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다반사2015. 5. 22. 15:21






"그가 간 지 6년이나 흘렀다.

 그를 쓰면서 비로소

 그를 잊을 수 있었다."

 -작가 김수경, 6주기에 즈음하여 노무현을 그리며




약간씩 가팔라지는 언덕길을 조그만 봇짐 하나 지고 

계속 걸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노무현이 죽고 난 다음부터 줄곧 그랬다.

안타까움, 어떤 미안함, 아쉬움 같은 것들이 서로 섞여 묘한 느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지난해 말 소설 『내 친구 노무현』을 탈고하고 난 이후에는

그 느리고 먼 길의 어느 도중에 잠시 짐을 내려놓고 앉아 쉬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를 쓰면서 그를 잊어버렸던 거다.

지워갔던 거다.

휴식하자던 것이 자꾸 길어졌다.

이 가벼움,

이 편안함에 좀더 눌러 있어야지.

그리고 나는 이제 비로소

그를 내 문학 속의 한 인물로

연민도 사랑도 없는 차가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화가 지웅이 내 책을 읽으면서 계속 무언가 모를 미안함에 사로잡혔다고 그랬지.

'나의 봇짐이 네 어깨 위로 옮겨 갔나 봐'라고

나는 중얼거렸다.


『이것은 소설이다』에서는 좀더 비정해져야지.

그는 나의 사적인 친구도 대통령도 아니고 내 소설이라는 세계 속에 살고 있는 인물이다.

하나의 캐릭터다.

과연 내가 이 작업을 잘 마칠 수 있을까.


그가 간 지 벌써 6년이나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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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다반사2015. 5. 21. 14:45

[작가 김수경이 노무현을 그리다-세 번째]

세간의 진실, 한 인간의 진실




추억. souvenir. 추억이란 아래서(sous) 오는(venir) 것이다. 일부러 의식적으로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늘 흐르는 것…


『내 친구 노무현』의 작가 김수경에게 노무현은 일부러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늘 흐르는 어떤 알 수 없는 것일 게다.


5월 23일. 한 해 안에 끼인 삼백여의 날, 그 여러 날 중에 박힌 아픈 한 날, 심하게 부조리한 날. 생과 사 사이의 협곡을 건넌 이는 고독하나 초연한 꽃이다.


나는 한 생애의 결말을 해석하고 발화하기에는 너무나 어리고, 어리석어, 그저 그 경계 암벽 바위에 홀로 서 있었던 한 존재의 절대적 외로움과 비밀을 눈을 질끈 감고 그려본다. 두렵다. 산다는 것이. 절정으로 산다는 것이. 온몸으로 낙담한다는 것이. 앞에 미래라고 놓인 것이 공허라면, 그 공허 속에 떨어진다는 것이 한 나약한 인간으로서, 얼마나 처절하게 두려운 육체적 경험인가 하고.


기억이 난다. 작년 가을 어느 날, 퇴근 무렵이었던가? 저녁 6시 좀 못 미쳐. 『내 친구 노무현』의 첫 장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원고가 들어오던 때, 그런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김수경 선생님은 작은 포인트의 촘촘한 행간을 좋아한다고 하였다. 그래야 글이 잘 써진다고 하였다. A4를 가득 채운 그 어둔 장막 속 별 같은 비밀. 심장이 조금 짓눌려 왔다. 기억하기 고통스러운 바로 그날 안으로 곧장 진입해 들어간 작가의 본능적인 결단과 용기에 잠시 아찔했던 탓이다.


  진실과 사실 사이에서

  상상과 실재 사이에서

  노출과 은폐 사이에서

  작가 김수경이 소설적 진실로 써내려간

  마이 라이프 트릴로지.





그 두 번째 『이것은 소설이다』 원고가 많이 진척되어가고 있다. 1권 작업 때도 집필 독려를 위해 2주가 멀다 하고 사장님과 함께 선생님 댁에 갔었다. 글쓰기는 고독과 고통의 산물이지만, 선생님은 여느 전업 작가들이 보이는 예민함과 신경질 따위를 부리지 않는다. 글쓰기에 신비한 낭만 따위를 부여하지 않는다. 빨리 쓰면서도, 몰입하면서도, 호흡하고 쉬어갈 줄 안다. 환담할 줄 안다. 나는 김수경 선생님이 이따금 지어 보이는 파란 사과 같은 미소를 좋아한다. 애플.


노무현 대통령 서거 6주기가 다가오면서 우리는 짐짓 심각해지고, 우리 작업은 더욱 속도를 내야 할 필요를 느낀다. 현실정치에서는 늘 사건들이 유비적으로 터진다. 1권 『내 친구 노무현』에서 암묵적으로 환기되었던 인물들이 현실정치에서 다시 주요하게 활약한다. 유비적 테마들이 다시 논점이 된다. 정치, 돈. 우정 혹은 적. 역사는 지나 흘러간 줄 알았던 것들의 되풀이, 아니 회귀라 했던가. 순환일지 모른다. 악순환. 선순환 아닌.


노무현에 대해 말하면, “노빠” 혹은 “친노”라는 프레임으로 갇혀버리는 것이 싫다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김수경 선생님은 이날도 말했다. “그저 한 개인에 대해 추억하고 말할 수는 없을까?” “노무현이 그저 한 고유명사, 아니 어떤 추상성도 띠지 않은 구체적 실존 명사일 수는 없을까? 내게는 그런 존재인데…” 하고 우리에게 되묻기도 했다. “노무현이 무조건 옳다고 하지는 않는 한 개인의 기억인데, 그리고 그 기억 속에 한 집단의 기억이 있는 거고”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내 친구 노무현』을 내고 나서 주변에서 매우 다양한 독후감을 들었다고도 했다. 노무현의 지지자들은 “너무 뜨뜻미지근하지 않나?” “그다지 강렬하지 않다”고 했단다. 또 그다지 노무현에 대해 열렬하지 않은 자들은 혹은 싫어하는 자들은 “노무현이 그렇게 감성적인 인간이었어?”라고 했단다. 그러면 “왜 나는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노무현을 그리지 못했을까?” 하고 자문하기도 했다고 했다. “내가 그만큼 강렬한 ‘포트레이트’를 만들지 못했나 보지… 사람들이 내 책이 어렵대…”


『이것은 소설이다』는 언론들이 작성한 수많은 기사들과 온갖 기록 문서들, 해괴한 담론들 등 소위 수많은 ‘팩트’들을 ‘게시’하고 ‘계시’하는 프로젝트다. 이런 팩트들이 현실사회에서 ‘사실’이라고 주장되어왔다. 그러나 그 ‘사실’이, 세간의 진실이 진짜 진실일까? 한 인간의 진실일까? 매우 가파른 내용이 될 것이다. 이 두 상호관계를 철저히 파고드는 힘든 작업이 될 것이다.





“1권이 퍼스널한 기억이라면, 2권은 대통령이 된 노무현의 이야기이므로 퍼스널한 기억이 아니야.” 작가 김수경은 1권에서 “미미한 우정의 광채만 남기고” 대통령이 된 친구 노무현과 이별했다. 이것이 1권의 마지막 장이었다. 이제 2권이 시작되려 한다. 그 첫 문장은 무엇일까?


선생님은 “소위 ‘팩트’들과 나 사이에 일정한 거리가 있고, 그래서 그 팩트들 사이의 연결고리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 연결고리가 작가의 센텐스(sentence)가 될 것이다. 센텐스란 단순히 단어들의 결합인 문장이 아니다. 말 속의 심지다. 아픈 자극이다. 통렬함이다. 인간 본성의 밑바닥까지 들여다보는 주시와 통찰의 언어, 심중의 비밀.


승냥이 언론들이 쏟아낸 수많은 언어들, 그 허위의 더미들을 있는 날것 그대로 환한 빛 아래 눈부시게 ‘게시’하면서, 한 먹이를 서서히 포위해가는 기이한 “사냥감 몰이” 시스템을 암유적으로 ‘계시’해야 할 것이다. 환생경제 따위의 연극 대사를 통해 한 인간을 조롱하고 모욕한 날것의 핏빛 붉은 혀의 언어들을 그대로 선보여야 할 것이다. 불편함, 혐오, 환멸, 울컥 치솟는 분노, 고통 따위를 매우 잘 조절하면서 인간 집단의 혹은 한 사회의 가면을 벗겨내야 할 것이다. 신랄하고, 때로는 폭력적이다 못해 치졸하여 원초적인 날 언어들이 작은 종이를 가득 채우면서도 그러나 이름 모를 하얀 새벽빛이 그 가운데서 솟아 올라와야 할 것이다. 작은 피아노 음악이 그 날것 언어 더미들 사이, 사이에서 들릴까? 우아한 모데라토 칸타빌레로? 뒤라스처럼? 아니, 즐기듯 관능적인 한 여자 현자(賢者)처럼?


“저는 음악과 같이 사는 사람이에요.

저는 전화기로나 컴퓨터로나

언제나 음악과 함께 있는 사람이에요.

물론 글 쓸 때도.”


피로 얼룩진 정치적 관계, 서로의 이익을 탐하는 무대를 보여주기 위해 한 여인이 어둠 속에서 LP판을 찾는다. 뜨거운 차를 따른다. 톤을 맞추자. 조율하자. 팩트와 픽션의 변증이자 역전을 이루어줄 그 톤을. 음계를.


『이것은 소설이다』의 주어는 “그녀 김수경”이 아니라 “나”라고 한다. 3인칭이 아니라 1인칭이라고 한다. Moi(나)만은 아닌 Le Moi(The 나)...







-류재화(한길사 기획위원 |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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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다반사2015. 5. 20. 14:54

[작가 김수경이 노무현을 그리다-두 번째]

당대성과 진실성 사이에서 균형 잡기




『내 친구 노무현』의 작가 김수경의 두 번째 작품 『이것은 소설이다』가 곧 출간될 예정이다. 두 번째 작품을 상재함으로써 총 3부작으로 구성된 그녀의 문학적 여정이 7부 능선을 넘었다. 『이것은 소설이다』의 시간적 배경은 참여정부 5년의 기간과 겹친다. 그러나 『내 친구 노무현』에서 충분히 확인되었듯 근래 김수경의 글쓰기의 핵심은 정치실록이나 정치비사 따위에 있지 않다.


김수경은 말한다.


“『내 친구 노무현』을 펴내고 나서 노무현을 많이 잊었어요. 좀 자유로워졌어요.”


이 말을 김수경이 노무현과 결별했다거나 망각했다는 뜻으로 읽었다면, 그것은 심각한 난독증이다. 위 고백 속에는 ‘노무현이란 텍스트’의 강력한 자장 속에서 파란의 한 시절을 보냈던 작가의 자기 관조와 자기 해방의 페이소스가 들어 있다. 문학은 때론 해원(解怨) 의식과 씻김굿을 위한 아주 효율적인 수단이다. 그것은 오직 문학적 글쓰기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것은 소설이다』 또한 『내 친구 노무현』과 같은 글쓰기 방식의 연장선상에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수경은 문학을 지난날의 정치·사회적 사건을 공론화하거나 재소환하는 수단으로 삼지 않는다. 그녀는 오히려 자신이 놓였던 정치·사회적 파장 안에서 탈주하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낸다. ‘횡령’ ‘배임’ ‘탈세’ 따위의 지리멸렬하고 세속적인 정치적 외연을 걷어내고, 선정적 저널리즘이 덧씌워놓은 그물을 찢고 솟아오르고자 한다. 김수경은 그 무엇도 아닌 온전한 작가로서의 자리로 귀환하고자 한다.


귀환의 필요조건은 말할 것도 없이 사건의 미적 재구성이다. 소설을 쓰기 위해 김수경이 확보하고 있는 수많은 자료들은 작가로서의 안목과 품격에 의해 새롭게 배열되고, 통제되고, 해석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김수경의 고민이 있을 것이다.





사실 노무현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여럿일 것이다. 그러나 알고 있는 노무현에 대해 글로(특히 문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김수경은 작가로서의 위치, 정치화된 사건에 연루된 당사자로서의 위치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이 이중적 자리는 김수경에겐 커다란 문학적 자산인 동시에 딜레마다. 당대의 사건 관련 인물들이 아직 살아 있는 상태에서 어디까지 발설하고 은폐할 것인지, 작가가 구사할 고도의 문학적 장치나 전략과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김수경은 ‘실천가’나 ‘운동가’도 아니고, 협소한 진영논리에 갇힌 ‘주의자’도 아니다. 그녀가 이러한 딜레마를 돌파하는 방법은 오직 작가, 소설가로서의 자기 동일성을 굳건히 확인하는 일일 것이다. 거짓과 허위, 왜곡에 맞서 진실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문학만 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 문학의 위의(威儀)란 다른 데 있지 않을 것이다.


노무현은 아직 텅 빈 기표다. 작금의 정치상황이 지속되는 한, 노무현에 대한 평가는(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요원하기만 하다. 오백여 년 전 이순신이 당대의 작가 김훈에 의해 ‘문학적으로’ 호출되었듯, 아마도 먼 훗날 이 땅의 작가들이 노무현을 같은 방식으로 호명하는 날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지금, 여기’에서 수행되는 작가 김수경의 글쓰기는 훗날의 노무현 평가를 위해 당대에 이룩한 초석이 될 가능성이 높다.


김수경의 글쓰기는 지난날의 자아와 대면하는 문학적 고백이라는 점에서 일단 탈정치적이다. 그러나 작가와 노무현의 관계를 염두에 둘 때, 어떤 형식으로든 노무현의 그림자가 음화처럼 드리워질 것이라는 점에서 은밀히 스며든 정치성과 정치적 독법은 불가피해 보인다.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문학이 정치를 사유하는 건, 오래된 관행이자 미덕이다.


『이것은 소설이다』는 제목이 암시하듯이 작가 김수경의 고투하는 자아와 실존의 문학적 투영인 동시에 은밀한 정치성의 향연일 수 있겠다. 너무도 탈정치적이어서 어쩌면 너무도 정치적인 소설. 당대성과 진실성 사이에서 균형 잡기.


김수경은 원고 집필 시간에는 늘 음악과 함께한다고 한다. 몰입, 리듬, 영감, 환상과 함께 문학이 태어나는 시간이다. 며칠 전 작가의 자택을 잠시 방문했을 때 정갈하게 내놓은 수제 햄버거처럼 한 층 한 층 소설의 성채를 건축 중이던 작가 김수경. 햄버거 안의 고기와 야채 맛이 제각각이듯 문학과 정치, 문학과 권력 등 상호 이질적인 성분들에 대한 독자의 사유를 유발하는 그녀의 문장들은 작가 김수경의 소설이 제공하는 또 다른 맛일 것이다. 이것이 독자를 매혹한다.






-독자 김경엽(백석문화대학교 중국어학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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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다반사2015. 5. 19. 15:38

[작가 김수경이 노무현을 그리다-첫 번째]

"그를 처음으로 잊을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시간 속을 걸어간다는 것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몸짓으로

역사 속에 흔적을 남기는 것.

-폴 발레리

 


작가 김수경이 '친구 노무현'과 함께 걸었던 시간을 되짚으며 힘들게 써낸 글은, 한 권의 보랏빛 책으로 묶여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 뒤 벌써 여섯 달이 흘렀습니다.

지난 수요일 저녁, 오랜만에 김수경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내 친구 노무현』에 담은 그 기억들을 함께 돌아보고, 뒤이을 『이것은 소설이다』 집필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얘기를 주고받았습니다.

그날의 만남 스케치, 『내 친구 노무현』과 다가올 『이것은 소설이다』 리뷰, 마지막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를 맞아 김수경 선생님께서 직접 들려주시는 담담한 술회까지. 이 모든 것을 총 4회에 걸쳐 바로 이곳, 한길사 블로그에 게재합니다.

다시 돌아온 봄날은 여전히 화창하네요. 먼저 떠난 고인이 그립습니다.

 



 

한길사(이하 '한'): 다음 주면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입니다, 선생님.

 

김수경 선생님(이하 '김')사실 요즘 그를 잊고 있었습니다. 『내 친구 노무현』을 쓰고 나서 노무현을 비로소 잊어버릴 수 있었어요. 노무현이 죽은 뒤 (그를 이렇게 잊어버릴 수 있었던 것은) 처음이에요. 언어의 홍수에 실려 떠내려간 것 같기도 하고. 드디어 노무현을 졸업하는 걸까요. 치유가 되어가나 봐요.

올해는 이렇게 그냥 지나가버리네요. 1주기 땐 봉하에 갔었고… 예전에는 신해철이 콘서트 하자탁현민이 추모 행사 하자 연락이 왔었는데 이번엔 별다른 얘기가 없습니다이렇게 날 찾아온 한길사 빼고는.

 

: 『내 친구 노무현』 출간 이후 기억에 남는 독자 소감이 있나요?

 

: 알고 지내는 한 화가가 그러더군요. 책을 읽다 보니 "(노무현은 죽었는데) 내가 살고 있는 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요. 정말 고마운 소감이었습니다.

 

: 『내 친구 노무현』의 뒤를 잇는 『이것은 소설이다』를 조금 미리 독자분들께 소개해주세요.

 

: 『내 친구 노무현』은 제가 제 삶에서 만난 강렬한 인간, 노무현에 대한 이야기였지요. 1987년 부산 거리에서 그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그가 대통령이 된 2002년까지. 『이것은 소설이다』는 『내 친구 노무현』이 끝나는 지점, 즉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는 날 시작해서 저에 대해 세무조사가 진행되는 데까지를 그립니다. 그 시대를, 그 기간의 제 삶을 노무현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해석해보려는 것입니다.





김: 노무현이 대통령이 된 뒤 그의 임기 동안에는 그와 두세 번밖에 연락을 안 했습니다. 언론을 통해서만 커뮤니케이션이 있었던 셈입니다. 얼마나 그 속에 '날조'가 많던지요! 내가 아는 그 사람과 사회적으로 프레임 씌워진 노무현 사이에는 참 간극이 컸습니다. 사회적 프레임으로 보는 노무현보다는 제 소설이 훨씬 진실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진심이 가득 담기기도 했고요. '팩트'(fact), '진실'을 표방하며 쓰여진 것들이 실제로는 얼마나 '소설'인지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가파른 내용의 책이지요. 검사실을 드나들며 세무조사 받을 때 이야기니까. 그런 와중에도 '그 속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게 할 수 있을까'가 제 고민입니다. 쓰는 게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기사 인용이 많아 딱딱한데, 그 내용들을 부드럽게 이을 연결고리를 찾고 톤을 맞추기가 힘듭니다. 잡지 기사를 문학 텍스트로 승격시키는 것도 어렵고요. 어떨 때는 세 시간 내리 앉아 있어도 한 문장밖에 쓰지 못합니다.

 

: 새로울 것도 없습니다만 최근 정치가 참 시끄럽습니다. 선생님께선 '정치' 문제로 삶에 큰 고통도 겪으셨지요. 『이것은 소설이다』가 바로 그 이야기고요. 요즘의 정치를 보면 어떤 단상이 드세요?

 

: 제가 변했다는 것을 느껴요. 예전엔 분노도 크고 그랬는데 이젠 많이 없어졌어요. 다 지나가버린다는 것을 알고, 그러니 용서 못할 것도 없고... 이젠 그냥 다 제각각인 인간유형으로 느껴집니다.

 

: 노무현은 선생님께서 살면서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진실했던 사람으로 손꼽힌다고 하셨지요.

 

: 노무현은 변호인인데도 사기를 많이 당했더라고요. (역설적으로) 그래서 믿음이 갔어요. 제가 들은 노무현의 말에는 한마디도 거짓이 없었다고 생각해요. 정말 담백하고 솔직한 사람이었어요. 인생에 그런 사람을 열 명도 보지 못했습니다.







-편집부 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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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다반사2014. 12. 4. 11:18

작가 김수경+기자 주진우,『내 친구 노무현』을 말하다

 

 

2014년 11월 26일. 홍대 가톨릭청년회관 니콜라오홀.

 

작가 김수경,

기자 주진우,

사진작가 김중만,

충남지사 안희정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가,

새로 나온 책

『내 친구 노무현』이 궁금한

독자 200여 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주진우: 김수경 선생님을 소개하겠다. 부산에서 태어났고 영문학을 공부했다. 미당 서정주에게 추천받아 시인이 되었다. 도서출판 열음사 대표로 있었다. 시와 드라마·영화·무용 대본을 많이 쓰셨다. 김민기의 학전소극장을 만들어주신 분이기도 하다.

『내 친구 노무현』 왜 쓰셨나.

김수경: 내 이름 앞에 붙는 '노무현의 정치적 후원자'라는 딱지를 늘 떼고 싶었다. 처음부터 그런 생각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는데, 출간 후에 사람들에게 질문을 받으면서 생각해보니 그런 이유가 컸던 것 같다. 요즘 신문을 보면 '후원자'라는 말이 거의 다 사라지고, '노무현의 친구'라고 하더라.

 

  

 

주진우: 두 분은 어떻게 친해지셨나.

김중만: 1990년대 초에 15만 부가 팔린 『자유종』이라는 소설이 있었다. 마약쟁이들이 등장하고 마약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작가가 누구길래 이렇게 생생하게 마약 이야기를 쓰나 싶었다. 그러던 중 화가 김점선의 소개로 김수경 작가를 만났고, 이름이 낯익어서 혹시 『자유종』을 쓰신 그분이냐고 물으니 맞았다. 이후 셋이 친하게 지냈다.

 

내가 살면서 구축해온 나만의 철학이 있다. 이 자리에서 꼭 한번 얘기해드리고 싶다. 첫째, 정치는 사람의 몸과 몸을 연결하는 다리다. 둘째, 경제는 사람의 몸과 마음을 연결하는 것이다. 사람이 만든 상품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면 된다. 그게 경제의 전부다. 셋째, 문화는 사람의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다리다. 넷째, 예술은 사람의 영혼과 영혼을 이어주는 다리다. 여기에 문화와 예술의 차이가 있다. 마지막으로 도전, 꿈은 사람의 미래를 이어주는 다리다.

 

 

 

 

 

안희정: 『내 친구 노무현』을 비행기 안에서 다 읽었다. 군데군데 내 이름이 나오니까 정말 잘 읽히더라. 여러분도 책을 읽는데 여러분의 이름이 나온다고 생각해보시라! 마치 팥빵에 든 팥을 씹는 기분이었다. 『내 친구 노무현』을 읽고 바로 핸드폰에 메모해놓은 것이 있다.

 

  첫 번째. "노무현과 나는 어떤 관계일까. 후원자이기보다는 친구이고 애인이어야 한다. 그래야 나의 이 모든 고통이 설명 가능한 것이 된다." 김수경 선생의 그 독백은 정말로 가슴저리게 한다.

  두 번째. 박제된 역사로, 빛 바랜 정치적 화석이 되기 전에 인간 노무현을 문학이라고 하는 특별한 보존장치로 다시 한 번 기록하고 싶은 김수경. 정치와 가치로 표본실에 박제되기 전에 인간 그 자체로 삶 그 자체로 그를 다시 한 번 기록하고 싶어하는 그녀의 모든 노력이 나의 독서를 통해서 내게 전달되었다.

  세 번째. 나는 그녀를 '산타 할머니'라고 불렀었다. 그녀를 나의 친구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나이 차이도 있고, 대장의 친구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는 언제나 건널 수 없는 강 앞에서 멈춰서곤 했다. 그녀는 언제나 그녀가 돌아갈 강남의 요새와 문학이라는 전쟁터의 죽음조차 관조할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할 사람이기 때문에 그랬다. 그녀는 종종 말하곤 했지. 어릴 적 자기의 인생은 사랑과 문학이었다고. 같이 싸우다 죽자고 요구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존재가 바로 그녀였다. 우리는 관중석에 앉아 응원하는 그녀에게 승자로서 아니면 패자의 주검으로서만 겨우 연민과 사랑의 키스를 청할 존재일 뿐 친구가 된다는 건 애초에 난 기대하지 못했었지.

  노무현의 친구, 김수경. 김수경이라는 사람, 한 여성의 삶을 읽었다.

 

 

 

 

 

주진우: 한 독자분께서 『내 친구 노무현』 리뷰를 적어 보내주셨다. 앞으로 모셔서 함께 들어보자.

김경엽:

  노무현은 몰락한 것이 아니라 몰락을 선택했다. 몰락은 패배이지만, 몰락의 선택은 패배가 아니다. 그는 지면서 이겼다. 본래 문학은 '파국'이란 효모에서 발효한다. 한 문학비평가의 말을 빌리자면 "문학은 몰락 이후의 첫 번째 표정이다." 세계에 맞서 기꺼이 몰락하기를 선택하는 인물 없이는 '소설적인 것'이 발생할 수 없다. 김수경의 소설이 의미를 갖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김수경은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모든 진실한 것들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밟고서만 온다"라고 말한다. 이런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김수경과 그의 친구 노무현은 긴 몰락을 시간을 함께 견뎌나갔다. 그 시간은 거대 정치와 역사, 공적 담론이 누락했던 사소하고 하찮은 것들, 부스러기들을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수습하는 인고의 시간이었다.

  『내 친구 노무현』은 그 인고의 시간에 대한 문학적 기록이다. 그리고 김수경은 노무현을 애도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애도했다. 진정한 애도는 진정한 치유의 시작일 것이다. 『내 친구 노무현』은 그녀의 친구 노무현에게 헌정하는 최고의 애도사다.

 

 

 

주진우: 『내 친구 노무현』에 뒤이어 나올 책이 두 권 더 있다. 『이것은 소설이다』 『62세의 이혼』이 그것이다. 어떤 책들인가.

김수경: 『내 친구 노무현』은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기 전에 그를 사적으로 알았던 시간에 대한 기억을 몽타주로 쓴 것이다. 『이것은 소설이다』는 노무현을 전혀 만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그가 내 인생에 참 많은 영향을 미쳤던 시절에 대해 썼다. 책은 검사와의 대화로 시작한다. 인터넷을 뒤지며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정보를 재가공하고 인용한 것을 보고 썼다. 마지막은 『62세의 이혼』이다. 시간적으로 볼 때 『내 친구 노무현』이 1990년대 이야기라면 『이것은 소설이다』은 2003년부터 시작되고, 62세의 이혼』은 이혼이라는 사건이 시작된 2009년부터 현재에 이르는 시간이다. 처음부터 계획한 것은 아니었지만, 인생이 지나갔던 시간을 다시 훑어보게 되었다.

원래 나는 감성적이고 굉장히 터프한 문장을 좋아하는데, 『내 친구 노무현』에서는 가능한 한 절제했다. 노무현이라는 원자료의 역사적·정치적 표상이 너무 크기 때문에, 정말 많이 절제하면서 그를 아름답게 문학 속에 남겨두려 했다. 아름다운 남자로.

주진우: 충분히 아름다웠다.

 

 

 

 

 

 

 

 

 

 

Posted by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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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다반사2014. 11. 6. 17:31

작가 김수경의 친구들과 독자들이 함께한

<<내 친구 노무현>> 시독회

-2014년 11월 4일 <<내 친구 노무현>>이 세상 밖에 나오다!

 

 

 

비밀리에, 조심스레 준비해온 <<내 친구 노무현>>이 11월 4일(그저께!) 드디어 세상 밖에 나왔습니다. 갓 입고된 <<내 친구 노무현>>을 만나 첫인사를 나누기 위해 어제 저녁 7시 반, 상수동 이리카페에 작가 김수경 선생님과 선생님의 친구들, 한길사와 인연이 깊은 몇몇 작가, 독자가 모였지요. 함께 책을 낭독하고, 노래를 듣고, 이야기를 나누는 따뜻한 시간이 펼쳐졌답니다. 함께해서 즐거웠던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조금은 비통했던 그 현장으로 지금 바로 초대합니다.




내게 대통령이라는 말은 정치적이라기보다는 문학적 알레고리였다.

그의 존재 자체가 내겐 경이였다. 그는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꿀 수 없었던 꿈을 꾸게 만들었다.

마음 한구석에 처박아놓았던 열정에 불을 지필 수 있게 했다.

효용의 가치뿐인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닌

어쩌면 무용한 자들의 현현한 아름다움을 전해주고 세상을 떠났다.

이 세상에 태어나 그토록 거짓 없는 영혼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은 나의 행운이었다.

그의 친구였던 것을 행복하게 생각한다.

나는 마음으로 그 우정에 응답했고

도리를 다하려 했다.

그 또한 그랬다는 것이 고맙다.








고즈넉한 카페 안에 작가 김수경의 친구들, 한길사의 저자들과 독자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하나하나 낭독이 진행될 때마다 모두 한 마음으로 귀를 기울이고, 더러는 낭독문을 골똘히 들여다보기도 했지요. 어떤 분은 시독회가 진행된 두 시간 여에 걸쳐 <내 친구 노무현>을 아예 독파하셨다고도 합니다. 이렇게 많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한데 모이기도 쉽지 않은데 더구나 다들 어찌나 집중하시는지... 다 함께 다른 세계에 들어와 있는 듯했습니다.





 

사회는 오늘도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님께서 맡아주셨습니다. 저음의 중후한 목소리, 순발력, 작가 선생님과 초대손님, 독자의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선생님만의 편안한 분위기. 그 누가 따라올까요? 작가 김수경의 친구들과 함께하는 낭독, 이제 시작합니다.






독서운동가 여희숙 선생님께서 첫 번째 낭독을 시작하셨지요. '그녀 김수경'이 세무조사를 받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걸려온 노무현의 전화. 그가 말했습니다.


"그간의 사정을 전해들었습니다. 나 때문에 고생 많습니다."

"아니요."

사실은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나 너무 힘들고 어떻게 운명이 결정날지 두려워요."

하지만 차마 말할 수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수천 가지를 원망하고 싶었지만 모든 것을 목구멍 너머로 삼켰다.

침묵의 끝자락에서 노무현이 말했다.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뒤이은 낭독은 배우 김상중 선생님께서 이어가셨습니다. 요즘 TV드라마 '나쁜 녀석들'에서 믿음 가는 배우임을 어김없이 입증하셨지요^^ 김상중의 중후한 목소리는 김수경이 노무현을 처음 만난 1987년 6월의 부산을 생생하게 재현했습니다. 작가 김수경의 필체는 우리가 조금은 잊고 지낸 지난날 '혁명'의 모습을 강렬하게 그려내지요.


친절한 미소. 찰나지만 완벽한 공유.

사람들끼리 그렇게 미소지으며 눈을 찡긋거리며 지나가면서 서로 익살스럽게 묻는 것 같았지.

"우리 혁명 중!"

그녀는 자신이 실제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아마 다시는 그런 유형의 인간을 만나지 못하겠지?

그럴 거야.

이런 말을 할 때는 언제나 강한 상실감과 그리움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감정이 동반되어오는 거야.


김수경 선생님께서 그리워하시는 노무현 변호사의 그 모습-다시는 만나지 못할 '그런 유형의 인간'-이 궁금하시다면, <<내 친구 노무현>> Metaphysical Requiems를 펼쳐보세요~


'초혼'을 읊으신 것은 이철범 서울대 화학과 교수(2006년에 '젊은 과학자상'을 받으셨지요^^)의 몫이었습니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그래. 맞아.

노무현은 스스로 산산이 부서지려 했던 거야.

허공 중에 흩어져버리려고 했던 거야.

그녀는 노무현의 심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고통이 전해져왔다.






작가 김수경의 선생님의 '절친' 더글러스 씨가 그다음 순서로 나섰습니다. 출간을 축하하며 노래를 한 곡 선사하셨지요. 그런데 미국 출신의 그에게서 흘러나온 노래는... '그리운 금강산'이었습니다.


누구의 주제련가 맑고 고운 산
그리운 만이천봉 말은 없어도
이제야 자유만민 옷깃 여미며
그 이름 다시 부를 우리 금강산

수수만년 아름다운 산 못 가본지 몇 해
오늘에야 찾을 날 왔다 금강산은 부른다


아직도 감동에 몸이 저릿저릿합니다.

'시독회', 책을 읽는 자리지만 이날 음악도 여러 곡 함께 즐겼지요(친구들이 모인 자리에 음악이 빠질 순 없겠죠). 그중에서도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이 함께 부른 이 노래. 노무현 대통령이 노래방에서 언제나 불렀다는 '작은 연인들'이었습니다. 사회자 김민웅 선생님께서 기타 반주와 함께 조용히 부르기 시작하시는데... 몇 초나 지났을까. 안개가 퍼져나가듯 어느새 수십 명의 목소리가 어우러져 공간을 울리고 있었습니다. 너무 감동해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었지요.


언제 우리가 만났던가 언제 우리가 헤어졌던가
만남도 헤어짐도 아픔이었지 가던 길 돌아서면
들리는 듯 들리는 듯 너의 목소리 말없이 돌아보면
방울방울 눈물이 흐르는 너와 나는 작은 연인들


김수경 선생님의 친구분들이 어째나 다채로우신지! 박노해 시인과 무용가 홍신자 선생님의 배우자, 베르너 사세 선생님도 시를 들려주셨습니다. 특히 박노해 시인은 오늘을 위해 특별히 새로 지은 시를 읊으셨지요. "사랑은 남아". 무엇이 지나가도 사랑은 남는 걸까요?


 



다시 낭독 순서가 찾아왔습니다. 배우 송옥숙 선생님께서 노무현이 김수경에게 들려주었던 자신의 사랑, 열등감에 관한 이야기를 읊조리셨지요. 김수경 선생님은 <<내 친구 노무현>>에서 '노무현과 친구로 지냈던, 그것도 수없이 사적인 만남을 가졌던 90년대 중반'을 떠올리며 이렇게 그를 회상합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이상하게 누군가에게서 사랑받는다는 확신이 생겨. 그래서 시간이 흐르면 마음속에서 알 수 없는 자신감, 따뜻함 이런 게 치밀어 올라오는 것을 느끼게 돼. 타인에게 존경받는다는 느낌으로 충만하게 되는 거지.

여자가 남자하고 사랑에 빠질 때 느끼게 되는 그런 것하고는 사뭇 달라. 처음에는 너무나 소소해서 잘 알아채지 못하는데 시간이 흘러가면서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이렇게 따뜻하고도 진실할 수 있구나라는 그런 경험을 하게 되는 거지.

이런 것을 사랑이라고 말한다면 사랑에 대해서 애인에 대해서 새로운 정의를 만들어내야 해. 물론 우정도 일종의 사랑이니까. 그가 죽었을 때 많은 국민들이 그를 사랑한다고 거리낌 없이 말했잖아.


...고 노무현 대통령을 살아생전 알고 지내지 못한 게 참 아쉽지요. 작가 김수경과는 달리 저희는 대부분 그런 기회를 갖지 못했으니까요.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이렇게 따뜻하고도 진실할 수 있구나라는 그런 경험".


마지막으로 박재동 화백이 김수경과 노무현이 작별하는 장면을 들려주었습니다. 작별...


사람이 꼭 죽음으로써만 작별하는 것은 아니다.

잔인했던 봄날 봉하의 마을회관에서 노무현의 산산이 부서진 시신이 담겨 있던 관 앞에서 했던 말없는 인사가 그와의 작별이었는지, 아미가 호텔 중식당에서 함께했던 점심식사가 노무현과의 마지막 작별이었는지, 아니면 이 소설의 첫 장에 썼던 마지막 전화 통화가 작별이었던 건지 언제나 헷갈렸다. 그러고 보니 살아오면서 수많은 작별을 했다. 하루하루의 숙제를 마치듯이.


그를 혹은 그녀를 아무리 사랑하고 존경하고 좋아한다고 할지라도 누군가의 인생과 실제로 교차한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서로의 존재의 광채를 멀리서 바라보면서 시간 속을 함께 걸어갈 수 있을 뿐이다.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몸짓으로 그가 역사 속에 남긴 흔적을 경이로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을 뿐이다.

노무현은 잊히지 않았다.

노무현은 아직 죽지 않았다.






<<내 친구 노무현>> 시독회는 이렇게 끝을 맺었습니다. 친구들도 다음을 기억하며 다시 각자의 길로 돌아갔지요.

따뜻하고, 사려 깊고, 유쾌했던,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을 회상하며 그리운 마음에 비애는 감출 수 없었던,

그래도 친구들이 함께 모여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마음을 한데 모았던 시간.




누군가와 함께

시간 속을 걸어간다는 것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몸짓으로

역사 속에 흔적을 남기는 것.

-폴 발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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