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사 / 한길아트2013.09.06 16:17


누구나 한번쯤 인도를 꿈꾼다.

상상력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인도에 관한 이야기



“사는 게 왜 이리 힘들까요?”

“그러게 말이에요. 그래서 기쁨도 더 큰가 봐요.”

                        - 영화 「시티 오브 조이」 中 -



「시티 오브 조이」라니! 주인공이 처음 콜카타(전 캘커타)를 볼 때는 전혀 어떤 기쁨도 그곳에서 찾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 역시도 처음 이 영화를 보면서 저 도시가 어찌해서 '시티 오브 조이'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으니까요. 「시티 오브 조이」 속의 인도는 예쁘지 않습니다. 처절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인도의 비루한 현실을 보여주는 장면들과 스토리가 가슴을 스미고 드는 아름다움이 있을 뿐입니다. 



[출처-영화 「시티 오브 조이」]




영어로 ‘기쁨의 도시’라는 뜻을 가진 콜카타. 질척하리만큼 진한 삶의 밑바닥을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 어째서 기쁨의 도시라 불릴 수 있을까요. 아무리 보아도 기쁨보다는 절망과 고통, 슬픔이 더 많아 보이는 그곳에서요. 영화를 보는 내내 그 의구심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웠던 저는 마지막 저 대사를 들으며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답니다.


사람들에게 막연하게 가고 싶은 곳을 말해보라고 하면 한번쯤 인도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방학 중, 심지어 직장을 때려치우고 인도로 달려가는데요. 그런데 인도하면 딱 생각나는 것은 음...카레? 그만큼 잘 알진 못하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인지 더 환상으로 가득한 인도! 60여 년 전에야 하나의 자유로운 국가가 되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인도가 존재한 기간은 수천 년이나 됩니다. 인도아 대륙 전체, 즉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의 인구는 15억 명으로 전세계 인구의 5분의 1도 넘습니다. 곧 중국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가 될 것 같은데요. 여러 지역의 위대한 문화들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문명이 되죠. 광활한 땅덩이와 넘치는 인구들, 그 속의 이야기들이 무궁무진할 것 같지 않으세요? 그 시작과 현재 그리고 상상력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인도에 관한 101가지 이야기들이 여기 있습니다.



101가지 인도 이야기

유니스 드 수사 지음 | 소년한길 | 2012


유니스 드 수사는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세계 여러 나라에 작품이 소개된 인도의 유명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문학평론가입니다. 작가는 이 책 속에서 마치 할머니가 따뜻한 난롯가에 모여 앉은 어린 손자손녀들에게 조근 조근하게 때로는 박진감 넘치게 재미난 옛날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인도의 광활한 땅덩어리만큼이나 이 책에 소개된 이야기들의 소재는 무척 다양합니다. 세상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질병과 재앙은 어떻게 생겨났는지, 사람의 꼬리는 왜 없어졌는지 같은 세상 만물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온갖 종류의 악마들, 동물들, 초자연적인 생명체들의 이야기까지, 우리가 이미 알고 있거나 혹은 몰랐던 것들, 아예 생각해 보지도 못한 것들에 대한 상상력과 호기심을 마구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책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이 책은 어른을 위한 아이의 책으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손에 들자마자 후루룩 국수 먹듯 쭈욱 읽어내려간달까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레 삶을 살아가는 지혜와 교훈을 얻게 하는 흥미진진한 101가지 이야기들이 가득하거든요. 솜씨 좋은 이야기꾼의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불구덩이 속에서 이글이글 타오르는 악마의 형상이 불쑥 눈앞에 나타나기도 하고, 흐드러지게 핀 꽃나무 숲이 저 멀리서 성큼성큼 달려오는 모습과 마주치게 되기도 합니다. 읽고 나면 인도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설렘이 생기게 될 101가지 인도이야기. 짤막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어 잠자리에 들기 전 한 꼭지씩 읽어나가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작은 여신 우마

프레드 베르나르 지음 | 소년한길 | 2012


어느 날 갑자기 여신이 된 소녀 우마. 아몬드처럼 까만 눈동자, 루비같이 붉은 입술, 아름다운 목소리…. 여신이 되기 위한 조건을 모두 갖춘 우마는 홀로 어두컴컴한 방에서 밤을 보내고, 무서운 분장을 한 신관들이 겁을 줘도 꾹 참고 작은 여신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모두들 작은 여신이 된 우마에게 행복을 빕니다. 이러한 풍습은 인도에서 몇천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전통입니다. 이 책은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인도의 특별한 소녀가 겪는 이국적인 모험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린이 프랑수아 로카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이국 이야기에 다채로운 색상과 생생한 표현으로 아름답고 따뜻한 감동을 불어넣습니다. 또한 불길이 활활 치솟는 전쟁터에서 느껴지는 긴장감과 웅장한 코끼리, 그르렁거리는 호랑이, 파란색과 녹색이 강렬한 인도 정글의 모습은 인도 특유의 정서를 훌륭하게 표현해내고 있습니다.






한길사에서 출간된 책들을 보면 인도 관련 책들을 많이 찾아낼 수 있는데요. 한 번 모아봤습니다. 






한길그레이트북스 『바가바드 기타(한길사│1996)

한길그레이트북스 우파니샤드1, 2(한길사│1996)

한길그레이트북스 인도철학사 1~4(한길사│1999)

간디자서전(한길사│2002)

마하트마 간디(한길사│2001)

인문고전 깊이읽기 베다』(한길사│2013)

인문고전 깊이읽기 우파니샤드(한길사│2011)

이거룡의 인도사원순례(한길사│2003)

101가지 인도 이야기(소년한길│2012)

Art&Ideas 인도미술(한길아트│2001)



『간디자서전』의 옮긴이 함석헌 선생님은 책을 번역하며 여러 군데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고 말씀하시는데요. 책을 통해 그 시대 인도의 모습과 간디의 인격적 매력을 동시에 접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밖에도 인문고전 깊이읽기 『베다』와 『우파니샤드』는 인도 정신문명의 뿌리, 힌두교와 인도철학에 대해 편안하게 해설하고 있어 인도에 관한 입문서로 최고의 선택이 아닐까 합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 호기심의 나라 인도에 관한 한길사 책들과 함께 몸과 마음을 살찌우는 가을을 보내시는 건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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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 / 한길아트2013.09.05 15:18



매번 시의성 있는 주제로 독자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는 계간 『황해문화』가을호에 이순예 선생님의 『예술과 비판, 근원의 빛-예술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서평이 실렸습니다. 홍윤기 선생님은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예술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서 나의 사유는 돌부리에 걸린 것처럼 넘어진다. 일어서면서 나는 막 산에서 내려오는 차라투스트라라도 된 듯한 기분으로 버럭 역정을 낸다. 예술은 죽었잖아! 라고."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예술은 정말 죽어버린 것일까요. 『황해문화』와 홍윤기 선생님의 허락을 얻어 서평 본문을 싣습니다.

 

   

예술은 죽었다! 아직도 구원을 찾는가?

 

 

돈의 가치론적 전제(專制):예술은 죽었다!

 

전직 대통령이 내놓지 않은 추징금을 받아내기 위해 검찰이 압수한 톱클래스 작가의 미술 작품이나 지구를 몇 바퀴씩 돌아가면서 클릭된 싸이의 뮤직비디오가 그것을 보고 듣는 이들에게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가지는지 알고 싶을 때 TV는 그것들을 문화상품으로 놓고 시장가치만 말해준다. 우리의 감성을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현대의 대중매체들, 특히 우리나라의 대중매체들 안에서 모든 예술, 나아가 모든 문화적 활동의 가치척도는 돈이다. 예술과 문화에 대해 우리는 더이상 “예술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던지지 않는다. 돈의 압도적 우위를 인정하는 데 너무나 익숙해져버린 나머지 예술이 우리에게 구원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 자체가 퇴화된 것이다. ‘나’와 예술, ‘우리’와 문화 사이의 의미 있는 연관성은 돈의 액수 뒤에 아예 엄폐된다. 미디어 세계 안에서 예술과 문화는 모두 시장판의 상품이다. 예술은 죽었다!

 






근원에의 접근?

 

이순예 박사의 책은 그 제목부터 나를 세 번 고달프게 만들었다. 이 책은 세 개의 제목을 달고 있다. 보통 본제목 하나에 부제목 하나 정도인데, 거기에 딸림 제목이 하나 더 붙었다. 그리고 본제목, 부제목, 딸림제목으로 갈수록 읽는이의 마음은 예술의 심연, 이제는 동굴 속에 들어가 까맣게 잊고 있는 그 심연으로 끌려들어간다. ‘예술과 비판’은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쉼표 하고 ‘근원의 빛’이라는 본제목 같은 부제목을 붙였다. 무엇이 근원인가? 예술인가, 비판인가?

‘빛’이라는 계몽의 이미지로 ‘근원’을 비추면, 역시 우리 뇌리에서 사라진 사유의 한 장르, 고색창연한 형이상학과 부딪친다. 우리는 왜 이 사유의 동굴 속으로, ‘근원’이라는 것으로 들어가야 하는가? 그러면서 지금의 예술에서는 전혀 던져지지 않는 물음에 걸려 넘어진다. ‘예술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라는 그 물음에서 나의 사유는 돌부리에 걸린 것처럼 넘어진다. 일어서면서 나는 막 산에서 내려오는 차라투스트라라도 된 듯한 기분으로 버럭 역정을 낸다. 예술은 죽었잖아! 라고.


 



구원체험:접신(接身)을 통한 접신(接神)

 

그런데 지은이는 “시작하기 전”(21쪽)부터 이미 시작한다. 라오콘의 전설은 우리로 하여금 근원에 접근하게 만들지 않는다. 우리는 ‘접근’하는 게 아니라 라오콘의 ‘전설’에 한 귀를 내미는 순간 라오콘이 죽어간 트로이의 전장터에서 빠져나온 아이네아스의 발자취를 따라 그야말로 순식간에 그 아이네아스가 “새로운” 나라를 “시작”하기 위해(28쪽) 도달했던 바로 그 로마의 한가운데 있는 바티칸 교황궁에서 조각상으로 놓인 “예술품”으로 변신한 라오콘 그 자신의 죽음의 순간과 ‘접신(接身)’한다. 근원은 서서히 접근하는 것이 아니다. 근원은 내가 그 앞에 선 순간 나의 몸에 ‘접신’한다. 철학적 사유와 달리 예술적 감상은 근원을 사유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근원 자체로서 비근원적인 현실에서 나를 동체이탈시켜 바로 구원 그 자체와 일체로 만든다. 내가 구원을 의아하게 여기는 바로 그 순간 그런 구원의 의아함에 대한 “나의 기억”은 “나”로 존재한다. “나는 나의 기억”이니까(35쪽).


이순예 박사는 내가 역정낼 틈도 없이, 나를 역정(逆情)나게 만든 그 예술 앞에 내가 서는 그 순간, 나를 나의 역정(驛程)에서 순간적으로 빼돌려 그야말로 “우연”스럽게 “진정성” 있는 나를(42쪽) 온몸으로 만들어낸다. 나의 역정은 예술 작품 앞에서 멈추었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죽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의 뇌리에서 시간이 멈춘 그 순간 나는 죽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술 작품이 나에게 준 그 순간을 살아낸 나의 삶대로 조각되거나 그려진다. 예술 작품은 내가 보는 작품 대상이 아니라 그 대상과 하나가 된 나의 삶의 순간이 되고, 그 순간 나의 삶은 고단한 인생 역정에서 벗어나 예술이 그려보인 바로 ‘그 순간의 삶’ 그 자체로 순수하게 존재한다. 예술이 없던 곳에서 비루하게 엮어왔던 나의 삶은 이 우연의 순간에 단번에 “예술의 삶”으로 돌려진다. 예술은 내가 살고 싶었던 진정한 삶을 순간적으로 내게 빙의시킨다.




 

현대:일체의 접신을 거부한 업보

 

이순예 박사는 이렇게 역정이탈을 통해 일체체험을 시키는 예술이 탈역정의 역정을 만들어 예술을 보는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삶의 또다른 차원으로 들여넣어 합체시키는 합입(合入)의 순간이 현대에서는 더이상 가능하지 않게 된 현대의 원죄임을 준엄하게 추적한다.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근대인은 뉴턴에게서 그 ‘사과’에 합입되는 것을 거부하고 사과의 ‘떨어짐’에 매달려 사과와 하나될 기회를 영원히 포기했다. 실험실은 근대의 저주다. 인간은 어떤 대상과도 하나가 될 수 없다. 인간은 대상의 관찰을 통해 그 대상의 속성들과 그 인과적 체계성을 얻는 대신 그 대상과 전적으로 합일하는 접신(接身)의 가능성을 포기했다. 대상과 접신(接身)할 일체의 가능성이 포기되면서 인간은 대상의 총체인 세계(世界), 그 대상들의 이상의 총체인 신(神)과 접신(接神)할 길, 즉 구원의 길을 스스로 막아버렸다. 이순예 박사에게 과학은 이렇게 구원을 포기한 인간에게 떨어진 하찮은 거스름돈 비슷한 것이다. 현대인은 모두 뉴턴의 업보를 마치 아담의 원죄처럼 짊어졌다.

 


칸트:주관화한 미의식에 보존된 구원의 기획

 

그렇다면 세계와 신에 대한 형이상학적-신학적 투시를 통해 세속적 대상과 초월적 존재가 합체할 가능성을 모두 포기한 현대인에게 구원이란 사업은 영원히 포기된 기획인가? 여기에서 이순예 박사는 칸트의 『판단력 비판』을 아주 빼어나게 해석하는데 그 칸트 해석이 너무나 빼어나다는 것이 오히려 이 책을 이해하는 결정적 난관으로 작용한다.


이순예 박사는 아주 무심하게, 그리고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공감가게, 박경리 선생의 『토지』를 얘기한다(149~167쪽). 그런데 “체계에서 ‘벗어나는’ 내면을 누릴 줄 아는 윤씨 부인이라는 인물에 따라 신분제라는 그 완강한 세계가 내적으로 균열을 일으키고 마침내 무너져버린”(167쪽) 것이 “순수한 미적 판단의 연역”(169쪽)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그런데 이 뜬금없이 돌연하게 등장한 칸트의 『판단력 비판』에 대한 이순예 박사의 해석, 아니 그 안에서 칸트가 “파헤친zerlegen” 현대적 미의식의 핵심에 대한 이순예 박사의 해설은 너무나 탁월해 방금 전까지 읽었던 『토지』에 대한 또다른 방향, 즉 사회-역사적 방향에서의 해석을 금방 잊었어도 조금도 아깝지 않을 정도이다. 우선은 미의식의 계기를 분석해낸 칸트의 작업을 너무나 적절하게 재구성해낸 이순예 박사의 파악능력 자체가 감탄스럽다. 그리고 객관세계나 초월존재에게서 더이상 기대할 수 없는 현대인의 업보를 그 안에 잠재된 주체적 미의식 안에서 찾는 단서를 아름다움[美]의 개념에 대한 칸트의 분석에서 발견해낸 철학적 통찰력 자체가 경이롭다. 


그러면서 칸트의 3대 비판서를 제대로 마스터한―내가 이 순간에 master라는 영어 단어를 ‘마스터’라고 읽는 외래어를 쓴 것을 용서하라. 이순예 박사가 칸트의 3대 비판서를 읽어낸 상태를 가장 잘 표현한 것이 ‘마스터’라는 단어이다. 즉 ‘이순예 박사는 칸트의 3대 비판서를 마스터했다!’라고 나는 표현하고 싶은 것이다.―사람만이 이순예 박사의 이런 탁월성을 알 수 있을 것 같아 안타깝다. 이런 해석경험을 온전하게 겪어낼 능력이 이 나라에 대중화되어 있다면 아마 대한민국의 정치 문제는 단번에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이순예 박사는 우리의 일상언어 안에 별다른 자극을 주지 않고 굴러다니는 두 종류의 문장을 제시한다(169~170쪽).

 

① ‘이 장미는 빨갛다.’

② ‘이 장미는 아름답다.’

 

①은 장미에 대한 감각지각을 기술한 문장이다. 그것은 이 세상에 사는 내가 경험하는 모든 장미에 해당되는 사실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장미라는 대상을 아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정보를 전달한다. 그러나 ②는 이 세상에 장미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데 그다지 필요한 것이 아닌 어떤 상태를, 즉 장미를 본 주관이 느낀 상태를 알려준다. ①의 장미는 “식물로서의 꽃”(170쪽)이다. 이에 반해 ②의 장미는 “미적 대상으로서의 꽃”(170쪽)이다. 장미는 자기가 존재하기 위해 ①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②는 없어도 된다. 그런데 ①의 장미를 본 어떤 사람, 인식 주관에게는 ①보다 ②가 더 가슴 벅찬 ‘가치’를 지닌다. 장미를 보면서 인간은 장미의 속성뿐만 아니라 장미에게는 없는 ‘장미의 의미’까지도 인식하려고 한다.(내가 이 장미를 아름답게 본다는데 누가 말리겠는가!)


우선 칸트를 따라, 특정 장미를 보고 내가 아름답다고 얘기하는 것은 전적으로 나의 취향(趣向, Geschmack, taste. 이상하게도 이순예 박사는 이 단어를 전혀 부적절하게 감식안(鑑識眼)이라고 번역한다)일 수 있다. 이순예 박사는 아름다움의 주관적 경험에 대한 이 단계의 논의를 생략했다. 대신―의도적으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아주 당차게 아름다움이라는 표현이 알게 모르게 인간들이 보편적으로 공감하면서 발화하는 어법이라는 점을 직접 끌어들인다.

 

“(이 빨간 장미를-인용자) 그저 바라보고 쾌감을 느꼈을 뿐인데도 아주 당당하게 ‘이 꽃은 아름답다’고 사람들이 말하는 사태란 대체 무어란 말인가? 꽃과 아름다움, 그리고 쾌감, 이 셋의 관계를 대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경험세계의 꽃에 귀속되는 논리적인 개념이 마음에서 일어나는 쾌감의 근거일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그만큼 이 쾌감에는 어떤 다른 근거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들이 그토록 자명하게 ‘아름답다’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170쪽)

 

사실 주관적인 취향 개념이 상호주관적인 공통감각 개념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는 과정에 대한 해명은 칸트 철학에서 가장 논증력이 취약한 부분이며, 이 부분에 이르면 대부분의 해설가들은 자기 나름의 구상을 끼워넣는다. 여기에서 이순예 박사는 “당당하게” 또는 “자명하게”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라는 일상적 관찰을 끼워넣는다. 그리고 『판단력 비판』에 대한 이순예 박사의 해석에서 내가 전에 본 적이 없는 가장 상큼한 통찰이 나온다.

 

“우리가 ‘이 대상 X는 아름답다.(Dieses X ist sch쉗.)’는 판정을 내릴 때 우리는 이 판단으로 경험세계에 인식을 보태는 것이 아니며 도덕적인 선(善)을 실천하는 것도 아니다. 앞에 있는 대상을 아름답다고 판정하는 감식판단은 이 두 영역(경험세계와 실천세계-인용자) 사이에 다리를 놓음으로써 전혀 다른 세계의 전망을 우리에게 열어줄 뿐인데, 이 의식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전망을 두고 이제껏 가상의 세계 또는 아름다움의 제국이라고 부르는 명칭들이 따라 나왔다. ‘제국’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라면 그 구성의 가능성이 독자적인 원칙에 입각해서 제시되는 세계여야 할 것이다.”(170~171쪽, 강조 인용자)

 

위의 인용문에서 내가 강조한 부분은 『판단력 비판』 원문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 즉 칸트가 쓰지 않은 표현들이다. 이순예 박사는 칸트가 미의식의 분석을 통해 보여주는 숭고함의 세계에 미리 이렇게 자신이 해석한 표현을 붙임으로써 “칸트가 공통감Gemeinsinn이라는 이념을 도입해 새로운 차원을 열어보려 했지만 새로 밝혀진 내용은 아무것도 없었다”(191쪽)고 단정했다.




 

칸트 비껴가기로 이른 차원:철학적 미학으로 형이상학적 기쁨 보존하기


자신의 칸트 해석을 내세우면서 칸트 자신의 진술을 슬쩍 비껴가는 것은 텍스트 독해의 모럴은 아니지만, 바로 그 덕분에 새로운 개념을 얻을 수 있다면 지적 세계의 발전상 허용되는 반칙이기도 한다. 한나 아렌트가 정치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다고 본 공통감의 개념적 가치를1) 인정하지 않는 이순예 박사는 대신 칸트가 보여준 “전혀 다른 세계의 전망”(191쪽)을 “미적 주체가 형성되는 과정”(207쪽)의 증거로 제출한다. 이 미적 주체는 “형이상학적 작용이 없는 미적 판단을 현상계에 산출”(223쪽)하는 “판단력을 독자적 구성 원칙”에 따라 구사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철학적 미학”을 쭈욱 뽑아올린다. 그리고 아주 역설적으로 이 철학적 미학 안에서 모든 예술 작품이 선사하는 가상은 “형이상학적 기쁨”(393쪽)을 준다는 아주 큰 이유로 시민적 개인이 거주하는 문명 안에 온전하게 그 존립을 보장받는다. 그리고 이것은 이순예 박사가 자기 책의 딸림 제목으로 붙인 물음에 대한 긍정적 응답이다. 그에 따르면,

 

“문명인은 비극의 줄거리가 작가가 꾸며낸 ‘허구’라는 사실을 안다. 그럼에도 기꺼이 그 허구에 몰두한다. 형이상학적 기쁨을 알기 때문이다. 서울의 명동 극장에서 『오이디푸스 왕』이 공연되면, 심지어 여러 번 보러가는 사람도 있다. 주인공을 연기하는 배우에 따라 달라지는 차이를 가려가면서 보기까지 한다. 형이상학적 기쁨인 탓에 경험적 만족은 물림을 모른다.”(393쪽)


구원이 없는 현대 세계에서 칸트의 『판단력 비판』은 잃어버린 구원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헤집어내기 위한 철학적 분투로 해석된다. 칸트와 아도르노는 여기에서 미의식을 통해 잃어버린 구원을 찾아나서는 동반자로 교묘하게 동료로 묶인다. 이순예 박사가 아도르노의 예술론에 큰 기대를 거는 이유는 온통 돈과 생존의 가치에 쏠린 현대 세계의 편향된 이성능력에 “다시 균형을 잡아줄 가능성”을 제시하기 때문이다(404쪽). 아도르노의 예술론을 통해 제시하려는 전망은 “인간존재의 이원성이 (사회―인용자)체계와 (생활―인용자)구조의 역동성을 보장하고 인간적 가능성을 실현시킨다는 것”인데, “현실진단에 따라 근대에 내장된 ‘비합리’를 저항의 거점으로 내세우는 논리”라고 규정된다(405쪽).



 


예술이 없던 시절과의 시대착오, 그리고 다시 ‘예술은 죽었다!’

 

이순예 박사의 예술론은 우리가 지금은 예술 작품이라고 아주 몰염치하게 상품으로 대상화시켜 부르는 그런 미적 존재물들이 그 앞에 선 사람들에게 순식간에 구원을 빙의시킬 수 있었던 시대의 미적 체험에 대한 추억을 강력하게 자극한다. 나는 그의 글을 아주 벅찬 기쁨으로 읽었다. 하지만 칸트의 『판단력 비판』에서 몰관심성(沒關心性, Desinteressiertheit)이 “전혀 다른 세계에 대한 전망”으로 튀면서 문득 제정신이 돌아왔다. 그래! 대중문화가 헤게모니를 행사하는 우리 시대에 진정한 ‘구원’으로 우리를 끄는 미적 존재물, 예술 활동의 생산물이 있을 수 있을까? 이순예 박사는 예술이 죽은 시대의 예술품에 대한 의식을 그런 의식이 전혀 불필요하고도 미적 체험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었던 시대에 투영했던 것은 아닐까? 그 시대에는 예술 작품을 예술이라고 의식할 필요도 없었다. 지금은 신전이나 사원의 예술품이라고 부르는 것이 당시로서는 전적으로 종교적 실천이었다. 예술가,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의식이 전혀 분화되어 있지 않았던 시절의 미적 존재물로 현대에 대항하는 탈현대의 구원을 설파할 수 있을까? 이런 아름다운 시대착오time mistake를 목도하면서 나는 다시 역정을 내는 호사를 부려보기로 한다. 예술은 죽었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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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한길사 / 한길아트2013.09.04 15:54


한국사 수능 필수과목 지정, 

뭐부터 준비해야 할까?



“야스쿠니 신사는 신사니까 젠틀맨 뭐 그런 거 아니에요?”


지난 봄, 뉴스에서 국사 인식에 대한 인터뷰 중 나온 어느 청소년의 대답입니다. 야스쿠니 신사는 물론 안중근 의사와 위안부조차 모르는 아이들을 다룬 이 뉴스가 나간 후, 청소년의 역사 의식을 성토하는 글들이 인터넷을 가득 메웠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탓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국사 과목을 선택 과목으로 만들고 수능에서 배제한 건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이니까요. 이런 위기의 한국사를 의식했는지 교육부는 전격적으로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했습니다.


오는 2017학년도, 그러니까 지금 중학교 3학년생부터 수능을 볼 때 한국사가 필수 과목이 됩니다. 이 때문에 한국사 시간을 대하는 학생들의 태도가 많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태까지 신경 쓰지 않고 있다가 한국사 수능필수 과목 대비를 위해 갑자기 좋은 한국사 책을 찾으려면 막막하죠. 한국사가 어렵고 외울 것투성이라는 편견을 가진 분들께 추천합니다. 우리나라 반만 년 역사를 22권으로 써내신 역사학자 이이화의 『이이화│한국사 이야기』(한길사. 2004)! 『이이화한국사 이야기』는 기획부터 완간까지 10년이 걸린 역작입니다. 







역사의 보편성과 과학성. 진실을 밝히겠다는 재야학자의 의지


전 문화재청장이자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라는 베스트셀러를 펴낸 유홍준 교수는 이이화 선생님의 책 『이이화한국사 이야기』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역사학자로서 이이화 선생의 삶에는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재야 학인의 의지가 서려 있다. 세상이 줄 수 있는 학문적 편의와 관의 혜택을 터럭만큼도 받은 일 없이 오로지 진실을 밝혀내겠다는 뜻으로 40여 년 역사 탐구에 몰두해온 것이 그의 삶이다. <한국사 이야기>는 이이화 선생의 이러한 삶과 의지로 맺어진 결실이며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려는 민(民)의 역량이 남김없이 보여주는 이 시대의 산물이다. 

유홍준 명지대 교수



유홍준 교수의 소개처럼 『이이화한국사 이야기』는 민초들 사이에서 고학을 하며 스스로 역사를 공부한 재야학자가 쓴 한국 역사로 무엇보다 재밌고 쉽습니다. 역사에 대한 거창한 이야기보다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요. 씨를 뿌리기 전에 전체적으로 밭을 한 번 갈아 줘야 가을에 더 많은 곡식을 거둘 수 있듯이 본격적인 한국사 공부에 앞서 한국사 전체를 한 번쯤 통독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사 공부에 앞서 기본기를 다지기에 『이이화한국사 이야기』는 가장 좋은 책입니다. 역사를 조금 아시는 분이라면 재야학자라는 부분에서 위서 논란에 휩싸인 『환단고기』 같은 근거 박약한 옛날 이야기를 하는 것 아닌가 걱정하시는 분도 계실 것 같은데요.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역사적 현실은 21세기로 가고 있는 이 세계화의 시대에도 민족주의가 우리에게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민족주의는 우리 민족만이 우수하고 우리만이 역사의 주역이 되어야 한다는 국수적 민족주의 또는 배타적 민족주의가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전지구적 환경과 연대하여 세계인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국제화시대에 보편타당한 역사관으로 우리 역사를 보아야 하고, 보편타당한 가치관으로 세계인과 더불어 새로운 인류문명을 발전시켜나가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 민족의 기원이 인류의 발생 시기와 함께 한반도에서 처음 시작되었다든지, 조선의 단군이 대제국을 건설하여 만주 일대를 모두 차지했다든지, 고구려가 중국 내지에서 건국하여 차츰 동쪽으로 진출하였다든지, 백제와 신라가 중국 내지에서 일어나 한반도로 내려왔다든지 하는 억설은 배제되어야 합니다. 실체가 확실하지 않고 근거가 없는데도 역사를 국수적인 분위기로 재단하는 것은 보편적 역사의 과학성에 어긋납니다.


『이이화한국사 이야기』제1권 '우리 민족은 어떻게 형성되었나' p.18



역사는 보편성과 과학성에 근거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이이화 선생님. 혹자는 잘못된 민족 감정을 자극하며 위서를 근거로 들어 한민족이 중국보다도 큰 대제국을 건설했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또 다른 혹자는 식민 사관에 찌들어 우리는 아무 것도 스스로 못 하고 일본이나 열강들의 말을 듣는 것이 나았다고 말하는데요. 이런 왜곡된 사관을 가진 학자의 책으로는 제대로 된 한국사를 배울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 역사의 보편성과 과학성에 방점을 찍은 이 책의 가치가 빛나게 되는 것이죠.





우리가 백의 민족인 까닭은? 과학적인 근거로 과장 없이 궁금증을 풀어준다!


이이화 선생님의 『한국사 이야기』는 보편성과 과학성에 근거하지만 시선은 항상 민초들에게 향해 있습니다. 보통 역사는 지배자나 승자의 기록이기 마련인데, 이이화 선생님의 『한국사 이야기』는 가능한 한 민초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표현하고 있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우리 민족이 백의 민족이라고 불리는 이유에 대한 해답입니다.






이 기록을 읽고 오해하면 안된다. 이는 어디까지나 귀족과 벼슬아치의 옷을 두고 하는 이야기이다. 평민이나 천민들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중략) 지배세력은 색감을 제도로 조정해 신분 차별의 방법으로 써먹었다. 또 물감을 들이려면 가난한 평민들은 짧은 일손과 경제적 부담을 갖게 된다. 이렇듯 흰옷은 태양을 숭배하는 사상에서 유래된 것도 아니고 순백의 청결을 좋아해서 입은 것도 아니었다. 다만 뒷날 질긴 관습과 민족의식이 결부되었을 뿐이다. 중국에서는 흰색을 죽은 색으로 본다. 우리나라에서도 예전에는 흰색 자기를 제기로 사용하였다. 근세조선의 후기에는 흰옷을 금하고 검정 옷을 장려하였던 탓으로 평민들은 마지못해 옥색으로 물들여 입었다. 일본은 식민지정책을 펴면서 양복과 물감옷을 권장하였다. 이에 반대하느라 우리 민족은 한사코 흰옷을 입으려고 하였다.


『이이화한국사 이야기』제2권 '고구려 백제 신라와 가야를 찾아서' p.150




이것이 우리가 백의 민족이라고 불린 이유입니다. 어떻게 보면 시시해 보이지만 가장 현실적이고 이치에 맞는 이유라고 할 수 있죠. 이처럼 이이화 선생님의 『한국사 이야기』는 우리의 역사라고 해서 미사여구로 치장하여 부풀리지 않고 근거에 바탕해 가감없는 우리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장 역사 앞에 솔직한 모습으로 말이죠.


어떤 분야를 처음 접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암기도 교재도 시험도 아닌 '그 분야를 어떤 관점에서 볼 것인가?'라고 봅니다. 한 번 관점을 잘못 잡으면 버릇이 들어 계속 어긋나기 때문이죠. 한국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사가 수능 필수과목이 되었다고 부랴부랴 아무 책이나 읽기보다는 이처럼 보편적이고 과학적인 근거에 바탕한 중립적인 관점이 초심자들에게는 더 중요할 수 있죠. 그래야 앞으로 더 깊은 공부를 하더라도 바른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속도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방향이 중요합니다. 그 한국사 공부의 방향을 바로잡을 수 있는 『이이화한국사 이야기』, 오늘 우리 민족의 형성부터 읽기 시작하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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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핀란드의 정서,

『즐거운 무민 가족』 읽으면서 느끼세요!



홍대 근처를 어슬렁대다가 한 식당을 발견했습니다. 연한 하늘빛 벽에 노란 불빛이 아름다운 그런 곳이었죠. 가만히 식당 앞으로 가보니 ‘카모메’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일본 음식점이었습니다. 전 가격도 맛도 아주 흡족해 그 후로도 몇 번을 방문했네요. ‘카모메’라는 단어가 왠지 낯익죠? 우리나라에 「카모메 식당」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일본 영화가 있었지요. 핀란드를 배경으로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일본 여인과 여행자가 만들어내는 소소한 에피소드를 그린 바로 그 영화, 「카모메 식당」.



[출처-영화 「카모메 식당]




갓 구워 나온 시나몬 롤과 커피, 그리고 보기만 해도 군침이 넘어가는 오니기리가 화면을 가득 채우는데요. 그 와중에 제 눈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무민’이 아니었을까 해요. 주인공 미도리가 손님이 없는 한가한 시간에 상에 앉아 읽던 무민 이야기. 동글동글 귀여운 하마같이 생긴 무민 가족의 따뜻한 일상 이야기를 「즐거운 무민 가족」시리즈(소년한길│2012)에서 만나보실까요?





개성 만점 무민 친구들의 신 나는 모험과 성장


핀란드 국민 훈장과 안데르센 상을 수상한 토베 얀손의 손끝에서 탄생한 「즐거운 무민 가족」은, 고향 핀란드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꾸준히 사랑 받는 이야기입니다. 토베 얀손이 스무 살이던 1934년 처음 일러스트로 세상에 선보인 이후, 동화, 그림책,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모습으로 70여 년이 넘도록 전 세계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마를 닮아 동글동글 귀엽게 생기고 온화한 성격의 무민 가족은 무더위, 혜성, 홍수 같은 역경들을 헤쳐 나가며 다양한 모험을 경험합니다. 모험과 친구들을 사랑하는 무민트롤, 듬직하지만 이따금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아빠 무민, 끊임없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고 무언가 소유하는 것을 싫어하는 시인 스너프킨, 겁도 많고 욕심도 많아 항상 곤경에 처하는 스니프, 친구들을 매우 아끼면서도 심술궂게 구는 꼬마 미 등 등장 캐릭터들은 저마다 개성이 뚜렷하고 장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독특하면서도 현실적인 캐릭터들은 이야기를 더욱 흥미롭게 이끌어갑니다. 





흥미진진하고 재미난 동화로 읽는 삶의 철학


「즐거운 무민 가족」 시리즈에는 다양한 연령과 직업을 가진 작은 생물들이 등장합니다. 무민 가족과 친구들은 무민 골짜기에서 괴짜는 괴짜대로 이해받고, 겁쟁이는 겁쟁이대로 사랑받고, 고집쟁이는 고집쟁이대로 존중받고, 꼴찌는 꼴찌대로 위로받습니다. 또 모두가 자유를 사랑하고, 모두가 모두를 위하며 살아갑니다. 무민트롤과 식구들 외에도 아빠 무민, 엄마 무민, 스너프킨 등 각 권마다 중심이 되는 캐릭터가 바뀝니다. 때문에 폭 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이야기의 깊이를 더합니다. 




작은 생물들이 사랑하고, 다투고, 이해하고, 복작거리며 살아가는 재미난 이야기 속에 가족의 의미, 인간관계, 만남과 이별,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처럼 삶 전반에 걸친 깊은 성찰이 담겨 있습니다. 무민 가족이 70년 넘게 사랑받고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 아닐까요. 그러면서도 너무 무겁거나 현학적인 분위기로 흐르지 않는 것 또한 이 책의 커다란 매력입니다. 혜성이 추락하여 지구가 멸망할 위기에 처하거나 친구의 죽음처럼 심각한 문제일지라도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풍자적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이야기 곳곳에서 따뜻하게 삶을 끌어안는 작가의 시선은 깊은 감동을 전합니다. 독자들은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일상을 사랑하는 법을 이야기를 읽으며 배울 수 있습니다.





유머와 재치, 광활한 이국의 자연을 동시에 전하는 그림 


토베 얀손이 직접 그린 캐릭터들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핀란드에서 나고 자란 토베 얀손은 북유럽의 척박하고 사나운 자연을 작품 속에 그대로 투영합니다. 겨울이 길고 혹독한 핀란드처럼 무민 가족이 살고 있는 무민 골짜기는 겨울이 되면 엄청난 추위에 휩싸이며 모든 것이 눈 아래 파묻혀 버립니다. 책 곳곳에 묘사되는 거칠고 사나운 바다와 기기묘묘한 식물이 가득한 숲에서 저 멀리 북유럽의 이국적 정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세밀하고 섬세한 배경과 대조적으로 단순하게 표현된 캐릭터에는 저마다의 성격과 특징이 뚜렷이 살아 있습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된 캐릭터들은 작가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지쳐 바닥에 쓰러진 스니프의 얼굴이나 외롭고 추운 겨울에 잔뜩 화가 난 나머지 발을 구르며 호전적인 노래를 부르는 무민트롤의 표정처럼 유머러스하고 재치가 번뜩이는 삽화는 절로 웃음을 자아냅니다.

 

 

무민 이야기를 읽는 미도리의 모습이 참 편안해 보이는 「카모메 식당」 의 한 장면처럼, 자녀와 북유럽 핀란드의 정서를 느껴보세요. 「즐거운 무민 가족」을 한 권 한 권 아이에게 읽어주며 부모님도 자녀도 핀란드 깊은 숲 속 어딘가 정말 있을 것만 같은 무민 가족들의 삶을 상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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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다반사2013.08.26 16:30


지(知)적인 부산 여행 추천!

보수동 책방골목으로 떠나요~



부산이라는 곳은 저에게 특별한 곳입니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제가 가장 낭만적으로 생각하는 도시랄까요. 고등학교 때는 기차를 타고 서울에서 가장 멀게만 느껴지는 그곳에 수능이 끝나면 제일 먼저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열아홉 살에 부산역에 도착했을 때 사실 전 많이 놀랐답니다. 부산은 바다가 있는 곳이 아닌 그저 대도시였으니까요. TV에서 보던 모래사장이 드넓은 바다로 가기 위해서는 한참이나 버스를 타야 했고 거대한 빌딩과 아파트가 빽빽한 곳이었죠. 실망을 한 건 아니었고 그저 그 모습이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후로 셀 수도 없이 부산에 갔지만 갈 때마다 그 설레임은 그대로였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추억이 쌓여 있는 곳은 딱히 유명하거나 화려한 볼거리가 없어도 끌리죠. 저에게 부산이 딱 그런 곳입니다.






지난 주 부산에 다녀왔습니다. 부산 토종서점이죠. 영광도서(▶바로가기)에서 『조선의 큰어머니 장계향』(한길사│2013) 저자 정동주 선생님의 강연이 있기 때문이었는데요. 이왕 부산까지 간 거 강의만 보고 오기엔 많이 아쉬워 아침 일찍 서둘렀답니다. 사실 보수동 책방골목에 꼭 한번 가보고 싶었어요. 김언호 대표님 사진전 준비로 이야기는 들었지만 실제로 보고 싶기도 했고 헌책들 사이에서 우연찮은 기회에 나의 책을 찾아내고 싶었습니다. 준비나 큰 부담 없이 여행가듯 그렇게 부산행 KTX에 올랐고 순식간에 부산역에 도착했습니다. 






부산역에서 보수동 책방 골목 가기, 아주 쉬워요. 역 맞은편에서 40번 혹은 81번 버스를 타고 10분이면 도착. 헌책방 골목이 아름답게 펼쳐집니다. 처음으로 들른 곳은 <우리글방>입니다. 입구에서부터 대표님의 사진전 이야기가 보이네요. 책방을 둘러보다 제가 참 좋아하는 신경림 선생님의 시집도 한 권 샀습니다. 지금 서점에 가서도 더 싼값에 새 책을 구입할 수 있지만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는 단어가 있죠. 예기치 않게 우연히 발견한 가치 있는 것이었기에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문옥희 대표님과 이야기를 나눈 시간도 가졌는데요. 책을 사랑하는 마음을 넘어 책의 멋과 가치를 알고 계시다는 느낌이랄까요. 종이책이 가진 가치를 지켜내고 싶어하시는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책방 골목을 나와 간 곳은 국제시장입니다. 국제시장.. 한마디로 말하자면 제가 부산에 살았다면 맨날 왔습니다!!! 재미난 볼거리, 맛있는 음식들. 아, 이래서 다들 부산, 부산 하나봐요! 명품 부산어묵으로 요기를 했답니다. 유명해진다고 쉽게 변하지 않고, 오랫동안 원래부터 있던 사람들과 그들의 일상을 보는 것은 그만큼 따뜻함이 전해오는 듯합니다. 새 사람들이 쉽게 들락거리는 번화가와는 전혀 다른 골목이 가진 매력이겠죠? 부산의 골목골목을 둘러보며 느낀 것들입니다.


강연 전 부산의 명물 ‘밀면’로 저녁을 해결하기로 했어요. 박정배 선생님의 『음식강산』(한길사│2013)에도 소개된 집이죠. <춘하추동>에 들렀습니다. 마침 서면의 영광도서 바로 옆이네요. 이른 저녁임에도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부드러운 면의 식감이 새로웠고 육수를 마셔보니 단백하면서도 한약재 특유의 단맛과 약간의 쓴맛이 동시에 납니다. 박정배 선생님께서 왜 『음식강산』에서 이곳을 추천했는지 단번에 알겠더라고요.






30여 명의 독자들과 함께 정동주 선생님의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얼마 전 출간된 『조선의 큰어머니 장계향』과 함께 『음식디미방』이야기가 더해졌는데요. 단순히 음식의 조리나 맛만을 말하고 있지 않고 그 의미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장계향은 음식을 말하기 이전에 그 가치를 말하고 있었는데요. 수백 년을 두고 조선에 양반이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양반집에서 먹었던 것들이 다 조선의 땅에서 조선인들에 의해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생각해보신 적이 있나요? 양반 사대부가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아랫것들이 생산하고 만든 음식을 먹었기 때문인데요. 같은 곳에서 난 같은 것을 먹고 살았기에 차별하지 말고 다르다 여기지 말고 살아가기를 장계향은 말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은 음식의 재료들이 조선에서 난 것들이니 조선 음식을 먹었으면 조선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는 뜻도 담겨 있습니다. 장계향은 조선의 중요성을 알고 정체성을 갖자고 400여 년 전부터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음식디미방』은 단순한 책이 아닌 한국인의 자존심을 지키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정동주 선생님의 강연은 두 시간이 훌쩍 넘기고야 마무리가 지어졌는데요. 참석하신 많은 독자들이 아쉬워하셨어요. 그래서 다음 기회에 또 한 번 강연의 시간을 갖기로 했답니다. 다음번 강연도 기대해주세요!


이제는 서울로 돌아가야 할 시간. 마치 먹거리 출장을 온 것처럼 마지막을 국수로 장식했습니다. 구포국수집인데요. 박정배 선생님의『음식강산』에 따르면 구포국수는 부산 서민들이 가장 즐겨 먹던 대중적인 면식이라고 하네요. 40여 년 전 구포시장의 국수공장에서는 국수를 받아 부산 전역으로 파는 아주머니들로 가득했다고 합니다. 매끈하고 쫄깃한 면발에 한입 베어 물고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음식강산』 덕분에 맛집 투어 제대로 했네요. 그래서 결정했습니다. 다음 박정배 선생님 강연의 이벤트 상품은 ‘구포쫄깃국수’입니다. 얼마나 쫄깃한지 궁금하시다면 9월 11일에 있을 강연을 놓치지 마세요! 


*박정배의『음식강산1,2』저자 강연회에 초대합니다.



▶강연 신청하러 가기




부산에서의 하루. 출장이라기보다는 기분 전환의 하루였던 것 같습니다. 좋은 강연도 듣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파주와 서울만 오가던 일상에서 아주 멋진 하루였습니다. 앞으로 당분간은 그 기운으로 지낼 것 같아요. 그런 시간을 갖게 해주신 정동주 선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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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유스투스」

아이가 죽음에 대해 물어볼 때 함께 읽어야 할 동화책



「굿바이 마이 프렌드」란 영화 기억하세요? 제겐 '눈물, 콧물을 쏙 뺀다'는 것이 뭔지 확실히 알려줬던 영화가 바로 「굿바이 마이 프렌드」입니다. 이 영화는 10대 소년들의 우정을 전면으로 다루고 있지만 「굿바이 마이 프렌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한 차원 더 나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어릴 때 수혈로 에이즈에 걸린 덱스터와 불우한 가정 환경 속에서 정에 굶주린 에릭의 우정은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줍니다. 


병이 악화돼 입원한 덱스터와 친구가 죽었다며 사람들을 놀리는 장난을 쳤던 에릭은 진짜 덱스터가 죽자 오히려 무덤덤해합니다. 에릭이 친구의 죽음을 온전히 이해하기엔 많이 어렸기 때문이겠죠. 덱스터의 장례식에서 자신의 낡은 운동화를 덱스터에게 쥐어주는 에릭의 모습에서 덱스터의 죽음을 조금은 받아들인 에릭의 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죽음으로 몸은 영영 멀어지더라도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 사람과 함께한 기억과 추억도 함께라는 것을요. 



[출처-영화「굿바이 마이 프렌드」 포스터 및 스틸]



키우던 금붕어, 귀여워하던 고양이, 친구의 할머니 등 아이들은 크면서 다양한 죽음을 봅니다. 아이들이 '죽는다는게 뭐야?'라고 천진하게 물어볼 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이 책을 꼭 함께 읽어주세요. 사고로 죽음을 맞이한 고양이 유스투스가 주인공인 동화책「고양이 유스투스」(소년한길| 2013) 입니다. 




친구에게 돌아가기 위한 단 한 가지 방법


고양이 유스투스는 어느 날 낯선 길을 달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발밑은 달빛이 깔려 있는 것처럼 폭신폭신했고, 머리 위에 떠 있는 해는 평소보다 부드럽고 희미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왜 그곳에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때 갑자기 날개 달린 고양이가 유스투스 앞에 나타났습니다. 뮤리엘이라는 이름의 고양이는 자신을 ‘동행 고양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뮤리엘의 말에 따르면 유스투스는 방금 전 교통사고를 당해 죽음을 맞이했으며, 앞으로 중간 나라에 머물면서 다음 생을 준비하게 됩니다. 






중간 나라에서는 원하는 건 모두 가질 수 있고, 하고 싶은 일도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힘세고 멋진 동물로 태어나 새 삶을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유스투스는 오로지 인간 친구인 다비드의 곁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입니다. 유스투스의 굳은 결심에 뮤리엘은 결국 한 가지 방법을 알려 줍니다. 그런데 다비드에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무척이나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우선 유스투스가 사용할 수 있는 몸을 찾아야 하는데,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어야 합니다. 또한 지금 기억의 일부만 가지고 다시 태어나게 되며, 자신이 누구였는지조차도 금방 잊어버리게 됩니다. 유스투스를 잃은 다비드 역시 유스투스가 아닌 다른 고양이는 원하지 않습니다. 다비드는 모습이 바뀐 유스투스를 알아볼 수 있을까요? 그리고 유스투스는 다비드에게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까요?  




이별에 슬퍼하는 어린이들에게 전하는 따뜻한 위로


몇 년 전부터 애완동물 대신 반려 동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된 것처럼 동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크게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특히 형제가 많지 않은 요즘 어린이들에게 반려 동물은 헌신적이고 다정한 친구이자 가족이 되어 줍니다. 그런 가운데 ‘펫로스(pet-loss) 증후군’이라는 말이 생길 만큼 반려 동물의 죽음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은 현대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더욱이 어린이들의 경우, 반려 동물의 죽음은 처음 겪는 이별인 경우가 많아 반려동물의 죽음이 더욱 힘겹게 다가옵니다.  





이 책의 주인공, 고양이 유스투스와 다비드도 둘도 없는 친구 사이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유스투스의 기척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특별한 사이였던 만큼 다비드는 친구의 죽음을 좀처럼 극복하지 못하고 유스투스를 그리워합니다. 유스투스 역시 멋진 삶을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들을 포기하고 다비드의 곁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은 마찬가지입니다. 반려 동물을 잃어 본 경험이 있는 어린이들에게 유스투스와 다비드의 이야기는 큰 위로가 됩니다. 


유스투스는 동행 고양이 뮤리엘과 함께 중간 나라를 여행하는 동안, 죽음은 끝이 아닌 하나의 과정이며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임을 이해하게 됩니다. 독자들은 유스투스의 이야기를 통해 막연히 무섭게만 느껴졌던 죽음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죽음을 맞더라도 영원히 이별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고,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특별한 친구끼리는 서로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줍니다. 두 친구의 아주 특별한 우정 이야기는 친구와의 이별로 힘들어 하는 어린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며, 소중한 존재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슬픔을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을 전합니다.



*함께 읽기


쉿, 나쁜 말은 안 돼요!        

에디트 슈라이버 비케 글・카롤라 홀란트 그림・유혜자 옮김 | 토마토하우스 

라우라와 레오는 단짝 친구예요. 그런데 오늘 라우라가 레오에게   라고 했어요. 그건 정말로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지요.   는 계속 따라다니면서 레오를 힘들게 했어요. 라우라는 레오에게 왜 그런 말을 했을까요? 라우라와 레오는 화해할 수 있을까요? 




모차르트의 비밀 친구                  

에디트 슈라이버 비케 글・박민수 옮김 | 소년한길 

모차르트는 짧은 삶을 살며 아주 많은 음악을 작곡했습니다. 모차르트는 어떻게 그 많은 곡을 작곡했을까요? 혹시 음악의 요정이 연주하는 소리를 들으며 악보를 쓴 것은 아닐까요? 아니면 음악의 요정이 불러 주는 대로 악보를 받아 적은 것은 아닐까요? 모차르트의 좋은 친구이면서 작곡을 도와주었던 어떤 목소리가 있었을지도 몰라요. 목소리의 이름은 ‘아마데’예요. 아마데는 ‘신의 사랑’이란 뜻이랍니다. 



유령이 된 할아버지 

킴 푸브 오케손 지음 | 에바 에릭손 그림·사진 | 소년한길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 닥치면 아이들은 불안을 느낍니다. 늘 옆에 있던 사람이 잠깐만 안 보여도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합니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 볼 수 없다는 것은 어쩌면 아이들에게 생길 수 있는 가장 큰 두려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영원히 볼 수 없는 죽음이란 아이들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길 건지요. 어른도 받아들이기 힘든 죽음. 아이들에게 죽음이란 걸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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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 애니『마녀 배달부 키키』

키키의 뒷이야기가 궁금하세요?



「이웃집 토토로」, 「천공의 성 라퓨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벼랑 위의 포뇨」 등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명작 애니메이션을 만든 ‘스튜디오 지브리’. 디즈니, 픽사와 함께 동양 애니메이션 제작사로는 유일하게 세계 3대 애니메이션 제작사라고 평가받기도 하는데요. 한국에서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지난 6월 22일부터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스튜디오 지브리 레이아웃전>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고 하죠. 주말에는 대기 번호가 수천 번에 이를 정도라고 합니다.



[출처– 각 영화 포스터 및 현대카드]




이번 전시의 테마는 ‘레이아웃’입니다. 레이아웃이란 감독이 자신의 연출 의도를 명확히 하기 위해 제작하는 것으로 이미지뿐 아니라 제작에 필요한 모든 기법이 담겨 있는 애니메이션의 세부적인 설계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일일이 손으로 그리는 고전 애니메이션의 레이아웃에는 자연스럽게 완성된 애니메이션을 상상하게 만드는 창조성과 상상력이 넘쳐흐릅니다. 하지만 레이아웃에서 보여주지 못하는 비전을 간직한, 진짜 비밀 설계도가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바로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원작 동화책이랍니다.




『마녀 배달부 키키』와 스튜디오 지브리


스튜디오 지브리를 이루는 중심축은 감독인 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타 이사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작품을 만들 때마다 자신이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하기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그런 미야자키 하야오조차 반한 작품이 있었으니, 바로 『마녀 배달부 키키』(가도노 에이코 글 · 하야시 아키코 외 그림 · 권남희 옮김│소년한길│ 2011)입니다.





「마녀 배달부 키키」의 원작은 일본의 작가 가도노 에이코가 지은 동화 『마녀 배달부 키키』입니다. 아직 마녀는 남아 있지만 마법이 조금씩 사라져 가는 시절의 어느 마을. 마녀의 딸로 태어난 키키는 13살을 맞아 부모님 곁을 떠나 홀로서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10살이 지나면 마녀가 될지 안 될지를 스스로 결정하고, 마녀가 되기로 결정했다면 13살이 되는 해 보름달이 뜨는 밤을 골라 새로운 마을로 떠나 홀로서기를 하는 것, 그것이 마녀의 오랜 전통이지요. 다른 건 잘 못해도 빗자루를 타고 나는 것만큼은 자신 있는 키키. 홀로서기를 위해 1년 간 엄마 품을 떠난 키키는 자신의 특기를 살려 대도시에서 택배 일을 시작합니다. 키키가 기상천외한 물건들을 배달하며 겪는 에피소드마다, 어린아이가 자기 진로를 결정하고 낯선 세상으로 처음 나갔을 때의 기대와 떨림 그리고 두려움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풀어내고 있지요.






미야자키 하야오는 스튜디오 지브리를 설립한 이래 최초로 자신이 쓴 각본이 아닌 작품으로『마녀 배달부 키키』를 선택했습니다. 그만큼 이야기가 매력적이었다는 뜻일 것입니다. 일본에서 1989년에 개봉된 「마녀 배달부 키키」는 역대 애니메이션 흥행 기록을 11년만에 갈아치울 정도로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해외에서는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대명사인 「이웃집 토토로」 보다 3배나 더 흥행했다니 「마녀 배달부 키키」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과 사랑을 받았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원작 소설의 디테일한 심리묘사 VS 활공하는 빗자루 액션


<스튜디오 지브리 레이아웃전>에서도 분량은 적지만 눈길을 끄는 전시물이 바로 「마녀 배달부 키키」의 레이아웃입니다. 키키가 빗자루를 타고 도시의 골목골목을 날아다니는 레이아웃이 완성된 애니메이션 화면과 멋진 대비를 이루고 있습니다. 홀로서기를 위해 첫 비행에 나서는 키키의 아슬아슬하면서도 가슴 벅찬 활공이 눈앞에 펼쳐지죠.



[출처–마녀 배달부 키키 오프닝]




이에 비해 원작인 가도노 에이코의 동화 『마녀 배달부 키키』는 디테일한 심리 묘사로 아이들과 부모님들의 공감을 흠뻑 사고 있습니다. 자신의 진로를 스스로 결정하고 혼자 힘으로 살아가기 위한 홀로서기 연습에 매진하는 키키의 모습, 그리고 엄격하게 가르치지만 자신의 품에서 아이를 떠나 보내야 하는 엄마의 마음이 절절하게 묘사되어 있거든요.



“나 있지, 이 마을에 좀 더 있어 볼까 해. 생각했던 것처럼 환영받지는 못했지만, 빵 가게 아주머니가 나를 마음에 들어 해 주었잖아. 어쩌면 한 사람이나 두 사람쯤 나를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지 않니?” 

“응, 그러게. 한두 사람, 아니 세 사람 정도는 있을지도 모르지.”


『마녀 배달부 키키』(소년한길│ 2011) 1권 p.59




스튜디오 지브리의 「마녀 배달부 키키」 애니메이션은 큰 틀에서 가도노 에이코의 원작 동화와 비슷합니다. 특히 배경음악과 함께 하늘을 나는 키키의 모습은 스튜디오 지브리만이 보여줄 수 있는 멋진 장면 중 하나죠. 그에 비해 원작인 가도노 에이코의 동화 『마녀 배달부 키키』의 장점은 시간의 흐름이나 사건의 내용이 아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섬세한 묘사를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이와 엄마가 함께 보며 서로의 입장에 공감할 때는 원작 동화를, 함께 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볼 때는 애니메이션을 선택하시면 서로 더 재밌게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아이와 엄마가 원작 동화를 보고 서로의 입장을 헤아린 후 함께 노래를 부르며 애니메이션을 즐기시면 어떨까요?







홀로서기를 하는 아이와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


어릴적 엄마의 부탁으로 첫 심부름을 떠날 때의 벅찬 긴장감을 기억하시나요? 아이를 보내고 뒤에서 남몰래 했던 엄마의 걱정을 이젠 아시겠나요? 『마녀 배달부 키키』는 언젠가는 홀로서기를 해야 할 아이와 아직 어리기만 한 자녀를 품에서 떠나보내야 할 엄마가, 미리 연습한다는 의미에서 읽어보면 큰 도움이 될 동화입니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자신의 일을 스스로 판단하여 결정하도록 도와주고, 엄마 입장에서는 아이에게 세상의 엄혹함을 알려주되 사람에 대한 희망과 믿음은 잃지 않도록 해주는 균형잡힌 시각을 선사하기 때문입니다. 총 6권인 원작 동화에는 어린 키키가 어엿한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또 키키의 단짝 친구 검은 고양이 지지의 모험담이나 키키가 낳은 두 쌍둥이 토토와 니니의 이야기처럼 애니메이션에서는 만나볼 수 없었던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자, 그럼 이제 키키와 함께 하늘을 날아볼까요?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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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 / 한길아트2013.08.16 14:18


파노프스키의 논문 10편으로 알아보는

'예술작품 속 형식에 어떤 의미가 숨겨져 있나?'



EBS <다큐 프라임>에서 예전에 흥미로운 다큐멘터리가 방영됐었습니다. 제목은 '동과 서'. 동서양의 사고방식 차이를 다룬 것으로 우리 일상 속의 행동 하나 하나를 사례로 들어 동양인과 서양인의 차이점을 설명했습니다. 전혀 의식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큰 차이점이 있다니 싶어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특히 기억에 남았던 것은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었습니다. 


동양에서는 그림 구도를 넓게 잡아 화가가 마치 하늘에서 보는 것 같은 그림을 그리는 반면, 서양에서는 화가가 장면을 바로 앞에서 보고 있는 것 같은 그림을 그린다고 합니다. 이는 대상 중심으로 생각하는 동양과 관찰자 중심으로 생각하는 서양의 차이점 때문입니다. 우리가 간과했던 예술작품에 숨겨져 있는 이런 형식적인 부분의 의미를 찾아보는 것은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또 다른 포인트가 아닐까 합니다. 이런 지적 유희를 돕기 위해 20세기를 대표하는 미술사학자 에르빈 파노프스키의 『시각예술의 의미』(한길사│2013)를 소개합니다. 



『20세기 중국미술사』(한길사2013) 726p,『명화로 읽는 성서』(한길아트2000) 78p




주 논문과 본론을 포함해 이 책에 실린 총 10편의 논문 중에는 개론적인 미술이론의 성격을 띄는 것도 있고 아주 특정한 관심영역을 다룬 것도 있습니다. 각 논문에 얹힌 시간의 역사 또한 고대에서 중세와 르네상스를 거쳐 1950년대 미국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물론  각 논문이 발표된 시기 또한 다릅니다. 다시 말해 각 논문은 작성 시점의 시대 상황, 파노프스키가 행한 미술사 연구의 이론적인 궤적과 문맥에 따라 읽는 것이 좋습니다.






논문들 사이에서 미술사적인 중요성의 경중을 가린다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모든 글에는 20세기 최고의 미술사학자로 불리는 파노프스키의 미술과 미술사에 대한 인본주의적 관점이 진중하게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파노프스키가 인간 세계의 구조를 밝히는 데 도입한 의미와 구조의 방법은 더욱 그 연구의 이론적 의의와 가치를 발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대표적인 논문

「도상학과 도상해석학」(1955)

이 논문은 파노프스키의 ‘방법’에 대한 가장 광범위한 문제제기를 일으킨 글입니다다.  ‘르네상스 미술에 관한 서문’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글에서 파노프스키의 ‘방법’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에 맞게 구상된 것입니다. 즉 ‘인간’에 대한 인본주의적 관점과, 그러한 인간 개념이 생산한 미술에 기반을 둡니다. 따라서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이 미술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규범적인 중심성에 의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양식사의 반영인 인체비례론사」(1921)

파노프스키가 객관적 비례와 기술적 비례를 구별하면서 인간 측정의 이론을 추구하는 데에는 비례의 문제가 시각의 변화와 연관된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자리합니다. 우리 몸의 움직임은 움직이는 부분과 다른 부분에 영향을 끼칩니다. 그런데 이집트인들은 이를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예술 의욕은 변화 가능한 것이 아닌 지속적인 것을 향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집트 미술에서 조각상은 인간 존재의 기능이 아닌 형식을 재생산했습니다. 그리고 미술가는 그러한 형식을 재구성할 수 있게 측정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예술 의욕은 객관적 비례를 자유롭게 변화하게 하고, 미술가와 감상자의 시각에 조각상이 더욱 조화롭게 재생산되도록 해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집트 미술과 달리 그리스 미술에 이르러서는 기술적 비례와 객관적 비례의 상응이 이루어지지 않게 된 것입니다.


「조르조 바사리의 『리브로』 첫 페이지」(1930)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입장에서 판단한 고딕 양식 연구’란 부제가 붙은 이 논문은  파노프스키가 미술사학이라는 학제와 르네상스 미술 용어들 사이의 결정적인 관계성을 세운 글로서 의의가 큽니다.「바사리」 텍스트는 상대적으로 파노프스키 초기의 연구물 가운데 하나로, 자신의 미술사학의 미래 발전을 위한 명제적 방향을 함의합니다. 즉 파노프스키의 미술사학은 방법과 규준에 대한 질문에 힘 있게 답하기 위해 재현의 차원과 심미적 차원에서의 해결을 지향했습니다. 두 가지 모두 스스로의 대상들을 위한 자기 명증을 상상합니다. 이는 해석을 위한 유효함 또는 해석에 대한 요구라는 제1의 문제를 숨깁니다. 그렇게 파노프스키는 우리에게 ‘의미’의 역사 전체에 어떻게 하나의 대상이 삽입되는지, 의미의 역사를 어떻게 하나의 대상을 통해 바라보아야 하는지 말해줍니다.



에르빈 파노프스키(1892~1968)는 독일 하노버에서 태어나 뮌헨 대학 ·베를린 대학 ·프라이부르크 대학 등에서 미술사를 배운 20세기 최고의 미술사학자입니다. 처음에는 양식(樣式) 연구에서 출발하였으나, 후에는 도상학에 대하여 도상해석학을 제창하고 그 방법론을 확립하였으며, 고대에서 근세에 걸치는 다양한 저작과 논문을 남긴 20세기 최고의 미술사학자입니다. 그림을 보고 느끼는대로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 파노프스키의 뛰어난 논문을 모아놓은 『시각예술의 의미』를 읽고 가끔은 그림을 '알고' 감상하는 것은 어떨까요?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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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 / 한길아트2013.08.14 14:17



전통차의 가치,

『차와 차살림』으로 살펴보자



"무슨 차 좋아하세요?"라는 질문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당신의 대답은 커피, 녹차, 홍차 등 다양할 텐데요. 제가 해외에서 지내며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할 때 하루에 백번 이상 했던 말이 “Would you like tea or coffee?"였습니다. 보통 tea 하면 English breakfast tea나 허브 종류의 차였고 영어의 차(tea)에는 커피가 포함되지 않더라고요. 영어의 tea와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차는 다른 것일까요? 그 궁금증에 지식검색을 해보니 아래와 같이 정의하고 있네요.






차나무의 어린잎을 따서 만든 음료. 우리나라에서는 곡류로 만든 율무차·옥수수 차, 여러 식물의 잎으로 만든 두충차·감잎차 등, 과실류로 만든 유자차·모과차, 꽃이나 뿌리·껍질 등으로 만든 국화차·인삼차·귤피차, 약재로 만든 쌍화차 등과 같이 기호 음료 전체를 칭하기도 한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의 차란 차나무의 잎을 의미하는 것이고, 일반적으로 말하는 율무차·인삼차 등은 탕(湯)에 속하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 백과] 차[茶]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中



명확하게 말하면 차는 차나무의 잎을 가공하여 음료화 시킨 것을 의미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관점에서 볼 때는 마실 수 있는 모든 음료를 차라 할 수 있지만, 차나무 잎이 없으면 차라 부를 수 없네요. 중국에서 시작된 차 문화가 우리나라로 들어온 것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요. 신라본기 흥덕왕 3년(828년)에 중국에서 차가 전래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차는 선덕여왕 때부터 있었지만, 이때에 이르러 성하였다고 하는데요. 우리나라의 차를 마시는 습관과 문화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성행하였다고 하니 그 역사가 만만치 않죠. 


그렇다면 우리나라도 중국과는 다른 독자적이고 전통적인 차 문화, 차도가 있지 않을까요? 우리의 차 문화에 관한 모든 것. 바로 여기 있습니다. 지난 5월 출간된 정동주 선생님의 『차와 차살림』인데요. 30여 년 간 저자가 걸어온 차에 관한 모든 여정이 담긴 『차와 차살림』은 한국의 차와 찻그릇, 차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차(茶), 군대 없이 상대를 정복할 수 있는 정신 전쟁의 무기


정동주 선생님은 수십 년 동안 차문화를 연구하고 발굴해 널리 알리는 작업을 해오면서, 한국 차문화와 그 역사가 똑바로 자리를 잡지 못해 마음 쓰린 지경에 처해온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유럽 주요 도시에서는 중국이나 일본 대사관의 문화원이 주관하는 차 관련 행사가 자주 열리는데, 대체로 중국차·일본차·한국차를 동시에 비교 체험하는 프로그램이 많다고 합니다. 세 나라의 차인들이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차회를 진행하고 문답 시간을 가질 때면, 주로 한국 차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요. 


한국 차법은 중국과 일본 두 나라 차법과 매우 닮았는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한국 차로 볼 수 있냐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시드니, 런던, 파리, 뉴욕 등지에서 모두 비슷한 질문을 받곤 했는데요. 행사 주관자가 중국과 일본의 대사관이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단순하게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한국대사관에서는 이와 같은 행사를 주관한 일조차 없었습니다. 정동주 선생님은 우리나라가 실상 차문화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기호음료 ‘차’는 기원 이전부터 인류의 생활 속에 등장했습니다. 고대인들에게 차는 생존에 꼭 필요한 약으로 쓰였고, 더 폭넓게는 신에게 바치는 제사음식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중국 차문화가 전해진 6세기 이후로 차는 신라, 고려, 조선시대 중반 이전 상류층 사람들의 기호음료가 되었고요. 중국에서 수입한 차와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차를 두루 마셨습니다. 중국 차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나 한국 차문화에는 매우 상징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손님을 편안하게 모시는 겸손 위에 차살림을 펼치는 행위가 그렇습니다. 좋은 차를 지성으로 달여 권하는 일을 통해 겸손의 덕을 기르고, 고마움, 공경하는 마음을 갖습니다. 차를 내는 사람은 위압적이거나 상대를 불편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정치·경제·사회의 위대한 지도자는 물론 문학과 예술에서도 불멸의 작품을 남긴 이들이 대부분 차에서 큰 힘과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고려시대에는 ‘중형주대의’(重刑奏對儀)라는 제도가 있었는데, 이는 신하가 중죄를 범해 사형이나 이에 준하는 엄한 판결을 받게 되었을 때 왕이 사헌부 관리와 함께 차를 마시면서 형벌 정도를 토론한 제도입니다. 판결이 엄정하고 신중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인데, 이때 차는 냉철한 이성과 편향되지 않은 견해를 내는 데 도움을 준다고 여겨졌습니다. 조선 중엽 사헌부의 ‘차시’(茶時)는 감찰들이 사헌부와 같이 감독하고 검열하는 관청에 모였다가 파하는 것으로, 이는 차를 마시고 파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록을 통해 차를 마시는 것이 휴식이 아니라 업무의 연장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업무를 보기에 앞서 정신을 맑게 가다듬고 공정한 판단과 엄정한 일처리를 위해서 차를 마신 것입니다. 


명분과 체통을 목숨같이 여겼던 조선시대에 관료들이 차와 함께 정신을 다스려 소통하는 자리는 또 있었습니다. ‘사다’(賜茶), ‘사좌(賜座)의 예(禮)’도 정치적 소통 방법으로서 차가 훌륭한 역할을 했음을 보여줍니다. 임금과 신하가 한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여러 문제나 정치적 사안 또는 개인적 소견을 말하는 방법이었습니다.




동다(東茶)와 차살림, 동다문화론으로 차문화의 독립을 외쳐오다


정동주 선생님은 1966년 처음 차를 마셔본 이래 47년째 차와 더불어 살고 있습니다. 1980년에 처음 차 만드는 실험을 시작했고, 중국차의 약효와 품격, 일본차의 멋과 맛에 비교해 한국차만의 특성을 밝히고 그 독자성을 구체화시키는 데 긴 시간을 보냈습니다. 숱한 곡절 끝에 1990년 무렵에 반 발효차의 약효와 차의 품격에 대해 안정된 확신을 얻었고, 중국과 일본의 오랜 차문화를 바탕으로 볼 때 여기에 견주기 위해서는 한국 차문화에만 사용하는 찻그릇과 차 마시는 법도까지 분명히 갖춰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이에 따라 연구를 쉬지 않은 저자는 도예가들과 긴 세월 토론을 거쳐 동다완(東茶碗)이라 불리는 우리만의 찻그릇 형태를 연구하고 만들어냈습니다. 고된 연구 끝에 동다완은 이제 안정된 형태와 빛깔로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는데요. 우리 차법을 정립하는 데도 여러 해가 걸렸습니다. 일본과 중국의 차문화와 함께 놓고 볼 때 한국 차문화에 잘못 배어든 것, 즉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이고 또 어디를 지향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한 것입니다.


선생님은 한국의 차문화가 중국과 일본의 ‘茶道’가 아니라 혹여 다른 문화의 영향을 받지는 않았는지, 독자성을 평가할 만한 유산이 남아 있지는 않은지 오랜 시간 추적해오셨습니다. 유장하고 도도한 중국과 일본 ‘茶道’ 역사에 가려 아예 잊혀졌거나 희미하게 흐려진 한국 차문화의 원형이 없는지 찾아 헤맸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토종 인문학이라 할 ‘동다문화학’을 창안하셨습니다. 지난 50여 년 동안 ‘다도’와 ‘행다’ 행위를 한국 차문화의 정체성인 것처럼 일컫고 가르쳐온 데 대한 뼈아픈 반성이고, 이를 견디고 이겨내면서 매진한 연구였습니다. 



*함께 보면 좋은 책

『조선 막사발과 이도다완』 (정동주 지음 | 2012 | 한길아트)


『조선 막사발과 이도다완』은 천년의 비밀을 간직한 조선 막사발의 역사를 추적해가는 가슴 뭉클한 드라마입니다. 우리 사기장과 유물을 마구잡이로 유출한 일본의 수탈 아래 막사발 역시 여느 도자기처럼 가슴 아프게 정체성을 잃었습니다. 저자 정동주 선생님은 막사발의 비밀을 추적하다가 결국 일본의 국보 ‘기자에몬이도’가 되어 대접 받는 조선 막사발을 대면했을 때 ‘차라리 햇볕이 잘 들고 바람이 시원한 저 마당에 내던져 깨뜨려 버리고 싶었다.’고 그 통한을 표현했습니다. 


정동주 선생님은 막사발은 만다라의 법에 따라 제작된 불교미술품이라고 말합니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그리운 스승, 위대한 스승 석가모니의 마음에 닿고자 하는 불멸의 존경심이 빚어낸 작품인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저자가 오랜 시간 막사발의 근원을 찾아다니며 조심스럽게 이도다완의 비밀을 파헤친 흔적들이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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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캠핑장에서 

자연에서 놀자! 어떻게?『스틱 북』으로!



인간에 대한 정의는 참 많습니다. 교과서에서 많이 본 호모 사피엔스(지혜로운 사람), 호모 파베르(도구를 사용하는 사람)같은 정의뿐 아니라 현대인을 설명하는 호모 모빌리쿠스(휴대전화를 생활화하는 사람) 같은 재미있는 정의도 있습니다. 그중 오늘 소개해드릴 책과 딱 맞는 정의가 있습니다. 바로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는 네덜란드의 문화사학자 요한 하위징아가 고안해낸 개념인데요. 간단하게 말하자면 놀이, 즉 유희가 인간의 아주 중요한 특성 중 하나라고 본 것입니다. 선사시대부터 인간이 장난감을 갖고 논 흔적이 발견된다고 하니 '노는 것'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본능에 가까운 것 아닐까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노는 걸 좋아하지만 노는 것에도 급이 있습니다. 특히 어릴 때 잘 놀아야 어른이 되어도 잘 놀 수 있겠죠?

 

오늘 소개해드릴 『스틱 북』(조 스코필드 · 피오나 댕크스 지음 · 서남희 옮김 | 소년한길 | 2013)은 아이와 자연에서 '제대로' 노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요새는 가족과 캠핑도 많이 떠나죠? 아이와 캠핑을 떠나 자연 속에서 마음껏 노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으니 캠핑을 좋아하는 부모님들께서도 주목해주세요~




 

『스틱 북』을 읽으며 어린 시절 산과 들에서 신 나게 뛰어놀았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스틱 북』이 얼마나 자연에서 제대로 노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책인지 어떻게 사람들에게 알려줄까'를 고민하는 저에게 동료가 말했습니다. "『스틱 북』의 놀이 방법대로 직접 만들어 보면 어때요? " 


'그래! 직접 만들면 되는걸!' 눈을 반짝이며 당장 실행에 옮겼습니다. 『스틱 북』에서 봤던 것들을 생각하며 주변의 자연물들을 마음껏 이용해 보기로 했어요! 자연스럽게 주변을 살피고 궁리하게 됩니다. 사무실 밖으로 나가 한길책방 근처를 돌며 떨어진 나뭇잎과 마른 가지들을 모으다 보니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이 새롭게 느껴지네요. 자, 이제 팔을 걷어붙이고 작업에 나서봅니다. 오늘 만들어 볼 것은 『스틱 북』 58페이지에 소개된 '액자'입니다. '나뭇가지만으로 액자를 어떻게 만들지?'라고 의문스러워 하시는 분은 『스틱 북』만 믿고 따라오세요. 


 

 

나뭇가지로 틀을 만들고 강아지풀 줄기로 틀을 엮은 후, 예쁜 꽃들과 나뭇잎으로 장식을 합니다. 만들기 전 ‘풀이나 테이프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정말 자연에서 얻는 재료들만 가지고도 이렇게 뚝딱 만들어지네요. 친환경적인 놀이라고 생각하니 왠지 더 뿌듯하고 즐겁습니다.



*『스틱 북』들고 아이와 함께 자연에서 액자 만들기

   Step 1. 적당한 길이의 나뭇가지 4개를 풀 줄기 등으로 단단히 묶어 틀을 만든다.

               (굵기와 길이가 적당한 나뭇가지가 없어서 전 얇은 나뭇가지를 여러 개 겹쳤습니다. 응용의 힘!)


   Step 2. 만들어진 틀을 강아지풀, 열매, 깃털, 꽃 등 다양한 자연 재료로 장식한다. 

                (이번 단계에서 아이들이 상상력과 예술 감각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겠죠?)


   Step 3. 완성된 틀에 사진이나 그림을 넣어 집이나 방 등에 장식한다.



 

짜잔~ 귀여운 상상력과 약간의 손재주로 뚝딱 만들어낸 첫 번째 작품입니다. 어떠세요? 참 귀엽죠? 아이들의 모험을 도와줄 나뭇가지들. 우리 주변에 있는 나뭇가지만으로도 뭐든 만들어 낼 수 있어요! 그 시작이 어렵다면 일단 『스틱 북』과 함께 해 보세요. 가족들과 함께 산에서 바다에서 어디에서든 즐길 수 있는 ‘나뭇가지로 할 수 있는 재미있는 놀이 70가지’가 『스틱 북』안에 가득합니다. 

 



 

 


*『스틱 북』2탄!『와일드 웨더 북』

비가 주룩주룩 오고 눈이 펑펑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제대로' 노는 법을 알려주는 『와일드 웨더 북』이 소년한길에서 곧 나올 예정입니다. 『스틱 북』의 2탄이랄까요? 장마철에도 바깥에서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지 궁금하시죠?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와일드 웨더 북』 비 스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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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다반사2013.08.02 16:04


아직 살아있는 진보의 꿈, 

죽산 조봉암 선생 54주기 추모제



죽산 조봉암 선생의 54주기 추모제가 망우리 묘지공원 조봉암 선생 묘지에서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사상 첫 사법살인의 희생자'였던 죽산 조봉암의 삶을 재구성한 <조봉암평전-잃어버린 진보의 꿈>(한길사, 2013)의 저자 이원규 선생님과 지난 7월 31일 망우리 묘지공원을 찾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추모제에 참석했습니다. 조봉암 선생의 큰딸 조호정 여사, 둘째딸 조임정 여사 등 유족과 기념사업회 김용기 중앙회장, 송영길 인천광역시장, 김학준 전 인천대학교 총장 등이 30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평화롭고 공평하게 잘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 노력했던 독립운동가이자 진보적 정치가였던 죽산 조봉암 선생의 뜻을 지금까지 기리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겠죠. 조봉암 선생과 처음부터 뜻을 같이 했던 사람들 뿐 아니라 가천대학교, 인천대학교, 인하대학교 등에서 대학생들과 중·고등학생들도 추모제에 참석했습니다. 젊은 세대에게 조봉암 선생의 뜻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봤네요. 






이원규 선생님의 소개로 유족과 관계자 분들과 인사를 드리고 분향소 근처에 마련된 조봉암 선생 자료 등을 살펴보다보니 어느덧 추모제가 시작하려 했습니다. 이날 추모제에는 조봉암 선생의 육성녹음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또 조봉암 선생의 모교인 강화초등학교의 학생들이 추모시 ‘그 날’과 ‘죽산조’를 낭독했습니다. 신경림 시인은 ‘그 날’에서 ‘젊은 여자가 혼자서/ 상여 뒤를 따르며 운다/’고 노래했는데요. 시에 ‘젊은 여자’로 그려졌던 조봉암 선생의 큰딸 조호정 여사는 머리에 하얗게 서리가 내렸습니다. 지난 2011년, 52년 만에 대법관 13명 전원 일치 의견으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조봉암 선생. 누명은 벗었지만 너무나 오랜 세월이 흘렀다는 것을 조호정 여사를 보면서 새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조봉암 선생은 서대문형무소에서 억울하게 처형을 당하기 전 “나에게 죄가 있다면 많은 사람이 고루 잘 살 수 있는 정치운동을 한 것 밖에는 없다. (중략) 내 죽음이 헛되지 않고 이 나라의 민주발전에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고 마지막 말을 남기셨습니다. 조봉암 선생의 묘에 헌화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며 조봉암 선생의 유언이 여전히 우리들 곁에 남아있음을 생생하게 느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헌법에 보장된 평등은 헌법 재정위원으로 참여해 대한민국 헌정의 기초를 만든 조봉암 선생의 노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조봉암 선생 54주기 추모제가 큰 의미로 다가가길 바랍니다. 젊은 세대가 조봉암 선생이 꿈꿨던 모두가 평화롭고 행복하게 사는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는 주역이니까요.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일을 없애고 

모든 사람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되고 

모든 사람이 착취당하는 것이 없어 

응분의 노력과 사회적 보장에 의해서 

다 같이 평화롭고 행복스럽게 

잘 살 수 있는 세상, 

이것이 한국의 진보주의라 해도 좋을 것입니다."


-조봉암의 진보당 창당 개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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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호 중국인 이야기 독자클럽

『중국인 이야기』함께 읽고 페이스북에서 소통한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시인인 랠프 월도 에머슨(1803~82)은 ‘같은 책을 읽었다는 것은 사람들 사이를 이어주는 소중한 끈이다’라고 했습니다. 같은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 순간 조금 더 가까워진 느낌을 받게 되죠. 서로간의 대화를 통해 보이지 않는 연대와 공유의 힘을 느낀 적이 한 번쯤 있으실 겁니다. 여기, 개인적인 독서가 그 어떤 모임보다 친밀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페이스북 그룹 <김명호 중국인 이야기 독자클럽>입니다. 한길사에서 출판된 김명호의 『중국인 이야기』에 큰 감동을 받은 한 독자(차현인, 여의도 백상치과 원장)의 관심에서 시작된 이 모임은 현재 860여명의 회원들이 활발히 참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에, 깊이 있게 읽는 습관까지


처음에는 『중국인 이야기』 책 이야기로 시작된 것들이 지금은 책 뿐 아니라 중국에 관한 모든 것을 이야기합니다. 한시(漢詩), 문학에서부터 문화·예술계 전반, 그리고 정치와 뉴스까지 중국에 관련된 것들이라면 독자 스스로 글을 올리고 서로 공유를 합니다. 요 근래에 가장 인기가 있었던 포스팅은 바로 중국식 짜장면인 챠오몐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댓글에 댓글이 더해져 한국식 짜장면과 챠오몐의 차이점, 맛 그리고 조리법까지 이어졌으니 포스팅(▶바로가기) 하나로 중국인들의 생활까지 엿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지요. 



▲『중국인 이야기』페이스북 독자클럽에서 화제가 됐던 '챠오몐 VS. 짜장면' 1박 2일 모임 




그리고 더 재미있었던 것은 이 포스팅이 초래한 예기치 못한 결과였습니다. 끊이지 않는 논쟁을 보다 못한 중국통 이순익 독자가 “이번 주말에 저희 집에 오셔서 차오몐, 짜장면 다 드셔 보시고 판단하세요.”라며 모임을 제안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의 포스팅이 독자클럽의 첫 번째 번개모임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날의 번개 모임(▶바로가기)은 끊이지 않고 나온 중국음식과 중국 정치·문화에 대한 토론으로 1박 2일이 풍성했다고 합니다. 





『중국인 이야기』로 페이스북에서 소통하는 독자클럽 멤버들


‘김명호 중국인 이야기  독자클럽’은 일반적인 독서 모임과는 달리 저자와의 만남, 강연, 역사기행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합니다. 회원들 간의 잦은 만남과 대화가 이 모임이 계속 번창해 가는 비결인데요. 지난 7월 10일 저녁, 홍대 모처에서는 시끌벅적한 행사가 있었습니다. 바로 한길사에서 주최한 <차이니즈나이트>(▶바로가기)였는데요. 『중국인 이야기』의 김명호 저자가 독자들과 함께 중국 공산혁명의 선두자인 ‘천두슈’의 파란만장한 삶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김명호 저자는 필력만큼이나 탁월한 입담으로 여름밤을 채웠는데요. 사회자로는 독자클럽의 차현인 독자가 나서 더욱 눈길을 끌었습니다. 



『중국인 이야기』저자 김명호 교수의 차이니즈 나이트




이렇게 행사 때마다 독자 스스로가 주축이 되어 참여하고 좋은 아이디어를 내놓고 서로 나눌 수 있는 것도 독자클럽이 가진 자랑거리 중 하나입니다. 차현인 독자는 스스로를 <김명호 중국인 이야기 독자클럽> 열혈 운영자로 칭하며 “본업은 독자클럽 관리, 부업은 치과의사”라고 소개를 할 정도니 그 열정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시죠? 공통된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뭔가 생활의 활력이 될 것 같지 않으세요? 그렇다면 지금 바로 클릭하세요. ^^



▶ 페이스북 김명호 중국인 이야기 독자클럽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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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다반사2013.07.19 09:46


보수동책방골목을 다녀와서

'책, 오래된 빛을 찾아서' 떠나는 풍크툼의 시간



“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지만,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독일의 신학자 아 켐피스(1380~1471)


보수동책방골목 우리글방에 한 장의 사진이 걸려 있다. 나는 사진 앞에서 오랫동안 떠날 줄 모른다. 세 명의 네팔 어린이가 나란히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사진이다. 사진은 조금 전까지 납작하고 평평했던 나의 의식에 별안간 균열을 일으킨다. 프레임 밖의 보이지 않는 배경과 풍경들까지 나는 넉넉히 상상하며 사진 속으로 끌고 들어온다. 히말라야 설산과 정글,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그리고 이상한 결핍과 상처의 아우라가 사진 안팎을 감싸고 있다. 그 한가운데 책 읽는 아이들이 있다.





 

롤랑 바르트는 그의 저서 『카메라 루시다』에서 뜨거운 철학의 언어로 사진 읽기를 시도한다. 그는 스투디움과 풍크툼이란 개념을 도입한다. 스투디움은 사진에서 누구나 읽고 공감할 수 있는 상식적인 스토리이다. 반면에 한 장의 사진을 다른 사진이 아닌 바로 그 사진답게 하는 무의식의 에너지의 결집체, 그것을 풍크툼이라고 한다. 바르트는 풍크툼이 있는 사진을 좋은 사진이라고 했다. 풍크툼은 고요한 존재의 중핵을 별안간 후려친다. 평온했던 세계를 느닷없이 찢으며, 내면에 은폐되어 있던 상처와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보게 한다. 책 읽는 아이들의 사진 앞에서, 나는 비로소 풍크툼의 의미를 어렴풋이 이해한다.


우리글방에 전시된 20여 점의 사진들은 제목이 없다. 김언호 대표가 찍고 전시한 사진들은 오래된 책들을 배경으로 한 또 다른 오래된 책들이다. 실물과 사진들은 겹치고 포개지며, 오래된 것들끼리 스스로 마련한 넓고 깊은 자리를 보여준다. 그는 말한다.





“모든 책은 궁극으로 헌책들입니다.

 모든 새책들의 탄생은 헌책들로 가능합니다.

 책을 만들면서 저는 헌책들의 존재에 감탄하게 됩니다.

 모든 헌책들은 아름답습니다.

 모든 헌책들은 헌책이기 때문에 더 향기롭습니다.

 세상의 헌책들, 그 넓고 깊음에 저는 침묵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물의 순환 원리와 존재태의 아름다움을 깨달은 자에겐, 세상도 헌책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넓이와 깊이를 갖고 있다. 그는 그 앞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음을 고백한다. 전시된 20여 점의 사진들의 제목이 사실상 ‘침묵’임을 나는 넌지시 짐작한다.


보수동책방골목은 남루하되 비루하지 않고, 오래되었으되 낡지 않았다. 소외되었으되 순결한 시간과 풍경을 거느리고 있다. 60여 년 전, 전쟁과 궁핍의 시대를 견뎌온 상흔들이 낡은 책들처럼 골목마다 차곡차곡 쌓여있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처럼 책방골목은  치유와 성찰의 장소로 새롭게 부활한다. 그런 점에서 소년 시절, 이 골목에서의 독서체험을 아름답게 기억하는 김언호 대표의 사진들은 우리에게 수많은 말을 걸어온다.






“이 작은 사진 전시를 통해서, 저는 사진을 말하지 않습니다.

 지상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한 권의 책을 말하고 싶습니다.”



나는 부산행 고속열차에 몸을 싣고, 열차 안에서 보수동책방골목의 위치를 스마트폰으로 재빠르게 검색했다. 단 3 시간 만에 당도한 책방골목 입구에서, 나는 멀미하듯 현기증을 느낀다. 시속 250km의 가공할 속도와 디지털기기의 편리함에 의존해 너무 빨리 달려왔다. 책방골목에 펼쳐진 느린 시간과 오래된 책들의 풍경은 속도에 마취되어 살아온 나의 의식에 쉼표 하나를 찍어 준다. 속도의 관성을 지그시 누그러뜨리고 이 골목길을 걸을 때, 저 사진 속 책 읽는 아이들과 보수동책방골목의 표정과 자세가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책, 오래된 빛을 찾아서’ 떠나는 길은 두고 온 그리운 것들을 수소문하는 여정이자 풍크툼의 시간이다.   





사진 / 김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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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正史)와 야사(野史), 

『중국인 이야기』의 저자 김명호 교수의 차이니즈 나이트



삼성경제연구소가 추천하는 '휴가때 CEO가 읽어야 할 책'에 당당히 2권 모두 선정된 『중국인 이야기』의 저자 김명호 교수의 강연이 지난 7월 10일 홍대역 근처에 있는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열렸습니다. 차이니즈 나이트(Chinese night)란 타이틀로 진행된 이번 강연은 6월에 있었던 첫 번째 강연에 이은 두번째 차이니즈 나이트였습니다. 강의 시작 한참 전부터 강의실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더니 강의 시작 시간에는 백 여명의 사람들로 강의실이 꽉 찼습니다. 


 

 



 

이 날 페이스북 그룹 <김명호 중국인 이야기 독자클럽>(▶바로가기)의 멤버라면 굉장히 반가운 얼굴을 만나실 수 있었습니다. 차이니즈 나이트의 사회를 맡아주신 분이 차현인 독자였거든요! <김명호 중국인 이야기 독자클럽>의 핵심 운영자로 맹활약 중인 차현인 독자가 김명호 교수와『중국인 이야기』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차이니즈 나이트의 사회를 혼쾌히 맡아주셨습니다.






사람들의 뜨거운 성원에 보답하는 건 재미있고 유익한 강연을 들려드리는 거겠죠? 이 날 강연 주제는 '천두슈(陳獨秀)'였습니다. 삼성경제연구소 추천 도서에 당당히 선정된 『중국인 이야기』1, 2권에 이어 시리즈로 출간될 다음 『중국인 이야기』에 소개될 인물이기도 하죠. 『중국인 이야기』에서 중국혁명사의 주역과 조연들의 내면을 딱딱하게 풀지 않고 생생한 이야기 방식으로 생생하게 들려주는 김명호 교수의 스타일대로 이 날 강의도 진행됐습니다. 정사(正史)와 야사(野史)를 넘나들며 중국 공산당 창당의 핵심 인물이자 공산주의 이론의 대가인 천두슈의 공적 활동 뿐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은 뒷 이야기까지 종횡무진 풀어놓는 김명호 교수의 강연에 사람들이 모두 퐁당 빠졌거든요.


 

▲차이니즈 나이트 사회를 맡아주신 차현인 독자(위)



천두슈에 대한 유익하고 알찬 강연 사이사이에 잘 알려지지 않은 비화를 잘 버무리는 김명호 교수의 솜씨가 대단했습니다. 죽고 나서야 조금씩 재평가 받기 시작한 천두슈는 알려진 것이 많이 없는 미스테리한 인물입니다. 사진도 그래서 별로 없죠. 소위 말하는 '스펙'도 없이 북경대학 교수가 된 비결이라든가, 3번 결혼하게 된 사연 같은 이야기가 그래서 더 흥미로웠던 것 같습니다. 

 

 

『중국인 이야기』의 저자 김명호 교수




<김명호 중국인 이야기 독자클럽>(▶바로가기)의 열혈 멤버 중 한 명인 최창근 독자는 '중국을 놀이터로 삼으신 '60대 소년' 같은 김명호 선생님의 강연이라 뻔하지 않은 재미가 있었다'며 '김명호 선생님의 강연을 듣다보면 중국 공산당 원로 천두슈의 근엄하고 지적인 이미지는 사라지고 인간 천두슈를 볼 수 있었다'고 하시네요. 또, 첫 번째 차이니즈 나이트 이후 두 번째 들었다는 진의령 독자는 '특정 인물 하나를 정해 깊이 있게 이야기를 들려줘서  재미있었다'며 '다음 강연이 있다면 또 오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차이니즈 나이트 뒷풀이에 참가한 사람들(ⓒ김학명), 최창근 독자(왼쪽), 진의령 독자(오른쪽)




평일 저녁, 한 시간 반에 이르는 강연 시간 내내 꽉 들어찬 강의실의 열기는 식을 줄을 몰랐습니다. 김명호 교수와 몇몇 분들은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겨 이 날 강연 내용이었던 천두슈와 중국 등 온갖 이야기를 하며 강연이 끝난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직업도, 나이도, 모두 다른 사람들이 김명호 교수의 『중국인 이야기』라는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모여 끊임없이 이야기를 이어나갔답니다! 혹시 이 날 강연에 참가 못하셔서 아쉬운 분이 있다면 다음에 있을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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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다반사2013.07.03 09:18


항주에서 북경까지 2500km의 지난 여정,

이번엔 심양에서 북경까지다!



조선 성종 때 관인 최부(崔溥, 1454~1504)의 중국 기행을 담은 표해록(漂海錄)을 읽고 감동을 받은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결국 그 청년은 3년 반에 걸친 강독과 2년에 걸쳐 2,400개의 역주를 달아 그 책을 번역하였는데요. (표해록(漂海錄)(한길사, 2004)) 그로부터 몇 년 후, 그는 배낭을 메고 직접 최부가 밟았던 루트대로 길을 떠나기로 마음먹습니다. 항주에서 북경까지 2,500km. 한 달여의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그가 표해록(漂海錄)만큼이나 재미있는 기행문을 책으로 엮게 되는데요. 바로 2012년 한길사에서 출간된 명대明代의 운하길을 걷다입니다. 명대明代의 운하길을 걷다 속 여정을 서인범 교수님과 따라 가는 <세계테마기행>이 EBS에서 방영되기도 했죠. 오늘은 그 주인공인 동국대 사학과 서인범 교수님을 만나보겠습니다.






며칠 전 서인범 교수님께서 또 다른 답사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동국대 연구실을 방문하였습니다. 대학원생인 두 명의 제자들과 무언가를 열심히 준비하고 계시던 교수님을 만나뵐 수 있었는데요. 7월 15일부터 8월 20일까지 답사를 떠난다는 교수님의 눈은 설렘으로 가득 찼습니다. 이번에는 심양에서 북경으로 넘어가는 사행(使行)의 길을 따라 걷는 여행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역사학회에 올해만 통사, 역관에 관련된 논문을 두 편이나 발표하셨다고 해요. 그만큼 이 분야는 서 교수님의 전문분야! 교수님은 역관들이 사행의 길을 가면서 벌어지는 일, 외교를 하면서 느낀 점 등을 한 달간 몸소 체험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이번 답사에 대한 이야기는 올해 말 한길사에서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될 예정이고요. 와~ 정말 기대됩니다!

 

교수님은 한 달간의 일정을 말씀하시며 심양을 넘어가면 난코스가 예상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유적지 보존이 잘 되지 않아 거의 다 없어지기도 했고 남아 있다 해도 표지판 정도로 작게 표시가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하네요. 게다가 지금은 한여름! 그곳은 넓은 옥수수 밭이 펼쳐져 있는데, 훌쩍 큰 옥수수들로 가려져 찾아가는데 많은 애로상황이 우려된다고 하셨습니다. 에고, 여러 고난이 펼쳐질지 모르지만 힘내세요, 서 교수님!





 

교수님께서 여러 가지 사료들을 보여주셨는데요. 조선왕조실록에 나온 역관, 사행의 길 부분을 하나하나 뽑아 정리해놓으셨더라고요. 일일이 붙여놓은 포스트잇을 보며 얼마나 연구에 몰두하셨는지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서인범 교수님은 한 달간의 답사로 통신사와 역관들이 외교를 하면서 느낀 점들을 몸소 체험하고, 한국과 중국의 매개체가 될 것들을 생각해보고 싶으시대요. 두 국가 간의 교류와 외교는 예나 지금이나 서로의 발전을 위해 중요한 것이니까요. 그리고 그 시절부터 있었던 역사왜곡 문제를 다시 되짚어 보는 시간이 될 것이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수백 년 전에도 있었던 역사왜곡. 세상은 돌고 돈다고 하는데 국가 간의 끊임없는 논쟁거리도 마찬가지네요. 역사적인 이야기도 그렇지만 답사로 인해 느낀 것들, 생각한 것들을 함께 책으로 엮는다니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무척 기대되고 설렙니다.





 

아직 두 번째 여행을 떠나지도 않으신 교수님께서 세 번째 여행도 계획하고 계셨는데요. 내년에는 부산을 시작으로 대마도, 오사카, 교토, 하코네에 이르는 조선통신사의 길을 따라 나선다고 합니다. 벌써부터 기대되는 세 번째 답사 이야기! 하지만 계획일랑 잠시 접어두고 이번 중국 답사 조심히 잘 다녀오세요! 자주 소식 전해주시고요~ 한길사는 언제나 교수님의 열정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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