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다반사2015. 5. 22. 15:21






"그가 간 지 6년이나 흘렀다.

 그를 쓰면서 비로소

 그를 잊을 수 있었다."

 -작가 김수경, 6주기에 즈음하여 노무현을 그리며




약간씩 가팔라지는 언덕길을 조그만 봇짐 하나 지고 

계속 걸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노무현이 죽고 난 다음부터 줄곧 그랬다.

안타까움, 어떤 미안함, 아쉬움 같은 것들이 서로 섞여 묘한 느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지난해 말 소설 『내 친구 노무현』을 탈고하고 난 이후에는

그 느리고 먼 길의 어느 도중에 잠시 짐을 내려놓고 앉아 쉬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를 쓰면서 그를 잊어버렸던 거다.

지워갔던 거다.

휴식하자던 것이 자꾸 길어졌다.

이 가벼움,

이 편안함에 좀더 눌러 있어야지.

그리고 나는 이제 비로소

그를 내 문학 속의 한 인물로

연민도 사랑도 없는 차가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화가 지웅이 내 책을 읽으면서 계속 무언가 모를 미안함에 사로잡혔다고 그랬지.

'나의 봇짐이 네 어깨 위로 옮겨 갔나 봐'라고

나는 중얼거렸다.


『이것은 소설이다』에서는 좀더 비정해져야지.

그는 나의 사적인 친구도 대통령도 아니고 내 소설이라는 세계 속에 살고 있는 인물이다.

하나의 캐릭터다.

과연 내가 이 작업을 잘 마칠 수 있을까.


그가 간 지 벌써 6년이나 흘렀다.






 


Posted by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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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다반사2015. 5. 21. 14:45

[작가 김수경이 노무현을 그리다-세 번째]

세간의 진실, 한 인간의 진실




추억. souvenir. 추억이란 아래서(sous) 오는(venir) 것이다. 일부러 의식적으로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늘 흐르는 것…


『내 친구 노무현』의 작가 김수경에게 노무현은 일부러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늘 흐르는 어떤 알 수 없는 것일 게다.


5월 23일. 한 해 안에 끼인 삼백여의 날, 그 여러 날 중에 박힌 아픈 한 날, 심하게 부조리한 날. 생과 사 사이의 협곡을 건넌 이는 고독하나 초연한 꽃이다.


나는 한 생애의 결말을 해석하고 발화하기에는 너무나 어리고, 어리석어, 그저 그 경계 암벽 바위에 홀로 서 있었던 한 존재의 절대적 외로움과 비밀을 눈을 질끈 감고 그려본다. 두렵다. 산다는 것이. 절정으로 산다는 것이. 온몸으로 낙담한다는 것이. 앞에 미래라고 놓인 것이 공허라면, 그 공허 속에 떨어진다는 것이 한 나약한 인간으로서, 얼마나 처절하게 두려운 육체적 경험인가 하고.


기억이 난다. 작년 가을 어느 날, 퇴근 무렵이었던가? 저녁 6시 좀 못 미쳐. 『내 친구 노무현』의 첫 장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원고가 들어오던 때, 그런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김수경 선생님은 작은 포인트의 촘촘한 행간을 좋아한다고 하였다. 그래야 글이 잘 써진다고 하였다. A4를 가득 채운 그 어둔 장막 속 별 같은 비밀. 심장이 조금 짓눌려 왔다. 기억하기 고통스러운 바로 그날 안으로 곧장 진입해 들어간 작가의 본능적인 결단과 용기에 잠시 아찔했던 탓이다.


  진실과 사실 사이에서

  상상과 실재 사이에서

  노출과 은폐 사이에서

  작가 김수경이 소설적 진실로 써내려간

  마이 라이프 트릴로지.





그 두 번째 『이것은 소설이다』 원고가 많이 진척되어가고 있다. 1권 작업 때도 집필 독려를 위해 2주가 멀다 하고 사장님과 함께 선생님 댁에 갔었다. 글쓰기는 고독과 고통의 산물이지만, 선생님은 여느 전업 작가들이 보이는 예민함과 신경질 따위를 부리지 않는다. 글쓰기에 신비한 낭만 따위를 부여하지 않는다. 빨리 쓰면서도, 몰입하면서도, 호흡하고 쉬어갈 줄 안다. 환담할 줄 안다. 나는 김수경 선생님이 이따금 지어 보이는 파란 사과 같은 미소를 좋아한다. 애플.


노무현 대통령 서거 6주기가 다가오면서 우리는 짐짓 심각해지고, 우리 작업은 더욱 속도를 내야 할 필요를 느낀다. 현실정치에서는 늘 사건들이 유비적으로 터진다. 1권 『내 친구 노무현』에서 암묵적으로 환기되었던 인물들이 현실정치에서 다시 주요하게 활약한다. 유비적 테마들이 다시 논점이 된다. 정치, 돈. 우정 혹은 적. 역사는 지나 흘러간 줄 알았던 것들의 되풀이, 아니 회귀라 했던가. 순환일지 모른다. 악순환. 선순환 아닌.


노무현에 대해 말하면, “노빠” 혹은 “친노”라는 프레임으로 갇혀버리는 것이 싫다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김수경 선생님은 이날도 말했다. “그저 한 개인에 대해 추억하고 말할 수는 없을까?” “노무현이 그저 한 고유명사, 아니 어떤 추상성도 띠지 않은 구체적 실존 명사일 수는 없을까? 내게는 그런 존재인데…” 하고 우리에게 되묻기도 했다. “노무현이 무조건 옳다고 하지는 않는 한 개인의 기억인데, 그리고 그 기억 속에 한 집단의 기억이 있는 거고”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내 친구 노무현』을 내고 나서 주변에서 매우 다양한 독후감을 들었다고도 했다. 노무현의 지지자들은 “너무 뜨뜻미지근하지 않나?” “그다지 강렬하지 않다”고 했단다. 또 그다지 노무현에 대해 열렬하지 않은 자들은 혹은 싫어하는 자들은 “노무현이 그렇게 감성적인 인간이었어?”라고 했단다. 그러면 “왜 나는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노무현을 그리지 못했을까?” 하고 자문하기도 했다고 했다. “내가 그만큼 강렬한 ‘포트레이트’를 만들지 못했나 보지… 사람들이 내 책이 어렵대…”


『이것은 소설이다』는 언론들이 작성한 수많은 기사들과 온갖 기록 문서들, 해괴한 담론들 등 소위 수많은 ‘팩트’들을 ‘게시’하고 ‘계시’하는 프로젝트다. 이런 팩트들이 현실사회에서 ‘사실’이라고 주장되어왔다. 그러나 그 ‘사실’이, 세간의 진실이 진짜 진실일까? 한 인간의 진실일까? 매우 가파른 내용이 될 것이다. 이 두 상호관계를 철저히 파고드는 힘든 작업이 될 것이다.





“1권이 퍼스널한 기억이라면, 2권은 대통령이 된 노무현의 이야기이므로 퍼스널한 기억이 아니야.” 작가 김수경은 1권에서 “미미한 우정의 광채만 남기고” 대통령이 된 친구 노무현과 이별했다. 이것이 1권의 마지막 장이었다. 이제 2권이 시작되려 한다. 그 첫 문장은 무엇일까?


선생님은 “소위 ‘팩트’들과 나 사이에 일정한 거리가 있고, 그래서 그 팩트들 사이의 연결고리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 연결고리가 작가의 센텐스(sentence)가 될 것이다. 센텐스란 단순히 단어들의 결합인 문장이 아니다. 말 속의 심지다. 아픈 자극이다. 통렬함이다. 인간 본성의 밑바닥까지 들여다보는 주시와 통찰의 언어, 심중의 비밀.


승냥이 언론들이 쏟아낸 수많은 언어들, 그 허위의 더미들을 있는 날것 그대로 환한 빛 아래 눈부시게 ‘게시’하면서, 한 먹이를 서서히 포위해가는 기이한 “사냥감 몰이” 시스템을 암유적으로 ‘계시’해야 할 것이다. 환생경제 따위의 연극 대사를 통해 한 인간을 조롱하고 모욕한 날것의 핏빛 붉은 혀의 언어들을 그대로 선보여야 할 것이다. 불편함, 혐오, 환멸, 울컥 치솟는 분노, 고통 따위를 매우 잘 조절하면서 인간 집단의 혹은 한 사회의 가면을 벗겨내야 할 것이다. 신랄하고, 때로는 폭력적이다 못해 치졸하여 원초적인 날 언어들이 작은 종이를 가득 채우면서도 그러나 이름 모를 하얀 새벽빛이 그 가운데서 솟아 올라와야 할 것이다. 작은 피아노 음악이 그 날것 언어 더미들 사이, 사이에서 들릴까? 우아한 모데라토 칸타빌레로? 뒤라스처럼? 아니, 즐기듯 관능적인 한 여자 현자(賢者)처럼?


“저는 음악과 같이 사는 사람이에요.

저는 전화기로나 컴퓨터로나

언제나 음악과 함께 있는 사람이에요.

물론 글 쓸 때도.”


피로 얼룩진 정치적 관계, 서로의 이익을 탐하는 무대를 보여주기 위해 한 여인이 어둠 속에서 LP판을 찾는다. 뜨거운 차를 따른다. 톤을 맞추자. 조율하자. 팩트와 픽션의 변증이자 역전을 이루어줄 그 톤을. 음계를.


『이것은 소설이다』의 주어는 “그녀 김수경”이 아니라 “나”라고 한다. 3인칭이 아니라 1인칭이라고 한다. Moi(나)만은 아닌 Le Moi(The 나)...







-류재화(한길사 기획위원 |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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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다반사2015. 5. 19. 15:38

[작가 김수경이 노무현을 그리다-첫 번째]

"그를 처음으로 잊을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시간 속을 걸어간다는 것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몸짓으로

역사 속에 흔적을 남기는 것.

-폴 발레리

 


작가 김수경이 '친구 노무현'과 함께 걸었던 시간을 되짚으며 힘들게 써낸 글은, 한 권의 보랏빛 책으로 묶여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 뒤 벌써 여섯 달이 흘렀습니다.

지난 수요일 저녁, 오랜만에 김수경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내 친구 노무현』에 담은 그 기억들을 함께 돌아보고, 뒤이을 『이것은 소설이다』 집필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얘기를 주고받았습니다.

그날의 만남 스케치, 『내 친구 노무현』과 다가올 『이것은 소설이다』 리뷰, 마지막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를 맞아 김수경 선생님께서 직접 들려주시는 담담한 술회까지. 이 모든 것을 총 4회에 걸쳐 바로 이곳, 한길사 블로그에 게재합니다.

다시 돌아온 봄날은 여전히 화창하네요. 먼저 떠난 고인이 그립습니다.

 



 

한길사(이하 '한'): 다음 주면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입니다, 선생님.

 

김수경 선생님(이하 '김')사실 요즘 그를 잊고 있었습니다. 『내 친구 노무현』을 쓰고 나서 노무현을 비로소 잊어버릴 수 있었어요. 노무현이 죽은 뒤 (그를 이렇게 잊어버릴 수 있었던 것은) 처음이에요. 언어의 홍수에 실려 떠내려간 것 같기도 하고. 드디어 노무현을 졸업하는 걸까요. 치유가 되어가나 봐요.

올해는 이렇게 그냥 지나가버리네요. 1주기 땐 봉하에 갔었고… 예전에는 신해철이 콘서트 하자탁현민이 추모 행사 하자 연락이 왔었는데 이번엔 별다른 얘기가 없습니다이렇게 날 찾아온 한길사 빼고는.

 

: 『내 친구 노무현』 출간 이후 기억에 남는 독자 소감이 있나요?

 

: 알고 지내는 한 화가가 그러더군요. 책을 읽다 보니 "(노무현은 죽었는데) 내가 살고 있는 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요. 정말 고마운 소감이었습니다.

 

: 『내 친구 노무현』의 뒤를 잇는 『이것은 소설이다』를 조금 미리 독자분들께 소개해주세요.

 

: 『내 친구 노무현』은 제가 제 삶에서 만난 강렬한 인간, 노무현에 대한 이야기였지요. 1987년 부산 거리에서 그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그가 대통령이 된 2002년까지. 『이것은 소설이다』는 『내 친구 노무현』이 끝나는 지점, 즉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는 날 시작해서 저에 대해 세무조사가 진행되는 데까지를 그립니다. 그 시대를, 그 기간의 제 삶을 노무현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해석해보려는 것입니다.





김: 노무현이 대통령이 된 뒤 그의 임기 동안에는 그와 두세 번밖에 연락을 안 했습니다. 언론을 통해서만 커뮤니케이션이 있었던 셈입니다. 얼마나 그 속에 '날조'가 많던지요! 내가 아는 그 사람과 사회적으로 프레임 씌워진 노무현 사이에는 참 간극이 컸습니다. 사회적 프레임으로 보는 노무현보다는 제 소설이 훨씬 진실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진심이 가득 담기기도 했고요. '팩트'(fact), '진실'을 표방하며 쓰여진 것들이 실제로는 얼마나 '소설'인지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가파른 내용의 책이지요. 검사실을 드나들며 세무조사 받을 때 이야기니까. 그런 와중에도 '그 속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게 할 수 있을까'가 제 고민입니다. 쓰는 게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기사 인용이 많아 딱딱한데, 그 내용들을 부드럽게 이을 연결고리를 찾고 톤을 맞추기가 힘듭니다. 잡지 기사를 문학 텍스트로 승격시키는 것도 어렵고요. 어떨 때는 세 시간 내리 앉아 있어도 한 문장밖에 쓰지 못합니다.

 

: 새로울 것도 없습니다만 최근 정치가 참 시끄럽습니다. 선생님께선 '정치' 문제로 삶에 큰 고통도 겪으셨지요. 『이것은 소설이다』가 바로 그 이야기고요. 요즘의 정치를 보면 어떤 단상이 드세요?

 

: 제가 변했다는 것을 느껴요. 예전엔 분노도 크고 그랬는데 이젠 많이 없어졌어요. 다 지나가버린다는 것을 알고, 그러니 용서 못할 것도 없고... 이젠 그냥 다 제각각인 인간유형으로 느껴집니다.

 

: 노무현은 선생님께서 살면서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진실했던 사람으로 손꼽힌다고 하셨지요.

 

: 노무현은 변호인인데도 사기를 많이 당했더라고요. (역설적으로) 그래서 믿음이 갔어요. 제가 들은 노무현의 말에는 한마디도 거짓이 없었다고 생각해요. 정말 담백하고 솔직한 사람이었어요. 인생에 그런 사람을 열 명도 보지 못했습니다.







-편집부 映

Posted by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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