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사 / 한길아트2015. 9. 4. 14:56

양심적인 지식인들의 투쟁, 마침내 진실을 밝히다!

_신간 『나는 고발한다

 

 

나는 한 정직한 인간으로서

  온 힘을 다해 큰 소리로

  진실을 외칩니다.

  진실은 지하에 묻혀서도 자라납니다.

  무서운 폭발력을 축적합니다.

  이것이 폭발하는 날에는

  세상 모든 허위를

  휩쓸어버릴 것입니다.

  ―프랑스의 작가 에밀 졸라

 

 

수년간의 지난한 투쟁 끝에 소수의 양심세력이 승리한 드레퓌스사건은 당시 프랑스 사회를 지배하던 ‘국가’ 라는 대(大)의 이념에 대항해 개인의 인권과 진실을 지켜낸 장대한 드라마였습니다. 민주주의의 선봉에 서 있다고 믿었던 프랑스에 엄청난 정치적ㆍ사회적ㆍ사상적 혼란을 일으켰지요.

 

19세기 말 평범한 군인이었던 드레퓌스가 간첩으로 지목되었습니다. 이렇다 할 항변의 기회도 없이 비공개 군법재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고 외딴섬으로 유배되었습니다. 군 수뇌부의 증거 날조, 재판부와 언론의 부실한 조사 그리고 유대인에 대한 편견이 무고한 한 사람의 운명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것입니다.

 

대부분의 프랑스 국민은 반유대 언론과 군이 유포한 허위 사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했습니다. 이후 프랑스 사회는 국가안보를 기치로 드레퓌스에 대한 단호한 단죄를 주장한 재심반대파와 불공정한 재판을 문제 삼으며 끊임없이 저항한 재심요구파로 나뉘어 격렬하게 대립합니다. 전국이 난폭한 이분법의 광기에 사로잡히고, 진실은 길을 잃고 헤맸습니다.

 

 

근대국가의 역사에서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장대한, 프랑스로 하여금 흥분과 두려움 속에서 민주주의의 기반을 전면 재검토하도록 만든 엄청난 드라마가 개막되었던 것이다. 개인의 존엄성은 좋다. 틀림없이 고귀한 이상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소(小)를 위해 대(大)가 희생되어야만 할까? 단 한 사람을 위한 도덕적 옹호로 인해 프랑스 모든 국민의 안전이 위협받아도 좋단 말인가? 이와 같은 문제를 놓고, 이성의 나라 프랑스는 제정신을 잃고 말았다.(28쪽)

 

 

드레퓌스

 에밀 졸라

 

 

졸라는 당시 베스트셀러 작가로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문필 생활로 이룬 모든 것을 걸고, 진실 규명을 촉구하며 대중에게 맞섰습니다. 하지만 그가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장이 발표한 이후, 프랑스는 더욱더 격렬한 광기에 빠져들었습니다. 주요 도시에서 대규모 군중이 유대인 상점을 약탈하고 유대인에게 테러를 가했습니다. 졸라의 기사를 불태우고 졸라의 초상을 목매달았습니다. 파리의 군중은 “졸라를 죽여라! 유대인을 죽여라!”라는 깃발을 들고 대로를 행진했습니다. 항의 집회가 열리고 유혈 충돌이 빚어졌습니다. 아집에 휩싸인 프랑스는 전 세계의 질타를 받았지만, 쉽사리 시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진실한 소수를 위협했다. 그러나 소수의 용기 있고 책임 있는 사람들의 저항을 막아내지 못했다. 이들이 성공할 가능성은 어느 정도였던가? 다수의 편에 서서 소수를 반대하는 일은 항상 쉬웠다. 소수의 반대자들이 기댈 기관들은 없었다. 전 국민이 단결하여 반대하는데, 이 소수의 반대자들은 과연 누구를 위해 싸워야 했던 것인가?(379쪽)

 

 

1898년 파리에서 벌어진 군국주의자들의 반드레퓌스 시위

 

 

 

드레퓌스가 기소되고 12년이 지난 1906년 7월 12일, 최고재판소는 그에 대한 모든 유죄 판결이 오판이며 무효라고 판시했습니다. 국회는 ‘프랑스의 양심을 해방하는 뜻에서’ 드레퓌스와 피카르를 프랑스 육군으로 복귀시킨다는 동의안을 통과시켰고요. 두 장교는 곧 완전 복권되었고, 프랑스를 뒤흔든 거대한 드라마는 마침내 진실을 추구한 양심세력, 재심요구파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니홀라스 할라스 지음, 황의방 옮김, 496쪽, 한길사

 

 

 

나는 고발한다』는 드레퓌스사건을 흥미진진하고 충실하게 서술한 책입니다. 전설이 된 에밀 졸라의 글 「나는 고발한다!」가 저자 할라스의 목소리로 다시 울려 퍼집니다. 수십 명에 달하는 다양한 인물이 얽히고설켜 만들어내는 복잡다단한 사건이지만 할라스는 명료한 통찰로 우리를 매혹하죠. 속도감 있게 펼쳐지는 이야기와 재치 있는 필치! 배경지식이 없는 그 누구라도 한 편의 역사드라마를 보듯 사건 속으로 빠져들 수 있습니다(저도 그랬습니다!).

 

드레퓌스사건은 어느덧 100여 년 전의 일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 신문의 지면을 장식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슬프게도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은 기만과 혼돈의 사기극이기도 합니다.

혹시 2015년 대한민국에서 지금도 제2ㆍ제3의 드레퓌스가 양산되고 있지는 않은가요. 만약 그렇다면 그들을 구원할 양심적인 지식인, 졸라나 피카르, 클레망소가 우리 사회에도 있나요. 자신과는 관련도 없는 이의 운명 그리고 진실을 옹호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사회와 맞설 진정한 지식인이... 책장을 덮자니 여러 가지 의문이 머릿속을 맴돕니다.

 

 

- 편집자 映

 

 

 

KBS 뉴스광장 [새로 나온 책] '나는 고발한다' 영상 바로가기

http://media.daum.net/v/20150824074434971

 

Posted by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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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 / 한길아트2014. 8. 27. 09:00

 


루이스 멈퍼드 건축비평선

저자
루이스 멈퍼드 지음
출판사
한길사 | 2014-06-27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루이스 멈퍼드 건축비평선』은 건축대상을 읽기 위한 필수적 요소..

“우리는 홍수지역에서 비버가 바삐 움직이듯이
똑같은 식의 교외를 계속 짓고 있다.
그 와중에 더 실망스런 혼잡이 도시 안에 쌓이고,
몇 년 지나면 아주 조금밖에 다르지 않을
오늘날의 계획과 건설 체계 아래 우리 앞에 놓인 유일한 전망은
“더 나쁘고 나쁜 것을 더 많이” 만드는 것뿐이다.
희망적 대안은 한가한 몽상이 아니라 
현실을 직면하는 능력과 공공적 책임감에 있다.”
-루이스 멈퍼드(Lewis Mumford, 1895~1990) 



 

     ▲  집필 중인 루이스 멈퍼드.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일생을 대도시 뉴욕을 관찰하면서 

          현대 도시문명에 대해 성찰하고, 건축과 도시문화를 깊이 탐구했다.  


『루이스 멈퍼드 건축비평선: 뉴요커 스카이라인 칼럼 1947-1956』은 기술과 도시의 발전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서양 현대 문명의 위기를 설명하고 그 해법을 제시하고자 한 미국의 사상가 루이스 멈퍼드가 1947년부터 1956년까지 『뉴요커』라는 잡지에 연재한 ‘스카이라인’ 건축비평 칼럼 60여 편 가운데 26편을 골라 주제별로 엮은 책입니다.

 

 그가 이 칼럼들을 쓴 때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기술적 발전과 경제적 풍요를 바탕으로 급속한 변화가 미국 사회에서 진행되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는 우리에게 좀더 친숙한 맨해튼뿐만 아니라 이 시기에 도시계획이 활발히 이루어진 지역인 미드타운과 뉴욕 외곽으로 확대되어가던 주거지(우리 식으로 말하면 ‘신도시’쯤일까요)에 대한 비평도 등장합니다. 


 멈퍼드는 미학적인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갈 인간과 그들의 삶에 이 건축물이 과연 바람직한 영향을 줄 것인가 하는 점을 건축 비평의 중요한 잣대로 삼습니다. 그래서 그가 비평 대상으로 삼는 건축물은 유엔본부와 같은 유명한 건축물에서부터 우리 생활과 밀접한 업무용 건물이나 공동주택, 학교, 미술관, 공장, 그리고 도시설계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멈퍼드에 따르면 건축은 상징성을 가져야 하지만, 그러면서도 예술의 영역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인간이 생활하고, 일을 하고, 여가를 보내면서 살아가는 모든 바탕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예컨대 더 많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 건물의 밀도를 높이는 데 반대합니다. 차라리 곳곳에 공원 같은 소규모 공공공간을 두자고 제안합니다.혼잡한 도시에서 뜻밖에 색・햇빛・녹색이 트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시네라마(Cinerama) 여행객조차 베니스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라고 하면서요. 또한 잘못된 교통정책으로 인해 악화되는 도시고밀화와 도시주변부의 파괴적 개발에 대한 지적들도 귀 담아 들을 만합니다.

 사실 저는 뉴욕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 ‘뉴요커’ 친구도 없고요. 그래서 뉴욕이라고 하면 폴 오스터 소설이나 우디 앨런 영화에 묘사되는 것 같은 몇 가지 전형적인 이미지들만이 막연히 떠오르곤 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원고를 검토하기 전만 해도, 1940년대와 50년대 뉴욕의 도시계획과 건축에 대한 칼럼이 2014년의 한국에서 어떻게 읽힐까, 혹시 현실과 동떨어진 너무 낡은 이야기들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어가다 보면, 아직도 개발만이 발전이라 여기면서 토목공사 위주의 성찰 없는 도시계획이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우리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멈퍼드가 묘사하는 1950년대의 뉴욕이 그리 낯설지 않게 여겨집니다. 그의 건축비평문이 고전으로서 지속적인 생명을 지니는 까닭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국제연합 공식 기본보고서에 포함된 조감도. 왼쪽 가운데 유엔본부 건물이 보인다. 

         멈퍼드는 "국제연합본부 건물은 르코르뷔지에의 산뜻한 미래도시를 록펠러 센터의 사무적인 

         난삽함과 조합한 것이고, 웅대함과 진부함을 섞어놓은 것이다"라고 혹평했다. 



     ▲  퀸즈의 주거단지 프레시 메도스 아파트. 멈퍼드는 이 아파트에 대해, "사람, 나무, 녹지, 거리, 

          건물의 관계에 상상력을 쏟으면 그것이 유기적인 전체가 되어 얼마나 인간적이고 매력적인 

          현대적 공동체가 되는지 보여주었다"고 평했다. 



# 원서의 제목은 ‘바닥에서부터’(From the Ground up)입니다. 오늘날의 건축에 대해 바닥, 즉 기초에서부터 다시 생각해보자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말로 적절히 옮기기가 쉽지 않아 결국 다른 제목을 붙였지만, 원제에 담긴 의미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 이 책을 번역한 서정일 선생님은 뉴욕에 머무르며 책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건물을 답사했다고 합니다. 사진, 설계도면 등 방대한 자료들을 수집하셨는데, 제한된 지면 내에 화보를 구성하면서 아쉽게도 책에 싣지 못한 것이 많았습니다. 수천 장의 사진 가운데 화보에 들어갈 것들을 고르면서, 각 사진에 등장하는 장소들의 내력에 대해 일일이 설명해주시던 열정적인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저 역시 그 동안 무심코 지나다니는 내 주변의 건물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 도시가 저마다 품고 있는 역사와 의미에 대해 새삼 생각해보게 되었답니다. 어떻게 하면 이곳을 좀더 인간적인 삶을 누리게 하는 공간으로 바꿀 수 있을까에 대해서도 말이지요.

 


- 편집부 安


Posted by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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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예림

    잘 읽었습니다. 안 과장님^^

    2014.08.28 09:23 [ ADDR : EDIT/ DEL : REPLY ]

한길사 / 한길아트2014. 8. 22. 10:46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들과 어떻게 만날 것인가

 

 

편집자 映은 올해 내 출간을 목표로 '김민웅의 인문정신'을 요즘 열심히 작업 중이랍니다! 김민웅 선생님의 글을 혼자 보기만 아까워, 살짝 이곳에 공유합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 사회가 보다 정의로운 '정치의 정신구조'를 갖추어 '어두운 시대를 이기는 정치'를 실현해나갈 수 있을까요? 뉴스만 보면, 아니 보지 않고 있어도 마음이 막막한 요즘, 함께 고민하면 그 정신적인 무게라도 조금 덜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덧. 아직 김민웅 선생님도 원고를 계속 보완하시고 있고 편집도 아직 진행 중이라, 나중에 실제로 책에 실리는 글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어두운 시대를 이기는 정치

 

한나 아렌트는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Men in Dark Times)에서 ‘암담한 시대’란 “공적 영역의 소멸과 함께 사람들이 사적인 삶에만 관심을 갖게 될 때” 온다면서, 이런 상황에서는 “공적 문제를 논할 수 있는 정치가 사라진다”고 갈파한다. 더군다나 이런 시기에 권력은 “진실을 하찮은 문제처럼 만들어 버리고”, 사람들은 자기 문제 외에는 관심을 갖지 않게 된다면서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정말 중요한 문제에 대한 판단력이 마비되고 그 결과는 비극이 된다고 경고한다. 진실은 자꾸 하찮은 것처럼 밀려나고, 본질과는 관련이 없는 일들이 언론과 방송, 권력의 담론에서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뭔가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공적 영역에서 해결할 수 있는 정치가 제대로 가동하고, 그 과정에서 치열한 투쟁도 벌어져 대치와 갈등을 거치면서 어떤 해결점에 도달할 때 인간의 삶은 진보한다. 아렌트는 핍박받는 이들에게 공적 목소리가 박탈되는 상황은 정치의 붕괴이며, 이로써 이들은 그 사회에서 내부적 이민자처럼 취급받고 주변부적 존재가 되고 만다고 말한다. 이중적 고난을 겪는 것이다. 2014년 세월호 유가족들은 공적 정치의 붕괴로 말미암아 바로 이러한 처지에 놓였다. 그런 까닭에 이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로 말하고 행동하고 정치의 주체로 참여하기를 요구했던 것이다. 정치의 붕괴가 저지되지 못하면 그 여파는 세월호 유가족만이 아니라, 이들보다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은 이들에게도 필연적으로 확산된다. 세월호 사건의 강도를 가진 문제를 안고 있는 이들의 현실도 제대로 정치화되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들의 형편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세월호 참사 이후 진행된 '가만히 있으라' 시위. © 2014 프레시안(최형락)

 

 

정치가 정당의 정치인에게만 독점되고 보통의 시민에게는 정치적 발언권과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막히면, 결국 공적 영역은 집권세력에게 장악되어 정치는 소멸되고 만다. 이를 막아낼 수 있는 길은 권력의 봉쇄전략에 맞서 시민의 공적 영역을 확장하는 치열한 투쟁이 있을 때 비로소 열리기 시작한다. 정당은 이러한 투쟁력의 정치적 본부이다. 그런 생각과 의지가 없는 반대정당(opposition party)은 자신이 의식하건 말건 기존질서의 하부구조로 기능할 뿐이다.

 

 

마루야마 마사오가 근대적 자각을 하긴 했으나 제국주의의 역사에 대한 낮은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하고 나선 나카노 도시오(中野敏男)는 『오쓰카 히사오와 마루야마 마사오』에서, 타자에 대한 책임 있는 반응을 하는 문제에 대한 발언은 우리의 현실에서도 경청할 가치가 매우 높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고통 받고 있는 타자의 출현이 우리 자신의 자아를 혼란에 빠뜨리고, 자아가 위기를 겪을 때 비로소 중요한 정치사회적 변화가 가능해진다고 말한다. 그는 특히 일본군에게 끌려간 위안부 할머니들의 등장과 관련해서 “타자의 시선 앞에서 생기는 주체의 분열이 응답에 대한 절실한 희망을 낳아 타자에 응답하면서, 주체 안에서 생기는 분열과 항쟁은 한 개인을 벗어나 정치화되어 책임을 지는 사회적인 것이 될 것이다”라고 한다. 이는 레비나스의 ‘타자의 얼굴에 대한 윤리’와 유사한데,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대체 어떤 책임과 역할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통한다.

이때 ‘주체의 분열’이란 자기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자신, 그리고 자신의 공동체에 대해 의문을 품고 전혀 다른 각도로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해야 타자에게 폐쇄적이거나 적대적이었든지, 아니면 무반응이었던 자신을 깨뜨리고 고통을 겪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나갈 수 있다. 이것은 그 자신의 정체성을 세우는 작업에도 혁명적인 의의를 갖게 한다.

 

 

정치는 바로 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들과 어떻게 만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 문제를 배제한 정치는 정치가 아니라, 권력게임에 불과하다. 자기들만의 리그인 것이다. 우리 사회가 정치에 대해 분노하고 있는 대상은 바로 이 권력게임이지, 고통을 겪는 이들과 연대하면서 이들의 문제를 어떻게든 풀려고 하는 정치는 아니다. 바로 이러한 정치가 없어서 화를 내고 있고 절망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의 정신구조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무지한 스승』에서 “교육이란 지식전달을 넘어서 정신구조를 형성하는 작업”이라는 말을 한 바 있다. 교육만이 아니라 정치 또한 그렇다. 잘못된 정치는 그 사회의 정신구조를 왜곡하고 퇴행시킨다. 무자각 상태로 이끌어 결국 비극을 반복하도록 만든다. 정치는 그래서 그 정신구조가 매우 중요하다. 정신적 퇴폐 상태에 있는 정치는 재앙이다. 한국정치는 이러한 정신적 퇴폐 상태에 빠져 있다. 집권세력은 권력을 사유화하고 있고, 야당은 국민적 고통을 자신의 정치적 육체와 영혼에 온전히 빨아들여 투쟁하는 능력을 갖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를 빼놓고 대부분의 정치적 관심은 기득권 유지에 있다.

 

 

말씀하시는 김민웅 선생님의 모습. 저작권은 한길사에, 초상권은 김민웅 선생님께 있습니다^^

 

 

국민의 생명 위에 있는 그 어떤 정치도, 어떤 권력도 이 세상에는 없다. 그런 권력이 있다면 당연히 그것은 투쟁의 대상 외에 다름이 아니다. 그래야 진정한 정치가 복원된다. 이는 기존 정치인들과 정당의 면모가 완전히 바뀌는 용광로와 같은 과정을 거쳐야 함을 말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현실 앞에서 좌절하지 않고, 용기와 의지를 내고 진전하려는 이들의 마음이 모이면 그것이 새로운 정치의 중심이 된다. 새로운 역사는 언제나 새로운 의식과 의지의 산물이었다.

 

전략과 정책의 문제 이전에, 가장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과 함께 하려는 정치에서 새것이 태어난다. 그런 정치에서 민생이 희망을 품게 되며, 민주주의도 발전하고 역사도 앞으로 나아간다. 방법 이전에 진심과 진실이다. 이것 없이 세우는 집은 모래 위의 가건물일 뿐이다. 이 마음을 기르고 일깨우는 일은 교육과 정치가 결합하는 길에서 찾을 수 있다. 교육혁명과 정치혁명은 한 몸이다. 어떤 시대도 이러한 결합 과정에서 혁명을 탄생시켰다. 여기서 교육은 단지 초등학교에서 대학에 이르는 제도교육만이 아니다. 시민사회 전체의 변화를 가져올 평생학습의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시민교육까지를 포함한다. 이를 통해 전개되는 사상과 철학, 가치논쟁과 사회의식의 성숙 과정은 정치의 정신구조와 그 작동 과정을 다르게 만들 수 있다.

 

근본적이며 긴 시간이 요구되는 작업이라고 해서 엄두가 나지 않거나 당장의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여길 수 있다. 바로 그런 생각이 우리의 정치를 타락시켜 온 것이다.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고 정의로운 사회를 이루어나가는 원대한 목표를 언제나 뜨겁게 가슴에 품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해나가는 지속적인 노력이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바꾼다. 더 나은 미래를 포기하지 않으려거든 교육은 정치를 근본적 질문으로 삼고, 정치는 교육이 기른 비판의 철학적 공세를 감수해야 한다. 그 치열한 대치와 비판, 그리고 토론의 과정이 우리의 공동체를 보다 의롭고 뜻있게 만든다.

 

민주국가와 공화정의 정치는 이런 방향을 향한 투지와 열정에서 힘차게 자란다. 이것을 함께 만들어가는 작업과 과정, 그 자체가 이미 우리가 바라는 국가의 뿌리와 줄기가 된다. 이로써 이루어지는 정치는 인간의 일상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매 순간의 호흡이 된다. 인간이 인간답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자유와 권리는 언제나 정치적인 주제다. 인문정신과 정치는 결국 한 몸인 것이다.

 

2014년 8월

김민웅

 

Posted by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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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 / 한길아트2014. 5. 21. 17:51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1984년 5월에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바야흐로 1984년(우연찮게도 조지 오웰의 유명한 소설 제목과 같네요^^;)

한길사는 어떤 책들을 펴냈을까요?

저도 갑자기 궁금해져서 찾아봤는데,

기대 이상으로 쟁쟁한 저자들의 저서가 쏟아져 나왔었더라는 놀라운 사실.



자, 지금은 1984년 5월입니다. 저와 같이 추억 속으로 빠져보실래요?


 


 

시인 고은 선생님은 그를 일컬어 “모두의 기념”이라고 부르셨습니다.

“OOO! 그는 모두의 기념이다”라고요.

영광의 주인공은 대체 누구일까요?



정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리영희! 그는 모두의 기념이다.”

 

 

리영희 선생님! 그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존경 받는 언론인이시지요.

허위와 우상이 난무했던 20세기의 우리 사회에서 오직 진실을 밝힌다는 일념으로 실천적인 삶을 살아온 지식인입니다.

행동하는 지식인 리영희, 그는 너무도 잘 알려져 있듯이 1974년 『전환시대의 논리』, 1977년 『우상과 이성』『8억인과의 대화』등 일련의 저서로 암흑 속에 있던 70, 80년대 우리 사회를 희망으로 밝혔습니다. 그를 ‘시대의 양심'으로 생각하는 ‘벗'들이건 ‘의식화의 원흉'으로 믿는 ‘적'들이건, 당시 그의 ‘논리'가 찬반여부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상식으로 받아들여졌던 이유입니다.


1984년 5월, 한길사는 리영희 선생님의 『분단을 넘어서』를 펴냈습니다. 당시 리영희 선생님의 강건한 목소리, 함께 들어보시겠어요?

 

 


 

마침 책의 편집 작업이 끝나 필자의 머리말을 쓰려는 날 아침에, 남쪽의 수재민을 위한 의연물자가 북쪽으로부터 휴전선을 넘어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 얼마나 상서로운 일인가!


해방과 분단의 40년, 휴전선이 생긴 지 30여 년 만에, 민족을 갈라놓은 굳은 장벽에 통로가 열린 것이다. 그것은 물리적으로는 작은 통로에 불과하지만 민족사적으로는 큰 의미를 지닌 돌파구다.


돌이켜보면 1972년, 남북의 지도자가 평화·자주·외세 불간섭의 정신으로 민족의 화합과 통일을 기약했고, 최근에는 우리 사회 안에서 40년 한 맺힌 이산가족의 대대적 재회가 이루어졌다. 그것은 모두 이 겨레의 슬기를 세계 만방에 과시한 민족적 쾌사였다. 이제부터 분단된 동포 간의 장벽을 넘으려는 의지가 더욱 굳게 합쳐져야 할 것이다.


한겨레는 갈라져 살 수 없다. 안으로는 대립의 요소들을 해소하고, 밖으로는 분단을 영구화하려는 조건들을 꾸준히 극복해나가야 한다. 우리 자신이 그 노력을 게을리한다면 다른 누가 그 무거운 짐을 대신 져줄 것이며, 그 험난한 길을 대신 걸어줄 것인가?


이 책에 담은 글들은 필자가 평소에 그런 마음으로 생각하고 써온 것들이다. 이것이 부족함이 많은 글을 감히 내놓는 소위이다.


나는 내 이름을 붙여서 책을 내놓을 적마다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금할 수가 없다. 부끄러운 까닭은, 그 어느 것이든 남처럼 각고(刻苦)한 흔적이 역력한 학문적 결정도 아니고, 시대적 상황과 배경의 변화와는 관계없이 언제나 독자의 심금을 울리는 그런 글도 되지 못하는 목숨 짧은 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두려운 까닭은, 이 같은 하찮은 내용의 글들인데도 적지 않은 독자들이 공감의 성원을 보내준 데서 느끼는 무거운 짐을 먼저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그처럼 숨이 짧고 시한적인 내용의 글들인데도, 무슨 대단한 것이나 들어 있는 양, 비난의 소리를 높이는 쪽의 존재를 의식해서다.

 

(...)

글을 쓴 이의 개인적 의미로서의 80년대 전반기 몇 해는 역시 70년대 못지않은 고난과 시련의 시기였다. 차라리 70년대 그것의 연속이었다. 1980년 1월 초, 나는 이 나라의 70년대를 성격짓는 광란의 희생물로서 2년의 옥고를 치르고 나와, 4년간의 해직 끝에 대학에 복직해 강단에 서게 되었다. 그러나 3개월도 안 되는 5월에 다시 신체의 자유를 잃었고, 7월에는 다시 해직교수가 되었다. 그로부터 만 4년 동안 자신과 가족의 호구지책을 위해, 그 귀중한 시간을 주로 번역 일로 소비했다. 생각할수록 분하고 안타까운 세월이었다.


그러나 생각을 멈추고(思考停止) 머리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필자의 눈앞에서 한반도를 둘러싼 사태는 숨가쁘게 소용돌이쳤다. 70년대와 마찬가지로, 몇 해를 가지 않아서 그 허구성이 드러나고야 말 온갖 요사스러운 ‘이론’과 ‘학설’이 시세에 편승하여 횡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다 못해 무엇인가 적어본 것이 이 책의 1부를 이루는 글들이다. 안 쓰려다가 쓰는 자신의 의지 박약과 수양 부족을 절감하면서 발표한 것들이고, 그러고 나서는 반드시 후회 때문에 괴로워했다.


80년대에 들어서서 나의 관심은 두 가지 측면에 집중되었다. 일본의 식민통치에서 해방된 지 70년이 되려는 시점에서의 한·일 관계의 참모습에 대한 것이 그 하나고, 초강대국들이 ‘무제한 군사 대결’의 결의를 선언하고 나선 국제 관계, 특히 동북 아시아 정세 속에서의 한국과 한반도의 장래에 대한 두려움이 다른 하나다. 한국과 일본은 해방 직후인 1940년대 중반에서 50년대에 걸친 관계의 진공 상태에서 60년대의 정치·외교 관계. 70년대의 경제 관계, 그리고 지금 80년대의 문화협력 관계로 돌진해 들어가고 있다. 그 40년간의 한·일 관계 추이와 진전으로 미루어보아 1990년대는 논리적으로 한·일 군사협력 체제의 단계로 파악된다. 한·일 두 나라를 바로 그와 같은 단계를 거쳐서 군사적으로 묶으려는 것이 북미합중국의 장기적 세계정책 구상이었음은 1965년에 한일 국교정상화 조약을 체결하게 했을 때(사실은 그 이전부터) 이미 분명해졌던 것이다.


일본과의 군사협력(동맹) 체제가 한국의 국민 이익과 어떻게 교접하며, 분단된 남북 민족의 통일 목표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에 대해 나름대로의 시각을 정리하고, 독자의 공감을 얻고 싶어서 발표했던 것이다. 「해방 40년의 반성과 민족의 내일」 「‘한·일 문화협력’에 대하여」 「다시 일본의 ‘교과서 문제’를 생각한다」가 그것들이다.


조상에게서 이어받은 이 나라의 남과 북의 땅이 미·소 두 초핵강대국의 이해를 겨루는 핵의 대결장이 되어가고 있다. 지구상에 나라가 많지만, 이 초거인(超巨人) 군사대국이 각각 상대방에 대한 예비 공격으로 상대국을 핵무기의 표적으로 선언한 것은 이 땅의 북과 남밖에는 없다. 어째서 이 꼴이 되었는가? 우리는 어째서 저들 초강대국의 국가이기주의를 충족하기 위한 그들의 ‘핵볼모’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 민족(국민)은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정세 변화에 주체적으로,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어떤 시각을 가져야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이 같은 긴급한 물음에 대해서 나름으로 답해보고자 한 것이 몇 편의 논문이다.


(...)

불행하게도 민족은 갈라졌지만, 서로가 배후의 핵강국에게 핵전쟁의 마당을 제공하는 일만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 필자는 이 반도의 ‘비핵지대화’(非核地帶化)야말로 남북으로 갈라진 민족의 평화적 생존과 나아가 어느 날엔가는 이루어질 통일을 기약하는 ‘80년대 전제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40년간은 분단과 대치의 상황이 우리의 의식을 규정했다. 우리는 그 조건으로 말미암은 고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객관적 상황에 구속되지만 않아도 좋을 만큼의 물질적·정신적·사상적 성장을 했다고 믿고 싶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 국민이 해야 할 과제는 스스로의 의식으로 객관적 조건을 풀어나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문제를 대하는 우리의 입장과 관점은 아직도 분열해 있고 대립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우리 국민사회 내부와 개개인의 의식에 내재해 있는 ‘분단’이다. 나라 안팎의 ‘분단’을 해소하고 넘어서려는 노력만이 이 강토에 다시는 일본의 군대가 들어올 필요가 없는, 금수강산이 초강대국들의 핵볼모가 되지 않도록 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다.


 


1984년 9월 29일


리영희




‘숨이 짧고 시한적인 내용’이라 하시는데, 안타깝게도 30년이 지난 오늘도 분단의 현실은 여전하네요. 선생님이 염원하신 ‘이 반도의 ‘비핵지대화’(非核地帶化)’도 실현되지 못했고요. 요즘 그 어느 때보다도 리영희 선생님의 정신을 이어받아 열심히 공부하고 행동해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모두 잘 읽고 잘 생각해서 이 땅의 진정한 민주화를 위해 함께 노력해요!

 

 


현재 『분단을 넘어서』는 2006년 출간된 ‘리영희 저작집’(전12권)의 제4권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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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 / 한길아트2014. 5. 19. 16:48

 한겨레 선정 '새 고전 26선'에 포함된 한길사의 책 ③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지난 5월 15일, 『한겨레신문』이 창간 26년을 기념해 ‘새 고전 26선’을 선정했습니다. 26권 중에 한길사 책이 무려 3권입니다! 무슨 내용을 담고 있고 그 내용이 오늘날의 한국인들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 있기에 당당히 ‘고전’으로 인정받는 것일까요? 어떤 책들인지 함께 둘러보시지요!


세 번째(마지막!) 주인공은 이삼성 선생님의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한길사, 2009)입니다. 이삼성 선생님은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와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과를 졸업했고, 1988년 미국 예일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으셨습니다.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가톨릭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등을 거쳐 지금은 한림대학교 정치행정학과 교수로 계십니다.


국제정치학도로서 이삼성 선생님의 저술 의도 가운데 한 가지는, ‘전쟁과 평화에 관한 전후 한국사회의 지배적인 전략 패러다임인 한미동맹 최대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라고 합니다. 미국과의 동맹을 미래 한국의 대전략의 전부 또는 그 중추로 간주하는 사유는 한국이 미국 없이 살아내야 했던 전통시대 2천 년 동안 다른 아시아사회들과 한국의 관계의 역사상을 타자화하는 경향을 낳습니다. 과거에 대한 기억의 정치가 작동하면서, 과거 역사는 정치화된 채 우리의 역사의식과 함께 미래 비전을 지배합니다. 동아시아의 미래에서 평화를 위한 건실한 백년대계의 논의를 위해서도 과거 2천 년의 동아시아 역사상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했던 이유입니다.


사실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는 본문만 800여 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연구서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국제질서에서 우리나라의 위치를 고민하는 교양인들이라면, 이 훌륭한 책을 한번쯤 통독해보고자 욕심내지 않을 수 없겠지요? 맛보기로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제2권 차례를 보여드릴게요!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2』 차례(요약)



• 잃어버린 한 세기의 회상 | 이삼성


제1장 19세기 세계체제 전환과 동아시아

제2장 근대 서양의 정치혁명과 동아시아

제3장 동아시아 제국주의의 시대구분

제4장 아편전쟁과 중국의 반식민지화

제5장 중화제국의 해체와 청일전쟁

제6장 반(反)러시아 영미일 연합과 러일전쟁

제7장 미일 제국주의 카르텔과 그 변용, 그리고 파국

제8장 말기 조선의 시대구분과 역사인식

제9장 내란과 쿠데타의 시절

제10장 ‘잃어버린 10년’과 농민전쟁‧일본지배

제11장 러일 각축 속 한국의 선택과 그 에필로그

제12장 19세기 말 조선에 대한 역사인식의 분류



한겨레 한승동 기자님께서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기사를 직접 써주셨는데, 이 책의 가치를 간결하면서도 명쾌하게 드러냅니다.


  “지난 세기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고 우리와 주변 모두의 공존과 평화를 보장할 21세기 동아시아 백년대계의 전략은 무엇인가? 이삼성의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는 이에 대한 가장 폭넓고 깊이있는 모색 가운데 하나요, 통찰력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탁월한 연구서다. 예컨대, 거대 중국의 대두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그것은 우리에게 위기인가 기회인가? 이에 대한 이삼성의 치밀하고도 도발적인 사유는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 중의 하나다.


  (…)


  오늘의 존명사대주의자는 누구인가? 격동기 대전략 수립에는 열린 시각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데올로기화한 미국,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돼버린 한-미 동맹이 그걸 가로막고 있다. 미국 비판을 반미·종북으로 몰아가는 오늘의 ‘존미’ 사대주의는 주변국들에 대한 비판적 사유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책은 그런 자세가 왜 위험한지 역사적 사례 연구들을 통해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 한겨레 한승동 기자


한겨레 기사 “수단 아닌 목적이 된 한미동맹” 전문 바로 읽기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36922.html



이상 『한겨레신문』이 선정한 ‘새 고전 26선’ 가운데 3권의 한길사 책들을 살펴보았습니다. 한길사의 좋은 책들을 알아봐주시고, 널리 독자분들에게 알려주신 『한겨레신문』에게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한길사 책들 더욱 많이 읽고 사랑해주세요! :)



(속닥속닥 편집부 속얘기)

이삼성 선생님께서는 지금 열심히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제3권을 집필 중이시랍니다. 내년까지 집필이 끝나시면, 우리 독자들은 비로소 21세기의 오늘까지의 동아시아 국제질서와 그 속의 우리나라를 총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겠지요? 한국 국제정치학계의 중요한 성과로 자리 매김하고 있는 이삼성 선생님의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그 여정에 힘을 보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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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 / 한길아트2014. 5. 19. 14:22
 한겨레 선정 '새 고전 26선'에 포함된 한길사의 책 ②

『여성‧문화‧사회』



지난 5월 15일, 『한겨레신문』이 창간 26년을 기념해 ‘새 고전 26선’을 선정했습니다. 26권 중에 한길사 책이 무려 3권입니다! 무슨 내용을 담고 있고 그 내용이 오늘날의 한국인들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 있기에 당당히 ‘고전’으로 인정받는 것일까요? 어떤 책들인지 함께 둘러보시지요!


두 번째 주인공은 『여성‧문화‧사회』(미셸 짐발리스트 로잘도‧루이스 램피어 엮음, 권숙인‧김현미 옮김, 한길사, 2008)입니다. 1974년 미국에서 출간된 『여성‧문화‧사회』는 14명의 인류학자와 2명의 여성학자가 쓴 17편의 논문을 모은 책입니다. 역자분들의 표현에 따르면 ‘여성주의 인류학이란 새로운 지적‧방법론적 패러다임의 장을 연’ 책이지요. ‘페미니즘과 인류학이라는 별개의 전통을 가진 두 학문의 갭을 메운 책’이라는 칭찬도 들었습니다.


90년대 한국에서 유행하던 지적 담론 중 하나로 페미니즘이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대학에서는 여성학이라는 이름으로 강좌가 생기기 시작했고, 전공자들이 하나둘 배출되었지요. 그런데 한국의 지적 담론에서 페미니즘이라는 분석틀이 가장 위세를 떨친 분야는, 영화‧문학과 같은 허구적 생산물에 대한 ‘비평적 실천’이었습니다. 물론 이와 같은 비평적 실천이 한국의 지적 담론의 수준을 끌어올렸다는 점에서는 성과를 인정할 만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 공간에서 남성과 여성의 관계, 가정과 사회 속에서 여성 삶의 문제를 천착하는 연구 성과는 아직 그리 만족스럽지 못한 형편입니다.


인류학은 인간의 실제적인 삶을 다룹니다. 민족지학적(ethnographic) 연구란, 인류학자들이 오랜 시간 연구 대상의 사람들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이 책의 저자들도 민족지학적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글을 썼습니다. 이렇듯 실천적인 인류학의 연구 방법이 젠더 분석 방법과 조우한 이 책의 차례를 한번 살펴볼까요?

 

 


『여성‧문화‧사회』 차례(요약)



인류학과 페미니즘의 행복한 만남/권인숙·김현미 11


서문 25

서론(미셸 짐발리스트 로잘도/루이스 램피어) 31


여성·문화·사회: 이론적 개관(미셸 짐발리스트 로잘도) 53

가족구조와 여성적 인성(낸시 초도로) 93

여성은 자연, 남성은 문화?(셰리 오트너) 129

여성과 정치(제인 피시번 콜리어) 159

가내집단 내 여성의 전략과 협동 그리고 갈등(루이스 램피어) 171

도시 흑인 지역의 성역할과 생존 전략(캐럴 스택) 193

모중심성: 인도네시아, 아프리카, 미국 흑인의 사례 연구(낸시 태너) 217

중국 여성: 새로운 환경 속의 오래된 전략(매저리 울프) 257

공적 영역에서의 여성의 지위(페기 샌데이) 303

다시 보는 엥겔스: 여성, 생산조직 그리고 사유재산(캐럴 색스) 329

집단 속의 여성: 이줘의 여성결사체(낸시 라이스) 353

발칸 지역의 성과 권력(베트 데니히) 381

모권제 신화: 왜 원시 사회는 남성이 지배했는가(조안 뱀버거) 409

과테말라 마을에서의 일의 숙련과 성의 신비(로이스 폴) 435

모순의 중재: 음붐 여성이 닭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는?(브리짓 오로린) 461


참고문헌 485

찾아보기 515

논문기고자 526



  “1970년대 초 미국에서는 여성과 남성의 불평등한 관계,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어 있는 현실에 저항하는 제2차 페미니즘 물결이 전 사회에 퍼진다. 페미니스트들은 “그렇게 오랫동안 여성들로 하여금 불평등을 참아내고, 종속적인 여성들의 처지를 ‘자연스런’ 상태로 이해하고 수용하게 하는 메커니즘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했다. 이러한 질문들을 통해 당시 여성운동과 여성학은 혁명적인 발전을 하게 된다. 이 책 또한 당시 전 사회를 소용돌이치게 했던 제2차 페미니즘 물결의 산물이다.


  (…)


  생물학적 환원주의, 즉 남성과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도 다르고, 심리적·상징적으로 다르게 이념화된다는 설명 방식은 현재도 그렇지만 당시 미국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쉽게 수용되는 성차에 대한 이해 방식이었다. 이를 벗어나는 인식론을 만들기 위해 지은이들이 선택한 방식은 비교문화적인 접근이다. 문화에 따른 남녀 성역할의 다양성, 성역할이 수행되고 배치되는 사회관계의 다양성, 국가나 친족 혹은 공동체가 남녀 성역할과 맺는 다양한 관계의 사례 등을 제시하면서 남녀의 차이 또는 성역할 구분이 사회마다 얼마나 다양하고, 다차원적인 방식으로 구성되는지를 드러내고자 했다.”


- 이화여대 여성학과 김은실 교수


한겨레 기사 “‘성차’가 성차별의 기원은 아니다” 전문 바로 읽기

->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636931.html



마지막으로 이 책을 엮은 미셸 짐발리스트 로잘도와 루이스 램피어가 1973년 11월에 적은 서문에서 몇 문장 옮겨옵니다. 그들은 어떤 절실한 이유에서 이 책을 구상하고 출간했을까요?


  “우리는 전통적인 인류학에서 나타나는 여성에 대한 관심의 결여는 정말 심각한 결함이며, 이론을 왜곡해왔고, 민족지적 설명을 빈곤하게 만들어왔다는 확신에서 이 책을 구상했다. 여성에 초점을 맞추고, 그동안 무시해왔거나 당연시해왔던 사실에 도전함으로써 우리는 과거 이론들을 재평가하고 미래의 새로운 사고로 가는 길을 닦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인류학이 여성의 삶과 전략을 남성의 것과 함께 다룬다면 인간의 사회생활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더욱 확대될 것이란 점은 분명하다.”(『여성‧문화‧사회』, 26쪽)


  아울러 로잘도와 램피어는 이 책에 실린 모든 논문들은 ‘여성의 삶을 무질서하고 이해관계와 무관한 것으로 간주해온 지배적인 편견을 수정하는 데 어떤 식으로든 기여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들이 처음 이 책을 출간한 때로부터 무려 40년(!)이 지났지만, 지금의 우리는 과연 남성중심의 사회적 인식의 틀로부터 자유로워졌을까요? 다양한 환경 속에서 다양하게 나타난 여성들의 삶의 모습, 『여성‧문화‧사회』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속닥속닥 편집부 속얘기)

책 만드는 과정에서 역자이신 권숙인 선생님(서울대 인류학과 교수)과 김현미 선생님(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께서 굉장히 열심히 노력하셨다고 합니다. 당시 편집에 참여했던 서상미 편집차장님의 말씀에 따르면, 표지화를 좀더 밝고 현대적이고 긍정적인 이미지로 고르지 못한 점이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하시네요^^; 표지화는 고갱의 「마리아를 경배하며」(1891)라는 작품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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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 / 한길아트2014. 5. 19. 13:26

한겨레 선정 '새 고전 26선'에 포함된 한길사의 책 ①

『인간의 조건』

 

 

지난 5월 15일, 『한겨레신문』이 창간 26년을 기념해 ‘새 고전 26선’을 선정했습니다. 26권 중에 한길사 책이 무려 3권입니다! 무슨 내용을 담고 있고 그 내용이 오늘날의 한국인들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 있기에 당당히 ‘고전’으로 인정받는 것일까요? 어떤 책들인지 함께 둘러보시지요!


첫 번째 주인공은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이진우 외 옮김, 한길사, 1996)입니다. 『한겨레신문』은 마지막까지 후보에 들었지만 안타깝게 선정에서 탈락한 책들도 소개했는데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전체주의의 기원』 등 한나 아렌트의 책이 두 권이나 더 있었답니다. 역시 한나 아렌트는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사상가 중 한 명임이 틀림없는 듯합니다. 『전체주의의 기원』은 서평전문지 「출판저널」이 ‘21세기에도 남을 20세기의 빛나는 책들’로 선정한 적도 있지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75)는 독일에서 태어나 성장했습니다. 형이상학과 신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1924년에 마르부르크 대학에 입학해 하이데거의 현상학의 영향을 크게 받은 뒤, 1926년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옮겨 야스퍼스의 가르침을 받아 세계시민적 관점에 입각한 철학을 공부했습니다. 시온주의자들의 활동을 은밀히 돕다가 독일 비밀경찰의 조사를 받은 뒤 급히 프랑스로 망명해 유대인들을 위한 활동을 했고, 이후 독일군이 프랑스를 점령하자 수용소에 갇혔다가 탈출해 미국으로 망명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집필한 『전체주의의 기원』(1951)은 그녀를 유명하게 한 최초의 저술이며, 『인간의 조건』(1958)은 정치적 삶에 대한 심도 깊은 분석을 담고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통찰과 현실문제에 대한 그녀의 숙고와 판단은 독일 나치스의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 참관기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을 비롯해, 『혁명론』(1963)과 『공화국의 위기』(1970)에도 담겨 있습니다. 1975년 12월에 심근경색으로 사망했습니다.


이렇듯 아렌트는 유태인으로서 근대적 근본악을 온몸으로 경험했고, 철학자로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인간조건을 사유했습니다. 아렌트에게 “어떻게 근본악이 이 세상에 있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중요한 철학적 화두였지요. 그녀의 저서들은 자신의 철학적 화두에 대한 답으로 시도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조건』의 의의는 세계에 관해 단순히 관조하고 성찰하는 형이상학적 전통을 넘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실천철학적 방향을 제시한다는 데 있습니다.


 


『인간의 조건』 차례(요약)


제1장 인간의 조건

활동적 삶과 인간의 조건│활동적 삶의 개념│영원성과 불멸성


제2장

공론 영역과 사적 영역

인간:사회적 동물인가 아니면 정치적 동물인가│공론 영역:공통적인 것│사적 영역:소유│인간활동의 지위


제3장 노동

우리 신체의 노동과 우리 손의 작업│세계의 사물성│노동과 삶│소비자의 사회


제4장 작업

세계의 지속성│사물화│도구성과 노동의 동물│세계의 영속성과 예술작품


제5장 행위

말과 행위 속에 드러나는 인격│인간사의 그물망과 그 속에 나타나는 이야기들│예측불가능성과 약속의 힘


제6장 활동적 삶과 근대

세계소외│우주과학 대 자연과학│노동하는 동물의 승리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탈락하지 않으려면, 누구나 사회가 요구하는 합리성에 순응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우리가 이러한 사회 속에서 자유를 공동으로 향유하기란 어렵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이를 경험할 것인가?

 

  아렌트는 그 해답을 압축해 표현하고 있다. “행위를 하는 게 시작이고, 시작하는 게 자유롭다는 것이다.” 그는 행위를 ‘말’과 ‘새로운 시작’으로 정의한다. (정치)행위야말로 권력과 공공영역의 탄생을 촉진하며 우리의 진정한 인간다움을 드러내는 데 기여한다. 정치의 존재 이유가 바로 자유이기에, 정치는 시민이 자유를 제대로 경험하는 장이다.

 

  (…)

 

  시민의 다양한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자유로운 행위를 위축시키는 시대의 분위기 속에서 인간다운 공존이란 빈말에 불과할 것이다. 삶의 의미가 뒤틀린 시대에, 이 책은 사회적·정치적 순응주의에 맞서면서 항상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인간다운 삶의 귀중함을 성찰하는 지혜를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다.”

 

- 한국외국어대학교 LD학부 홍원표 교수


한겨레 기사 “정치의 존재 이유가 ‘시민의 자유’건만…” 전문 바로 읽기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36959.html

 

 

 

 

권위에 순응하고, 규율에 순응하고, 권력에 순응하는 ‘순응주의’가 얼마나 위험한 사회를 만드는지, 지난 달 비극적인 세월호 사건은 우리 모두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켰지요. ‘순응주의’는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핵심적인 문제이지 않나 싶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도덕적 딜레마를 일상적으로 느낄 정도로요. ‘시민의 자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아야 하는 지금이야말로 한나 아렌트를 읽고 함께 이야기할 때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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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 / 한길아트2013. 10. 7. 18:57

‘책’(Book), 찬란하게 반짝이는 은하수!

 

 

 

나는 제주도의 남서쪽에 위치한 대정읍 무릉리라는 인구 1,000명 남짓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제주시에 소재한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약 15년의 세월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 마을은 책이라도 한 권 사려면 버스로 10분 거리에 있는 읍내의 작은 서점까지 가야 했으며 도시의 일상적 ‘문화생활’을 향유하기 어려운 작고 궁벽하기 그지없는 곳이었다.

 

그 시절 내가 살던 읍내에는 공공도서관이 딱 한 군데 있었다. 그곳은 바로 근처에 있는 ‘송악산’이라는 ‘오름’의 이름을 딴 ‘송악도서관’이었다. 1995년,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곳에 가볼 수 있었다. 자료열람실은 도서관 건물 2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도서관이라는 곳에 와서 제법 많은 책들을 구경했다. 신이 난 나는 열람실을 이리저리 배회하기 시작하였다. 그곳은 ‘별천지’였다.

 

그렇게 얼마간 열람실 내부를 이리저리 배회하고 있을 때, 서가의 한 구역을 빼곡하게 채운 회색빛 양장본의 책무더기가 눈에 띄었다. 책의 제목 주위에 입혀놓은 금박이 형광등 불빛을 반사하면서 경쟁하는 듯 반짝거리고 있었다. 마치 나를 기다리며 스스로 발광하는 별처럼 보였다. 나는 그 책들로 다가가 권수를 손으로 일일이 세어 보았는데 총 27권이었다. 시선을 책의 하단부로 옮겨 보니 ‘한길사’라는 난생처음 들어보는 출판사 이름이 눈에 들어 왔다. 그때 내가 발견한 책들은 바로 1994년에 출간된 한길사의 ‘민찬’(民撰)『한국사』였다!

 

 

 

 

초등학교 교실 뒷부분에 마련된 작고 조악하기 그지없는 서가에서 몇 종류 되지도 않는 어린이용 ‘이야기 한국사’ 같은 부류의 책들만 조금씩 읽어봤던 나는, 육중한 덩치를 자랑하는 전 27권짜리 거질(巨帙)의 『한국사』의 모습에 압도당했다. 나는 뺨을 맞은 것처럼 얼떨떨한 마음 상태에서 그 책들의 책장을 정신없이 뒤적여 보다가, 책 끝부분에 ‘한길사’의 소재지가 적혀 있는 판권을 보았다.

‘서울특별시 강남구 신사동 506 강남출판문화센터’…….

내가 있는 곳은 국토의 최남단 제주도. 그 섬의 서남쪽 촌구석에 살고 있던 나에게 서울은 너무나 먼 세계였다.

 

 

 

밤이 되면 고향 마을 하늘에서 찬란하게 반짝이던 은하수의 뭇별들과 나 사이의 간극. 그 시절 나와 한길사라는 출판사가 있는 그곳은 내 손이 도무지 닿을 수 없는 머나먼 거리로 격절된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곳에 닿을 수 있을까? <다음에 계속>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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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 / 한길아트2013. 9. 11. 11:59

장자와 위기의 강 건너기

사람의 마음을 고치는 책『장자』

 

 


『장자』가 출간되던 날

 

‘인문고전 깊이읽기’ 『논어』에 이어 『정약용』을 읽었다. 나는 ‘인문고전 깊이읽기’ 시리즈에 푹 빠졌다. 한의학을 하다보니 서양철학보다는 동양철학에 관심이 많아 언제 또 신간이 나오나 기다리던 차에 『장자』가 나온 것이다. 페이스북을 통해 책이 ‘출간’되었음을 알았고, 한의원을 마치고 책방한길로 달려갔다. 내가 참가하는 독서토론모임 ‘시나브로book’ 회원들의 책까지 모두 여덟 권을 샀다. 책을 펼쳐보니 『동의보감』과 『장자』의 구성이 비슷한 데 놀랐다. 『동의보감』은 「내경편」「외형편」「잡병편」「탕액편」「침구편」으로 되어 있는데, 『장자』도 「내편」「외편」「잡편」으로 구성된 것이다. 역시 사람의 몸을 고치는 건 『동의보감』, 사람의 마음을 고치는 건 『장자』일까?

 




 

마음이 위기인 시대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는 주제의식이 책 전체를 감아 돈다. 그렇듯 이 책의 “우리는 마음이 위기인 시대를 살고 있다”는 첫 문장은 책장을 덮을 때까지 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나는 이 책을 ‘내 마음의 위기’를 위로하는 기분으로 읽어내려갔다.

 


 

자기 자신의 길을 가라

 

“자기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자연스러운 본성에 따라 보지 않고 상대방의 관점에 휘둘려 보거나, 자기 자신에게 충실해 자연스럽게 만족하는 것이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 사로잡혀 만족하는 사람은 남의 만족에 만족할 뿐 자기 자신의 진정한 만족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남의 길을 따라갈 뿐 주체성을 가지고 자기 자신의 길을 가지 못하는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다.”(「변무편」, 59쪽)

 

다섯 살 된 아이의 엄마라 아이 교육 욕심이 자주 일어난다. ‘누구 집 아이가 한글을 다 읽는다’는 이야기가 들릴라치면 우리 아이는 어쩌나 하는 불안이 생기고 며칠간은 이 아이를 어찌 가르칠까? 그 고민만 머리에 있다. 문제의 발단은 비교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럴 때면 어머니가 늘 하시는 말씀이 있다.

“비교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어. 비교하지 마.”

그러나 그렇게 살기가 어디 쉬운가? 비교의 교육관으로 내 아이를 밀어 넣고 기르려고 한 내 모습이 이 책을 읽으면서 보였다. 그럼 이 속박에서 나를 벗어나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얼까? 어머니 말씀이 정답일까? 그때 ‘무한’이라는 단어를 만났다.

 

“극도로 큰 세계와 극도로 작은 세계는 모두 무한하다……. 따라서 자기의 지금이 다른 존재보다 조금 크다고 특별히 내세울 것도 없고 남들보다 작다고 불만을 가질 필요도 없는 것이다.”(67쪽)

 

그렇다. 극도로 더 큰 세계와 극도로 작은 세계를 생각하기. 이것이 내가 찾은 해답이다.

 

 

 

탁부득이(託不得已)

 

아이 교육에 대해서만큼은 마음이 푸근해진 이날, 남편이 회사 회식으로 새벽에 들어 왔다. 술에 취해 하는 잠꼬대로 나도 잠을 못 이루고 그도 악몽을 꾸는 것 같아 안쓰러웠다. 잠꼬대로 회사일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은 듯했다. 목숨 바쳐 일하는 것이 직장인의 올바른 의무처럼 여겨지는 것이 당연한 대한민국이다보니, 직장인들은 열심히 일하면서도 인정을 못 받기 일쑤다. 그러고도 남편이 아침 여섯 시가 되자 어김없이 일어나 출근하는 걸 보니 가장의 무거운 어깨가 느껴졌다. 바로 그날 이 대목을 읽었다.

 

“탁부득이(託不得已)란 일을 할 때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어쩔 수 없이 하듯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상세계로 인한 고통을 승화시키기 위해서는 이와 같이 ‘부득이’한 마음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온전하게 잘 지켜야만 한다.”(98~99쪽)

 

“충성심을 가지고 간언을 해도 듣지 않는다면 그냥 뒤로 물러나 하자는 대로 따를 뿐 싸우지 말라.”(「지락」, 101쪽)

 

회사에 목숨 바쳐 일하다가 명예퇴직이라도 하고 나면 허탈함에 우울증에 빠지는 중년이 많다. 남편에게 『장자』의 이 대목을 보여주며 회사일보다 당신의 삶을 먼저 온전하게 지키라고 이야기했다.

 

 

 

유학과 장자, 결코 편치 않은 관계

 

한의대를 다니며 『대학』 『논어』 『맹자』 『중용』을 원문으로 본 적은 있지만 『장자』는 처음 접했다. 공자가 살았던 곡부도 다녀오고 주자 유적도 답사했기에, 본문에서 장자가 공자의 말을 비꼬는 부분을 접할 땐 사실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러나 때로는 공자의 말에 동조하고 때로는 맞서는 『장자』를 자꾸 읽다보니, 그 속에 숨어 있는 위트와 가르침이 보였다.

 

“옛사람의 흔적을 구하지 말고 옛사람이 추구했던 것을 찾아라.”(291쪽)

 

마쓰오 바쇼의 말처럼 장자 그가 추구했던 바를 찾아야 한다. 편견 없이 책을 읽어야 한다. 지은이 양승권 선생님은 이렇게 썼다.

 

“장자를 위대한 동양의 철인 혹은 성인이라는 테두리에 가두어놓지 말고 우리 이웃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불만 많은 아저씨 정도로 생각해보자. ……장자를 접근하기 어려운 철학자로 바라보지 말고 마음의 안정과 정신적 평화를 불러오게 하는 아주 뛰어난 인생 상담가로 만나보자.”(47쪽)

 

책으로 인생 상담가 장자를 만나보았다. 이제는 저자 양승권 선생님을 만나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다. 마침 파주북소리 행사에 양승권 선생님의 강의가 있다고 한다. 9월 28일(토) 오후 4시, 우리 ‘시나브로book’ 회원들과 전원 참석하기로 했다. 그날이 빨리 왔으면……!


 



   [인문고전 깊이읽기 - 장자] 너는 자연 그대로 아름답다니깐?










ⓒ한길사


 


 

Posted by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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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예림

    멋져요. 권해진 선생님!

    2013.09.11 14:57 [ ADDR : EDIT/ DEL : REPLY ]
  2. 세렝게티

    저도 어서 읽고 싶어집니다.
    '인문고전 깊이읽기'는 누구에게나
    추천하고픈 시리즈에요!

    2013.09.11 15:02 [ ADDR : EDIT/ DEL : REPLY ]
  3. 태주니

    '마음을 고친다'라 함은 병들었기때문 이겠지요?
    병의 근원을 찾아 치료하는 한의학과의 접목이
    인상 깊었습니다.^^

    2013.09.11 15:17 [ ADDR : EDIT/ DEL : REPLY ]
  4. 이재연

    마음의 병이 심각한 이 시대에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써
    병이 침투하지 못하게 스스로 마음의 건강을 지켜야 겠습니다. 장자를 통해...

    2013.09.11 15:27 [ ADDR : EDIT/ DEL : REPLY ]
  5. 백승천

    기대가 되고 공감이 되네요^
    현실속에서 느껴지는 자녀에 대한 부모의 마음, 책임감으로 변함없이 일어나 출근해야만 하는 가장의 마음과 위기를.... 마음을 고치는 장자 빨리 읽고 싶어요...

    2013.09.11 16:25 [ ADDR : EDIT/ DEL : REPLY ]
  6. 옛사람이 추구했던것을 찾아라 정말 멋진말입니다...

    2014.03.02 21:1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저희가 고전을 찾고 읽는 이유이기도 하겠지요. ^^
      여러 훌륭한 고전이 더욱 널리 읽히도록
      한길사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014.04.23 11:35 신고 [ ADDR : EDIT/ DEL ]

한길사 / 한길아트2013. 9. 10. 10:32

책은 생명

우수 도서들의 아름다운 책들의 향연



책은 생명입니다.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담아내서, 다시 그 생각과 행동을 키워내는 한 권의 책이야말로 살아 있는 생명일 것입니다. 36년간 살아있는 생명, 한 권의 책을 위해 걸어온 저희 한길사에서 출간된 책들이 수많은 상들과 우수도서로 선정되었는데요. 2011-2013 지난 3년간의 수상 도서들을 간단한 소개해 드릴게요. 



2013 수상내역


책표지 

책제목 

지은이 

책소개 

수상내역 

 

 근대영국헌정

 이태숙 지음

 서양사학자 이태숙 교수가 쓴 영국헌정에 관한 논문 10편을 모았다. 이 책은 성문헌법이 없는 영국의 헌법과 헌정정신을 다양한 각도에서 공부할 수 있는 자료다.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에우데모스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  송유레 옮김

 『에우데모스 윤리학』은 『니코마코스 윤리학』과 함께 전승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 저술로, 오랫동안 진작 논란이 있어왔으나 현재 진작으로 인정받는 추세이다.이 책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와는 달리 하나의 일관된 행복관을 개진하고 있다.

 2013년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정약용

 함규진 지음 

 "참된 선비의 학문은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편안히 하는 일(治國安民), 오랑캐의 침입을 물리치는 일, 나라 살림을 넉넉하게 하는 일, 백성이 문무에 능하도록 교육하는 일 등이 두루 해당된다. 어찌 고문(古文) 구절을 따서 글이나 짓고, 벌레나 물고기 이름에 주석이나 달고, 소매 넓은 옷을 떨쳐입고서 예모만을 익히는 것이겠는가?"

 2013년 대한출판문화협회 올해의 청소년 도서

 

 묵경1, 2

 묵자 지음 | 

 염정삼 옮김

 무릇 변론하는 것(辯)은 그것으로 시비(是非)의 구분을 분명하게 하고, 치란(治亂)의 요체(紀)를 살피고, 동이(同異)의 이름붙이는 일(處)을 분명하게 하며, 명실(名實)의 이치를 살펴서, 이해(利害)에 대처하게 하고 혐의(嫌疑)를 해결하려는 것이다.. 자기에게 있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있지 않은 것이 아니니, 자기에게 없는 것으로 남에게 구할 수는 없다.●묵자,「소취」에서

 2013년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학술도서

 

 행위와 사건

 도널드 데이빗슨 

 지음 | 배식한 옮김

 인간의 움직임 모두가 행동은 아니다. 이 방에 있는 우리 모두는 지구의 자전 때문에 시간당 약 1,100킬로미터씩 동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이는 우리의 행동에 관한 사실이 아니다. 행동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우리가 하는 것에 있다. 그러나 어쨌든 행동이 있는 곳에는 의도가 관련된다. 

 2013년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지식의 현장  

 담론의 풍경

 나종석 외 지음 

 잡지는 현대 인문학자들의 중요한 실험이자 실천이었다. 그것은 인문학자들의 국적이나 대학, 분과를 넘어선 새로운 네트워크를 가능하게 한 논의의 장이었으며, 제도권 학문 장의 변화를 추동하기도 했다. 이 책에서 보여주듯이 인문학자들은 사회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학술운동의 장을 형성하여 부당한 현실을 변혁시키기 위해 노력해온 개혁적·진보적 운동과 연대하였다.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

 

 무알라까트

 이므룰 까이스 

 외 6명 지음 | 

 김능우 옮김

 자힐리야 시대의 이므룰 까이스, 따라파 이븐 알압드 등 7명의 우수한 시인들이 남긴 7편의 시를 수록한 『무알라까트』는 이슬람이라는 유일신 종교를 알기 이전 아랍 유목민의 거칠면서도 순수한 삶의 열정을 닮고 있어 세계의 문학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다. 이슬람 이전 시대에 발달한 아랍 정형시의 전형을 보여주며, 다신교 시대 아랍인의 원시적 생명력이 가득한 독특한 인생관과 삶의 다양한 양상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2013년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학술도서



2012 수상내역


 책표지

책제목 

지은이 

책소개 

수상내역 



 한국의 샤머니즘 

 과 분석심리학 

 이부영 지음 

 이 책은 정신과 의사의 수련을 시작한 이래 내가 줄곧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온 샤머니즘에 대한 글을 한 곳에 모아 현재의 시점에서 정리하고 이를 보다 넓은 독자들에게 제시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샤머니즘에 대한 나의 문화정신의학적․분석심리학적 연구를 총체적으로 마무리 짓는 작업이기도 했다.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

 

 타키투스의 역사

 타키투스 지음 | 

 김경현 외 1명 옮김

 타키투스(Publius Cornelius Tacitus, 55년경~117년경)는 고대 로마의 역사가이자 웅변가, 정치가다. 그는 역사에 대한 예리한 정치적 분석을 제공할 수 있는 심오한 사상을 지닌 위대한 역사가였다. 『타키투스의 역사』는 로마 역사상 가장 혼란스러웠고 한편으로는 역동적이었던 내전의 아픔을 그만의 거침없는 필체로 그려낸 역작이다.

 2012년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일제초기 

 조선의 농업

 허수열 지음 

 이 책이 1910년 부근의 조선의 농업을 주제로 삼고 있는 까닭은 식민지근대화론의 바닥 인식이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허구에 가득 찬 것임을 밝히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실증적 연구를 통해 식민지근대화론의 양 날개 즉, 조선후기 위기론과 일제시대 개발론을 모두 비판하려고 한다.

 2012년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존재와 공간

 강학순 지음

 인간의 인간다움은 그가 속한 사방세계와의 친밀한 네트워크 공간 속에 거주함이다. 이 연대의 공간에서 삼라만상의 존재자들은 비로소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만난다. 이것은 존재의 일의성과 형상의 다양성의‘존재론적 연동운동’이며, 개체의 자발적 연주와 공동체의 참여로 이루어지는‘존재론적 합주’이다.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

 

 그녀들은 자유로

 운 영혼을 

 사랑했다

 열린문학연구회 지음

 사포(Sappho), 황진이(黃眞伊), 조르주 상드(George Sand), 조지 엘리엇(George Eliot),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히구치 이치요(樋口一葉), 나혜석(羅蕙錫), 딩링(丁玲),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루이제 린저(Ruise Linser), 샤오홍(蕭紅),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에 이르기까지,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삶을 개척한 동서양의 여성 작가들의 삶은 ‘위대한 여성’이라기보다는 ‘열정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2012년 대한출판문화협회 올해의 청소년 도서

 

 빠니니 읽기

 강성용 지음

 ‘빠니니문법’이란 고대 인도의 문법학자 ‘빠니니’(Pāṇini)가 쓴 것으로 알려진 <아스타댜이>(Aṣṭādhyāyī)가 제시하는 인도 고전쌍쓰끄릳의 문법의 서술체계를 가리킨다. <아스타댜이>는 ‘8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텍스트’를 의미하며, 약 4000개의 간략한 쑤뜨라(sūtra, 經)로 이루어진 문법텍스트이다. 이 텍스트는 메타언어와 인공언어적인 도구를 체계적이면서도 일관되게 사용하여, 짧은 텍스트 속에서도 고전쌍쓰끄릳의 음운론과 형태론적인 기술을 거의 완벽하게 담고 있다.

 2012년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아렌트

 홍원표 지음

 “인간이 행위 능력을 부여받은 존재라는 사실과 정치문제는 자유문제를 언급할 때 항상 우리 정신에 나타나야 한다. 인간적 삶의 모든 능력과 가능성 가운데 행위와 정치는 적어도 자유가 존재한다는 것을 상정하지 않은 채 생각할 수도 없었던 유일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정치의 존재이유는 자유이고, 자유를 경험하는 장이 행위다.” ●아렌트 

 2012년 문화관광부 우수교양도서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J. A. 슘페터 지음 |

 변상진 옮김

 미국의 이론경제학자 슘페터가 자본주의․사회주의의 본질과 그 전망을 조망한 책. 슘페터는 20세기 전반의 세계적인 이론경제학자이다. 경제․사회 전반의 문제를 40여 년에 걸쳐 사색한 그의 결정체가 이 책이다. 여기서 그는 마르크스 이론의 비판 및 자본주의의 운명, 민주주의 여러 모순들을 순수경제학의 범주를 넘어서 정치․사회적인 입장에서 광범위하고도 깊은 통찰력으로 분석하고 있다. 

 2012년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학술도서

 

 페미니즘과 

 지리학

 질리언 로즈 지음 |

 정현주 옮김

 영국의 페미니스트 지리학자 질리언 로즈가 1993년에 발표한 이 책은 페미니즘 이론과 비판을 통해 주류 지리학에 내포된 남성중심성을 파헤치고, 지적 능력을 갖추고 고유의 지리를 알고 있는 존재로서의 여성을 중심에 놓는 대안적인 지리학을 모색한다. 이 책은 여성에 대한 억압과 남성중심적 권위를 통해 세워진 근대적 지식과 학문 관행을 비판하고 성찰하는 하나의 인식론적 도구로서 페미니즘을 주창한다.

 2012년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장가르 1

 칼미크-오이라드 

 민중 외 1명 지음 |

 유원수 옮김

 칼미크-오이라드 민중의 영웅서사시. 『게세르』 『몽골비사』와 더불어 몽골 3대 문학으로 꼽히며, 『마나스』 『게세르』와 함께 중앙아시아의 3대 영웅서사시 중 하나로 전해온다. 구비문학·영웅서사문학·민족문학으로서 중요하며, 형식과 내용면에서 우리 문학과 비교되기도 한다. 몽골인들의 생생한 삶, 그들의 생각과 꿈을 담아내는 문학적 기법을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다.

 2012 APPA 출판상 학술부문 금상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지식의 형태와 

 사회 1, 2

 막스 셸러 지음 | 

 이을상 외 1명 옮김

 하층계급은 언제나 과거의 역사를 탄핵하고 비난하는 경향을 띤다. 왜냐하면 역사야말로 그들을 지금 위치에 처하게 해준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상층계급은 특히 그 정점에서 방금 말한 것과는 정반대되는 입장을 취하는 경향이 있다. 즉 그들은 감사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과거를 조망하기 때문에, 결코 인류역사가 유죄인 것으로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미래에 대해서는 불안으로 가득 찬 시선을 보낸다. ●막스 셸러

 2012년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학술도서



2011 수상내역


책표지 

책제목 

지은이 

책 소개 

수상내역 

 






 검은 역사 

 하얀 이론

 이경원 지음 

 결국 탈식민주의가 서구의 문화적 헤게모니에 공모하느냐 대항하느냐의 문제는 탈식민주의를 실천하는 주체의 ‘위치’로 귀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제3세계 탈식민주의와 서구 포스트모더니즘이 이념적·이론적 토대와 정치적 효과에서 중첩되는 부분만큼 상충하는 부분도 많이 때문이다. 범박하게 말하면, 둘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는 하나는 피해자의 저항이고 다른 하나는 가해자의 반성이라는 데 있다. 

 2011 제4회 우호인문학상


 제국과 

 민족국가 

 사이에서

 이석구 지음

 사실 어떠한 민족도 그 문화가 홀로, 독자적으로 형성되거나 성장하는 경우는 없다. 외래문화와의 충돌·반발·제휴·차용 등의 과정이 반드시 민족문화의 형성과 발달에 개입하는 것이다. 그러니 민족문화는 국지적인(국내) 차원에서 일어나는 개인과 집단의 상호작용만큼이나 국제적 차원, 즉 국가 단위를 넘어서는 상호작용을 통해서 형성된다고 할 수 있다. 달리 풀이하면 민족문화는 민족적 씨줄과 초민족적 날줄이 함께 엮어내는 옷감이라고 할 수 있다. 씨줄과 날줄이 조화롭게 섞여서 무늬를 함께 만들 때 아름다운 옷이 짜여지듯, 민족국가가 그의 합법성을 질문하거나 동질성을 교란하는 초민족적 사유에 의해 끊임없이 도전받고, 그래서 이에 대한 응전과 자기 교정의 과정을 겪을 때만이 그 민족은 역사의 장에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2011 영어영문학 학술상

 

 작곡가

 이건용 

 현대음악강의

 이건용 지음

 『작곡가 이건용의 현대음악강의』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작곡과 교수 이건용이 현대음악에 대한 그의 오랜 고민과 음악적․교육적 경험을 담은 음악 교양서다. 총 15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모차르트(1756∼91)부터 펜데레츠키(1933∼ )까지 약 180년간의 음악사를 현대음악의 거장들과 그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음악의 형성원리와 그것에 영향을 미친 시대를 다룬다.

 2011년 문화관광부 우수교양도서

 

 라틴현대미술
 저항을 그리다

 유화열 지음

 서양미술의 시각에서 라틴아메리카 미술을 바라보면 안타깝게도 온통 식민지의 그림자로 드리워져 ‘주류 대 비주류’라는 고정관념을 탈피하기란 불가능하다. 이는 어떤 약점을 잡고 사람을 대하면 영원히 그 사람의 가치를 볼 수 없는 눈뜬장님과 같은 이치다. 라틴아메리카 미술은 서양미술에서 말하는 것처럼 비주류 식민지미술이 아니다. 그들의 미술에 대해 치명적 약점이라 여겨왔던 것은 혼종성인데, 20세기 초반에 들어서 혼종성은 그들만이 가질 수 있는 창의적인 샘물로 바뀌었다. 즉 그들은 애초부터 순수하다거나, 완전한 창조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었으며, 자신들이 잘할 수 있는 이접(移接)이라는 방법을 활용한 것이다. 이에 대해 쿠바의 비평가 모스케라가 “라틴아메리카 미술이란 다른 것들 사이에서 재창조하는 창작”이라고 말한 것은 너무나 정확한 표현이다.

 2011년 5월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이달의 읽을 만한 책

 

 희망

 리영희 외 1명 지음

 나의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을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누어야 할 생명인 까닭에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그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지금까지도 그렇고 영원히 그러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발전, 사회의 진보는 있을 수 없다.”●리영희, 「우상과 이성」 중에서

 2011년 문화관광부 우수교양도서

 


 서양고대미학사

 강의

 김율 지음

 “고대미학의 성립과 전개 과정은 근거 물음과 본질 물음의 통일이라는 서양철학의 근본적 사유 문법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아름답게 나타나는 사물들의 현상에 대한 직접적 경험을 어떤 원인의 효과로서 이해하고, 그 원인을 개념적으로 파악하려는 노력이야말로 고대미학의 본령本領이었다. 미학이 철학이라는 말은 미학의 바로 이러한 태생적 신원을 가리키는 것이다. 플라톤 이래로 역사적 미학에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주도적 지위를 상실한 적은 없으며, 이 주도적 물음의 ‘철학적’ 의미가 탈각된 적도 없다.”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

 

 로마에서 

 말하다

 시오노 나나미 외 1명  지음 | 김난주 옮김

 자식을 키운다는 것은 참 멋진 일입니다.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이 젊은 세대를 이해하려면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하지요.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가까이에 있습니다. 자식들과 별 부담 없이 대화만 나누어도 절로 젊은 세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말이에요. 

 2011년 1월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이달의 읽을 만한 책

 

 중국사유

 마르셀 그라네 지음 |

 유병태 옮김

 중국의 위상을 지속적으로 지켜주는 원천은 다른 어떤 곳에 기반한다. 극동국가들이 중국문명에서 차용하고 보지하려던 것은 삶에 대한 조예, 즉 지혜였다. 중국이 정신적 권위를 확립한 시기는 하나의 제국으로 통합되어 영향력을 원격화하면서부터다.

 2011년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학술도서

 

 동아시아 책의

 사상 책의 힘

 동아시아출판인회의 

 기획 지음 | 

 이강범 외 1명 옮김

 동아시아출판인회의는 일찍이 동아시아에 존재했던 서적의 공유ㆍ교류의 관계를 “동아시아 독서공동체”라 이름 붙였으며, 이러한 “동아시아 독서공동체”를 현대에 재생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회의를 거듭하는 가운데 각 지역의 출판인으로부터 “동아시아에서 공유해야 할 인문서 100권”을 선정하고, 선정된 책의 상호 번역을 촉진하자는 과제가 제출되었다. 동아시아의 편집자·출판인으로서 타국ㆍ타 지역의 독서인이 어떤 책을 읽어 주길 바라는지, 어떤 책이 반드시 전해져야 할 책이라고 생각해 왔는지를 서로에게 추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자고 하는 것이다.

 2011 APPA 출판상 일반부문 금상

 


 정신 자아 사회

 조지 허버트 미드 지음 

 | 나은영 옮김 

 자아들은 다른 자아들과의 분명한 관련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우리 자신의 자아와 타인들의 자아 사이에 확고한 선이 그어질 수 없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의 자아가 존재해 우리 경험 속으로 들어올 때만 우리 자신의 자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개인은 자기가 속한 사회적 집단의 다른 구성원들의 자아와 관련해서만 자아를 소유한다. 그리고 개인 자아의 구조는 마치 이 사회적 집단에 속하는 모든 다른 개인의 자아 구조가 그러하듯이 자기가 속한 사회적 집단의 일반적인 행동 양상을 표현하거나 반영한다. 

 2011년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숭고와 미의 

 근원을 찾아서

 에드먼드 버크 지음 | 

 김혜련 옮김

 아름다운 것은 매끄럽고 부드럽다. 숭고한 대상은 크고 거칠고 조야한 반면, 미는 직선을 거부하고 모르는 사이에 직선을 비껴간다. 많은 경우에, 위대한 것은 직선을 좋아하고, 직선에서 일탈할 때는 급작스러운 일탈을 보여준다. 미는 불투명하지 않다. 그러나 위대한 것은 어둡고 불투명해야 한다. 미는 밝고 섬세한 반면, 위대한 것은 단단하고 무겁기까지 하다. 

 2011년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학술도서

 

 경계와 편견을

 넘어서

 곽준혁 지음

 지금 우리는 가치가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맹목적인 현실주의의 밀물 속에 살고 있다. 경험적이고 역사적인 분석보다 자신들의 이념적 편견을 앞세워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는 일상이 지적 무관심을 부채질한다. 이견을 가진 상대방의 의사에 대한 관심을 갖기 위해서라도, 비관계적 무관심을 관계적 가치에 대한 지적 호기심으로 전환시킬 계기가 필요하다.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


Posted by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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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예림

    꼭 상 타려고 만드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수상도서로 선정될 때면
    책 만드는 보람을 느끼지요.

    2013.09.10 14:17 [ ADDR : EDIT/ DEL : REPLY ]
    • 한길사

      앞으로도 좋은 책 많이 만들어주세요:)

      2013.09.11 09:26 [ ADDR : EDIT/ DEL ]
    • 예림

      예^^, 같이 합시다!

      2013.09.11 10:39 [ ADDR : EDIT/ DEL ]
  2. 래소

    에우데모스 윤리학, 아렌트, 묵경 읽고 싶네요...
    함규진 선생님 정약용은 정말 강추 입니다.
    청소년 도서로 상을 받으셨지만 어른들도 읽어야하는 책...

    2013.09.11 09:17 [ ADDR : EDIT/ DEL : REPLY ]
    • 한길사

      저도 지금 정약용 뽑아 들었습니다!
      청소년 어른 누구에게나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더욱 더 노력하겠습니다:)

      2013.09.11 09:27 [ ADDR : EDIT/ DEL ]

한길사 / 한길아트2013. 9. 6. 16:17


누구나 한번쯤 인도를 꿈꾼다.

상상력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인도에 관한 이야기



“사는 게 왜 이리 힘들까요?”

“그러게 말이에요. 그래서 기쁨도 더 큰가 봐요.”

                        - 영화 「시티 오브 조이」 中 -



「시티 오브 조이」라니! 주인공이 처음 콜카타(전 캘커타)를 볼 때는 전혀 어떤 기쁨도 그곳에서 찾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 역시도 처음 이 영화를 보면서 저 도시가 어찌해서 '시티 오브 조이'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으니까요. 「시티 오브 조이」 속의 인도는 예쁘지 않습니다. 처절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인도의 비루한 현실을 보여주는 장면들과 스토리가 가슴을 스미고 드는 아름다움이 있을 뿐입니다. 



[출처-영화 「시티 오브 조이」]




영어로 ‘기쁨의 도시’라는 뜻을 가진 콜카타. 질척하리만큼 진한 삶의 밑바닥을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 어째서 기쁨의 도시라 불릴 수 있을까요. 아무리 보아도 기쁨보다는 절망과 고통, 슬픔이 더 많아 보이는 그곳에서요. 영화를 보는 내내 그 의구심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웠던 저는 마지막 저 대사를 들으며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답니다.


사람들에게 막연하게 가고 싶은 곳을 말해보라고 하면 한번쯤 인도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방학 중, 심지어 직장을 때려치우고 인도로 달려가는데요. 그런데 인도하면 딱 생각나는 것은 음...카레? 그만큼 잘 알진 못하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인지 더 환상으로 가득한 인도! 60여 년 전에야 하나의 자유로운 국가가 되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인도가 존재한 기간은 수천 년이나 됩니다. 인도아 대륙 전체, 즉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의 인구는 15억 명으로 전세계 인구의 5분의 1도 넘습니다. 곧 중국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가 될 것 같은데요. 여러 지역의 위대한 문화들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문명이 되죠. 광활한 땅덩이와 넘치는 인구들, 그 속의 이야기들이 무궁무진할 것 같지 않으세요? 그 시작과 현재 그리고 상상력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인도에 관한 101가지 이야기들이 여기 있습니다.



101가지 인도 이야기

유니스 드 수사 지음 | 소년한길 | 2012


유니스 드 수사는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세계 여러 나라에 작품이 소개된 인도의 유명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문학평론가입니다. 작가는 이 책 속에서 마치 할머니가 따뜻한 난롯가에 모여 앉은 어린 손자손녀들에게 조근 조근하게 때로는 박진감 넘치게 재미난 옛날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인도의 광활한 땅덩어리만큼이나 이 책에 소개된 이야기들의 소재는 무척 다양합니다. 세상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질병과 재앙은 어떻게 생겨났는지, 사람의 꼬리는 왜 없어졌는지 같은 세상 만물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온갖 종류의 악마들, 동물들, 초자연적인 생명체들의 이야기까지, 우리가 이미 알고 있거나 혹은 몰랐던 것들, 아예 생각해 보지도 못한 것들에 대한 상상력과 호기심을 마구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책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이 책은 어른을 위한 아이의 책으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손에 들자마자 후루룩 국수 먹듯 쭈욱 읽어내려간달까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레 삶을 살아가는 지혜와 교훈을 얻게 하는 흥미진진한 101가지 이야기들이 가득하거든요. 솜씨 좋은 이야기꾼의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불구덩이 속에서 이글이글 타오르는 악마의 형상이 불쑥 눈앞에 나타나기도 하고, 흐드러지게 핀 꽃나무 숲이 저 멀리서 성큼성큼 달려오는 모습과 마주치게 되기도 합니다. 읽고 나면 인도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설렘이 생기게 될 101가지 인도이야기. 짤막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어 잠자리에 들기 전 한 꼭지씩 읽어나가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작은 여신 우마

프레드 베르나르 지음 | 소년한길 | 2012


어느 날 갑자기 여신이 된 소녀 우마. 아몬드처럼 까만 눈동자, 루비같이 붉은 입술, 아름다운 목소리…. 여신이 되기 위한 조건을 모두 갖춘 우마는 홀로 어두컴컴한 방에서 밤을 보내고, 무서운 분장을 한 신관들이 겁을 줘도 꾹 참고 작은 여신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모두들 작은 여신이 된 우마에게 행복을 빕니다. 이러한 풍습은 인도에서 몇천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전통입니다. 이 책은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인도의 특별한 소녀가 겪는 이국적인 모험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린이 프랑수아 로카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이국 이야기에 다채로운 색상과 생생한 표현으로 아름답고 따뜻한 감동을 불어넣습니다. 또한 불길이 활활 치솟는 전쟁터에서 느껴지는 긴장감과 웅장한 코끼리, 그르렁거리는 호랑이, 파란색과 녹색이 강렬한 인도 정글의 모습은 인도 특유의 정서를 훌륭하게 표현해내고 있습니다.






한길사에서 출간된 책들을 보면 인도 관련 책들을 많이 찾아낼 수 있는데요. 한 번 모아봤습니다. 






한길그레이트북스 『바가바드 기타(한길사│1996)

한길그레이트북스 우파니샤드1, 2(한길사│1996)

한길그레이트북스 인도철학사 1~4(한길사│1999)

간디자서전(한길사│2002)

마하트마 간디(한길사│2001)

인문고전 깊이읽기 베다』(한길사│2013)

인문고전 깊이읽기 우파니샤드(한길사│2011)

이거룡의 인도사원순례(한길사│2003)

101가지 인도 이야기(소년한길│2012)

Art&Ideas 인도미술(한길아트│2001)



『간디자서전』의 옮긴이 함석헌 선생님은 책을 번역하며 여러 군데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고 말씀하시는데요. 책을 통해 그 시대 인도의 모습과 간디의 인격적 매력을 동시에 접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밖에도 인문고전 깊이읽기 『베다』와 『우파니샤드』는 인도 정신문명의 뿌리, 힌두교와 인도철학에 대해 편안하게 해설하고 있어 인도에 관한 입문서로 최고의 선택이 아닐까 합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 호기심의 나라 인도에 관한 한길사 책들과 함께 몸과 마음을 살찌우는 가을을 보내시는 건 어떠세요? 



ⓒ한길사




Posted by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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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예림

    잘 읽었습니다^^

    2013.09.09 10:22 [ ADDR : EDIT/ DEL : REPLY ]
  2. 편집자 A

    이거룡 선생님의 <아름다운 파괴>도 추천합니다. ^^

    2013.09.09 15:48 [ ADDR : EDIT/ DEL : REPLY ]
    • 아, 아름다운 파괴가 빠졌군요! 감사합니다. 지금 찾으러 갑니다~^^

      2013.09.11 09:29 신고 [ ADDR : EDIT/ DEL ]
  3. 김영훈

    안녕하세요?

    날씨가 점점 선선한 가을로 접어드네요.

    이번에 교보문고 50% 행사를 하여 그동안 미뤄뒀던 아트앤아이디어 시리즈를 모두 구매 하였습니다.

    개념미술을 구입하지 못하여 혹시 출판사 재고가 있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향후 아트앤아이디어 한글본에 대해서도 질문 드려도 될까요? 아직 한글 출판 되지 않은것들이 많이 있던데

    계획이 없으신지 아니면 기다려야하는지도 좀 여쭤보고 싶습니다.

    홈페이지에 맥은 로그인이 안되는 상황이라 어디에 질문을 드려야 할지 몰라 이렇게 글을 납겨봅니다.

    2014.08.22 14:29 [ ADDR : EDIT/ DEL : REPLY ]
    • 안녕하세요, 김영훈 님^^ 저희 아트앤아이디어 시리즈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쉽게도 '개념 미술'은 저희도 재고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
      또한 더욱 아쉽게도, 아트앤아이디어 국역본은 현재 총 18권으로
      마무리되었으며 추가 발간 계획은 없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구입하신 아트앤아이디어 책들이라도 영훈 님께
      좋은 마음의 양식이 되길 바랍니다^^

      2014.08.25 13:53 신고 [ ADDR : EDIT/ DEL ]

한길사 / 한길아트2013. 9. 5. 15:18



매번 시의성 있는 주제로 독자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는 계간 『황해문화』가을호에 이순예 선생님의 『예술과 비판, 근원의 빛-예술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서평이 실렸습니다. 홍윤기 선생님은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예술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서 나의 사유는 돌부리에 걸린 것처럼 넘어진다. 일어서면서 나는 막 산에서 내려오는 차라투스트라라도 된 듯한 기분으로 버럭 역정을 낸다. 예술은 죽었잖아! 라고."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예술은 정말 죽어버린 것일까요. 『황해문화』와 홍윤기 선생님의 허락을 얻어 서평 본문을 싣습니다.

 

   

예술은 죽었다! 아직도 구원을 찾는가?

 

 

돈의 가치론적 전제(專制):예술은 죽었다!

 

전직 대통령이 내놓지 않은 추징금을 받아내기 위해 검찰이 압수한 톱클래스 작가의 미술 작품이나 지구를 몇 바퀴씩 돌아가면서 클릭된 싸이의 뮤직비디오가 그것을 보고 듣는 이들에게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가지는지 알고 싶을 때 TV는 그것들을 문화상품으로 놓고 시장가치만 말해준다. 우리의 감성을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현대의 대중매체들, 특히 우리나라의 대중매체들 안에서 모든 예술, 나아가 모든 문화적 활동의 가치척도는 돈이다. 예술과 문화에 대해 우리는 더이상 “예술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던지지 않는다. 돈의 압도적 우위를 인정하는 데 너무나 익숙해져버린 나머지 예술이 우리에게 구원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 자체가 퇴화된 것이다. ‘나’와 예술, ‘우리’와 문화 사이의 의미 있는 연관성은 돈의 액수 뒤에 아예 엄폐된다. 미디어 세계 안에서 예술과 문화는 모두 시장판의 상품이다. 예술은 죽었다!

 






근원에의 접근?

 

이순예 박사의 책은 그 제목부터 나를 세 번 고달프게 만들었다. 이 책은 세 개의 제목을 달고 있다. 보통 본제목 하나에 부제목 하나 정도인데, 거기에 딸림 제목이 하나 더 붙었다. 그리고 본제목, 부제목, 딸림제목으로 갈수록 읽는이의 마음은 예술의 심연, 이제는 동굴 속에 들어가 까맣게 잊고 있는 그 심연으로 끌려들어간다. ‘예술과 비판’은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쉼표 하고 ‘근원의 빛’이라는 본제목 같은 부제목을 붙였다. 무엇이 근원인가? 예술인가, 비판인가?

‘빛’이라는 계몽의 이미지로 ‘근원’을 비추면, 역시 우리 뇌리에서 사라진 사유의 한 장르, 고색창연한 형이상학과 부딪친다. 우리는 왜 이 사유의 동굴 속으로, ‘근원’이라는 것으로 들어가야 하는가? 그러면서 지금의 예술에서는 전혀 던져지지 않는 물음에 걸려 넘어진다. ‘예술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라는 그 물음에서 나의 사유는 돌부리에 걸린 것처럼 넘어진다. 일어서면서 나는 막 산에서 내려오는 차라투스트라라도 된 듯한 기분으로 버럭 역정을 낸다. 예술은 죽었잖아! 라고.


 



구원체험:접신(接身)을 통한 접신(接神)

 

그런데 지은이는 “시작하기 전”(21쪽)부터 이미 시작한다. 라오콘의 전설은 우리로 하여금 근원에 접근하게 만들지 않는다. 우리는 ‘접근’하는 게 아니라 라오콘의 ‘전설’에 한 귀를 내미는 순간 라오콘이 죽어간 트로이의 전장터에서 빠져나온 아이네아스의 발자취를 따라 그야말로 순식간에 그 아이네아스가 “새로운” 나라를 “시작”하기 위해(28쪽) 도달했던 바로 그 로마의 한가운데 있는 바티칸 교황궁에서 조각상으로 놓인 “예술품”으로 변신한 라오콘 그 자신의 죽음의 순간과 ‘접신(接身)’한다. 근원은 서서히 접근하는 것이 아니다. 근원은 내가 그 앞에 선 순간 나의 몸에 ‘접신’한다. 철학적 사유와 달리 예술적 감상은 근원을 사유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근원 자체로서 비근원적인 현실에서 나를 동체이탈시켜 바로 구원 그 자체와 일체로 만든다. 내가 구원을 의아하게 여기는 바로 그 순간 그런 구원의 의아함에 대한 “나의 기억”은 “나”로 존재한다. “나는 나의 기억”이니까(35쪽).


이순예 박사는 내가 역정낼 틈도 없이, 나를 역정(逆情)나게 만든 그 예술 앞에 내가 서는 그 순간, 나를 나의 역정(驛程)에서 순간적으로 빼돌려 그야말로 “우연”스럽게 “진정성” 있는 나를(42쪽) 온몸으로 만들어낸다. 나의 역정은 예술 작품 앞에서 멈추었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죽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의 뇌리에서 시간이 멈춘 그 순간 나는 죽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술 작품이 나에게 준 그 순간을 살아낸 나의 삶대로 조각되거나 그려진다. 예술 작품은 내가 보는 작품 대상이 아니라 그 대상과 하나가 된 나의 삶의 순간이 되고, 그 순간 나의 삶은 고단한 인생 역정에서 벗어나 예술이 그려보인 바로 ‘그 순간의 삶’ 그 자체로 순수하게 존재한다. 예술이 없던 곳에서 비루하게 엮어왔던 나의 삶은 이 우연의 순간에 단번에 “예술의 삶”으로 돌려진다. 예술은 내가 살고 싶었던 진정한 삶을 순간적으로 내게 빙의시킨다.




 

현대:일체의 접신을 거부한 업보

 

이순예 박사는 이렇게 역정이탈을 통해 일체체험을 시키는 예술이 탈역정의 역정을 만들어 예술을 보는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삶의 또다른 차원으로 들여넣어 합체시키는 합입(合入)의 순간이 현대에서는 더이상 가능하지 않게 된 현대의 원죄임을 준엄하게 추적한다.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근대인은 뉴턴에게서 그 ‘사과’에 합입되는 것을 거부하고 사과의 ‘떨어짐’에 매달려 사과와 하나될 기회를 영원히 포기했다. 실험실은 근대의 저주다. 인간은 어떤 대상과도 하나가 될 수 없다. 인간은 대상의 관찰을 통해 그 대상의 속성들과 그 인과적 체계성을 얻는 대신 그 대상과 전적으로 합일하는 접신(接身)의 가능성을 포기했다. 대상과 접신(接身)할 일체의 가능성이 포기되면서 인간은 대상의 총체인 세계(世界), 그 대상들의 이상의 총체인 신(神)과 접신(接神)할 길, 즉 구원의 길을 스스로 막아버렸다. 이순예 박사에게 과학은 이렇게 구원을 포기한 인간에게 떨어진 하찮은 거스름돈 비슷한 것이다. 현대인은 모두 뉴턴의 업보를 마치 아담의 원죄처럼 짊어졌다.

 


칸트:주관화한 미의식에 보존된 구원의 기획

 

그렇다면 세계와 신에 대한 형이상학적-신학적 투시를 통해 세속적 대상과 초월적 존재가 합체할 가능성을 모두 포기한 현대인에게 구원이란 사업은 영원히 포기된 기획인가? 여기에서 이순예 박사는 칸트의 『판단력 비판』을 아주 빼어나게 해석하는데 그 칸트 해석이 너무나 빼어나다는 것이 오히려 이 책을 이해하는 결정적 난관으로 작용한다.


이순예 박사는 아주 무심하게, 그리고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공감가게, 박경리 선생의 『토지』를 얘기한다(149~167쪽). 그런데 “체계에서 ‘벗어나는’ 내면을 누릴 줄 아는 윤씨 부인이라는 인물에 따라 신분제라는 그 완강한 세계가 내적으로 균열을 일으키고 마침내 무너져버린”(167쪽) 것이 “순수한 미적 판단의 연역”(169쪽)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그런데 이 뜬금없이 돌연하게 등장한 칸트의 『판단력 비판』에 대한 이순예 박사의 해석, 아니 그 안에서 칸트가 “파헤친zerlegen” 현대적 미의식의 핵심에 대한 이순예 박사의 해설은 너무나 탁월해 방금 전까지 읽었던 『토지』에 대한 또다른 방향, 즉 사회-역사적 방향에서의 해석을 금방 잊었어도 조금도 아깝지 않을 정도이다. 우선은 미의식의 계기를 분석해낸 칸트의 작업을 너무나 적절하게 재구성해낸 이순예 박사의 파악능력 자체가 감탄스럽다. 그리고 객관세계나 초월존재에게서 더이상 기대할 수 없는 현대인의 업보를 그 안에 잠재된 주체적 미의식 안에서 찾는 단서를 아름다움[美]의 개념에 대한 칸트의 분석에서 발견해낸 철학적 통찰력 자체가 경이롭다. 


그러면서 칸트의 3대 비판서를 제대로 마스터한―내가 이 순간에 master라는 영어 단어를 ‘마스터’라고 읽는 외래어를 쓴 것을 용서하라. 이순예 박사가 칸트의 3대 비판서를 읽어낸 상태를 가장 잘 표현한 것이 ‘마스터’라는 단어이다. 즉 ‘이순예 박사는 칸트의 3대 비판서를 마스터했다!’라고 나는 표현하고 싶은 것이다.―사람만이 이순예 박사의 이런 탁월성을 알 수 있을 것 같아 안타깝다. 이런 해석경험을 온전하게 겪어낼 능력이 이 나라에 대중화되어 있다면 아마 대한민국의 정치 문제는 단번에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이순예 박사는 우리의 일상언어 안에 별다른 자극을 주지 않고 굴러다니는 두 종류의 문장을 제시한다(169~170쪽).

 

① ‘이 장미는 빨갛다.’

② ‘이 장미는 아름답다.’

 

①은 장미에 대한 감각지각을 기술한 문장이다. 그것은 이 세상에 사는 내가 경험하는 모든 장미에 해당되는 사실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장미라는 대상을 아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정보를 전달한다. 그러나 ②는 이 세상에 장미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데 그다지 필요한 것이 아닌 어떤 상태를, 즉 장미를 본 주관이 느낀 상태를 알려준다. ①의 장미는 “식물로서의 꽃”(170쪽)이다. 이에 반해 ②의 장미는 “미적 대상으로서의 꽃”(170쪽)이다. 장미는 자기가 존재하기 위해 ①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②는 없어도 된다. 그런데 ①의 장미를 본 어떤 사람, 인식 주관에게는 ①보다 ②가 더 가슴 벅찬 ‘가치’를 지닌다. 장미를 보면서 인간은 장미의 속성뿐만 아니라 장미에게는 없는 ‘장미의 의미’까지도 인식하려고 한다.(내가 이 장미를 아름답게 본다는데 누가 말리겠는가!)


우선 칸트를 따라, 특정 장미를 보고 내가 아름답다고 얘기하는 것은 전적으로 나의 취향(趣向, Geschmack, taste. 이상하게도 이순예 박사는 이 단어를 전혀 부적절하게 감식안(鑑識眼)이라고 번역한다)일 수 있다. 이순예 박사는 아름다움의 주관적 경험에 대한 이 단계의 논의를 생략했다. 대신―의도적으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아주 당차게 아름다움이라는 표현이 알게 모르게 인간들이 보편적으로 공감하면서 발화하는 어법이라는 점을 직접 끌어들인다.

 

“(이 빨간 장미를-인용자) 그저 바라보고 쾌감을 느꼈을 뿐인데도 아주 당당하게 ‘이 꽃은 아름답다’고 사람들이 말하는 사태란 대체 무어란 말인가? 꽃과 아름다움, 그리고 쾌감, 이 셋의 관계를 대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경험세계의 꽃에 귀속되는 논리적인 개념이 마음에서 일어나는 쾌감의 근거일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그만큼 이 쾌감에는 어떤 다른 근거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들이 그토록 자명하게 ‘아름답다’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170쪽)

 

사실 주관적인 취향 개념이 상호주관적인 공통감각 개념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는 과정에 대한 해명은 칸트 철학에서 가장 논증력이 취약한 부분이며, 이 부분에 이르면 대부분의 해설가들은 자기 나름의 구상을 끼워넣는다. 여기에서 이순예 박사는 “당당하게” 또는 “자명하게”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라는 일상적 관찰을 끼워넣는다. 그리고 『판단력 비판』에 대한 이순예 박사의 해석에서 내가 전에 본 적이 없는 가장 상큼한 통찰이 나온다.

 

“우리가 ‘이 대상 X는 아름답다.(Dieses X ist sch쉗.)’는 판정을 내릴 때 우리는 이 판단으로 경험세계에 인식을 보태는 것이 아니며 도덕적인 선(善)을 실천하는 것도 아니다. 앞에 있는 대상을 아름답다고 판정하는 감식판단은 이 두 영역(경험세계와 실천세계-인용자) 사이에 다리를 놓음으로써 전혀 다른 세계의 전망을 우리에게 열어줄 뿐인데, 이 의식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전망을 두고 이제껏 가상의 세계 또는 아름다움의 제국이라고 부르는 명칭들이 따라 나왔다. ‘제국’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라면 그 구성의 가능성이 독자적인 원칙에 입각해서 제시되는 세계여야 할 것이다.”(170~171쪽, 강조 인용자)

 

위의 인용문에서 내가 강조한 부분은 『판단력 비판』 원문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 즉 칸트가 쓰지 않은 표현들이다. 이순예 박사는 칸트가 미의식의 분석을 통해 보여주는 숭고함의 세계에 미리 이렇게 자신이 해석한 표현을 붙임으로써 “칸트가 공통감Gemeinsinn이라는 이념을 도입해 새로운 차원을 열어보려 했지만 새로 밝혀진 내용은 아무것도 없었다”(191쪽)고 단정했다.




 

칸트 비껴가기로 이른 차원:철학적 미학으로 형이상학적 기쁨 보존하기


자신의 칸트 해석을 내세우면서 칸트 자신의 진술을 슬쩍 비껴가는 것은 텍스트 독해의 모럴은 아니지만, 바로 그 덕분에 새로운 개념을 얻을 수 있다면 지적 세계의 발전상 허용되는 반칙이기도 한다. 한나 아렌트가 정치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다고 본 공통감의 개념적 가치를1) 인정하지 않는 이순예 박사는 대신 칸트가 보여준 “전혀 다른 세계의 전망”(191쪽)을 “미적 주체가 형성되는 과정”(207쪽)의 증거로 제출한다. 이 미적 주체는 “형이상학적 작용이 없는 미적 판단을 현상계에 산출”(223쪽)하는 “판단력을 독자적 구성 원칙”에 따라 구사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철학적 미학”을 쭈욱 뽑아올린다. 그리고 아주 역설적으로 이 철학적 미학 안에서 모든 예술 작품이 선사하는 가상은 “형이상학적 기쁨”(393쪽)을 준다는 아주 큰 이유로 시민적 개인이 거주하는 문명 안에 온전하게 그 존립을 보장받는다. 그리고 이것은 이순예 박사가 자기 책의 딸림 제목으로 붙인 물음에 대한 긍정적 응답이다. 그에 따르면,

 

“문명인은 비극의 줄거리가 작가가 꾸며낸 ‘허구’라는 사실을 안다. 그럼에도 기꺼이 그 허구에 몰두한다. 형이상학적 기쁨을 알기 때문이다. 서울의 명동 극장에서 『오이디푸스 왕』이 공연되면, 심지어 여러 번 보러가는 사람도 있다. 주인공을 연기하는 배우에 따라 달라지는 차이를 가려가면서 보기까지 한다. 형이상학적 기쁨인 탓에 경험적 만족은 물림을 모른다.”(393쪽)


구원이 없는 현대 세계에서 칸트의 『판단력 비판』은 잃어버린 구원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헤집어내기 위한 철학적 분투로 해석된다. 칸트와 아도르노는 여기에서 미의식을 통해 잃어버린 구원을 찾아나서는 동반자로 교묘하게 동료로 묶인다. 이순예 박사가 아도르노의 예술론에 큰 기대를 거는 이유는 온통 돈과 생존의 가치에 쏠린 현대 세계의 편향된 이성능력에 “다시 균형을 잡아줄 가능성”을 제시하기 때문이다(404쪽). 아도르노의 예술론을 통해 제시하려는 전망은 “인간존재의 이원성이 (사회―인용자)체계와 (생활―인용자)구조의 역동성을 보장하고 인간적 가능성을 실현시킨다는 것”인데, “현실진단에 따라 근대에 내장된 ‘비합리’를 저항의 거점으로 내세우는 논리”라고 규정된다(405쪽).



 


예술이 없던 시절과의 시대착오, 그리고 다시 ‘예술은 죽었다!’

 

이순예 박사의 예술론은 우리가 지금은 예술 작품이라고 아주 몰염치하게 상품으로 대상화시켜 부르는 그런 미적 존재물들이 그 앞에 선 사람들에게 순식간에 구원을 빙의시킬 수 있었던 시대의 미적 체험에 대한 추억을 강력하게 자극한다. 나는 그의 글을 아주 벅찬 기쁨으로 읽었다. 하지만 칸트의 『판단력 비판』에서 몰관심성(沒關心性, Desinteressiertheit)이 “전혀 다른 세계에 대한 전망”으로 튀면서 문득 제정신이 돌아왔다. 그래! 대중문화가 헤게모니를 행사하는 우리 시대에 진정한 ‘구원’으로 우리를 끄는 미적 존재물, 예술 활동의 생산물이 있을 수 있을까? 이순예 박사는 예술이 죽은 시대의 예술품에 대한 의식을 그런 의식이 전혀 불필요하고도 미적 체험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었던 시대에 투영했던 것은 아닐까? 그 시대에는 예술 작품을 예술이라고 의식할 필요도 없었다. 지금은 신전이나 사원의 예술품이라고 부르는 것이 당시로서는 전적으로 종교적 실천이었다. 예술가,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의식이 전혀 분화되어 있지 않았던 시절의 미적 존재물로 현대에 대항하는 탈현대의 구원을 설파할 수 있을까? 이런 아름다운 시대착오time mistake를 목도하면서 나는 다시 역정을 내는 호사를 부려보기로 한다. 예술은 죽었단 말이야!!!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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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예림

    홍윤기 선생님, 정말 서평을 잘 쓰셨더라구요.
    진심으로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2013.09.05 17:50 [ ADDR : EDIT/ DEL : REPLY ]

한길사 / 한길아트2013. 9. 4. 15:54


한국사 수능 필수과목 지정, 

뭐부터 준비해야 할까?



“야스쿠니 신사는 신사니까 젠틀맨 뭐 그런 거 아니에요?”


지난 봄, 뉴스에서 국사 인식에 대한 인터뷰 중 나온 어느 청소년의 대답입니다. 야스쿠니 신사는 물론 안중근 의사와 위안부조차 모르는 아이들을 다룬 이 뉴스가 나간 후, 청소년의 역사 의식을 성토하는 글들이 인터넷을 가득 메웠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탓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국사 과목을 선택 과목으로 만들고 수능에서 배제한 건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이니까요. 이런 위기의 한국사를 의식했는지 교육부는 전격적으로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했습니다.


오는 2017학년도, 그러니까 지금 중학교 3학년생부터 수능을 볼 때 한국사가 필수 과목이 됩니다. 이 때문에 한국사 시간을 대하는 학생들의 태도가 많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태까지 신경 쓰지 않고 있다가 한국사 수능필수 과목 대비를 위해 갑자기 좋은 한국사 책을 찾으려면 막막하죠. 한국사가 어렵고 외울 것투성이라는 편견을 가진 분들께 추천합니다. 우리나라 반만 년 역사를 22권으로 써내신 역사학자 이이화의 『이이화│한국사 이야기』(한길사. 2004)! 『이이화한국사 이야기』는 기획부터 완간까지 10년이 걸린 역작입니다. 







역사의 보편성과 과학성. 진실을 밝히겠다는 재야학자의 의지


전 문화재청장이자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라는 베스트셀러를 펴낸 유홍준 교수는 이이화 선생님의 책 『이이화한국사 이야기』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역사학자로서 이이화 선생의 삶에는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재야 학인의 의지가 서려 있다. 세상이 줄 수 있는 학문적 편의와 관의 혜택을 터럭만큼도 받은 일 없이 오로지 진실을 밝혀내겠다는 뜻으로 40여 년 역사 탐구에 몰두해온 것이 그의 삶이다. <한국사 이야기>는 이이화 선생의 이러한 삶과 의지로 맺어진 결실이며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려는 민(民)의 역량이 남김없이 보여주는 이 시대의 산물이다. 

유홍준 명지대 교수



유홍준 교수의 소개처럼 『이이화한국사 이야기』는 민초들 사이에서 고학을 하며 스스로 역사를 공부한 재야학자가 쓴 한국 역사로 무엇보다 재밌고 쉽습니다. 역사에 대한 거창한 이야기보다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요. 씨를 뿌리기 전에 전체적으로 밭을 한 번 갈아 줘야 가을에 더 많은 곡식을 거둘 수 있듯이 본격적인 한국사 공부에 앞서 한국사 전체를 한 번쯤 통독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사 공부에 앞서 기본기를 다지기에 『이이화한국사 이야기』는 가장 좋은 책입니다. 역사를 조금 아시는 분이라면 재야학자라는 부분에서 위서 논란에 휩싸인 『환단고기』 같은 근거 박약한 옛날 이야기를 하는 것 아닌가 걱정하시는 분도 계실 것 같은데요.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역사적 현실은 21세기로 가고 있는 이 세계화의 시대에도 민족주의가 우리에게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민족주의는 우리 민족만이 우수하고 우리만이 역사의 주역이 되어야 한다는 국수적 민족주의 또는 배타적 민족주의가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전지구적 환경과 연대하여 세계인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국제화시대에 보편타당한 역사관으로 우리 역사를 보아야 하고, 보편타당한 가치관으로 세계인과 더불어 새로운 인류문명을 발전시켜나가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 민족의 기원이 인류의 발생 시기와 함께 한반도에서 처음 시작되었다든지, 조선의 단군이 대제국을 건설하여 만주 일대를 모두 차지했다든지, 고구려가 중국 내지에서 건국하여 차츰 동쪽으로 진출하였다든지, 백제와 신라가 중국 내지에서 일어나 한반도로 내려왔다든지 하는 억설은 배제되어야 합니다. 실체가 확실하지 않고 근거가 없는데도 역사를 국수적인 분위기로 재단하는 것은 보편적 역사의 과학성에 어긋납니다.


『이이화한국사 이야기』제1권 '우리 민족은 어떻게 형성되었나' p.18



역사는 보편성과 과학성에 근거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이이화 선생님. 혹자는 잘못된 민족 감정을 자극하며 위서를 근거로 들어 한민족이 중국보다도 큰 대제국을 건설했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또 다른 혹자는 식민 사관에 찌들어 우리는 아무 것도 스스로 못 하고 일본이나 열강들의 말을 듣는 것이 나았다고 말하는데요. 이런 왜곡된 사관을 가진 학자의 책으로는 제대로 된 한국사를 배울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 역사의 보편성과 과학성에 방점을 찍은 이 책의 가치가 빛나게 되는 것이죠.





우리가 백의 민족인 까닭은? 과학적인 근거로 과장 없이 궁금증을 풀어준다!


이이화 선생님의 『한국사 이야기』는 보편성과 과학성에 근거하지만 시선은 항상 민초들에게 향해 있습니다. 보통 역사는 지배자나 승자의 기록이기 마련인데, 이이화 선생님의 『한국사 이야기』는 가능한 한 민초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표현하고 있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우리 민족이 백의 민족이라고 불리는 이유에 대한 해답입니다.






이 기록을 읽고 오해하면 안된다. 이는 어디까지나 귀족과 벼슬아치의 옷을 두고 하는 이야기이다. 평민이나 천민들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중략) 지배세력은 색감을 제도로 조정해 신분 차별의 방법으로 써먹었다. 또 물감을 들이려면 가난한 평민들은 짧은 일손과 경제적 부담을 갖게 된다. 이렇듯 흰옷은 태양을 숭배하는 사상에서 유래된 것도 아니고 순백의 청결을 좋아해서 입은 것도 아니었다. 다만 뒷날 질긴 관습과 민족의식이 결부되었을 뿐이다. 중국에서는 흰색을 죽은 색으로 본다. 우리나라에서도 예전에는 흰색 자기를 제기로 사용하였다. 근세조선의 후기에는 흰옷을 금하고 검정 옷을 장려하였던 탓으로 평민들은 마지못해 옥색으로 물들여 입었다. 일본은 식민지정책을 펴면서 양복과 물감옷을 권장하였다. 이에 반대하느라 우리 민족은 한사코 흰옷을 입으려고 하였다.


『이이화한국사 이야기』제2권 '고구려 백제 신라와 가야를 찾아서' p.150




이것이 우리가 백의 민족이라고 불린 이유입니다. 어떻게 보면 시시해 보이지만 가장 현실적이고 이치에 맞는 이유라고 할 수 있죠. 이처럼 이이화 선생님의 『한국사 이야기』는 우리의 역사라고 해서 미사여구로 치장하여 부풀리지 않고 근거에 바탕해 가감없는 우리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장 역사 앞에 솔직한 모습으로 말이죠.


어떤 분야를 처음 접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암기도 교재도 시험도 아닌 '그 분야를 어떤 관점에서 볼 것인가?'라고 봅니다. 한 번 관점을 잘못 잡으면 버릇이 들어 계속 어긋나기 때문이죠. 한국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사가 수능 필수과목이 되었다고 부랴부랴 아무 책이나 읽기보다는 이처럼 보편적이고 과학적인 근거에 바탕한 중립적인 관점이 초심자들에게는 더 중요할 수 있죠. 그래야 앞으로 더 깊은 공부를 하더라도 바른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속도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방향이 중요합니다. 그 한국사 공부의 방향을 바로잡을 수 있는 『이이화한국사 이야기』, 오늘 우리 민족의 형성부터 읽기 시작하시는 건 어떨까요?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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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예림

    잘 읽었습니다.
    제 페이스북에 공유했습니다^^

    2013.09.04 17:07 [ ADDR : EDIT/ DEL : REPLY ]
    • 페이스북에 공유까지!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겠네요^^
      감사합니다!

      2013.09.04 17:36 신고 [ ADDR : EDIT/ DEL ]
    • 예림

      당연한 거죠^^

      2013.09.04 17:58 [ ADDR : EDIT/ DEL ]

한길사 / 한길아트2013. 8. 30. 11:17

'인문고전 깊이 읽기' 14번째 책

『장자-너는 자연 그대로 아름답다』


 

편집자 JE가 한길사에 들어온 지 어언 1년하고도 4개월이 흘러갑니다. 입사 첫날, JE는 S차장님께 한 뭉치의 원고를 받았습니다. 원고 검토를 해서 잘된 점과 잘못된 점을 찾아보라는 것이었지요. 첫날이라 군기가 바짝 들어 있던 저는 원고를 파헤칠 기세로 달려들어 그날 오후 5시 헉헉거리며 녹초가 되어 원고검토서를 작성했습니다. 그때의 첫인상은 아 어렵다. 하지만 우화들이 너무 재미있다. 알고 싶다. 뭐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혹여 입사취소라도 될까 걱정되어 없는 흠을 만들어서라도 원고의 보완점을 만들어내야만 했지요. 그렇게 짜내어 보완점을 찾고 관련된 서적을 읽어가며 오매불망하던, 그래서 제 첫 책이 될 줄로만 알았던 그 원고는, 저자 양승권 선생님의 열정으로 완성도 높은 보완을 오랫동안 기다리게 됩니다. 


이리하여 오랜 산고 끝에 새롭게 태어난 이 책, 

인문고전 깊이읽기시리즈의 14번째 책, 『장자-너는 자연 그대로 아름답다입니다.

 

 

                                     따끈한 『장자를 놓고 설정샷.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다면 더 좋았겠지요.

 

 

때문에 저도 이 책에 대한 애착이 남다릅니다. 노장 사상이라는 것에 대해 좀 무기력하고 은둔하려고 한다는 선입견이 있었지만 그런 생각을 말끔히 씻어준 책이기도 합니다. 

 

 

장자에 대한 책은 결코 적지 않습니다. 또 생각보다 우리에게 매우 친숙하지요. 아마 원전이나 해설서를 읽어본 적이 없더라도 호접지몽’(胡蝶之夢)이나 ‘소요유’(逍遙遊) 우화를 들어보지 않은 분은 많지 않으실 겁니다. 지금도 웹툰에서, 드라마에서, 소설에서 영화에서 수도 없이 패러디되고, 누구나 알아듣는 대중적인 우화죠.

 

 

                    절 버리고 가버린(?) 새신랑 병헌오빠의 영화달콤한 인생에도  

                    ‘호접지몽’ 모티프가 병헌오빠의 내레이션으로 등장합니다. 단언컨대 『장자는 가장 완벽한 콘텐츠네요.

[출처-영화 '달콤한 인생']

 

 

“옛날에 장주(莊周)가 꿈속에서 나비가 된 적이 있었는데, 너풀너풀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어 스스로 즐거워했지만, 자기가 장주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런데 문득 잠을 깨 보니, 틀림없는 장주 자신이었다. 장주가 꿈에서 나비가 되어 있었던가? 나비가 꿈에서 장주가 되어 있었던가? 알 수가 없다. 장주와 나비는 반드시 구별이 있다. 이것을 물화(物化: 만물의 변화)라고 한다.” (「제물론ㆍ6」, 본문 132쪽)

 

 

이렇게 장자는 우리 모두가 아주 친근하게 접하는 사상가입니다. 특히 동화 같은 우화를 통해 하고자 하는 말을 전달하는 것은『장자라는 텍스트가 가진 큰 장점이자, 끊임없이 재생산될 수 있게 하는 현대적인 해석의 가능성이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책 전체를 읽기엔 너무 어려운 일이 아니겠어요? 그래서 저희 인문고전 깊이읽기 시리즈가 있는 거죠. 하하하~

 

 

한길사 편집부 서가에 꽂혀 있는 인문고전 깊이읽기 14형제. 

첫째 『맹자부터 막내 『장자까지 한눈에 보이네요. 형제는 계속 늘어납니다.^^;;;

 

 

얼핏 과격하고, 뜬구름처럼 느껴지고, 기존 질서를 부정하니 위험하게 느껴지던 장자의 사상은 뜻밖에도 그런 외적인 것들과 상관 없이 자기 자신의 존재를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습니다. 부정적인 현실, 비정한 세상을 인정하고, 그럼에도 내가 지금 그대로 완전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깨달아야, 그 위에서 진정한 긍정이 꽃핀다는 거지요. 또한 이 저것을 세속적으로 분별하려 하지 않고, 그 분별 때문에 고통받지 않고, 더 큰 관점에서 전체를 바라보아 마음에 평화를 얻을 수 있도록 해줍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편집하면서 이 부분을 읽고 표현할 능력은 없으나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장자가 살았던 전국시대(戰國時代) 중기는 전쟁이 끊이지 않던 시대였다고 해요. 비참하고 피폐한 현실 속에서 장자는 어떻게 하면 개인이 스스로를 위험으로부터 잘 지켜낼 수 있을지를 깊이 고민했고, 괴로운 현실 속에서 어떤 때는 과격하게 현실을 부정하고, 기존 질서를 전복시키길 원하면서도 평화와 행복을 추구하는 장자의 모습이 학업과 취업, 결혼, 육아 등으로 삶의 무게에 지친 우리 시대의 평범한 청년들과 닮지 않았나요? 남과의 비교, 조금이라도 높은 연봉, 사람답게 살기 위해 무한한 경쟁 속에 뛰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이 어쩌면 장자가 살던 전국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자연스러운 본성에 따라 보지 않고 상대방의 관점에 휘둘려 보거나, 자기 자신에게 충실해 자연스럽게 만족하는 것이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 사로잡혀 만족하는 사람은, 남의 만족에 만족할 뿐 자기 자신의 진정한 만족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남의 길을 따라갈 뿐 주체성을 가지고 자기 자신의 길을 가지 못하는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다.”(「변무ㆍ5」, 본문 59쪽)

 

  

제가 성형하지 않아도 눈꼽이 껴 있어도 예쁘다고 말해주는 남자가 절 진짜 사랑하는 남자이듯, 지금 그대로 불완전한 채로 충분하다고, 저 스스로를 사랑하고 아끼는 법을 배웁니다. 오늘의 나를 긍정하게 만드는 장자, 그리고 그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떠먹여주는 저자 양승권 선생의 해설. 『장자-너는 자연 그대로 아름답다를 편집자로서 감히 추천합니다. 이제 제가 편집하면서 보도자료에 써먹으려고 적어둔 메모로 마무리를 할까요.

 

 

 

장자는 현실을 억지로 긍정하는 대신, 냉혹하고 비정함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더 큰 자연의 관점에서 바라보기를,

아웅다웅하는 인간 세상을 뛰어넘는 더 넓은 시야 속에서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찾기를 우리에게 권한다.

 

 

by 편집자 JE 



ⓒ한길사

 

 

 


Posted by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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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예림

    잘 읽었습니다!

    2013.08.30 13:12 [ ADDR : EDIT/ DEL : REPLY ]
  2. 래소

    '중국역사를 보면 대개 안정기에는 유가 사상이 주로 유행하지만 과도기.혼란기.변혁기에는 거의 예외 없이 도가 계열이 유행을 했다.' 라고 책에 나와요. 2013년 지금 이 시대를 우리는 안정기라 부르지 않으니 도가계열이 우리에게 필요하겠어요....

    2013.08.30 15:13 [ ADDR : EDIT/ DEL : REPLY ]
  3. 예림

    오, 역시 멋지신 래소 님!
    고맙습니다!

    2013.08.30 16:00 [ ADDR : EDIT/ DEL : REPLY ]
  4. 안녕하세요!! 한길사인문고전깊이읽기중에서 비트겐슈타인도있나요??ㅠㅠ

    2014.01.12 23:11 [ ADDR : EDIT/ DEL : REPLY ]

한길사 / 한길아트2013. 8. 16. 14:18


파노프스키의 논문 10편으로 알아보는

'예술작품 속 형식에 어떤 의미가 숨겨져 있나?'



EBS <다큐 프라임>에서 예전에 흥미로운 다큐멘터리가 방영됐었습니다. 제목은 '동과 서'. 동서양의 사고방식 차이를 다룬 것으로 우리 일상 속의 행동 하나 하나를 사례로 들어 동양인과 서양인의 차이점을 설명했습니다. 전혀 의식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큰 차이점이 있다니 싶어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특히 기억에 남았던 것은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었습니다. 


동양에서는 그림 구도를 넓게 잡아 화가가 마치 하늘에서 보는 것 같은 그림을 그리는 반면, 서양에서는 화가가 장면을 바로 앞에서 보고 있는 것 같은 그림을 그린다고 합니다. 이는 대상 중심으로 생각하는 동양과 관찰자 중심으로 생각하는 서양의 차이점 때문입니다. 우리가 간과했던 예술작품에 숨겨져 있는 이런 형식적인 부분의 의미를 찾아보는 것은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또 다른 포인트가 아닐까 합니다. 이런 지적 유희를 돕기 위해 20세기를 대표하는 미술사학자 에르빈 파노프스키의 『시각예술의 의미』(한길사│2013)를 소개합니다. 



『20세기 중국미술사』(한길사2013) 726p,『명화로 읽는 성서』(한길아트2000) 78p




주 논문과 본론을 포함해 이 책에 실린 총 10편의 논문 중에는 개론적인 미술이론의 성격을 띄는 것도 있고 아주 특정한 관심영역을 다룬 것도 있습니다. 각 논문에 얹힌 시간의 역사 또한 고대에서 중세와 르네상스를 거쳐 1950년대 미국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물론  각 논문이 발표된 시기 또한 다릅니다. 다시 말해 각 논문은 작성 시점의 시대 상황, 파노프스키가 행한 미술사 연구의 이론적인 궤적과 문맥에 따라 읽는 것이 좋습니다.






논문들 사이에서 미술사적인 중요성의 경중을 가린다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모든 글에는 20세기 최고의 미술사학자로 불리는 파노프스키의 미술과 미술사에 대한 인본주의적 관점이 진중하게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파노프스키가 인간 세계의 구조를 밝히는 데 도입한 의미와 구조의 방법은 더욱 그 연구의 이론적 의의와 가치를 발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대표적인 논문

「도상학과 도상해석학」(1955)

이 논문은 파노프스키의 ‘방법’에 대한 가장 광범위한 문제제기를 일으킨 글입니다다.  ‘르네상스 미술에 관한 서문’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글에서 파노프스키의 ‘방법’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에 맞게 구상된 것입니다. 즉 ‘인간’에 대한 인본주의적 관점과, 그러한 인간 개념이 생산한 미술에 기반을 둡니다. 따라서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이 미술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규범적인 중심성에 의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양식사의 반영인 인체비례론사」(1921)

파노프스키가 객관적 비례와 기술적 비례를 구별하면서 인간 측정의 이론을 추구하는 데에는 비례의 문제가 시각의 변화와 연관된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자리합니다. 우리 몸의 움직임은 움직이는 부분과 다른 부분에 영향을 끼칩니다. 그런데 이집트인들은 이를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예술 의욕은 변화 가능한 것이 아닌 지속적인 것을 향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집트 미술에서 조각상은 인간 존재의 기능이 아닌 형식을 재생산했습니다. 그리고 미술가는 그러한 형식을 재구성할 수 있게 측정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예술 의욕은 객관적 비례를 자유롭게 변화하게 하고, 미술가와 감상자의 시각에 조각상이 더욱 조화롭게 재생산되도록 해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집트 미술과 달리 그리스 미술에 이르러서는 기술적 비례와 객관적 비례의 상응이 이루어지지 않게 된 것입니다.


「조르조 바사리의 『리브로』 첫 페이지」(1930)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입장에서 판단한 고딕 양식 연구’란 부제가 붙은 이 논문은  파노프스키가 미술사학이라는 학제와 르네상스 미술 용어들 사이의 결정적인 관계성을 세운 글로서 의의가 큽니다.「바사리」 텍스트는 상대적으로 파노프스키 초기의 연구물 가운데 하나로, 자신의 미술사학의 미래 발전을 위한 명제적 방향을 함의합니다. 즉 파노프스키의 미술사학은 방법과 규준에 대한 질문에 힘 있게 답하기 위해 재현의 차원과 심미적 차원에서의 해결을 지향했습니다. 두 가지 모두 스스로의 대상들을 위한 자기 명증을 상상합니다. 이는 해석을 위한 유효함 또는 해석에 대한 요구라는 제1의 문제를 숨깁니다. 그렇게 파노프스키는 우리에게 ‘의미’의 역사 전체에 어떻게 하나의 대상이 삽입되는지, 의미의 역사를 어떻게 하나의 대상을 통해 바라보아야 하는지 말해줍니다.



에르빈 파노프스키(1892~1968)는 독일 하노버에서 태어나 뮌헨 대학 ·베를린 대학 ·프라이부르크 대학 등에서 미술사를 배운 20세기 최고의 미술사학자입니다. 처음에는 양식(樣式) 연구에서 출발하였으나, 후에는 도상학에 대하여 도상해석학을 제창하고 그 방법론을 확립하였으며, 고대에서 근세에 걸치는 다양한 저작과 논문을 남긴 20세기 최고의 미술사학자입니다. 그림을 보고 느끼는대로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 파노프스키의 뛰어난 논문을 모아놓은 『시각예술의 의미』를 읽고 가끔은 그림을 '알고' 감상하는 것은 어떨까요? 



 ⓒ한길사




Posted by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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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예림

    잘 읽었습니다^^

    2013.08.20 17:52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