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사 / 한길아트2014. 8. 22. 10:46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들과 어떻게 만날 것인가

 

 

편집자 映은 올해 내 출간을 목표로 '김민웅의 인문정신'을 요즘 열심히 작업 중이랍니다! 김민웅 선생님의 글을 혼자 보기만 아까워, 살짝 이곳에 공유합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 사회가 보다 정의로운 '정치의 정신구조'를 갖추어 '어두운 시대를 이기는 정치'를 실현해나갈 수 있을까요? 뉴스만 보면, 아니 보지 않고 있어도 마음이 막막한 요즘, 함께 고민하면 그 정신적인 무게라도 조금 덜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덧. 아직 김민웅 선생님도 원고를 계속 보완하시고 있고 편집도 아직 진행 중이라, 나중에 실제로 책에 실리는 글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어두운 시대를 이기는 정치

 

한나 아렌트는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Men in Dark Times)에서 ‘암담한 시대’란 “공적 영역의 소멸과 함께 사람들이 사적인 삶에만 관심을 갖게 될 때” 온다면서, 이런 상황에서는 “공적 문제를 논할 수 있는 정치가 사라진다”고 갈파한다. 더군다나 이런 시기에 권력은 “진실을 하찮은 문제처럼 만들어 버리고”, 사람들은 자기 문제 외에는 관심을 갖지 않게 된다면서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정말 중요한 문제에 대한 판단력이 마비되고 그 결과는 비극이 된다고 경고한다. 진실은 자꾸 하찮은 것처럼 밀려나고, 본질과는 관련이 없는 일들이 언론과 방송, 권력의 담론에서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뭔가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공적 영역에서 해결할 수 있는 정치가 제대로 가동하고, 그 과정에서 치열한 투쟁도 벌어져 대치와 갈등을 거치면서 어떤 해결점에 도달할 때 인간의 삶은 진보한다. 아렌트는 핍박받는 이들에게 공적 목소리가 박탈되는 상황은 정치의 붕괴이며, 이로써 이들은 그 사회에서 내부적 이민자처럼 취급받고 주변부적 존재가 되고 만다고 말한다. 이중적 고난을 겪는 것이다. 2014년 세월호 유가족들은 공적 정치의 붕괴로 말미암아 바로 이러한 처지에 놓였다. 그런 까닭에 이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로 말하고 행동하고 정치의 주체로 참여하기를 요구했던 것이다. 정치의 붕괴가 저지되지 못하면 그 여파는 세월호 유가족만이 아니라, 이들보다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은 이들에게도 필연적으로 확산된다. 세월호 사건의 강도를 가진 문제를 안고 있는 이들의 현실도 제대로 정치화되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들의 형편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세월호 참사 이후 진행된 '가만히 있으라' 시위. © 2014 프레시안(최형락)

 

 

정치가 정당의 정치인에게만 독점되고 보통의 시민에게는 정치적 발언권과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막히면, 결국 공적 영역은 집권세력에게 장악되어 정치는 소멸되고 만다. 이를 막아낼 수 있는 길은 권력의 봉쇄전략에 맞서 시민의 공적 영역을 확장하는 치열한 투쟁이 있을 때 비로소 열리기 시작한다. 정당은 이러한 투쟁력의 정치적 본부이다. 그런 생각과 의지가 없는 반대정당(opposition party)은 자신이 의식하건 말건 기존질서의 하부구조로 기능할 뿐이다.

 

 

마루야마 마사오가 근대적 자각을 하긴 했으나 제국주의의 역사에 대한 낮은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하고 나선 나카노 도시오(中野敏男)는 『오쓰카 히사오와 마루야마 마사오』에서, 타자에 대한 책임 있는 반응을 하는 문제에 대한 발언은 우리의 현실에서도 경청할 가치가 매우 높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고통 받고 있는 타자의 출현이 우리 자신의 자아를 혼란에 빠뜨리고, 자아가 위기를 겪을 때 비로소 중요한 정치사회적 변화가 가능해진다고 말한다. 그는 특히 일본군에게 끌려간 위안부 할머니들의 등장과 관련해서 “타자의 시선 앞에서 생기는 주체의 분열이 응답에 대한 절실한 희망을 낳아 타자에 응답하면서, 주체 안에서 생기는 분열과 항쟁은 한 개인을 벗어나 정치화되어 책임을 지는 사회적인 것이 될 것이다”라고 한다. 이는 레비나스의 ‘타자의 얼굴에 대한 윤리’와 유사한데,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대체 어떤 책임과 역할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통한다.

이때 ‘주체의 분열’이란 자기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자신, 그리고 자신의 공동체에 대해 의문을 품고 전혀 다른 각도로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해야 타자에게 폐쇄적이거나 적대적이었든지, 아니면 무반응이었던 자신을 깨뜨리고 고통을 겪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나갈 수 있다. 이것은 그 자신의 정체성을 세우는 작업에도 혁명적인 의의를 갖게 한다.

 

 

정치는 바로 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들과 어떻게 만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 문제를 배제한 정치는 정치가 아니라, 권력게임에 불과하다. 자기들만의 리그인 것이다. 우리 사회가 정치에 대해 분노하고 있는 대상은 바로 이 권력게임이지, 고통을 겪는 이들과 연대하면서 이들의 문제를 어떻게든 풀려고 하는 정치는 아니다. 바로 이러한 정치가 없어서 화를 내고 있고 절망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의 정신구조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무지한 스승』에서 “교육이란 지식전달을 넘어서 정신구조를 형성하는 작업”이라는 말을 한 바 있다. 교육만이 아니라 정치 또한 그렇다. 잘못된 정치는 그 사회의 정신구조를 왜곡하고 퇴행시킨다. 무자각 상태로 이끌어 결국 비극을 반복하도록 만든다. 정치는 그래서 그 정신구조가 매우 중요하다. 정신적 퇴폐 상태에 있는 정치는 재앙이다. 한국정치는 이러한 정신적 퇴폐 상태에 빠져 있다. 집권세력은 권력을 사유화하고 있고, 야당은 국민적 고통을 자신의 정치적 육체와 영혼에 온전히 빨아들여 투쟁하는 능력을 갖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를 빼놓고 대부분의 정치적 관심은 기득권 유지에 있다.

 

 

말씀하시는 김민웅 선생님의 모습. 저작권은 한길사에, 초상권은 김민웅 선생님께 있습니다^^

 

 

국민의 생명 위에 있는 그 어떤 정치도, 어떤 권력도 이 세상에는 없다. 그런 권력이 있다면 당연히 그것은 투쟁의 대상 외에 다름이 아니다. 그래야 진정한 정치가 복원된다. 이는 기존 정치인들과 정당의 면모가 완전히 바뀌는 용광로와 같은 과정을 거쳐야 함을 말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현실 앞에서 좌절하지 않고, 용기와 의지를 내고 진전하려는 이들의 마음이 모이면 그것이 새로운 정치의 중심이 된다. 새로운 역사는 언제나 새로운 의식과 의지의 산물이었다.

 

전략과 정책의 문제 이전에, 가장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과 함께 하려는 정치에서 새것이 태어난다. 그런 정치에서 민생이 희망을 품게 되며, 민주주의도 발전하고 역사도 앞으로 나아간다. 방법 이전에 진심과 진실이다. 이것 없이 세우는 집은 모래 위의 가건물일 뿐이다. 이 마음을 기르고 일깨우는 일은 교육과 정치가 결합하는 길에서 찾을 수 있다. 교육혁명과 정치혁명은 한 몸이다. 어떤 시대도 이러한 결합 과정에서 혁명을 탄생시켰다. 여기서 교육은 단지 초등학교에서 대학에 이르는 제도교육만이 아니다. 시민사회 전체의 변화를 가져올 평생학습의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시민교육까지를 포함한다. 이를 통해 전개되는 사상과 철학, 가치논쟁과 사회의식의 성숙 과정은 정치의 정신구조와 그 작동 과정을 다르게 만들 수 있다.

 

근본적이며 긴 시간이 요구되는 작업이라고 해서 엄두가 나지 않거나 당장의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여길 수 있다. 바로 그런 생각이 우리의 정치를 타락시켜 온 것이다.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고 정의로운 사회를 이루어나가는 원대한 목표를 언제나 뜨겁게 가슴에 품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해나가는 지속적인 노력이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바꾼다. 더 나은 미래를 포기하지 않으려거든 교육은 정치를 근본적 질문으로 삼고, 정치는 교육이 기른 비판의 철학적 공세를 감수해야 한다. 그 치열한 대치와 비판, 그리고 토론의 과정이 우리의 공동체를 보다 의롭고 뜻있게 만든다.

 

민주국가와 공화정의 정치는 이런 방향을 향한 투지와 열정에서 힘차게 자란다. 이것을 함께 만들어가는 작업과 과정, 그 자체가 이미 우리가 바라는 국가의 뿌리와 줄기가 된다. 이로써 이루어지는 정치는 인간의 일상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매 순간의 호흡이 된다. 인간이 인간답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자유와 권리는 언제나 정치적인 주제다. 인문정신과 정치는 결국 한 몸인 것이다.

 

2014년 8월

김민웅

 

Posted by 한길사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