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그레이트북스2014. 6. 13.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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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홉스봄 깊이 읽기(2) - 자본은 세계를 어떻게 바꿔놓았는가?

『자본의 시대』




Das Kapital, Capital

학부생 때 얘기입니다. 정치외교학과를 부전공으로 택했는데 첫 수업이 정치경제론 강의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교수님께서 ‘정치경제’란 무엇인가 설명해 주시더군요. 풀이가 명확했는데 한마디로 “정치란 가치를 따지는 것이다. 즉, 경제가 숫자만 따진다면 정치경제란 경제적 현상을 어떤 가치를 가지고 해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일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장하준 교수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는데, 풀어보자면 이런 것이죠. 신자유주의론을 기반으로 한 작금의 경제학은 합리성과 수리적 연산을 통해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는 단일한 방법론처럼 인식됩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다양한 사상적 배경을 가진 주체들, 게다가 비합리적이기까지 한 주체들은 시장에서도 그만큼이나 다양하고 이해되지 않는 역사적·정치적 결정을 내린다는 겁니다. 이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마치 자연과학처럼 경제현상을 해석한다면 그것 자체로 오류라는 것이죠. 개인적으로 보태자면 객관적인 자연과학인 양 행세하는 것 자체가 전혀 객관적일 수 없는 일종의 모순은 아닐까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관점을 지닌 역사적 저서 두 권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는 이미 고전 중의 고전이 되었고 다른 하나는 현재 엄청난 폭풍을 일으키고 있죠. 바로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피케티의 『자본』입니다. 마르크스는 ‘과학적’인 방법론을 통해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역사의 발전 방향을 제시합니다. 동시에 새 시대를 이룩하기 위해 필수적인 과정으로서 ‘생산관계’의 변혁을 주장하죠. 이때 ‘생산수단’을 누가 통제하느냐는 정확히 정치적인 문제가 됩니다.



마르크스와 『자본론』


피케티와 『자본』



피케티 역시 정치경제적인 입장을 고수합니다. 『자본』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The history of inequality is shaped by the way economic, social, and political actors view what is just and what is not, as well as by the relative power of those actors and the collective choices that result.” 그래서일까요? 피케티는 엄청난 수치적 자료를 가지고 21세기의 자본주의를 분석한 뒤 곧 분배의 문제로 방향을 틉니다. 다시 말해 분배가 필요하며 그것은 정치적인 측면이 강하므로 경제적인 메커니즘으로만 이해해선 안 된다는 것이죠. 『자본론』과 『자본』의 묘한 공명이야말로 새 시대의 힌트가 아닐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리고 The Age of Capital

홉스봄 역시 장기 19세기를 정치경제적으로 다룹니다. 시대 3부작에서 그는 정치와 경제, 그리고 역사와 민중이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아주 세세하게 밝힙니다. 당연히 입체적이고 생동감 넘칠 수밖에 없죠. 전체사가로서의 홉스봄이 지닌 진면목이랄까요?

지난 시간 배운 『혁명의 시대』에서도 홉스봄은 산업혁명과 시민혁명, 즉 이중혁명의 의미를 동시에 다루었습니다. 산업혁명으로 자본주의가 발생했고 시민혁명으로 정치권력이 자유주의적 색채를 띠게 됐다는 식이 아니라 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탄생했다고 말하죠. 자본주의 사회의 정치경제를 규정하는 통합적인 혁명으로서 이중혁명을 본 것입니다.

다만 당시에는 정치혁명이 산업혁명을 어느 정도 통제했고 따라서 사회적 균일성이 그런대로 유지되는, 즉 변화가 미비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1848년 2월 혁명의 실패는 상황을 역전시킵니다. 당시 프랑스는 산업혁명으로 인해 노동자가 증가한 상태였는데 1840년대 중반 이후 불황을 맞아 실직자가 넘쳐나고 있었죠. 게다가 루이 필리프의 7월 왕정이 노조 결성도 금지해버리고 선거권도 제한해 불만이 폭발 직전까지 차올랐습니다. 그러던 1848년 2월 22일 선거법 개혁을 위한 야당의 집회를 정부가 금지하자 결국 혁명이 일어납니다. 정부는 무너지고 2월 24일 세워진 임시정부는 곧 노동자들의 요구로 공화국을 선포하죠.



산업자본가들과 노동자들이 보수 경향을 띤 내각의 사임을 요구하면서 일으킨 2월 혁명. 2월 혁명 중 치러진 보통선거에서 온건 공화파가 의회를 독점하자 일부 과격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자들이 폭동을 일으켰으나 진압되었다. 결국 나폴레옹의 조카이자 의붓외손자인 루이 나폴레옹이 공화정의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이렇게만 보면 성공적인 듯 보이는 2월 혁명은 부르주아 정부 인사들과 사회주의 사상을 접한 노동자 사이의 견해차로 순식간에 무너지고 맙니다. 4월 의회선거에서 사회주의 세력이 패하면서 자유주의 정부는 본격적으로 노동자들과 사회주의 세력을 분쇄합니다. 감옥에 가두고 작업장을 폐쇄하죠. 노동자들이 6월 폭동을 일으키지만 이 역시 실패합니다. 정부에서 곧바로 헌법 제정, 언론과 출판의 자유 보장, 불법 체포 금지, 평화적 집회와 단결권을 인정하자 사회주의 세력은 발붙일 곳을 완전히 상실하게 되죠.

홉스봄은 2월 혁명의 역사적 맥락을 유심히 살핍니다. 특히 2월 혁명 자체가 호황과 불황의 리듬에 큰 영향을 받았음을 밝힙니다. 호황과 불황의 리듬, 바로 본격적인 자본주의의 운동 말입니다. 즉,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몸짓을 하니(호황->불황) 정치를 뒤집어엎을 만한 파도(2월 혁명)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불황이 자연재해 등의 영향을 받는 농업 부문에서 초래되었다면 2월 혁명을 기점으로 불황은 자본팽창의 결과로 초래됩니다. 그래서 단순히 ‘빈민’(대혁명 때는 파리에 노동자가 별로 없었습니다. 대부분 빈민이었죠. 지방에서는 많은 농민이 혁명에 참여했고요.)이 아니라 ‘노동자’가 혁명의 주체가 된 것이죠. 이제 정치는 자본주의의 움직임에 극히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실제로 2월 혁명의 급격한 실패 이후 저점을 찍은 경기는 다시 고점으로 치솟습니다. 이에 오직 발전에만 초점을 맞추도록 모든 사회제도가 방향을 급선회하죠. 홉스봄은 말합니다. 산업혁명이 정치혁명을 삼켜버렸다고. 혁명의 시대가 자본의 시대로 접어든 것입니다.

경제가 정치를 삼켰다는 증거는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단적으로 2월 혁명으로 탄생한 제2공화국은 사회주의 세력 타도 이후 나폴레옹의 사촌이자 의붓외손자 루이 나폴레옹을 대통령으로 선출합니다. 얼마 후 루이 나폴레옹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름으로써 제2제국 시대가 열립니다. 혁명을 두 번이나 했으면서 이게 말이 되느냐고 물으신다면 말이 된다고 답해야겠죠? 우리나라도 비슷하지 않았습니까? 김동택 선생님이 첫 강 때 말씀하신 것처럼 ‘부자 되세요!’의 마법은 예나 지금이나 효과만점인 듯합니다.



프랑스의 마지막 황제, 루이 나폴레옹. 마르크스는 그의 쿠테타를 나폴레옹의 쿠테타와 비교하며 "역사는 반복된다. 첫 번째는 비극으로서 두 번째는 희극으로서"라고 말했다. 이 희극에는 파리 코뮌이라는 비극이 따라왔다.



제2제국은 경제 발전을 제일순위로 정하고 생산자의 권력을 보장합니다. 경제적 호황에 힘입어 대내적으로 공업과 농업발전을 촉진하고 대규모 기술개발과 발명가들을 엄청나게 지원합니다. 요즘 말로 하면 ‘창조경제’ 비슷하달까요? 분명 루이 나폴레옹은 정치보다 경제에 상당히 치중합니다. 그러다 보니 거물급 은행가와 건설업자들이 꼬였고, 그 결과 파리라는 도시를 근대적으로 재건하게 되죠. ‘근대’라는 것이 필연적으로 부르주아적 미감과 일맥상통하는 것은 물론이고, 혁명의 기억 때문에 바리케이드를 만들지 못하게 도로의 폭을 줄이거나 공공시설물을 잔뜩 설치합니다. 이른바 파리 개조 사업인데 그때도 ‘개조’는 시대적 화두였나 봅니다. 제국을 경제성장으로 단결시킨 루이 나폴레옹은 대외적으로 팽창 정책을 실행합니다. 그 당시 팽창 정책이었던 ‘전쟁’과 대통령의 ‘비즈니스 해외 순방’을 연결하는 건 무리일까요?



정치의 부재, 균형의 파괴

홉스봄은 혁명의 실패와 자본주의의 본격적인 팽창이 불가피하게 부르주아가 승리하는 시대를 만들었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그는 부르주아의 승리가 곧 부르주아의 정치적 지배를 뜻하는 것은 아니었음을 분명히 말합니다. 이 부분이 바로 홉스봄 역사서술의 ‘디테일’이 아닐까 합니다. 역사를 뭉뚱그리지 않고 세세히 살펴보는 것이죠. 실제로 당시 정치적으로 힘을 발휘한 인물들은 대부분 지주세력이나 대토지를 소유한 귀족(의 후손)이었습니다. 부르주아들은 산업혁명 이후에도 한동안 ‘쩜오’로서 살았던 것이죠. 그들은 구체제에 반대하는 혁명세력으로부터 이탈해 기존 지배체제와 타협하는 노선을 걸었을 뿐입니다. 다만 홉스봄이 자본의 시대라 명한 것은 일종의 역사적 경향으로서의 자유주의적 발전을 부르주아가 지배했기 때문입니다.

부르주아는 사회주의 세력 몰락 후의 제2공화국처럼 회유책을 펼쳐서 혁명을 잠재웁니다. 동시에 정치권력에도 적당히 타협합니다. 마치 전후 일본의 자민당처럼 아주 효과적인 정경유착을 해온 것이죠. 마침 경제도 활황이었고 제3제국 때도 이 기본적인 기조는 계속 이어집니다.

하지만 그 속은 계속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빈부 격차가 유례없이 벌어지고 중심과 주변부가 분화되죠. 소수의 승리자가 다수의 패배자를 착취하는 형태로 국제관계가 재편된 것입니다. 홉스봄은 사회적·지리적 양극분해가 심화되었다며 균형이 파괴된 시대라 명하죠. 이때 정치는 별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제2제국에 이르면 상당히 반민주적인 제도를 펼치기까지 하죠. 참고로 루이 나폴레옹의 별명이 ‘스핑크스’였는데 그가 상당히 ‘불통’이였기 때문입니다. 말을 잘 안 하고 해도 잘 못했다고 하죠.

결국 제2제국은 보불전쟁에 패하면서 1870년에 완전히 끝납니다. 독일군의 진격으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파리 노동자들은 그때까지 쌓였던 모든 불만을 토해내며 마지막 혁명, 파리 코뮌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너무나 끔찍하게 진압당하고 때를 맞춰 경제마저 대불황기에 접어들자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집니다. 정치의 부재가 이 모든 상황을 브레이크 없이 폭주하게 만든 것입니다.



1873년의 'Black Friday'. 증권거래소 앞의 사람들이 패닉에 빠져있다.



이처럼 묘하게 오늘날의 대한민국과 상당히 겹쳐 보이는 자본의 시대 말미에서 홉스봄은 의미심장한 결론을 내립니다.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심화가 결국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종언을 고했다고 말입니다. 정말이지 자본의 시대는 혁명의 패배와 더불어 시작되어 불황 속에서 막을 내립니다. 홉스봄이 자본의 시대를 1875년까지 잡은 특별한 사건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70년대 대공황의 중간 시점이었기 때문이죠. 대공황은 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과 보호무역주의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중소기업들이 다 문을 닫으면서 거대기업체만 몸짓을 불렸죠. 그러면서도 정치는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좌파와 우파가 뒤엉켜 혼란스러웠죠. 프랑스만 해도 드레퓌스 사건으로 내전이 벌어질 뻔합니다. 당연히 무정부주의적 정서도 최고조에 달하게 되어 정부를 조롱하는 시와 노래가 도시에 넘쳐흘렀습니다.

이 모든 상황의 새로운 돌파구로 제국주의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1875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까지 바야흐로 제국의 시대가 전 세계를 뒤덮은 것입니다. 자본의 시대는 그 끝에 이르러 온갖 모순을 껴안고 미친 듯이 달려가 제국의 시대에 바통을 넘겼습니다. 장기 19세기의 마지막을 장식한 제국의 시대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요? 절망일까요? 아니면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게 될까요? 다음 주 19일(목) 있을 홉스봄 마지막 강의가 어느 때보다 기대됩니다.



2,000만 명이 죽은 제1차 세계대전. 역사는 반복된다.




- by 편집부 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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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스봄 강의안(김동택 선생님).hwp


 



Posted by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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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예림

    잘 읽었습니다^^

    2014.06.17 15:38 [ ADDR : EDIT/ DEL : REPLY ]
  2. 달나무

    첨부파일 다운로드가 안됩니다.

    2014.07.15 16:24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