등반과정에서 발의되었습니다. 고단한 오늘의 우리 출판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책의 세계를, 아니 책의 유토피아를 구현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이같은 의지를 서울에서 펼쳐내기란 본질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오히려 저 DMZ 근방으로 가보면 어떨까!’ 나는 그때 이런 발상을 거침없이 수요회 회원들에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파주출판도시는 아무튼 이렇게 발안되었고, 그 구체적 작업이 일련의 출판인들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식민지시대와 분단, 전쟁을 겪은 한국은 근대적인 출판문화도 지체되었습니다. 권위주의 정치로 통제받는 고단한 시대를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조건과 상황에서, 이런 조건과 상황을 극복해내는 출판문화・출판운동이 1980년대와 1990년대 한국사회에서 진전될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함께’ 하는 출판운동


  1980년대 한국의 출판문화・출판운동은 그 의식과 정신이 젊은 일련의 출판인들이 더불어 함께하면서 가능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니, 그 어떤 문화운동・사회운동도 당초부터 더불어 함께 해야 가능할 것입니다. 마땅한 사이트를 찾아 이곳저곳을 답사하는 일이 한동안 지속되었지만, 한강 하류유역인 이곳 파주의 물구덩이 땅 48만 평을 최종 사이트로 정하고, 이렇게 번듯하게, 세계출판사상 유례가 없는 출판도시를 존재・발전하게 하는 데는 ‘더불어 함께’ 하는 출판인들의 연대운동으로 가능했을 것입니다.


  1991년에 출판도시건설을 위한 공식조직인 사업협동조합이 출범해서, 오늘의 파주출판도시(Paju Book City)를 건설해내는 작은 출판사들의 ‘더불어 함께’ 연대하는 운동을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출판과 출판문화란 사실은 당초부터 작은 존재들의 연대와 연합에 의해 가능할 것입니다. 여기에는 열화당 이기웅 대표를 중심으로 하는 일련의 선두그룹의 열정과 헌신이 있었기에 더 구체적으로 진전될 수 있었다는 것도 명기되어야 합니다.


  파주출판도시에 참여하는 출판사・출판인들은 다양한 담론과 학습여행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는 1990년대 초에 치러진 한 심포지엄에서 말했습니다. 한국사회의 산업화를 성취해내는 데는 1960년대의 울산공업단지 건설과 1970년대의 경부고속도로 건설이 가장 상징적인 프로젝트라면, 1990년대의 파주출판도시 건설작업은 한국의 정신사・문화사에 큰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파주출판도시의 제1단계 작업을 끝내고 입주한 것이 12년째를 맞고 있는 현재, 편집자를 비롯해서 8,000여 명이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데, 영상・영화사가 참여하는 제2단계가 완성되면 2만 명 정도의 지식・문화 인력이 일하게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 생산 사이즈가 대기업에 비하면 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책과 출판의 기능과 의미란 그 사이즈로 논할 바가 아닐 터입니다.




②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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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링크에서 『한국의 지를 읽다』 관련 기사를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한·일 지식인 140명이 쓴 ‘한국의 지적 세계’(한겨레, 2014. 2. 20.)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25129.html

 

친구야, 한·일 지성의 만화경 우리 손으로 펼쳐보자(중앙일보, 2013. 6. 14.)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1799787&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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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한길다반사2014.01.14 10:26

<TEDxSNU 오거나이저들의 한길사 독자 모임 후기>

책으로 퍼져나가는 독자-출판사-저자의 물결을 만나고

 

 

 

 

 

ⓒ캘리그라피 by 박준후

 

 

어떻게 살 것인가.

김언호 한길사 대표님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묻고 답하기 위해서 책을 만들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눈앞에 닥친 과업에 허덕이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을 잊고 쳇바퀴만 돌리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이때 좋은 책, 좋은 사람과의 만남은 일상에 힘 있는 파문을 일으킨다. 맑고 깨어 있는 사람과의 대화, 지식이 담긴 텍스트들을 읽노라면 비록 완전한 답은 아니더라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으며 보다 바람직한 삶을 더듬어나갈 수 있게 된다.

 

한길사 독자 모임에 함께 하게 된 우리 TEDxSNU 오거나이저들은 그곳에서 긍정적 파문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책과 사람의 긍정적 파문에는 훌륭한 저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난 9월 TEDxSNU 행사에서 김언호 대표님의 강연이 있었다. 대표님은 ‘독자-출판사-저자의 수평적 연대’를 역설하셨다. 저자와 출판사, 독자가 수직적인 구조 속에서 지식을 생산,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한 시대의 출판문화를 만들어가는 대등한 주체라는 것이다. 강연회를 준비하기 위해 파주를 몇 차례 방문한 우리는 대표님으로부터 ‘수평적 연대’ 개념을 매우 인상 깊게 들었었다.

 

 

 

 

 

 

그리고 오늘 바로 이 자리에서 우리는 저자와 독자, 출판사가 나란히 앉아 책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보고 있다. 치과의사, 한의사, 교사, 시인, 고미술전문가 등 다양한 직업의 독자와 저자들이 한길사를 매개로 함께하는 이 자리가 더없이 건강하고 아름다웠다.

 

 

독자 및 저자와 함께하는 한길사의 수십 년간의 ‘한 길’은 더 크고 넓어져 이제 파주의 거대한 도서관 프로젝트로 이어지고 있었다. 가칭 ‘세종 아카데미 21’은 백만 권의 장서를 24시간 이용할 수 있는 ‘열린 도서관’이자 지식문화공간이라고 한다. 한길사는 이를 단순한 도서관이 아니라 열린 대학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백만 권의 장서와 함께 분야를 망라한 전문가들의 100인 1000강좌가 그 열쇠다.

 

 

책을 읽는 데에도 독서근육이란 것이 있어서 읽을수록 더 많은 책을 깊이 있게 읽을 수 있다고 한다. 100인 1000강좌 기획은 누구나 어디에서나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과 관심을 심화하고 독서근육을 골고루 단련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지난 TEDxSNU 강연을 준비하는 동안 대표님은 책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책의 유토피아를 희망하셨는데 우리는 ‘세종 아카데미 21’이 그 꿈을 이루는 첫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지난해 대학에서 일곱 번째 학기를 맞은 나는 ‘삶과 교육’이라는 교육학 수업을 들었다. 이 수업은 ‘교육은 학교에서 일어나는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으로 시작된다. 교육이 한 번도 본원적인 교육 개념 자체로 다뤄지지 못하고 ‘학교에서 일어나는 현상들’로 오해되어 본질을 잃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 수업에서는 교육은 열정을 가지고 배우고 가르치는 활동이며 학교뿐만 아니라 모든 곳에서 일어날 수 있으며 오히려 진정한 교육은 학교라는 제도적 틀 밖에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나는 파주에서의 ‘세종 아카데미 21’ 기획을 들으면서 이곳이야말로 진정한 배움과 가르침이 오가는 교육 현장이 될 수 있으리란 확신이 들었다.

 

 

 

한 시대의 지식 문화 수준은 청중의 수준에 달려 있다고 한다. 훌륭한 책 만드는 데 보태라며 출판사에 익명으로 금일봉을 보내 온 독자, 한길사의 책에 감명받아 사회 곳곳에서 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독자들을 만나면서 대표님은 ‘독자들이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으니 책을 정말 제대로 만들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든다고 하신다. 시퍼렇게 눈 뜨고 있는 독자들과의 이 날 만남은 더없이 유쾌하고 훈훈했다.

이런 긍정적 파문 속에서 나도 스스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답하기 위해, 그리고 ‘어떤 시대여야 하는가’를 함께 고민하기 위해 올해 독서 목록을 다시 적어내리기 시작했다.

 

 

 

 

  by

TEDxSNU 오거나이저

박준후(서울대 외교학과 08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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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2012.04.17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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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남쪽 인구 12만의 작은 도시 마스트리히트를 찾아갔습니다. 셀레시즈 도미니크 서점을 구경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영국의 일간 신문 『가디언』은 셀레시즈 도미니크 서점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으로 선정한 바 있습니다. ‘천상의 서점’이라고 했습니다. 서점은 1294년에 세워진 도미니크 성당의 내부를 개축하여 만든 것입니다. 과연 지상에 존재하는 천상의 서점입니다. 

저는 이 서점 이야기를 여러 해 전부터 들었습니다. 셀레시즈 도미니크 방문은 이번 유럽 여행의 가장 신나는 일정이었습니다. 세계의 서점들을 나름대로 찾아다닙니다만, 셀레시즈 도미니크 서점의 경이로운 풍경에 압도당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건물이라고 합니다. 좀 구석진 곳에 위치하고 있지만, 위치를 묻는 저에게 한 가게 주인은 즐거운 표정으로 가는 길을 설명해주었습니다. 아름다운 서점 셀레시즈 도미니크는 마스트리히트 시민들의 가슴엔 문화적 긍지로 자리를 잡고 있는 듯 했습니다. 마스트리히트를 찾는 관광객들이 둘러보는 코스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셀레시즈 도미니크 모습.


책방 변신에 관광객들 줄이어

유럽의 성당이란 참으로 유럽인들의 미의식을 집성시키는 공간입니다. 바닥 면적이 300평이 안되는 도미니크 성당도 안에 들어서면 역시 감동적인 공간의 위용을 보여줍니다. 천정 높이가 20미터는 됩니다. 천정에는 벽화가 있습니다. 돌기둥들이 장엄합니다.

지난 2006년 네덜란드 서점 체인 셀레시즈가 이 성당을 서점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철제로 내부를 3층으로 개축했습니다. 벽은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 원형을 그대로 보존한다는 것이 사용조건입니다.

서가에 꽃혀 있는 책들, 쏟아져 들어오는 자연광, 스테인드 글라스의 빛깔이 책방 내부를 더욱 환상적으로 만듭니다. 지난 200여년 동안 교회가 아닌 다른 용도로 사용되다가 책방으로 변신하면서 마스트리히트의 명소가 되었습니다. 저자와 독자의 대화, 전시회, 강연회, 음악회 등이 열려 오래된 성당 도미니크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공간에서 문화예술공간이 되면서 더 많은 시민들이 찾고 있습니다. 셀레시즈 도미니크 서점은 이제 책을 사랑하는 세계인들이 방문하고 싶어하는 명서점이 되었습니다.

유럽에는 성당이 참 많습니다. 유럽의 역사와 문명의 이데아는 기독교가 토대를 이룹니다. 유럽의 모든 도시 한가운데는 하늘을 찌르는 성당이 근엄하게 서 있습니다. 그러나 휘황찬란하게 아름다운 교회의 장식과 치장에 비해, 예배를 보는 신자들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아름답고도 성스러운 유물이 된 듯도 합니다.


독서로 가능한 세계 탐구 아름다워

셀레시즈 도미니크 서점은 현대 서구사회의 종교현상을 보여줍니다. 기독교 문명권의 변화를 보여주는 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종교적 공간이 책의 공간, 대화와 문화예술의 공간으로 전화되는 풍경에 저는 주목하고 싶습니다. 책의 정신과 책의 사상의 위대한 가능성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책방으로부터 생성되는 자유정신과 독서로 가능한 새로운 세계에의 탐구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1970년와 1980년대에 우리는 민주화운동을 치열하게 진전시켰습니다. 강압적인 권력의 통제시대에 우리는 책을 읽고 토론했습니다. 그 시대를 생각하면서 저는 이미 작고한 연세대 김찬국 교수를 늘 떠올립니다. 해직시절에 임시로 목회를 하기도 한 선생은 책을 가득 넣은 가방을 메고 다니면서 책 읽기를 권하곤 했습니다. 책 읽게 하는 것이 곧 복음을 전하는 일이라 했습니다. 한길사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책을 기획하면서 선생에게 집필을 부탁드리기도 했고, 선생의 단독저서 『인간을 찾아서』를 출간한 바 있습니다.

셀레시즈 도미니크 서점에서 저는 실천하는 신학자 김찬국 교수를 다시 떠올렸습니다. 책 읽는다는 것은 새로운 정신과 사상을 탐험하는 일입니다. 진리와 진실을 탐구하는 삶의 여정입니다. 책의 정신과 사상을 탐구하고 탐험하는 사람들이 찾는 책방이란 참으로 의미심장한 공간입니다. 언젠가 다시 셀레시즈 도미니크 서점을 가고 싶습니다.



김 언 호 도서출판 한길사 대표· 파주북소리 조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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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기번은 카피톨리누스 언덕에 앉아 오렌지빛 석양이 비추는 폐허를 내려다보며 그 유명한 『로마제국쇠망사』를 써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시오노 나나미도 아마 팔라티노 언덕에서 로마 시가지를 굽어보며 명상에 잠겼으리라. 그리고 나 역시 그들과 같은 로마의 꿈을 꾼다. 4C의 고구려 소녀가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 찬란한 포룸 로마눔에 입성하는 상상도 하고, 언젠가 이탈리아라는 머나먼 이국 땅에 도착하여 독일의 문호 괴테마냥 로마에 도취되는 꿈도 꾼다.

비단 로마를 꿈꾸는 사람의 꿈은 이뿐만이 아니리라. 투명에 가까운 지중해를 가로지르며 로마의 외항인 오스티아로 향하는 수십 척의 갤리선, 파르티아와 이집트에서 들여온 진귀한 세공품들, 온갖 민족이 융합되는 세계적인 메트로폴리스 로마. 모든 현대인은 그 평화로웠던 팍스로마나를 추억한다. 현대의 법은 로마법의 변주이며, 미국의 국회의사당은 판테온의 모방이지 않은가? 또한 로마라는 채석장은 셰익스피어에서부터 최근 인기리에 상영된 미국 드라마 「스파르타쿠스」까지 풍부한 문화의 석재를 제공한다.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의 환상적인 나일강 관람과 폼페이우스 극장에서 친히 리라를 켜며 노래를 했다는 폭군 네로의 일화는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그 어느 시기보다 이상에 가까웠던 팍스로마나에 대한 향수, 그리고 천년에 걸친 시간이 빚어낸 다양한 인간 군상의 흥미로운 일화 때문에 우리는 로마를 사랑하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로마가 꾸준히 현대인들의 영감을 자극하는 건, 로마의 역사 자체가 인간의 드라마와 닮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로마는 늪지로 된 언덕에 건국되었으며, 바다와 인접해 있지 않은 불리한 지리적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에트루리아나 켈트족과 같은 강한 주변 세력이 혼재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로마가 역사의 승리자가 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로마는 예상을 뒤엎었다. 그리고 황금 시대를 열었다. 그 영광은 무려 천년이라는 기간 동안 지속되지만, 그 어떤 것도 영원히 지속될 순 없다는 걸 보여주려는 듯이 결국 찬란하게 멸망한다. 이러한 굴곡은 감동과 반전, 그리고 결말이라는 측면에 인간의 삶과 닮아 있다. 나는 로마의 역사란 단순히 지나간 과거의 기록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로마의 역사적 흐름은 굴곡진 우리의 인생과 같다. 그러기에 우리는 로마의 역사를 읽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팍스로마나와 같은 위대한 어떤 것을 위해 로마를 배울 필요가 있다.


 

“로마의 역사적 흐름은 굴곡진 우리의 인생과 같다. 그러기에 우리는 로마의 역사를 읽어야 하는 것이다.
팍스로마나와 같은 위대한 어떤 것을 위해 로마를 배울 필요가 있다.”



『로마인 이야기』 15권을 찬찬히 읽으면서 나는 그 ‘어떤 것’ 때문에 로마인들이 위대한 시기를 열 수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시오노 나나미 역시 그 문제에 대해 언급한다. “로마인은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족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보다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는 지중해를 자신들의 내해(內海)로 만들었다. 그 이유는 『로마인 이야기』 15권을 관통하며 계속 등장하는 ‘개방성과 관용정신’에 있다. 이 두 단어는 『로마인 이야기』를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나 역시 이 이상으로 로마인의 민족성을 대표할 수 있는 단어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어찌 보면 당연한 미덕이고 전혀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이지만, 나는 늑대의 자손이 건국했다는 그 고대의 제국이 현대보다 개방성의 측면에서 더 진보했음에 깜짝 놀랐다.

개방성은 지구촌이니, 코즈모폴리턴이니 하는 범세계적인 요즘 추세에 강조되는 미덕이다. 하지만 여전히 세계 도처에는 타민족과 타문화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존재한다. 여기서는 나 자신조차도 자유롭지 않다. 내가 다니는 대학 캠퍼스에는 아프리카나 중동에서 온 여러 학우가 있는데, 피부색이나 복장에서 ‘다름’이 확연히 느껴지는 그들에게 다가가기가 여간 쉽지 않다. 반면 일본이나 유럽에서 온 학우들에겐 친해지고 싶고, 그들의 문화를 더 알고 싶다고 생각한다. 책으로 문화엔 우열이 없음을 수없이 배웠지만, 나 역시 현실에선 뿌리 깊은 문화상대주의의 시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문화상대주의란 자신보다 저열하고 보잘것없다고 생각되는 문화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거라고 생각한다. 관심이 없다는 것은 그것의 소멸과 파멸도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다. 패자가 된 로마는 어땠을까? 그들은 승자로서 우월감에 도취되어 타민족의 문화를 말살하지는 않았을까? 그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탈리아 반도 위에 자리 잡은 갈리아인은 라틴족인 로마인과 그 기원 자체가 다르며 문화적으로도 확연히 다른 양상을 띤다. 게르만족이나 브리타니아족 역시 신체적 측면에서 한눈에 로마인과 구분이 되며, 다소 비문명적인 양상을 띤다. 어디 그뿐인가. 지중해 저편에는 커피빛 피부색을 지닌 누미비아인과 이집트인이 있으며, 동방세계의 파르티아인 역시 다르기로는 말할 것도 없다. 로마는 이런 다양한 이민족을 억압하거나 말살하지 않았다. 그들의 종교를 인정해주었고 때론 자치를 인정해주기도 했다. 로마인들은 다양한 구성분자로 이루어진 지중해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 하나의 통일된 문화와 종교만을 강요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던 것이다.

심지어 속주민들에게 기존의 기득권인 ‘시민권’을 부여했다는 것은 놀라운 진보라고 생각한다. 로마의 현제로 추앙되는 트라야누스ㆍ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속주 출신이었다. 일제식민지 치하의 조선인이 일본 총리가 된 것과 비슷하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지는 몰라도 어쨌든 본질적 측면에서 로마인들은 진보적이고 개방적이었다. 그들에게 본국과 속주의 관계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착취와 억압,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아니었다. 그저 지역의 특수성에 따라 나뉜 행정구역에 불과했다. 에드워드 기번은 말한다. “고대인들이 애국심이라고 명명한 공적 미덕은 자신이 속한 자유 정부의 유지와 번영이 자신의 이해가 달려 있는 문제라고 느끼는 데서 시작한다”라고. 시민권의 획득으로 로마의 변방에서 지중해 세계의 중심으로 부상하게 된 순간, 속주민들은 로마와 자신의 운명을 같이하게 된다. 유명한 예를 들자면, 율리우스 키빌루스가 갈리아 제국을 건설하고자 했을 때 갈리아는 로마의 속주로 남기를 원했다. 타민족을 수용하고 그들의 권리를 인정해줌으로써, 그들 자신이 ‘핍박받는 속주’가 아닌 로마와 한 배를 탄 ‘제국의 중심’이라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장점만 있을 수는 없다. 로마는 팽창주의의 측면에서 근대 제국주의의 모태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군사력을 앞세운 폭력적 확장이라는 점에서 비판받을 만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로마의 제국주의와 근대의 제국주의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한다. 근대의 제국주의는 식민지의 고유 문화를 인정하거나 소규모의 자치라도 허용하는 일은 없었다. 무엇보다 식민지란 착취의 대상이었다. 고대 로마에도 전리품의 약탈은 있었지만 매년 속주에 공납을 요구하는 일은 없었다. 속주란 로마세계에 편입된 일원으로써 협력하고 보호해야 할 하나의 행정 구역이었던 것이다. 물론 누가 누구를 보호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한 민족이 결정해야 할 사안이며, 군사적으로 우위에 있는 집단이 결정해서는 안 되는 것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근대 제국주의와 로마의 제국주의를 공통된 지점에 두고 바라볼 수는 없는 일이다. 공존이 제거된 근대의 제국들은 단지 로마의 독수리 문양만을 본 따 깃발에 달았을 뿐이다. 팍스저먼도, 팍스브리튼도 실현되지 않았다는 게 그 결정적 증거가 되지 않을까?

이처럼 고대 로마인의 개방성과 관용정신을 계승하지 못한 우리는 아직도 수많은 혼란을 빚고 있다. 전쟁과 테러, 종교와 인종 간의 갈등은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이다. 특히 종교적인 부분에서 우리는 고대인들의 의식을 한참 따라가지 못한다. 고대 로마는 다신교 사회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통합한 모든 이민족 신을 자신의 신으로 받아들였으며, 어느 특정 신만을 위한 신전이 아닌, 만신을 위한 판테온을 지었다. 종교적 화합이 정치적 안정을 위해 중요한 이유는 종교가 절대적인 신념체제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힘의 논리로 어떤 지역을 평정했다고 한들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그들의 가치체계까지 정복할 수는 없다. 그것을 억지로 바꾸려 든다면 반감만 일어날 뿐이다. 특히 다양한 민족들이 포진한 지중해 세계에서는 그 정도가 더 심했을 것이다. 로마인들은 수많은 이민족과 싸웠지만, 그들의 수많은 사상과는 싸우지 않았다. 인간은 이질적 종교에 전쟁으로 인한 종속보다 더 급격히 저항하는 존재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유사점을 찾아내 받아들였고 인정했다. 반면 오늘날 우리는 타인의 종교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고 자신의 종교를 강요한다. 포교와 선교 역시 가치관의 강요라는 하나의 폭력적 행위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부분에서 인류가 반드시 진보하는 것만은 아님을 깊이 통감한다. 인류는 언제쯤 다시 일신교의 논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박애며 자비며 仁이며 결국 그 내면에 흐르는 줄기는 ‘사랑’이라는 거대하고도 일관된 흐름일 텐데.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며 느낀 또 하나는, 그들의 근면하고 성실한 농부적 기질이 한국인과 닮았다는 것이다. 묵묵히 땅을 일구고, 노력한 이상의 것을 기대하지 않는 근면함. 흙냄새 묻은 손으로 차근차근 빚어내는 정신. 누군가는 로마의 수도와 가도를 보며 실용성만이 강조된 완벽한 상상력의 결여라 폄하하지만 나는 오히려 담백하고 멋 부리지 않는 소박한 아름다움이 감동적이었다. 그들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한 영민한 현실주의자들이었다. 파라오의 황금 데스마스크가 아닌, 찌푸리고 주름진 모습 그대로를 본뜬 로마인의 데스마스크는 검버섯마저 그대로 표현하는 조선의 초상화와 참 닮아 있었다. 있는 그대로, 지금 이 땅에 나는 것들을 사랑하는 로마는 농부의 땀이 베인 우리의 과거와도 일치점이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더더욱 로마를 읽어야 하는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인종이 같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시대가 있다는 사실을 쓰고 싶었다.” 장엄한 세월에 묻혔을 법한 로마인들이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화두를 던질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팍스로마나. 전쟁이 없는 평화. 강도와 해적은 자취를 감추고 제국 전역에서 경제가 눈부시게 성장하는 전례 없는 황금 시대. 모든 인종이 아우러지는 세계 국가. 2,000년이 지난 후에도 그들의 업적이 회자되는 이유는 이루지 못한 이상에 그 어느 시기보다 근접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언제나 ‘나음’을 위해 도전하는 인류에게 로마는 수없이 되새김질해야 할 숙제일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모든 인종이 같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시대가 있다는 사실을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기원전 로마의 집정관 아이밀리아누스는 카르타고가 함락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이런 말을 뱉었다고 한다. “언젠가 트로이도, 프리아모스 왕과 그를 따르는 모든 전사들과 함께 멸망하리라.” 그는 어떤 국가와 문명도 영속적으로 존재할 수 없기에, 로마도 언젠가 오늘의 카르타고처럼 멸망하리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로마라는 드라마를 읽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언젠가 그 끝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살아가야 하는 삶의 아이러니, 언젠가 우리들의 유산이 을씨년스런 과거가 되리라는 걸 알면서도 웃어야 하는 오늘. 인간이 지니고 있는 본질적인 아픔을 동병상련하는 로마의 역사는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우리의 과거는 퇴색하나 소멸하진 않는다. 왜냐하면 위대했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폐허가 된 포룸 로마눔을 보기 위해 오늘도 로마로 향한다. 그리고 때론 빛바랜 프레스코화가 원본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문득 깨닫는다.


작성자 최은지



이 글은 로마인 이야기 901쇄 돌파기념 독후감 대회 대상 수상작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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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한길다반사2011.06.03 14:52


 

이제 마지막으로 한길사로 가는 길은 어떤 길일지를 상상해본다. 내 과거의 삶의 모습에서 예고된 이정표들과 나의 현재 모습을 다시 교차해보면서, 이것이 정말 나를 위한 길인가 다시 한 번 되묻는다.
           
                                                                                         -2011. 2. 9. 한길사 입사 지원서 중에서



벌써 한길사에서의 3 개월이 지났다. 100 일전에 작성한 한길사 입사 지원서를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다. 이제 내가 입사 전에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때다. 나는 그동안 어떻게 지내왔고, 무엇을 배워왔던가? 그리고 이제 나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위풍당당한 한길사 건물 전경. 한길사 면접을 보던 날 도대체 이곳은 나에게 어떤 공간일지 상상해보았다.



한길사에서 맞은 첫 번째 봄

신병교육대에서 모범 사병 표창을 받을 만큼 조직 생활에 잘 적응하는 나. 한길사의 패턴에 적응하는 것 역시 순조로웠다. 특히나 가끔 정적이 흐를 정도로 조용한 근무 환경은 안성맞춤이었다. 나는 묵묵히 어떤 일에 집중하기를 즐기는 편인데, 종종 일에 열중하다가 사무실 창밖 풍경을 바라보면 내가 학교 도서관에 와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또한 끊임없이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정확한 판단력을 요구하는 일의 성격도 스릴 있게 느껴졌다. 그래서 종종 일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면 일부러 기획 아이디어 등을 떠올리는 방식으로 두뇌를 자극해 졸음을 몰아내기도 했다.

함께 일하게 된 한길사 식구들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말 한마디나 몸짓 하나에서 오랫동안 책 냄새를 맡아온 사람 특유의 균형 감각이 느껴진다면 과장일까? 저마다 한 움큼씩 사색을 담은 표정에서 느껴지는 삶의 깊이, 항상 조심스럽게 속삭이는 말투에서 느껴지는 배려심. 그러나 결코 획일화되지 않은 각자 고유의 개성과 에너지는 매일 아침 서로 나누는 인사를 즐겁게 만들어주었다.

물론, 모든 일이 다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먼저 인간관계에 있어서 낯가림이 심하고 낯선 상대와 대화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소심한 성격이 문제였다. 긴장해서 전화 통화 내용을 잘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았고, 첫 저자 미팅 때는 너무 긴장해서 손이 떨릴 정도였다. 또한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해야 하는 업무의 성격도 고역이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정보 때문에 내 주의력에 한계를 느끼고 좌절했던 적도 많았다. 게다가 바로 실전 업무를 경험한다는 사실에 부담이 적지 않았다. 항상 내 판단이 맞는지 의심해야 했고, 어린아이처럼 사소한 것 하나를 묻고 또 물어야 했다.


 

매력적인 한길사 직원들과 함께 한 컷!



소년, 조금은 성장하다

만 서른에 맞이한 2011년의 봄은 이렇게 정신없이 지나갔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직접 부딪혀보고, 성장통을 앓으며 조금은 자라지 않았나 싶다. 우선 프로가 되기 위해 자기 관리의 노력이 절실함을 깨달았다. 시간 관리·건강 관리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자신의 내면을 다스려야 한다. 왜냐하면 편집자의 영혼은 항상 다양한 스트레스와 압박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닥쳐오는 사건에 일희일비하면서 지속적인 피로감을 해소하지 못하면, 결국 자신의 방향 감각과 추진력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둘째, 일상 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아이디어나 말 한 마디의 무게를 알았다. 기획은 낚시요, 편집자는 아이디어로 사람을 낚는 어부라는 생각을 했다. 편집자는 매력적인 기획안으로 작가를 낚고, ‘잘 만든’ 책으로 독자를 낚고, 대담한 시리즈물로 시대를 낚는다. 이 흥미진진한 사냥의 첫 걸음은 언제나 사소한 아이디어 하나가 아닌가? 그래서 나는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스마트폰에 메모하기 시작했다. 앞으로도 이 작업은 멈추지 않을 예정이다.

셋째, 사람의 마음을 빼앗는 기술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여러 작가에게 기획안을 보내고 퇴짜 맞는 일을 경험하면서 출판업이 글 장사가 아니라 사람 장사라는 점을 알았다. 따라서 기본적인 인맥 관리가 중요하다. 앞으로 두 발로 뛰어다니고 진정성 있게 말을 걸며 진짜 사람 장사를 시작할 생각이다.

마지막, 나만의 비밀을 품고 싶다. 나만의 비전, 나만 가진 비장의 무기가 있는 사람은 항상 당당하고 쉽게 방향을 잃지 않는다고 한다. 한 권의 책에서부터 한길사의 미래에 이르기까지. 지금은 초라하지만 언젠가는 당당하게 세상에 내놓을 것을 꿈꾸며, 나만의 비밀을 품고 키워나갈 것이다.


다시 나의 길을 묻는다

마지막으로 내가 석 달 전 입사지원서에서 던졌던 질문을 돌아본다. 과연 이 길은 나를 위해 준비된 길이었는가? 물론 아직 확신은 없다. 다만 더 성장통을 앓고 싶다는 욕심이 솟아오르는 것은 사실이다.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부쩍 자라고 싶다. 원시림을 활보하며 순전히 자신의 감각과 빠른 발놀림으로 세상과 맞서는 고대 사냥꾼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상상해본다. 날카로운 눈으로 세상을 살피고, 예민한 후각으로 방향을 읽으며, 귀를 기울여 상대의 마음을 읽는 노련한 사냥꾼. 출판업계라는 정글 속에서 감히 나만의 감각과 기술로 저자와 독자를 포획하는 승부사. 혹시 이것이 내가 꿈꾸는 미래의 모습이 아닐까?

편집부 강성한

 

 

만 서른 번째 생일을 한길사에서 맞다. 선배님들의 도움으로 무럭무럭 자라길 기원하며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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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파주출판도시는 지금 새로운 변신작업을 한창 진행하고 있습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늘 찾아나서는 ‘책의 유토피아’로 파주출판도시를 만드는 작업입니다. 출판도시를 ‘출판인들의 삶의 일터’일 뿐 아니라 책을 사랑하고 책읽기를 삶의 일상으로 삼는 ‘독자들의 공간’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파주출판도시의 책방거리에 대해서는 이미 말씀드린 바가 있습니다만, 1층이나 2층 또는 지하층을 책방이나 출판문화와 연관되는 갤러리·아트샵·미술관·박물관 등등으로 꾸미고 있습니다. 이미 15개 이상의 책방이 문을 열고 있는데, 많은 회원사들이 이런저런 주제로 문을 열기 위한 준비 작업, 디자인 작업을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전문 디자인팀이 여기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토목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출판도시의 2단계까지 완성되면 100개 이상의 책방과 여러 문화시설이 문을 열게 됩니다. 100개 이상의 책방이 문을 여는 파주출판도시의 책방거리! 생각만 해도 신명나고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이 책방들에서 이런저런 담론이 펼쳐지고, 미술전시회를 비롯한 다양한 문화적 체험이 가능할 것입니다. 파주출판도시의 책방들은 단순하게 책만 판매하는 그런 책방이 아니라 저자와 독자와 출판인들이 함께 담론하고 소통하는 ‘종합 문화공간’입니다. 출판도시의 건축적 성과와 더불어 전개되는 인문학적 행위들은 우리 국가사회의 발전을 담보하는 소중한 시민적·문화적 인프라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파주출판도시는 또한 다양한 책축제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5월에는 어린이 책축제가 열리고 10월에는 국제적인 책 페스티벌인 ‘파주북소리’(PAJU BOOK SORI)가 진행됩니다. 아시아의 출판문화·독서문화의 한 중심이 되고자 하는 책축제입니다. 다양하고 내실 있는 프로그램들이 확실하게 펼쳐질 것입니다. 특별팀이 꾸려지고 프로그램들을 짜고 있습니다.

파주출판도시의 책방거리 조성사업과 파주북소리를 위해 파주출판도시와 파주시·경기도가 손을 잡고 일한다는 사실도 주목되어야 합니다. 출판도시와 파주시는 ‘집행위원회’를 구성해 정기적으로 협의하여 일을 조직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전례가 없었던 민·관의 공동작업입니다.

파주출판도시는 당초부터 공공적·문화적 공간입니다. 파주시와 경기도의 지원을 받는 책 축제 프로젝트이지만, 파주시·경기도의 것만도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대한민국 국민의 출판도시입니다. 아니 아시아인들의 파주출판도시, 세계인들의 책의 도시가 되어야 합니다. 출판문화는 당초부터 세계문화이기 때문입니다. 파주출판도시가 진행하려 하는 일련의 프로그램들은 아시아적 문제의식과 세계시민적 차원에서 기획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파주출판도시를 ‘숲의 도시’로 만들고자 합니다.
나무들 사이를 산책하고 나무들 밑에서 독서하는 그런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파주출판도시의 이 같은 문제의식을 성취해내기 위해서는 그 공간의 조건들도 당연히 개선해야 합니다. 책을 사랑하고 독서를 일상의 삶으로 삼는 세계시민들과, 세계의 출판인들이 방문하는 책의 유토피아가 되기 위해서는 그 공간들도 상응하는 변모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파주출판도시를 ‘숲의 도시’로 만들고자 합니다. 나무들 사이를 산책하고 나무들 밑에서 독서하는 그런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차들이 아주 천천히 다닙니다. 일방통행도 연구합니다. 때로는 차 없는 거리를 만들고자 합니다.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숲 사이로 살짝살짝 보이는 그런 풍경입니다. 이곳저곳에 야외 미술작품이 설치됩니다. 사람들이 천천히 산책하거나 예술적인 벤치에 앉아 독서를 합니다. 우리는 파주출판도시는 ‘슬로우시티’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출판인들이 현재 진행 있는 프로그램들은 파주출판도시를 에코뮤지움으로 만들 것입니다. 문화적인 삶이 일상으로 구현되는 그런 콘텐츠, 그런 그림과 풍경입니다.

우리가 구상하고 진행하는 일련의 프로그램들은 우리 국가사회의 품격을 높여줄 것입니다. 문화적 품격이 뒷받침되지 않는 국가사회가 이 지구촌 시대를 주도할 수 없습니다. 세계의 일급 출판국가들과 함께 하는 파주출판도시의 책 축제 프로그램들은 우리 국가사회를 선진화시키는 인프라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압니다.




김언호 한길사 대표·파주북소리 조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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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공지사항2011.05.02 09:37
5월 5일 어린이날부터 5월 10일까지 파주출판도시에서 어린이 책잔치를 엽니다.

파주출판도시 입주한 출판사뿐만 아니라 외부 다른 출판사들도 참여해 100여 곳의 출판사를 만나실 수 있어요. 

올해 파주 어린이 책잔치 주제는 '와글바글 어린이 책잔치'입니다.^^

어린이들이 신나게 책과 함께 놀고 가라는 의미라고 하네요.

저희 소년한길, 토마토하우스, 아일랜드도 참여할 예정입니다. 외부 길거리 부스 뿐만 아니라 '책방, 한길'에서도 독자 여러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파주로 놀러오세요. 기다리겠습니다 ^^*



 


▲ 포스터를 클릭하면 2011 파주출판도시 와글바글 어린이책잔치 공식 홈페이지 링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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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99년의 역사를 가진 인쇄·출판사 보진재(寶晉齋)를 아시나요? 지난 2002년 8월 15일 창립 90주년을 맞아 파주출판도시의 첫 입주사가 된 보진재. 나는 우리 출판사가 보진재와 이웃하여 책을 만들게 되어 행복합니다. 파주 출판도시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보진재의 존재를 늘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올해로 창립 99주년을 맞는 보진재가 경이롭습니다. 우리 현대사의 격랑을 온몸으로 체험하면서 이 땅의 출판·인쇄문화사를 증언하는 보진재의 존재와 발전은 곧 우리 모두의 긍지이자 희망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한 회사 조직이지만 보진재는 우리 국가사회의 살아 있는 문화유산입니다. 이미 아름다운 역사와 역사정신이 된 보진재를 창립하고 이끌어온 분들의 헌신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파주출판도시에 제일 먼저 입주하는 보진재의 선구적인 볼론티어 정신이 그 역사와 역사정신을 더욱 빛나게 했습니다.


                                                                     보진재 파주 공장 전경


보진재는 자운 김진환(子雲 金晉桓) 선생에 의해 1912년 8월 15일에 문을 열었습니다. 근대 한국미술사의 거장 심전 안중식(心田  安中植) 선생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보진재’ 당호(堂號)를 당대의 명필 성당 김돈희(惺堂 金敦熙) 선생이 쓰도록 했습니다. 자운 선생과 성당 선생은 막역한 사이였습니다.

1874년 서울에서 태어난 자운 선생은 어려서 한학을 배웠는데 서화에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대한제국 정부의 교과서 편찬 작업에 10년간 종사하다가 문아당인쇄소 석판부에서 석판미술 인쇄술을 익혔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보진재를 창립하여 민족문화의 아름다움과 민족정신을 널리 표현해내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일제의 식민지 통치시대를 거치면서도 스스로의 자세를 지켜온 보진재가 인쇄한 수많은 책과 잡지를 통해 이 땅의 젊은이들은 반듯한 정신과 건강한 민족문화를 인식했을 것입니다. 책의 미학과 권능을 보여주는 기업이었습니다.

보진재는 일제말 조선어학회의 의뢰를 받아 조선어 사전 제작을 맡았습니다. 그러나 일제가 조선어학회 사건을 일으켜 이윤재·이극로·최현배 선생 등을 잡아가는 바람에 작업은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이런 와중에서도 이분들로부터 건네받은 조선어 사전의 원고를 비밀리에 잘 보존시켰습니다. 해방 후 원고는 한글 학자들에게 인도되어 『한글 큰사전』으로 간행되었습니다.

6ㆍ25전쟁으로 보진재는 부산으로 피난을 가야했지만 피난 수도 부산에서도 인쇄작업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1968년부터는 출판도 병행하여 인쇄·출판사로서 보진재는 새로운 역사를 걷게 됩니다.

보진재는 창립자 김진환 선생에 의해 이어 아드님 김낙훈 선생이 제2대 사장을 맡았고, 다시 손자 김준기 선생이 제3대 사장을 맡았습니다. 제4대 김정선 사장은 김진환 선생의 증손자입니다. 1992년부터 경영을 맡고 있는 김정선 사장의 성실하고 진지한 자세가 출판도시에서 일하는 출판인·인쇄인들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보진재 공장 안팎의 풍경

 


오랜 역사와 전통은 보진재의 공장 안팎에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 회사 안팎이 단정하고 잘 정리정돈되어 있습니다. 110여 명에 달하는 일하는 분들의 자세도 물론 그러합니다.

지금 보진재가 제작해내는 수많은 책들과 인쇄물들이 우리 인쇄문화 수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만, 아랍·아프리카·동유럽·중국 등 세계의 100여 문자로 인쇄·제작되는 『성서』는 정말 아름다운 책의 세계를 보여줍니다. 박엽지로 인쇄된 『성서』들이 세계로 수출되고 있는 것입니다.

인쇄문화는 한 나라의 문화수준을 보여줍니다.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담아내는 인쇄문화를 창출해내는 보진재의 공장을 우리 아이들에게는 참 좋은 현장학습이 될 것입니다.

보진재는 내년이면 창립 100주년을 맞습니다. 출판도시에서 일하는 출판인·인쇄인들은 지금 ‘보진재 100년’을 위한 준비위원회를 토론하고 있는 중입니다. 보진재의 100년사는 우리 민족문화의 100년사이기 때문입니다. 보진재는 우리 모두의 소중한 문화유산이기 때문입니다. 보진재는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우리의 자랑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년 8월 15일 보진재 창립기념 잔치에 이 나라를 이끌고 있는 중요한 분들을 모두 초청하고 싶습니다. 정말 의미 있는 축제의 마당을 만들고 싶습니다. 상투적인 잔치가 아니라 우리 민족공동체의 삶과 문화를 생각하고, 한 시대의 사상과 정신을 진동시키는 아름다운 출판문화의 역량을 의식하는 그런 자리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이 자리에는 문화계·교육계·경제계 인사들뿐 아니라 대통령도 초대하고 싶습니다.



김언호
한길사 대표ㆍ파주출판도시입주기업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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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파주출판도시란 창조적 발상을 도모하는 인프라다.
파주출판도시에서는 8,000여 명이 창조적 발상의 수단과 방법인
‘한 권의 책’을 기획ㆍ편집하고, 디자인하고 제작하여 세상으로 보내는 일을 하고 있다.


출판계 동료들과 손잡고 출판도시의 건설에 참여해, 한강 하류변 이곳으로 입주하여 일한 지 8년이 되어간다. 북한땅이 바로 건너다보이는 출판도시에서 책을 만들면서 나는 생각한다. 한 시대의 지성과 한 국가 사회의 문화를 어떻게 창출해낼 것인가. 인간다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과 사상의 근거로서의 출판문화를 어떻게 키워낼 것인가. 우리 국가·사회의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를 실천하는 이론과 사상으로서의 출판문화, 우리 민족공동체를 지탱하는 경제와 산업과 과학을 일으켜 세우는 근거로서 책의 힘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파주출판도시를 시작한 지 20년도 더 되어간다. 반듯한 책의 가치와 철학, 지성과 문화의 힘을 이땅에 한번 실현해보자는 것이 우리들의 꿈이었다. 함께 헌신하고 모색하는 출판인들의 유토피아였다. 그리고 지금은 제1단계를 끝내고 제2단계의 건설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들의 유토피아 건설작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파주출판도시는 출판인들의 꿈과 열정으로 실험되고 있는 프로그램이지만, 그러나 출판도시는 우리 국가·사회의 성원들이 함께 가꾸어 나가야 할 문화적 인프라다. 출판이란 한 시대를 일으켜세우는 지식과 정신과 도덕이기 때문이다. 교육과 과학과 정치와 경제의 발전동력이기 때문이다.

출판인들의 책 만드는 일이란 당초부터 공공성을 갖고 있다. 파주출판도시는 이미 우리 출판인들의 것이 아니라 우리 국가사회의 공공인프라다. 파주시민의 것이고, 경기도민의 것이고, 대한민국 국민들의 것이다. 아니 세계인들의 문화적 자산이다. 이 공공인프라에서 어떻게 하면 출판문화를 제대로 창출해 낼 것인가가 우리 모두의 과제다.

한 시대의 출판문화란 어느날 하루 아침에 도약할 수 없다.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성원들의 책 읽기, 책 쓰기, 책 만들기가 축적됨으로써 이윽고 가능해진다. 출판문화란 슬로건 같은 것으로 가능하지 않다. 반듯한 출판문화란 우리 국가사회를 반듯하게 일으켜 세우는 장기적인 프로그램이다.

흔히 창조적 발상을 말한다. 이 21세기에는 창조적 발상이 뭘 만들어낸다고 한다. 그러나 창조적 발상이 어디 하늘에서 하루아침에 떨어지는 것일까. 책 읽고 토론하며, 책 만들고 책 쓰지 않는 시대와 사회에서 창조적 발상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역사와 문명을 선도하는 명예는 책과 함께 하는 인간들에게, 생각하는 삶을 일상으로 누리는 공동체에 주어질 것이다.

파주출판도시란 창조적 발상을 도모하는 인프라다. 지금 파주출판도시에서는 8,000여 명이 창조적 발상의 수단과 방법인 ‘한 권의 책’을 기획하고 편집하고, 디자인하고 제작하여 세상으로 보내는 일을 하고 있다.

우리 출판문화를 반듯하게 키워내는 문제를 우리 함께 생각해야 한다. 세계인들이 주목하는 파주출판도시의 출판문화 생산조건을 개선하는 프로그램이 오늘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고 있다. 보다 지적이고 문화적이며, 보다 정의롭고 민주적이며, 전쟁이 아닌 평화의 철학과 실천을 행동으로 해내며, 보다 생산적이고 복지적인 국가사회를 구현하는 이론과 사상과 전략으로서 파주출판도시는 존재하기 때문이다.

파주출판도시 출판인들의 이런 저런 대안과 주장은 사실은 우리 국가사회를 어떻게 바로 세우고 제대로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온 한국인들이 당당하고 품격 있는 세계시민이 될 것인가 하는 과제도 사실은 우리 모두가 읽고, 쓰고, 만드는 책의 문제다.


- 김언호
한길사 대표·파주출판도시입주기업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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