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사 / 한길아트2014. 5. 21. 17:51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1984년 5월에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바야흐로 1984년(우연찮게도 조지 오웰의 유명한 소설 제목과 같네요^^;)

한길사는 어떤 책들을 펴냈을까요?

저도 갑자기 궁금해져서 찾아봤는데,

기대 이상으로 쟁쟁한 저자들의 저서가 쏟아져 나왔었더라는 놀라운 사실.



자, 지금은 1984년 5월입니다. 저와 같이 추억 속으로 빠져보실래요?


 


 

시인 고은 선생님은 그를 일컬어 “모두의 기념”이라고 부르셨습니다.

“OOO! 그는 모두의 기념이다”라고요.

영광의 주인공은 대체 누구일까요?



정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리영희! 그는 모두의 기념이다.”

 

 

리영희 선생님! 그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존경 받는 언론인이시지요.

허위와 우상이 난무했던 20세기의 우리 사회에서 오직 진실을 밝힌다는 일념으로 실천적인 삶을 살아온 지식인입니다.

행동하는 지식인 리영희, 그는 너무도 잘 알려져 있듯이 1974년 『전환시대의 논리』, 1977년 『우상과 이성』『8억인과의 대화』등 일련의 저서로 암흑 속에 있던 70, 80년대 우리 사회를 희망으로 밝혔습니다. 그를 ‘시대의 양심'으로 생각하는 ‘벗'들이건 ‘의식화의 원흉'으로 믿는 ‘적'들이건, 당시 그의 ‘논리'가 찬반여부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상식으로 받아들여졌던 이유입니다.


1984년 5월, 한길사는 리영희 선생님의 『분단을 넘어서』를 펴냈습니다. 당시 리영희 선생님의 강건한 목소리, 함께 들어보시겠어요?

 

 


 

마침 책의 편집 작업이 끝나 필자의 머리말을 쓰려는 날 아침에, 남쪽의 수재민을 위한 의연물자가 북쪽으로부터 휴전선을 넘어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 얼마나 상서로운 일인가!


해방과 분단의 40년, 휴전선이 생긴 지 30여 년 만에, 민족을 갈라놓은 굳은 장벽에 통로가 열린 것이다. 그것은 물리적으로는 작은 통로에 불과하지만 민족사적으로는 큰 의미를 지닌 돌파구다.


돌이켜보면 1972년, 남북의 지도자가 평화·자주·외세 불간섭의 정신으로 민족의 화합과 통일을 기약했고, 최근에는 우리 사회 안에서 40년 한 맺힌 이산가족의 대대적 재회가 이루어졌다. 그것은 모두 이 겨레의 슬기를 세계 만방에 과시한 민족적 쾌사였다. 이제부터 분단된 동포 간의 장벽을 넘으려는 의지가 더욱 굳게 합쳐져야 할 것이다.


한겨레는 갈라져 살 수 없다. 안으로는 대립의 요소들을 해소하고, 밖으로는 분단을 영구화하려는 조건들을 꾸준히 극복해나가야 한다. 우리 자신이 그 노력을 게을리한다면 다른 누가 그 무거운 짐을 대신 져줄 것이며, 그 험난한 길을 대신 걸어줄 것인가?


이 책에 담은 글들은 필자가 평소에 그런 마음으로 생각하고 써온 것들이다. 이것이 부족함이 많은 글을 감히 내놓는 소위이다.


나는 내 이름을 붙여서 책을 내놓을 적마다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금할 수가 없다. 부끄러운 까닭은, 그 어느 것이든 남처럼 각고(刻苦)한 흔적이 역력한 학문적 결정도 아니고, 시대적 상황과 배경의 변화와는 관계없이 언제나 독자의 심금을 울리는 그런 글도 되지 못하는 목숨 짧은 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두려운 까닭은, 이 같은 하찮은 내용의 글들인데도 적지 않은 독자들이 공감의 성원을 보내준 데서 느끼는 무거운 짐을 먼저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그처럼 숨이 짧고 시한적인 내용의 글들인데도, 무슨 대단한 것이나 들어 있는 양, 비난의 소리를 높이는 쪽의 존재를 의식해서다.

 

(...)

글을 쓴 이의 개인적 의미로서의 80년대 전반기 몇 해는 역시 70년대 못지않은 고난과 시련의 시기였다. 차라리 70년대 그것의 연속이었다. 1980년 1월 초, 나는 이 나라의 70년대를 성격짓는 광란의 희생물로서 2년의 옥고를 치르고 나와, 4년간의 해직 끝에 대학에 복직해 강단에 서게 되었다. 그러나 3개월도 안 되는 5월에 다시 신체의 자유를 잃었고, 7월에는 다시 해직교수가 되었다. 그로부터 만 4년 동안 자신과 가족의 호구지책을 위해, 그 귀중한 시간을 주로 번역 일로 소비했다. 생각할수록 분하고 안타까운 세월이었다.


그러나 생각을 멈추고(思考停止) 머리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필자의 눈앞에서 한반도를 둘러싼 사태는 숨가쁘게 소용돌이쳤다. 70년대와 마찬가지로, 몇 해를 가지 않아서 그 허구성이 드러나고야 말 온갖 요사스러운 ‘이론’과 ‘학설’이 시세에 편승하여 횡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다 못해 무엇인가 적어본 것이 이 책의 1부를 이루는 글들이다. 안 쓰려다가 쓰는 자신의 의지 박약과 수양 부족을 절감하면서 발표한 것들이고, 그러고 나서는 반드시 후회 때문에 괴로워했다.


80년대에 들어서서 나의 관심은 두 가지 측면에 집중되었다. 일본의 식민통치에서 해방된 지 70년이 되려는 시점에서의 한·일 관계의 참모습에 대한 것이 그 하나고, 초강대국들이 ‘무제한 군사 대결’의 결의를 선언하고 나선 국제 관계, 특히 동북 아시아 정세 속에서의 한국과 한반도의 장래에 대한 두려움이 다른 하나다. 한국과 일본은 해방 직후인 1940년대 중반에서 50년대에 걸친 관계의 진공 상태에서 60년대의 정치·외교 관계. 70년대의 경제 관계, 그리고 지금 80년대의 문화협력 관계로 돌진해 들어가고 있다. 그 40년간의 한·일 관계 추이와 진전으로 미루어보아 1990년대는 논리적으로 한·일 군사협력 체제의 단계로 파악된다. 한·일 두 나라를 바로 그와 같은 단계를 거쳐서 군사적으로 묶으려는 것이 북미합중국의 장기적 세계정책 구상이었음은 1965년에 한일 국교정상화 조약을 체결하게 했을 때(사실은 그 이전부터) 이미 분명해졌던 것이다.


일본과의 군사협력(동맹) 체제가 한국의 국민 이익과 어떻게 교접하며, 분단된 남북 민족의 통일 목표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에 대해 나름대로의 시각을 정리하고, 독자의 공감을 얻고 싶어서 발표했던 것이다. 「해방 40년의 반성과 민족의 내일」 「‘한·일 문화협력’에 대하여」 「다시 일본의 ‘교과서 문제’를 생각한다」가 그것들이다.


조상에게서 이어받은 이 나라의 남과 북의 땅이 미·소 두 초핵강대국의 이해를 겨루는 핵의 대결장이 되어가고 있다. 지구상에 나라가 많지만, 이 초거인(超巨人) 군사대국이 각각 상대방에 대한 예비 공격으로 상대국을 핵무기의 표적으로 선언한 것은 이 땅의 북과 남밖에는 없다. 어째서 이 꼴이 되었는가? 우리는 어째서 저들 초강대국의 국가이기주의를 충족하기 위한 그들의 ‘핵볼모’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 민족(국민)은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정세 변화에 주체적으로,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어떤 시각을 가져야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이 같은 긴급한 물음에 대해서 나름으로 답해보고자 한 것이 몇 편의 논문이다.


(...)

불행하게도 민족은 갈라졌지만, 서로가 배후의 핵강국에게 핵전쟁의 마당을 제공하는 일만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 필자는 이 반도의 ‘비핵지대화’(非核地帶化)야말로 남북으로 갈라진 민족의 평화적 생존과 나아가 어느 날엔가는 이루어질 통일을 기약하는 ‘80년대 전제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40년간은 분단과 대치의 상황이 우리의 의식을 규정했다. 우리는 그 조건으로 말미암은 고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객관적 상황에 구속되지만 않아도 좋을 만큼의 물질적·정신적·사상적 성장을 했다고 믿고 싶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 국민이 해야 할 과제는 스스로의 의식으로 객관적 조건을 풀어나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문제를 대하는 우리의 입장과 관점은 아직도 분열해 있고 대립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우리 국민사회 내부와 개개인의 의식에 내재해 있는 ‘분단’이다. 나라 안팎의 ‘분단’을 해소하고 넘어서려는 노력만이 이 강토에 다시는 일본의 군대가 들어올 필요가 없는, 금수강산이 초강대국들의 핵볼모가 되지 않도록 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다.


 


1984년 9월 29일


리영희




‘숨이 짧고 시한적인 내용’이라 하시는데, 안타깝게도 30년이 지난 오늘도 분단의 현실은 여전하네요. 선생님이 염원하신 ‘이 반도의 ‘비핵지대화’(非核地帶化)’도 실현되지 못했고요. 요즘 그 어느 때보다도 리영희 선생님의 정신을 이어받아 열심히 공부하고 행동해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모두 잘 읽고 잘 생각해서 이 땅의 진정한 민주화를 위해 함께 노력해요!

 

 


현재 『분단을 넘어서』는 2006년 출간된 ‘리영희 저작집’(전12권)의 제4권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Posted by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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