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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6.04 [인문학스터디] 역사학의 거장들 역사를 말하다_제1강 역사학과 인류학의 만남 (2)
  2. 2015.05.14 [인문학스터디] 역사학의 거장들 역사를 말하다
  3. 2014.08.04 2014년 8월, 신입 출판편집자의 6개월차 소감 (9)
  4. 2014.06.18 6월 16일, 그날의 벌판, 그날의 죽음(마르크 블로크 서거 70주년 기념 독자와의 만남) (1)
  5. 2014.06.17 [서점이야기2]서울대학교 앞 그날이 오면 (2)
  6. 2014.06.02 [한길인문고전아카데미] 장-자크 루소 깊이 읽기(3) - 인간적인 교육을 향한 나지막하지만 깊은 목소리(『에밀』) (1)
  7. 2014.05.23 [한길인문고전아카데미] 장-자크 루소 깊이 읽기(2) - 곡학아세(曲學阿世)식 학문연마의 폐해를 질타하다
  8. 2014.05.16 [한길인문고전아카데미] 장-자크 루소 깊이 읽기(1) - 자연 속에서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얻다
  9. 2013.09.06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인도를 책으로 만나다 (5)
  10. 2013.07.17 출판 인생 37년, 김언호와 함께 즐기는 뮤지엄 브런치 (2)
  11. 2013.06.26 여름방학에 대학생이 꼭 읽어야할 인문도서 4권 (3)
  12. 2012.10.04 세계 자본주의의 형성과 전개 - 에릭 홉스봄 『자본의 시대』
  13. 2012.08.27 한길그레이트북스 신학기 특별전
  14. 2012.03.05 한길그레이트북스 120권 돌파기념 특별전
  15. 2011.10.27 이중혁명과 자본주의 세계의 형성 - 에릭 홉스봄 『혁명의 시대』 (1)
한길다반사2015.06.04 14:25

역사학의 거장들 역사를 말하다

제1강 역사학과 인류학의 만남 『기적을 행하는 왕』

6월 3일 정동프란치스코회관

 

 

마르크 블로크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왜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 걸 쉽게 믿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전쟁 통에 얼마나 많은 소문과 추측이 난무했을까요. 이러한 의문을 가지고 본인의 관심사인 유럽 중세시대를 다룬 첫 번째 저서가 바로 『기적을 행하는 왕』입니다.

1000여 년 전 프랑스와 영국에서 일어난 ‘기적의 역사’와 ‘기적을 믿는 역사’.

한길그레이트북스 134권『기적을 행하는 왕』을 번역한 박용진 선생님이 전하는

‘역사학과 인류학의 만남’을 소개합니다.

 

 

 

 

 

마르크 블로크는 뤼시앵 페브르와 함께 프랑스 아날학파 1세대 학자로 알려져 있는데요, 아날학파는 문헌연구나 역사적 사건 자체에 집중한 기존 역사연구와 달리, 역사에 대한 구조적 파악을 위해 새로운 연구방법을 도입하며 20세기 역사학의 전면에 등장했습니다. 특히 2세대인 페르낭 브로델에 와서 그 영향력이 커졌는데요, 브로델은 “모든 인간과학은 사회의 전체성에 이르는 하나의 문이다”라며 전체사를 강조했습니다. 또, 역사학과 사회과학(지리학)의 결합, ‘시간지속’ 개념으로 역사연구의 새 장을 연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마르크 블로크 뤼시앵 페브르

 

 

 

 

인류학적 역사학의 첫걸음

 

"그리스도가 과연 십자가에서 처형당하고

다시 부활했는가를 아는 것은 오늘날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의 문제는 왜 수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의 처형과 부활을 믿는가 하는 점이다."

• 마르크 블로크, 『역사를 위한 변명』

 

 

집단 심성을 주제로 삼아 문헌(회계장부, 의학서적)과 비문헌(이미지, 표상)을 사료로 다룬 블로크의 역사방법론은 그 당시 역사연구에서는 새롭고 낯선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생각, 행동양식, 관습을 다루는 인류학적 역사학은 1980년이 되어서야 일반적인 흐름이 되었는데, 『기적을 행하는 왕』은 50여 년을 앞선 선구적인 저서였고, 그래서인지 출간되었을 때 주목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기적의 역사와 기적을 믿는 역사

 

“왕이 너를 만지고, 신이 너를 치료하노라.”

 

블로크는 어떻게 손대기 치료가 행해지며, 이 능력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또 이러한 능력과 행위가 정치적 권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먼저 살핍니다. 이 과정에서 기적을 행하는 왕에 영향을 준 게르만적 요소(왕의 초자연적 능력), 기독교적 요소(도유식), 로마적 요소(대관식)에 주목합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사람들이 기적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어떻게 해서 기적을 믿게 되었는지, 또 어떻게 해서 믿지 않게 되었는지를 추적합니다. 당시 왕이 치료한다고 알려진 연주창은 결핵의 일종으로 건강이 회복되면 자연적으로 치료되기도 하는 병이었다고 합니다. 연주창을 앓고 있는 수백, 수천의 사람들이 왕 앞에 나아가 손대기 치료를 받습니다. 치료가 끝나면 은화와 앞으로 지켜야 할 생활수칙이 적힌 처방전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사람들 중 몇몇은 건강이 회복돼 연주창이 자연적으로 나았을 수 있습니다. 소문은 금방 퍼졌을 것이고, 사람들은 더 강하게 왕의 치료 능력을 믿게 되었겠지요. 치료되지 않은 경우는 환자의 잘못이라 여겼다고 합니다. 믿음이 부족하거나, 처방전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이죠. 결국 “기적에 대한 믿음을 만들어낸 것은 기적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인 것입니다.

 

 

 

 

프랑스 앙리 2세(1547~50) 영국 메리 여왕(16세기)

 

 

 

 

유럽사를 관통하는 성(聖) VS 속(俗)

 

그러나 이러한 믿음도 이성의 세기 앞에서 점점 힘을 잃고 사라집니다. 공식적으로는 19세기 초에 마지막 치료가 있었는데, 민간에서는 20세기 초까지 믿음이 지속되었다고 합니다. 블로크는 왕권의 초자연적 성격이 점차 쇠퇴하는 과정에서 근대의 이성이 승리하는 역사를 발견했습니다. 이는 유럽사를 관통해온 성(聖)과 속(俗)의 대립입니다. 20세기에 들어설 때까지 프랑스에서 교권과 속권의 관계설정이 첨예한 문제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블로크에게 성과 속의 관계는 지나가버린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살아 있는 인간의 현실적인 문제였을 것입니다.

 

 

 

 

다음 강의에서는 마르크 블로크의 주저 『봉건사회』를 다룹니다.

제도가 아닌 인간의 관계에 주목한 역사학이란 무엇일까요.

6월 10일 수요일,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7시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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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2015.05.14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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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다반사2014.08.04 10:39

2014년 8월, 신입 출판편집자의 6개월차 소감

 

7월이 지나고, 어느덧 편집자 7개월차에 접어들었다. 대체 여섯 달이 어떻게 그렇게 빨리 흐른 걸까(사실 답은 이미 알고 있다. 하루하루가 고유한 의미를 갖던 학생 때와는 달리, 회사원이 된 지금은 ‘하루’가 아닌 ‘일주일’을 단위로 시간을 뭉텅뭉텅 인식하기 때문이다.)

 

'편집자'가 대체 뭘까. 어떤 일을 하는 걸까. 어떤 기분일까. 재미있을까?

답도 없는 이런 질문에 매일 고민했다. 편집자를 꿈꾸기 시작한 작년부터, 실질적으로 입사 준비에 박차를 가한 올해 초가 절정이었던 것 같다. 질문은 조금 바뀌었지만(‘편집자’는 대체 어때야 하는 걸까.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재미있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고 때론 권태롭기도 한데, 앞으로도 계속 이럴까?) 지금도 난 여전히 내 직업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다. 아무튼 이 일을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난 지금, 이 시점의 단상을 기록해보려 한다.

 

 

출판사 편집부에 근무해서 좋은 점

직업으로서 편집자의 가장 큰 장점은, 배워야 할 것이 많고 배우게 되는 것도 많다는 점이다. 가령, 나를 비롯한 신입 편집자가 가장 먼저 배워야 하는 것은 ‘한글 맞춤법’이다. 편집의 기본은 맞춤법에 맞게 글을 다듬는 ‘교정’이다. 정확한 교정을 위해서는, 국립국어원 웹사이트와 친해지는 일이 필수다. 출근 후 한두 시간이 지나면 금세 국어사전이나 외래어표기법을 검색할 일이 생긴다. 그러다보면, ‘www.korean.go.kr’은 퇴근 때까지 인터넷 창의 한 탭을 차지한다. 나름 노력하고는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다른 그림 찾기> 위는 2월 11일, 출근한 지 1주일 됐을 때 찍은 사진. 아래는 방금 찍은 현재 내 책상^^;

 

물론 배우는 것의 핵심이 맞춤법은 아니다. 내가 만나는 책에 담긴 내용, 그 주변지식을 매번 새로 배운다. 바흐의 발자취를 따라 여행하고 기록한 최정동 선생님의 원고를 읽으면서는 바흐의 삶과 음악, 덤으로 독일의 지리와 명소에 대해 배웠고 이광주 선생님의 원고를 읽으면서는 17-18세기 프랑스 귀부인들의 살롱 문화를 알아가며 이에 감탄했다. 또 지난 달 R 선생님께 원고 청탁을 드리기 위해 만나 뵈러 가기 전에는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선생님의 칼럼들을 섭렵했고, 약속 전날에는 도서관에서 그분이 집필하신 책을 모조리 빌려 낑낑대며 집에 갖고 와 머리말과 차례만 모두 읽어보고 자기도 했다. K 선생님을 뵈러 가기 전에는 그분의 연구와 관심 분야를 파악하고자 그분의 강연 영상을 보고 인터뷰 기사들을 뒤졌다. 난 사실 공부나 독서를 계속 취미로 삼고 싶어 이 직업을 희망한 것도 있는데, 그런 점에선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럽다고 할 수 있다. 훌륭한 편집자가 되려면, 정말 부지런히 여러 방면의 교양을 쌓고 관련 아이디어들을 스스로 계속 가다듬고 정리해야 한다.

 

덧. 출판사 편집부에 근무해서 안 좋은 점

오후만 되면... 눈이 아프다!!!! 건조하다!!!! 퍽퍽하다. 다른 많은 사무직들도 하루 종일 모니터만 들여다보겠지만, 편집자는 유독 글을 집중해서 읽는 탓인지 눈이 쉽게 피로해진다. 극복방안을 고민하는 중이다.

 

 

이삼성 선생님과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그간 가장 기뻤을 때는, 무엇보다 내가 그리던 책(또는/그리고 저자)을 만났을 때였다. 나는 학부에서 정치외교를 공부했다. 배우는 내용도 흥미로웠고, 가르쳐주시는 교수님들도 더러 존경하긴 했지만 늘 이런 좋은 지식과 통찰이 왜 캠퍼스 밖의 좀더 넓은 대중과 소통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한길사에 입사해서 내가 원한 바로 그런 책과 저자를 만났다.

 

 

고백하건대, 사실 이삼성 선생님의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를 그 책이 ‘한겨레 새고전 26선’이 선정되고 나서야 처음 읽기 시작했다. 심지어 입사 전에는 이삼성 선생님이나 그분께서 집필하신 책의 존재도 몰랐다(학생 때 대체 수업 참고교재 외에 다른 전공 관련 책을 읽은 게 있을는지). 본래 실장님께서 담당하신 저자였는데, 실장님께서 퇴사하시면서 내 담당이 된 것이다.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한 권을 집에 들고 와(요즘 책들에 비해 무겁고 큰 책이다) 침대 머리맡에서 읽어나가는데... “유레카!” 내가 과 교수님들께 바랐던 그런 작업을 이삼성 선생님께서 해놓으신 것이었다. 감히 말하건대, 우리나라의 소중한 지적 자산이다. 동아시아 속 한반도의 현재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우리나라 사람 누구나 한번 읽어봤으면 좋겠다. 심지어 어렵지도 않다.

(이삼성 선생님께선 현재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제3권을 집필 중이시다. 한 권이 될지, 두 권이 될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수년 안에 드디어 대단원의 막이 내릴 것이다. 모두들 기대해주시라!)

 

아니다, 더 솔직해지자. 입사 후 가장 기뻤던 순간은, 한길그레이트북스 인문학 특강 때 접수 테이블에 앉아 있는데 한 남자분이 다가와 별 말씀도 없이 커피를 건네주셨을 때였다. 내가 당황하며 연유를 묻자, 그분께선 그저 “좋은 강의 준비해주셔서 감사하다”라고만 하셨다. 글과의 스킨십도 물론 좋지만,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난데없이 경험하는 사람들 사이의 산뜻한 스킨십도 기분 좋기가 못지않은 것 같다.

 

 

 

24살 편집자와 89세 저자의 만남

내가 요즘 한창 작업하고 있는 원고의 저자는 바로 이광주 선생님이시다. 이광주 선생님은 『교양의 탄생』 『편력』 『동과 서의 차 이야기』 『아름다운 책 이야기』 등 유럽 문화 전반에 대해 여러 권의 책을 집필하신 역사학자이다. 올해 나이는 89세. 지금도 손으로 원고지에 글을 쓰신다. 그 원고는 손녀따님이 컴퓨터로 입력해 편집부로 보내온다. 가끔 선생님께서 수정사항을 내게 직접 주기도 하시는데, 요즘 입력하고 있는 게 바로 그것이다^^; 처음에는 선생님 글씨를 알아보기도 힘이 들었는데, 몇 달이나 됐다고 그새 많이 익숙해졌다.

 

선생님 글에는 선생님만의 풍미가 흐른다. 요즘 세대의 글에서 찾아보기 힘든 다양한 한자어를 구사하는 어휘력도 어휘력이지만, 무엇보다 선생님 글에는 일정한 리듬이 있고 그 리듬이 글을 참 깔끔하게 만든다. 언젠가 편집부 차장님께서 선생님께 글 쓰시는 비법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선생님께서 처음엔 비밀이라고 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선생님께서 내사하셨을 때 눈치를 챌 수 있었다. 그는 퇴고할 때 작은 소리로 읊조리면서 글 전체를 ‘낭독’하신다. 저명한 번역가 김석희 선생님도 같은 방법을 쓰신다고 한다.

 

 

 

나도 89살이 됐을 때, 이광주 선생님 같이 멋진 모습―열정을 잃지 않은 모습―으로 살 수 있을까? 이광주 선생님께선 65년의 나이차를 뛰어넘어 나를 동료로 봐주시고, 우린 편한 대화도 나눈다. 무례한 말일 수도 있지만, 심지어 가끔은 서양식의 ‘친구’(friend)가 이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내가 이 직업을 하지 않았으면, 나이를 뛰어넘어 이런 훌륭한 인생 선배들과 가까이 지낼 기회가 있었을까. 많이 배운다.

 

 

오늘 그리고 내일

 

<오늘>

지금 컴퓨터 바탕화면에 저자 이름으로 된 바로가기 폴더만 7개다. 이론상으로는, 모두 올해 내 출간이 ‘목표’인 책들이다. 이 사태를 어찌할꼬. 입사 후 6개월이 지난 지금, 내가 제작을 넘긴 책은 단 한 권이다(다음 주에 한 권 더 넘어가긴 한다!)

 

<내일>

6개월만큼의 실력이 쌓였을까. 이 질문에는 매우 회의적인 기분이 들지만, 그래도 노력을 기울이면 지금까지보다는 앞으로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어제>

‘출판사’에 입사하고자, ‘편집자’가 되고자, 인터넷을 이 잡듯 뒤지던 시기가 있었다. 인터넷에 넘쳐나는 게 정보인데, 내가 궁금한 그 직업의 모습에 대해선 대체 얼마나 정보가 없는지. 절망스러운 기분마저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 졸문이 우연히 이 글을 읽게 된 몇몇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유익한 정보나 재미있는 읽을거리가 되었다면 보람차겠다.

 

글을 끝맺기 전에 마지막으로 스스로 묻고 답해본다. ‘내게 책이란?’

특히 요즘 세상에서 내가 응원하고 지지하고픈 매체다. 난 유별난 다독가나 책벌레가 아니다. 영화도 좋아하고, 잡지도 읽고, 신문도 읽고, 인터넷도 하고, 웹툰도 보고, 티브이도 많이 보고, 음악 듣는 것도 즐긴다. 그런데 가끔, 세상이 너무 복잡하고 무엇보다 ‘시끄럽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모두 너무 말이 많은 것 같고, 시각정보도 어느 순간 피로해질 만큼 넘쳐나는 것 같고. 그럴 때, 동요한 내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가장 고요한 매체가 책이다.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세상의 소음에 지치는 다른 이들에게도 책이 좋은 친구가 되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나는 이제 책 만드는 일상 속으로―내 직장의 업무로 다시 돌아간다. 내가 만드는 책도, 세상에 나와 누군가에게 좋은 친구가 되기를!

 

 

 

2014년 8월의 시작

편집자 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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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한길그레이트북스2014.06.18 11:31

6월 16일, 그날의 벌판, 그날의 죽음

 

 

 

 

역사가 된 역사가

마르크 블로크를 읽는 밤,

그를 생각하는 밤

 

 

 

1944년 6월 16일

역사학자 마르크 블로크는 생 디디에 포르망 허허벌판에서 게슈타포에게 총살당했습니다.

 

 

 

2014년 6월 16일

우리는 그날의 벌판, 그날의 죽음을 떠올리며 마르크 블로크를 생각했습니다.

 

 

 

 

 

 

 

저녁 7시, 시청역 근처 카페에서 ‘마르크 블로크를 읽는 밤, 그를 생각하는 밤’이 열렸습니다. 마르크 블로크의 저작을 번역 출간한 한정숙 교수(서울대 서양사학과), 박용진 교수(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연구교수), 또 여러 독자들을 모시고 “역사가 된 역사가, 역사서 저술의 영웅, 역사에 덥석 물려가버린” 마르크 블로크를 이야기했습니다.『역사를 위한 변명』『봉건사회』『기적을 행하는 왕』에 나타난 역사가로서의 학문적 특징과 엄정함, 그리고 행동하는 지성으로서 그가 맞이한 죽음 앞에서 우리는 “도대체 역사란 무엇에 쓰는 것인지 저에게 설명 좀 해주세요.” 라던 소년의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았습니다.

 

 

 

보편적 이상을 꿈꿨던 역사학자 마르크 블로크

 

  이날 사회를 맡은 유재화 선생(한길사 기획위원)은 스트라스부르 마르크 블로크 대학에서 석사를 마치고 마르크 블로크 평전,『역사가 된 역사가 마르크 블로크』를 번역하게 된 인연을 들려주며 행사를 시작했습니다. 자식을 여섯이나 둔 쉰여섯의 가장이면서, 이미 수권의 저서를 낸 학자. 프랑스는 물론이고 외국에까지 명성이 자자했던 역사가 마르크 블로크. 학문과 교육 정책 분야에서도 변화를 꿈꾸며 프랑스 고등교육(대학) 전반을 개혁하려 했던 이상가.(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의 탄생, 아날 학파의 탄생, 대학교육정책사에서 마르크 블로크라는 이름은 결코 빠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나자 그는 노령의 몸으로 기꺼이 몸 바칠 결심을 하고 직접 전장에 나갔습니다. 그리고 1944년 6월 16일, 다른 열일곱 명의 어린, 젊은 레지스탕스 대원들과 함께 생 디디에 포르망 허허벌판에서 사살당합니다. 비시(Vichy)색을 다 입은 지식인들 사이에서 전문적 능력을 갖추되 그 능력에 안주하는 것을 거부한 이상적 지식인, 참여적 지식인의 얼굴을 찾던 자들에게 역사학자 마르크 블로크는 그 궤적만으로도 ‘역사’가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한길사와 마르크 블로크

 

 

 1979년 12월 한길사가 번역 출간한 『역사를 위한 변명』(정남기 옮김)은 아마도 고단한 시대에 시련을 겪는 사람들에게 역사를 향한 신뢰 또는 희망을 심어주었을 것입니다. 마르크 블로크의 학문정신과 실천은 한길사의 ‘역사기획’ 한가운데 늘 존재하는 이미지였습니다. 행사에 참석한 한길사 김언호 대표는 펴내는 책마다 판금을 당했던 엄혹한 시절, 마르크 블로크의 역사정신과 실천 속에서 단재 신채호 선생의 민족주의를 떠올렸던 기억을 얘기했습니다. 식민지시대와 분단과 전쟁으로 이 땅에서의 역사는 고단할 수밖에 없었고, 그 역사에서 삶은 사는 사람들은 온갖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민족주의사관은 이 같은 우리 현대사의 성격과 정체를 규명하는 한 준거가 되었습니다. 마르크 블로크는 민족주의사관을 지닌 역사학자는 아니었지만 그의 역사정신과 행동은 우리에게 비수같이 가슴에 꽂히는 감동이었습니다.

 

한길사는 1980년대 초반부터 마르크 블로크의 대표작 『봉건사회』의 번역출판을 시도해 마침내 1986년 2월에 한정숙 교수(서울대 서양사학과) 번역으로 ‘오늘의 사상신서’ 제88․89권, 『봉건사회』를 출간했습니다. 90년대에는 ‘한길그레이트북스’를 기획하면서 다시 한 번 번역을 손봐 한길그레이트북스 제49․50권으로 『봉건사회』를 펴냈고, 『역사를 위한 변명』도 고봉만 교수(충북대 불어불문학과)에게 새로 번역을 의뢰해 다시 출판했습니다. 그리고 2014년 가을, 마르크 블로크의 첫 번째 주저이자 역작인 『기적을 행하는 왕』(박용진 옮김)이 출간될 예정입니다. 『기적을 행하는 왕』은 중세 정치권력의 재현과 구성에서 단연 선구적인 작업으로 호평을 받은 마르크 블로크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입니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마르크 블로크의 역사학

 

 

『봉건사회』를 번역한 한정숙 교수는 마르크 블로크의 학문세계를 구불구불한 길에 비유했습니다. 한눈에 시작과 끝이 보이는 반듯한 포장도로가 아니라 여기저기 복잡한 샛길들이 끝없이 연결돼 있는 미로와도 같은 길 말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사람들의 얘기도 그에게는 역사학의 대상이었습니다.

 

 

역사학의 대상은 본래 인간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들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추상화에 적합한 단수형보다는 상대성의 문법적 형태인 복수형이

 

다양한 것을 탐구하는 학문에는 더 적합할 것이다.

 

눈으로 금방 느낄 수 있는 풍경이나 연장 ・기계 너머로,

 

겉으로 보기에는 차디차게 보이는 문서

 

그리고 그것을 만든 자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는 제도 너머로,

 

역사학이 파악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인간들이다.

 

거기에 이르지 못한다면 역사가는 기껏해야 잡다한 지식을 다루는

 

엉터리 학자에 머무르고 말 것이다.

 

훌륭한 역사가는 전설에 나오는 식인귀와 흡사하다.

 

역사가는 인간의 살냄새를 맡게 되는 바로 그 곳에 자기 사냥감이 있음을 안다.

 

(마르크 블로크, 『역사를 위한 변명』)

 

 

 

마르크 블로크의 저작은, 역사인류학, 심성사, 비교사 차원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올 가을 출간예정인『기적을 행하는 왕』을 번역한 박용진 교수는 마르크 블로크가 말한 역사가의 태도에 대해 설명해주었습니다. 마르크 블로크는 오늘날의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이해되지 않는, 중세시대 사람들의 왕에 대한 종교와 같은 믿음과, 꿈을 현실이라 믿었던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 시대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국왕의 신성한 손이 스치기만 한 연주창 환자들 중 일부는 나았을 것이고,

 

다른 많은 자들은 나은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오늘날 말로 하면, 자연 치료이고 11세기 말로 하면, 왕의 능력에 의한 치료인 셈이다.

 

이 과정은 수많은 작은 사건들의 결과로서 나타나기에 추적하기 쉽지 않다.

 

그것은 매우 다양한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누적될 때에야 비로소 결과가 나타난다.

 

그 사건들은 각각 떼어놓고 보면 문헌이 언급하기에는

 

너무도 의미가 없을 정도이다.

 

역사가들이“우연”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마르크 블로크, 『기적을 행하는 왕』)

 

 

 

  행사 마지막에 인상 깊은 질문이 나왔습니다. 허미경 기자(한겨레신문)는 오늘날 마르크 블로크 역사학의 의미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20세기 후반, 포스트모더니즘의 광풍 앞에서 지식인, 정의, 용기, 역사와 같은 개념은 그 힘을 잃고 쓰러져갔습니다. 상대주의와 회의주의의 드높은 목소리에 역사를 공부하는 일이 무의미하게 치부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 역사를 대하는 마르크 블로크의 자세에서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을 보았습니다.

  그는 “살아 있는 것을 이해하는 능력,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역사가의 중요한 자질”이라 말했습니다. 이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역사적 감수성입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이해하고 싶어합니다. 역사를 공부하는 일은 인간의 본능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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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다반사2014.06.17 09:31

[서점이야기2] 신림동 그날이 오면

 

 

여러분은 청소년시절, 대학시절의 학교 앞 서점을 기억하시나요?

저의 청소년 시절의 서점은 광화문 교보문고였고, 대학교 시절의 서점은 갑을문고였는데요.

그 시절의 광화문 교보는 학교에서 걸어가기 좋은 시원하고 따뜻한 놀이터였고, 대학교 시절의 갑을문고는 전공책을 사기 좋은 서점, 잠깐 목만 축이고 오는 약수터 같은 서점이었습니다.

 

서울대학교 학생들에게 그날이 오면 서점은 어떤 의미일까요?

아마 인문과학 전문서점이니만큼 학생들 각자의 추억들이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직장인이 된, 출판사에 다니는 마케터 윤에게 그날이 오면 서점의 의미는

한 달에 한 번 꼭 방문하는 거래처, 일터의 서점입니다.^^

 

서점이야기 두 번째 주인공은 그날이 오면입니다. 

그날이 오면 서점은 1988년에 오픈 한 이후로 20년 넘게 순수한 인문과학 서적 판매를 고수하는 서점인데요.

특이하게도 개인이 운영하는 가게인데도 불구하고 230여명의 후원회원이 있으며

후원회가 지원하는 후원금으로 운영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날이 오면 위치 

 

 

 

 

 

 

 

서점 앞과 입구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반기는 건 '많이 읽힌 책, 새로 나온 책'인데요.

요즘 수기로 책 이름을 이렇게 써주는 곳이 흔치 않아서 인지 한 번 더 눈이 가는 것 같습니다.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이렇게 쓰시는 걸 보니, 사장님의 부지런함과 서점에 대한 애정을 느껴지네요!

 

 

 

 

작은 서점이지만 도서도 분야별로 정리해 놓아서 책을 찾기 쉬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의자가 있다는 게 참 좋았는데요.

대형서점을 가도 의자없이 대부분의 손님들이 땅바닥에서 앉아 책을 보는 경우가 많잖아요.

물론 도서관이 아닌 서점이긴 하지만 찾아오는 손님에 대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분야별로 정리가 잘 되어 있죠?

바닥 한가운데가 유난히 해진 걸 보니 저 자리에서 많은 분들이 무슨 책을 고를지 고민했던 것 같네요. :)

 

 

 

 

벽면을 보면 인문과학서적이 많이 출간되는 출판사를 모아 서고를 만들어놨는데요.

 

 

 

쨔쟌!

인문과학전문서점에 한길사가 빠지면 섭하죠?^^

 

 

 

이번주 (6월19일 목요일) 한길인문고전아카데미 강의 주제.

에릭 홉스봄의 '제국의 시대'에서 한 컷!

 

(▷한길인문고전아카데미 자세히 보기 http://hangilsa.tistory.com/408)

 

 

 

 

 

한길사에서 절판된 책도 보이네요!

이렇게 동네 서점에 있는 한길사 서고를 보다 보면 보물같은 한길사 책이 나오곤 합니다.

오래된 서점에서만 느낄 수 있는 깨알같은 재밉니다. 하하하

 

 

 

 

서점 한편에 자리 잡은 테이블입니다.

이 테이블에서 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이면 사장님께서 박카스 혹은 따뜻한 녹차를 건네주시기도 한답니다.

그래서 가끔 저 테이블에서 감동을 받곤 하는데, 저 감동적인 자리가 사실 역사모임이나 독서모임 등등을 하는 자리라고 하네요!

 

 

 

여기까지 마케터 윤의 일터인 그날이 오면 서점 짧은 리뷰였습니다.

서울대학교에 친구 만나러 갈 일이 있거나, 신림동에 백순대 드시러 갈 일 있을 때 한 번 방문해 보세요!

깨알같은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

 

-by 마케터 윤

 

 

+ 짧다고 쓴 리뷰가 길게 느껴지신다면? 동영상으로 둘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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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그레이트북스2014.06.02 14:06

한길인문고전아카데미

장-자크 루소 깊이 읽기(3) - 인간적인 교육을 향한 나지막하지만 깊은 목소리(『에밀』)

 

 

Captain. Oh my captain!


“캡틴, 오 마이 캡틴!” 너무나 유명한 이 대사로 루소 제3강 후기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제 나이 20대 후반이지만 어제 배웠던 『에밀』의 영향 때문일까요? 루소가 10대 아이에게나 필요하다던 자유분방함을 가지고 얘기를 풀어나가보겠습니다.


아마 이 글을 읽으실 분 중 대부분이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를 보셨을 겁니다. 저도 참 좋아하는 영화인데 정말 많은 명대사를 남겼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캡틴, 오 마이 캡틴!”이겠지요. 이 대사는 영화의 마지막 부분, 그러니까 로빈 윌리엄스(존 키팅 역)가 감각적이고 자유로우며, 그래서 미학적이기까지 한 교육을 펼친 끝에 결국 학교에서 쫓겨나는 바로 그 결정적 장면에서 등장합니다. 몇몇 학생이 책상 위에 우뚝 올라서서, 힘없이 교실 뒷문으로 빠져나가는 윌리엄스에게 저 대사를 ‘헌정’하는 것이죠.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마지막 장면.


 

참 저 대사도 대사지만 그 장면의 미장센이 정말 멋졌습니다. 마지막 경고를 날리는 표독한 교장의 표정,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대다수의 학생들, 그리고 ‘책상’을 두 발로 밟은 채로 ‘칠판’에 등을 돌리고 허리가 부러질 듯 꼿꼿이 서서 윌리엄스를 바라보는 몇몇 학생이 (옅은) 로우 앵글 특유의 긴장감 속에서 묘한 대비를 이루었죠. 이 장면은 감격한 윌리엄스를 잡은 하이 앵글과 교차편집 되면서 그 극적 효과가 극대화됩니다. 사자성어로 청출어람이라 하나요? 니체가 말한 위버멘쉬의 탄생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한 편의 시


제가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따로 있습니다. 윌리엄스가 윌트 휘트먼의 시를 인용하는 장면입니다. 윌리엄스는 편집되기 이전의 시, 즉 교육이란 명목으로 무슨 고장 난 시계마냥 ‘분해’되기 이전의 시를 강조합니다. 쉽게 말해 자연적 감성으로 느끼고 체험하라는 것입니다. 시는 행과 열과 화자와 청자가 모두 따박따박 분해된 상태에서 읽힐 수 없습니다. 시를 읽을 수 없다는 것은 곧 시를 쓸 수 없다는 것이고요. 그리고 윌리엄스는 말합니다.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따위는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해. 하지만 시와 미, 낭만, 사랑은 삶의 목적인 거야. 휘트먼의 시를 인용하자면…….”



오, 나여! 오, 생명이여!


수없이 던지는 이 의문!


믿음 없는 자들로 이어지는 도시


바보들로 넘쳐흐르는 도시


아름다움은 어디서 찾을까?


 


오, 나여! 오, 생명이여!


대답은 한 가지


네가 거기에 있다는 것


생명과 존재가 있다는 것


 


화려한 연극은 계속되고


너 또한 한 편의 시가 된다는 것


 


너 또한 한 편의 시가 된다는 것


 

다시 자연으로


저 시에서 ‘나지막하지만 인간적인 깊은 목소리’가 들리시나요? 루소에게 그 목소리는 “바보들로 넘쳐흐르는 도시”가 아니라 바로 자연이었습니다. 이때 자연의 목소리를 듣고 전할 이가 바로 교사인 것이고, 따라서 우리가 아름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이 역시 교사인 것입니다. 자연의 감수성, 그리고 올바른 학문의 필요성을 얘기한 제1강과 제2강은 바로 이 지점에서, 즉 제3강이 말하는 좋은 교육(자)에서 만나게 됩니다.


좋은 교육을 설명하기에 앞서 우선 루소는 성선설을 주장한 사람입니다. 당연히 그에게 가장 선한 존재란 아이이겠죠. 하지만 당시 사회에서 아이들이 처한 상황은 매우 열악했습니다. 서민층 어른들은 아이들을 자신과 떼어놓기 바빴고, 상류 계층 역시 아이들을 교육기관에 맡겨 이기적인 인간으로 자라도록 방치했습니다. 애초에 ‘아이’라는 관념조차 없었죠. 루소는 아이로 태어난 아이를 아이로 보지 않는, 이 말장난 같은 상황이 자연적 질서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아이를 아이로 보고 그에 합당한 교육을 시켜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온 책이 바로『에밀』입니다. 루소의 주저 『에밀』은 좋은 교육에 대해 말합니다. 루소는 자연을 선하다고 보았는데, 그 안에서 각자 주어진 역할과 위치에 충실하면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이죠. 반대로 자연으로부터 멀어지면 그것은 무질서요 혼돈 그 자체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교육이란 자연의 질서 그대로 아이를 성장시키는 것이겠죠. 즉, 자연이 아이에게 부여해준 자리를 되찾아주는 일. 그 자리에서 멀어지지만 않는다면 아이는 자연이 부여해준 선한 심성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총 3강에 걸쳐 루소를 강의해주신 김중현 선생님과 참여해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나의 걸음


루소는 아이들을 오묘한 자연의 질서대로 살게 하려고 아주 세밀한 계획을 세웁니다. 태어나서 결혼할 때까지 총 5부로 나누어 연령대별로 어떤 교육을 받아야 하는지 자세하게 정리한 것이죠.


물론 여기서 루소가 세운 계획을 하나하나 나열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시대가 많이 변했으니까요. 가령 15살까지는 『로빈슨 크루소』를 제외한 어떠한 책도 읽히면 안 된다는 얘기나, 남성우월주의적인 내용 등은 아무리 자세히 설명해도 쓸 데가 없죠.


하지만 그 맥락에서 드러나는 어떤 정신은 주목해야 합니다. 강의해주신 김중현 선생님은 원심분리기에 비유하셨는데, 자기 자신에서 사회생활로, 감각과 경험에서 관념으로, 자기 보존의 이기심에서 보편적 인류애로의 확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장의 중심축은 당연히 자연이겠죠.


자연이 허락한 선한 심성을 지키고 발전시켜나가는 에밀의 모습에서 우리는 일종의 존재미학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곧 진정한 내가 되는 것입니다. 자연이 허락한 토대를 가능성 삼아 고유한 아름다움을 피워내는 것. 이 고유함이 비록 모범적인 양식을 따르진 않더라도, 그래서 불온하다 할지라도, 사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 질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영화가 클라이맥스에 이르기 직전, 윌리엄스의 말입니다. “타인의 인정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신념의 독특함을 믿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이상하다고 보든 나쁘다고 생각하든 이제부터 여러분도 나름대로 걷도록 해라. 방향과 방법은 여러분이 마음대로 선택해라.”

 


 

- 편집부 光


 


루소가 말한 “자연으로 돌아가라”의 의미

강연자 김중현 선생님 인터뷰



김중현 선생님은 1990년대 초반 프랑스 낭시 2대학교에서 발자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으셨습니다. 당시 발자크 연구를 하는 유학생들이 꽤 많았는데, 100여 편을 넘는 작품수 때문에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고 합니다. 한국인 가운데 발자크 연구로는 제1호 박사인 김중현 선생님, 때문에 유학시절 기억이라고는 발자크 작품연구가 전부일 정도시라네요.


원래도 루소를 좋아하셨지만, 한길그레이트북스 『에밀』『고독한 산책자의 몽상』『학문과 예술에 대하여 외』를 번역하면서 루소의 사상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되셨다는데요, 루소를 통해 가난하게 사는 것이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인생의 나침반과 같은 교훈을 얻으셨다는 선생님께 루소의 사상에 대해 여쭤보았습니다.

 

 

 

빨간 글씨로 빼곡히 메모해놓으신 강연자료가 눈에 띄어 한 컷 찍었습니다.

 

 

 

 

 

한길사: 루소 하면, 흔히 ‘자연으로 돌아가라’를 떠올리게 되는데요,

여기서 ‘자연’은 정확히 무엇을 뜻하나요?


김중현 선생님: 루소가 말한 자연은 이를테면 질서가 내재되어 있는 질서의 근원입니다. 따라서 자연으로부터 벗어나면 무질서가 초래되죠. 신은 질서를 사랑합니다. 그러므로 그가 창조한 것은 선하며, 그가 창조한 만물은 그가 사랑하는 질서 속에서 각자의 위치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만물은 창조될 때의 위치를 벗어나지 않기만 하면, 질서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 되며 자연을 떠나지 않는 것이 됩니다. 

 

한길사: 그런데 현대사회에서 자연의 질서를 따라서 사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데요.

물론 이렇게 살기 위해 마음을 먹고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외딴 곳에 들어가 살 수는 있겠지요.

또 실제로 소수지만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고요.


김중현 선생님: 루소는 아이가 선하게 태어난다고 믿습니다. 선량한 신은 질서를 사랑하므로, 신이 창조하는 피조물은 당연히 선량할 것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사부아 보좌신부의 고백대로, “자연의 모습은 내게 조화와 균형을 언제까지나 보여주고 있는데, 인류의 모습은 혼란과 무질서만 나타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연은 이미 인간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태어날 때의 그 선량한 자연인을 그대로 유지시키는 일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자연을 벗어나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아이를 격리시켜야 할까요? 루소 자신의 말대로 이 영역은 ‘몽상’에 가까운 것이며, 더 낫게 말한다면 ‘이상’에 가까운 교육 방법입니다.

루소가 던진 화두인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말 그대로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의미도 갖고 있지만, 태어날 때 가지고 나온 자기 자신, 곧 본성을 보존하며 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특히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두 번째 의미가 더욱 각별하게 와 닿는 것 같습니다.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일이 바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인 것이지요.


 

 

여러분은 지금 자기 자신의 길을 걷고 계신가요. 아, 갑자기 god  「길」의 멜로디와 가사가 떠오르네요. 하늘에 있는 루소 선생님께 이 곡을 띄웁니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 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사람들은 길이 다 정해져 있는지 아니면 자기가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또 걸어가고 있네.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일까.


이 길에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무엇이 내게 정말 기쁨을 주는지. 돈인지 명예인지 아니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인지.


알고 싶지만. 알고 싶지만. 알고 싶지만.


아직도 답을 내릴 수 없네.


 


 - 편집부 金




* 한길인문고전아카데미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인문독서아카데미’ 사업의 하나로 마포평생학습관과 한길사가 공동으로 꾸려가는 기획입니다. 인문독서아카데미는 전 국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무료 독서교육 프로그램으로 직장, 학교, 가정에서의 독서 생활화 기반 조성과 독서를 통한 인문 정신 고양을 목적으로 합니다. 


* 사상가별 세 번의 강의에 모두 참석하시고 한길사 페이스북 한길그레이트북스 페이지에 소감이나 후기를 올려주세요. 세 분을 추첨해 『가자 고전의 숲으로-한길그레이트북스 120권 길라잡이』를 드립니다.


* 수업자료는 첨부파일을 확인하시면 됩니다.

루소 강의안 - 제3강.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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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한길그레이트북스2014.05.23 16:25

한길인문고전아카데미

장-자크 루소 깊이 읽기(2) - 곡학아세(曲學阿世)식 학문연마의 폐해를 질타하다(『학문과 예술에 대하여』)

 

 

MY BOOK CAFE!

 

‘고전’이라 하면 사람들은 으레 어렵고 딱딱한 것,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것 등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고전에는 시대적인 차이, 언어의 차이 등 현대인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합니다. 무엇보다 ‘본질’을 고민하고 다룬다는 점에서 고전은 언제나 늘 우리와 모종의 간격을 설정합니다. 그 간격에서 고전 특유의 풍부한 의미가 드러나는 것이겠죠.

 

여하튼 그런 점에서 한길사는 고전의 ‘새로운’ 모습, ‘현대적인’ 모습을 늘 고민합니다. 고전의 본질적인 의미와 가치를 헤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하면 지금 시대의 독자들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죠.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MY BOOK CAFE-한길그레이트북스 노트’입니다. 한 권의 노트에는 한 권의 한길그레이트북스가 실려 있습니다. 저자의 사상과 책의 내용을 정리했고, 핵심적인 키워드 그리고 발췌문을 함께 실었습니다.

 

한길그레이트북스의 몸부림이랄까요? 고전의 새로운 형태 혹은 변용을 담은 한길그레이트북스 노트. 한길 요원(?)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11종의 노트를 한길인문고전아카데미 두 번째 시간에 맞추어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무거운 박스를 나르고 매대를 설치하는 모든 수고가 곱게 자리 잡은 노트의 모습에 모두 녹아내립니다. ‘오래된’ 고전들 옆에 알록달록 펼쳐진 노트가 ‘새로운’ 고전의 탄생을 암시하는 듯합니다.

 

‘새로운’ 고전의 탄생. 한길그레이트북스 노트.

 


사상의 폭약을 내장하다

 

루소 첫 강이 자연과 낭만주의에 대해 다루었던 만큼 무언가 목가적인 분위기 혹은 내밀하게 침잠하는 분위기가 있었다면 두 번째 강연은 시작부터 전운이 감돌았습니다. 루소만큼이나 위대한 사상가 디드로와 볼테르에 관한 얘기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루소는 1745년 디드로와 볼테르를 만나게 됩니다. 당대의 지식인이었던 만큼 셋은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디드로와 볼테르를 안다면 자연스레 루소에 대해서도 짐작할 수 있는 것이죠.

 

디드로는 『백과전서』를 편집하고 간행한 인물입니다. 지금에야 고작 ‘사전’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냐고 할 수 있지만 당시로써는 “사상의 폭약”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애초에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대거 참여했으며, 무엇보다 지식의 전파라는 점에서 많은 사람에게 평등사상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저들이 아는 것을 우리도 똑같이 알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프로메테우스의 불만큼이나 세상을 뒤집어 놓는 일이었던 것이죠.

 

『백과전서』의 편집을 맡은 디드로와 달랑베르. 출처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cmoon2&logNo=140162598509.

 

그런 ‘불’ 같은 존재가 또 있었습니다. 바로 볼테르입니다. 볼테르는 사실 루소와 전혀 다른 세상의 사람이었습니다. 엄청난 부자였고 투자의 귀재였죠. 집 안에 하인만 150여 명이었다고 하니 대충 짐작이 가죠. 가난하게 태어나 가난하게 살다가 가난하게 죽은 루소와는 전혀 다른 존재였던 것입니다.

 

볼테르는 늘 더욱 많은 돈을 모으려 했다고 합니다. 특권층의 핍박에 대비하기 위해서였죠. 함부로 자신을 대하지 말라는 일종의 위세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부를 이용해 귀족들과도 가깝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물론 볼테르는 재산만큼이나 지적인 면에서도 비범하기로 유명했습니다. 귀족들도 그의 교양과 학식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죠. 요즘 말로 ‘엄친아’랄까요?

 

‘엄친아’ 볼테르.

 

하지만 아무리 엄친아라도 시대적 한계를 넘어서긴 힘들었나 봅니다. 늘 기고만장한 볼테르를 시기하던 귀족 중 누군가가 사람을 써서 린치를 가하는 사건이 벌어지죠. 자존심에 엄청난 상처를 입은 볼테르.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으로 복수하니 바로 “구제도에 던져진 폭탄” 『철학서한』을 쓴 것입니다. 루소 스스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 이 책에서 볼테르는 ‘파렴치한 것을 깨부수자!’고 말합니다. 여기서 파렴치한 것은 당연히 ‘구제도’(ancien régime)이겠지요.

 

우리는 『철학서한』을 통해 혁명의 전조를 보게 됩니다. 아울러 계몽주의 철학의 특징도 찾아볼 수 있죠. 계몽주의 철학을 간단히 정리하면 ‘현실의 삶에서 행복을 방해하는 것들을 끊어버리는 것’입니다. 현세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죠. 결국 계몽주의 철학은 정치, 경제, 사회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게 됩니다. 형이상학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던 이전의 철학들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죠. 이런 철학적 단절 속에서 어쩌면 이미 혁명은 일어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프랑스혁명! 「La liberté guidant le peuple」

 


학문과 예술에 대하여

 

루소 역시 ‘혁명’에 동참합니다. 자신의 주전공(루소는 가정교사 생활을 했습니다.)을 살려 교육 분야에 투신한 것이죠. 급진적인 선언문처럼 혹은 불가의 화두처럼 루소는 짧은 논문을 당시 교육계에 던집니다. 「학문과 예술에 대하여」가 바로 그것입니다.

 

루소는 뱅센 감옥에 수감된 디드로를 면회 가던 중 디종 아카데미의 논문 공모를 보고 저 논문을 쓰게 됩니다. 당시 공모 주제는 ‘학문과 예술의 부흥은 풍속을 순화시키는 데 기여했는가?’였는데 지극히 계몽주의적인 이 주제에 루소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글을 써냅니다. 학문과 예술의 발전이 오히려 인간의 풍속을 타락시킨다는 주장을 펼친 것입니다.

 

결국 대상을 거머쥔 이 도발적인 글 앞에 당시 영향력 있는 지식인들은 수많은 반박문을 쏟아냈죠. 이에 대해 루소는 재치 있는 재반박문들을 기고합니다. 사실 학문과 예술을 둘러싼 루소의 주장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저 재반박문까지 함께 보아야 하죠. 관련해서 루소의 전반적인 주장을 알고 싶으신 분들에게『학문과 예술에 대하여 외』(한길사)가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학문에 관한 루소의 생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학문과 예술에 대하여 외』(한길사).

 


학문의 남용

 

얘기를 진전시키기에 앞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루소가 학문 자체를 비판한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김중현 선생님께서는 루소의 학문 이해를 이렇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학문은 재능과 이성의 걸작으로 그 자체로서는 선하며, 우리의 삶에 안락을 가져다준 유익한 발명을 낳기도 했다. 저자들은 진리의 원천이며, 지식의 습득은 인간의 신성한 특권 가운데 하나다. 그러므로 지식의 습득은 인식의 범위를 확대함으로써 최고의 지성행위에 참여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루소에게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학문과 예술에 대하여」의 주장과 매우 모순되는 루소 자신의 학문 이해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조정할 수 있을까요? 대답은 매우 간단합니다. 아주 상식적이죠. 한마디로 학문을 지나친 정념과 사적인 탐욕을 위해 남용하는 행태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루소는 저러한 남용이 인간의 참된 행복을 해친다고 보았는데, 이것은 위에서 언급한 계몽주의적 철학의 목적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죠.

 

루소는 한발 더 나아가 당시 사회가 그런 남용에 찌들었다고 판단합니다. 결국 「학문과 예술에 대하여」는 기라성 같은 당시 학자들에게 ‘당신은 학자가 아니다!’라고 꾸짖는 루소의 준엄한 목소리입니다. 배운 사람이 많다고 자부한 당시 사회에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사회가 더욱 타락했다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정말이지 너무나 많은 칭호가 껍질로만 존재하며, 미덕은 너무나 가식적이어서 제 기능을 거의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정직한 사람은 경기에서 나체로 시합하는 것을 즐기는 운동선수 같은 사람이다. ……기교가 짐짓 우리의 태도를 꾸미기 이전에, 또한 정열에 멋을 부려 부자연스럽게 말하는 법을 가르쳐주기 이전에, 우리의 풍속은 촌스럽지만 자연스러웠다. ……사람들은 항상 관습을 따를 뿐 자신의 타고난 자질은 등한시한다. 그들은 더 이상 본래의 자기 자신을 보이려고 하지 않는다. 악덕의 행렬이 그와 같은 불신의 뒤를 이을 것이다.”(『학문과 예술에 대하여 외』)


잘못된 목적을 가진 학문 추구는 이처럼 인간 본연의 덕성을 헤칩니다. 다만 그것이 ‘정중함’이라는 ‘기교’로 가려질 뿐이죠. 루소는 정중함을 진실과 대립하는 행위로, 한 개인의 언행이 자신과 일치하지 않는 상태라 보고 경멸했습니다. 가식, 안과 겉이 투명하지 못함, 정직하지 못함, 진실하지 못함, 이중인격의 이기주의적인 인간성이 정중함이라는 것이죠. 정중함을 혐오하는 당대 최고의 교양인이라니, 루소는 정말 복잡한 인간임이 틀림없습니다.

 

올바른 목적을 지닌 학문 추구의 생생한 현장!

 


스파르타와 한국

 

루소는 이러한 비판을 프랑스, 중국, 아테네, 그리고 스파르타에 적용합니다. 당시 계몽의 선구자로 목에 힘주고 다니던 프랑스는 물론이고 중국과 아테네도 이를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대단한 존경을 받고 명예를 누리는 고관대작들이 즐비하면 뭐하냐는 것인데, 자신의 출세와 탐욕을 위한 학문은 결국 얕은 지식들만 난립시킨다고 루소는 지적합니다.

 

반대로 태생적인 덕성, 소박한 무지와 가난, 순수한 용기를 간직하는 것을 건전한 교육이라 보고 좋은 예로 스파르타를 지목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스파르타는 ‘스파르타식’이라는 수식어 외에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는 생각이 상식적이었습니다. 루소는 여기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죠. “그곳 사람들은 날 때부터 덕성스럽다. 나라의 공기까지 덕성을 고무한다.”(『학문과 예술에 대하여 외』)

 

영화 「300」의 스파르타 전사들. 이러한 묘사도 어찌 보면 ‘정중한’ 우리의 편견일지도.

 

그렇다면 이쯤에서 이런 생각을 안 해볼 수 없습니다. 만약 루소가 오늘날의 한국을 방문한다면 무어라 할까요? 한국은 학문이 넘쳐나는 나라입니다. 조기교육은 태아 때부터 시작하고 대학 진학률이 70퍼센트에 육박하며 고시‘촌’이 형성되어 있을 정도죠. 학문의 수준과 미덕의 정도가 비례한다면 아마 한국은 역사에 유례없는 정직하고 정의로우며 도덕적인 사회일 겁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요? 정직과 정의, 도덕이 여전히 사치처럼 느껴진다면 너무 비관적인 걸까요? 씁쓸한 마음으로 루소의 말을 인용해봅니다.


“아니, 우리 바로 앞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왜 어떤 진실에 대한 증거를 찾으려고 과거를 뒤지는가. 아시아에는 존경받는 학식이 국가의 고관대작으로의 길을 열어주는 한 대국이 있다. ……그들이 받는 대단한 존경과 명예로부터 그 나라가 얻은 과실은 무엇이었던가? 나라에 노예와 악인들이 득실대는 것이 그 과실일 수 있는가.”(『학문과 예술에 대하여 외』)


 

엘리트주의를 넘어 인간적인 교육으로

 

그렇다면 루소는 어떤 대안을 말할까요? 한마디로 정리하면 ‘학문은 소수의 천재에게만 국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루소는 학문의 유익성, 즉 진리와 정의를 위해 학문하는 소수를 제외한 나머지는 오히려 바로 그 학문 때문에 오만과 탐욕으로 자신과 사회를 타락시키게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문필가로 성장할 가능성이 없다면 아예 문전박대당해 직공으로 사는 게 자신에게도, 사회에게도 도움이 된다.’라고까지 말한 적도 있죠.

 

그렇다면 루소는 엘리트주의자였을까요? 사실 이 부분에서 루소의 교육론이 빛을 발하게 됩니다. 김중현 선생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루소는 ‘난 사람’보다 ‘된 사람의 배양’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죠. 이렇게 루소는 다른 계몽주의자들처럼 단순한 엘리트주의자로 남지 않고 시대적 한계를 나름대로 극복합니다.

 

루소에게 중요한 것은 이제 천재가 아니라 ‘인간적인 교육’입니다. 따라서 단순한 지식의 습득이 아닌 미덕의 고양을 목표로 한 교육기관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됩니다. 교과서를 외우는 일보다 사회생활에 필요한 이해심, 건강한 육체, 용기와 책임감을 수행하는 게 중요해진 것이죠.


“분별없는 교육이 우리 정신을 치장하여 판단을 그르치는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의 일이다. 나는, 많은 돈을 들여 젊은이들에게 온갖 것을 가르치지만 그들의 의무는 가르치지 않는 엄청나게 큰 교육기관을 도처에서 본다. 당신의 아이들은 자기 나라말도 제대로 모를 것이다. 그들은 아무 데서도 사용되지 않는 이상한 말을 하고, 자기들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시를 쓸 것이다. 그들은 진리와 오류를 분별할 줄 모른 채 그럴듯한 주장을 폄으로써 남들이 진리와 오류를 분간하기 힘들게 만드는 기교를 습득하게 될 것이다. 아량과 공정, 절도, 인간성, 용기 같은 말들이 뜻하는 바를 그들은 전혀 알지 못한다. 기분 좋은 단어인 조국이라는 말은 그들 귀에 전혀 들리지 않을 것이다. 신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는 하겠지만 그것은 신을 경외하기 때문이 아니라 두려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도대체 그들은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정말 좋은 질문이다! 그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가르쳐야지 잊어버릴 게 뻔한 지식을 가르칠 일이 아니다.”(『학문과 예술에 대하여 외』)


루소의 이 말은 지금 우리 사회에 보내는 최후통첩 같은 경고성 메시지로 들립니다. 헛똑똑이가 될 바엔 차라리 겸손한 무지를 지니라는 루소의 인간적인 교육론은 그의 대작 『에밀』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에밀』에게서 과연 곡학아세식 학문을 바로잡을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다음 3강이 기다려지는 이유입니다. 루소 깊이 읽기 마지막 시간까지 많은 참석 부탁드립니다.

 

인간적인 교육을 향한, 나지막하지만 깊은 목소리 『에밀』(한길사).

 

- 편집부 光

 


 

* 한길인문고전아카데미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인문독서아카데미’ 사업의 하나로 마포평생학습관과 한길사가 공동으로 꾸려가는 기획입니다. 인문독서아카데미는 전 국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무료 독서교육 프로그램으로 직장, 학교, 가정에서의 독서 생활화 기반 조성과 독서를 통한 인문 정신 고양을 목적으로 합니다.


* 사상가별 세 번의 강의에 모두 참석하시고 한길사 페이스북 한길그레이트북스 페이지에 소감이나 후기를 올려주세요. 세 분을 추첨해 『가자 고전의 숲으로-한길그레이트북스 120권 길라잡이』를 드립니다.


* 수업자료는 첨부파일을 확인하시면 됩니다.

루소 강의안 - 제2강.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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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한길그레이트북스2014.05.16 15:35

한길인문고전아카데미

장-자크 루소 깊이 읽기(1) - 자연 속에서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얻다(『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즐겁고 유쾌한 고전을 위해

 

‘고’(古)전은 ‘신’(新)전입니다. 항상 새롭게 해석할 사상과 가능성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발견한 가치의 빛나는 궤적에서 우리는 길을 찾습니다. 고전에서 길을 찾습니다.

‘한길인문고전아카데미’는 바로 그 길을 고민하기 위해 시작되었습니다. 위대한 고전과 사상가들을 오늘로 불러 모아 지금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묻습니다. 함께 이야기하는 가운데 ‘책’이라는 형태를 넘어 확장되는 고전의 힘을 느낍니다.

 

 

한길그레이트북스 130권. 인류의 위대한 지적 유산을 집대성한 한길그레이트북스는 앞으로도 계속됩니다.


 

장-자크 루소, 에릭 홉스봄, 한비자, 아서 단토, 레비-스트로스, 한나 아렌트, 이탁오 등 일곱 명의 사상을 여섯 달, 이십 회에 걸쳐 깊이 읽는 한길인문고전아카데미. 강의 시작 전부터 많은 분이 깊은 관심을 갖고 신청해주셨습니다. 휴학한 학생으로서, 직장인으로서, 교사로서, 주부로서 각자의 삶은 달라도 알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은 모두 똑같았습니다. 고전은 그러한 마음들의 놀이터 아닐까요? 즐겁고 유쾌한 고전이 가능한 이유입니다.


 

의자를 공수(?)하다!

 

5/15(목) 마포평생학습관에서 시작된 첫 강. 한길사 직원들은 강의 한 시간 전부터 가서 이런저런 준비를 했습니다. 먼저 한길그레이트북스를 소개하기 위해 책장을 설치하고 책을 진열합니다. 원활한 강의 진행을 위해 미리 파워포인트 자료도 설치하고 제대로 작동하는지 시연해봅니다. 한길인문고전아카데미를 위해 제작한 교재도 준비합니다.

 

더 많은 분에게 한길그레이트북스를 소개하고자 책장과 진열대를 설치했습니다. 빽빽하게 채워진 한길그레이트북스. 보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꽉 찬 느낌입니다.

 

숨 가쁘게 준비하는 동안 독자들이 한 명, 두 명 모이기 시작합니다. 교재를 살펴보거나 첫 강의 주제도서인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을 구매하며 차분히 강의를 준비하는 모습에 진지함이 느껴졌습니다.

 

드디어 시곗바늘이 7시를 가리키자 어느새 강의실에는 60여 명의 독자가 자리를 꽉 메웠습니다. 발 빠른 한길사 직원들이 의자를 공수(?)해와 다행히 모두 앉아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잠시 뒤 그날의 강의를 맡으신 김중현 선생님께서 자리하셨습니다. 김중현 선생님은 루소의 대표작 『에밀』『고독한 산책자의 몽상』『학문과 예술에 대하여』를 번역하셨을 만큼 루소 전문가이십니다. 한길인문고전아카데미에서도 총 세 강에 걸쳐 루소를 깊이 읽는 시간을 마련하셨습니다. 특유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

 

김중현 선생님. 열띤 강의에 자리를 꽉 채운 독자들이 집중합니다.

 

 

근대적 개인의 탄생

 

첫 강연은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을 중심으로 루소의 일생과 그에게 자연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탐구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루소는 매우 복잡한 인간이었습니다. 매우 단순한 삶, 통합적인 공동체, 단일한 가치를 지니고 살았던 중세시대의 인간과는 분명히 다른 존재였죠. 그렇다고 전형적인 계몽주의자도 아니었습니다. 이성만을 우위에 둔 동시대 지식인들과 달리 루소는 감정의 영역에도 깊숙하게 들어갑니다. 이처럼 상당히 입체적인 정체성을 지녔기에 우리는 그에게서 ‘근대적 개인’의 탄생을 보게 됩니다.

 

김중현 선생님이 자세히 설명해주신 루소의 일생도 그의 정체성만큼이나 복잡했습니다. 가난한 시계공의 집에서 아픈 몸(요폐증)으로 태어나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지만 많은 귀부인과 인연을 맺은 루소. 엉덩이에 매를 맞으며 관능의 세계를 눈을 뜨고, 개신교도였으나 바랑 부인을 만나자마자 그녀의 아름다움에 취해 가톨릭으로 개종하기도 하는 등 루소에게는 참으로 ‘유별난’ 일화가 많습니다.

 

특히 바랑 부인과의 만남은 루소의 삶을 크게 바꿔놓았습니다. 개종 사건은 물론이고 루소는 그녀에게 엄마와 연인의 감정을 모두 느낍니다. 그는 ‘순수한 사랑’으로 요폐증도 이겨내며 바랑 부인과의 ‘행복한 전원생활’을 시작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바랑 부인 곁에 다른 남자가 있었을 때조차 루소가 그녀를 떠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바랑 부인의 비서로 있으며 시간을 보내죠. 전혀 경제력이 없었던 루소에게 바랑 부인은 절대적인 후견인이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그 둘의 관계가 요즘 말로 ‘소울 메이트’였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다른 이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정신적인 교감을 평생 나누었던 것입니다. 여기서도 루소가 얼마나 복잡한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바랑 부인을 만난) 첫 순간이 면할 수 없는 사슬이 되어 내 남은 생의 운명을 결정해버렸다. 아! 그녀가 내 마음을 가득 채워주었듯이 나 또한 그녀의 마음을 가득 채워주었으면 좋으련만!”(『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열 번째 산책」 중)


재미를 넘어 충격을 주는 사실은 루소가 결국 평생을 함께한 상대가 자신이 묵던 여관의 하녀인 테레즈였다는 점입니다. 『신엘로이즈』『에밀』 등 베스트셀러를 냈지만, 인세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대라 별 도움이 안 됐고, 평생 악보 필사로 근근이 연명하던 루소에게 테레즈의 생활력은 매우 매력적(?)이었을 겁니다. 애초에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고 물욕 없던 천성 탓에 테레즈의 신분을 크게 문제 삼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루소는 테레즈와 살면서도 계속 귀부인들과 만납니다. 게다가 테레즈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 다섯을 모두 고아원에 보내죠. 더 좋은 보육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이유를 대지만 루소도 이후의 저작에서 자신의 잘못을 끊임없이 고백합니다. 여하튼 자유로운 영혼 루소 때문에 테레즈의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을지 상상할 수조차 없습니다. 루소는 1778년 7월 2일 테레즈와의 아침 식사 후 사망합니다.


 

고독한 산책자, 자연을 품다

 

루소는 바랑 부인 곁에서 애인이 아닌 하인으로 머무는 동안 공부에 전념합니다. 2년여 동안 엄청난 양의 책을 독파하죠. 존 로크, 말브랑슈, 라이프니츠, 데카르트, 기하학, 대수학, 라틴어, 로마 시대의 고전, 역사학, 지리학, 연대학, 천문학 등 실로 방대한 지식을 가지게 됩니다.

싫은 소리를 전혀 참지 못하는 성격과 방대한 지식의 결합 때문인지, 이후 루소는 많은 적을 만듭니다. 『에밀』때문에 쫓기던 때 자신을 도와준 흄과도 등을 돌리게 되죠. 원체 반골적인 기질은 루소를 고독하게 만듭니다. 『사회계약론』의 인민주권 사상과 『에밀』의 이신론 사상으로 정치계와 종교계의 탄압을 받게 되면서 루소의 고독은 한층 심해집니다. 그 고독의 끝에서 찾게 된 것이 바로 비엔 호수의 성 베드로 섬입니다. 성 베드로 섬의 아름다운 자연.

 

“(성 베드로 섬은) 한가로이 자연의 매력에 취하고 싶어하고, 이따금 들려오는 소리들이며 온갖 새의 울음소리, 산에서 떨어져 내리는 폭포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정적 속에서 명상에 잠기기 좋아하는 고독한 명상가들에게는 흥미로운 곳이다.”(『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다섯 번째 산책」 중)


비록 성 베드로 섬에서 두 달여밖에 머무르지 못하지만 그곳에서 만났던 자연은 루소에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자기 몰래 음흉한 계획이 획책되고 결국 자신을 탄압하는 상황을 언제나 끔찍이 싫어하고 경계하던 루소에게 자연만큼은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주었던 것입니다. 이에 루소는 식물채집이라는 취미를 갖게 됩니다.


 

낭만주의자 루소

 

이후 파리로 돌아와서도 루소는 계속 식물을 채집합니다. 남들이 보기엔 이상한 짓이었겠지만 루소에게는 그만한 명상이 없었죠. 그에게 식물채집은 괴로운 세상사를 잊고, 자신을 못 죽여 안달 난 이들에 대한 증오를 씻어내는 자기 정화의 시간이었습니다.


“찬란한 꽃들, 목초지의 다채로운 빛깔들, 시원한 그늘, 시냇물, 작은 숲과 초원들이여, 그 온갖 끔찍한 대상들에 의해 더러워진 내 상상력을 정화시켜다오.”(『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일곱 번째 산책」 중)


식물채집을 통한 명상은 루소로부터 남다른 감수성을 끄집어냅니다. 바로 ‘낭만’입니다. 인간 본연의 자아와 심성 내부로의 깊은 침잠이 낭만주의의 본질이라면 분명 루소와 자연의 관계는 낭만주의의 시작인 것이죠.

 

루소는 계몽주의 시대 자연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최초의 인물입니다. 물론 루소 이전에도 많은 계몽주의자가 자연을 다루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자연은 분석 대상일 뿐이었죠. 하지만 루소에게 자연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살아 있어서 다양한 감정이 넘쳐흐르고 끊임없이 생성 유전하는 존재로 비상합니다. 루소 이후의 낭만주의 사조에서 자연을 대한다는 것은 곧 아름다운 자연의 마력으로 깊이 침잠하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죠. 깊은 침잠은 자연과 하나 됨을 경험케 하고, 몽상과 황홀경을 선사합니다.

 

이런 낭만주의의 감수성은 꼭 자연에만 국한되지 않고 더욱 확장됩니다. 중요한 것은 자연 그 자체가 아니라 자연에 대한 태도인 것이죠. 단지 타자로 머물지 않고 그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것, 동시에 나 자신에 대해서도 이성으로 배제해버린 감정을 되살리는 것 말입니다.

 

이러한 태도의 정점이 바로 『신엘로이즈』입니다. 당시 루소와 사회의 유력인사(주로 귀부인)들이 주고받은 편지를 보면 『신엘로이즈』와 관련된 재미있는 얘기들이 많이 나옵니다. 요약하자면 너무 울어 숨이 멎을 지경이라는 것이죠. 이루어질 수 없는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룬 『신엘로이즈』가 지닌 낭만의 감수성은 순식간에 사람들을 매료시킵니다.

 

 

 

“오, 황홀한 슬픔이여! 오, 감동된 영혼의 우수여! 욕망의 고삐가 풀린 연인들이 무제한의 열정에 사로잡혀 느끼는 부산한 쾌락, 들뜬 즐거움, 흥분된 기쁨 그리고 모든 격정을 너희들은 얼마나 크게 능가하는가!  관능적 쾌락과 비교될 수 없는 평화롭고 순수한 기쁨이여 깊게 스민 너에 대한 추억은 결코, 결코, 내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으리라.”(『신엘로이즈』)

 

이쯤 되면 우리가 루소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단편적인 인상은 수정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단순히 ‘계몽주의자 루소’ ‘프랑스혁명의 아버지 루소’ ‘사회계약론의 정치사상가 루소’가 아닌 ‘낭만주의자 루소’ 역시 분명 그의 한 모습입니다.

 

알면 알수록 그의 복잡함과 방대함, 깊음에 놀라게 되는 장-자크 루소. 제2강에서는 사람들에게 그를 처음으로 알린 『학문과 예술에 대하여』를 가지고 올바른 교육에 대해 공부할 계획입니다. 

우리는 또 어떤 루소를 만나게 될까요? 기대하는 마음으로 많은 참석 부탁드립니다.

 


 

- 편집부 光

 


 

* 한길인문고전아카데미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인문독서아카데미’ 사업의 하나로 마포평생학습관과 한길사가 공동으로 꾸려가는 기획입니다. 인문독서아카데미는 전 국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무료 독서교육 프로그램으로 직장, 학교, 가정에서의 독서 생활화 기반 조성과 독서를 통한 인문 정신 고양을 목적으로 합니다.


* 사상가별 세 번의 강의에 모두 참석하시고 한길사 페이스북 한길그레이트북스 페이지에 소감이나 후기를 올려주세요. 세 분을 추첨해 『가자 고전의 숲으로-한길그레이트북스 120권 길라잡이』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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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한길사 / 한길아트2013.09.06 16:17


누구나 한번쯤 인도를 꿈꾼다.

상상력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인도에 관한 이야기



“사는 게 왜 이리 힘들까요?”

“그러게 말이에요. 그래서 기쁨도 더 큰가 봐요.”

                        - 영화 「시티 오브 조이」 中 -



「시티 오브 조이」라니! 주인공이 처음 콜카타(전 캘커타)를 볼 때는 전혀 어떤 기쁨도 그곳에서 찾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 역시도 처음 이 영화를 보면서 저 도시가 어찌해서 '시티 오브 조이'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으니까요. 「시티 오브 조이」 속의 인도는 예쁘지 않습니다. 처절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인도의 비루한 현실을 보여주는 장면들과 스토리가 가슴을 스미고 드는 아름다움이 있을 뿐입니다. 



[출처-영화 「시티 오브 조이」]




영어로 ‘기쁨의 도시’라는 뜻을 가진 콜카타. 질척하리만큼 진한 삶의 밑바닥을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 어째서 기쁨의 도시라 불릴 수 있을까요. 아무리 보아도 기쁨보다는 절망과 고통, 슬픔이 더 많아 보이는 그곳에서요. 영화를 보는 내내 그 의구심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웠던 저는 마지막 저 대사를 들으며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답니다.


사람들에게 막연하게 가고 싶은 곳을 말해보라고 하면 한번쯤 인도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방학 중, 심지어 직장을 때려치우고 인도로 달려가는데요. 그런데 인도하면 딱 생각나는 것은 음...카레? 그만큼 잘 알진 못하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인지 더 환상으로 가득한 인도! 60여 년 전에야 하나의 자유로운 국가가 되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인도가 존재한 기간은 수천 년이나 됩니다. 인도아 대륙 전체, 즉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의 인구는 15억 명으로 전세계 인구의 5분의 1도 넘습니다. 곧 중국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가 될 것 같은데요. 여러 지역의 위대한 문화들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문명이 되죠. 광활한 땅덩이와 넘치는 인구들, 그 속의 이야기들이 무궁무진할 것 같지 않으세요? 그 시작과 현재 그리고 상상력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인도에 관한 101가지 이야기들이 여기 있습니다.



101가지 인도 이야기

유니스 드 수사 지음 | 소년한길 | 2012


유니스 드 수사는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세계 여러 나라에 작품이 소개된 인도의 유명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문학평론가입니다. 작가는 이 책 속에서 마치 할머니가 따뜻한 난롯가에 모여 앉은 어린 손자손녀들에게 조근 조근하게 때로는 박진감 넘치게 재미난 옛날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인도의 광활한 땅덩어리만큼이나 이 책에 소개된 이야기들의 소재는 무척 다양합니다. 세상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질병과 재앙은 어떻게 생겨났는지, 사람의 꼬리는 왜 없어졌는지 같은 세상 만물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온갖 종류의 악마들, 동물들, 초자연적인 생명체들의 이야기까지, 우리가 이미 알고 있거나 혹은 몰랐던 것들, 아예 생각해 보지도 못한 것들에 대한 상상력과 호기심을 마구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책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이 책은 어른을 위한 아이의 책으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손에 들자마자 후루룩 국수 먹듯 쭈욱 읽어내려간달까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레 삶을 살아가는 지혜와 교훈을 얻게 하는 흥미진진한 101가지 이야기들이 가득하거든요. 솜씨 좋은 이야기꾼의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불구덩이 속에서 이글이글 타오르는 악마의 형상이 불쑥 눈앞에 나타나기도 하고, 흐드러지게 핀 꽃나무 숲이 저 멀리서 성큼성큼 달려오는 모습과 마주치게 되기도 합니다. 읽고 나면 인도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설렘이 생기게 될 101가지 인도이야기. 짤막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어 잠자리에 들기 전 한 꼭지씩 읽어나가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작은 여신 우마

프레드 베르나르 지음 | 소년한길 | 2012


어느 날 갑자기 여신이 된 소녀 우마. 아몬드처럼 까만 눈동자, 루비같이 붉은 입술, 아름다운 목소리…. 여신이 되기 위한 조건을 모두 갖춘 우마는 홀로 어두컴컴한 방에서 밤을 보내고, 무서운 분장을 한 신관들이 겁을 줘도 꾹 참고 작은 여신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모두들 작은 여신이 된 우마에게 행복을 빕니다. 이러한 풍습은 인도에서 몇천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전통입니다. 이 책은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인도의 특별한 소녀가 겪는 이국적인 모험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린이 프랑수아 로카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이국 이야기에 다채로운 색상과 생생한 표현으로 아름답고 따뜻한 감동을 불어넣습니다. 또한 불길이 활활 치솟는 전쟁터에서 느껴지는 긴장감과 웅장한 코끼리, 그르렁거리는 호랑이, 파란색과 녹색이 강렬한 인도 정글의 모습은 인도 특유의 정서를 훌륭하게 표현해내고 있습니다.






한길사에서 출간된 책들을 보면 인도 관련 책들을 많이 찾아낼 수 있는데요. 한 번 모아봤습니다. 






한길그레이트북스 『바가바드 기타(한길사│1996)

한길그레이트북스 우파니샤드1, 2(한길사│1996)

한길그레이트북스 인도철학사 1~4(한길사│1999)

간디자서전(한길사│2002)

마하트마 간디(한길사│2001)

인문고전 깊이읽기 베다』(한길사│2013)

인문고전 깊이읽기 우파니샤드(한길사│2011)

이거룡의 인도사원순례(한길사│2003)

101가지 인도 이야기(소년한길│2012)

Art&Ideas 인도미술(한길아트│2001)



『간디자서전』의 옮긴이 함석헌 선생님은 책을 번역하며 여러 군데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고 말씀하시는데요. 책을 통해 그 시대 인도의 모습과 간디의 인격적 매력을 동시에 접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밖에도 인문고전 깊이읽기 『베다』와 『우파니샤드』는 인도 정신문명의 뿌리, 힌두교와 인도철학에 대해 편안하게 해설하고 있어 인도에 관한 입문서로 최고의 선택이 아닐까 합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 호기심의 나라 인도에 관한 한길사 책들과 함께 몸과 마음을 살찌우는 가을을 보내시는 건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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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인생 37년, 출판인 김언호와

브런치와 함께하는 아름다운 책 이야기 


한국어로 '아점'이라고도 하죠? 아침(breakfast)와 점심(lunch) 사이에 먹는 식사를 뜻하는 '브런치(Brunch)'라고 하면 '여유'가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새벽같이 일어나라 재촉하는 알람 시계 소리가 없는 주말, 느긋하게 일어나 먹는 브런치가 제일 먼저 떠오르니까요. 메이플 시럽을 듬뿍 뿌린 와플에 신선한 샐러드 그리고 진한 커피 한 잔으로 즐길 수 있는 이 '여유'에 최근에는 공연이나 강연이 패키지로 많이 묶이곤 합니다. 맛있는 음식으로 배만 채울게 아니라 내면도 채우는 바람직한(!) 브런치 콘서트가 지난 7월 12일 한길책박물관에서 있었습니다. 


뮤지엄 브런치의 첫 시작은 한길책박물관 관람으로 시작했습니다. 한길책박물관은 김언호 대표가 세계 각지에서 20여 년에 걸쳐 모은 18~19세기 유럽고서를 전시해 놓은 곳입니다. 출판인이자 뛰어난 디자이너였던 윌리엄 모리스의 책이 상설 전시 중이고 지금은 <권력과 풍자 | 19세기 파리의 풍자화가 5인전>, <千一夜話 : 아라비안 나이트 특별전>이 기획 전시되고 있습니다. 이날 뮤지엄 브런치에서는 전시회를 모두 관람했습니다. 박물관에 전시된 작품들은 모두 김언호 대표가 유럽 고서점이나 책 박람회를 다니며 수집한 것들이랍니다^^ 






전시된 책과 잡지 등에 얽힌 당시 시대 배경뿐 아니라 수집할 당시 사연까지 곁들여 들을 수 있었습니다. 시골의 유럽 헌책방 주인과 가격 흥정이 붙어 결국 싸게 원하는 책을 살 수 있었던 일, 책을 잔뜩 수집 후 비행기를 탈 때마다 수하물 중량을 걱정했던 일 등 발품을 팔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면 들려줄 수 없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했습니다. 






한길책박물관을 둘러보고 다시 찾은 아트 스튜디오. 미리 주문해놨던 음료와 샌드위치가 준비돼 있었습니다. 알록달록한 박물관 아트 스튜디오 안에 준비된 샌드위치를 보니 뮤지엄 브런치 느낌이 물씬~ 본격적인 뮤지엄 브런치가 시작됐습니다. 






조선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대 472년간의 역사를 기록한 세계 유례가 없는 조선왕조실록의 나라 한국. 이런 대단한 책을 만든 나라라 그런지 책을 인쇄하는 것이 정말 어려웠던 옛날에도 조상들의 민가에는 책이 참 많은 편이었다고 해요. 하지만 세계적인 종이책의 위기와 스마트폰의 부상과 맞물려 출판 시장이 어렵습니다. 그에 비례해 책방도 빠르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스마트폰 하나면 온갖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요새 젊은이들은 책을 많이 읽지 않습니다. 그만큼 젊은이들의 지력이 떨어졌죠. 수많은 단어로 이뤄진 책을 읽음으로써 단어를 단순히 아는 것에서 나아가 종합하는 힘을 길러낼 수 있습니다. 책에서 멀어져 생각하는 힘이 약해진 젊은이들이 창의력과 도덕성을 키우기 위해 긴 호흡의 고전을 읽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고 김언호 대표는 말합니다. 



▲한길사 서고(위), 인문·철학 등 고전을 모은 시리즈 한길그레이트북스(아래)




100세 시대를 맞아 몸 건강뿐 아니라 정신의 건강이 몹시 중요한 이때, 책을 읽는 것은 우리의 문화복지권을 위한 가장 기본이 아닐까 합니다. 또 그는 책방과 독자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한국 출판 시장에서 독자가 무시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살 사람이 있어야 책은 나올 수 있습니다. 김언호 대표가 60년을 이어온 우리나라 대표적인 책방 골목인 보수동 살리기를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참가한 사람들의 질문으로 김언호 대표의 열정적 강의를 마무리했습니다. 초등학생 딸아이와 뮤지엄 브런치에 참가한 신지은 씨는 “한길사에서 출판된 『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 권』(한길아트 | 이광주 지음 | 2001)을 정말 좋아한다면서 책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했습니다. 책에 관심이 많은 손명숙 씨는 “요즘 책을 많이 못 읽었는데 김언호 대표의 ‘책은 살아야 한다, 책은 아름답다’라는 말이 가슴 깊이 남아 책을 다시 열심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신지은 씨(왼쪽), 손명숙 씨(오른쪽)




대한민국에서 몇 안되는 책방 골목 보수동, 60년을 이어온 책방 골목의 책방은 지금 56곳 남아 있습니다. 하나둘 사라지는 책방에서 출판의 위기를 크게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날 진행된 뮤지엄 브런치에서 사람들이 보여준 책에 대한 열정과 애정을 보니 희망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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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 / 한길아트2013.06.26 11:50


대학생 방학 알차게 보내는

인문학 책 추천 BEST 4



여름방학입니다. 기말 고사를 끝내고 이미 여름방학에 돌입한 사람도, 곧 다가올 방학을 생각하며 남은 기말 고사를 버티고 있는 사람도 있겠죠?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로 최근 대학생들의 방학은 예전과 판이하다고는 하지만 빡빡한 강의에, 과제에, 시험에 치였던 학기 때를 생각해보면 방학은 확실히 좀 마음이 여유롭죠? 혹시 스펙 쌓기+놀기로 여름 방학을 보내실 생각이라면 노노노~ 인문학 책 추천해드릴테니 마음을 살 찌우세요! 가끔 카페에 한 두권씩 인문학 책 추천 받을걸 들고 가서 읽다보면 스펙이다 취업이다 지친 머리 속이 차분히 정리될 거예요. 인문학 책 추천을 아무거나 할 수 없겠죠?  고르고 고른 인문학 책 추천 4권 소개합니다~







인문학 책 추천 하나! <슬픈 열대>


인문학 책 추천 첫번째! 읽지는 않으셔도 책 제목은 정말 많이 들어보셨을텐데요. 바로 레비 스트로스의 <슬픈 열대>(한길사, 1998)! <슬픈 열대>는 한길그레이트북스의 31번째 시리즈입니다. 저자 C. 레비 스트로스가 브라질 내륙지방의 원주민 사회 조사단의 일원으로 참가했을 때 조사한 내용이 <슬픈 열대>의 주요 내용을 이루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저명한 인류학자이며 사상가인 레비 스트로스는 <슬픈 열대>를 여행 산문집의 형식을 빌려 써내려갔습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슬픈 열대>에서 카두베오족, 보로로족, 남비콰라족, 투피 카와이브족의 문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얼굴에 기하학적인 그림을 그려넣는 카두베오족이나 코걸이장식과 빳빳한 섬유로 입술장식을 하는 남비콰라족은 '문명인'의 눈으로 보기엔 그저 '미개'하고 '야만적'으로 보일지 모릅니다. 


책 제목 <슬픈 열대>의 '슬픈'은 그래서 나온게 아닐까요. 서로 다른 것을 틀리다고 해버리는 당시 서구문명에 대한 거대한 분노와 비통함이 책 제목에 드러난 것일테니까요. 여행 책이 한동안 크게 유행했죠. 게다가 지금은 외국 여행을 많이 떠나는 대학생들의 여름 방학입니다. 세계 여행을 책으로 대신 해도, 실제로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지만 레비 스트로스의 진국 여행기 <슬픈 열대> 보면서 다르다는 것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한길그레이트북스

한길그레이트북스는 동서고금의 고전 저술들을 원전에서 번역한 시리즈이다. 한길그레이트북스에는 우리 시대의 정신과 사상을 일으켜세우는 인프라의 일환으로 우리의 출판철학 또는 출판관을 반영하는 기획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 시대를 뛰어넘어 감동을 주고 영향을 미치는 고전적 저작 또는 당대의 명저를 집대성한다는 의미에서 지성인들의 허기를 채워줄 수 있다.







인문학 책 추천 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두번째로 소개할 인문학 책은 한길그레이트북스 81번째 시리즈~ <예루살렘의 아이히만>(한길사, 2006). '악의 평범성'으로 유명한 한나 아렌트의 책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꼽히죠. 1942년 1월에 있었던 유대한 대량학살의 집행자였던 아이히만. 그가 독일 패망 후 중동을 전전하다 이스라엘 비밀경찰에게 체포돼 특별재판을 받게 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모든 일정을 뒤로하고 뉴요커 특파원의 자격으로 예루살렘에 가서 아이히만의 특별재판을 참관합니다. 그렇게 참관기를 뉴요커에 연재한 것이 이 책의 바탕입니다. 






유대인 학살을 나치가 제도적으로 체계화시킨 '최종 해결책'(the final solution)을 열정적으로 실행에 옮긴 아이히만은 '양심에 가책은 없었는가?'란 질문에 '명령 받은 일을 하지 않았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이라고 대답하죠. 여기서 명령 받은 일은 '수백만 명의 남여와 아이들을 상당한 열정과 가장 세삼한 주의를 기울여 죽음으로 보내는 일'(78~79쪽)입니다. 수십년이 지난 일을 글로 읽는 것만으로도 충격적인데 당시 재판을 참관하던 한나 아렌트는 어땠을까요? 악마같은 사람이었다면 차라리 이해했을 발언이지만 아이히만은 평범한 인간이었습니다. 심지어 따뜻한 남편이자 자상한 아버지였죠. 어느 평범한 사람의 악(惡). 깊이있는 철학적, 정치사상적 내용을 담고 있지만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어렵지 않게 읽힙니다. '악의 평범성'에 대해 여전히 유효한 한나 아렌트의 메시지 이번 방학에 오롯이 감상해보세요. 



*독자가 뽑은 한길그레이트북스 50선인터넷 서점 할인+기념품 증정 이벤트 

독자가 뽑은 한길그레이트북스 50선을 교보문고, YES24 등 주요인터넷 서점에서 할인 판매하는 이벤트를 7월 15일(월)까지 진행합니다. 행사도서를 2권 이상 구매하신 분께는 한길그레이트북스 수첩도 드리니 좋은 책 사고 기념품도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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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책 추천 셋! <로마인 이야기>


'문화일보 선정-한국의 지성이 30명이 권하는 교양필독서', '동아일보 기획-책 읽는 대한민국 : 열아홉 살의 필독서 50권', '2005. 6~2006. 5-서울대 도서관 대출순위 1위', '국내 CEO 100인이 사회 초년생에게 권하는 10권의 책' 등 타이틀이 너무 많아 소개하는 것도 일인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한길사, 1995)입니다. 인문학 책 추천에 빠지지 않는 스테디셀러죠. 






<로마인 이야기>는 저자 시오노 나나미가 15년에 걸쳐 집필한 대작으로 로마 제국의 1천년 역사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습니다. <일리아드>를 읽고 이탈리아에 심취, 이탈리아에서 30년이 넘게 독학으로 로마사를 연구한 시오노 나나미만의 시각이 듬뿍 들어가 있습니다.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던 로마 제국의 역사를 흥미진진하면서 제대로 알 수 있는 기회, 올 여름 방학은 <로마인 이야기>와 풍성하게 보내세요. 한 권, 두 권 읽다보면 <로마인 이야기>에 푹 빠져서 15권은 후딱 읽으실 수 있을거예요~





인문학 책 추천 넷!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마지막 인문학 책 추천! <로마인 이야기>에 이어 시오노 나나미의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입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 사랑은 유명하죠.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도 그녀의 로마 역사 사랑이 듬뿍 느껴지는 책입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도시국가 일개 서기관에 불과했지만 지금까지 회자되는 역사적 인물은 마키아벨리를 옆에 있는 친구 소개하듯이 편하고 재미있게 이야기 하고 있죠. 


이탈리아 반도를 넘보는 프랑스, 에스파냐 등 외부 세력과의 힘겨루기와 이탈리아 도시국가들간의 갈등 등 당시 이탈리아는 혼란과 역동의 시기였습니다. 이런 역사적 상황에서 르네상스의 중심 피렌체에서 평생을 살고 많은 업무가 집중된 서기관으로 일한 마키아벨리가 정치사상가로 지금까지 이름이 알려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마키아벨리를 보는 것이 곧 르네상스를 보는 것이라고 했던 시오노 나나미,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읽고 르네상스 시대도 보고 마키아벨리라는 대단한 친구도 사귀어보세요~





*시오노 나나미 특별전

15년에 걸쳐 완성한 역사 대작 <로마인 이야기>를 비롯해 강소국 베네치아의 흥망사를 다룬 <바다의 도시 이야기> 등 시오노 나나미의 스테디셀러를 구매하신 분 중 추첨을 통해 한샘 5단 책장(1명), 한길사 5만원 도서구입권(4명)을 드려요~ 행사도서 구매시 사용가능한 금액별 쿠폰 증정도 하니 이번 기회에 인문학 도서를 읽는 즐거움, 배우는 기쁨을 동시에 느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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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의 인문학 책 추천 어떠셨어요? <슬픈 열대>부터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까지 인문학 책 4권을 추천해드렸는데요. '인문학 책'이라고 하면 '어렵다'란 생각이 먼저 드시죠?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요. 일단 올 여름 방학에 짬을 내 인문학 책 읽기에 도전해 보세요~ 오늘 추천해드린 책 4권부터 시작하시면 재미와 배움도 동시에 충족시키실 수 있을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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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그레이트북스2012.10.04 10:34




홉스봄은 이 책에서 19세기 중반의 제3, 4분기에 해당하는 약 30년간의 유럽 역사를 주로 다루고 있다. 이 시기 유럽의 역사를 나라별 또는 테마별로 다룬 연구서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으나, 이것들을 하나의 통일된 역사상(歷史像)으로 종합하여 19세기 중반 유럽의 통사로 엮어낸 책은 드물다. 


이 시기는 유럽의 부르주아지가 고전적인 의미의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경제를 만개시키면서 유럽을 정복하고, 나아가 세계의 다른 지역을 정복해간 인류역사의 격동의 공간이다. ‘아래로부터 위로의 역사’라는 시각에서 기술된 『자본의 시대』를 통해 우리는 종래의 상궤적(常軌的)인 역사서술방식에서는 맛볼 수 없는 매우 독특한 감동을 받게 된다. 또한 누구에게나 가장 낯익은 사건, 극적 요소라고는 없는 일들까지도 새삼스러이 솟구치는 감흥으로 단숨에 읽어내리지 않을 수 없게, 전혀 새로운 의미를 띤 역사적 풍경화로 생동감 있게 펼쳐 보이고 있다. 


홉스봄의 시각에서 볼 때, 이 시대의 조그만 신문에 실린 하찮은 기사 몇 줄, 무명의 시인이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 몇 구절, 어느 희곡작가의 대사 몇 마디까지도 상징적이고 함축적인 의미를 갖게 되고, 그래서 가장 의외로운 구절들이 가장 적절한 곳에 인용되어 마치 보석처럼 빛난다. 


실증적으로 많은 나라를 대상으로 하면서도 그것들이 하나의 세계로 일체화하고 다양화해가는 모습을 세계사라는 하나의 역사상으로 종합·귀결시켜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세계의 뿌리를 제시해주는 홉스봄의 서술력은 우리에게 깊은 감명과 중량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변화하는 자본주의 시대와 노동자 계급의 분화

노동자들은 육체노동과 착취에 대한 공통된 의식으로 실상 단결되어 있었으며, 이 단결은 임금소득자라는 공동운명에 의하여 점점 더 강화되어갔다. 노동자들은 부르주아들의 부(富)가 극적으로 증대하여 그들과 부르주아들이 점점 더 동떨어지게 격리됨에 따라, 그리고 그들의 형편은 예나 다름없이 불안정한 데 반해 부르주아들의 처지는 점점 더 자기폐쇄적이 되어 밑으로부터 올라오려는 자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함에 따라 단결하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성공한 노동자 또는 전(前)노동자들이 도달하기를 온당하게 바랄 수도 있었던 수수하고 대단찮은 행복의 언덕과, 진짜로 놀라운 치부(致富)는 전혀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이러한 사회적 양극화와 아울러 적어도 도시에서는 어느 정도 공통적인 생활 스타일---자유주의적인 부르주아지가 ‘노동자의 교회’라고 일컬었던 선술집이 그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였다---그리고 공통적인 사고의 스타일에 의하여 자신들의 공통성을 자각하게 되었다. 의식이 별로 없는 사람들은 말없는 가운데 세속화되어갔고, 가장 의식이 강한 자들은 급진주의자가 되었고 1860년대와 1870년대에는 ‘인터내셔널’을 지지하였으며 그 후에는 사회주의를 따랐다. 이 두 가지 현상은 서로 밀접히 관련된 것이었다. 왜냐하면 전통적인 종교는 의식(儀式)에 의한 공동체의 재확인을 통하여 사회적 단결을 유지시키는 유대(bond)의 역할을 항상 담당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2제정기에 릴에서는 이러한 공중의 의식행렬과 의식이 쇠퇴하였다. 1850년대에는 『르 플레』(Le play)가 기록하고 있는 바와 같은, 가톨릭의 행렬과 그 화려한 장관에 대하여 소박한 신앙심과 순진한 즐거움을 느꼈던 빈의 소(小)수공업자들도 이제는 그러한 것들에 대해 무관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60년이 채 못 되어 그들은 그 믿음을 사회주의로 돌리게 된다.

의심할 바 없이 ‘노동빈민’이라는 서로 이질적인 집단들은 도시와 공업지대에서 ‘프롤레타리아’라는 단일 계급으로 되어가는 경향이 있었다. 1860년대에 노동조합의 중요성이 증대한 것이 바로 이것을 나타내주고 있다. ‘인터내셔널’의 존재 자체는---그 영향력을 별도로 하더라도---이러한 프롤레타리아화 없이는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노동빈민’들은 서로 별개인 집단들의 단순한 집합만은 아니었다. ‘노동빈민’들은 특히 19세기 초반의 암담한 시련의 시기에 억압받고 불만에 가득 찬 균질적(均質的)인 대중으로 융합한 바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균질성을 이제는 바야흐로 잃어가고 있었다. 즉 번영과 안정을 향유하던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시대는 ‘노동자 계급’에게 집단적 조직에 의하여 노동자 공동의 운명을 향상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저 잡다한 ‘빈민’의 처지에 그대로 머물러 있던 사람들에게는 노동조합이란 아무런 쓸모가 없었으며 공제회(Mutual Aid Societies) 따위는 더욱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었다. 비록 어떤 때는 대중적 스트라이크가 대중을 동원하기도 했지만 노동조합은 대체로 혜택받는 소수자들의 조직이었다. 더군다나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노동자 개개인에게 부르주아적 관점의 진보에 대한 명확한 전망을 제시했던 것이다. 노동자의 대다수는 이러한 전망을 받아들일 수도 없었고 받아들이려고도 하지 않았다.

따라서 점점 더 ‘노동자 계급’으로 형성되어가고 있던 자들 사이에 균열이 발생하게 되었다. 즉 ‘노동자’와 ‘빈민’이 갈라졌다. 다시 말해 ‘존경받을 만한 사람’과 ‘존경받지 못할 사람’으로 갈리게 되었다. 정치적으로는 영국의 중산계급의 급진파가 완강하게 배척했던 위험하고 누더기 같은 대중들과는 분명히 구별되었다는 말이다.

19세기 중반의 노동계급에서 ‘체면’(respec- tability)이라는 말보다 분석하기 어려운 용어는 없다. 이 말에는 중산계급의 가치관과 기준이 침투되어 있기 때문이며, 동시에 거기에는 외부적으로 노동자 계급의 자존심이 그것 없이는 성취하기 어렵고 또 이의 성취를 위한 노동조합의 투쟁운동도 불가능했을 태도들, 즉 절제, 희생, 극기와 같은 태도들이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일 노동운동이 명백히 혁명적이었거나 적어도 (1848년 이전 및 제2인터내셔널기에 그러했던 것처럼) 중산계급의 세계와 확실히 격리되어 있었다면, 노동운동의 특성은 보다 분명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19세기의 3사분기에는 개인적 상승과 집단적(계급적) 향상 사이에, 또 중산계급을 모방하는 일과 노동자 계급 스스로의 힘으로 중산계급을 패배시키려는 것 사이에 분명한 선을 그어 구분한다는 것이 불가능하였다.


1861년 노동자 계급의 한 가정



『자본의 시대』 제3부 제12장 「도시·산업·노동자 계급」 


산업과 농업의 변화를 가져온 자본주의 사회의 발달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유럽을 포함한 1870년대의 세계는 여전히 농촌인구가 도시인구를 앞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대는 『자본의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토지와 토지에 부과된 제도에 의해 대부분의 사람들의 운명이 결정되었다고 홉스봄은 결론 내리고 있다. 물론 토지와 그것을 둘러싼 제도 및 인간들의 운명은 다가올 사회에 양보하지 않으면 안 될 것으로 보였지만 말이다. 

그러나 토지문제는 나라마다 매우 상이했다. 신대륙의 농민들과, 유럽의 농노, 남미의 대농장과 동유럽의 장원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는 사회의 계급구조와 생산체계뿐만 아니라 법체계와 통치형태, 토지정책들로부터 비롯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홉스봄이 정작 문제삼는 것은 이와 같은 차이가 아니라 발전하는 세계에서 농업이 처한 상태에 대해서였다. 그에 따르면 이미 이 시기에 농업은 공통적으로 공업을 기반으로 하는 세계경제에 종속되었다는 것이다. 공업의 수요가 농산물의 필요성을 확대시켰던 까닭에 농업은 자본주의적 형태로 점차 이행하게 되었고, 이 같은 과정은 기존의 제도적 결박을 해체시켰다고 그는 강조한다. 또한 농업 부문의 해체와 더불어 초래된 토지로부터의 인구유출은 도시를 팽창시켰으며 풍부한 임노동층을 형성시켰다. 

홉스봄은 특히 산업과 농업 간의 관계에서 세계적인 규모로 진행된 분업관계에 주목하고 있다. 19세기의 3사분기는 세계경제가 광범위하게 확대되고 심화되면서, 중심부와 주변부 간의 특징적인 관계 형성이 대규모로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러시아와 미국이 주요한 곡물공급 국가로 등장했다. 문제는 특정 지역 전체가 특정 중심부를 향해 특정 생산을 하게 되는 경우가 왕왕 나타났다는 것이다. 벵골의 인디고와 황마, 콜롬비아의 담배, 브라질의 커피, 이집트의 면화 등이 그러했다. 하지만 이 당시에 나타난 세계시장 지향적인 단작농업의 형태는 아직은 안정된 것이 아니었고, 19세기 후반이 되어서야 안정적인 재생산 기반을 갖게 되었다. 

철도와 선박에 의한 장거리 수송체계의 발달이 원거리 무역을 가능케 했으며, 인구가 들끓는 도시와 공업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수요의 증대는 원거리 무역에 기초한 농업의 발달을 가져온 기본동인이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세계농업은 점차 두 부분으로 분화되어갔다. 하나는 국제적인 시장을 목표로 한 농업이고, 다른 하나는 국지적인 농업이었다. 양자의 차이는 분명했다. 전자의 경우 자본주의적인 생산과잉, 가격폭락에 사로잡혀 있었고, 후자의 경우 흉작과 기근에 사로잡혀 있었다. 전통적인 농업 부문은 가격변동의 영향에 비교적 잘 견뎌냈고, 비교적 많은 인구를 수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장 부분에 결합된 농업은 단작으로 형성되어갔다. 

극단적인 사례는 열대 플랜테이션과 대목장들이었다. 때문에 이와 같은 농업의 경우에는 생산자들과 이들의 국가, 무역상, 중개인 그리고 시장을 가진 국가들 사이에 강고한 공생관계가 이루어졌다. 미국 남부의 노예 소유주들, 아르헨티나의 농장주, 오스트레일리아의 농장주들은 자유무역의 주창자들이었으며, 수입국의 이해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 홉스봄은 이 때문에, 중심부를 겨냥한 단작농업을 영위하는 농업 부문은 산업자본이나 그것을 옹호하는 자국의 이해보다 국제시장을 가지고 있는 국가의 이해에 더욱 민감하다고 지적한다. 

농업의 생산량과 생산성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이것은 공업 부문에서의 기술발달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홉스봄은, 변화는 대부분의 경우에 지극히 완만했으며, 농업의 상업화를 가로막은 것은 생산기술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제도였다고 지적한다. 농업 부문의 기능에는 식량·원자재 공급, 노동력의 배출뿐만 아니라 자본제공 기능까지도 포함되었다. 하지만 농민들 자신이나 정치·경제적 지배자들, 그리고 전통사회의 제도적 중압들이 농업의 상업화를 가로막고 있었다. 농업 자체는 자본주의화를 끊임없이 요청받고 있었지만, 농업은 이른바 농민들에게는 자연경제의 축을 이루는 것이었기 때문에 농민들은 상업적 합리화에 필사적으로 저항했다는 것이다. 홉스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는 강제적으로 그것을 붕괴시켰다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는 특히 세 종류의 농업 경영이 해당된다. 노예제 플랜테이션, 농노제 농장, 전통적 농민경제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앞의 둘은 단작의 형태로 재편되면서 전통적인 사회관계가 파괴되었다. 노예제 플랜테이션은 노예제의 폐지에 의해 일소되었다. 농노제는 1848년과 1868년 사이에 유럽에서 해체되었다. 물론 대부분의 농노들이 반농노적인 위치에 머물러 있었고 때로는 농노제의 재강화가 이루어져가고 있었지만, 경향적으로 그것은 붕괴되고 있었다. 하지만 중심부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전통적 농민 경제가 지속되고 있었다.

홉스봄은 농업 부문에서의 이러한 변화를 야기시킨 원인은 복합적이었다고 지적한다. 한편으로는 국가정책에 의해 추진되는 정치적 자유화도 중요한 원인이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농민봉기 또한 부분적으로 중요성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물론 자본주의에 의한 경제적 압력도 어느 정도 작용하고 있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 모든 것들이 인도주의적인 근거에서 진행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그것은 상업적 농업의 합리화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노예제 폐지의 경우에도 자유임노동 계급의 확보와 구매력의 확보가 주된 동인이었지 인도주의적 근거로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농노제의 경우에도 노역지대의 금납지대화, 생산성 확장에 적합한 소농경영의 강화로 변화되어갔고 이를 추동한 것은 특정한 이데올로기나 지배계급의 관용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경제의 발전 그 자체였다. 자유주의적 세력들은 농노제가 부르주아 시장경제에 적합치 않은 것으로 간주했지만, 대지주들은 농노제를 옹호했다. 전반적인 농노제의 해체 원인이 순수하게 경제적인지 아니면 정치적인 것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그것이 자본주의에 적합한 농업형태로 변화되어간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김동택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전임연구교수·정치학


에릭 홉스봄(Eric John Ernst Hobsbawm, 1917~2012)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오스트리아계 어머니와 유대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런던의 성 메리르본 고전문법학교에 다녔고 케임브리지의 킹스칼리지에 들어가 역사학을 전공했다. 

1947년 런던 대학 버크벡 칼리지의 사학과 강사로 부임했다가 1959년 전임, 1970년에는 경제사 및 사회사 정교수를 지냈으며 1982년 은퇴했다. 또한 1949년부터 1955년까지 케임브리지 킹스칼리지의 특별연구원으로 재직한 바 있으며, 1984년부터는 영국아카데미 및 미국아카데미 특별회원, 뉴욕신사회연구원 교수, 버크벡 칼리지 명예교수로 왕성하게 연구활동을 하였다.

홉스봄은 20세기 최고의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로 손꼽혔다. 특히 ‘아래로부터 위로의 역사’적 시각에서 전체사로서의 역사구도를 일관되게 견지하여 박식한 역사가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역사 3부작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는 그의 대표작으로서 프랑스 대혁명과 산업혁명으로 인류사회가 어떻게 변화·발전해왔고, 근대세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방대한 자료를 통해 완전히 새롭게 해석해내고 있다. 

1948년에 첫 저서 『노동의 전환점』(Labour? Turning Point, 1880~1900)을 출간했으며, 1950년에는 「페이비언주의와 페이비언들, 1884~1914」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밖에도 『노동하는 인간』(Labouring Men), 『산업과 제국』(Industry and Empire), 『원초적 반란자들』(Primitive Rebels), 『의적의 사회사』(The Bandits), 『극단의 시대』(The Age of Extremes, 1914~91) 등이 있으며, 1997년에 그의 역사관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역사론』(On History)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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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그레이트북스2011.10.27 10:33




영국의 유명한 역사학자 홉스봄은 1789년부터 1848년 사이의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이라는 ‘이중혁명’을 전체사의 관점에서 서술한다. 영국에서는 이 두 혁명이 약 100년이라는 시차를 두고 자생적으로 일어나 근대시민사회를 수립하였다. 그러나 영국 이외의 유럽 대륙의 여러 나라에서는 프랑스 대혁명을 기폭제로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이 동시에 폭발하여 진행되었고, 그 충격은 유럽 봉건사회의 구체제를 근본적으로 붕괴시키고 급격하게 근대시민사회를 수립하게 된 계기를 마련했다.

어떤 측면에서 볼 때 이중혁명에 대한 홉스봄의 강조는, 19세기 이후의 모든 역사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궁극적인 승리가 불가피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 자체가 역사의 법칙이라는 형태로 서술될 수 있다는 근대화론의 주장과도 상통한다.

홉스봄은 이중혁명의 전개과정을 프랑스 대혁명, 산업혁명, 전쟁, 민족주의, 노동빈민, 종교·예술·과학의 변화, 1848년의 혁명 등을 분석해서 체계화한다. 서양 근대사 중에서도 이 시기가 가장 극적이고 혁명적인 시기인데, 저자는 이 어려운 주제를 알기 쉽게 풀이하면서도 깊이 있는 학술적인 안목으로 정리함으로써 역사를 대중화한다.

인류문명사의 커다란 전환점이었던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을 다루는 저자의 시각은 정치사·사건사 중심의 구태의연한 서술체계에서 벗어나 민중의 생활상까지도 생생하게 드러내, 역사란 단지 제도사나 경제사만이 아니라 인간이 엮어내는 감동의 드라마라는 것을 실감시켜준다. 홉스봄은 바로 이러한 점이 역사의 진정한 면모임을 그의 독특한 역사관으로 보여주고 있다.


 

산업혁명의 결과가 낳은 암흑시대의 자화상

우리는 1789년의 세계를 살펴보는 일부터 시작했었다. 그로부터 약 50년 뒤의 세계 상태, 즉 그때까지 기록된 역사 가운데 가장 혁명적인 반세기가 막을 내리는 시점에서의 세계 상태를 훑어보는 것으로 이 책의 결론을 삼고자 한다.

그것은 최상급의 시대였다. 이 계산과 산정의 시대가 세계에 관한 기존에 알고 있는 모든 국면을 기록하려던 수많은 새로운 통계들에 비추어볼 때, 이 시대의 계량될 수 있는 양이란 양은 거의 모두가 종전의 어느 때보다도 더 많았다(또는 더 적었다)는 결론을 내려도 아무런 잘못이 없을 것이다.

지도상에 표시되어 있고 서로 교류하는, 알려진 세계의 면적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확대되었으며 교통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빨라졌다. 세계의 인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많아졌고, 어떤 경우에는 모두의 예상 또는 종전의 가능성 이상으로 증대했다. 거대한 도시의 수는 전에 없이 급속하게 증가했다. 공업 생산은 천문학적인 숫자에 달했다. 예를 들어 1840년에는 약 6억 파운드의 석탄이 지구 내부에서 채굴되었다. 국제무역에 관한 수치는 이보다 한술 더 뜨는 엄청난 것이었다. 즉 1780년 이래 네 배로 증가하여 약 8억 파운드 스털링(sterling)에 달했으며, 보다 불건전하고 불안정한 통화단위로는 이보다도 훨씬 더 증가했던 것이다.

과학은 일찍이 이토록 득의양양했던 적이 없었으며, 지식이 이처럼 널리 보급된 적도 없었다. 4000종 이상의 신문이 전 세계 시민들에게 지식을 보급했으며, 영국과 독일 및 미국에서만도 해마다 출판된 서적의 종류가 다섯 자리 숫자에 이르렀다. 발명에 대한 인간의 능력은 해마다 더욱 아찔할 만큼 높은 정상을 정복해가고 있었다. 아르강 등(1782~84)---그것은 기름등과 양초 이래 최초의 큰 진보였다---은 흔히 가스 공장으로 일컬어진 거대한 제조장에서 생산되어 끝없이 이어진 지하 파이프로 보내져 공장과 그리고 얼마 후 유럽의 여러 도시를 조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자마자 벌써 그것은 이미 혁명적인 인공조명이라고 할 수 없게 되었다. 런던은 1807년부터, 더블린은 1818년부터, 파리는 1819년부터, 멀리 떨어진 시드니도 1841년부터 그것으로 불을 밝혔던 것이다. 또 전기 아크 등도 이미 알려져 있었다. 런던의 휘트스턴 교수는 이미 영국과 프랑스를 해저 전신으로 연결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연합왕국에서 철도 이용객의 수는 이미 연간 4800만 명에 이르고 있었고(1845), 대영제국에서는 3000마일---1850년까지는 6000마일 이상---의 철도 선로를, 그리고 미국에서는 9000마일의 선로를 따라 남녀들이 돌아다닐 수 있었다. 정기 기선은 이미 유럽과 인도를 연결시키고 있었다.

이와 같은 승리에는 물론 어두운 면이 따랐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통계표로 쉽사리 요약되어 나타날 수는 없었다. 산업혁명은 인류가 살아온 세계 중에서도 가장 추악한 세계를 낳았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오늘날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 당시의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것을 양적으로 표현할 줄 알았겠는가. 맨체스터의 음산하고 악취가 진동하며 연무(煙霧) 가득한 거리는 이미 그러한 사실을 증언해주고 있었다. 달리 표현하면 산업혁명은 전례 없이 많은 남녀를 토지로부터 몰아내고 대를 물려 누려온 확실성을 박탈함으로써 아마도 가장 불행한 세계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1840년대 진보의 투사들을 그들의 자신감과 그들의 결의를 보아 용서할 수 있다. “인류를 보다 행복하고 현명하며 향상시키기 위하여 상업이 자유로이 전진할 수 있게 하고, 그럼으로써 문명과 평화를 아울러 이끌어가겠다”는 그들의 자신감과 결의 말이다. 위에 인용한 장밋빛 희망에 찬 구절은 파머스턴 경이 가장 암담했던 1842년에 한 말이지만, 그는 이 말끝에 “각하, 이것은 신의 섭리입니다”라고 꼬리를 달았던 것이다.

가장 충격적이라 할 그러한 종류의 빈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빈곤은 더욱더 증대하고 또한 그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산업과 과학의 승리를 가늠한 그 전(全)시대적 기준에서 볼 때, 이성적인 관찰자 중 가장 비관적인 자라 해도 물질적인 면의 빈곤이 과거 어느 시대보다 더 심해졌다거나, 당시의 비공업국들과 비교해서 더 심했다고 주장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주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노동빈민의 물질적 번영이라지만 그것은 흔히 과거의 암흑시대보다 나아진 바가 없으며, 때로는 현존하는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그 시대의 것보다도 나빴다고 말한다면 이 말은 더할 나위 없이 통렬한 비난이라 할 수 있다.

새로운 것과 낡은 것의 대조. 런던 역 사무소(1814) 바깥에 보이는
브링턴 역마차와 같은 우편마차는 도로건설자들이 건설한 자갈길 위를 달리게 되었다.



『혁명의 시대』 제2부 제16장 「결론: 1848년을 향하여」

 


이중혁명의 근대사회에 미친 세계사적 결과

역사학자로서 홉스봄이 관심을 갖고 다루는 주제는 그야말로 광범위하다. 그는 농민사나 노동계급사와 같은 계급형성과 관련된 주제들로부터 시작하여, 자본주의 발전과 관련된 경제사 분야에서도 활발한 연구를 하고 있으며, 심지어 문화비평가로서 재즈에 대한 분석서를 낸 적도 있었다. 이처럼 광범위한 그의 관심사 가운데서도, 『혁명의 시대 1789~1848』은 자본주의의 발전, 그것도 ‘장기(長期) 19세기’라 불리는 시기의 첫번째 국면에서 나타난 세계 자본주의의 발전을 다루고 있다.

홉스봄은 이 책이 집필되기 훨씬 이전인 1950년대에 이미 「17세기 위기론」이라는 선구적인 연구를 제출하여 많은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은 바 있으며, 이어서 『산업과 제국』에서는 영국 자본주의의 발전을 세계사적인 맥락에서 검토하였다. 「17세기 위기론」에서 그는, 유럽은 17세기에 전반적 위기를 경험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이미 이 시기에 자본주의 체제로의 전환점이 사회경제적으로 준비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산업과 제국』에서 그는 자본주의의 세계성에 주목하면서, 영국의 발전이 제국주의의 출현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즉 “자본주의는 이미 상당히 자본주의화되어 있는 경제에서만 발달할 수 있다”고 지적하는 동시에 다른 나라와 비교되는 영국의 급속한 발전은 세계시장의 존재 때문이었다고 함으로써, 그는 자본주의 발전에서 해외식민지의 중요성을 제기하였던 것이다. 17세기부터 시작된 영국의 자본주의적 사회경제로의 변화와 세계시장의 존재야말로 영국이 다른 나라들보다 일찌감치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이었다는 그의 지적은 『혁명의 시대』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그는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는 자본주의의 발전과정 가운데 그것이 압도적으로 승리하게 된 시기를 ‘장기 19세기’로 규정한 다음, 다시 그것을 세 단계(즉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로 구분한다. 『혁명의 시대』에서는 그 가운데서도 산업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승리하면서 등장하기 시작한 1789년부터 1848년까지의 첫번째 시기를 다루고 있다.

홉스봄은 이 책에서 첫째, 산업자본주의의 승리는 어떻게 가능했으며 둘째, 그 결과 세계는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추적하고 있다. 앞에서 지적했지만, 그는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에 이르는 이 시기는 자본주의가 시작된 시기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승리한 시기로 보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17세기의 일반적 위기론에서 밝힌 것처럼, 18세기 유럽은 이미 자본주의적 요소가 내재하고 있었으며, 바로 그러한 사실이 자본주의가 다른 지역이 아니라 어째서 유럽 영국에서 특히 압도적으로 승리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해준다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장기 19세기의 첫번째 국면에서 설명되어야 할 것은 자본주의의 존재나 시작 여부가 아니라, 왜 이 시기에 와서 비로소 자본주의의 승리가 가능하게 되었는지였다.

홉스봄에 따르면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바로 이중혁명이었다. 이중혁명이란 영국의 산업혁명과 프랑스 대혁명을 지칭하는데, 영국의 산업혁명이 자본주의 경제를 낳았다면 프랑스 대혁명은 자본주의 정치를 낳았다. 두 혁명의 경과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홉스봄은 두 혁명이 서로 별개의 혁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의 정치경제를 규정하는 통합적인 혁명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두 혁명은 각각 영국과 프랑스에서 나타났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정치경제의 전형이라는 측면에서 세계사적이고 보편적인 혁명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홉스봄의 이러한 논지는 보편주의적, 혹은 목적론적 역사 해석이 되기에는 너무도 많은 유보 조항을 허용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영국은 프랑스와 같은 정치혁명을 경험하지 못했으며, 프랑스는 정치혁명에도 불구하고 산업자본주의가 그에 걸맞게 발전하지 못했다. 또한 프로이센은 정치혁명이 부재한 가운데 절대주의하에서 산업혁명을 달성한 바 있다. 이러한 형태의 여러 변종들은 홉스봄이 제시한 근대 자본주의 사회를 규정하는 이중혁명의 이론적 중요성을 상당 부분 침식하고 있다.

물론 홉스봄은 이와 같은 역사적 현실을 다룸에 있어 보다 유연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즉 이중혁명은 혁명의 유무와 상관없이 자본주의 사회들이라면 경향적으로 경험해야만 될 사회적 변화의 기본 모델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에서 홉스봄이 강조한 이중혁명의 중요성은 하나의 경향성 정도로 자리잡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오히려 홉스봄이 강조하고자 했던 것은 모든 세계가 이중혁명을 겪어야만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중혁명이 미친 세계사적 결과였다. 그에 따르면 근대 세계는 이중혁명으로 인해 비로소 공업 일반이 아닌 자본주의적 공업의 승리가, 자유와 평등 일반이 아닌 부르주아적 자유와 평등의 승리가, 근대 경제들 일반이 아닌 자본주의의 중심부의 승리가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자본주의의 발전에 대한 이와 같은 홉스봄의 설명은 경직된 역사적 필연성에 입각하여 자본주의의 발전을 설명하기보다는, 해당 사회가 역사적으로 발전시켜온 역사적 구체성에 입각하여 그것을 설명함으로써, 한편으로는 마르크스의 논지를 충실하게 따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보다 역사적인 구체성을 획득하게 되었다.

홉스봄이 「17세기 위기론」과 『혁명의 시대』에서 다루고 있는 자본주의의 발전 문제는 마르크스가 단편적으로 제시한 자본주의로의 이행에 관한 문제의 연장선상에 있다. 마르크스는 이 문제를 자본론의 ‘소위 본원적 축적’에 관한 장에서 간략하게 검토한 적은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다루지는 않았다. 대략 16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는 매우 광범위한 시간대에 걸쳐 있는 이 시기는 이론적으로나 역사학적으로 공백 상태에 놓여 있었다. 때문에 이에 관련된 문제들은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커다란 논란을 야기시킨 바 있다.



 

김동택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전임연구교수·정치학



 

에릭 홉스봄(Eric John Ernst Hobsbawm, 1917~2012)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오스트리아계 어머니와 유대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런던의 성 메리르본 고전문법학교에 다녔고 케임브리지의 킹스칼리지에 들어가 역사학을 전공했다. 

1947년 런던 대학 버크벡 칼리지의 사학과 강사로 부임했다가 1959년 전임, 1970년에는 경제사 및 사회사 정교수를 지냈으며 1982년 은퇴했다. 또한 1949년부터 1955년까지 케임브리지 킹스칼리지의 특별연구원으로 재직한 바 있으며, 1984년부터는 영국아카데미 및 미국아카데미 특별회원, 뉴욕신사회연구원 교수, 버크벡 칼리지 명예교수로 왕성하게 연구활동을 하였다.

홉스봄은 20세기 최고의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로 손꼽혔다. 특히 ‘아래로부터 위로의 역사’적 시각에서 전체사로서의 역사구도를 일관되게 견지하여 박식한 역사가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역사 3부작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는 그의 대표작으로서 프랑스 대혁명과 산업혁명으로 인류사회가 어떻게 변화·발전해왔고, 근대세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방대한 자료를 통해 완전히 새롭게 해석해내고 있다. 

1948년에 첫 저서 『노동의 전환점』(Labour? Turning Point, 1880~1900)을 출간했으며, 1950년에는 「페이비언주의와 페이비언들, 1884~1914」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밖에도 『노동하는 인간』(Labouring Men), 『산업과 제국』(Industry and Empire), 『원초적 반란자들』(Primitive Rebels), 『의적의 사회사』(The Bandits), 『극단의 시대』(The Age of Extremes, 1914~91) 등이 있으며, 1997년에 그의 역사관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역사론』(On History)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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