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사 / 한길아트2013.08.16 14:18


파노프스키의 논문 10편으로 알아보는

'예술작품 속 형식에 어떤 의미가 숨겨져 있나?'



EBS <다큐 프라임>에서 예전에 흥미로운 다큐멘터리가 방영됐었습니다. 제목은 '동과 서'. 동서양의 사고방식 차이를 다룬 것으로 우리 일상 속의 행동 하나 하나를 사례로 들어 동양인과 서양인의 차이점을 설명했습니다. 전혀 의식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큰 차이점이 있다니 싶어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특히 기억에 남았던 것은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었습니다. 


동양에서는 그림 구도를 넓게 잡아 화가가 마치 하늘에서 보는 것 같은 그림을 그리는 반면, 서양에서는 화가가 장면을 바로 앞에서 보고 있는 것 같은 그림을 그린다고 합니다. 이는 대상 중심으로 생각하는 동양과 관찰자 중심으로 생각하는 서양의 차이점 때문입니다. 우리가 간과했던 예술작품에 숨겨져 있는 이런 형식적인 부분의 의미를 찾아보는 것은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또 다른 포인트가 아닐까 합니다. 이런 지적 유희를 돕기 위해 20세기를 대표하는 미술사학자 에르빈 파노프스키의 『시각예술의 의미』(한길사│2013)를 소개합니다. 



『20세기 중국미술사』(한길사2013) 726p,『명화로 읽는 성서』(한길아트2000) 78p




주 논문과 본론을 포함해 이 책에 실린 총 10편의 논문 중에는 개론적인 미술이론의 성격을 띄는 것도 있고 아주 특정한 관심영역을 다룬 것도 있습니다. 각 논문에 얹힌 시간의 역사 또한 고대에서 중세와 르네상스를 거쳐 1950년대 미국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물론  각 논문이 발표된 시기 또한 다릅니다. 다시 말해 각 논문은 작성 시점의 시대 상황, 파노프스키가 행한 미술사 연구의 이론적인 궤적과 문맥에 따라 읽는 것이 좋습니다.






논문들 사이에서 미술사적인 중요성의 경중을 가린다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모든 글에는 20세기 최고의 미술사학자로 불리는 파노프스키의 미술과 미술사에 대한 인본주의적 관점이 진중하게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파노프스키가 인간 세계의 구조를 밝히는 데 도입한 의미와 구조의 방법은 더욱 그 연구의 이론적 의의와 가치를 발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대표적인 논문

「도상학과 도상해석학」(1955)

이 논문은 파노프스키의 ‘방법’에 대한 가장 광범위한 문제제기를 일으킨 글입니다다.  ‘르네상스 미술에 관한 서문’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글에서 파노프스키의 ‘방법’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에 맞게 구상된 것입니다. 즉 ‘인간’에 대한 인본주의적 관점과, 그러한 인간 개념이 생산한 미술에 기반을 둡니다. 따라서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이 미술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규범적인 중심성에 의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양식사의 반영인 인체비례론사」(1921)

파노프스키가 객관적 비례와 기술적 비례를 구별하면서 인간 측정의 이론을 추구하는 데에는 비례의 문제가 시각의 변화와 연관된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자리합니다. 우리 몸의 움직임은 움직이는 부분과 다른 부분에 영향을 끼칩니다. 그런데 이집트인들은 이를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예술 의욕은 변화 가능한 것이 아닌 지속적인 것을 향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집트 미술에서 조각상은 인간 존재의 기능이 아닌 형식을 재생산했습니다. 그리고 미술가는 그러한 형식을 재구성할 수 있게 측정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예술 의욕은 객관적 비례를 자유롭게 변화하게 하고, 미술가와 감상자의 시각에 조각상이 더욱 조화롭게 재생산되도록 해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집트 미술과 달리 그리스 미술에 이르러서는 기술적 비례와 객관적 비례의 상응이 이루어지지 않게 된 것입니다.


「조르조 바사리의 『리브로』 첫 페이지」(1930)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입장에서 판단한 고딕 양식 연구’란 부제가 붙은 이 논문은  파노프스키가 미술사학이라는 학제와 르네상스 미술 용어들 사이의 결정적인 관계성을 세운 글로서 의의가 큽니다.「바사리」 텍스트는 상대적으로 파노프스키 초기의 연구물 가운데 하나로, 자신의 미술사학의 미래 발전을 위한 명제적 방향을 함의합니다. 즉 파노프스키의 미술사학은 방법과 규준에 대한 질문에 힘 있게 답하기 위해 재현의 차원과 심미적 차원에서의 해결을 지향했습니다. 두 가지 모두 스스로의 대상들을 위한 자기 명증을 상상합니다. 이는 해석을 위한 유효함 또는 해석에 대한 요구라는 제1의 문제를 숨깁니다. 그렇게 파노프스키는 우리에게 ‘의미’의 역사 전체에 어떻게 하나의 대상이 삽입되는지, 의미의 역사를 어떻게 하나의 대상을 통해 바라보아야 하는지 말해줍니다.



에르빈 파노프스키(1892~1968)는 독일 하노버에서 태어나 뮌헨 대학 ·베를린 대학 ·프라이부르크 대학 등에서 미술사를 배운 20세기 최고의 미술사학자입니다. 처음에는 양식(樣式) 연구에서 출발하였으나, 후에는 도상학에 대하여 도상해석학을 제창하고 그 방법론을 확립하였으며, 고대에서 근세에 걸치는 다양한 저작과 논문을 남긴 20세기 최고의 미술사학자입니다. 그림을 보고 느끼는대로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 파노프스키의 뛰어난 논문을 모아놓은 『시각예술의 의미』를 읽고 가끔은 그림을 '알고' 감상하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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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놀면 더 즐겁고 더 건강해져요!"

숲 안내자와 함께하는 한길책박물관 자연학교



헤이리 마을 한길책박물관에 방문해 보신 적이 있나요? 우리 꽃, 우리 나무가 살아 숨 쉬는 생태마을에 위치한 한길책박물관. 푸르름이 가득한 그곳에서 한 달에 한번 자연학교가 펼쳐집니다. 학교라고 하니 뭔가 딱딱한 수업을 떠올리신 분? 오해는 말아주세요~ 자연학교는 숲 안내자와 헤이리의 자연을 탐험하고 숲과의 놀이를 통해 식물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그리고 자연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답니다^^







자생 식물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해요


나뭇가지와 나뭇잎만 있어도 아이들은 뭐든지 해낼 수 있는 마법의 지팡이와 숲의 요정이 쓰는 예쁜 왕관을 만들어 냅니다. 아이들의 귀여운 상상력이 만들어낸 작품들. 어떠세요? 참 귀엽죠? 






그냥 보고 즐기는 자연도 물론 좋지만 정확한 정보와 지식으로 나만의 멋진 예술작품을 만들어도 보는 자연은 더 좋겠죠? 야외 활동을 통해 자연에 대해 이해하는 시간에는 그것들을 통해 또 다른 자연을 만들어내는 실내 활동을 합니다. 숲 속 여기저기를 탐험하다 발견한 달팽이 한 마리! 나뭇잎에 꼬물꼬물 달팽이를 올려서 이리 보고 저리 보는 아이의 눈에 호기심이 가득합니다. 






*이런 책 어떠세요?


■ 스틱 북

    -나뭇가지로 할 수 있는 재미있는 놀이 70가지-

    (조 스코필드, 피오나 댕크스 지음/서남희 옮김/소년한길 배움책/2013)

나뭇가지는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장난감이다. 평범한 나뭇가지라도 약간의 상상력만 더하면 위험천만한 숲을 탐험하는 용감한 모험가, 독특하고 아름다운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 자유로이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마법사까지 무엇이든 되어 신 나는 놀이를 즐길 수 있다. 지금 당장 밖으로 뛰어나가 나만의 특별한 나뭇가지를 찾아보자. 내 손에 딱 맞는 나뭇가지를 집어 드는 순간 상상도 못했던 모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책 소개 바로가기





자연의 소중함도 느끼고 재미있게 뛰어노는 시간


아이들은 식물을 갖고 놀며 어느새 식물뿐 아니라 자연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작은 새들과 마주쳤을 때 인사도 건네는 여유를 찾았습니다. 숲 안을 거닐 때 수많은 생물과의 접촉으로 생명의 소중함은 물론이고 아름다움을 경험함으로서 미적 감각의 발달도 가져옵니다. 나무의 거침이나 꽃의 부드러움을 직접 경험하므로 인지 발달에 도움이 되는 건 당연하겠죠? 장난감은 방에 쌓여감에 따라 아이들의 공간이 좁아지게 만들죠. 금방 싫증이 나 어디에 두었는지 잊어버리게 되고, 자연학교에서는 숲이라는 열린 공간에서 마음껏 뛰어놀며 자연과 상호 작용하는 관계를 형성하게 될 거예요~





자신이 사는 공간에서 쉽게 자연을 느끼고 따뜻한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을 느끼며 정서적 안정감, 그리고 진정한 즐거움을 배울 수 있는 시간입니다. 보고 만지고 느끼고, 모든 감각 기관을 활용에 마음에 담는 자연학교. 행복감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한길책박물관 자연학교로 놀러오세요~ 



*한길책박물관 여름특별프로그램

<풍선마녀>(박은미, 소년한길, 2013), <선생님 맞나요?>(배다인, 소년한길, 2013) 등 동화책 저자와 함께하는 신 나는 체험, 내 손으로 만들어보는 기기묘묘한 북 리사이클링 아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7월 6일(토)부터 8월 24일(토)까지 매주 열립니다. 얼른 참여하세요! 신나는 토요일, 재미있는 토요일 보장합니다!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5월 18일 자연학교]"나뭇잎이 하는 일" 활동 모습 

▶[4월 20일 자연학교]"꽃이야기" 활동 모습 

▶[3월 30일 자연학교]"얘들아, 봄맞이 가자!" 활동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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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 / 한길아트2012.08.16 10:10


격정적인 미라보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전, 루이 16세는 재정 궁핍으로 왕정 파산 상태가 경고되자 오랫동안 열지 않았던 삼부회의 소집에 나선다.


이 시기, 오노레 미라보는 단연 정세를 끌고 가는 괴물에 가까운 주역이었다. 귀족 출신인 그가 평민 자격의 의원 후보로 나서서 선출되었을 때 삼부회의의 미래는 파란이 예상되지 않을 수 없었다. 미라보의 격정적 연설과 정치력은 귀족, 성직자 그리고 제3신분으로 불린 부르주아 또는 평민들 사이의 계급적 긴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내다보였기 때문이었다. 루이 16세도 물론 안심하고 있을 처지는 아니었다.


이러한 미라보를 유심히 주목하면서 정치를 배워나간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훗날 프랑스 혁명의 반동을 자초한 로베스피에르였다. 젊고, 뛰어난 학식과 능력을 가진 그는 조만간 프랑스 혁명의 스타가 될 과정을 밟고 있었고, 혁명 정신에 충실한 정치는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로베스피에르는 미라보가 역설했던 왕정의 개혁보다는 단호한 결별이 답이라는 생각을 속으로 굳혀가고 있었다. 그 결별이 어떤 희생을 치르게 되건 말이다. 프랑스 혁명의 유혈사를 써내려간 길로틴은 그의 마음에 이미 세워져 있었던 셈이다.



루이 16세, 로베스피에르 그리고 제3신분


프랑스 혁명 전야, 지식인을 비롯한 대중의 인기를 모은 루소의 사회 계약론과 평등 사상은 왕과 귀족, 성직자들이 지배하는 기존 질서에 일정한 균열을 내고 있었다. 파리 민중들도 자신들의 빈곤과 억압된 처지를 분노하고 있었다. 구체제인 '앙시앙 레짐(ancien regime)'은 가쁘게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루이 16세는 베르사유 궁전에서 자신의 금고가 비어가는 것에만 신경을 썼고, 숲에서 사냥하는 일에 몰두했다. 재무장관 자크 네케르는 귀족과 성직자에게도 재정 부담을 맡도록 해야 하는 어려운 정치적 과제를 안게 되고, 이를 위해서 제3신분의 협력을 얻는 줄타기를 시작한다.


프랑스는 1776년 미국 독립 전쟁의 막대한 지원을 계기로 국가 재정이 고갈되었고, 국제적으로는 영국과의 불화로 인해 운신의 폭이 좁았다. 루이 16세는 절대 왕조 체제를 이룬 루이 14세와는 달리, 자기를 괴롭히는 자들이 없으면 그저 좋은 성품의 군주로 인생을 끝냈을 별반 야망이 없는 왕이었다.


그러나 성서와 토지를 기반으로 프랑스 사회를 지배하는 성직자 계급과 귀족들 그리고 신흥 부르주아 계급과 정치적 합의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가난한 왕"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에 새로운 정치적 구도를 만들어가고자 한다. 봉건 체제에 기초를 둔 절대 왕정 체제의 개혁을 시도하려 한 것이다.


삼부회의는 그러한 구상의 소산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 삼부회의가 지금까지 정치적 발언권이 별반 없었던 제3신분에게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할 기회를 주었고, 성직자, 귀족들은 이 때문에 자신들의 기득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점으로 인해 반격의 음모를 꾸미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바야흐로 프랑스 정치는 파란만장의 드라마로 진입하게 되었다. 절대 왕정이 자신을 구하기 위해 벌였던 일이 그 자신을 무덤에 파묻는 역설적 현실로 귀결되어 갔던 것이다. "혁명의 판도라 상자"는 그렇게 열렸다.



역사 소설, 정치 소설


사토 겐이치의 <소설 프랑스 혁명>(김석희 옮김, 한길사 펴냄)은 이러한 역사를 소설적 상상력과 역사적 사실을 서로 결합시켜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미라보, 로베스피에르 그리고 혁명군을 장악하고 있던 라파예트, 네케르 등의 인물들을 프랑스 혁명의 무대 위에 올려놓고 그 역사를 어렵지 않게 이해하도록 한다.


삼부회의가 소집되었을 때 각 계급의 정치적 영향력을 정리해낼 투표의 방식까지 정밀하게 소개한 그의 소설은 역사의 정치 소설화라는 측면에서도 매우 흥미롭다. 애초에 재정 위기 타파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던 삼부회의였기에 돈만 빼면 되었지 제3신분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원하지 않았던 지배 계급의 배신이 시작되면서 루이 16세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가졌던 파리 민중들은 서서히 들고 일어난다.


바스티유 감옥이 깨져나가는 것은 감옥에 갇힌 죄수들을 석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곳에 주둔하고 있던 군대의 무기를 탈취해 시민군 무장을 하기 위함이었다. 사토는 그런 장면도 생생하게 그려내면서 역사가 어떤 정밀한 계획이나 시나리오가 아니라, 순간의 우연과 판단의 차이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막대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솜씨는 무엇보다도 방대한 프랑스 혁명사에 대한 섭렵과, 그의 문학적 재능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인, 또는 아시아인이 유럽의 역사를 문학화하는 작업에 도전한다는 열정과 의지가 작동했다고 여겨진다.



일본인이 쓰는 유럽 혁명사 소설이란?


국내 출간 기념 대담의 자리에서 그는, 프랑스 혁명이 2단 로켓처럼 제1국면과 제2국면이라는 상이한 과정을 거쳤다면서 결국 현실에서 실패한 혁명이 되어버린 이 역사를 오늘에 반추하면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지 자신도 계속 탐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제1국면은 삼부회의로 인한 절대 왕정 체제의 타협 국면, 제2국면은 그 타협이 더는 변화하는 현실을 해결하지 못하면서 새로운 폭발력을 가진 쪽으로 질주한 상황을 말한다. 사토는 이런 프랑스 혁명사의 전개 과정에 대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사실 우리로서도 궁금했던 것이, 메이지 유신과 관련된 역사와 소설이 지배하는 일본 사회에서 유럽 혁명사를 가지고 소설을 쓴다는 일이 우선 가당키나 한가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작업에 시동을 건 사토의 모습은 문학이 이런 차원에서 "다른 형태의 세계어"가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즉, 유럽의 역사도 인류의 역사 속에서 공유되는 순간, 그 역사를 바라보고 생각하는 자의 언어, 역사, 세계, 자산이 된다는 뜻이다.



<소설 프랑스 혁명>의 작가 사토 겐이치. ⓒ프레시안(최형락)



전체 12권으로 구상하는 사토의 작품은 이제 국내 번역본으로 4권까지 나왔다. 원래 권투를 했다는 특이한 경력을 가진 작가라 그런지 소설 전개가 흡인력 있고 속도가 빠른 까닭도 다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소설의 전반부는 프랑스 혁명을 주도해 나간 주요 인물들이 그려져 있는데, 이와 함께 우리는 베르사유와 파리의 대립, 보통의 인민들, 특히 여성들의 역할이 조명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것은 프랑스 혁명의 정작의 주인공들이 누구인지 밝혀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사실, 삼부회의에서 귀족과 성직자 계급의 결탁으로 제3신분의 정치적 위상이 흔들리는 위기에서 이들을 구한 것은 인민들의 봉기였다.


앞으로 계속 나올 후속편을 봐야 판단할 수 있겠지만, 혁명 초기 부르주아의 이해와 인민들의 이해가 점차 충돌해나갈 때 어떤 방식의 드라마 전개와 서술이 있게 될 것인지 주목된다. 부르주아의 정치적 이해관계는 보통의 인민들이 줄기차게 요구한 경제적 요구와 언젠가는 모순의 상태에 돌입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프랑스 혁명의 역사는 이후 1848년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 전반에 걸친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대치 전선이 펼쳐지는 뿌리가 된다.


사토의 <소설 프랑스 혁명>은 프랑스 혁명사의 세계적 권위인 조르주 르페브르의 <프랑스 혁명사 연구>나, 아나키스트인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의 <프랑스 대혁명사>가 번역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에게 친절한 안내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의 작품이 역사적 사실에 명확히 근거를 두고 전개되고 있다는 것은 르페브르의 책을 읽어보면 확인된다.


르페브르는 유럽 전체의 역사와 프랑스 혁명의 관련을 설명하면서도, 프랑스 혁명의 내적 전개 과정을 세밀하게 분석한다. 크로포트킨의 경우에는, 부르주아의 정치적 이해와 프롤레타리아 또는 인민의 경제적 목표가 서로 상치하면서 프랑스 혁명이 어떤 진화 과정을 거치게 되는지를 일깨워주고 있다.


오늘날 진보의 가치와 실천의 문제가 일상의 수준에서 정리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프랑스 혁명에 대해 읽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게 될까?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1848년의 프랑스 혁명이 1968년 유럽의 신좌파 혁명으로 그 역사적 평가를 완료했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결국 자유주의 부르주아 체제가 더는 미래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상황은 프랑스 혁명 이후 세계적 부르주와 체제의 균열이다. 바로 그런 상황에서, 혁명에 헌신하고, 혁명을 배반하고 혁명을 망각해 버린 그 우여곡절의 과정에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어떤 것일까? 역사는 도대체 어떤 과정과 단계를 거치면서 진화하게 되는 것일까?


<소설 프랑스 혁명>은 그런 와중에 '인간'을 놓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도록 해준다. 결국, 역사는 인간이 만들어 가는 것이므로.



"아시아의 시대를 대비하려면 유럽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지난 7월 9일 경기도 파주 헤이리에 위치한 북 카페 '포레스타'에서 김민웅 성공회대학교 교수가 <소설 프랑스 혁명>의 작가 사토 겐이치를 만났다. '프레시안 books'는 두 사람이 나눈 대화의 주요 내용을 싣는다. 한 시간에 걸쳐 진행된 이날 대담의 통역은 일본 문학 번역가 김난주 씨가 맡았다.



ⓒ프레시안(최형락)



김민웅 프랑스 혁명은 근대화 과정의 매우 중요한 시발점이지만, 한국에선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연구가 이뤄지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사토 겐이치 씨의 <소설 프랑스 혁명>이 가지는 의미는 큽니다. 이 장대한 <소설 프랑스 혁명>의 작가 사토 씨가 이번에 한국 독자와의 만남을 위해 방문하셨는데,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사토 겐이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프랑스 혁명사를 소설로 쓰고 있습니다. 아시아인이 유럽 혁명에 대해 쓴다면 프랑스 혁명에 대해 써야만 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김민웅 일본 사람이 일본이 아닌 지역의 역사에 대해 쓰는 경우가 많습니까? 한국 같은 경우는 주로 한국 역사에 대해 저술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사토 겐이치 일본에서도 유럽 역사를 소설화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김민웅 그렇다면 <소설 프랑스 혁명>을 쓰기까지 많은 용기와 노력이 필요했을 텐데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습니까?


사토 겐이치 일본에서도 유럽 역사를 다룬 소설이 없었던 건 아닌데, 지속적으로 계속 해나간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제가 중학생 시절까진 영화 하면 유럽 영화나 미국 영화가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소설에서는 유럽이나 미국을 다루면 별 반응이 없던 게 이상했습니다. 그게 프랑스 혁명을 소설로 쓴 한 이유입니다. 두 번째 이유로는 저희 세대에 이르러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를 둘러싼 환경이 많이 달라진 걸 꼽을 수 있겠습니다.


김민웅 아시아 사람으로서 유럽 역사를 쓰는 것도 흥미롭지만, 왜 하필 프랑스 혁명이었을까요. 프랑스 혁명은 공화정을 탄생시켰는데, 사실 일본은 영국처럼 입헌 군주제에 가까운 천황제를 유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차이가 궁금합니다.


사토 겐이치 어려운 질문입니다. (웃음) 프랑스뿐 아니라 그 옆 나라인 영국이나 독일에 대해서도 같이 알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에도 천황제가 남아있기 때문에, 영국의 비슷한 입헌 군주제에는 큰 흥미가 가질 않았습니다. 영국에 대해 써야 할 의미를 별로 찾지 못했어요.


김민웅 프랑스 혁명을 소설로 쓰기 위해서 어떤 작업이 필요했나요?


사토 겐이치 일단 자료가 될 책을 모았습니다. 주인공과 대략적인 줄거리를 정한 상태에서 취재차 프랑스에 다녀왔고요. 지금도 계속 <소설 프랑스 혁명>을 연재 형식으로 쓰고 있습니다. 아시아 사람들은 유럽을 공부할 때, 유럽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 남자는 핸섬하고 프랑스 여자는 미인이라 생각하죠. 돈도 훨씬 많은 것 같고요. (웃음)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프랑스 혁명이 일어날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요. 프랑스든 미국에든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살고 있다는 사고가 기본적으로 있지 않으면, 소설을 쓸 수 없습니다. 그런 사고가 불가능하다면, 몸으로 쓴 소설이 아니라 머리에서 꾸며낸 소설밖에 태어날 수 없겠지요.


김민웅 사실 이 소설의 장르는 팩트와 픽션이 결합된 '팩션'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팩션을 구성해나갈 때 사토 씨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무엇이었을까요.


사토 겐이치 역사 소설을 쓸 때 물론 팩트는 중요하지만, 팩트 안에 혹은 팩트 이면에 있는 것, 다시 말하자면 진실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것을 역사 속에서 끄집어내려면 논픽션보다는 픽션이 좀더 쉬운 선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김민웅 일본에는 메이지유신이라는 정치적 사건이 있지요. 지금까지 메이지유신을 둘러싸고 굉장히 많은 소설과 드라마가 나왔습니다. 일본 작가에게 메이지유신이 국민적 상식이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 사토 씨께서는 메이지유신의 관점으로 프랑스 혁명을 바라보진 않았을까 궁금합니다.


사토 겐이치 네, 그렇죠. 메이지유신은 프랑스 혁명과 상통하는 면이 많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선 혁명까진 이르지 못했죠. 개혁이 왕정으로 가느냐, 공화정으로 가느냐에서 많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김민웅 프랑스 혁명을 이해하려면 베르사유와 파리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베르사유는 왕정 체제, 앙시앙 레짐의 근거지였고 파리는 민중 혁명의 중심지였죠. 나라의 중심이 베르사유에서 파리로 옮겨간 것이 프랑스 혁명의 매우 중요한 발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때 프랑스는 미국 독립 혁명을 돕다가 재정이 파탄에 이르렀고, 루이 16세는 재정 악화를 메우기 위해 세금을 또다시 부가해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프랑스의 재무장관이었던 자크 네케르라는 인물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지죠.


사토 겐이치 루이 16세는 안주하는 왕이 아니라 여러 가지를 개혁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왕이었습니다. 나쁜 사람은 아니었죠. (웃음) 그러나 개혁을 하고 싶어도 그런 정책을 맡길 사람이 없었습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어중간한 개혁가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한편, 네케르는 스위스의 은행가였는데, 수완가이고 비즈니스맨이었습니다. 루이 16세가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발탁했던 사람입니다.


김민웅 소설 속에서 루이 16세는 재미있는 특징을 가진 왕으로 묘사됩니다. 사실 베르사유 궁전은 그의 할아버지였던 루이 14세의 지휘 아래 지어졌는데요. 하지만 루이 16세는 할아버지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루이 16세의 스타일이 어떤지 잠깐 들려주시지요. 그걸 이해해야 네케르와의 관계도 더 잘 이해가 갈 것 같습니다.


사토 겐이치 루이 16세는 기본적으로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웃음) 성실했고요. 루이 14세는 돈을 엄청나게 썼고 애인을 엄청 많이 만들었고 자식들도 많이 보았죠. 베르사유 궁전에서도 사치스런 낭비를 계속했기 때문에 결국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봉착했습니다. 아들이었던 루이 15세는 아버지의 그런 면을 무척 싫어했다고 하고요.


루이 16세 역시 할아버지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마음을 이어받았습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우유부단했고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그게 그의 비극이었고, 혁명의 열기는 걷잡을 수 없게 됐죠.


김민웅 네케르가 삼부회를 소집할 때, 회의를 구성하는 귀족과 성직자와 평민 간의 세력 다툼이 심각한 문제가 되지요. 이때 미라보의 역할이 부각됩니다. 사토 씨께선 특히 미라보의 역할을 부각시키셨는데, 미라보의 어떤 점이 그렇게 매력적이었을까요?


사토 겐이치 루이 16세는 왕으로서 성실함을 갖췄고, 네케르에게는 비즈니스맨으로서의 수완이 있었죠. 대신 뛰어난 정치가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미라보가 등장해 정치력을 발휘하게 된 것입니다.


김민웅 미라보의 정치력을 좀 더 설명해 주신다면….


사토 겐이치 미라보는 젊은 시절부터 방탕했습니다. 아버지조차 그를 두고 내 자식이 아니라고 했을 정도죠. (웃음) 감옥살이를 했고, 한때는 유부녀와 염문을 일으키는 바람에 그 남편의 총에 맞을 뻔하기도 했습니다. 상당히 파렴치한 인생을 보낸 사람이었습니다. 프랑스 귀족의 부끄러움이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혁명이 벌어지니까 미라보의 풍부한 인생 경험이 사람들을 움직이는 힘이 되었습니다. 그가 아니면 초기 프랑스 혁명이 이뤄지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미라보 자신은 귀족이었지만, 혁명의 힘을 귀족에게 의존하지 않고 평민에게서 찾음으로써 혁명을 진행시켰습니다.


김민웅 <소설 프랑스 혁명> 4권까지에서 가장 중요한 주인공은 미라보이지요. 그 외에 로베스피에르와 라파예트가 등장하면서 프랑스 역사가 바뀌게 됩니다. 특히 귀족 출신 라파예트는 미라보와 미묘한 경쟁 관계를 형성합니다. 그는 미국 독립 혁명과 프랑스 독립 혁명에서 각각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특별한 인물이죠.


사토 겐이치 라파예트는 조지 워싱턴의 친구였고 미국 독립 전쟁에 참전한 사람입니다. 신대륙인 미국의 장점, 즉 훌륭한 퍼포먼스를 겸비하였기 때문에 프랑스 혁명을 리드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권 선언 역시 라파예트가 제안한 것이었죠.



ⓒ프레시안(최형락)



김민웅 이제 로베스피에르가 등장할 차례입니다. 처음엔 미라보와 함께 혁명을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정치적 입장이 달라지지요.


사토 겐이치 로베스피에르는 성실한 노력가이자 세상을 좋게 만들어나가려는 이상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4권에서 그려지다시피, 혁명 초기 단계에는 아무런 힘이 없었습니다. 세상의 부정에 대해 분노하고 있었지만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하고 해결해야 하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고요. 그런 상태의 로베스피에르가 노련한 정치가인 미라보에게서 정치력을 배워가는 과정을 4권에 담았습니다.


김민웅 1789년에서 1791년까지가 프랑스 혁명의 1단계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이때는 입헌 군주제를 유지하는 쪽으로 혁명이 진행되었죠. 이 부분에서 미라보와 로베스피에르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미라보에게는 개혁 정치와 더불어 왕정을 유지하는 게 프랑스를 안전하게 유지하는 길이었고, 로베스피에르는 끝까지 밀어붙이고 싶어 했죠.


사토 겐이치 미라보는 루이 16세를 이용하여 효과적인 정치 개혁을 꾀했지만, 루이 16세보다도 먼저 죽는 바람에 꿈을 이루질 못했습니다.


김민웅 왕이 어느 쪽에 서느냐에 따라 혁명의 진로가 달라지는 시기였지요. 미라보는 루이 16세를 이용하며 삼부회에서 평민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도록 하길 원했습니다. 하지만 로베스피에르는 루이 16세를 믿지 못했어요. 중간 중간 루이 16세가 음모를 꾸미거나 귀족과 손을 잡으려는 시도를 들켰거든요. 그래서 로베스피에르는 왕과 귀족에 대한 불신이 쌓여갔고, 결국 반혁명 세력을 철저히 차단하려는 단호한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조금 다른 얘기로 넘어가자면, 프랑스 혁명에서 여성들의 역할도 아주 흥미로워요.


사토 겐이치 앙시앙 레짐은 여성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로 대표된 궁정의 모습을 보세요. 지금으로 말하자면 쇼핑 중독의 시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웃음) 그런 의미에선 여성들이 딱히 손해 보는 입장은 아니었지만, 사실상 그녀들의 행복은 '주어진' 행복이었습니다. 요컨대 마리 앙투아네트는 루이 16세가 남편이기 때문에 그 정도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입장에 그쳤다는 거죠.


1789년 10월 파리의 평민 여성들이 베르사유 궁전까지 행진합니다. 빵을 달라고 외치면서, 왕과 직접 얘기하겠다고 주장하죠. 그러면서 대체 왜 왕이 베르사유에 있는가, 국민들의 고생을 알아야 한다면서 파리로 데리고 옵니다.


김민웅 여성들이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와 귀족들을 데리고 파리로 돌아오는 광경을 보면, 루이 16세는 사실상 여성들의 인질입니다. (웃음)


사토 겐이치 여성들이 부르길, 왕을 왕이라 하지 않고 빵가게 주인이라고 부릅니다. (웃음) 자기들의 식량 문제를 해결할 사람이라는 거지요.


김민웅 마지막으로 한국 독자들이 <소설 프랑스 혁명>을 어떻게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나요?


사토 겐이치 우선 소설로서, 얘기로서 즐길 수 있길 바랍니다. 두 번째로는 지금 자기가 놓여 있는 국제 관계와 사회 환경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아시아인으로서 유럽의 역사를 다루는 소설을 쓰고 있는데, 저는 앞으로 아시아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시아의 시대를 만들어가기 위해 유럽의 역사를 디딤돌로 삼고 싶습니다. 저의 그런 소망에 한국인 독자들도 참여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리=김용언 기자)



이 글은 프레시안에 실린 <김민웅의 '리브로스 비바'> 기사 내용을 허락 하에 게재한 것임을 밝힙니다.

기사 원문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20803163016&section=05



『소설 프랑스혁명』 사토 겐이치 지음│김석희 옮김


제1권 혁명의 영웅

제2권 바스티유 함락

제3권 성자들의 전쟁

제4권 길 잃은 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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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 북경 답사(8/15~18)를 앞두고, ‘중국인 이야기’ 독후감 수상자들과 저자 김명호 선생님이 토요일(11일) 오후 헤이리 북하우스에서 만남을 가졌습니다. 여행이 좀더 알차고 재미있기 위해서는 서로 얼굴을 익히는 것이 필요하다며 선생님께서 주선하신 자리였지요(여행 당일 공항에서 처음 보는 사람처럼 만날 때의 어색함이란…^^). 선생님은 서먹함이 좀 사라져야 특유의 입담이 발휘되며 이야기의 봇물이 터지는 법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는 북경 여행을 이미 시작한 셈입니다.





모이신 분들은 이번에 『중국인 이야기 1』을 열심히 읽고, 수백 통의 응모작 가운데 뽑힌 우등생들! 나름대로 중국에 대한 기본 지식도 있고 관심도 많았으며, 책을 읽은 뒤의 질문도 많았지요. 귀를 쫑긋 세운 채 기꺼이 들으려는 사람들이 있을 때, 이야기꾼은 흥이 나는 법. 선생님은 신이 나셨지요. 장제스, 두웨셩, 린뱌오, 후스와 그의 부인 장둥슈, 런비스…… 책에 다 소개하지 못한 뒷얘기를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장제스의 탁월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는데, 위대한 인물들이 대체로 그러하지만, 선생님 얘기로 “장제스는 그야말로 항상 발전했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화류계의 여자만 알고 증권 중개업 일을 하던 그가 중국을 호령하는 지도자로 커갔으니 말입니다. 아마 평생 일기를 썼던 것이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주일에는 일주일치의 반성을, 한 달의 마지막에는 그달치의 반성을 어김없이 했다는데, 아직까지도 그 일기는 다 공개되지 않았다 합니다.







이번 북경 답사는 798예술구, 이화원, 원명원, 천안문, 자금성, 스차하이 등 여행사와 협의하여 짠 공식 탐방 장소가 있지만, 현지에서 그 일정이 어떻게 달라질지는 알 수 없습니다. 여행의 맛이란 정해진 일정을 벗어나는 데서 오는 짜릿함을 빼놓을 수 없으니까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중국통통통’ 김명호 선생님과 함께한다면 즐겁고 유쾌해진다는 사실이죠.^^ 평이한 지식 너머의 실제 중국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배움의 즐거움. 유서 깊은 북경의 골목골목마다 스며있는 온갖 이야기들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 얼마 전 황푸군관학교와 중산대학 등 광저우의 혁명유적지를 돌아볼 때의 경험에 비춰보면 분명 그러하다는 것이죠. 이번에도 특별히 선생님이 지정해준 저녁 식사 장소인 ‘열선’(悅仙)이나 ‘공을기’(孔乙 己) 같은 식당은 아는 사람만 안다는, 중국의 문화인들이 즐겨 찾는 작지만 전통이 있는 곳이라는군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으니 중국 여행의 즐거움은 음식에서도 기꺼이 체험해볼 일입니다. 참여자인 OBS의 K 피디님은 벌써 김명호 선생님 옆에 딱 붙어 담배도 같이 피는 사이가 된 걸 보니, 일과 후 북경의 밤거리나 야시장에 따라나가 서민들의 삶을 살펴보는 ‘진짜 구경’을 할 사람으로 보이는군요.^^ 


아무튼 『중국인 이야기 2』를 기다리는 독자들의 문의가 많은데, 답사 다녀오시면 2권 집필에 전념하시도록 해야겠습니다.



- 북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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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 / 한길아트2012.05.29 11:26


스웨덴의 칼 구스타프 16세 국왕님께 드리는 편지


안녕하세요, 국왕님.


저는 이번에 국왕님께서 29일부터 머물게 되실 대한민국에서 책을 만들고 있는 편집자예요. 정말 반갑습니다. 저는 지난 달『스웨덴의 쿵스레덴을 걷다- ‘왕의 길’에서 띄우는 대자연의 메시지』라는 책을 담당했습니다. 아마 국왕님께서도 쿵스레덴을 걸어보셨을 테지요? 유럽에서는 대자연의 경이로운 풍광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트레일 코스로 에스파냐 산티아고 길만큼 이름난 곳이라고 하더라고요. 이 책은 도보여행가로 활발하게 활동해온 김효선 선생님이 지난해 여름 쿵스레덴을 걸으며 느꼈던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인생 제3막을 맞이해 이제야 자신이 주인공이 인생을 꾸려나가고자 하는 중년 여성이 대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길을 걸으며 온전한 자신과 마주한 보석 같은 시간을 기록한 24박 25일의 야생일기지요.

 

 

 

 

 

 

제가 듣기로 쿵스레덴은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스웨덴관광협회 총재 로우이스 아멘으로부터 시작됐다고 하던데, 맞나요?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사이에 놓인 기차 철로를 보고 영감을 얻은 로우이스 아멘으로 인해 스웨덴관광협회가 스웨덴 북부 아비스코에서 크비크요크 사이의 가장 아름다운 지역에 철도노선처럼 트레일 코스를 만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지나는 길의

습지나 덤불숲과 돌길 위에는 두꺼운 자작나무 널빤지를 철길처럼 깔아놓고 중간중간 오두막을 지어 여행자를 위한 숙소도 마련하고요. 트레일 코스 사이사이에 있는 수많은 호수를 건널 수 있는 선착장과 배도 빠뜨리면 안 되겠네요. 이 길이 점점 확장돼 남쪽의 헤마반까지 이어지는 430km에 이르는 오늘날의 쿵스레덴이 된 것이겠죠.

 

아, 그런데 혹시 왜 이 길의 이름이 쿵스(Kungs) 레덴(leden), ‘왕의 길’인지 아시나요? 김효선 선생님께서도 이 이름이 붙은 배경에 대해서는 잘 모르시더라고요. 다만 왕의 기분으로 길을 걸으라는 뜻이 아닐지 추측하셨어요.

 

 

 

 


 

국왕님도 쿵스레덴의 자작나무 널빤지 길을 좋아하시나요? 저자인 김효선 선생님은 20kg 배낭을 메고 하루 평균 7~8시간씩 쿵스레덴을 걸으셨대요. 자작나무 널빤지 길과 쿵스레덴 코스를 알려주는 빨간 X표의 이정표가 어울려 철길 같은 분위기를 낸다며 특히 좋아하시더라고요. 또 새들의 낙원인 코토쇼카 산 아래 호수와 알리스 계곡과 알리스 강이 굽굽이 흐르다 내려와 앉아 쉬었다 가는 삼각주가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곳에 위치한 알레스야우레 오두막, 쿵스레덴의 최고의 뷰 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셰크티야 계곡은 하루 종일 풍경만 바라보고 있어도 좋을 만큼 멋진 곳이었어요. 국왕님도 사우나를 즐기시나요? 김효선 선생님은 테르나셰스투간 오두막에서 사우나를 즐기고 난생 처음 발가벗고 호수에서 수영을 하셨대요. 스톡홀름에서 우연히 만난 스웨덴 친구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스웨덴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러운 경험이라고 했다는데, 정말 부럽네요.


 

 

 

한국사회에서 최근 복지사회가 뜨거운 정치적 쟁점이라는 얘기를 국왕님도 이미 들어서 알고 계시다는 인터뷰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스웨덴 복지모델이 가능한 것은 48%에 달하는 고세율에 대한 국민적 합의 때문이라면서요? 제 주위에도 사회적 안전망이 확충되고 돈벌이가 어려운 노년에 경제적으로 혜택을 받을 수만 있다면 고세율에 찬성한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이번 국왕님의 방한을 계기로 복지뿐 아니라 양성평등이나 교육,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발전적인 논의가 많아졌으면 좋겠네요. 개인적으로는 국왕님과 실비아 왕비님의 방한을 기념해 열리는 스웨덴 영화제 Swedish Film Festival (2012.5.30~6.5)가 무척 기대돼요. 「렛미인」의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을 좋아하는데, 이번 영화제를 통해 로맨스부터 코미디까지 다양한 장르의 스웨덴 영화를 그것도 공짜로 볼 수 있어 즐거워요. 영화를 통해 만나게 될 스웨덴의 감성이 무척 궁금하네요. 


지금까지 제가 편집한 책이 많지는 않지만, 책 한 권 한 권을 편집할 때마다 그 책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연결고리가 생기는 일이 신기하고 재밌어요. 아마도『스웨덴의 쿵스레덴을 걷다』라는 책을 만나지 못했다면, 제가 이렇게 국왕님께 편지 쓸 일도 없었겠지요. 앞으로도 국왕님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무척 반가울 것 같아요. 국왕님, 늘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2012년 5월 하순

(주)도서출판 한길사 편집부 김지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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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2012.05.14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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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2명/ 마침 <1984>를 읽는 중인데 이번 강연 꼭 참석하고 싶습니다.

     김ㅇㅇ

     010-1234-5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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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2012.04.17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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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2012.03.21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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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2012.03.05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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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한길그레이트북스2011.12.22 11:10




르네 지라르의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은 오늘날 우리의 욕망 체계를 소설 주인공의 욕망 체계에서 발견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특성을 제시한 탁월한 작품이다. 

지라르의 관심은 소설 속의 인물들이 어떻게 욕망하는가 하는 인간 욕망의 구조를 밝혀내는 데에서 출발한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부터 스탕달의 『적과 흑』,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영원한 남편」을 비롯한 여러 소설들에서 그는 이 소설 속의 인물들이 대상을 직접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중개자의 암시를 통해서 욕망한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우리는 어떤 대상을 자발적으로 욕망한다고 믿고 있지만, 그것은 ‘낭만적 거짓’에 불과하다. 사실은 우리가 욕망의 주체와 대상 그리고 중개자를 세 꼭지점으로 하는 삼각형의 욕망구조에 편입되어 있으며, 이것이 소설의 주인공들을 통해 드러나는 ‘소설적 진실’이다. 중개자는 『돈키호테』의 경우처럼 전설적인 가공의 인물이어서 주인공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을 수도 있고, 『적과 흑』 또는 「영원한 남편」의 경우처럼 자기와 처지가 비슷한 아주 가까운 사이일 수도 있다. 

지라르에 따르면 삼각형의 욕망이란 거의 우리 모두가 앓고 있는 형이상학적 질환에 속한다. 이 병이 무서운 이유는 암처럼 자각증세가 없기 때문이다. 정확한 진단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형이상학적 질환에서 치유될 수 있는 희망은 없어 보인다. 지라르가 낭만적 거짓을 폭로하고 삼각형의 욕망이라는 소설적 진실을 드러내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낭만적 비평은 언제나 본질적인 것을 거부한다

소설의 결말은 모두가 전향이다. 이것은 아무도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갈 수 있을까? 이러한 전향들이 모두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결말들은 애초부터 기본적인 두 범주로 구분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사람들과 합류하는 주인공을 보여주는 결말과, 고독을 쟁취하는 ‘군집성’ 주인공을 보여주는 결말이라는 두 범주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들은 첫번째 범주에 속하고, 스탕달의 소설들은 두번째 범주에 속한다. 라스콜리니코프는 고독을 거부하고 타인들을 포용하는 반면, 쥘리앵 소렐은 타인들을 거부하고 고독을 선택한다.

이 대립은 극복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만일 전향이 우리가 찾아낸 의미를 지닌다면, 또한 그것이 삼각형의 욕망에 종지부를 찍는다면, 그 결과는 절대고독이라는 용어로도 또 세계로의 회귀라는 용어로도 표현될 수 없다. 형이상학적 욕망은 타인과의 어떤 관계 그리고 자신과의 어떤 관계를 맺게 만든다. 진정한 전향은 타인과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새로운 관계를 발생시킨다. 고독과 군집성, 참여와 비참여 사이의 기계적인 대립을 제시하는 것은 낭만적 사고이다. 

스탕달과 도스토예프스키의 결말을 좀더 자세히 관찰하면 언제나 진정한 전향의 두 가지 양상이 나타나지만, 그 두 가지가 똑같이 전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스탕달은 주관적인 면을 더 강조하는 반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상호주관적인 면을 더 강조한다. 소홀히 다루어진 면도 전혀 사라진 것이 아니다. 쥘리앵은 고독을 획득하지만 고립을 이겨낸다. 그가 레날 부인과 누렸던 행복은 타인들과 맺은 관계에서 일어난 근본적인 변화의 훌륭한 표현이다. 재판이 시작될 무렵 주인공이 사람들에게 둘러싸였을 때, 그는 자기가 타인들에 대한 예전의 증오심을 더 이상 느끼지 않음을 깨닫고 놀란다. 그는 타인들이 과연 자기가 생각했던 것처럼 나쁜 사람들일까 의아해한다. 더 이상 그들을 매혹하거나 지배할 욕망이 사라진 쥘리앵은 더 이상 그들을 증오하지도 않는다.

반대로 라스콜리니코프는 결말에서 고립을 이겨내지만 그도 역시 고독을 쟁취한다. 그는 복음서를 읽게 되고, 오래 전부터 맛보지 못하던 평화를 느낀다. 고독과 인간교류는 상호관련해서만 존재한다. 그 둘을 분리하면 낭만적 추상화에 빠질 위험이 있다.

소설의 결말들간의 차이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 대립보다는 강조의 이동이 더 중요하다. 형이상학적 질환이 치유되는 다양한 양상들간에 부재하는 균형은 소설가가 자신의 낭만주의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는 도식들에 사로잡혀서 도식들이 정당화의 구실을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결말에 사회참상 묘사주의가 전혀 없지는 않다. 스탕달의 결말에서는 들레클뤼즈 살롱에서 기세가 등등하던 부르주아 낭만주의의 몇 가지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차이점들을 강조하면 소설 결말들의 통일성을 놓쳐버리기 쉽다. 다름아닌 바로 그것이 비평가들이 바라는 것인데, 통일성이란 그들의 언어로 진부함이며 진부함은 최악의 저주인 까닭이다. 만약 비평가들이 이 결말을 완전히 거부하지 않을 경우, 그들은 이 결말이 독창적임을, 즉 소설의 다른 결말들과 모순된다는 사실을 입증하려 애쓴다. 그들은 언제나 소설가를 자신들의 낭만적 기원으로 환원시킨다. 그들은 작품에 봉사한다고 믿는다. 교양 있는 대중의 취향인 낭만적 취향의 수준에서 본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작품에 봉사하고 있다. 좀더 파고들어가본다면 그들은 작품에 해를 끼치고 있다. 그들이 작품 내부의 소설적 진실과 모순되는 것을 칭찬하기 때문이다.

낭만적 비평은 언제나 본질적인 것을 거부한다. 즉 형이상학적 욕망을 초월하여 죽음 너머로 빛을 내뿜는 소설의 진실로 향해 가기를 거부한다. 주인공은 진실에 도달하면서 죽는다. 그리고 자신을 창조한 작가에게 자신의 선견지명을 유산으로 남긴다. 소설의 주인공이라는 칭호는 비극적인 결말에서 형이상학적 욕망을 이겨내고, 그리하여 소설을 쓸 수 있게 된 인물에게 부여되어야 한다. 주인공과 그의 창조자는 소설이 진행되는 동안 내내 분리되어 있다가 결말에서 서로 합쳐진다. 죽어가면서 주인공은 잃어버린 자신의 삶을 돌이켜본다. 그는 그 삶을 시련과 병마와 추방이 클레브 부인에게 지니게 해준, 그리하여 이 여류소설가3)의 관점과 동일해진 ‘더욱 폭넓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러한 ‘더욱 폭넓고 객관적인 시선’은 마르셀 프루스트가 『되찾은 시간』에서 말하고 있는 ‘망원경’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스탕달의 주인공이 감옥 안에서 도달하는 탁월한 태도와도 다르지 않다. 멀어짐과 상승의 모든 이미지들은 더욱 초연해진 새로운 견해, 즉 창조자 자신의 견해를 표명한다.


「카라마조프가 가의 형제들」 러시아 현대화가가 그린 그림으로 대심문관 장면이다.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제12장 「결말」



삼각형의 욕망으로 투영되는 현대인의 욕망

이 책에서 맨 먼저 분석의 대상이 되는 것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이다. 그가 이 소설의 분석에서 얻어낸 결론은 『돈키호테』의 주인공들의 욕망은 간접화한 욕망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 개인이 무엇을 욕망한다는 것은 그 개인이 지금의 자기 자신으로 만족하지 못해 자기 자신을 초월하고자 하는 것인데, 이때 초월은 자기가 욕망하게 되는 대상을 소유함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것을 도표로 그려보면 개인에 해당하는 주체가 밑에 있고 대상이 그 수직선상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관계를 『돈키호테』에서 살펴보면 주인공 돈키호테는 이상적인 방랑의 기사가 되고자 한다. 여기에서 돈키호테는 주체가 되고 이상적인 방랑의 기사는 대상이 된다. 그러나 돈키호테는 그 이상적인 방랑의 기사가 되기 위하여 아마디스라는 전설의 기사를 모방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돈키호테는 직접 이상적인 기사도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아마디스를 모방함으로써 거기에 도달하고자 한다.

따라서 이상적인 기사도에 도달하고자 하는 돈키호테의 욕망은 아마디스라는 중개자에 의해 간접화되고 있으며, 주체와 대상 사이에는 간접화 현상이 일어난다. 즉 주체의 욕망이 수직적으로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비스듬히 상승하여 중개자를 거쳐 대상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욕망의 간접화 현상은 기독교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구조이다. 어느 기독교인이 진정한 기독교인이 되어 구원받기를 원한다면 그는 곧 예수라는 중개자를 모방하면 된다. 이때 기독교인과 예수와 진정한 기독교인은 삼각형의 세 꼭지점을 형성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욕망하는 주체와 욕망의 대상과 그 욕망의 중개자가 삼각형의 구조를 갖게 되고, 이처럼 간접화한 욕망을 ‘삼각형의 욕망’이라고 부른다.

지라르는 현대인의 욕망은 이처럼 삼각형의 구조로 되어 있다고 보면서 소설의 주인공이 지니고 있는 욕망의 왜곡되고 비진정한 속성을 분석하고 있다. 이로써 시장경제체제 사회 속에서 개인은 그 욕망마저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중개자에 의해 암시된 욕망을 소유하게 되었음을 제시한 셈이 되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주인공의 욕망의 구조와 주인공을 태어나게 한 사회의 경제구조 사이에 구조적인 동질성을 발견하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지라르는 따라서 돈키호테의 욕망이 돈키호테 내면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 아마디스라는 중개자에 의해 암시됨으로써 생긴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한 점에서 종래의 돈키호테를 이상주의자로, 산초 판사를 현실주의자로 규정한 것은 부분적으로는 진실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진실이 아니다. 예전에는 산초 판사의 욕망(작은 섬 하나를 소유하는 것, 딸에게 공작부인의 칭호를 갖게 하는 것)이 실현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그를 현실주의자로 보았다. 그러나 지라르는 산초 판사의 바로 그 두 가지 욕망이 그의 내부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욕망이 아니라 그의 주인인 돈키호테에게서 암시받은 욕망이라고 지적한다. 그것은 돈키호테가 산초 판사의 욕망의 중개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지라르는 이처럼 하나의 작품이 여러 개의 삼각형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가 분석하고 있는 스탕달의 『적과 흑』,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도 주인공들의 욕망이 여러 개의 삼각형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지라르는 모든 삼각형의 욕망이 동일한 관계에 의해 형성된 것이 아니라 좀더 복합적인 관계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는 점에 주목함으로써, 자신의 이론을 더욱 복합적이고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 그에 따르면 삼각형의 구조에서 주체와 중개자 사이의 거리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분석에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것은 그 둘 사이의 거리이다.

다시 말하면 『돈키호테』에서 주체 돈키호테와 중개자 아마디스는 동일한 세계에 있지 않다. 즉 아마디스는 전설적인 가공의 인물이어서 돈키호테와 만날 수 없는 인물이다. 이때 주체와 중개자의 거리는 극복될 수 없을 만큼 떨어져 있다. 그런 관점에서 주체로서의 산초 판사와 중개자로서의 돈키호테 사이의 거리는 함께 다니고 있기 때문에 동일한 공간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때의 거리를 물리적인 거리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돈키호테는 주인이고 산초 판사는 시종이기 때문에, 둘이 함께 다닌다고 해서 그 둘 사이의 거리가 극복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산초 판사는 단 한 번도 자신이 돈키호테라는 주인의 자리를 꿈꾸어본 적이 없고 주인과 경쟁해보고자 한 적이 없다. 그것은 두 인물이 동일한 공간에 살고 있으면서도 엄연하게 구분되는 정신적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반면에 스탕달의 『적과 흑』에서 마틸드가 쥘리앵을 소유하고자 하는 것은 그의 경쟁자인 페르바크 원수부인과의 경쟁관계에서 비롯되고 있다. 이처럼 주체인 마틸드와 중개자인 페르바크 원수부인이 동일한 공간 안에서 대상인 쥘리앵을 욕망하는 데 서로 경쟁관계에 있다는 것은 욕망의 간접화가 훨씬 더 비극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르네 지라르는 전자를 외적 간접화라 하고 후자를 내적 간접화라고 하며 전자의 범주에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을 분류하고 후자의 범주에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분류한다. 그는 현대인의 욕망이 주체와 중개자의 거리가 가까워짐으로써 주체와 대상을 구분할 수 없게 된 점에서 훨씬 더 비극적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김치수
이화여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문학평론가이자 사회인류학자인 르네 지라르는 1923년 남프랑스 아비뇽에서 태어나 1947년 파리 고문서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인디애나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디애나 대학 프랑스어 강사를 시작으로 듀크 대학, 존스 홉킨스 대학, 뉴욕 주립대학, 스탠퍼드 대학 등에서 정교수·석좌교수 등을 지내며 프랑스의 역사·문화·문학·사상에 관한 강의를 하였다. 1961년에는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비평언어와 인문학’에 관한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하였는데, 여기에는 바르트·데리다·골드만·이폴리트·라캉·풀레·토도로프·베르낭 등 많은 학자들이 참가했다.

지라르의 관심은 소설 속의 인물들이 어떻게 욕망하는가 하는 인간 욕망의 구조를 밝혀내는 데에서 출발한다. 그것이 그의 첫 저서인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1961)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이다. 

인간의 욕망과 구조를 밝혀내려는 작업의 결실인 『폭력과 성스러움』(1972)은 1973년 프랑스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그밖에도 그는 『지하실의 비평』(1976), 『세상이 만들어질 때부터 숨겨져온 것』(1978, 공저), 『이중규제』(1978), 『희생양』(1982), 『옛 사람들이 걸어간 사악한 길』(1985), 『나는 번개처럼 빠르게 떨어지는 사탄을 보았노라』(1999) 등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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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한길사 / 한길아트2011.12.14 11:18

파주 헤이리 ‘서예삼협 파주대전’ 전시글이 동아일보에 실렸습니다. 그 내용을 블로그에 소개합니다. 이 기사는 원저자의 허락하에 기재됨을 밝힙니다.



 

서예삼협 파주대전(왼쪽), 정도준 씨는 문자를 해체하면서도 문자의 조형성을 회화적으로 표현한 작품을 통해 한국의 서예를 서구에 알리는 데 앞장서 왔다.(오른쪽 위), 진지한 실험과 다채로운 조형어법으로 우리 서예의 지평을 확장시킨 박원규 씨는 벽면을 가득 채운 대작을 선보였다.(오른쪽 가운데), 전통을 충실히 지키면서도 새로운 세계를 구축한 이돈흥 씨는 힘찬 획으로 산 이미지를 그려냈다.(오른쪽 아래)





















눈이 행복한 전시다. 현대 서예의 고수들이 붓으로 일합을 겨루는 ‘서예삼협 파주대전(書藝三俠 坡州大戰)’에 대한 얘기다. 경기 파주시 탄현면 예술마을 헤이리의 갤러리 한길, 북하우스 아트스페이스를 통째로 사용한 대규모 기획전으로, 전통과 이를 현대적으로 변용한 실험이 맞춤하게 균형을 이루며 보는 이를 빠져들게 한다.

참여 작가는 전통을 충실히 지키며 자기 세계를 구축한 학정 이돈흥(64), 이미지와 글이 공존하는 과감한 작업으로 서예의 영토를 확장한 하석 박원규(64), 전통과 현대적 재해석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소헌 정도준 씨(63). 이들은 평화롭지만 치열한 내공 대결을 펼쳐 풍성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한길사가 창사 35주년 기념으로 마련한 이 전시는 정통 필법과 이를 응용한 작품에 두루 능한 작가들을 통해 서예의 미학과 가치를 새롭게 일깨운다. 김언호 대표는 “서예가 사람들과 동떨어진 섬처럼 존재하는 현실이 안타까워 다리를 놓고자 마련한 전시”라고 소개했다. 전시 중 특강이 열리고, 한정판 도록도 발간된다. 내년 2월 29일까지. 031-955-2041 


3인 3색의 축제

단순한 획으로 무등산을 생생히 되살려내고(학정), 문자를 해체하면서도 그 본질은 지켜 우리 서예의 미학을 회화적으로 재해석하며(소헌), 벽을 가득 채운 서체의 웅장한 향연과 추상적 이미지가 시선을 압도한다(하석). 정통 서예부터 시각적 이미지가 도드라진 작품까지 어울린 전시는 흰 화선지를 벗어나 빨강, 노랑 종이를 쓰고, 일반 액자 대신 발광다이오드 패널을 활용하는 등 서예와 현대미술의 만남을 고민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세 작가의 길은 각기 달랐다. 학정의 스승은 광주에서 활동한 성곡 안규동. 하석은 강암 송성용의 문하에서 서예를 배웠고, 소헌은 일중 김충현을 사사했다. 학정은 우직하게 작품 활동을 하며 후학을 양성해 서예의 저변을 넓혀 왔다. 원교 이광사와 추사 김정희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학정체’를 일궈낸 그의 작품에선 “쓰면 느는데 어떻게 안 쓰겠는가”라고 말하는 뚝심과 끈기가 그대로 묻어난다.

영상세대의 눈을 사로잡을 만큼 자유분방하고 활달한 조형어법을 선보인 하석은 문자학 소양과 필법 이론에 해박한, 학구적인 서예가다. 1979년 동아미술제 대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그는 “이미 시도한 형식을 답습하지 않는다”는 정신 아래 모색과 도전을 거듭해 왔다. 그림문자가 만들어진 원시로 회귀한 듯, 문자와 이미지를 낙서처럼 쓱쓱 그린 듯한 작업에선 ‘팽팽하게 당긴 활처럼 극적 긴장과 내적 활력’이 충만하다. 소헌의 경우 내용과 조형, 언어와 이미지에 동등한 무게를 두고, 가장 정통적이면서도 가장 현대적인 서예의 미학을 구사한다. 지난 10년간 구미에서 잇단 초대전을 열면서 한국 서예를 해외에 알리는 데 가장 앞장선 서예가다. 전시에선 문자들이 수직과 수평, 원과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등 새로운 시도와 서예의 격조가 조화를 이루며 눈길을 붙잡는다. 


기운생동의 세계

서예를 고리타분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이 전시는 영상 시대의 중심에서 ‘붓글씨’의 존재 이유와 생존방식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 문화의 뿌리이자 한자 문화권의 정수가 서예에 있다고 침묵으로 웅변하기 때문이다.

한자를 읽을 줄 모른다고 주눅들 필요는 없다. 한글이든 한문이든 글자를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우선인데다 글씨의 시원으로 돌아가 그림문자처럼 재해석한 작업도 많다. 이돈흥 씨는 “내용과 상관없이 먼저 그 안에서 뿜어 나오는 기운생동의 감정을 느껴보라”고 권한다. 분석과 해독이 아닌, 만남과 느낌을 중시하는 현대미술의 감상법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작가 이름을 보지 않고 전시장을 한 바퀴 돌아보고 세 작가의 개성을 나름대로 익힌 뒤 다시 한 번 작품을 감상하면 더욱 흥미롭다. 전시장 곳곳에서 한 해를 마감하기 딱 좋은 글귀를 만나는 것도 덤이다. ‘성공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고 행복은 얻은 것에 만족하는 것이다.’ ‘가는 데까지 가거라. 가다가 막히면 앉아서 쉬거라. 쉬다 보면 새로운 길이 보이리.’


작성자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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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2011.12.07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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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 / 한길아트2011.11.30 13:05

캄보디아에 지뢰 제거, 미얀마 195개 마을에 샘물 건설, 북한에 20만 개 생리대를 만들 천과 5,000명이 입을 스판 벨벳 발송, 캄보디아ㆍ스리랑카에 5,000켤레 운동화 후원, 히말라야에 초중고등학교 설립, 국내에 대안학교인 헌산중학교, 탈북청소년을 위한 한겨레중고등학교 설립 등……. 50여 년 동안 세계 55개국에 나눔과 봉사를 실천한 박청수 교무는 ‘한국의 마더 테레사’라 불린다. 그가 세계 곳곳에 보낸 갖가지 구호물자는 컨테이너 30대 분량에 이른다. 그에게 나눔에 대한 생각과 철학을 물었다. “모든 일이 어머니로 인해 예정된 길이었다. 나의 종교적 삶을 열어준 이는 바로 어머니였다.” 『어머니가 가르쳐준 길』 출간에 맞춰 11월 28일 프레스센터 19층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책으로 남기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어머니는 항시 “너른 세상에 나아가 많은 사람을 위해 일해라” 하셨습니다. 그 말씀 따라 원불교 교무가 되어 세계 53개국을 방문하고 55개국을 도왔습니다. 이 모두 어머니가 저를 이끌어준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어머니 뜻을 배반하지 않고 칠십 평생 일했더니 많은 결실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일제시대에 태어난 어머니는 27세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되어 두 딸을 키우셨습니다. 무학에 남들이 배워서 잘사는 걸 본 적도 없는데 우리가 큰뜻을 펼치게 하기 위해 교육을 시키셨지요. 늘 “그까짓 시집 가서 뭐할 것이냐. 기왕이면 큰 곳에서 큰 살림을 해라. 나는 외손주 등에 업고 싶지 않다. 사위 절 받고 싶지도 않다” 하셨습니다. 저는 전북 남원 수지면 홈실마을이라는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전주여고를 거쳐 박사학위까지 받았는데 모두 어머니가 교육을 뒷바라지해주신 덕분입니다. 3년 전 91세에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잘 키워주셔서 너무도 감사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어 책으로 남기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끝도 없는 기도와 정성이 저를 만들었기에, 어머니에게 영광을 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교무님이 생각하시는 ‘효’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젊은 날 자식을 위해 희생한 부모가 홀로 자식을 기다리는 마음을 알아주는 게 자식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시간과 돈을 들일 이유는 없습니다. 잠깐만 찾아 뵙고, 목소리를 들려주고, 얼굴을 보여드리면 됩니다. 부모는 항상 자식이 그립고, 자식을 보고 싶어하기 때문에 그 마음을 채워드려야만 비로소 행복해하실 것입니다.


봉사와 나눔을 실천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보면 마치 내가 지금 당한 일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대로, 도움의 손길을 절실하다고 느껴지는 곳이라면 달려가는 것이 제가 사는 방식이 되어버렸습니다. 세상을 사는 동안 의미 있다고 여겨지는 일들, 그것을 하면 유익하리라고 믿어지는 일들을 제 일감이라 생각하고 챙기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세월이 흐르면서 작았던 것이 점점 커지고, 숨은 것은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이야기해보자면, 캄보디아에서는 한 달에 300명씩 팔다리가 잘린다고 합니다. 캄보디아 사람들보다 많은 수의 지뢰가 그 땅에 묻혀 있다는 말을 듣고, 한 개의 지뢰라도 제거하겠다는 마음으로 국교도 단절된 그 나라를 돕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정성을 모아 성금을 전달했고 나중에는 캄보디아 바탐방에 무료 구제병원을 세웠습니다. 지금은 한 달 1,500명의 환자가 그곳에서 의료혜택을 입고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 시작한 작은 일, 그것이 모여 현재까지 13만 명 환자를 도운 큰일이 되었습니다.


 

“내가 선택한 불특정 다수의 그들이 없었다면 제 인생의 의미는 반으로 줄었을 것입니다.” 


봉사는 남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성취감과 만족, 행복과 충만감을 느끼기 위해 그들을 돕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를 두고 남을 위해 좋은 일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속으로, 내가 ‘남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남’들이 내 삶을 가꾸는 텃밭이 되어주고 때로는 넓은 농경지도 되어서 삶의 의미를 충족시켜주고 성취감과 보람을 안겨주는 고마운 인연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그들, 내가 선택한 불특정 다수의 그들이 없었다면 제 인생의 의미는 반으로 줄어들었을 것입니다.
 

교무님에게는 종교의 경계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천주교 시설 성 라자로 마을 나환자들을 31년간 도왔습니다. 아무리 일이 바빠도 성 라자로 마을 공동 생일날인 2월 9일에는 꼭 국내에 있었습니다. 나환자들을 돕기 위해 15년간 직접 엿을 팔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진심을 다하다보니 나환자 식구들로부터 “밥을 한 끼 굶고 그 대가로 박 교무님을 볼 수 있다면 나는 차라리 한 끼 밥을 굶고 만나고 싶은 심정이오”라는 고마운 고백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또 법정 스님이 회주로 계시던 맑고 향기롭게, 기독교의 대한성공회와도 협력했습니다. 타종교라고 배척했다면 만날 수 없었을 고마운 인연들입니다. 이는 세상의 모든 종교가 한 이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 실천이었습니다.



정리-편집부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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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벨기에 남쪽 인구 12만의 작은 도시 마스트리히트를 찾아갔습니다. 셀레시즈 도미니크 서점을 구경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영국의 일간 신문 『가디언』은 셀레시즈 도미니크 서점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으로 선정한 바 있습니다. ‘천상의 서점’이라고 했습니다. 서점은 1294년에 세워진 도미니크 성당의 내부를 개축하여 만든 것입니다. 과연 지상에 존재하는 천상의 서점입니다. 

저는 이 서점 이야기를 여러 해 전부터 들었습니다. 셀레시즈 도미니크 방문은 이번 유럽 여행의 가장 신나는 일정이었습니다. 세계의 서점들을 나름대로 찾아다닙니다만, 셀레시즈 도미니크 서점의 경이로운 풍경에 압도당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건물이라고 합니다. 좀 구석진 곳에 위치하고 있지만, 위치를 묻는 저에게 한 가게 주인은 즐거운 표정으로 가는 길을 설명해주었습니다. 아름다운 서점 셀레시즈 도미니크는 마스트리히트 시민들의 가슴엔 문화적 긍지로 자리를 잡고 있는 듯 했습니다. 마스트리히트를 찾는 관광객들이 둘러보는 코스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셀레시즈 도미니크 모습.


책방 변신에 관광객들 줄이어

유럽의 성당이란 참으로 유럽인들의 미의식을 집성시키는 공간입니다. 바닥 면적이 300평이 안되는 도미니크 성당도 안에 들어서면 역시 감동적인 공간의 위용을 보여줍니다. 천정 높이가 20미터는 됩니다. 천정에는 벽화가 있습니다. 돌기둥들이 장엄합니다.

지난 2006년 네덜란드 서점 체인 셀레시즈가 이 성당을 서점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철제로 내부를 3층으로 개축했습니다. 벽은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 원형을 그대로 보존한다는 것이 사용조건입니다.

서가에 꽃혀 있는 책들, 쏟아져 들어오는 자연광, 스테인드 글라스의 빛깔이 책방 내부를 더욱 환상적으로 만듭니다. 지난 200여년 동안 교회가 아닌 다른 용도로 사용되다가 책방으로 변신하면서 마스트리히트의 명소가 되었습니다. 저자와 독자의 대화, 전시회, 강연회, 음악회 등이 열려 오래된 성당 도미니크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공간에서 문화예술공간이 되면서 더 많은 시민들이 찾고 있습니다. 셀레시즈 도미니크 서점은 이제 책을 사랑하는 세계인들이 방문하고 싶어하는 명서점이 되었습니다.

유럽에는 성당이 참 많습니다. 유럽의 역사와 문명의 이데아는 기독교가 토대를 이룹니다. 유럽의 모든 도시 한가운데는 하늘을 찌르는 성당이 근엄하게 서 있습니다. 그러나 휘황찬란하게 아름다운 교회의 장식과 치장에 비해, 예배를 보는 신자들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아름답고도 성스러운 유물이 된 듯도 합니다.


독서로 가능한 세계 탐구 아름다워

셀레시즈 도미니크 서점은 현대 서구사회의 종교현상을 보여줍니다. 기독교 문명권의 변화를 보여주는 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종교적 공간이 책의 공간, 대화와 문화예술의 공간으로 전화되는 풍경에 저는 주목하고 싶습니다. 책의 정신과 책의 사상의 위대한 가능성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책방으로부터 생성되는 자유정신과 독서로 가능한 새로운 세계에의 탐구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1970년와 1980년대에 우리는 민주화운동을 치열하게 진전시켰습니다. 강압적인 권력의 통제시대에 우리는 책을 읽고 토론했습니다. 그 시대를 생각하면서 저는 이미 작고한 연세대 김찬국 교수를 늘 떠올립니다. 해직시절에 임시로 목회를 하기도 한 선생은 책을 가득 넣은 가방을 메고 다니면서 책 읽기를 권하곤 했습니다. 책 읽게 하는 것이 곧 복음을 전하는 일이라 했습니다. 한길사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책을 기획하면서 선생에게 집필을 부탁드리기도 했고, 선생의 단독저서 『인간을 찾아서』를 출간한 바 있습니다.

셀레시즈 도미니크 서점에서 저는 실천하는 신학자 김찬국 교수를 다시 떠올렸습니다. 책 읽는다는 것은 새로운 정신과 사상을 탐험하는 일입니다. 진리와 진실을 탐구하는 삶의 여정입니다. 책의 정신과 사상을 탐구하고 탐험하는 사람들이 찾는 책방이란 참으로 의미심장한 공간입니다. 언젠가 다시 셀레시즈 도미니크 서점을 가고 싶습니다.



김 언 호 도서출판 한길사 대표· 파주북소리 조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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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