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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그레이트북스2015. 1. 7. 14:07

 

한나 아렌트는 평범한 사람을 연기한 아이히만에게 속은 것일까

 

 

 

 

제2차 세계대전의 종언과 더불어 나치 독일의 잔혹한 행위들이 드러났다. 특히 600만명 이상의 유대인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내용이 알려지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이 과장된 것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유대인 학살의 길은 1935년 독일 뉘른베르크 법에서 시작했다. 이 법에 따라 유대인들은 모든 정치적 권리를 박탈당했고, 심지어 유대인과 독일인의 성관계마저 금지됐다. 유대인들은 처음 국외로 이주하도를 강요받았고, 이후 사회적인 강제 분리, 강제수용소로 이송, 그리고 결국 아우슈비츠와 같은 죽음의 수용소에서 학살 당했다. 유대인 문제를 ‘최종 해결책’을 통해, 즉 유대인 모두를 절멸시켜 해결하려던 작업은 아돌프 히틀러의 지시와 나치 2인자 하인리히 힘러의 최종지휘책임 하에, 아돌프 아이히만이 가장 체계적으로 또 ‘탁월한 방식’으로 수행했다.

전쟁이 끝난 뒤 히틀러와 힘러는 자살했고 많은 전범들이 뉘른베르크에서 재판을 받았지만, 아이히만은 사라졌다. 그는 수년간 숨어 지내다가 이탈리아를 거쳐 아르헨티나로 도망했다. 이후 1960년 5월 이스라엘 비밀경찰에 체포ㆍ압송돼,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서 세계인의 주목을 받으며 세기의 재판을 받게 되었다.

 

 

 

“악마는 평범했다”는 한나 아렌트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정치철학자이자 유대계인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과 같은 해인 1906년에 태어났다. 부모는 독일 사회로 완전히 동화된 지식인들이었고, 그는 유대인의 자각 없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렌트가 유대 민족의 운명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졌던 것은 20대 후반이다. 그는 원래 철학과 기독교 신학에 관심이 있었다. 나치 세력이 커져가고 유대인에 대한 압박이 심해지던 중 아렌트는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 건설을 목표로 삼는 시온주의자들의 부탁을 받아 도서자료 수집을 도왔고, 그 일로 비밀경찰에 체포돼 일주일간 심문을 받고 몰래 프랑스로 탈출했다. 그의 유대인 연구가 시작된 것은 거기서였다.

 

프랑스에서 수용소로 끌려가 아우슈비츠로 이송될 뻔 한 상황에서 극적으로 다시 도망쳐 미국으로 망명한 뒤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라는 저서를 써서 학문적 명성을 얻었다. 1950년에 미국에 귀화했고, 약 10년 뒤 프린스턴대 최초의 여성 전임교수가 된 아렌트는 1960년 아이히만의 체포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으로 건너가 재판을 참관했다. 당시 보고 들은 것을 녹여 1963년에 재판 관련 기사를 연속으로 출간했고, 뒤에 이를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으로 냈다. 이 책으로 아렌트는 유대인 사회의 비판의 중심에 서게 됐다.

사람들이 예상했던 아이히만의 모습은 악마와 같은 희대의 살인마였다. 하지만 아렌트가 책에서 묘사한 아이히만은 지극히 정상의 정신 상태를 하고 있었고, 가족을 챙기는 부족함 없는 아버지이며, 자기 책임을 성실히 수행하는 공무원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주어진 (나치의) 법을 잘 수행하는 시민이었다. 다만 그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타인의 입장에 서서 생각할 줄 몰랐으며, 자신이 행하는 일의 의미를 물어보지 않고 그저 맡겨진 일에만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행한 일의 결과는 엄청난 악이었지만, 그 악의 뿌리는 오히려 평범한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아이히만에게서 우리는 악의 평범성만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책에서 아렌트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유대인 사회는 아렌트의 이런 평가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의 친한 친구들도 등을 돌렸다. 아렌트 못지 않게 유명한 철학자이자 절친이었던 한스 요나스가 절교를 선언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전세계 학계의 반응은 대단했다. 이 주제에 대해 수많은 저술과 논문들이 쏟아져 나왔고, 홀로코스트 같은 사건을 다루는 학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이 책을 평가하는 유대인과 비유대인 사이의 간극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베티아 스탕네트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

 

 

 

 

스탕네트 “악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001년에 독일에서 출간돼 지난해 영어로 번역된 베티아 스탕네트의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은 아이히만과 관련된 이 같은 아렌트의 명성에 직격탄을 날려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다. 스탕네트에 따르면 아이히만은 재판정에서 사형을 받지 않기 위해 가면을 쓰고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를 했다. 그 연기가 실패해 죽음을 피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아렌트는 그 연기에 속아 넘어갔다는 것이다.

스탕네트는 시기적으로 아렌트가 접할 수 없었던 자료들에 근거해 주장을 펴나갔다. 1990년대가 지나서야 공개된 수많은 자료들을 근거로 스탕네트는 전쟁 수행 중 아이히만이 단지 거대한 기계의 톱니바퀴에 불과했다거나 전후에는 원래의 순진한 모습으로 지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했다. 아이히만은 나치 잔당들과 모임을 가졌고, 국가사회주의의 재건을 설계했으며, 1950년대 당시 독일 총리 콘라트 아데나워에게 서한을 보내 자신의 주장을 펴려고 했던 확신범이었다. 그는 토끼 교배 사업이 실패로 돌아가자 나치 전범 요제프 멩겔러의 친척 소유 공장에 취직했고, 딸의 남자 친구도 전범의 아들이었다. 아이히만이 아르헨티나에서 남겨놓은 글들에는 공격 성향을 드러내는 욕설과 모욕적 언사가 넘쳤다. 그가 남긴 글들과 인터뷰 자료를 보면 그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자신의 역할을 추구했으며, 청년들에게 새 시대의 심볼이 되기를 원했다.

이런 연구를 바탕으로 스탕네트는 아렌트가 비록 제한된 자료를 갖고 최선을 다해 연구를 수행했으며 또 용기 있는 판단을 내리기는 했지만, 가면을 쓴 아이히만에게 결국 속았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세상에 나온 뒤에 사람들의 관심과 연구의 초점은 ‘악의 평범성’ 개념을 중심으로 맴돌게 되었고, 정작 문제의 중심이어야 할 아이히만의 행태나 홀로코스트로부터 사람들의 시선은 멀어졌다고 비판한다. 아렌트가 의도한 결과는 이런 것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아렌트의 선구적인 통찰은 변함없어

유대인들에게 아렌트는 묘한 존재였다. 아이히만과 관련되기 이전에도 아렌트는 유대인 주류 사회와 많은 점에서 의견이 달랐다. 예를 들면 유대인 독립국가 건설 문제를 놓고도 그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 1940년대에 들어서면서 유대인 연합체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독립적인 주권국가를 건설하겠다고 선언했다. 국가 없는 민족으로 받았던 수난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는 자신의 주권국가를 가질 필요가 있다는 취지에서였다.

하지만 아렌트는 반대했다.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이미 팔레스타인 사람과 아랍인, 그리고 유대인이 공존하며 살고 있었다. 유대인은 소수였다. 거기에 유대인의 주권국가를 건설한다는 것은 결국 다수 인종을 정치적 소수자로 전락시켜 자기 민족이 당했던 일을 똑같이 당하게 하는 것이라고 아렌트는 비판했다. 그의 지적은 이미 현실이 된지 오래다.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담긴 통찰은 아이히만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인간 자체에 대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 점을 항상 간과해왔다. 양심적인 유대인들에게 아렌트는 용기 있는 학자로 많은 존경을 받고 있다. 예컨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비인도적 행위에 비판을 주저하지 않는 그런 유대인들이다.

새로운 사실에 근거한 스탕네트의 연구는 아이히만에 대한 평가에 또 다른 시각을 제시해 많은 것을 바꾸어 놓을 것이다. 사실관계에 대한 수정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렌트가 해놓은 작업의 중요성이 스탕네트의 책으로 뒤집히지는 않을 것 같다. 세일라 벤하비브 미국 예일대 교수는 스탕네트의 책 때문에 아렌트의 인간의 악행에 대한 평가 자체가 근본적으로 수정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스탕네트의 책이 나온 뒤 아이히만에 대한 아렌트의 용기 있는 판단과 평가를 중심으로 한 ‘한나 아렌트’라는 영화가 나온 것도 흥미롭다.

유대인 사회와 아렌트의 갈등 관계를 염두에 둘 때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번역했던 사람으로서 무엇보다도 스탕네트의 연구가 가져올 아렌트에 대한 학문적 연구의 정치적 지형 변화가 궁금해진다.

 

 

김선욱 숭실대 교수ㆍ철학

 

원문출처 한국일보

http://hankookilbo.com/v/ae374fcc22ed4f94b6ee62b6d06675f8

 

Posted by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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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혜진

    오타있어요.
    215쪽 밑에서 7번째 이동함께 따라 -> 이동함에 따라

    2015.09.24 16:00 [ ADDR : EDIT/ DEL : REPLY ]
    • 정혜진 님, 세심하게 읽고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확인해보고 정정하겠습니다!

      2015.10.08 16:44 신고 [ ADDR : EDIT/ DEL ]

한길그레이트북스2014. 9. 24. 09:56

한길인문고전아카데미

아서 단토 깊이 읽기 -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을 탐색하다

『일상적인 것의 변용』

 

 

한가로운 토요일 오전의 미술관을 좋아하시나요

 

아무 말 없이 벽에 걸려 있는 그림을 보며 말로 된 위로보다 위안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대리석 조각상을 마주하는 게 체온보다 더 따뜻할 때도 있고요. 보고 싶은 전시회가 생기면 별 준비 없이 가보는 편이지만, 현대미술일 경우에는 망설여집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모든 경우에 들어맞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현대미술 전시에 관해서만큼은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가을에 다시 시작된 한길인문고전아카데미 ‘아서 단토 깊이 읽기’는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찾게 된 미학의 역사를 공부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강의를 맡은 김혜련 선생님은 아서 단토의 『일상적인 것의 변용』을 번역하셨는데요, 예술철학뿐만 아니라 인식론, 역사철학, 행위이론, 심리철학에 걸친 단토의 철학을 세 가지 질문을 통해 풀어냈습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할 수 있는가

 

언어의 의미가 지시대상이나 항구적인 본질에 기초한다는 생각을 의심하는 비트겐슈타인의 반(反)본질주의적 혁명은 예술철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렇다면 낱말의 의미는 어떻게 결정될까요.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언어의 의미는 생활세계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용법을 따릅니다. 우리가 표준어라고 부르는 것도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데, 이는 한 사회의 중심축을 이루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하고 이해하는 방식에 따라 낱말의 의미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술’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그것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분석을 경청하기보다 실생활에서 사람들이 ‘예술’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상황에서 이 말을 사용하는지 관찰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예술사와 미학의 역사에서 예술의 본질로 제시되었던 것들은 각각 해당 문화권에서 사람들이 예술에서 중요한 것으로 이해하고 ‘본질’의 지위를 부여했던 것입니다. 예술이란 내면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입장은, 낭만주의 시대에 천재 예술가들이 제2의 창조자로서 자신들의 미적 이념(aesthetic idea)이나 내적 비전(inner vision)을 예술형식으로 체현했던 것이고, 감상자들의 작품의 완성도와 미적 가치를 숭앙하며 예술의 본질을 표현성에 있는 것으로 수용했던 관행입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미니멀리즘 예술은 감정의 표현을 목표로 하지 않고 단지 예술매체의 물질성 자체를 보여줍니다. 미니멀리스트 미술이나 음악, 무용 같은 예술은 내면에 대한 관심과는 거리가 멀고 오직 눈이나 귀로 접근할 수 있는 매체의 물질적 면모를 흥미로운 것으로 다룹니다. 예술은 의미 있는 형식이라는 논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형식을 확정 지을 수 없는 퍼포먼스나 일회성 해프닝, 또는 형식을 갖고 있기는 해도 형식이 중요시되지 않는 다다이즘이나 초현실주의 예술에는 형식주의 정의를 적용할 수 없습니다.

 

 

 

들라쿠르아, 「민중을 이끈 자유의 여신」

 

 

 

루이스 부르조아, 「감사와 은총」(오른쪽) 「본성탐구」(왼쪽)

 

 

 

 

 

 

 

 

 

 

 

 

 

 

 

 

예술의 본질에 대한 설명으로 제시되었던 것들이 이처럼 예술의 하부집합들의 미적 가치와 유의미성을 지시할 뿐이라면, ‘예술’이라는 명사는 과연 정당하게 사용될 수 있는 것일까요. 우리가 작품에 붙이는 ‘예술’이라는 낱말이 사실은 명목적인 명찰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떤 근거로 어떤 것을 예술이라 부르는 것일까요. 어떤 것은 예술이지만 어떤 것은 예술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에 대해 단토는 전통적 의미의 예술의 본질을 거부하면서 특이한 종류의 본질을 밝히고 있습니다.

 

『일상적인 것의 변용』 제1장에서 단토는 사고실험의 한 형태로서 가상의 전시회를 엽니다. 이 전시회에는 단토의 예술개념과 예술철학의 성격을 결정짓는 붉은 사각형들이 등장합니다. 이 붉은 사각형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다른 점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차이점이라고는 오직 작품을 만든 제작자와 제목이 서로 다르다는 것뿐이죠. 이 붉은 사각형들에는 각각 「키르케고르의 기분」,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민족」, 「니르바나」, 「붉은 사각형」, 「무게」라는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이 전시회에서 예술가는 의도는, 첫 번째 어떤 물리적 대상에게 예술의 지위를 부여하려는 것과 연관됩니다. 이런 종류의 의도는 단순한 지각적 식별능력에 의해 파악되지 않죠. 붉은 사각형들이 겉보기에는 차이점이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두 번째, 예술작품의 구체적인 지각적 면모에 의미론적 기능을 부여하는 일을 합니다. 예를 들어 「키르케고르의 기분」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사각형의 붉은색은 불안과 연관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색으로서 붉은색 자체가 불안을 나타내지는 않는데, 「키르케고의 기분」의 붉은색이 불안감을 표상할 수 있는 것은 그 작품을 만든 화가가 그 사각형의 붉은색으로 하여금 키르케고르의 심리적 상태를 지칭하도록 의미론적 기능을 부여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예술가의 의도는 작품 제작 당시에 예술가가 속해 있는 예술계에서 수용되는 예술개념과 예술이론, 규약 등에 의해 제한됩니다.

 

단토가 제시하려는 예술작품의 존재론은 바로 예술가가 작품에 대해 갖는 ‘의미론적 기능의 부여 가능성’을 축으로 합니다. 즉 작품의 개체화는 작품의 물리적 상대역(physical counterpart)의 단순한 동일성에 의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가 작품에 부여하는 예술이론적 차원의 지향성(intentionality)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지요. 원칙적으로 예술가는 작품에 어떤 의미론적 기능이든지 부여할 수 있겠지만, 그 가능성은 그가 속한 예술계 내에서 취할 수 있는 이론들의 범위에 의해 제한됩니다.

 

 

그렇다면 예술작품의 의미는 예술가에 의해 결정될까요

 

 

브뤼헐,「이카로스의 추락」

 

 

 

이 그림을 보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시나요. 그림의 제목은 「이카로스의 추락」입니다. 오른쪽 하단에 그려진 바다에 빠진 다리는 그림 전체에서 시각적으로 그리 큰 비중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목을 알게 되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이 그림을 이카로스가 공중에서 추락해 물에 빠진 신화를 암시하는 것으로 동일시하는 것은 특정한 서사적 틀에 의한 지각 과정의 결과입니다. 이러한 해석 가능성의 단서는 일차적으로 그림의 제목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제목은 해석을 위한 지침이며, 그 작품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 그 주제가 무엇인지에 관한 이론을 제시합니다. 단토가 제안하는 ‘예술적 동일시’(artistic identification)는 단순한 지각 양태가 아니라 문제의 대상에 예술계라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동일성을 부여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존재론적 변용(transfiguration)을 동반하는 변용적 동일시입니다. 관람자의 예술적 동일시를 통해 대상은 단순한 실재적 사물의 영역에서 의미의 영역, 이 경우에는 예술계의 영역으로 이동하는 것이죠. 따라서 작품에 제목을 붙이는 것은 단순한 명명이 아니며, 변용의 절차로서 해석은 선택된 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동일성을 대상에게 부여한다는 점에서 세례와 비슷합니다.

 

마르셀 뒤샹의 작품 「샘」의 소변기는 해석에 의해 예술적으로 동일시되기 전에는 단순한 실재적 사물입니다. 그러나 예술가와 해석자가 접근할 수 있고 이용할 수 있는 예술이론을 통해 단순한 실재적 사물에는 적용되지 않는 변용적 동일시를 수행하고, 그 결과 새로운 종류의 개체로 태어난 것이죠. 따라서 해석은 예술사에 관한 지식, 예술이론에 관한 지식, 나아가 근본적으로 예술개념 자체에 관한 지식을 통해 한 대상을 예술로 동일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단순한 실재적 사물로서 소변기의 동일성과 예술로서 소변기의 동일성의 차이가 지각적으로는 식별 불가능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럼 언제 한 사물에 대한 해석은 예술적 해석이 되는 것일까요

 

예술의 은유적 구조는 존재론적으로는 변용을 통해, 의미론적으로는 수사법과 표현 양식을 통해 구축됩니다. 예술이 지각적으로 음미되고 그 의미가 해석될 수 있는 것은 예술가의 의식을 매체를 통해 체현하고 관람자와의 소통 가능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죠. 감상자들은 수사법과 표현양식을 탐지해낼 수 있는 일종의 독해능력을 습득함으로써 예술작품의 은유적 의미를 해독할 수 있습니다. 작품을 순수한 눈으로 탐색하는 것은 작품의 표현적 속성, 즉 은유적 의미를 놓치는 것입니다. 반면에 작품을 마음의 눈으로 탐색하는 것은 작품의 의미를 매체의 결에서 분리시키고 추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탐색은 어느 것도 예술작품을 온전하게 다루지 못합니다. 감상자의 과제는 의미론적 규약에 따라 작품의 의미를 해독할 뿐만 아니라, 작품에서 수행된 수사법과 표현양식을 구별해냄으로써 매체의 결을 음미하는 것입니다.

 

단토는 제거될 수 없는 예술가의 개성이 작품의 매체적 특질을 통해 나타나는 것을 스타일이라고 말합니다. 스타일은 곧 사람이다는 말도 있죠. 예술을 아는 것과 사람을 아는 일이 참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길인문고전아카데미 다음 강의는 ‘레비-스트로스 깊이 읽기’입니다. 문명과 야만의 경계 그 너머를 얘기하는 시간이 될 텐데요, 이번 주 목요일 마포도서관에서 뵙겠습니다.

                                                                                               

-편집부

*보다 자세한 수업내용은 강의안을 참고하세요.

아서단토 깊이읽기_김혜련 선생님.hwp

 

 


일상적인 것의 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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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고와 미의 근원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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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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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2014.09.24 21:02 [ ADDR : EDIT/ DEL : REPLY ]
  2. 안녕하세요. 제가 "일상적인 것의 변용" 이라는 번역본 책을 읽고 있는데, 뜻이 안 잘 통하는 곳은 원문과 대조하면서 읽고 있습니다. 원문과 대조하면 대부분 이해가 가는데, p. 70 (번역본) [원본 p.2] 다음 문단은 조금 어렵네요.

    그러나 그 그림은 붉게 칠해진 캔버스의 평면 처럼 공허하지는 않고, 아무것도 씌어 있지 않은 페이지처럼 공허한 것은 아닌데, 왜냐하면 내가 내방의 벽을 붉게 칠했다면 그랬을 것 처럼 그 그림에 어떤 기술이 적합한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Yet the painting is not empty in anything like the way that mere expanse of red-painted canvas is, which is not even empty as a blank page might be, for it is not plain that it awaits an inscription, any more than a wall of mine might were I to paint it red.

    원문 자체가 난삽하네요. 아서 단토님이 살아계시면 직접 질문을 하고 싶지만, 이제는 그럴 수도 없는 일이고. 번역자가 단토가 살아 있을 때 문의를 좀 했으면 좋았을 뻔 했네요. 전체적인 문장구조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할 듯 한데, "it awaits an inscription" 에서의 "it"가 무엇을 가리키는가가 번역의 관건인 듯 합니다. 번역본에서는 문장구조를 파악할 때 크게 두가지 선택을 했습니다. (1) 관계대명서 "which" 가 가리키는 것이 가까이 있는 "mere expanse of red-painted canvas" 가 아니라, 멀리 있는 "the painting" 라고 판단을 했습니다. (2) 그리고
    "it awaits an inscription" 에서 "it" 가 는 문맥상 관계대명서 "which" 와 같은 것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번역본에서는 "which" 가 "the painting" 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it" 도 "the painting" 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which" 와 "it" 가 "mere expanse of red-painted canvas" 를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지는 않는지요?

    2016.01.17 13:20 [ ADDR : EDIT/ DEL : REPLY ]
  3. 0677

    그리고, it is not plain that it awaits an inscription 이라는 문장의 뜻이 분명하지 않은데, 문맥상 "it awaits an inscription" 은 어떤 대상이 누군가가 뭔가를] 새겨 주기를 기다리면 내용이 채워져 있는 것이 아니므로 empty 라고 볼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그 자체로 충분하므로 empty 가 아니다는 전제하에 하는 말 같습니다. 이 문단에는 empty 라는 술어를 쓸 수 있는 3가지의 종류의 물체가 언급됩니다. (1) The painting ( 문자적으로는 'rather" (somewhat) empty 하지만 의미적으로는 그렇지 않은), (2) mere expanse of red-painted canvas ( 뭔가 inscription 을 기다리는 empty canvas), (3) 빈 페이지 (blank page) 가 그것입니다. (1) 은 painting 작품으로서 empty하지 않고, (2) 는 empty 이지만, (3) 만큼 empty 하지 않다고 합니다. (2) 가 (3) 만큼 empty 하려면 뭔가 inscription (새기는 것) 을 기다려야 되는데, (3) 과 달리, (2) 는 그게 분명하지 않아서 (3) 만큼 empty 하지 않다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내가 붉게 그린 벽" 의 경우에도 해당되는 거구요.

    2016.01.17 13:54 [ ADDR : EDIT/ DEL : REPLY ]
  4. 0677

    위와 같이 해석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단토는 책제목과 같은 제목의 논문 (The Journal of Aesthetics and Art Criticism, vol 33, Issue 2, 1974, 139-148)을 출판한 바 있는데, 거기에 비슷한 문장이 나옵니다. Yet the painting is not empty in the way in which a square of primed canvas, indiscernible from our work, may be: an empty canvas awaiting an Annunciation, say. empty canvas awaiting an Annunciation 에서 Annunciation 은 성모희보 또는 수태고지 라고 부르는 전통적인 그림을 말합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수태를 고지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죠. 즉, 이 귀절은 수태고지 그림을 그릴 빈 캔버스 라는 뜻입니다. "수태고지 그림을 기다리는 빈 캔버스"... 위 번역본에서는 이 귀절에 해당되는 것이 "it awaits an inscription" 입니다. Annunciation 대신 inscription 을 쓴 거죠. 번역본은 이 부분도 잘 못 파악한 것 같습니다. inscription 은 빈 캔버스에 새겨 넣을 어떤 것을 가리키고, Annunciation 은 특수한 형태의 inscription 이라고 볼 수 있죠. 그리고 "not empty in [anything like] the way that mere expanse of red-painted canvas" 는 붉은 페인트칠 것에 불과한 캔버스가 비어 있는 것과 같은 방식/의미로 (는) 비어있지 않다 고 번역해야 뜻이 잘 전달되는 것 같습니다. 그냥 붉은 캔버스 처럼 비어 있지 않다고 하면 뜻이 혼돈을 줄 것 같습니다. 수태고지를 기다리는 빈 캔버스는 문자 그대로 비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painting 은 "rather empty" 라고 앞에서 말합니다. 그리고 나서 이를 부정하는데,그냥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부분적으로 부정합니다. 즉, not empty in the WAY that empty canvas awaiting an inscription is empty. 뭔가 새겨지기를 기다라는 빈 캔버스가 비어 있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비어 있는 것은 아니다 인 거죠. 똑같이 비어 있는 빈 캔버스를 하나는 작품으로 하나는 단순 사물로 구분하려는 글이므로, 미세한 논리적인 구분이 중요한데, 이것이 번역과정에서 많이 무디어 진 것 것 같네요.

    2016.01.17 14:34 [ ADDR : EDIT/ DEL : REPLY ]

한길그레이트북스2014. 7. 29. 11:58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

저자
마루야마 마사오 지음
출판사
한길사 펴냄 | 1997-04-01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
가격비교

 


일본의 사상

저자
마루야마 마사오 지음
출판사
한길사 | 2012-10-25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지금의 일본을 있게 한 사상과 철학의 뼈대에 주목하여, 일본 그...
가격비교

 

 

3.11 대지진 이후의 일본, 세월호 참사 이후의 우리

 

 

"마루야마 마사오는 「군국지배자의 정신형태」에서 전전(戰前)의 일본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누가 결정하고 있는지 알 수 없고,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 결정과정의 문제를 지적하며 이를 '무책임의 체계'라고 칭하고 비판하였다. 나치 독일의 간부들은 자신들이 결정했다고 인정했지만, 일본의 간부들은 자신이 결정하려고 하지 않았지만, 현장의 분위기에 저항하기 어려웠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전후의 일본은 군사적인 발전을 일단 봉인함으로써 '무책임의 체계'로부터 멀어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사고에 대한 정부의 사고조사위원회와 민간 사고조사위원회는, 이구동성으로 전후일본의 에너지원을 공급했던 '원자력체제'가 일종의 '무책임의 체계'였다는 점을 지적했다. 즉 정(政), 관(官), 재(財), 학(學)계를 횡단하는 형태로, 누구도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스기타 아쯔시

 

 

 

 

 

 

지난 금요일,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열린 '마루야마 마사오와 동아시아 사상: 근대성, 민주주의 그리고 유교' 학회에 다녀왔습니다. 학회는 총 4부(1부: 일본 유학과 근대성, 2부: 에도 시대 유학과 일본 사상, 3부: 근대 일본과 한국 인식, 4부: 시민과 정치, 그리고 민주주의)로 진행되었는데, 특히  「현대의 인간과 정치」를 중심으로 마루야마 마사오와 일본사회를 논한 스키타 아쯔시 선생과 마루야마 마사오가 강조한 시민의 '정치적 교양'을 다룬 가루베 다다시 선생의 발표가 인상 깊었습니다.

 

'무책임의 체계'는 세월호 참사를 일으킨 우리 사회를 직시하는 데도 적절한 개념이지 않을까요. 참사 100일이 지나도록, 책임을 지고 물러난 총리는 후임 지명자의 연이은 낙마로 유임되고, 진상조사위원회도 구성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보며 우리 사회가 언제 책임의 체계를 세웠던 적이 있었나 자문하게 됩니다.

스기타 아쯔시 선생은 '무책임의 체계'를 벗어나기 위한 가능성을 마루야마 마사오가 현실주의의 함정」에서 제기한 현실주의 비판에서 찾았습니다. 

 

"정부의 동향이 '현실적'이며 민중이 추구하는 방향은 '관념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하지만 마루야마는 이러한 인식을 '두껍지만 짧은', 즉 단기적으로는 강력하지만 역사의 긴 방향성과는 일치하지 않는 현실성과, '가늘지만 긴' 현실성, 즉 표면적으로는 힘이 없을지라도 점차 실현해가는 방향성과의 대비를 통해 비판하고 있다"

-스기타 아쯔시

 

스기타 아쯔시 선생은 일본인들이 가장 중시하는 것은 '당대의 지배권력이 선택하는 방향'이었다고 지적합니다. 정부가 말하고 있는 것이 '현실적'이며 이와 다른 논의는 '비현실적''관념적'이라고 치부한다는 것이죠. 이는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세월호 참사는 일종의 교통사고이고, 이제는 슬픔을 내면화하고 경제를 살리는 데 집중하는 것이 현실적이라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마루야마 마사오는 말합니다. 실제로는 다양한 '가능성의 다발'이 있고, 우리는 그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고,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하지 말고,  좋다고 생각되는 방향을 향해서 현실을 조금씩 움직여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입니다.

 

이러한 다양한 '가능성의 다발'을 이야기하는 시민사회와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마루야마 마사오가 강조한 시민의 '정치적 교양'이 꼭 필요해보입니다. 이와 관련해 마루야마가 크게 영향받은 스승 난바라 시게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은 국민인 동시에, 또는 그 이전에, 각자가 한 명의 '인간'으로서 자기의 이성과 양심에 따라서 판단하고, 행동하는 자주자율적인 인격개성이다." 마루야마 역시 '정치적 교양'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시민의 덕성을 떠받친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즘 제가 편집을 마무리하고 있는 『마이클 오크숏의 철학과 정치사상』에서 저자 김비환 선생도 이와 비슷한 관점에서 우리사회를 예리하게 분석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제도의 정착과 순조로운 작동은 그 운용의 주체인 정치지도자들과 인민대중의 도덕적 성격과 불가분적인 연관성을 갖고 있다. 한국인의 자아가 아직 자유민주주의 제도의 운용에 적합하게 변형되지 않았다면 자유민주주의의 파행적 행보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자유민주주의는 불가피하게 민주제도를 운용하는 인간의 도덕적 특성이나 상태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유민주주의의 정상적인 실천은 곧 한국인의 자아가 자율적이며 주체적인 개인으로 변할 것을 요구한다."

 

결국 우리 사회의 정치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필요로 하는 자율적이며 주체적인, 정치적 교양을 갖춘 시민으로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김비환 선생은 "개인은 자신이 바라는 목적성취를 위해 행위하는 가운데, 사회의 공적인 규칙체계를 동시에 준수함으로써 어떤 존재, 시민으로서의 자아정체성을 드러내고 정립한다"고 말합니다. 시민은 인간이 가지는 공적인 존재로서의 정체성입니다. 우리는 사적인 삶만으로는 온전한 개인으로 설 수 없는 존재입니다. 사회의 시스템이 결국 우리의 도덕적 특성이나 상태를 반영한 것이라면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는 어떤 시민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요.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했던 여러 사상가들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마루야마 마사오가 말한 다양한 '가능성의 다발'을 찾을 수 있겠지요. 한길사에서는 이미 출간된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일본의 사상』외에 마루야마 마사오의 강의록 가운데 6,7권을 2015년에 출간할 예정입니다.

 

 

                                                                                                                                         -편집부

 

 

 

 

Posted by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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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그레이트북스2014. 7. 14. 18:11

아이히만의 나라


일본의 우경화, 폭주하는 역사전쟁

지난 7월 1일 벌어진 일입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판도라의 상자’인 집단적 자위권을 드디어 열어버렸습니다. 열어젖혔다는 표현이 더 알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대범하고 도발적인 일이었죠. 아베 총리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가능케 하는 헌법 해석 변경안을 각의 결정했고, 당연히 일주일 후부터는 평화 헌법 개헌 얘기까지 솔솔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동북아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게 저만 보이는 것은 아니겠죠?

바로 어제인 7월 13일 미국은 아베 총리의 결정에 ‘대담하고 획기적인 결정’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척 헤이글 국방장관이 미∙일 국방장관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한 소리니 미국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라 봐야겠죠. 이제 미국과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따른 실무적인 제반 사항을 처리해간다고 합니다.



미∙일 국방장관 회담. 이 자리에서 척 헤이글 국방장관은 아베 총리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의지를 '대담하고 획기적인 결정'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에 많은 비판이 따르고 있습니다. 동북아 국가들, 특히 중국과 우리나라의 공식∙비공식 외교 루트를 통한 항의가 거셉니다. 한중 정상회담에서 일본의 우경화가 집중적으로 거론되었음은 물론, 중국은 아예 ‘일본 전범 자백서 45편 연속 공개’ 프로젝트를 국가적으로 진행 중입니다. 일본 내에서도 많은 전문가와 시민이 아베 총리의 이번 결정이 위헌이라며 비판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실제로 위헌 소송이 제기되었고, 정치적으로도 자민당(여당)이 총력을 기울인 시가 현 지사 선거에서 민주당(야당)이 승리하는 등 여러모로 압박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7월1일 아베 총리(위 왼쪽 사진의 오른쪽)는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일본 내각의 해석 변경을 단행했다. 그는 전날 총리관저 앞에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위 오른쪽). (출처: 시사인live)



사실 집단적 자위권은 꽤 오래된 ‘떡밥’입니다. 자위대가 창설된 1950년대에도 그랬고 베트남 파병 문제가 불거진 1970년대에도 그랬죠. 하지만 언제나 일본은 ‘최소한’의 원칙을 지켰습니다. 최소한의 방어권만을 유지한다는 것이죠. 이는 교전권과 군대의 포기로 이어졌습니다. 물론 이러한 결정이 전쟁범죄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현실적인 이해득실을 따진 결과에 가까웠죠. 국방을 미군에게 맡기고 자신들은 경제발전에 온 힘을 다하겠다는 매우 현실적인 전략 말입니다.



1954년 자위대 창설식. 당시만 해도 돈이 없던 일본은 기존 경비대를 확장하는 수준에서 만족해야 했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오늘날, 일본의 군사력은 세계 7위를 달성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전략이 지금 일본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역사는 돌고 돌아요. 해결하지 못한 역사적 문제는 늘 일본을 괴롭히죠. 일본은 자신이 저지른 전쟁범죄와 반성하지 않는 태도 때문에 엄청나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과 ‘동반자’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70년 동안 하지 않고 버티던 사과를 할 바에야 미국을 등에 업고 중국과 대척점에 서겠다는 것이 지금 일본 우익의 생각입니다.


문제는 반성, 일본의 아렌트 신드롬

결국 모든 문제의 핵심은 반성입니다. 자신이 저지른 과오에서 한두 번 눈 돌리는 건 쉽죠. 하지만 언젠가 반드시 역사는 그 책임을 묻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일본에서도 역사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사회가 우경화될수록 자성의 목소리도 함께 높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기세를 타고 최근 일본에서 한나 아렌트 신드롬이 일고 있습니다. 영화 「한나 아렌트」를 보기 위해 길게 줄까지 서고 심지어 좌석이 매진되자 서서 보게 한 극장도 있다고 합니다. 아렌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지난 10개월 동안 대략 5천 부가 판매되었다고 하니 정말 아렌트 신드롬입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한길사) 일본에서 아렌트 신드롬을 이끌고 있다.



아렌트는 시대가 낳은 정치철학자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참혹상에서 간신히 탈출한 그는 이후 ‘인간의 조건’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됩니다. 그 와중에 특파원 신분으로 참석하게 된 한 재판에서 운명적인 사람을 만나죠. 바로 카를 아돌프 아이히만입니다. 아이히만은 나치 친위대 중령으로 수많은 유대인을 짐짝처럼 끌고 와 가스실에 내던진 장본인이었습니다. 이 악마 같은 사내에게서 아렌트는 지극히 평범하고 무능력한 공무원의 모습만을 발견하죠. 그렇게 내린 결론.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

“사고와 성찰의 부족으로 생기는 판단의 무능성이 죄악을 부른다”는 아렌트의 말 속에는 악이 갖는 평범한 위상이 잘 드러나 있죠. 악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지극히 평범한 모습으로 도사리고 있으며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춘 순간 선량하고 평범한 사람도 얼마든지 악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극적 분출이 바로 파시즘 같은 광기 어린 집단성이고요.



나치 전당대회. 보라, 저 증오의 단결력을!



‘사고와 성찰’이 반성의 또 다른 이름이라면 일본에서 부는 아렌트 신드롬도 이해가 갑니다. 극으로 치닫는 우경화 속에서 아무 생각 없이 있지 말자는 아주 평범한 반응인 것이죠. 『지금이야말로 아렌트 다시 읽기』를 출간한 일본 대형 출판사 고단샤의 담당자는 “집단적 자위권 등이 화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전체주의에 대한 아렌트의 자세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올해 3월 출간돼 철학서로는 이례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한나 아렌트』의 저자 야노 쿠미코 교수도 비슷한 의견을 전했습니다. 그는 “지금 만연하고 있는 ‘무사고성’(無思考性)을 감지한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는 것”이라며 “생각하는 것을 계속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아렌트는 멈추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정리하면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 관한 보고서’가 일본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있는 듯합니다. 물론 들을 사람은 듣고 듣지 않을 사람은 듣지 않겠지만 말이죠. 하지만 악의 평범성을 경계할 수 있는 올바른 사고 체계에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한 일본의 역사관에도 바람직한 변화의 바람이 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전체주의의 기원』(한길사) "전체주의 정권은 무한히 많고 다양한 인간들을 마치 모든 인간이 하나의 개인인 것처럼 조직한다."




일본의 아렌트, 마루야마 마사오

그 바람의 한가운데 있는 인물이 바로 마루야마 마사오입니다. 마루야마 텐노(천황)라고 불릴 정도로 일본에서 그의 학문적 영향력은 절대적입니다. 학문의 영역에서 일본 민주주의의 기틀을 닦았다고 평가받는 마루야마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펴낸 『초국가주의의 논리와 심리』에서 일본의 군국주의를 파헤치기도 했습니다.



마루야마 마사오(1914~96) 마루야마는 근대일본사를 정초한 주요한 질문을 던졌다. "왜 우리들은 이러한 실수를 범한 것인가?"



마루야마의 주장을 짧게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천황 중심으로 정치적 통합이 이뤄지면서 개인의 도덕적 주체성이 확립되지 못하고 결국 개인의 양심보다 국가의 행위가 우선시되는 전체주의의 폐해가 잉태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루야마의 군국주의 비판은 그의 제자들에게까지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달에는 마루야마의 직계 제자인 히라이시 나오아키 도쿄대 명예교수와 마쓰자와 히로아키 훗카이도대 명예교수가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반대한다는 뜻을 공식적으로 밝히기도 했죠.

이들은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일본의 역사는 침략 확대의 길을 걸었으며 나라 안팎에 큰 참화(慘禍)를 안겼다”며 “일본국 헌법 9조의 평화주의는 두 번 다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국민의 전쟁 부정 결의를 표명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지난 총선에서 우리는 자위대의 해외 무력행사에 대해 정치인들에게 백지위임을 한 기억이 없다”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70년 동안 일본이 지켜온 평화원칙을 한 정권이 자의적으로 바꾸는 건 민주주의와 입헌주의 원리를 위반하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일본의 우경화를 정면으로 비판했던 마루야마의 선선한 육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한길사) 파시즘에 대한 분석과 비판뿐만 아니라 인간과 정치, 권력과 도덕, 지혜와 복종, 정치권력과 같은 정치학의 보편적인 주제들에 대한 통찰을 담았다.



반성은 이곳에서부터

지난 2007년 일본 『아사히신문』이 발행하는 잡지 『논좌』(論座)에 한 편의 글이 실립니다. 제목은 충격적이게도 ‘마루야마 마사오를 후려치고 싶다. 31살 프리터. 희망은 전쟁’입니다. 글의 주장은 명확했습니다. 평화롭고 민주적이며 안정적인 일본은 더 이상 필요치 않다는 것, 오히려 전쟁이 일어나 많은 사람이 죽고 사회가 유동적으로 변해야 젊은이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올 것이라는 내용이었죠. 매우 차분하고 조리 있게 써진 이 글은 많은 젊은이의 공감을 삽니다. 그때쯤 만들어진 단체가 바로 ‘재특회’죠. 본격적으로 우익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게 된 것입니다.



재특회의 시위 장면. 그들을 막아선 채 재특회가 일본의 수치라며 항의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났습니다. 일본은 여전히 혼란스러워 보입니다. 정말 마루야마를 후려친 이들도 있으며, 그들을 비판하고 일본의 우경화를 경계하는 사람들도 있죠. 일본과 끊을 수 없는 역사적 관계를 맺고 있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단지 일본 우익들을 생각 없는 사람들이라며 욕해야 할까요?

그보다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굳이 늘어놓을 필요는 없겠죠. 다만 압축적으로 숨 가쁘게 달려온 만큼 성찰의 공백 역시 크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세월호’라는 비극 역시 그 공백의 결과이겠죠.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방송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생각하지 않음, 우리 모두의 나태, 우리 모두의 ‘평범성’이 아니었을까요?

일본의 우경화에 심각한 우려를 보내면서도 어쩐지 개운치 못한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반성은 이곳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겠죠. 우리 또한 사유를 멈출 때 언제든 아이히만의 나라가 될 수 있으므로.






by 편집자 K

Posted by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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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예림

    잘 읽었습니다. 편집자 K 님~!

    2014.07.17 09:23 [ ADDR : EDIT/ DEL : REPLY ]
  2. 비밀댓글입니다

    2014.07.18 18:31 [ ADDR : EDIT/ DEL : REPLY ]
  3. 안녕하세요, 김갑연 님. 답이 늦어 죄송합니다. 알려주신 오탈자는 다음 쇄를 찍을 때 반영해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번역 오류에 관한 부분은 역자 선생님께 여쭤본 후 처음 글을 남겨주신 한길사 홈페이지 독자의 목소리에 답변을 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의 표시로 책 한 권을 드리려고 하는데, 한길사 홈페이지 독자의 목소리에 받으실 주소와 연락처를 남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2014.07.21 15:1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한길그레이트북스2014. 6. 18. 11:31

6월 16일, 그날의 벌판, 그날의 죽음

 

 

 

 

역사가 된 역사가

마르크 블로크를 읽는 밤,

그를 생각하는 밤

 

 

 

1944년 6월 16일

역사학자 마르크 블로크는 생 디디에 포르망 허허벌판에서 게슈타포에게 총살당했습니다.

 

 

 

2014년 6월 16일

우리는 그날의 벌판, 그날의 죽음을 떠올리며 마르크 블로크를 생각했습니다.

 

 

 

 

 

 

 

저녁 7시, 시청역 근처 카페에서 ‘마르크 블로크를 읽는 밤, 그를 생각하는 밤’이 열렸습니다. 마르크 블로크의 저작을 번역 출간한 한정숙 교수(서울대 서양사학과), 박용진 교수(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연구교수), 또 여러 독자들을 모시고 “역사가 된 역사가, 역사서 저술의 영웅, 역사에 덥석 물려가버린” 마르크 블로크를 이야기했습니다.『역사를 위한 변명』『봉건사회』『기적을 행하는 왕』에 나타난 역사가로서의 학문적 특징과 엄정함, 그리고 행동하는 지성으로서 그가 맞이한 죽음 앞에서 우리는 “도대체 역사란 무엇에 쓰는 것인지 저에게 설명 좀 해주세요.” 라던 소년의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았습니다.

 

 

 

보편적 이상을 꿈꿨던 역사학자 마르크 블로크

 

  이날 사회를 맡은 유재화 선생(한길사 기획위원)은 스트라스부르 마르크 블로크 대학에서 석사를 마치고 마르크 블로크 평전,『역사가 된 역사가 마르크 블로크』를 번역하게 된 인연을 들려주며 행사를 시작했습니다. 자식을 여섯이나 둔 쉰여섯의 가장이면서, 이미 수권의 저서를 낸 학자. 프랑스는 물론이고 외국에까지 명성이 자자했던 역사가 마르크 블로크. 학문과 교육 정책 분야에서도 변화를 꿈꾸며 프랑스 고등교육(대학) 전반을 개혁하려 했던 이상가.(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의 탄생, 아날 학파의 탄생, 대학교육정책사에서 마르크 블로크라는 이름은 결코 빠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나자 그는 노령의 몸으로 기꺼이 몸 바칠 결심을 하고 직접 전장에 나갔습니다. 그리고 1944년 6월 16일, 다른 열일곱 명의 어린, 젊은 레지스탕스 대원들과 함께 생 디디에 포르망 허허벌판에서 사살당합니다. 비시(Vichy)색을 다 입은 지식인들 사이에서 전문적 능력을 갖추되 그 능력에 안주하는 것을 거부한 이상적 지식인, 참여적 지식인의 얼굴을 찾던 자들에게 역사학자 마르크 블로크는 그 궤적만으로도 ‘역사’가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한길사와 마르크 블로크

 

 

 1979년 12월 한길사가 번역 출간한 『역사를 위한 변명』(정남기 옮김)은 아마도 고단한 시대에 시련을 겪는 사람들에게 역사를 향한 신뢰 또는 희망을 심어주었을 것입니다. 마르크 블로크의 학문정신과 실천은 한길사의 ‘역사기획’ 한가운데 늘 존재하는 이미지였습니다. 행사에 참석한 한길사 김언호 대표는 펴내는 책마다 판금을 당했던 엄혹한 시절, 마르크 블로크의 역사정신과 실천 속에서 단재 신채호 선생의 민족주의를 떠올렸던 기억을 얘기했습니다. 식민지시대와 분단과 전쟁으로 이 땅에서의 역사는 고단할 수밖에 없었고, 그 역사에서 삶은 사는 사람들은 온갖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민족주의사관은 이 같은 우리 현대사의 성격과 정체를 규명하는 한 준거가 되었습니다. 마르크 블로크는 민족주의사관을 지닌 역사학자는 아니었지만 그의 역사정신과 행동은 우리에게 비수같이 가슴에 꽂히는 감동이었습니다.

 

한길사는 1980년대 초반부터 마르크 블로크의 대표작 『봉건사회』의 번역출판을 시도해 마침내 1986년 2월에 한정숙 교수(서울대 서양사학과) 번역으로 ‘오늘의 사상신서’ 제88․89권, 『봉건사회』를 출간했습니다. 90년대에는 ‘한길그레이트북스’를 기획하면서 다시 한 번 번역을 손봐 한길그레이트북스 제49․50권으로 『봉건사회』를 펴냈고, 『역사를 위한 변명』도 고봉만 교수(충북대 불어불문학과)에게 새로 번역을 의뢰해 다시 출판했습니다. 그리고 2014년 가을, 마르크 블로크의 첫 번째 주저이자 역작인 『기적을 행하는 왕』(박용진 옮김)이 출간될 예정입니다. 『기적을 행하는 왕』은 중세 정치권력의 재현과 구성에서 단연 선구적인 작업으로 호평을 받은 마르크 블로크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입니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마르크 블로크의 역사학

 

 

『봉건사회』를 번역한 한정숙 교수는 마르크 블로크의 학문세계를 구불구불한 길에 비유했습니다. 한눈에 시작과 끝이 보이는 반듯한 포장도로가 아니라 여기저기 복잡한 샛길들이 끝없이 연결돼 있는 미로와도 같은 길 말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사람들의 얘기도 그에게는 역사학의 대상이었습니다.

 

 

역사학의 대상은 본래 인간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들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추상화에 적합한 단수형보다는 상대성의 문법적 형태인 복수형이

 

다양한 것을 탐구하는 학문에는 더 적합할 것이다.

 

눈으로 금방 느낄 수 있는 풍경이나 연장 ・기계 너머로,

 

겉으로 보기에는 차디차게 보이는 문서

 

그리고 그것을 만든 자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는 제도 너머로,

 

역사학이 파악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인간들이다.

 

거기에 이르지 못한다면 역사가는 기껏해야 잡다한 지식을 다루는

 

엉터리 학자에 머무르고 말 것이다.

 

훌륭한 역사가는 전설에 나오는 식인귀와 흡사하다.

 

역사가는 인간의 살냄새를 맡게 되는 바로 그 곳에 자기 사냥감이 있음을 안다.

 

(마르크 블로크, 『역사를 위한 변명』)

 

 

 

마르크 블로크의 저작은, 역사인류학, 심성사, 비교사 차원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올 가을 출간예정인『기적을 행하는 왕』을 번역한 박용진 교수는 마르크 블로크가 말한 역사가의 태도에 대해 설명해주었습니다. 마르크 블로크는 오늘날의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이해되지 않는, 중세시대 사람들의 왕에 대한 종교와 같은 믿음과, 꿈을 현실이라 믿었던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 시대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국왕의 신성한 손이 스치기만 한 연주창 환자들 중 일부는 나았을 것이고,

 

다른 많은 자들은 나은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오늘날 말로 하면, 자연 치료이고 11세기 말로 하면, 왕의 능력에 의한 치료인 셈이다.

 

이 과정은 수많은 작은 사건들의 결과로서 나타나기에 추적하기 쉽지 않다.

 

그것은 매우 다양한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누적될 때에야 비로소 결과가 나타난다.

 

그 사건들은 각각 떼어놓고 보면 문헌이 언급하기에는

 

너무도 의미가 없을 정도이다.

 

역사가들이“우연”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마르크 블로크, 『기적을 행하는 왕』)

 

 

 

  행사 마지막에 인상 깊은 질문이 나왔습니다. 허미경 기자(한겨레신문)는 오늘날 마르크 블로크 역사학의 의미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20세기 후반, 포스트모더니즘의 광풍 앞에서 지식인, 정의, 용기, 역사와 같은 개념은 그 힘을 잃고 쓰러져갔습니다. 상대주의와 회의주의의 드높은 목소리에 역사를 공부하는 일이 무의미하게 치부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 역사를 대하는 마르크 블로크의 자세에서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을 보았습니다.

  그는 “살아 있는 것을 이해하는 능력,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역사가의 중요한 자질”이라 말했습니다. 이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역사적 감수성입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이해하고 싶어합니다. 역사를 공부하는 일은 인간의 본능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편집부

 

Posted by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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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잘 읽었어요

    2014.06.18 23:15 [ ADDR : EDIT/ DEL : REPLY ]

한길그레이트북스2014. 6. 13. 17:41

한길인문고전아카데미

에릭 홉스봄 깊이 읽기(2) - 자본은 세계를 어떻게 바꿔놓았는가?

『자본의 시대』




Das Kapital, Capital

학부생 때 얘기입니다. 정치외교학과를 부전공으로 택했는데 첫 수업이 정치경제론 강의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교수님께서 ‘정치경제’란 무엇인가 설명해 주시더군요. 풀이가 명확했는데 한마디로 “정치란 가치를 따지는 것이다. 즉, 경제가 숫자만 따진다면 정치경제란 경제적 현상을 어떤 가치를 가지고 해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일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장하준 교수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는데, 풀어보자면 이런 것이죠. 신자유주의론을 기반으로 한 작금의 경제학은 합리성과 수리적 연산을 통해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는 단일한 방법론처럼 인식됩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다양한 사상적 배경을 가진 주체들, 게다가 비합리적이기까지 한 주체들은 시장에서도 그만큼이나 다양하고 이해되지 않는 역사적·정치적 결정을 내린다는 겁니다. 이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마치 자연과학처럼 경제현상을 해석한다면 그것 자체로 오류라는 것이죠. 개인적으로 보태자면 객관적인 자연과학인 양 행세하는 것 자체가 전혀 객관적일 수 없는 일종의 모순은 아닐까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관점을 지닌 역사적 저서 두 권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는 이미 고전 중의 고전이 되었고 다른 하나는 현재 엄청난 폭풍을 일으키고 있죠. 바로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피케티의 『자본』입니다. 마르크스는 ‘과학적’인 방법론을 통해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역사의 발전 방향을 제시합니다. 동시에 새 시대를 이룩하기 위해 필수적인 과정으로서 ‘생산관계’의 변혁을 주장하죠. 이때 ‘생산수단’을 누가 통제하느냐는 정확히 정치적인 문제가 됩니다.



마르크스와 『자본론』


피케티와 『자본』



피케티 역시 정치경제적인 입장을 고수합니다. 『자본』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The history of inequality is shaped by the way economic, social, and political actors view what is just and what is not, as well as by the relative power of those actors and the collective choices that result.” 그래서일까요? 피케티는 엄청난 수치적 자료를 가지고 21세기의 자본주의를 분석한 뒤 곧 분배의 문제로 방향을 틉니다. 다시 말해 분배가 필요하며 그것은 정치적인 측면이 강하므로 경제적인 메커니즘으로만 이해해선 안 된다는 것이죠. 『자본론』과 『자본』의 묘한 공명이야말로 새 시대의 힌트가 아닐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리고 The Age of Capital

홉스봄 역시 장기 19세기를 정치경제적으로 다룹니다. 시대 3부작에서 그는 정치와 경제, 그리고 역사와 민중이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아주 세세하게 밝힙니다. 당연히 입체적이고 생동감 넘칠 수밖에 없죠. 전체사가로서의 홉스봄이 지닌 진면목이랄까요?

지난 시간 배운 『혁명의 시대』에서도 홉스봄은 산업혁명과 시민혁명, 즉 이중혁명의 의미를 동시에 다루었습니다. 산업혁명으로 자본주의가 발생했고 시민혁명으로 정치권력이 자유주의적 색채를 띠게 됐다는 식이 아니라 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탄생했다고 말하죠. 자본주의 사회의 정치경제를 규정하는 통합적인 혁명으로서 이중혁명을 본 것입니다.

다만 당시에는 정치혁명이 산업혁명을 어느 정도 통제했고 따라서 사회적 균일성이 그런대로 유지되는, 즉 변화가 미비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1848년 2월 혁명의 실패는 상황을 역전시킵니다. 당시 프랑스는 산업혁명으로 인해 노동자가 증가한 상태였는데 1840년대 중반 이후 불황을 맞아 실직자가 넘쳐나고 있었죠. 게다가 루이 필리프의 7월 왕정이 노조 결성도 금지해버리고 선거권도 제한해 불만이 폭발 직전까지 차올랐습니다. 그러던 1848년 2월 22일 선거법 개혁을 위한 야당의 집회를 정부가 금지하자 결국 혁명이 일어납니다. 정부는 무너지고 2월 24일 세워진 임시정부는 곧 노동자들의 요구로 공화국을 선포하죠.



산업자본가들과 노동자들이 보수 경향을 띤 내각의 사임을 요구하면서 일으킨 2월 혁명. 2월 혁명 중 치러진 보통선거에서 온건 공화파가 의회를 독점하자 일부 과격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자들이 폭동을 일으켰으나 진압되었다. 결국 나폴레옹의 조카이자 의붓외손자인 루이 나폴레옹이 공화정의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이렇게만 보면 성공적인 듯 보이는 2월 혁명은 부르주아 정부 인사들과 사회주의 사상을 접한 노동자 사이의 견해차로 순식간에 무너지고 맙니다. 4월 의회선거에서 사회주의 세력이 패하면서 자유주의 정부는 본격적으로 노동자들과 사회주의 세력을 분쇄합니다. 감옥에 가두고 작업장을 폐쇄하죠. 노동자들이 6월 폭동을 일으키지만 이 역시 실패합니다. 정부에서 곧바로 헌법 제정, 언론과 출판의 자유 보장, 불법 체포 금지, 평화적 집회와 단결권을 인정하자 사회주의 세력은 발붙일 곳을 완전히 상실하게 되죠.

홉스봄은 2월 혁명의 역사적 맥락을 유심히 살핍니다. 특히 2월 혁명 자체가 호황과 불황의 리듬에 큰 영향을 받았음을 밝힙니다. 호황과 불황의 리듬, 바로 본격적인 자본주의의 운동 말입니다. 즉,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몸짓을 하니(호황->불황) 정치를 뒤집어엎을 만한 파도(2월 혁명)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불황이 자연재해 등의 영향을 받는 농업 부문에서 초래되었다면 2월 혁명을 기점으로 불황은 자본팽창의 결과로 초래됩니다. 그래서 단순히 ‘빈민’(대혁명 때는 파리에 노동자가 별로 없었습니다. 대부분 빈민이었죠. 지방에서는 많은 농민이 혁명에 참여했고요.)이 아니라 ‘노동자’가 혁명의 주체가 된 것이죠. 이제 정치는 자본주의의 움직임에 극히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실제로 2월 혁명의 급격한 실패 이후 저점을 찍은 경기는 다시 고점으로 치솟습니다. 이에 오직 발전에만 초점을 맞추도록 모든 사회제도가 방향을 급선회하죠. 홉스봄은 말합니다. 산업혁명이 정치혁명을 삼켜버렸다고. 혁명의 시대가 자본의 시대로 접어든 것입니다.

경제가 정치를 삼켰다는 증거는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단적으로 2월 혁명으로 탄생한 제2공화국은 사회주의 세력 타도 이후 나폴레옹의 사촌이자 의붓외손자 루이 나폴레옹을 대통령으로 선출합니다. 얼마 후 루이 나폴레옹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름으로써 제2제국 시대가 열립니다. 혁명을 두 번이나 했으면서 이게 말이 되느냐고 물으신다면 말이 된다고 답해야겠죠? 우리나라도 비슷하지 않았습니까? 김동택 선생님이 첫 강 때 말씀하신 것처럼 ‘부자 되세요!’의 마법은 예나 지금이나 효과만점인 듯합니다.



프랑스의 마지막 황제, 루이 나폴레옹. 마르크스는 그의 쿠테타를 나폴레옹의 쿠테타와 비교하며 "역사는 반복된다. 첫 번째는 비극으로서 두 번째는 희극으로서"라고 말했다. 이 희극에는 파리 코뮌이라는 비극이 따라왔다.



제2제국은 경제 발전을 제일순위로 정하고 생산자의 권력을 보장합니다. 경제적 호황에 힘입어 대내적으로 공업과 농업발전을 촉진하고 대규모 기술개발과 발명가들을 엄청나게 지원합니다. 요즘 말로 하면 ‘창조경제’ 비슷하달까요? 분명 루이 나폴레옹은 정치보다 경제에 상당히 치중합니다. 그러다 보니 거물급 은행가와 건설업자들이 꼬였고, 그 결과 파리라는 도시를 근대적으로 재건하게 되죠. ‘근대’라는 것이 필연적으로 부르주아적 미감과 일맥상통하는 것은 물론이고, 혁명의 기억 때문에 바리케이드를 만들지 못하게 도로의 폭을 줄이거나 공공시설물을 잔뜩 설치합니다. 이른바 파리 개조 사업인데 그때도 ‘개조’는 시대적 화두였나 봅니다. 제국을 경제성장으로 단결시킨 루이 나폴레옹은 대외적으로 팽창 정책을 실행합니다. 그 당시 팽창 정책이었던 ‘전쟁’과 대통령의 ‘비즈니스 해외 순방’을 연결하는 건 무리일까요?



정치의 부재, 균형의 파괴

홉스봄은 혁명의 실패와 자본주의의 본격적인 팽창이 불가피하게 부르주아가 승리하는 시대를 만들었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그는 부르주아의 승리가 곧 부르주아의 정치적 지배를 뜻하는 것은 아니었음을 분명히 말합니다. 이 부분이 바로 홉스봄 역사서술의 ‘디테일’이 아닐까 합니다. 역사를 뭉뚱그리지 않고 세세히 살펴보는 것이죠. 실제로 당시 정치적으로 힘을 발휘한 인물들은 대부분 지주세력이나 대토지를 소유한 귀족(의 후손)이었습니다. 부르주아들은 산업혁명 이후에도 한동안 ‘쩜오’로서 살았던 것이죠. 그들은 구체제에 반대하는 혁명세력으로부터 이탈해 기존 지배체제와 타협하는 노선을 걸었을 뿐입니다. 다만 홉스봄이 자본의 시대라 명한 것은 일종의 역사적 경향으로서의 자유주의적 발전을 부르주아가 지배했기 때문입니다.

부르주아는 사회주의 세력 몰락 후의 제2공화국처럼 회유책을 펼쳐서 혁명을 잠재웁니다. 동시에 정치권력에도 적당히 타협합니다. 마치 전후 일본의 자민당처럼 아주 효과적인 정경유착을 해온 것이죠. 마침 경제도 활황이었고 제3제국 때도 이 기본적인 기조는 계속 이어집니다.

하지만 그 속은 계속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빈부 격차가 유례없이 벌어지고 중심과 주변부가 분화되죠. 소수의 승리자가 다수의 패배자를 착취하는 형태로 국제관계가 재편된 것입니다. 홉스봄은 사회적·지리적 양극분해가 심화되었다며 균형이 파괴된 시대라 명하죠. 이때 정치는 별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제2제국에 이르면 상당히 반민주적인 제도를 펼치기까지 하죠. 참고로 루이 나폴레옹의 별명이 ‘스핑크스’였는데 그가 상당히 ‘불통’이였기 때문입니다. 말을 잘 안 하고 해도 잘 못했다고 하죠.

결국 제2제국은 보불전쟁에 패하면서 1870년에 완전히 끝납니다. 독일군의 진격으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파리 노동자들은 그때까지 쌓였던 모든 불만을 토해내며 마지막 혁명, 파리 코뮌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너무나 끔찍하게 진압당하고 때를 맞춰 경제마저 대불황기에 접어들자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집니다. 정치의 부재가 이 모든 상황을 브레이크 없이 폭주하게 만든 것입니다.



1873년의 'Black Friday'. 증권거래소 앞의 사람들이 패닉에 빠져있다.



이처럼 묘하게 오늘날의 대한민국과 상당히 겹쳐 보이는 자본의 시대 말미에서 홉스봄은 의미심장한 결론을 내립니다.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심화가 결국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종언을 고했다고 말입니다. 정말이지 자본의 시대는 혁명의 패배와 더불어 시작되어 불황 속에서 막을 내립니다. 홉스봄이 자본의 시대를 1875년까지 잡은 특별한 사건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70년대 대공황의 중간 시점이었기 때문이죠. 대공황은 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과 보호무역주의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중소기업들이 다 문을 닫으면서 거대기업체만 몸짓을 불렸죠. 그러면서도 정치는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좌파와 우파가 뒤엉켜 혼란스러웠죠. 프랑스만 해도 드레퓌스 사건으로 내전이 벌어질 뻔합니다. 당연히 무정부주의적 정서도 최고조에 달하게 되어 정부를 조롱하는 시와 노래가 도시에 넘쳐흘렀습니다.

이 모든 상황의 새로운 돌파구로 제국주의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1875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까지 바야흐로 제국의 시대가 전 세계를 뒤덮은 것입니다. 자본의 시대는 그 끝에 이르러 온갖 모순을 껴안고 미친 듯이 달려가 제국의 시대에 바통을 넘겼습니다. 장기 19세기의 마지막을 장식한 제국의 시대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요? 절망일까요? 아니면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게 될까요? 다음 주 19일(목) 있을 홉스봄 마지막 강의가 어느 때보다 기대됩니다.



2,000만 명이 죽은 제1차 세계대전. 역사는 반복된다.




- by 편집부 光




* 한길인문고전아카데미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인문독서아카데미’ 사업의 하나로 마포평생학습관과 한길사가 공동으로 꾸려가는 기획입니다. 인문독서아카데미는 전 국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무료 독서교육 프로그램으로 직장, 학교, 가정에서의 독서 생활화 기반 조성과 독서를 통한 인문 정신 고양을 목적으로 합니다.


* 사상가별 세 번의 강의에 모두 참석하시고 한길사 페이스북 한길그레이트북스 페이지에 소감이나 후기를 올려주세요. 세 분을 추첨해 『가자 고전의 숲으로-한길그레이트북스 120권 길라잡이』를 드립니다.


* 수업자료는 첨부파일을 확인하시면 됩니다.


홉스봄 강의안(김동택 선생님).hwp


 



Posted by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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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예림

    잘 읽었습니다^^

    2014.06.17 15:38 [ ADDR : EDIT/ DEL : REPLY ]
  2. 달나무

    첨부파일 다운로드가 안됩니다.

    2014.07.15 16:24 [ ADDR : EDIT/ DEL : REPLY ]

한길그레이트북스2014. 6. 9. 18:25

[한길인문고전아카데미]

에릭 홉스봄 깊이 읽기(1) 

과연 혁명은 세상을 바꾸었는가? 바꿀 수 있는가? -『혁명의 시대』



시대적 인물, 에릭 홉스봄

5월에 시작한 강의가 어느새 6월로 접어들었습니다. 지난 세 강의 동안 복잡한 인간, 최초의 근대인 루소에 대해 많은 것을 공부했습니다. 어쩌면 우린 루소라는 열쇠구멍을 통해 근대의 일부를 얼핏 보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네 번째 강의부터는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근대와 마주해야겠죠? 이때 가장 좋은 열쇠가 바로 에릭 홉스봄일 것입니다. 홉스봄은 1789년부터 1929년까지의 시기를 ‘장기(長期) 19세기’라 칭하며 근대시민사회의 수립과 변화를 본격적으로 다룹니다. 자세히 보자면 1789~1848년은 ‘혁명의 시대’로, 1848~75년은 ‘자본의 시대’로, 마지막 1876~1929년은 ‘제국의 시대’로 구분하며 각각의 시기가 지니는 역사적 의미를 탐구합니다. 이것이 바로 홉스봄의 시대 3부작 『혁명의 시대』『자본의 시대』『제국의 시대』입니다.

사실 홉스봄이라는 인물 자체가 근대의 산물입니다. 한길그레이트북스 노트를 한껏 인용해보자면 “19세기 세계는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유동적이었다. 학문에서부터 경제체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회적 조건이 ‘호모 모투스’(Homo Motus)로서 인간의 이동 본능을 자극했다. 많은 사람이 과거에는 존재조차 모르던 곳을 탐험하고 새로운 이웃을 만났다. 그들 중 일부는 낯선 땅에 정착했다. 30대의 런던 태생 유대인 남성과 10대의 빈 출신 오스트리아 여성이 이집트에서 만나 결혼하는 일도 그리 낯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한 시대적 결과물로 탄생한 인물이 바로 ‘에릭 홉스봄’(Eric John Ernest Hobsbawm, 1917~2012)이다.”



어슴푸레한 여명의 지대를 채운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1917~2012)



아래로부터의 역사

이처럼 홉스봄은 탄생부터 상당히 ‘시대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당연히 독특한 시대감각도 지니고 있었죠. (루소에게서도 보았던) 경계인의 감성이랄까요? 홉스봄은 분명 어떤 낯섦을 느낍니다. 그는 유대인과 오스트리아인의 피가 섞인 채 이집트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영국에서 공부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일반화된 기록과 개인적인 경험 사이에 존재하는 ‘어슴푸레한 여명의 지대’를 느낀다”라고 말합니다. 바로 저 여명의 지대를 채우는 것이 역사서술의 동기라는 것이죠.

그래서 홉스봄은 역사학자가 됩니다. 그리고 일반화된 기록과 개인적인 경험 사이에서 민중의 삶을 발견하게 되죠. 그에게 역사란 단지 정치사, 사건사, 제도사, 경제사로 정의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이 엮어내는 감동의 드라마인 것이죠. 홉스봄의 역사가 아무리 압도적인 크기를 가진다 해도 언제나 민중을 향한 섬세한 시선이 녹아 있는 이유입니다. 프랑스 대혁명과 산업혁명, 그리고 근대의 형성은 이제 아래로부터 솟구칩니다. 그렇게 홉스봄은 우리에게 역사 그 자체를 되돌려주었습니다.


“혁명을 한 것은 의문의 여지도 없이 노동빈민들이었다. 바리케이드 위에서 죽어간 것도 그들이었다. 혁명의 힘에 의하여 권력을 잡은 자유주의자들이 혁명을 두려워한 이유이다.”(『자본의 시대』)



근대 국가의 탄생

홉스봄 강의는 시대 3부작을 가지고 진행됩니다. 당연히 첫 강의는 『혁명의 시대』를 탐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프랑스 대혁명이 있었던 1789년과 루이 필리프 1세를 몰아낸 1848년의 2월 혁명 사이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강의를 맡으신 김동택 선생님은 강의 시작에 앞서 이런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왜 21세기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가 영국인이 쓴 유럽의 19세기 역사를 배워야 할까?’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모든 사회 시스템이 바로 유럽의 19세기, 홉스봄 식으로 말하면 장기 19세기에서 비롯됐기 때문입니다.

좋은 예가 헌법입니다. 헌법 제1조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제1조 제2항은 영화 『변호인』의 명대사(?)로도 유명한데요, 여기에서 나오는 ‘민주’, ‘공화국’, ‘주권’, ‘국민’, ‘권력’ 등의 개념이 유럽에서 건너왔다는 것이죠. 즉, 이 개념들이 만들어졌던 장기 19세기의 역사를 공부한다면 지금의 우리 모습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김동택 선생님은 장기 19세기의 배경이 되는 근대국가의 탄생 배경부터 설명해주셨습니다. 이야기는 화약의 발명부터 시작되죠. 화약의 발명은 곧 무기의 발전으로 이어집니다. 총과 포의 발전은 전쟁의 양상을 바꿔놓죠. 전쟁은 수성(守城)과 공성(攻城) 사이에서의 공수교환이 아니라 본격적인 공격능력의 극대화와 기민한 전략 전술을 통한 빠른 기동성을 추구하게 됩니다. 이는 전쟁의 확대를 가져왔고 전쟁의 확대는 국경의 개념과 대규모 상비군을 요구했습니다. 대규모 상비군을 보유하게 된 국왕의 권력은 강화되었고 봉건 군주는 국왕의 친위대 정도로 전락합니다. 물론 기사 계급도 몰락하게 되고요. 또한 대규모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세금을 걷어야 했고 이는 곧 체계적인 관료제의 발달을 촉진합니다. 국경, 강력한 지도자, 상비군, 세금과 공무원 제도의 탄생으로 조직된 근대국가는 민족을 국민으로 재구성합니다. 모국어가 강조되고 표준어와 사투리는 그 어느 때보다 구별됩니다. 교육이 중요해지고 이는 국가 간 경쟁으로까지 번집니다.



1792년 9월 20일 벌어진 발미(Valmy)전투 장면을 묘사한 그림. "프랑스 만세!"를 외친 프랑스 시민 의용군이 "영주님 만세!"를 외치던 프로이센군을 격파했다. 당시 프로이센군은 전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였다.



이처럼 인류 역사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통일체로서 등장한 근대국가를 설명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 ‘사회계약론’입니다. 사회계약론은 곧 주권의 문제를 다루게 되죠. 김동택 선생님은 주권이란 더 이상 나뉠 수 없는 권리이면서 동시에 소유권에 기반을 둔 개념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무언가를 ‘절대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권리, 즉 어떤 것으로도 제약될 수 없는 권리 말입니다. 국민이 주권을 포기한 것인지, 양도(위임)한 것인지, 아니면 주권이 절대적인 것인지에 따라 절대왕정, 입헌군주, 공화정으로 사회의 모습은 달라질 수 있으나 여하튼 근대국가에서 주권은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 잡게 됩니다.



장기 19세기와 이중혁명

왕권강화와 사회계약론으로 표현된 인민주권 논리는 모순되어 보입니다. 그래서 계몽군주라는 애매한 위치의 군주도 잠깐 등장하죠. 하지만 왕권은 점차 해체되고 권력의 빈 공간을 역사의 신인류가 차지하게 됩니다. 그들을 부르주아라고 부르는데 장기 19세기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부분입니다.

장기 19세기의 앞부분은 혁명의 시대입니다. 홉스봄은 혁명의 시대를 자본주의가 승리한 시기라고 정의합니다. 자본주의의 씨는 이미 훨씬 전부터 뿌려져 있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자본주의의 승리를 가져온 것이 바로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이라고 말합니다. 이 이중혁명으로 세계가 완전히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되었다는 것입니다.

홉스봄이 보기에 산업혁명은 자본주의 경제를 낳았고 시민혁명은 자본주의 정치를 낳았습니다. 즉, 이중혁명은 자본주의 사회의 정치경제를 규정하는 통합적인 혁명이라는 것이죠. 따라서 유럽이라는 지역성, 혹은 영국(산업혁명)과 프랑스(시민혁명)이라는 지역성에도 불구하고 이중혁명은 세계사적이고 보편적인 혁명의 위상을 지니게 됩니다.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 달라진 아동의 위상(?).



물론 역사에 예외는 존재합니다. 영국은 프랑스 같은 정치혁명을 겪지 못했고 프랑스는 영국 수준의 산업자본주의 발전에 실패하죠. 프로이센은 정치혁명 없이도 절대주의하에서 산업혁명을 달성합니다. 그래서 홉스봄은 이중혁명을 정말 ‘혁명’에 국한하기보다 일종의 사회적 경험으로 이해합니다. 새로운 사회적 모델로의 지향이라는 것이죠. 하나의 경향성이랄까요?

이때 홉스봄이 강조하는 것은 이중혁명이라는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것의 세계사적 결과입니다. 그에 따르면 근대 세계는 이중혁명으로 인해 비로소 공업 일반이 아닌 자본주의적 공업의 승리가, 자유와 평등 일반이 아닌 부르주아적 자유와 평등의 승리가, 근대 경제 일반이 아닌 자본주의 중심부의 승리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혁명의 시대에 접어들어 근대국가는 보편적 모델을 지니게 되었고 그것이 곧 정치경제적 자본주의라는 것입니다. 결국, 국민, 주권, 권력 등의 개념 모두 사실 자본주의를 빼고는 얘기할 수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의도했든 아니든 20세기 초 우리가 저 개념들을 들여왔을 때 실은 매우 자본주의적인 국가 모델을 수입한 것 아닐까요? 21세기 대한민국의 모습에서 자본주의의 극단을 발견하게 되는 것도 예고된 것이었을까요?

제2강에서는 『자본의 시대』를 가지고 이 모든 질문의 답을 찾아봅니다. 우리가 자본의 시대에서 어떤 답을 찾게 될지 기대됩니다. 우리는 또 어떤 역사를 만나게 될까요? 기대하는 마음으로 많은 참석 부탁드립니다.


- by 편집부 光





* 한길인문고전아카데미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인문독서아카데미’ 사업의 하나로 마포평생학습관과 한길사가 공동으로 꾸려가는 기획입니다. 인문독서아카데미는 전 국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무료 독서교육 프로그램으로 직장, 학교, 가정에서의 독서 생활화 기반 조성과 독서를 통한 인문 정신 고양을 목적으로 합니다.


* 사상가별 세 번의 강의에 모두 참석하시고 한길사 페이스북 한길그레이트북스 페이지에 소감이나 후기를 올려주세요. 세 분을 추첨해 『가자 고전의 숲으로-한길그레이트북스 120권 길라잡이』를 드립니다.


* 수업자료는 첨부파일을 확인하시면 됩니다.

홉스봄 강의안 - 제1강.hwp


Posted by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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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예림

    잘 읽었습니다. 光 님!^^

    2014.06.10 11:22 [ ADDR : EDIT/ DEL : REPLY ]

한길그레이트북스2014. 6. 2. 14:06

한길인문고전아카데미

장-자크 루소 깊이 읽기(3) - 인간적인 교육을 향한 나지막하지만 깊은 목소리(『에밀』)

 

 

Captain. Oh my captain!


“캡틴, 오 마이 캡틴!” 너무나 유명한 이 대사로 루소 제3강 후기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제 나이 20대 후반이지만 어제 배웠던 『에밀』의 영향 때문일까요? 루소가 10대 아이에게나 필요하다던 자유분방함을 가지고 얘기를 풀어나가보겠습니다.


아마 이 글을 읽으실 분 중 대부분이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를 보셨을 겁니다. 저도 참 좋아하는 영화인데 정말 많은 명대사를 남겼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캡틴, 오 마이 캡틴!”이겠지요. 이 대사는 영화의 마지막 부분, 그러니까 로빈 윌리엄스(존 키팅 역)가 감각적이고 자유로우며, 그래서 미학적이기까지 한 교육을 펼친 끝에 결국 학교에서 쫓겨나는 바로 그 결정적 장면에서 등장합니다. 몇몇 학생이 책상 위에 우뚝 올라서서, 힘없이 교실 뒷문으로 빠져나가는 윌리엄스에게 저 대사를 ‘헌정’하는 것이죠.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마지막 장면.


 

참 저 대사도 대사지만 그 장면의 미장센이 정말 멋졌습니다. 마지막 경고를 날리는 표독한 교장의 표정,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대다수의 학생들, 그리고 ‘책상’을 두 발로 밟은 채로 ‘칠판’에 등을 돌리고 허리가 부러질 듯 꼿꼿이 서서 윌리엄스를 바라보는 몇몇 학생이 (옅은) 로우 앵글 특유의 긴장감 속에서 묘한 대비를 이루었죠. 이 장면은 감격한 윌리엄스를 잡은 하이 앵글과 교차편집 되면서 그 극적 효과가 극대화됩니다. 사자성어로 청출어람이라 하나요? 니체가 말한 위버멘쉬의 탄생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한 편의 시


제가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따로 있습니다. 윌리엄스가 윌트 휘트먼의 시를 인용하는 장면입니다. 윌리엄스는 편집되기 이전의 시, 즉 교육이란 명목으로 무슨 고장 난 시계마냥 ‘분해’되기 이전의 시를 강조합니다. 쉽게 말해 자연적 감성으로 느끼고 체험하라는 것입니다. 시는 행과 열과 화자와 청자가 모두 따박따박 분해된 상태에서 읽힐 수 없습니다. 시를 읽을 수 없다는 것은 곧 시를 쓸 수 없다는 것이고요. 그리고 윌리엄스는 말합니다.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따위는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해. 하지만 시와 미, 낭만, 사랑은 삶의 목적인 거야. 휘트먼의 시를 인용하자면…….”



오, 나여! 오, 생명이여!


수없이 던지는 이 의문!


믿음 없는 자들로 이어지는 도시


바보들로 넘쳐흐르는 도시


아름다움은 어디서 찾을까?


 


오, 나여! 오, 생명이여!


대답은 한 가지


네가 거기에 있다는 것


생명과 존재가 있다는 것


 


화려한 연극은 계속되고


너 또한 한 편의 시가 된다는 것


 


너 또한 한 편의 시가 된다는 것


 

다시 자연으로


저 시에서 ‘나지막하지만 인간적인 깊은 목소리’가 들리시나요? 루소에게 그 목소리는 “바보들로 넘쳐흐르는 도시”가 아니라 바로 자연이었습니다. 이때 자연의 목소리를 듣고 전할 이가 바로 교사인 것이고, 따라서 우리가 아름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이 역시 교사인 것입니다. 자연의 감수성, 그리고 올바른 학문의 필요성을 얘기한 제1강과 제2강은 바로 이 지점에서, 즉 제3강이 말하는 좋은 교육(자)에서 만나게 됩니다.


좋은 교육을 설명하기에 앞서 우선 루소는 성선설을 주장한 사람입니다. 당연히 그에게 가장 선한 존재란 아이이겠죠. 하지만 당시 사회에서 아이들이 처한 상황은 매우 열악했습니다. 서민층 어른들은 아이들을 자신과 떼어놓기 바빴고, 상류 계층 역시 아이들을 교육기관에 맡겨 이기적인 인간으로 자라도록 방치했습니다. 애초에 ‘아이’라는 관념조차 없었죠. 루소는 아이로 태어난 아이를 아이로 보지 않는, 이 말장난 같은 상황이 자연적 질서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아이를 아이로 보고 그에 합당한 교육을 시켜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온 책이 바로『에밀』입니다. 루소의 주저 『에밀』은 좋은 교육에 대해 말합니다. 루소는 자연을 선하다고 보았는데, 그 안에서 각자 주어진 역할과 위치에 충실하면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이죠. 반대로 자연으로부터 멀어지면 그것은 무질서요 혼돈 그 자체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교육이란 자연의 질서 그대로 아이를 성장시키는 것이겠죠. 즉, 자연이 아이에게 부여해준 자리를 되찾아주는 일. 그 자리에서 멀어지지만 않는다면 아이는 자연이 부여해준 선한 심성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총 3강에 걸쳐 루소를 강의해주신 김중현 선생님과 참여해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나의 걸음


루소는 아이들을 오묘한 자연의 질서대로 살게 하려고 아주 세밀한 계획을 세웁니다. 태어나서 결혼할 때까지 총 5부로 나누어 연령대별로 어떤 교육을 받아야 하는지 자세하게 정리한 것이죠.


물론 여기서 루소가 세운 계획을 하나하나 나열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시대가 많이 변했으니까요. 가령 15살까지는 『로빈슨 크루소』를 제외한 어떠한 책도 읽히면 안 된다는 얘기나, 남성우월주의적인 내용 등은 아무리 자세히 설명해도 쓸 데가 없죠.


하지만 그 맥락에서 드러나는 어떤 정신은 주목해야 합니다. 강의해주신 김중현 선생님은 원심분리기에 비유하셨는데, 자기 자신에서 사회생활로, 감각과 경험에서 관념으로, 자기 보존의 이기심에서 보편적 인류애로의 확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장의 중심축은 당연히 자연이겠죠.


자연이 허락한 선한 심성을 지키고 발전시켜나가는 에밀의 모습에서 우리는 일종의 존재미학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곧 진정한 내가 되는 것입니다. 자연이 허락한 토대를 가능성 삼아 고유한 아름다움을 피워내는 것. 이 고유함이 비록 모범적인 양식을 따르진 않더라도, 그래서 불온하다 할지라도, 사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 질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영화가 클라이맥스에 이르기 직전, 윌리엄스의 말입니다. “타인의 인정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신념의 독특함을 믿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이상하다고 보든 나쁘다고 생각하든 이제부터 여러분도 나름대로 걷도록 해라. 방향과 방법은 여러분이 마음대로 선택해라.”

 


 

- 편집부 光


 


루소가 말한 “자연으로 돌아가라”의 의미

강연자 김중현 선생님 인터뷰



김중현 선생님은 1990년대 초반 프랑스 낭시 2대학교에서 발자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으셨습니다. 당시 발자크 연구를 하는 유학생들이 꽤 많았는데, 100여 편을 넘는 작품수 때문에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고 합니다. 한국인 가운데 발자크 연구로는 제1호 박사인 김중현 선생님, 때문에 유학시절 기억이라고는 발자크 작품연구가 전부일 정도시라네요.


원래도 루소를 좋아하셨지만, 한길그레이트북스 『에밀』『고독한 산책자의 몽상』『학문과 예술에 대하여 외』를 번역하면서 루소의 사상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되셨다는데요, 루소를 통해 가난하게 사는 것이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인생의 나침반과 같은 교훈을 얻으셨다는 선생님께 루소의 사상에 대해 여쭤보았습니다.

 

 

 

빨간 글씨로 빼곡히 메모해놓으신 강연자료가 눈에 띄어 한 컷 찍었습니다.

 

 

 

 

 

한길사: 루소 하면, 흔히 ‘자연으로 돌아가라’를 떠올리게 되는데요,

여기서 ‘자연’은 정확히 무엇을 뜻하나요?


김중현 선생님: 루소가 말한 자연은 이를테면 질서가 내재되어 있는 질서의 근원입니다. 따라서 자연으로부터 벗어나면 무질서가 초래되죠. 신은 질서를 사랑합니다. 그러므로 그가 창조한 것은 선하며, 그가 창조한 만물은 그가 사랑하는 질서 속에서 각자의 위치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만물은 창조될 때의 위치를 벗어나지 않기만 하면, 질서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 되며 자연을 떠나지 않는 것이 됩니다. 

 

한길사: 그런데 현대사회에서 자연의 질서를 따라서 사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데요.

물론 이렇게 살기 위해 마음을 먹고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외딴 곳에 들어가 살 수는 있겠지요.

또 실제로 소수지만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고요.


김중현 선생님: 루소는 아이가 선하게 태어난다고 믿습니다. 선량한 신은 질서를 사랑하므로, 신이 창조하는 피조물은 당연히 선량할 것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사부아 보좌신부의 고백대로, “자연의 모습은 내게 조화와 균형을 언제까지나 보여주고 있는데, 인류의 모습은 혼란과 무질서만 나타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연은 이미 인간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태어날 때의 그 선량한 자연인을 그대로 유지시키는 일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자연을 벗어나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아이를 격리시켜야 할까요? 루소 자신의 말대로 이 영역은 ‘몽상’에 가까운 것이며, 더 낫게 말한다면 ‘이상’에 가까운 교육 방법입니다.

루소가 던진 화두인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말 그대로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의미도 갖고 있지만, 태어날 때 가지고 나온 자기 자신, 곧 본성을 보존하며 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특히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두 번째 의미가 더욱 각별하게 와 닿는 것 같습니다.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일이 바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인 것이지요.


 

 

여러분은 지금 자기 자신의 길을 걷고 계신가요. 아, 갑자기 god  「길」의 멜로디와 가사가 떠오르네요. 하늘에 있는 루소 선생님께 이 곡을 띄웁니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 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사람들은 길이 다 정해져 있는지 아니면 자기가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또 걸어가고 있네.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일까.


이 길에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무엇이 내게 정말 기쁨을 주는지. 돈인지 명예인지 아니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인지.


알고 싶지만. 알고 싶지만. 알고 싶지만.


아직도 답을 내릴 수 없네.


 


 - 편집부 金




* 한길인문고전아카데미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인문독서아카데미’ 사업의 하나로 마포평생학습관과 한길사가 공동으로 꾸려가는 기획입니다. 인문독서아카데미는 전 국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무료 독서교육 프로그램으로 직장, 학교, 가정에서의 독서 생활화 기반 조성과 독서를 통한 인문 정신 고양을 목적으로 합니다. 


* 사상가별 세 번의 강의에 모두 참석하시고 한길사 페이스북 한길그레이트북스 페이지에 소감이나 후기를 올려주세요. 세 분을 추첨해 『가자 고전의 숲으로-한길그레이트북스 120권 길라잡이』를 드립니다.


* 수업자료는 첨부파일을 확인하시면 됩니다.

루소 강의안 - 제3강.hwp



 




Posted by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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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애 많이 쓰셨습니다 김중현 선생님
    그리고 편집자 K, 빛광 님!

    2014.06.06 01:17 [ ADDR : EDIT/ DEL : REPLY ]

한길그레이트북스2014. 5. 23. 16:25

한길인문고전아카데미

장-자크 루소 깊이 읽기(2) - 곡학아세(曲學阿世)식 학문연마의 폐해를 질타하다(『학문과 예술에 대하여』)

 

 

MY BOOK CAFE!

 

‘고전’이라 하면 사람들은 으레 어렵고 딱딱한 것,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것 등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고전에는 시대적인 차이, 언어의 차이 등 현대인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합니다. 무엇보다 ‘본질’을 고민하고 다룬다는 점에서 고전은 언제나 늘 우리와 모종의 간격을 설정합니다. 그 간격에서 고전 특유의 풍부한 의미가 드러나는 것이겠죠.

 

여하튼 그런 점에서 한길사는 고전의 ‘새로운’ 모습, ‘현대적인’ 모습을 늘 고민합니다. 고전의 본질적인 의미와 가치를 헤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하면 지금 시대의 독자들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죠.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MY BOOK CAFE-한길그레이트북스 노트’입니다. 한 권의 노트에는 한 권의 한길그레이트북스가 실려 있습니다. 저자의 사상과 책의 내용을 정리했고, 핵심적인 키워드 그리고 발췌문을 함께 실었습니다.

 

한길그레이트북스의 몸부림이랄까요? 고전의 새로운 형태 혹은 변용을 담은 한길그레이트북스 노트. 한길 요원(?)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11종의 노트를 한길인문고전아카데미 두 번째 시간에 맞추어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무거운 박스를 나르고 매대를 설치하는 모든 수고가 곱게 자리 잡은 노트의 모습에 모두 녹아내립니다. ‘오래된’ 고전들 옆에 알록달록 펼쳐진 노트가 ‘새로운’ 고전의 탄생을 암시하는 듯합니다.

 

‘새로운’ 고전의 탄생. 한길그레이트북스 노트.

 


사상의 폭약을 내장하다

 

루소 첫 강이 자연과 낭만주의에 대해 다루었던 만큼 무언가 목가적인 분위기 혹은 내밀하게 침잠하는 분위기가 있었다면 두 번째 강연은 시작부터 전운이 감돌았습니다. 루소만큼이나 위대한 사상가 디드로와 볼테르에 관한 얘기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루소는 1745년 디드로와 볼테르를 만나게 됩니다. 당대의 지식인이었던 만큼 셋은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디드로와 볼테르를 안다면 자연스레 루소에 대해서도 짐작할 수 있는 것이죠.

 

디드로는 『백과전서』를 편집하고 간행한 인물입니다. 지금에야 고작 ‘사전’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냐고 할 수 있지만 당시로써는 “사상의 폭약”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애초에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대거 참여했으며, 무엇보다 지식의 전파라는 점에서 많은 사람에게 평등사상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저들이 아는 것을 우리도 똑같이 알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프로메테우스의 불만큼이나 세상을 뒤집어 놓는 일이었던 것이죠.

 

『백과전서』의 편집을 맡은 디드로와 달랑베르. 출처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cmoon2&logNo=140162598509.

 

그런 ‘불’ 같은 존재가 또 있었습니다. 바로 볼테르입니다. 볼테르는 사실 루소와 전혀 다른 세상의 사람이었습니다. 엄청난 부자였고 투자의 귀재였죠. 집 안에 하인만 150여 명이었다고 하니 대충 짐작이 가죠. 가난하게 태어나 가난하게 살다가 가난하게 죽은 루소와는 전혀 다른 존재였던 것입니다.

 

볼테르는 늘 더욱 많은 돈을 모으려 했다고 합니다. 특권층의 핍박에 대비하기 위해서였죠. 함부로 자신을 대하지 말라는 일종의 위세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부를 이용해 귀족들과도 가깝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물론 볼테르는 재산만큼이나 지적인 면에서도 비범하기로 유명했습니다. 귀족들도 그의 교양과 학식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죠. 요즘 말로 ‘엄친아’랄까요?

 

‘엄친아’ 볼테르.

 

하지만 아무리 엄친아라도 시대적 한계를 넘어서긴 힘들었나 봅니다. 늘 기고만장한 볼테르를 시기하던 귀족 중 누군가가 사람을 써서 린치를 가하는 사건이 벌어지죠. 자존심에 엄청난 상처를 입은 볼테르.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으로 복수하니 바로 “구제도에 던져진 폭탄” 『철학서한』을 쓴 것입니다. 루소 스스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 이 책에서 볼테르는 ‘파렴치한 것을 깨부수자!’고 말합니다. 여기서 파렴치한 것은 당연히 ‘구제도’(ancien régime)이겠지요.

 

우리는 『철학서한』을 통해 혁명의 전조를 보게 됩니다. 아울러 계몽주의 철학의 특징도 찾아볼 수 있죠. 계몽주의 철학을 간단히 정리하면 ‘현실의 삶에서 행복을 방해하는 것들을 끊어버리는 것’입니다. 현세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죠. 결국 계몽주의 철학은 정치, 경제, 사회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게 됩니다. 형이상학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던 이전의 철학들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죠. 이런 철학적 단절 속에서 어쩌면 이미 혁명은 일어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프랑스혁명! 「La liberté guidant le peuple」

 


학문과 예술에 대하여

 

루소 역시 ‘혁명’에 동참합니다. 자신의 주전공(루소는 가정교사 생활을 했습니다.)을 살려 교육 분야에 투신한 것이죠. 급진적인 선언문처럼 혹은 불가의 화두처럼 루소는 짧은 논문을 당시 교육계에 던집니다. 「학문과 예술에 대하여」가 바로 그것입니다.

 

루소는 뱅센 감옥에 수감된 디드로를 면회 가던 중 디종 아카데미의 논문 공모를 보고 저 논문을 쓰게 됩니다. 당시 공모 주제는 ‘학문과 예술의 부흥은 풍속을 순화시키는 데 기여했는가?’였는데 지극히 계몽주의적인 이 주제에 루소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글을 써냅니다. 학문과 예술의 발전이 오히려 인간의 풍속을 타락시킨다는 주장을 펼친 것입니다.

 

결국 대상을 거머쥔 이 도발적인 글 앞에 당시 영향력 있는 지식인들은 수많은 반박문을 쏟아냈죠. 이에 대해 루소는 재치 있는 재반박문들을 기고합니다. 사실 학문과 예술을 둘러싼 루소의 주장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저 재반박문까지 함께 보아야 하죠. 관련해서 루소의 전반적인 주장을 알고 싶으신 분들에게『학문과 예술에 대하여 외』(한길사)가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학문에 관한 루소의 생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학문과 예술에 대하여 외』(한길사).

 


학문의 남용

 

얘기를 진전시키기에 앞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루소가 학문 자체를 비판한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김중현 선생님께서는 루소의 학문 이해를 이렇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학문은 재능과 이성의 걸작으로 그 자체로서는 선하며, 우리의 삶에 안락을 가져다준 유익한 발명을 낳기도 했다. 저자들은 진리의 원천이며, 지식의 습득은 인간의 신성한 특권 가운데 하나다. 그러므로 지식의 습득은 인식의 범위를 확대함으로써 최고의 지성행위에 참여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루소에게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학문과 예술에 대하여」의 주장과 매우 모순되는 루소 자신의 학문 이해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조정할 수 있을까요? 대답은 매우 간단합니다. 아주 상식적이죠. 한마디로 학문을 지나친 정념과 사적인 탐욕을 위해 남용하는 행태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루소는 저러한 남용이 인간의 참된 행복을 해친다고 보았는데, 이것은 위에서 언급한 계몽주의적 철학의 목적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죠.

 

루소는 한발 더 나아가 당시 사회가 그런 남용에 찌들었다고 판단합니다. 결국 「학문과 예술에 대하여」는 기라성 같은 당시 학자들에게 ‘당신은 학자가 아니다!’라고 꾸짖는 루소의 준엄한 목소리입니다. 배운 사람이 많다고 자부한 당시 사회에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사회가 더욱 타락했다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정말이지 너무나 많은 칭호가 껍질로만 존재하며, 미덕은 너무나 가식적이어서 제 기능을 거의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정직한 사람은 경기에서 나체로 시합하는 것을 즐기는 운동선수 같은 사람이다. ……기교가 짐짓 우리의 태도를 꾸미기 이전에, 또한 정열에 멋을 부려 부자연스럽게 말하는 법을 가르쳐주기 이전에, 우리의 풍속은 촌스럽지만 자연스러웠다. ……사람들은 항상 관습을 따를 뿐 자신의 타고난 자질은 등한시한다. 그들은 더 이상 본래의 자기 자신을 보이려고 하지 않는다. 악덕의 행렬이 그와 같은 불신의 뒤를 이을 것이다.”(『학문과 예술에 대하여 외』)


잘못된 목적을 가진 학문 추구는 이처럼 인간 본연의 덕성을 헤칩니다. 다만 그것이 ‘정중함’이라는 ‘기교’로 가려질 뿐이죠. 루소는 정중함을 진실과 대립하는 행위로, 한 개인의 언행이 자신과 일치하지 않는 상태라 보고 경멸했습니다. 가식, 안과 겉이 투명하지 못함, 정직하지 못함, 진실하지 못함, 이중인격의 이기주의적인 인간성이 정중함이라는 것이죠. 정중함을 혐오하는 당대 최고의 교양인이라니, 루소는 정말 복잡한 인간임이 틀림없습니다.

 

올바른 목적을 지닌 학문 추구의 생생한 현장!

 


스파르타와 한국

 

루소는 이러한 비판을 프랑스, 중국, 아테네, 그리고 스파르타에 적용합니다. 당시 계몽의 선구자로 목에 힘주고 다니던 프랑스는 물론이고 중국과 아테네도 이를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대단한 존경을 받고 명예를 누리는 고관대작들이 즐비하면 뭐하냐는 것인데, 자신의 출세와 탐욕을 위한 학문은 결국 얕은 지식들만 난립시킨다고 루소는 지적합니다.

 

반대로 태생적인 덕성, 소박한 무지와 가난, 순수한 용기를 간직하는 것을 건전한 교육이라 보고 좋은 예로 스파르타를 지목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스파르타는 ‘스파르타식’이라는 수식어 외에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는 생각이 상식적이었습니다. 루소는 여기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죠. “그곳 사람들은 날 때부터 덕성스럽다. 나라의 공기까지 덕성을 고무한다.”(『학문과 예술에 대하여 외』)

 

영화 「300」의 스파르타 전사들. 이러한 묘사도 어찌 보면 ‘정중한’ 우리의 편견일지도.

 

그렇다면 이쯤에서 이런 생각을 안 해볼 수 없습니다. 만약 루소가 오늘날의 한국을 방문한다면 무어라 할까요? 한국은 학문이 넘쳐나는 나라입니다. 조기교육은 태아 때부터 시작하고 대학 진학률이 70퍼센트에 육박하며 고시‘촌’이 형성되어 있을 정도죠. 학문의 수준과 미덕의 정도가 비례한다면 아마 한국은 역사에 유례없는 정직하고 정의로우며 도덕적인 사회일 겁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요? 정직과 정의, 도덕이 여전히 사치처럼 느껴진다면 너무 비관적인 걸까요? 씁쓸한 마음으로 루소의 말을 인용해봅니다.


“아니, 우리 바로 앞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왜 어떤 진실에 대한 증거를 찾으려고 과거를 뒤지는가. 아시아에는 존경받는 학식이 국가의 고관대작으로의 길을 열어주는 한 대국이 있다. ……그들이 받는 대단한 존경과 명예로부터 그 나라가 얻은 과실은 무엇이었던가? 나라에 노예와 악인들이 득실대는 것이 그 과실일 수 있는가.”(『학문과 예술에 대하여 외』)


 

엘리트주의를 넘어 인간적인 교육으로

 

그렇다면 루소는 어떤 대안을 말할까요? 한마디로 정리하면 ‘학문은 소수의 천재에게만 국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루소는 학문의 유익성, 즉 진리와 정의를 위해 학문하는 소수를 제외한 나머지는 오히려 바로 그 학문 때문에 오만과 탐욕으로 자신과 사회를 타락시키게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문필가로 성장할 가능성이 없다면 아예 문전박대당해 직공으로 사는 게 자신에게도, 사회에게도 도움이 된다.’라고까지 말한 적도 있죠.

 

그렇다면 루소는 엘리트주의자였을까요? 사실 이 부분에서 루소의 교육론이 빛을 발하게 됩니다. 김중현 선생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루소는 ‘난 사람’보다 ‘된 사람의 배양’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죠. 이렇게 루소는 다른 계몽주의자들처럼 단순한 엘리트주의자로 남지 않고 시대적 한계를 나름대로 극복합니다.

 

루소에게 중요한 것은 이제 천재가 아니라 ‘인간적인 교육’입니다. 따라서 단순한 지식의 습득이 아닌 미덕의 고양을 목표로 한 교육기관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됩니다. 교과서를 외우는 일보다 사회생활에 필요한 이해심, 건강한 육체, 용기와 책임감을 수행하는 게 중요해진 것이죠.


“분별없는 교육이 우리 정신을 치장하여 판단을 그르치는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의 일이다. 나는, 많은 돈을 들여 젊은이들에게 온갖 것을 가르치지만 그들의 의무는 가르치지 않는 엄청나게 큰 교육기관을 도처에서 본다. 당신의 아이들은 자기 나라말도 제대로 모를 것이다. 그들은 아무 데서도 사용되지 않는 이상한 말을 하고, 자기들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시를 쓸 것이다. 그들은 진리와 오류를 분별할 줄 모른 채 그럴듯한 주장을 폄으로써 남들이 진리와 오류를 분간하기 힘들게 만드는 기교를 습득하게 될 것이다. 아량과 공정, 절도, 인간성, 용기 같은 말들이 뜻하는 바를 그들은 전혀 알지 못한다. 기분 좋은 단어인 조국이라는 말은 그들 귀에 전혀 들리지 않을 것이다. 신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는 하겠지만 그것은 신을 경외하기 때문이 아니라 두려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도대체 그들은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정말 좋은 질문이다! 그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가르쳐야지 잊어버릴 게 뻔한 지식을 가르칠 일이 아니다.”(『학문과 예술에 대하여 외』)


루소의 이 말은 지금 우리 사회에 보내는 최후통첩 같은 경고성 메시지로 들립니다. 헛똑똑이가 될 바엔 차라리 겸손한 무지를 지니라는 루소의 인간적인 교육론은 그의 대작 『에밀』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에밀』에게서 과연 곡학아세식 학문을 바로잡을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다음 3강이 기다려지는 이유입니다. 루소 깊이 읽기 마지막 시간까지 많은 참석 부탁드립니다.

 

인간적인 교육을 향한, 나지막하지만 깊은 목소리 『에밀』(한길사).

 

- 편집부 光

 


 

* 한길인문고전아카데미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인문독서아카데미’ 사업의 하나로 마포평생학습관과 한길사가 공동으로 꾸려가는 기획입니다. 인문독서아카데미는 전 국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무료 독서교육 프로그램으로 직장, 학교, 가정에서의 독서 생활화 기반 조성과 독서를 통한 인문 정신 고양을 목적으로 합니다.


* 사상가별 세 번의 강의에 모두 참석하시고 한길사 페이스북 한길그레이트북스 페이지에 소감이나 후기를 올려주세요. 세 분을 추첨해 『가자 고전의 숲으로-한길그레이트북스 120권 길라잡이』를 드립니다.


* 수업자료는 첨부파일을 확인하시면 됩니다.

루소 강의안 - 제2강.hwp



Posted by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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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그레이트북스2014. 5. 16. 15:35

한길인문고전아카데미

장-자크 루소 깊이 읽기(1) - 자연 속에서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얻다(『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즐겁고 유쾌한 고전을 위해

 

‘고’(古)전은 ‘신’(新)전입니다. 항상 새롭게 해석할 사상과 가능성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발견한 가치의 빛나는 궤적에서 우리는 길을 찾습니다. 고전에서 길을 찾습니다.

‘한길인문고전아카데미’는 바로 그 길을 고민하기 위해 시작되었습니다. 위대한 고전과 사상가들을 오늘로 불러 모아 지금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묻습니다. 함께 이야기하는 가운데 ‘책’이라는 형태를 넘어 확장되는 고전의 힘을 느낍니다.

 

 

한길그레이트북스 130권. 인류의 위대한 지적 유산을 집대성한 한길그레이트북스는 앞으로도 계속됩니다.


 

장-자크 루소, 에릭 홉스봄, 한비자, 아서 단토, 레비-스트로스, 한나 아렌트, 이탁오 등 일곱 명의 사상을 여섯 달, 이십 회에 걸쳐 깊이 읽는 한길인문고전아카데미. 강의 시작 전부터 많은 분이 깊은 관심을 갖고 신청해주셨습니다. 휴학한 학생으로서, 직장인으로서, 교사로서, 주부로서 각자의 삶은 달라도 알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은 모두 똑같았습니다. 고전은 그러한 마음들의 놀이터 아닐까요? 즐겁고 유쾌한 고전이 가능한 이유입니다.


 

의자를 공수(?)하다!

 

5/15(목) 마포평생학습관에서 시작된 첫 강. 한길사 직원들은 강의 한 시간 전부터 가서 이런저런 준비를 했습니다. 먼저 한길그레이트북스를 소개하기 위해 책장을 설치하고 책을 진열합니다. 원활한 강의 진행을 위해 미리 파워포인트 자료도 설치하고 제대로 작동하는지 시연해봅니다. 한길인문고전아카데미를 위해 제작한 교재도 준비합니다.

 

더 많은 분에게 한길그레이트북스를 소개하고자 책장과 진열대를 설치했습니다. 빽빽하게 채워진 한길그레이트북스. 보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꽉 찬 느낌입니다.

 

숨 가쁘게 준비하는 동안 독자들이 한 명, 두 명 모이기 시작합니다. 교재를 살펴보거나 첫 강의 주제도서인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을 구매하며 차분히 강의를 준비하는 모습에 진지함이 느껴졌습니다.

 

드디어 시곗바늘이 7시를 가리키자 어느새 강의실에는 60여 명의 독자가 자리를 꽉 메웠습니다. 발 빠른 한길사 직원들이 의자를 공수(?)해와 다행히 모두 앉아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잠시 뒤 그날의 강의를 맡으신 김중현 선생님께서 자리하셨습니다. 김중현 선생님은 루소의 대표작 『에밀』『고독한 산책자의 몽상』『학문과 예술에 대하여』를 번역하셨을 만큼 루소 전문가이십니다. 한길인문고전아카데미에서도 총 세 강에 걸쳐 루소를 깊이 읽는 시간을 마련하셨습니다. 특유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

 

김중현 선생님. 열띤 강의에 자리를 꽉 채운 독자들이 집중합니다.

 

 

근대적 개인의 탄생

 

첫 강연은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을 중심으로 루소의 일생과 그에게 자연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탐구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루소는 매우 복잡한 인간이었습니다. 매우 단순한 삶, 통합적인 공동체, 단일한 가치를 지니고 살았던 중세시대의 인간과는 분명히 다른 존재였죠. 그렇다고 전형적인 계몽주의자도 아니었습니다. 이성만을 우위에 둔 동시대 지식인들과 달리 루소는 감정의 영역에도 깊숙하게 들어갑니다. 이처럼 상당히 입체적인 정체성을 지녔기에 우리는 그에게서 ‘근대적 개인’의 탄생을 보게 됩니다.

 

김중현 선생님이 자세히 설명해주신 루소의 일생도 그의 정체성만큼이나 복잡했습니다. 가난한 시계공의 집에서 아픈 몸(요폐증)으로 태어나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지만 많은 귀부인과 인연을 맺은 루소. 엉덩이에 매를 맞으며 관능의 세계를 눈을 뜨고, 개신교도였으나 바랑 부인을 만나자마자 그녀의 아름다움에 취해 가톨릭으로 개종하기도 하는 등 루소에게는 참으로 ‘유별난’ 일화가 많습니다.

 

특히 바랑 부인과의 만남은 루소의 삶을 크게 바꿔놓았습니다. 개종 사건은 물론이고 루소는 그녀에게 엄마와 연인의 감정을 모두 느낍니다. 그는 ‘순수한 사랑’으로 요폐증도 이겨내며 바랑 부인과의 ‘행복한 전원생활’을 시작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바랑 부인 곁에 다른 남자가 있었을 때조차 루소가 그녀를 떠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바랑 부인의 비서로 있으며 시간을 보내죠. 전혀 경제력이 없었던 루소에게 바랑 부인은 절대적인 후견인이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그 둘의 관계가 요즘 말로 ‘소울 메이트’였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다른 이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정신적인 교감을 평생 나누었던 것입니다. 여기서도 루소가 얼마나 복잡한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바랑 부인을 만난) 첫 순간이 면할 수 없는 사슬이 되어 내 남은 생의 운명을 결정해버렸다. 아! 그녀가 내 마음을 가득 채워주었듯이 나 또한 그녀의 마음을 가득 채워주었으면 좋으련만!”(『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열 번째 산책」 중)


재미를 넘어 충격을 주는 사실은 루소가 결국 평생을 함께한 상대가 자신이 묵던 여관의 하녀인 테레즈였다는 점입니다. 『신엘로이즈』『에밀』 등 베스트셀러를 냈지만, 인세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대라 별 도움이 안 됐고, 평생 악보 필사로 근근이 연명하던 루소에게 테레즈의 생활력은 매우 매력적(?)이었을 겁니다. 애초에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고 물욕 없던 천성 탓에 테레즈의 신분을 크게 문제 삼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루소는 테레즈와 살면서도 계속 귀부인들과 만납니다. 게다가 테레즈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 다섯을 모두 고아원에 보내죠. 더 좋은 보육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이유를 대지만 루소도 이후의 저작에서 자신의 잘못을 끊임없이 고백합니다. 여하튼 자유로운 영혼 루소 때문에 테레즈의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을지 상상할 수조차 없습니다. 루소는 1778년 7월 2일 테레즈와의 아침 식사 후 사망합니다.


 

고독한 산책자, 자연을 품다

 

루소는 바랑 부인 곁에서 애인이 아닌 하인으로 머무는 동안 공부에 전념합니다. 2년여 동안 엄청난 양의 책을 독파하죠. 존 로크, 말브랑슈, 라이프니츠, 데카르트, 기하학, 대수학, 라틴어, 로마 시대의 고전, 역사학, 지리학, 연대학, 천문학 등 실로 방대한 지식을 가지게 됩니다.

싫은 소리를 전혀 참지 못하는 성격과 방대한 지식의 결합 때문인지, 이후 루소는 많은 적을 만듭니다. 『에밀』때문에 쫓기던 때 자신을 도와준 흄과도 등을 돌리게 되죠. 원체 반골적인 기질은 루소를 고독하게 만듭니다. 『사회계약론』의 인민주권 사상과 『에밀』의 이신론 사상으로 정치계와 종교계의 탄압을 받게 되면서 루소의 고독은 한층 심해집니다. 그 고독의 끝에서 찾게 된 것이 바로 비엔 호수의 성 베드로 섬입니다. 성 베드로 섬의 아름다운 자연.

 

“(성 베드로 섬은) 한가로이 자연의 매력에 취하고 싶어하고, 이따금 들려오는 소리들이며 온갖 새의 울음소리, 산에서 떨어져 내리는 폭포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정적 속에서 명상에 잠기기 좋아하는 고독한 명상가들에게는 흥미로운 곳이다.”(『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다섯 번째 산책」 중)


비록 성 베드로 섬에서 두 달여밖에 머무르지 못하지만 그곳에서 만났던 자연은 루소에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자기 몰래 음흉한 계획이 획책되고 결국 자신을 탄압하는 상황을 언제나 끔찍이 싫어하고 경계하던 루소에게 자연만큼은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주었던 것입니다. 이에 루소는 식물채집이라는 취미를 갖게 됩니다.


 

낭만주의자 루소

 

이후 파리로 돌아와서도 루소는 계속 식물을 채집합니다. 남들이 보기엔 이상한 짓이었겠지만 루소에게는 그만한 명상이 없었죠. 그에게 식물채집은 괴로운 세상사를 잊고, 자신을 못 죽여 안달 난 이들에 대한 증오를 씻어내는 자기 정화의 시간이었습니다.


“찬란한 꽃들, 목초지의 다채로운 빛깔들, 시원한 그늘, 시냇물, 작은 숲과 초원들이여, 그 온갖 끔찍한 대상들에 의해 더러워진 내 상상력을 정화시켜다오.”(『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일곱 번째 산책」 중)


식물채집을 통한 명상은 루소로부터 남다른 감수성을 끄집어냅니다. 바로 ‘낭만’입니다. 인간 본연의 자아와 심성 내부로의 깊은 침잠이 낭만주의의 본질이라면 분명 루소와 자연의 관계는 낭만주의의 시작인 것이죠.

 

루소는 계몽주의 시대 자연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최초의 인물입니다. 물론 루소 이전에도 많은 계몽주의자가 자연을 다루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자연은 분석 대상일 뿐이었죠. 하지만 루소에게 자연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살아 있어서 다양한 감정이 넘쳐흐르고 끊임없이 생성 유전하는 존재로 비상합니다. 루소 이후의 낭만주의 사조에서 자연을 대한다는 것은 곧 아름다운 자연의 마력으로 깊이 침잠하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죠. 깊은 침잠은 자연과 하나 됨을 경험케 하고, 몽상과 황홀경을 선사합니다.

 

이런 낭만주의의 감수성은 꼭 자연에만 국한되지 않고 더욱 확장됩니다. 중요한 것은 자연 그 자체가 아니라 자연에 대한 태도인 것이죠. 단지 타자로 머물지 않고 그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것, 동시에 나 자신에 대해서도 이성으로 배제해버린 감정을 되살리는 것 말입니다.

 

이러한 태도의 정점이 바로 『신엘로이즈』입니다. 당시 루소와 사회의 유력인사(주로 귀부인)들이 주고받은 편지를 보면 『신엘로이즈』와 관련된 재미있는 얘기들이 많이 나옵니다. 요약하자면 너무 울어 숨이 멎을 지경이라는 것이죠. 이루어질 수 없는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룬 『신엘로이즈』가 지닌 낭만의 감수성은 순식간에 사람들을 매료시킵니다.

 

 

 

“오, 황홀한 슬픔이여! 오, 감동된 영혼의 우수여! 욕망의 고삐가 풀린 연인들이 무제한의 열정에 사로잡혀 느끼는 부산한 쾌락, 들뜬 즐거움, 흥분된 기쁨 그리고 모든 격정을 너희들은 얼마나 크게 능가하는가!  관능적 쾌락과 비교될 수 없는 평화롭고 순수한 기쁨이여 깊게 스민 너에 대한 추억은 결코, 결코, 내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으리라.”(『신엘로이즈』)

 

이쯤 되면 우리가 루소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단편적인 인상은 수정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단순히 ‘계몽주의자 루소’ ‘프랑스혁명의 아버지 루소’ ‘사회계약론의 정치사상가 루소’가 아닌 ‘낭만주의자 루소’ 역시 분명 그의 한 모습입니다.

 

알면 알수록 그의 복잡함과 방대함, 깊음에 놀라게 되는 장-자크 루소. 제2강에서는 사람들에게 그를 처음으로 알린 『학문과 예술에 대하여』를 가지고 올바른 교육에 대해 공부할 계획입니다. 

우리는 또 어떤 루소를 만나게 될까요? 기대하는 마음으로 많은 참석 부탁드립니다.

 


 

- 편집부 光

 


 

* 한길인문고전아카데미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인문독서아카데미’ 사업의 하나로 마포평생학습관과 한길사가 공동으로 꾸려가는 기획입니다. 인문독서아카데미는 전 국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무료 독서교육 프로그램으로 직장, 학교, 가정에서의 독서 생활화 기반 조성과 독서를 통한 인문 정신 고양을 목적으로 합니다.


* 사상가별 세 번의 강의에 모두 참석하시고 한길사 페이스북 한길그레이트북스 페이지에 소감이나 후기를 올려주세요. 세 분을 추첨해 『가자 고전의 숲으로-한길그레이트북스 120권 길라잡이』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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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업자료는 첨부파일을 확인하시면 됩니다.

루소 강의안 - 제1강.hwp



 

Posted by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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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그레이트북스2014. 3. 17. 17:05

한길그레이트북스 130권 돌파 인문학 특강

제6강 미美란 무엇인가-아름다움을 탐구한다

아서 단토: <일상적인 것의 변용>

에드먼드 버크: <숭고와 미의 근원을 찾아서>

 

 

인문학은 우리 가까이에 있다-인문학 특강을 마치며

 

한길그레이트북스 130권 출간 기념 인문학 특강 마지막 강의, ‘미란 무엇인가’의 현장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지난 2월 6일부터 3월 13일까지 매주 목요일 정독도서관에서 열린 인문학 강연을 다녀왔다. ‘고전으로 다시 일어서기—인간의 조건을 묻는다’라는 주제로 6회 강연이 진행되었다. 전에도 정독도서관에 종종 갔지만 왠지 인문학 강의를 들으러 간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사실 그동안 학교 안팎에서 인문학을 공부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인문학에 대해 아는 건 거의 없었다. 딱딱한 이과보다는 문과에 가까운 것, 아니면 그냥 '나는 누구인가' 하는 덩어리 식의 생각, 인문학 하면 떠오르는 건 이러한 표면뿐이었다. 이렇게 몇 년 동안 들어도 뜻도 잘 모르겠는 인문학을 6회만의 강연으로 알게 될지 의문을 품고 첫 번째 강의를 들으러 갔다.

 

 

하루 종일 바쁜 일정으로 식사도 못 하시고 강의를 시작하신 김혜련 선생님. 열정적이고 유머러스한 언변에 반했어요! ‘미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명확한 해답이 주어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설명하기 위한 준거점에 해당하는 ‘논리적 가정’이라는 말씀, 인상 깊었습니다.

 

 

제1강은 ‘문명과 편견—문명의 오만, 상식의 폭력’이었다. 가보니 청중 대부분이 어른들이었다. 그걸 다시 증명이라도 하듯 출석체크 때 도서관 사서분께서 내 나이를 확인하시더니 강의를 들을 수 있겠느냐고 물어오셨다. 실제로 강의 내용을 100퍼센트 수용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는 내가 어려서가 아니라 배경지식이 부족해서라고 느꼈다. 이해가 잘 안 되는 만큼 오히려 역사와 철학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이번 강의를 통해 인문학이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걸 느꼈다. 문명과 편견 강의에 등장한 예들은 대부분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자문화중심사상과 타문화중심사상은 특히나 그러했다. 우리는 판소리나 탈춤 등의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과 자긍심이 부족하고 타국의 문화만 숭상할 때가 꽤 많다.

또 반대로 모든 인류문화가 대부분 갖고 있는 자문화중심사상에 관한 이야기도 인상 깊었는데,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라면 서로의 문화에 관심을 갖고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시대를 문화와 문명의 차원에서 다방면으로 해석하고 편협한 시각의 오만과 편견을 극복하도록 노력해야겠다.

 

 

끝까지 열정적으로 강연에 참석해주신 독자 여러분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특히 6강 모두 참석해주신 30여 분에게는 한길그레이트북스 길라잡이 <가자, 고전의 숲으로>를 드렸어요. 좋은 선물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제3강, ‘중국과 중국인—포스트사회주의로 읽는 중국사상’을 통해서는  우리 사회를 좀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동안 우리나라에 대해 얘기할 때는 영토 크기, 정치형태, 영향력이 제일이라는 식으로 말했지만 이번에는 우리나라에 관해 조금은 객관적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다. 정확히 말하면 정석대로의 공산주의는 아니고 특유의 방식으로 시장주의를 받아들였지만 말이다. 많은 인구만큼 그들이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중국 근대사상의 역사와 방향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중국 공산주의 이론의 역사를 배웠는데, 그 가운데 가족도 해체하고 모든 것을 공유하고 나누는 사회를 지향하는 이론은 엽기적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우리 역사에서도 품앗이, 두레처럼 공산주의와 비슷한 이상을 추구하는 제도도 있었던 만큼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두 체제의 타협점에 우리 사회의 미래가 있지 않을까 기대할 수 있었다. 시장주의는 언제나 변화를 겪어왔다.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점점 심각한 약육강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금이 새로운 타협점을 찾아야 하는 시기일지도 모른다.

 

 

교복을 입고 찾아온 중․고등 학생들, 멋진 반백 머리를 뽐내시던 어르신들, 사이좋게 팔짱을 끼고 나들이 오듯 강연장을 찾아주신 50대 여성 독자들, 회사가 끝난 후 식사도 제대로 못 하고 바쁘게 오셨을 직장인 여러분까지 이번 인문학 특강을 통해 많은 분들과 인연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책과 함께하는 좋은 추억 많이 만드시길 바라고 새롭게 준비하고 있는 한길인문고전학교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총 6강에 걸친 강의 동안 모든 내용을 다 흡수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그래도 그동안 인문학을 토대로 한 고민이 없었던 시간에 대해 반성하고 지식을 쌓을 수 있어 좋았다. 물론 이 6강의 강의를 들었다고 모든 인문학이 엄청 재미있을 것이라고 장담은 못 하지만 이 강의 속에서 나는 매우 즐거웠다. 앞으로도 주위 사람들과 이러한 즐거움을 나누고 싶고 벌써 다음 인문학 강의가 기다려진다.

 

 

 

 

by. 이매중학교 염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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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그레이트북스2014. 3. 7. 17:28

한길그레이트북스 130권 돌파 인문학 특강

제5강 자본주의와 돈-인간답게 살아가는 법

에릭 홉스봄: <혁명의 시대><자본의 시대><제국의 시대>

 

 

 

강연 시작 전 꼼꼼하게 준비하시는 김동택 선생님과 강연 자료를 자세히 읽어보고 있는 독자. 『로마인 이야기』도 보이네요. 역사를 좋아하시는 분이신가 봅니다! 벌써 강연이 기대됩니다.

 

 

 

‘당신은 단 하루라도 돈 없이 살아갈 수 있나요?’ 이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이 ‘상품화’되었기 때문이죠. 심지어 사람까지 상품이 된 세상에서 돈은 죽고 사는 문제까지 좌우하나 봅니다.

 

한길그레이트북스 인문학 특강 제5강 ‘자본주의와 돈- 인간답게 살아가는 법’은 바로 그 돈의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에릭 홉스봄의 <자본의 시대>(The Age of Capital, 1848~1875)를 바탕으로 인류사에 돈, 정확히 말해 ‘자본’이 인간에게 미친 영향에 대한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PPT 자료 덕분에 더욱 재미있는 강연이었습니다. 자리를 가득 메운 독자들의 집중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김동택 선생님(서강대 국제한국학과 교수)께서는 ‘혁명’을 주제로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프랑스 혁명 이후 나폴레옹 전쟁은 곧 ‘국민국가’의 탄생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정치가 어느 정도 안정되면서 곧이어 두 번째 혁명이 시작됩니다. 바로 산업혁명입니다. 이 ‘2중 혁명’이 지금까지 삶의 기본 모델이 되었다는 설명입니다.

 

이때 산업혁명은 상업자본주의를 산업자본주의 형태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됩니다. 증기기관은 생산량의 막대한 증대를 가져왔고, 이익은 자본이 되어 다시 산업으로 재투자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김동택 선생님께서 “끊임없이 자기 몸을 불려 나가는 메커니즘”이라 정의한 이 지점부터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팽창하게 됩니다. 이익 발생과 재투자라는 자본주의의 생명유지조건은 ‘만물의 상품화’를 이루었습니다.

 

 

필기를 열심히 하는 고등학생 독자! 지금까지 꾸준히 ‘고전으로 다시 일어서기’ 특강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대단하네요~^^

 

 

설명이 이쯤 되자 자본주의의 위력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김동택 선생님은 계속해서 확장하는 자본주의 영역이 “인간 삶의 모든 부분을 자본주의에 알맞도록 변형”시켰다며, “매우 일상적인 생활조차 자본주의 메커니즘에 구속되었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이후 강연에서는 그 ‘구속’의 역사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이슬람 세력을 피해 새로운 동방무역로를 개척하고자 바다로 향했던 유럽인들은 곧 신대륙과 인도를 발견했습니다. 이후 무력을 앞세워 각 지역의 값나가는 상품과 원자재, 광물을 쓸어 모으며 유럽인들은 ‘세계무역’을 시작합니다.

김동택 선생님은 커피 무역을 예로 드셨습니다. 남미에서 원주민을 노예처럼 부리며 채굴한 금으로 아프리카 노예를 산 뒤 커피를 재배시켜 파는 야만적인 자본주의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힘으로 인도의 면산업을 파괴하고 청나라에 아편을 팔아버린 당시의 방식이 요즘에도 낯설지 않다면 착각일까요? 몇몇 참가자들의 표정에서 씁쓸함이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질문하는 중학생 독자입니다. 어린 독자들의 참여가 눈에 띄는 강연이었습니다! ^^

 

 

이처럼 야만적인 성격을 지닌 자본주의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인간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요? 김동택 선생님은 ‘호혜’ ‘교환’ ‘재분배’의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설명하셨습니다. 무엇보다 호혜와 재분배 기능이 우리나라 역사에 이미 존재했었다는 것을 강조하셨는데요, 역사책에서 볼 수 있는 구휼이나 지금은 외형만 남은 품앗이, 계 등이 그 실마리입니다.

교환 기능만이 극대화된 현대 자본주의는 ‘고위험사회’입니다. 돈의 많고 적음을 떠나 누구도 안정된 생활을 누릴 수 없죠. 따라서 공동체를 회복하고 삶의 세밀한 부분까지 지탱해줄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찾은 김동택 선생님의 통찰은 아주 신선했습니다.

 

 

강연이 성황리에 끝나고 한길그레이트북스에 몰려든 독자들. 다음 주 13일, 마지막 강연에서 다시 만나요!

 

 

혁명의 시대가 자본의 시대로 이어지고, 자본의 시대는 제국의 시대를 낳았다는 홉스봄의 견해는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모든 논의는 김동택 선생님의 말처럼 자본주의로 귀결됩니다. 이후 홉스봄은 20세기가 ‘극단’으로 끝났고, 21세기는 ‘테러리즘’으로 시작되었다고 진단합니다. 이 척박한 역사에서 우리는 ‘인간적인 한국판 자본주의’를 꽃피울 수 있을까요? 지난 2012년 세상을 떠난 홉스봄에게 묻고 싶습니다.

 

 

by. 에디터 김광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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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그레이트북스2014. 2. 28. 14:03

한길그레이트북스 130권 돌파 인문학 특강

제4강 역사를 위한 변명-역사 읽기와 인간 읽기

마르크 블로크: 『봉건사회』『역사를 위한 변명』

 

 

마르크 블로크. 동그란 안경에 조금은 소심한 듯한 인상입니다. 하지만 그가 어떤 삶을, 또 어떤 죽음을 택했는지 알게 되면, 놀라실 거예요^^!

 

 

“금방 눈에 띄는 풍경이나 연장, 기계 따위의 너머에서, 겉보기에는 차디차게 식은 듯한 문서나 그것을 만든 자들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어 보이는 제도의 너머에서, 역사학이 파악해내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인간들이다.”

- 마르크 블로크, 『역사를 위한 변명』, 한길사, 2007, 56쪽.

 

 

20세기 프랑스가 낳은 위대한 역사학자, 마르크 블로크는 역사학의 대상을 ‘인간들’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때의 인간은 고립된 개체가 아닌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입니다. 사회학이 가질 수 없는 역사학의 장점이 있다면 ‘시간 속에서 변화하는 인간’을 다룬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인간관을 토대로 블로크는 그의 대표작, 『봉건사회』를 저술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중세사를 가장 종합적으로, 생생하게 다룬 글로 꼽힙니다.

 

 

파리 20구, 마르크 블로크 광장. (출처: Wikimedia Commons)

 

 

블로크는 지금까지도 프랑스에서 열렬히 추모받습니다. 스트라스부르의 제2대학은 ‘마르크 블로크 대학’으로 불립니다. 파리에는 그의 이름을 딴 광장이 있기도 하죠. 프랑스에 두 개의 고등학교도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고 해요. 그가 창시한 ‘아날학파’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그의 저술들은 고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이 그를 추모하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한정숙 선생님의 마르크 블로크 강의, 시작합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자리를 가득 채워주신 수강생 여러분 모두 감사합니다. ^^

 

마르크 블로크는 무엇보다 ‘용기 있는 지성’의 상징입니다. 블로크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1915년에 입대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1940년 프랑스가 독일군에게 항복하자, 그는 또 자리를 박차고 나가 레지스탕스 전사가 되었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 57세, 대학교수이자 역사학자로 큰 인정을 받고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휘하의 자녀들과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자신의 말과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지식인이 되기 위해 전장으로 나간 것입니다.

 

“우리들이 직면했던 참으로 절실한 문제는 우리가 일상적인 업무들에 매몰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우리 대부분은 자신이 좋은 연구자였다고 웬만큼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마찬가지의 타당성을 가지고 자신이 좋은 시민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까?“

- 마르크 블로크, 『이상한 패배: 1940년의 증언』, 까치, 2002.

 

 

“여러분, 이 부분을 보세요.” 모두 함께 집중!

 

 

자신의 조국을 위해 싸우던 그는, 결국 1944년 독일군에 의해 동료 레지스탕스 대원들과 함께 총살당합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물음 만큼,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문제도 중요하죠. 우리도 마르크 블로크의 죽음에서 배울 점이 있지 않을까요? 자신의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는 삶(혹은 죽음)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시금 느낍니다.

 

한정숙 선생님의 마르크 블로크 강의를 듣고 난 후, 한 분이 예리한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인간이 과연 역사를 통해 반성을 하나요? 인간의 본성은 그대로인 게 아닐까요? 지배와 피지배의 구조는, 과거와 형태를 달리할 뿐, 오늘도 그대로입니다.”

 

한정숙 선생님은 답변하셨습니다.

 

“물론 현재 우리나라 사회를 볼 때, 회한이 많이 들죠. 하지만 공적 권력이 더 교묘하고 효율적으로 대중을 지배하는 만큼, 대중의 저항력도 강해졌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희망을 가져봅니다.”

 

 

강연이 끝나고도 계속되는 토론의 열기! 강연해주시는 선생님들과의 질의응답은 한길그레이트북스 특강의 묘미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도 어제의 토론에 한 마디 덧붙여봅니다.

 

“역사에 대한 회의든, 또는 희망이든, 오늘을 보는 깊이 있는 안목과 비판적 인식은 모두 역사를 공부하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요?”

 

이번 주말에는 블로크의 『역사를 위한 변명』을 읽어봐야겠어요!

 

오늘의 강연주제 책들. 한길사 강연에 오시면 할인 판매 중인 한길그레이트북스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남녀노소 함께 듣는 인문학 특강! 0~99세까지 입장 가능합니다^^

 

- by. 편집부 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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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그레이트북스2014. 2. 25. 13:27

한길그레이트북스 130권 돌파 인문학 특강

제3강 중국과 중국인-포스트사회주의로 읽는 중국사상

리쩌허우: 『중국근대사상사론』『중국현대사상사론』

 

유토피아를 찾아서

 

 

 

저물녘 정독도서관은 고즈넉하다. 고즈넉한 시간에 듣는 유토피아라니. ‘중국사상사론’ 3부작 저자인 리쩌허우의 생각이 강연자인 임춘성 교수님(목포대 중어중문학과)의 육성을 통해 생생히 전달된다. 이 강연은 아편전쟁이 발발한 1840년부터 5·4운동의 기점이 되었던 1919년까지를 중국사상사에서 춘추전국시대와 맞먹는 사상의 폭발시대였음을 전제로 출발한다. 이 시기 80년간을 근대, 즉 중국어 발음 ‘진다이’(近代)로 힘주어 발음하는 것은 이 시기의 역사적 중요성을 강조하는 한 가지 방식으로 보인다. 이 80년간 중국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가?

 

 

한 독자분이 가져다주신 커피. 한길그레이트북스 130권 돌파 인문학 특강 제3강 중국과 중국인 강의는 시작부터 훈훈하네요.

 

리쩌허우는 마르크스주의가 광범위하게 전파되기 이전 진다이 중국에 세 차례에 걸쳐 반제·반봉건 사조가 출현했다고 본다.

 

“중국 근대 진보사상의 보다 중요한 지표는 그들이 거의 모두 유럽과 미국에서 자신의 해방사상을 빌려왔다는 점이다. 그들은 모두 천신만고 끝에 서양국가에서 진리를 찾은 인물이었다. 쑨중산은 물론 더욱 그러했다. 홍슈취안이 1840~50년대에 서양전도사로부터 기독교의 소박한 ‘천국’관념을 빌려오고 캉유웨이가 서양 자본주의 단계에서 자본주의 세계의 낙원에 대한 대동공상을 탄생시켰다면, 쑨중산은 오히려 제국주의 탄생시대에 서양 자본주의의 길에서 벗어난 사회주의를 수용하고 그것을 제창했다고 할 수 있다.” (『중국근대사상사론』, 543쪽)

 

 

한길사에서 출간된 중국에 관한 책들. 리쩌허우의 중국사상사론 3부작 외에도 『중국인 이야기』『중국시가의 이미지』『명대의 운하길을 걷다』 등 예술에서 여행까지 다양한 주제의 중국 관련도서를 만나보실 수 있어요.

 

세 가지 사조에 대해 알아보기 쉽게 위 인용문을 정리해보자.

 

첫째, 1850년대 홍슈취안의 태평천국운동

둘째, 1870~90년대 캉유웨이의 부르주아 자유파의 개량주의와 대동공상

셋째, 1900년대 쑨중산의 혁명민주주의 사조

 

리쩌허우는 위 세 가지 사상을 중국 진다이 사회주의 유토피아 사상으로 판단한다. 동시에 그의 저서 전편을 통해 사상의 한계와 실패 원인을 예민하게 통찰한다.

리쩌허우는 쑨중산의 혁명민주주의가 홍슈취안과 캉유웨이가 선도했던 사상노선의 종합이자 총결이요, 부정의 부정으로 나아가지 못한 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다시 말해 변증법적 발전법칙을 완성하지 못한 한계를 뚜렷이 한다. 하지만 이 혁명과정은 이후 마오의 신민주주의혁명을 통해 완성되었음을 밝힘으로써, 중국사상사 혹은 혁명사의 연속성을 유연하게 확보한다.

 

 

한길그레이트북스를 향한 청년(?)들의 무한한 애정. 감사합니다.^^

 

 

중국 진다이 시기 유토피아 사상 중 단연 우리의 흥미를 끄는 부분은 캉유웨이가 제시한 대동세계이다.

 

“남녀가 자유롭게 함께 살고 어린이는 공유하며 아이가 태어나면 바로 공적 가장이 운영하는 영아원과 탁아소에서 정성껏 키운다. 이후에 다시 소학원(小學院)과 대학원(大學院) 등을 경유하여 그들을 공적으로 양육하고 가르쳐 모든 사회성원이 고도의 우수한 문화교육을 받은 후 사회를 위해 봉사하게 한다. 늙거나 불행하게도 장애자가 되면 사회의 양로원과 요양원 등에서 공적으로 그들을 구제한다. 캉유웨이는 이렇게 중국 고대경전이 흠모한 ‘노인은 봉양 받을 곳이 있고 어린이는 믿는 곳이 있으며 외로운 자와 불구자는 모두 부양받는 곳이 있는’ 행복하고 즐거운 ‘대동’세계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 『중국근대사상사론』, 251쪽)

 

위 청사진은 인류가 유사 이래 한 번도 실현하지 못한 공공사회의 수준을 보여준다. 자본주의는 물론 현실사회주의에서도 한 번도 실현하지 못한 이른바 ‘대동사회’의 이상적 풍경이다. 캉유웨이는 인간세상의 모든 고통의 근원이 경계 또는 차별에서 유래한다고 본다. 그는 계급차별·인종차별·남녀차별·가족경계·산업경계·인간과 짐승의 구별마저 타파할 것을 그는 역설한다. 리쩌허우는 유토피아를 위한 이런 설계도에도 불구하고 캉유웨이의 대동사상이 많은 모순점을 지니고 있었다고 지적한다. 민주와 자유를 원하면서도 정작 혁명을 두려워하는 캉유웨이류의 부르주아 자유파 사상의 한계가 바로 그것이었다.

리쩌허우는 중국 진다이 시기 서세동점에 대항하여 발원한 유토피아 사상은 모두 ‘중체서용’(中體西用)에 기반을 둔 사상운동이라고 보고 있다. 그는 태평천국의 예를 들어 자신의 논지를 뒷받침한다.

 

“태평천국의 모든 것이 겉보기에는 ‘서학을 체로 삼고 중학을 용으로 삼는다’는 것, 즉 서구에서 전래된 기독교 교리를 주체로 삼고, 아울러 그것으로 주요한 핵심적 관념·사상체계를 규정했으며, 중국 전통 하층사회의 관념과 관습을 통해 구체적으로 그것을 응용한 것으로 보였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중체서용’이었기 때문이다. 즉, ‘중학’은 여전히 근본적인 것이었으며, 여기서의 ‘중학’은 이를테면 등급제, 모자람을 걱정하지 않고 고르지 못함을 걱정하는 평균주의, 분배·소비에서 공산주의적 유토피아, 도덕주의…… 등등 전통사회의 소생산경제 기초 위에서 자라난 각종 봉건주의적 관념·사상·정감이었다.”(『중국현대사상사론』, 524쪽)

 

 

오늘 강의를 위해 목포에서 먼 걸음 해주신 임춘성 선생님. 포스트사회주의로 읽는 중국사상, 그 가운데서도 유토피아론은 참 흥미롭더군요.

 

 

하지만 리쩌허우는 오늘날의 시점에서 ‘중체서용론’(中體西用論)을 ‘서체중용론’(西體中用論)으로 재해석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그는 서구의 과학기술을 단순히 ‘용’의 문제에 국한시키지 않는다. 과학기술은 생산력과 생산양식의 변화를 가져오고, 생산력과 생산양식은 필연적으로 생활양식과 이데올로기, 정치제도의 변화, 다시 말해서 ‘체’의 문제와 긴밀히 연관된다고 판단한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체’와 ‘용’이라는 범주와 의미를 재검토한다.

 

“오늘날 ‘체’와 ‘용’의 범주를 사용할 때는 명확히 규정을 내려야 할 필요가 있다. 내가 쓰려는 ‘체’라는 용어의 의미는 다른 사람과 다른데, 그것은 물질과 정신생산을 포괄하는 것이며, 사회존재(社會存在)는 사회본체(社會本體)임을 강조한다. ‘체’를 사회존재라고 하는 것은 이것이 이데올로기만 포함하는 것, 즉 ‘학’(學)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존재라는 것은 사회의 생산양식과 일상생활이다. 이것은 유물사관의 입장에서 본 진정한 본체이며, 인간존재 자체이다. 근대화는 우선 이러한 ‘체’의 변화이다. 이러한 변화에서 과학 기술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과학 기술은 사회본체 존재의 기초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생산력의 발전을 이끄는 것이고, 확실히 전체 사회존재와 일상생활에 변화를 발생시키는 가장 근본이 되는 동력이자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나는 이 ‘체’를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과학 기술은 ‘용’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로 ‘체’의 범주에 속한다.”(『중국현대사상사론』, 526쪽)

 

 

강의 후기를 써주신 김경엽 선생님과 임춘성 선생님.

 

 

‘중체서용론’에서 ‘서체중용론’으로의 발상과 인식의 전환은 향후 중국의 행보를 해석하는 하나의 프레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은 강연의 첫 머리 주제였던 포스트사회주의 담론과도 긴밀히 연관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2012년 시진핑의 취임 일성은 ‘중국몽’(中國夢)이었다. ‘중국몽’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궁금해 했다. 대체로 ‘국가부강’, ‘민족진흥’, ‘인민행복’, ‘중국식 사회주의’와 같은 말들을 만들어냈다. 중국 근대 시기의 유토피아는 저 아득한 시절, 도연명의 도화원과는 분명 다른 꿈이다. 중국의 유토피아를 향한 꿈은 21세기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by

백석문화대학교 중국어학부 강사

『중국인 이야기』독후감 경연대회 수상자

한길사 독자위원회

김 경 엽

 

 

Posted by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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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논문 : 명대

    2014.04.14 20:24 [ ADDR : EDIT/ DEL : REPLY ]

한길그레이트북스2014. 2. 18. 13:24

한길그레이트북스 130권 돌파 인문학 특강 - 고전으로 다시 일어서기

제2강 정치의 빛과 그림자-어둠을 이기는 불꽃

한나 아렌트 : <공화국의 위기><인간의 조건><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그레이트북스 130권 돌파 인문학 특강.

두 번째 강좌는 '정치의 빛과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한나 아렌트의 사상에 대해 알아봅니다.

 

한길그레이트북스 인문학 특강 제2강 정치의 빛과 그림자, 시작합니다.

 

오늘은 특별히 강연 후 세 분의 독자분이 보내주신 후기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전체주의로 가는 명확한 역사적 경로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우리가 보는 역사는 하나의 경로지만, 실제 그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선택사항이 있었다. 즉, 역사는 단정적이거나 결정론적이지 않다. 이 맥락에서 역사는 하나의 방향성이나 지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선택지와 그에 따르는 단편적 이야기의 연속이다.

아렌트는 “역사과정의 열린 해석, 우연성”을 강조한다. 즉, 전체주의는 갑자기 나타나거나 그것이 나타나는 경로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우연과 선택의 연속이 중첩되어 발생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문제는 “우리는 현재 시점에서 무엇을 바라보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인가?”다.

결정화(crystallized)된 요소가 흐르는 저류가 어떻게 하나의 큰 흐름을 형성하는가를 관찰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전체주의를 “이해”(understanding)해야 한다. (물론 이해가 용서는 아니다.) 어떤 현상 또는 역사적 흐름이나 결과를 이해한 후 이에 접근하는 것은 ‘교조화’(indoctrination) 된 이데올로기와는 다른 것일 수밖에 없다. 이데올로기는 이해에 선행해서 특정한 사고의 틀을 먼저 규정하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나 사고 없이, 무비판적으로 행동하고, 파편화되고 관료화된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 행동을 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아이히만은 악마나 정신병자가 아니라, 극히 정상적이고 평범한 관료였다."

-정재웅 님

 

 

오늘도 100여 명이 넘는 많은 분들이 찾아와주셨어요. 강연자 김선욱 선생님, 백발이 참 잘 어울리시네요~

 

 

"한나 아렌트의 가정환경과 그가 젊은 시절 하이데거에게 영향을 받게 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 흥미로웠다. 그의 철학에서 ‘존재’ ‘탄생’ ‘죽음’ 의 의미를 짚어주신 것 또한 인상 깊었다. 최초의 거짓말을 들키지 않으려고 계속 거짓말을 할수록 사실과 멀어지는 얘기를 하게 되는 것처럼 현실에서 벗어난 틀을 제공함으로써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게 하는 ‘이데올로기’에 관한 친절한 설명이 이어졌다.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를 용서할 수는 없지만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과연 나는 전체주의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되돌아보는 소중한 기회였다."

- 최태준 님

 

 

강의가 끝나고, 질문이 쇄도했답니다. 제일 앞줄에 어린 학생들이 자리해서 경청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철학자 이전에 여성이고, 또 유대인이라는 출생배경이 주는 선입견이 작용하는데다 하이데거와의 염문까지 더해 한나 아렌트를 직시하는 데 방해물이 많았다는 걸 깨닫는 것에서부터 강연의 이해가 시작되었다.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가볍게 구획되는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이데올로기화되어가는 여러 개념을 찾아보고 그녀의 삶의 궤적을 따라서 저서의 내용을 살펴보는 강연이었다. 철학 비전공자라 쉽지 않은 사유의 시간이었는데, 사회현상을 낯설게 바라보기, 인간다움의 진정한 의미 모색하기, 생각과 실제 삶의 간극 좁히기 등으로 강의 내용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시대와 공간이 바뀌어도 인간이 존재하는 한, 내가 살아가는 한 “정신의 깨어 있음”은 부단한 노력과 실천을 필요로 한다는 걸 되새기게 되었다."

-문정원 님

 

 

 

이번 강의도 성황리에 마쳤습니다. 많은 독자분들께서 만족하며 돌아가시는 모습에 힘을 얻게 되네요~ 한길그레이트북스 인문학 특강에 오시면 지금까지 출간된 한길그레이트북스 130권을 전부 살펴보실 수 있어요. 물론 할인은 필수겠지요? 다음 강의 때 또 뵙겠습니다.^^

 

Posted by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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